목 차
Ⅰ.서 론
Ⅱ.고대 사회과학의 탄생과 그 배경
1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
2.유사 사회과학으로서 역사학
3.철학, 사회과학, 그리고 정치학
Ⅲ.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1.정치학의 이념과 위상
2.정치학의 독자성
3.『정치학』이 지닌 과학성의 한계
IV.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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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자명 韓國外國語大學校 附設 社會科學硏究所
학술지명 사회과학논집
권 18
호 1
출판일 2000. 11. 20.
고대 사회과학으로서 정치학의 이념과 위상
김용민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2-444-0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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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서 론
흔히 사회과학(social sciences)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근대사회과학을 지칭하는 말이며, 근대사회과학은 19세기에 이르러서야 그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사회과학은 단일한 학문분과가 아니며, 영어명칭에 있는 복수형이 잘 말해주다시피 '사회 속에 살고있는 인간의 삶의 방식'을 '합리적으로 연구'하는 모든 학문들을 포괄하여 통칭하는 것이다. 근대사회과학이 어떠한 독립 학문들을 포함하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지만, 넓게는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인류학, 사회심리학, 역사학, 교육학, 법학 등을 포함하며, 좁게는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인류학을 포함한다는데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사회과학처럼 고도로 발달된 수준의 독립적 학문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고대 사회에는 사회과학이 없었던 것인가1)? 결론부터 말하면, 이에 대한 필자의 답은 물론 '아니다'이다. 현재의 눈으로 과거의 학문을 재단하는 것은 포크레인으로 고대 유물을 발굴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아니다'라는 답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시하기 위하여 사회과학이 과연 어떠한 학문분야인가를 규정해보고, 고대 사회과학 탄생의 배경과 기원, 고대사회과학으로서 정치학의 이념과 위상 및 그 한계를 살펴본 후, 현대사회과학의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사회과학은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의 삶의 방식을 합리적으로 연구하는 학문분야 (The social sciences are the rational inquiry of the ways of human life in society)"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이 정의를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부연설명을 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과학은 인간의 삶의 방식에 관심을 가진다. 인간의 삶은 어느 시대나 장소를 불문하고 존재했었으며 또한 존재해왔다. 한 인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개별적 삶 자체도 연구대상이 될 수 있지만, 그러한 연구가 사회적인 유의미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연구대상이 좀더 보편성을 지녀야 한다. 따라서 사회과학적 탐구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개별성을 뛰어넘어서 좀더 보편성을 띠는 차원에서 존재하는 '삶의 방식들'(ways of life)이다. 둘째, 사회과학은 특히 사회 속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방식에 관심을 가진다. 인간의 삶은 다양한 공간과 관계를 맺으며 영위된다. 인간의 삶은 신 속에서 우주 속에서 혹은 자연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가족 내에서, 씨족이나 부족 내에서, 사회나 국가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과학은 인간이 맺을 수 있는 여러 관계 중에서, 사회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삶의 방식에 주목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학문이 발달되어온 과정을 본다면, 신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삶이 논의될 때 종교와 신화가 등장했으며,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삶의 논의될 때 자연철학과 자연과학이 등장했음을 알 수 있다. 사회과학은 인간이 신이나 우주, 자연과의 관계가 아니라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타인과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에 관심을 가졌을 때 비로소 등장했던 것이다. 셋째, 사회과학은 '사회적 삶의 방식들'에 대한 '합리적'(rational) 탐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서 합리적이라 함은 이성적이라는 뜻과 대동소이하기도 하지만, 좀더 엄격한 의미에서 합리성이란 개념을 규정해 본다면, 그것은 논리적 필연성(logical necessity)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성에 입각해서 그럴 듯하고 개연성이 높은 논의를 전개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합리성이 요구하는 것은 논리의 개연성(plausibility)보다도 논리의 필연성이다. 우리는 이 필연성에 근거하여 사회적 삶의 방식에 내재하고 있는 법칙성을 발견할 수 있다. 사회과학이 합리성을 띠기 위해서는 기술적일 뿐만 아니라 분석적이어야 할 것이 요구된다. 합리적인 탐구로서의 사회과학은 사회적 삶의 방식과 경험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단순히 기술하는 역사학과 구별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헤로도투스의 『역사』와 투기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본격적인 사회과학적 저술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사회과학의 정의요건을 충족시키는 학문분야가 과연 고대 그리스에 존재했었는가? 필자는 고대의 사회과학은 플라톤의 '정치철학'(political philosophy)으로부터 시작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과학'(political science)으로 정점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공화주의적 정치질서의 탐구를 목표로 하는 협의의 정치학을 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삶의 방식을 전반적으로 포괄하여 설명하고 분석하는 총체적인 학문으로서 광의의 정치학을 포함하고 있다. 『정치학』은 오늘날의 경제학, 사회학, 도시계획학, 도덕철학, 교육학 등을 포괄하고 있으며, 『아테네의 법제론』이 『정치학』 서술을 위한 기본적인 역사적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 잘 나타나고 있는 바와 같이, 정치학의 발전은 역사학의 발전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고대 정치학은 근대적 의미의 사회과학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총체적 · 종합적 사회과학이었으며, 이런 의미에서 고대 사회과학은 정치학으로부터 출발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 고대 그리스 시대의 사회과학적 저술로 헤로도투스의 『역사』,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플라톤의 『국가』, 『정치가』, 『법률』, 크세노폰의 『사이러스의 교육』2), 『가정경제학』, 『아나바시스』, 『헬레니카』,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니코마커스 윤리학』, 『아테네의 법제론』, 『가정경제학』 등을 열거할 수 있다. 여기에 열거된 책들이 사회과학적 저술을 다 포괄하고 있는 것인지, 또는 과연 이 저술들이 사회과학적 저술인가에 대하여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생략하기로 한다. 이 저술들을 보다 세분해서 본다면, 역사서에 『역사』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아나바시스』 『헬레니카』 『아테네의 법제론』이 포함되며, 정치철학서에 플라톤의 상기 세 작품과 『사이러스의 교육』이, 정치과학서에 『정치학』과 『윤리학』 그리고 크세노폰의 『가정경제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정경제학』이 포함된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역사학이 기술적인 차원에 머무르기 때문에 사회과학이 정의요건을 충족시킬 수 없다면, 고대의 사회과학에 관한 저술은 일단 정치철학서와 정치과학서로 압축된다. 여기서 우리가 크세노폰의 『사이러스의 교육』은 '역사소설'(historical romance)의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의 사회과학서로 받아들일 수 없고,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 정치학은 당연히 가정경제학과 윤리학을 포함하는 종합적 학문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결론적으로 고대의 사회과학은 플라톤의 정치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과학으로 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 『국가』-『정치가』-『법률』로 구성되는 플라톤의 정치철학서는 경험적이고 과학적인 측면보다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면이 강한데, 이 중에서 비교적 경험적이고 과학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 『법률』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과학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저서인데, 이 책은 고대 사회과학의 수준과 범위를 보여주는 당대최초이자 최고의 사회과학개론서, 정치학개론서라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위에 열거된 저술들을 중심으로 고대 사회과학의 탄생과 발전을 논하고자 한다.
Ⅱ.고대 사회과학의 탄생과 그 배경
1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
사회과학을 분석적이고 논리적으로 제시한 최초의 사람들은 그리스인들이었다. 하지만 사회과학은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처럼 갑자기 발달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스 역사는 사회과학이 발달하기 앞서 종교와 신화적 사고, 자연철학, 역사학, 소피스트를 중심으로 한 인간 중심적 사고, 그리고 소크라테스로부터 비롯되는 철학이 발달해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유의 역사에 잘 나타나 있듯이 철학의 발달이 전제되지 않고는 사회과학이 탄생할 수 없었다. 철학이 '이성'과 '합리성'을 기반으로 하여 사회과학적 연구의 대상물, 다시 말해 가족, 사회, 국가, 법, 제도 등등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사회과학이 성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고대 사회과학의 이념과 위상을 파악하기 위하여 신화론자부터 자연철학자에 이르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을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종교가와 신화론자는 신 중심적 관점에서 인간의 삶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자연과 인간사회에서 나타나는 모든 좋고 나쁜 일은 인간이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신의 섭리이고 운명적인 필연(Ananke)라고 생각했다. 종교가는 기적이나 계시를 통하여 신의 섭리를 확신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당시의 그리스 사회를 이해하기 위하여 눈 여겨 보아야 할 집단이 바로 시인들이다. 시인들은 신화적 사고를 대변하는 계급이었다. 후대의 철학자들이 이성을 통하여 지혜를 얻고자 했음에 비하여, 시인들은 '직감적 영감'을 통해 초월적인 신의 질서, 우주의 질서를 이해하고자 하였으며, 시를 통해 신의 영광을 칭송하고 자신의 지혜를 표현하고 과시하고자 하였다. 시인의 영감도 지혜를 얻는 중요한 수단임에는 틀림없지만, 이 같은 영감은 논리적으로 일관된 체계적인 지식을 산출하는 확실한 합리성의 근거로 사용될 수 없다는 한계점을 지닌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철학과 시의 오래된 싸움'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Plato, Republic, X, 607b) 호머와 헤시오드로 대표되는 시인들은 신에 대하여 상황에 따라 모순된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진리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이상국가에서는 검열을 통해 시인들의 말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인들의 직감적 영감은 철학자의 합리적 이성을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적이었던 것이다.
호머와 그 외의 신화론자들 이후에 등장한 자연철학자들은 인간의 삶을 자연과의 연관성 속에서 찾으려 하였다. 시인들의 사고의 중심에 신이 위치하고 있었다면, 자연철학자들의 사고의 중심에 '자연'이 위치하고 있었다. 이들은 자연을 신처럼 초월적인 것이 아니고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실재로서 인식하였으며, 자연현상 속에 궁극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어떤 내적 원리로서 존재자와 존재자들을 드러내는 근원적인 힘을 가리켜 퓌시스라 명명하였다. 이러한 혁신적 사고의 시발은 소아시아 이오니아지방의 밀레토스 사람인 탈레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는 만물이 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아낙시만드로스와 아낙시메네시와 더불어 밀레토스학파를 구성하였다. 또 한 사람의 유명한 자연철학자인 피타고라스는 만물은 수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3). 자연철학자들은 신화론자의 사유를 합리적인 방식에 입각하여 설득력 있게 존재론적으로 사유했으며, 신화론자들이 생각한 영원한 신적 존재는 자연철학자에 의해 퓌시스, 또는 존재로 대체되어 탐구되었다. (김내균, 1996, 서문, 14-28.)
자연철학자들의 관심이 주로 자연에 머무는데 비하여, 기원전 5세기 중엽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소피스트들은 그들의 관심을 인간자체에 두었다. "그들의 운동은 탈레스 이후 전개된 자연철학 및 인문학적 지식을 '나름대로' 비판적인 수용을 통하여 출발한 것이며, '나름대로' 지식의 사회적 실천성을 학문 교육활동의 목표로 추구한 사람들이었다. "(양승태, 1998 ; 183) 프로타고라스나 고르기아스는 당대의 대표적인 소피스트였는데, 이 두 사람 중에서 특히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라는 명제를 내세움으로써 인간 중심적 사고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플라톤의 지식에 관한 삼부작인 『시어티터스』- 『소피스트』- 『정치가』에서 프로타고라스의 인식론과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이 심층적으로 논의되고 있는데, 우리는 여기서 프로타고라스류의 상대주의적 경험론과 파르메니데스류의 절대주의적 합리론의 논거점과 그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다4). 소피스트들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실천적인 유용성을 지닌 지식을 가르치고 보급하는데 기여를 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지식을 돈을 벌기 위한 수단적인 가치로 여기고, 도덕에 대한 진지한 사유를 결여했으며, 사회 현상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면에서 약점을 노정하고 있다.
2.유사 사회과학으로서 역사학
고대 그리스인의 사회현상에 대한 관심은 무엇보다도 먼저 사회현상을 기록하는 행위로 나타났다. 기원전 5세기 초(B.C. 480 년경), 소아시아의 할리카르나수스에서 태어난 헤로도투스는 "사람들이 행했던 사실들에 대한 기억이 쇠퇴되지 않고 오래 보존되도록 하기 위해서" 『역사』를 기술한다고 적고 있다. 우리는 『역사』가 쓰여진 동기를 통하여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에 대한 관심은 무엇보다도 먼저 역사적 삶에 대한 기록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헤로도투스는 "이 책을 통하여 내가 취하고 있는 원칙은, 각각의 사람이 말하는 바를 들은 그대로 기록하는 것"(헤로도토스, 박광순, 1996 , 229)이라고 자신의 역사 기술의 원칙을 밝히고 있지만, 우리는 그의 글에서 그가 기록문서라든가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들을 진지하게 조사 탐구하였다는 어떠한 대목도 발견할 수 없다. 그는 우리에게 정확한 사실을 전달해주고 있기보다는 자신이 들은 이야기 -그 내용은 옳을 수도 있고 그를 수도 있는데 -를 단순히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그가 과연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는가의 문제에 관해서 투키디데스를 비롯한 많은 연구자들이 의심을 표명하고 있는데, 이런 면을 고려해 볼 때 헤로도투스가 합리적 탐구를 추구했던 사회과학자였다고 규정할 수 없다. 그는 단지 이야기의 기록자, 역사 서술가로 자리 잡을 뿐이다.
투키디데스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는 방법이나 분석하는 관점에 있어, 헤로도투스보다 상당히 진일보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기술하기 위해 자신이 수집한 증거가 '신화적 사고를 하는 호머같은 시인'이나 '통속적 이야기를 전개하는 헤로도투스'와 같은 역사 서술가가 제시하는 증거보다 훨씬 진리에 가깝다는 것을 대단히 강조하고 있다: "내가 제시한 증거는 주제의 중요성을 스스로 과장하는 시인들이 제시하는 증거보다도 또한 진실을 말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오직 대중의 관심을 사려는 역사 서술가가 제시하는 증거보다도 더욱 확실한 것이다. "(Thucydides, 1972 ; Bk. 1, para. 21-22, p. 47). 우리는 이 인용문을 통하여, 시인은 사실을 왜곡하면서 자신의 주제만을 강조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또한 역사가는 대중의 기대에 영합하여 흥미 있는 이야기를 선별적으로 기록하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사회과학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투키디데스가 단순히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가가 아니라 사회를 분석적이고 합리적으로 이해하려는 역사가 이상의 존재로 -그것은 현재 우리의 용어를 빌자면 사회과학자인데 -남아있고자 하는 욕망을 다음과 같은 그의 저술 동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의 역사서에 로맨스가 없기 때문에 읽어 가기에 다소 재미가 없지 않을까 염려된다 그러나 나의 책이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기도 하지만 미래의 어느 순간에 비슷하게 반복될 그러한 일을 분명하게 이해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유용한 것이라고 판단되어진다면 나는 만족한다. 나의 작품은 눈앞에 있는 대중의 취향에 부합하기 위하여 쓰여진 것이 아니라, 영원한 작품으로 남기 위해서 쓰여졌다"(Thucydides, 1972 ; Bk. 1, para. 21-22, p. 48). 여기서 투키디데스는 자신의 역사서가 단순히 과거의 개별적인 사건을 기록하고 설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일도 예측하고 설명할 수 있도록 분석적이고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관점에서 쓰여졌음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 투키디데스는 역사학의 개별성을 초극하여 보편적 사회과학,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보편적 학문으로서의 철학에 도달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Leo Strauss, 1978, pp. 142-3). 이러한 그의 희망이 달성되었다면 그는 최초의 사회과학자로 지칭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희망은 달성되지 못했다.
투키디데스의 관점이 암묵적으로 보편성을 지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기술하고 있는 것은 '개별적 사실'이며, 그는 이러한 '개별적 사실'을 전체와 연관시켜 조망해 볼 수 있는 '보편적 관점', 다시 말해서 사회과학적 틀을 우리에게 명시적으로 밝혀주고 있지 않다. 이런 면에서 투키디데스의 한계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얼마나 전체에 대한 보편적 지식의 탐구에 몰두했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과 비교해 본다면 전자가 지닌 지식의 개별성, 부분성, 불확실성, 비체계성 등을 확실히 파악할 수 있다. 투키디데스의 역사에 대한 접근방법은 아직도 과학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부족한 것이었다고 평가된다.
3.철학, 사회과학, 그리고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모든 인간은 본성적으로 지식을 추구한다"는 말로 시작되고 있다. 지적 호기심은 인간의 본성이며, 이러한 본성은 철학이라는 형태에서 완전하게 발현된다. 철학은 지혜에 대한 탐구로서 보편적 지식에 대한 탐구, 전체에 대한 탐구이며, 그것은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의 상대주의와 경험주의에 대항해, 불변의 진리가 존재한다는 절대주의와 이성중심주의를 주창함으로써 철학의 굳건한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불변의 진리를 '인간과 국가의 관계'속에서 실현할 수 있는 정치적 해결책을 모색하였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철학적 관심의 대상을 자연에서 인간으로 전환시키는데 기여한 사람은 소피스트들이었다. 하지만 인간 중심적인 소피스트의 관점은 인간과 국가가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에까지 확대되지는 못하였다. 인간을 '시민'으로 파악하고 그들에게 '도덕적 덕'(moral virtue) -그 중 으뜸가는 것이 '정의'(Justice) 인데 -이 필요함을 강조한 최초의 철학자가 바로 소크라테스였던 것이다.
사회과학이 '인간의 사회적 삶의 방식에 관한 합리적 연구'라면, 그것이 지니고 있는 합리성과 그에 따른 보편성은 철학만이 담보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철학이 인간의 사회적삶에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사회과학이 탄생할 수 있게 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사회'는 '국가'와 구별되지 않았으며 사회적 삶은 정치적 삶, 시민적 삶과 일치되는 것이었다. 그리스에서 정치(politics)는 폴리스(polis)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계되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고대의 사회과학은 정치학과 다름이 없게 된다.
정치학을 이념을 중시하는 정치철학과 처방과 실천을 중시하는 정치과학으로 나누어 본다면, 플라톤의 『국가』는 최초의 정치철학서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최초의 정치과학서라고 말할 수 있다. 플라톤이 말하는 동굴의 우화에서 우리는 플라톤의 정치학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데, 그에 있어서 정치학은 동굴을 벗어나 '좋음의 이데아'를 깨달은 철학자가 동굴로 다시 돌아오면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플라톤에 있어서 정치학은 현실을 이해하고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는 학문이 아니라 현실을 구성하고 이끌어 나가는데 도움을 주는 이념적 학문으로 자리 매김을 하게 된다. 플라톤의 정치에 관한 대화편 가운데 상대적으로 가장 정치과학적 성격을 띤 것이 『법률』이다5). 『법률』은 동굴의 다양하고 구체적인 환경에 따라 융통성 있게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할 것을 강조한다. 『법률』에 나오는 주요 화자인 아테네에서 온 이방인은 특정한 국가에 맞는 법률을 제정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그 국가가 어떤 자연적 환경에 놓여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자연지형, 인종, 인구, 국가의 규모 등이 법률의 제정에 있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함을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법률』을 보다 과학적으로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연장선 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총체적 사회과학으로서의 정치학의 발달을 논의하는 가운데 흔히 간과되는 중요한 저술이 크세노폰이 쓴 『사이러스의 교육』이다. 크세노폰은 B.C 6세기 중반에 메디아와 페르시아를 통합하여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했던 '사이러스대제'(Cyrus the Great, 재위기간 558-529 B.C.)를 주인공으로 하여, '역사소설'의 형식을 빌어, 그가 '우정'(friendship)을 바탕으로 하여 대제국을 이루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6). 우리가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저술을 남긴 사람은 플라톤과 크세노폰 뿐이고, 또한 주로 두 사람의 작품을 통해서 소크라테스의 언행과 생각을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은, 물론 플라톤보다는 못하지만 크세노폰이 정치철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가늠하게 해 준다7). 두 사람이 소크라테스의 같은 제자로서 소크라테스에 대한.기록과 정치를 보는 관점에 많은 차이가 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과연 두 사람이 소크라테스의 메시지를 서로 다르게 이해하였는지 아니면 소크라테스의 메시지를 서로 다르게 표현하고 있을 뿐인지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필자는 후자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있다8). 크세노폰의 『사이러스의 교육』은 플라톤의 『국가』에 비견될 수 있는 정치철학서이다. 전자는 후자와 여러 면에서 비교가 되는데 그것을 간단히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자는 역사소설이란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반해, 후자는 대화란 형식을 취하고 있다. 둘째, 전자는 진정한 우정이 아닌 약간 타락한 형태의 우정을 정치의 원리로 보고 있는데 반해9), 후자는 엄격한 '정의'를 정치의 원리로 보고 있다 셋째, 전자는 거대한 제국의 형성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반해, 후자는 작은 규모의 안정된 도시국가의 형성과정을 그리고 있다 넷째, 전자는 '정치가'(Statesman)의 모습을 바람직한 지배자 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반해, 후자는 '철인왕'(philosopher-king)의 모습을 바람직한 지배자 상으로 제시하고 있다10).
크세노폰은 플라톤보다는 좀더 현실적인 면에서 정치를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그도 정치질서의 수립을 위해서는 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면에서 플라톤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플라톤이 정치를 논하기 위해 철인왕을 전제했던 바와 같이, 크세노폰도 사이러스라는 이상적인 군주를 전제하고 있다는 면에서 정치의 이념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에 있어서 이념성의 완화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혁신적으로 이루어진다 그 완화의 정도는 마키아벨리가 주장했던 것처럼 혁명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도는 정치학을 과학의 수준에 올려놓을 수 있을 만큼 혁신적인 것이었다.
Ⅲ.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1.정치학의 이념과 위상
지금까지 우리는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정치학이 총체적 · 종합적 사회과학으로 발달되어 오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논의를 배경으로 하여 정치학의 위상을 정립하기 위하여 우리는 최초로 학문의 분류를 시도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지식을 세 종류로 나누었다: "모든 사유는 실천적인 것이든지 창작적인 것이든지 이론적인 것이다11)." 창작학은 사물의 제작에 관계되는 학문이며, 『시학』과 『수사학』은 이 분야의 저술이다. 실천학은 여러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위할 것인가에 관계되는 학문이며, 『정치학』과 『니코마커스의 윤리학』이 이 분야를 대표하는 저술이다. 지식의 목적이 창작도 아니고 행위에 관계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진리일 때만 그것은 이론적인 지식이 되며, 이 학문분야에는 수학, 자연과학, 신학이 포함된다. 『자연학』, 『형이상학』 등이 이론학 분야에 포함된다.
실천학을 굳이 분류하자면 정치학과 윤리학, 그리고 가정경제학 등으로 나눌 수 있지만, 아래에서 논의될 바와 같이 윤리학과 가정경제학은 정치학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분야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 실천학으로서의 정치학은 국가 내에서 '좋은 삶' (a good life)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한 개인에 있어서나 한 국가에 있어서 '좋은 삶'은 부분적으로 실현될 수 없다. 나의 일상적인 삶 가운데 불편한 약간의 부분이 존재한다면, 나의 삶은 좋은 삶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좋은 삶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정치학은 인간의 모든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총체적 사회과학의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다. 좋은 삶의 보다 구체적 모습은 경제적, 윤리적, 정치적 측면에서 논의될 수 있다. 우선 좋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일상적인 수준에서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기본욕구의 충족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정'에서 이런 욕구의 충족이 해결되고 있다고 보았으며 가정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획득하고 사용 · 관리하는 기술 및 가족구성원의 관계 -부부의 관계, 부모와 자식의 관계, 자식들간의 관계 -를 잘 유지하는 기술을 일컬어 '가정경제학'이라 하였다. 그 진위여부가 문제가 되고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자로 되어 있는 『가정 경제학』은 총 3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1권은 『정치학』의 1권에 나오는 '가정경제학'의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제2권은 국가의 재정과 조세에 관한 역사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3권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하여 남편과 부인, 자식과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소크라테스-플라톤의 전통을 따라서 영혼과 육체의 이분법을 받아들이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육체의 만족을 충족시키는 기술을 제공하는 경제학은 정치에 종속적이며 준정치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그에 있어서 좋은 삶은 육체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와 관계되는 것이며, 정치학은 바로 영혼에게 좋음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제시하고 실천하는 학문이기에 최고의 학문이며 만학의 왕으로 자리 잡게 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좋은삶의 실현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 『니코마커스 윤리학』이라고 한다면, 공적인 차원에서 좋은 삶의 실현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 『정치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니코마커스 윤리학』의 성격을 단적으로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윤리학』에서 행해진 논의가 가치가 있다면, 이미 그 책에서도 말해졌지만, 우리는 행복은 개인의 탁월성의 실현이며 탁월성의 완전한 수행이고, 또한 행복은 조건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이라는 것을 주장한다12)." 그러나 윤리적 삶은 그것의 실현을 보장해 줄 수 있는 훌륭한 정치체제 혹은 정치적 질서의 수립이 전제되지 않고는 절대적인 행복으로 연결될 수 없다. 그러므로 윤리학은 정치학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커스 윤리학』의 끝 부분에서 윤리학과 정치학, 그리고 그와 리케이온 학원의 제자들의 공동작업으로 결과로 생각되는 각국 법제론의13) 연관성을 다음과같이 기술하고 있다:
법률과 정치제도에 관한 자료수집 (collections of laws and Political systems)은, 만약 우리가 이것을 연구할 수 있고, 무엇이 잘 되어 있고 무엇이 잘 안되어 있는지 판단할 수 있고, 또한 어떤 법령이 어떤 환경에서 적합한가를 판단할 수 있다면 아마도 가장 유용한 것이 될 것이다....
우리의 선인들이 입법에 관한 주제를 탐구하지 않고 우리에게 남겨 주었기 때문에, 그들을 대신해서 우리들 자신이 그 주제를 연구하고, 정치체제를 일반적으로 검토하고, 또한 우리의 힘이 미치는 데까지 인간본성에 관한 철학을 완성시키기는 것은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로, 우리의 선인들이 특정한 주제에 있어서 올바른 논평을 한 것이 있으면 그것들을 먼저 검토해 보기로 하자. 다음으로 정치체제에 관해 수집된 자료를 연구하여, 어떤 종류의 일이 국가를 보존하거나 멸망케 하며, 어떤 유형의 정치체제가 존재하는지, 또 어떤 요인들이 좋은 정치 혹은 나쁜 정치를 유인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이런 것들을 다 연구한 연후에야, 우리는 어떤 종류의 정치체제가 최선의 것인지, 각 정치체제가 최선의 것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조직되어야 할 것인지, 그리고 어떠한 습관과 법률이 뒤따라야 하는지에 관해 좀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14).
우리는 위 인용문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이 우선 현상적 차원에서 경험과 관찰, 그리고 역사에 입각해 있으며, 보다 본질적으로 '인간본성에 관한 철학'을 완성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냉철한 이성적 판단의 여과과정을 통하여 쓰여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입법에 관한 주제, 다시 말해 정치학의 주제를 연구하기 위하여 선인들의 견해를 검토하고, 자료의 수집과 검토를 거친 후,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최선의 체제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알 수 있다. 그의 이러한 연구태도는 현대 사회과학자의 태도와 별로 다름이 없는 것이다.
2.정치학의 독자성
정치학 분야에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장 큰 공헌은 정치학을 하나의 완전한 독립학문으로 구축했다는 점이다. 그에 있어 국가는 그 자체 내에서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 독립적단위이며, 시민의 삶은 모든 면에서 국가와 연관되며 상호 관련을 맺게 된다. 국가 내에서 정신적 삶의 한 양태로서 종교는 인정이 되지만, 종교는 중세의 국가가 그러했던 것처럼 국가의 권위를 침해하거나 초월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입헌주의, 혹은 법치주의를 『정치학』에서 강조하고 있는데, 이런 맥락에서 법을 만드는 사람은 철인왕이 아니라 바로 시민으로 나타난다. 철인왕의 지배원리는 '좋음의 이데아'이다. 그러나 플라톤에 있어서 “이데아가 하늘에 존재하는 것(a pattern is laid up in heaven)"이라면, '이데아를 실현하는 과정'(politicization of the Idea)으로서의 정치는 국가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이데아에 의하여 구속되고 종속될 수밖에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초월적 이데아론을 비판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내재적 이데아론을 주장하는데, 이에 따르면 정치는 더 이상 국가외적의 존재에 의해 구속받지 않게 된다. 즉 정치의 독자성이 확립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 정치의 독자성을 보장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이 '자유'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 있어 자유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아무리 해도 지나침이 없다. 자유에서 여유로움이 나오고, 여유로움의 사용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바람직한 인간상이라고 생각하는 '신사'(gentleman)가 탄생하는 것이다. 플라톤이 지혜에 의한 정치, 계급적 질서에 의한 정치를 강조하고 있는데 비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유에 기반을 둔 정치, 자율적 정치참여에 입각한 정치를 강조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최초로 정치의 영역은 자유의 영역으로 확대되었으며, 또한 그것은 이성이 있는 시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보편성의 영역으로 발전되었다.
현대에 사는 우리가 만약 『정치학』의 저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가운데 책을 읽어본다면, 어떤 사람인가가 그 저자는 우리와 동시대인이라고 말한다하더라도, 우리 중에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이 책이 24세기 전에 쓰여진 책이라는 사실에 놀랄 사람이 아마도 더 많을 것이다. 현대에 사는 우리가, 그것도 서양이 아닌 동양의 한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를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다면, 바로 그만큼,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의 독자성의 확립에 성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3.『정치학』이 지닌 과학성의 한계
『정치학』이 얼마나 포괄적으로 정치학의 주요 주제를 다루고 있는 가를 상론하는 것은 본논문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다. 근대의 정치적 저서 가운데 그 내용의 포괄성이나 방법의 과학성이라는 면에서 『정치학』에 필적할 만한 책으로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The Spirit of the Laws)을 제시할 수 있다. 『정치학』이 근대 과학적 정신의 정치학적 산물인 『법의 정신』에 비견될 수 있다면, 『정치학』이 지닌 과학성의 수준은 상당하다고 말'할 수 있다.
앞에선 논의했듯, 정치학의 과학성이라는 측면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보다 상당히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보다 정치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증거의 하나가 플라톤이 분류한 정치체제(즉, 철인왕정, 명예정, 과두정, 민주정, 참주정)를 역사적으로 발현된 구체적 형태에 따라 세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왕정을 다섯 가지의 형태로, 민주정을 네 가지의 형태로 세분하고 있다. 또 다른 좋은 증거는 정치의 독자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정부의 구성요소 및 직책을 상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논의에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 몽테스키외가 주장하는 삼권분립이나 견제와 균형의 관념에 이르지 못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권력분립의 개념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권력의 기능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의 『정치학』이 지닌 과학성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정치학』에서 표방되는 과학성이 과연 근대의 자연과학에서 요구되는 바와 같이 엄밀한 것인가에 대해 검토해 보아야 한다. 우선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의 논의는 엄밀성을 띨 수 없지만, 주제가 허락하는 만큼의 명료성(degree of clarity)을 가지면 충분한 것이 될 것이라고 『윤리학』의 초두에서 밝히고 있다. 과학성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명료성의 정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 그대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주창하는 과학성이 그의 철학의 근간에 깔려 있는 '목적론'과 양립될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정치학이 '좋은 삶'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고 할 때, '좋음'이란 목적이 과연 과학적으로 해명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사회과학사에서 중대한 논쟁거리로 대두된다. 정치학이 추구하는 '좋은 삶'에 있어서 '좋음'의 개념은 정치학의 전반적이고 포괄적 성격을 나타내는 반면에, 목적론적 관점과 연관시켜 생각할 때 '좋음'의 개념은 정치학이 지닌 비과학성, 혹은 상식성을 보여주게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치에서의 '좋음'이 '자연의 본성'(nature)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각 정치체제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는 '인위적인 결정'(Convention)으로 규정되는 것이라면15), 좋음의 추구를 목표로 하는 정치학은 학문적 객관성을 결여한 비과학적이며 상식적인 지식 혹은 의견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총체적 사회과학으로서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결국 '총체성'과 '과학성'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한계를 노정한다. 근대사회과학은 목적론을 탈피하여 좋음이라는 가치판단을 연구의 영역에서 제외해 버리고, 좀더 엄밀한 과학성만 추구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근대사회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총체적 학문으로서의 정치학은 좁은 의미의 정치과학, 경제학, 사회학, 인류학 등으로 분화되었으며, 또한 자연과학의 발달에 기인하여 증대되기 시작한 방법론상의 엄밀성의 요구는 계량화의 요구와 직결되어 사회과학의 기반을 더욱 협소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정치학의 경우만 보더라도, 정치철학과 정치학일반은 분리되어 각각 독립된 영역처럼 존재하고 있고, 상호 소통의 의욕마저 상실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IV.결론
최초의 사회과학으로 출발한 정치학은 고상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시민에게 좋은 삶, 행복한 삶, 아름다운 삶, 고상한 삶을 보장해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인간의 육체보다 영혼에 더 중요한 가치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를 필두로 하여 홉스, 로크가 이룩한 근대 정치학은 -그것은 또한 근대사회과학이기도 한데 - 고상하고 좋은 삶과 그것을 보장해 주는 최선의 정치체제에 대한 연구를 포기하면서, '인간의 생존'(self-preservation)만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정치체제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였다. 이에따라 고대 정치학의 이상에 수반되었던 고상함은 상실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정치공동체에 대한 신뢰감마저도 상실되었다 생존의 방법에 대한 연구에만 치중한 근대정치학은 고대정치학이 목표로 하였던 수준을 낮추고 범위를 축소시켰을 뿐만 아니라, 정치학을 물질적 생존의 보장을 위한 수단적 학문으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정치학의 지위하락과 동시에 진행된 사건은, 개별학문으로서의 경제학의 급속한 발전과 지위상승이었다. 개인의 생존은 물론 물질적 번영도 책임질 수 있다는 경제학자들의 주장 앞에, 고대정치학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던 지혜, 정의, 덕, 자유 등과 같은 핵심적인 주제는 더 이상 설자리를 찾지 못하게 되었다. 공동선이라는 목표가 상실되면서 최선의 정치체제보다는 관용의 정치체제가 추구되었고, 이에 따라 모든 갈등은 관용의 이름의 포용되었으며, 좋음과 나쁨이라는 가치판단도 다양성의 한 가지 발현양태란 이름으로 포용되기에 이르렀다. 좋은 삶을 강조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발은 막스 베버에 의해서 행해졌다. 베버는 사회과학의 연구는 가치중립적 판단에 근거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좋은 삶을 강조한 아리스토테렐스의 정치학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었다. 베버의 과학성에 대한 강력한 요구는 한편으로 사회과학의 합리적 체계성을 증진하는데 기여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회과학이 과연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사회과학의 유용성에 대한 심각한 회의를 초래하는 계기도 되었다.
고대 사회과학으로 정치학은 사회의 한 부분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사회전체에 대한 지식으로 존재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현대 사회과학에 포함되는 개별학문은 사회전체가 아닌 사회의 한 부분에 대한 지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고대사회과학은 숲을 보고 있지만 나무를 못 보고 있는 입장이라 할 수 있고, 현대 사회과학은 나무를 보고 있지만 숲을 못 보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고대 사회에서 철학은 사회과학발달의 전제조건이었다. 분화되고 고립된 가운데 상호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대 사회과학의 제분야가 인간에게 진실로 유용하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전체에 관한 지식인 '철학'에 의해 인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철학은 어디서 올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대변되는 그리스의 정치학에 대한 연구는 하나의 철학적 대안을 마련해 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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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김내균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철학』. 서울: 교보문고, 1996.
김용민. "플라톤의 정치철학," 김영국 외, 『레오 스트라우스의 정치철학』.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1995._
김용민. "플라톤과 루소에 있어서 지식과 정치," 『한국정치학회보』 33집 1호 (1999).
김용민. "정치에 있어서 정의와 우정: 플라톤과 크세노폰," 『1999년 한국정치학회 연례학술대회 논문집 』.
양승태. "희랍대학사에 있어서 종교적 초월성과 세속적 실용성의 변증법 V: 소피스트 운동과 여명기의 역풍(상)," 『대학지성』 7호(1998).
헤로도토스/박광순 옮김. 『역사』. 서울:범우사, 1996.
Aristotle. Politics.
Aristotle. Nicomachean Ethics.
Aristotle. Metaphy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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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to. Republic.
Plato. States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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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sseau, Jean-Jacques. The First and Second Discoursed, trans. by Victor Gourevitch. New York: Harper & Row, 1990.
Strauss, Leo. The City and Man.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8.
Thucydides. 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 New York: Penguin Classics, 1972.
Xenophon. Cyropaedia.
Xenophon. Hellencia.
Xenophon. Anabasis.
Xenophon. Oeconomi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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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주
1) 본 논문에서 말하는 고대사회는 고대그리스사회를 지칭한다. 여기서 특히 그리스를 지목하는 이유는 당대의 인간의 삶을 기록하고 분석한 저술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동양의 고대사회에 사회과학이 어떤형태로 존재했었는가 하는 문제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질문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2) 사이러스는 Cyrus 의 영어식 발음이다. 흔히 키루스, 혹은 키로스로 표현되기 한다. 원저서명은 Cyropaedia 이며 영어로는 The Education of Cyrus로 번역되어 있다.
3) 대학의 역사란 관점에서 그리스 철학의 발달과정을 상론한 논문으로 양승태교수가 『대학지성』에 연재물로 기고하는 "대학사의 이념과 현실의 변증법"이 있다. 그리스 철학의 기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일독 할 것을 권한다.
4) 김용민, "플라톤과 루소에 있어서 지식과 정치," 『한국정치학회보』 33집 1호 (1999) 참조.
5) 플라톤의 정치철학서에 대한 필자의 해석으로 다음 논문 참조. 김용민, "플라톤의 정치철학," 김영국외, 『레오 스트라우스의 정치철학』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5).
6) 루소는 『학문예술론』에서 『사이러스의 교육』이 많은 사람에게 '철학 소설'(Philosophical Romance)로 잘못 알려져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 책에 페르시아 제도의 역사가 정확하게 기술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루소에 따르면 『사이러스의 교육』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역사서인 것이다. Cf. Jean-Jacques Rousseau, The First and Second Discoursed, trans. by Victor Gourevitch (New York: Harper & Row, 1990), p. 9.
7) 소크라테스가 등장하는 크세노폰의 대화편으로 『소크라테스의 회상』 『향연』 『변명』 『가정정제학』의 네 작품이 있다. 플라톤도 『향연』과 『변명』이라는 같은 이름의 대화편을 쓴 바 있다. 크세노폰의 『가정경제학』말고 Oeconomics로 쓰여진 또 다른 작품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진위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름으로 쓰여진 『가정경제학』이다. 이밖에 크세노폰의 주요 저서로, 역사서로 분류될 수 있는 『아나바시스』와 『헬레니카』가 있는데, 전자는 크세노폰이 장군으로 페르시아 왕자인 사이러스(여기의 사이러스는 『사이러스의 교육)의 주인공인 사이러스대제와는 다른 인물임)를 도와 참전한 페르시아 원정기이자 만 명에 이르는 그리스 병사의 퇴각기이고, 후자는 크세노폰의 자신이 경험하고 있고 기억하고 있는 당대 그리스의 역사를 적어 놓은 책이다. 본 논문의 주제와 관련시켜 생각해 본다면, 『아나바시스』는 전쟁의 과정과 전략만을 다르고 있다는 점에서, 『헬레니카』는 크세노폰 자신의 비망록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과학서로 분류되기에는 문제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8) 필자의 입장에 관해서는 졸고 "정치에 있어서 정의와 우정: 플라톤과 크세노폰『 (1999년 한국정치학회 연례학술대회 논문집) 참조.
9)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커스 윤리학』 8권과 9권에서 우정을 상호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진정한 우정, 쾌락을 위한 우정, 이익을 위한 우정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있는데, 이런 분류를 따른다면 크세노폰은 정치를 위해서는 이익을 위한 우정을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10) 플라톤은 지혜를 갖고 있는 세 가지 인간 유형으로 철학자, 정치가, 소피스트를 제시하고 있으며, 이중 철학자(혹은 철인왕)를 '인간의 가능성'(human possibility)이 가장 최고로 실현된 인간유형으로 생각하고 있다.
11) Aristotle, Metaphysics, VI, 1025b25. Metaphysics, VI, 1025b25
12) Aristotle, Politics, VII, 1332a7-10.
13) 아리스토텔례스는 각국의 법과 정치체제에 대해 연구했고, 이에 관해 158편의 논문을 썼다고 말해지고 있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이에 관한 논문이 어느 하나도 전해오는 것이 없어서, 이러한 진술의 진위에 대하여 논란이 많았으나, 1880년 아테네의 정치체제에 관해 쓰여진 파피루스가 발견되자 그 진술의 신빙성을 확인 받게 되었다. 『아테네의 법제론』은 당대의 아테네 정치 제도에 대한 설명과 간단한 아테네 헌법사로 구성되어 있다.
14) Aristotle, Nicomachean Ethics, X, 1181b6-25.
15) Nichomachean Ethics, I, 1094b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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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사항
김용민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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