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여울바둑 ◈

☆ <학술발표논문> 바둑의 체계적인 재구성

온울에 2008. 6. 6. 17:06

제목 :  바둑의 구조적인 재구성
         -제8회 바둑학 학술대회(2008/05/31), 한국 바둑학회.

목차 :

    제 1 장 :  바둑규칙의 문제제기와 해결방안 제시.

    제 2 장 :  종국의 문제.

       1.  한.중.일.대만 계가방식의 귀결.

       2.  종국이란?

    제 3 장 :  밭의 설명력과 그 효율성.

       1.  바둑의 3요소.

       2.  추구의 대상을써 밭.

    제 4 장 :  규칙적용의 순서.

       1.  순환마디의 결정과 규칙의 우선성.

    제 5 장 :  바둑에서 순환의 경우.

    제 6 장 :  바둑과 용어의 정의.

    제 7 장 :  여울의 구조와 기능.

       1.  빈울의 구조와 기능.

       2.  한울의 구조와 기능.

       3.  두울의 구조와 기능.

    제 8 장 :  두울기능의 한계와 제약.

       1.  한울이음.

       2.  두울이음.

    제 9 장 :  수행규칙의 적합성.

       1.  충분규칙.

       2.  수행규칙.

       3.  충분조건.

    제 10 장 :  <결론> :  



    제 1 장 :  바둑규칙의 문제제기와 해결방안 제시.

  현재 시행하고 있는 한중일 바둑의 규칙이 순환을 모두 배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까닭으로 바둑의 발전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되고 있고 바둑의 세계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현재의 바둑규칙은 전승되는 관례를 적당히 정식화 하였을 뿐이지 바둑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바둑의 진행규칙의 한계를 극복하고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바둑의 진행규칙을 재구성할 필요성이 언제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순환의 경우나 규칙의 미비점을 보완 하려고만 했지 구조적인 관점에서 그 형식적 관계를 파악하려는 시도 자체가 없었다고 본다. 이러한 실천적인 규칙들은 바둑을 단순히 즐기는 정도에서는 거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간혹 문제가 발생하며 이렇게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그 해결 방안이 마련 되어 있어야 한다. 아무런 대책 없이 반상 해결의 원칙을 들이대는 데 반상해결의 원칙이 잘못이 아니라 그 사용이 왜곡되어 있다고 본다. 반상 해결의 원칙은 바둑 안에서 바둑의 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국자의 능력에 의존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경우에 따라서 대국 당사자의 능력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국자에게 문제를 위임하는 것은 바둑을 바둑 안에서 해결하려는 시도와 노력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대국 당사자에게 문제해결을 맞기는 것이 아닌 진정한 반상해결을 위해서 갖추어야 할 조건들로 합리성과 효율성 그리고 우선성을 들고 싶다. 먼저 논리적인 합리성이다. 바둑을 설명하고 바둑의 진행과정을 조절하는 데 논리적 모순과 말도 안되는 이유를 가지고 한다면 이러한 결과를 바둑에서 받아 들여야 할 아무런 근거도 이유도 없다. 그러므로 바둑인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 질 수 있는 적합성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효율적이어야 한다. 불필요한 설명과 불필요한 대상을 최소로 하여야 한다. 보다 단순한 설명이 보다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최소의 구성 요소와 가능한 한 최소의 제약을 가지고 바둑을 설명하고 진행과정을 조절해야 한다. 그러한 결과여야 바둑에 최대의 자율성과 자유로운 선택의 기회를 부여할 수 있다(경제원칙). 끝으로 바둑이 한 종류의 펼침이 아닌 까닭으로 항상 기회 선택에서 갈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와 같이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적인 전략으로 우선성을 들고 싶다. 갈등의 원천인 동시성과 순환성 그리고 무한성을 우선성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동시성에서 순차성으로, 순환성에서 진행성으로, 무한한 과정이 아닌 유한한 범위 안에서 유한한 기회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성에 따른 바둑이라면 모든 동시성과 순환성 그리고 무한성을 배제해야 한다. 그래야 우선성에 따른 해결 방법이 하나의 원칙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나는 바둑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기준으로 우선성 해결의 원칙을 제안한다. 합리성과 효율성은 보다 일반적인 규범이고, 우선성은 바둑처럼 - 오직 두 종류의 대상-  단순한 경우에 적용될 수 있는 구체적인 접근방식이다.   

  이제 바둑을 보다 체계적인 관계로 규정하기 위해서 순환이 가능한 모든 경우들과 진행과정을 보장하기 위해서 마련해야 될 규칙들에 대해서 그리고 포괄적인 설명을 구조적인 입장에서 접근해 보기로 하자. 바둑이란? 바둑은 무엇을 추구하는가? 돌들이 왜 하나로 기능하는가? 낳음의 이유는 무엇인가? 바둑은 정확히 언제 끝나는가? 순환이란 무엇인가? 순환의 구조는 무엇인가? 순환을 어떻게 배제하는가? 모든 순환을 배제할 수 있는가? 진행규칙의 한계는 무엇인가? 바둑을 설명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현재의 바둑체계는 위에서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서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바둑을 잘 두는 것과 바둑의 체계적인 완성은 서로 다른 문제이다. 바둑을 잘 둔다고 해서 바둑체계를 모두 파악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미 바둑체계가 완성 되었을 것이다. 바둑계가 바둑체계를 완성하지 못한 채로 운영되고 있다보니 바둑의 세계화나 바둑의 발전 그리고 바둑의 활성화에 구조적인 한계를 드러내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대체로 이러한 물음에 어떤 설명을 할 수 있는 바둑체계가 지금까지는 없다. 또 바둑 체계를 완성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물음을 묻어 둔 채로 멈춰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물음은 그 자체가 드러나기 힘들었다고 생각 된다. 처음 배우고 익힐 때 이미 바둑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아주 강하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영향을 받지 않으면 바둑이 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바둑을 두는 사람은 모두 다 전승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그렇게 받은 여향으로 바둑을 이해하려 한다. 프로기사들이 무수함에도 불구하고 구조적인 관점에서 바둑을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접하기 힘든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 같다. 이 논문은 이러한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바둑의 체계를 구조적인 입장에서 재구성하려는 노력이다.  ◎ 두울의 안섬쌍 조건 : 

       


    제 2 장 :  종국의 문제.

       1.  한.중.일.대만 계가방식의 귀결.

  먼저 계가방식을 통합적으로 파악하면 " 자리-돌은 무시한다?의 평가를 비교가치이다. 기본형태를 중국식으로 삼고 어떤 전략을 도입하면 각기의 형태가 되는지 살펴보자. 중국셈은 안에서 놓인 돌수에 빈자리의 합한 판 안에서만 셈이 이루어 지며-반상 해결의 원칙에 충실- 돌과는 무관하다. 셈하고 셈하는 이중의 수고를 해야만 한다. 여기에 순장셈의 전략-놓인 무시한다-이 적용되면 무시(?)하고 단순화 전략의 취지를 살려 종류의 돌만을 들어내고 총합이 다른 모든 빈자리에 올리고 셈해도 같은 결과가 데 방법이 셈이다. 순장셈법도 그리 효과적이지는 못하다. 제외한 들어 내고 또 다시 셈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만셈의 같게하되 항상 고정된 크기로 한다는 결과는 역시 자리?의 총합과 같다. 180개의 의무적으로 놓음으로써 경계돌을 되며 마무리에서 생략의 극복할 있다. 간편셈을 위해서가 마무리의 생략을 해결하기 방법이다. 셈의 전략은 이용하는 순장셈에서는 경계돌의 대부분 같지 않지만 ?그 같다면 있다?는 경계의 크기가 서로 같으면 빈자리만 되는 것이다- 차이에는 변화가 따라서 따낸 활용하여 같게하면 그 방법으로 들어낸 모두 올려 놓으면 순차적으로 놓음 했으므로 돌의 수가 최대 하나 차이이다. 이 한 수의 차이를 주면 자리만 셈하면 그러나 이러한 의도가 잊혀지면서 수넘김의 발생으로 이어지고 간편셈이 발생시키고 것이 바둑이다. 수넘김은 이후에 하는 계가를 종국 이전의 전개로 오해 한데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생략할 없는 과정을 생략하는 데서 발생하는 오류이다. 오류라기 보다는 종국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일 한편, 현재는 대만식 규칙의 영향으로 공배를 다 메우면서 종국에 이르는데 이는 오히려 없애는 결과를 가져 온다. 왜냐하면 계가의 문제를 공배(돌 맞추는 역할)가 흡수해 주었으나, 공배가 없으면 마지막 흑이 놓았을 때 돌 수를 맞출수가 없다. 일본식 바둑의 장점을 스스로 버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결국 < 어떻게 무시하고 빈자리를 셈하느냐? >가 간편셈의 전략적인 핵심 사항이다. 순장셈에서 돌을 있었고, 일본셈에서 경계를 무시할 수 있었다. 순장셈은 않는다?는  단순화이다. 여기서 ?돌을 집으로 보지 않는다?를 받아 들이면 돌이 차지한 자리가 가치라는 사실로 귀결 된다. 그러므로 계가에서의 셈을 위한 수단이지 살아 있는 돌은 아닌 ?차지한 집(자리)의 크기? 이것이 한마디로 요약되는 집의 정의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집이라 부르면서 추구하는 가치가 두 종류(빈자리, 돌)이므로 가치에 대한 규정이 혼란을 품고 있게 된 것이라 생각 된다.


    제 3 장 :   밭의 설명력과 그 효율성.

       1.  바둑의 3요소.

  바둑의 구성 요소를 세가지로 한다. 돌과 판 그리고 두 종류의 구분(p, q)이다. 이 구분은 돌의 개념이 너무 중복되어 있어서 그 구조적 위상을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판 밖의 돌을 가리키며, 판 위에서 기능하고 있는 돌들도 그냥 돌이라 한다. 뿐만 아니라 이 돌이 좋다고 할 때는 기능하는 돌들 전체를 가리키고 흑돌이 어찌하다 할때는 때로 판세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처럼 다의적인 용어는 실제로 사용하는데 있어서 유익함도 있으나 바둑을 체계화하려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혼란의 보고가 된다. 이런 까닭으로 흑돌에서 흑/백과 돌을 분리하여 바둑의 요소를 정하였다. 돌은 일종의 표시기호이다. (p|q)는 양립불가능한 오직 두종류의 구분이다. 한 사람이든 열사람이든 혹은 컴퓨터끼리의 대국이든 상관은 없다. 판은 밭으로구성된 충분히 유한한 직교좌표계이다.  돌은 (p|q)와 판의 결합(이음)을 매개하는 매개물이다. (p|q)는 판과 돌의 매개이고, 판은 돌과 (p|q)를 매개 한다. 이렇게 세 요소는 분리되어서는 바둑을 형성할수 없다. (p|q)는 돌과 판을 어떤 형식으로 결합하는 행위자이다. 판은 (p, q)와 돌을 결합가능하게 해주는 한정형식으로써 수용자이다. 돌은 (p|q)와 판을 이어주는 작용자이다.


      2.  추구의 대상으로써 밭.

  밭은 추구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추구의 성취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밭을 추구하는 수단이 돌이므로 가장 단순한 설명을 발생적으로 기술하면 돌을 자리에 놓고 둑으로 이음하여 밭을 추구한다. 그리하여 밭에 포함된 모든 자리에 같은 종류의 돌(p)이 놓여 있으면 밭(p)을 확보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밭(p)의 직접확보이다. 그러나 이웃한 두 자리에 같은 종류의 돌(p)이 놓여있고 이 두돌(p)에 이웃한 모든 자리에 다른 종류의 돌(q)들이 놓여 있으면 이 돌(p)들은 밭을 직접적으로 확보할 가능성이 없다. 이렇게 밭을 추구할 가능성이 없음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추구에 대한 가능성 그 자체가 없다'는 결정을 표시하는 방법은 판에서 배제하는 단순한 방법 뿐이다. 왜냐하면 바둑은 단 하나의 표시기호 밖에 없기 때문에 x표 혹은 낳음을 표시할 또 다른 표시기호가 바둑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판에 존재하는 모든 돌은 밭을 추구할 수 있고 추구한다. 추구 가능성을 판이 수용하고 추구 불가능성을 판이 배제함으로써 그 추구의 성격을 표시하여 준다. 이렇게 해서 돌을 놓고 낳음하는 이유와 그 근거를 밭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판에서의 배제를 통해서 동시적으로 하나로 기능하는 이음이 설명된다. 바둑에서 돌에 대한 '이음의 근거를 발견한다'는 것은 바둑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을 반석위에 올려 놓는 것과 같다. <놓음>은 밭을 추구하기 위하여 하나의 돌과 자리를 이음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낳음>은 어떤 돌(들)이 밭을 추구할 수 없음으로 결정되면, 그 결정을 판에서 배제하는 것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위의 예에서 낳음의 대상을 규정하면 두개의 돌(p) 모두가 낳음의 대상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밭을 추구할 수 없음을 표시하는 낳음을 통해서 돌(p)들이 하나로 기능하는 이유가 밝혀진다. 더불어 두 종류의 돌은 왜 이음일 수 없는지에 대한 설명도 해 주고 있다. 그러면 밭을 직접 확보하는 것이 밭의 소유로 확정되는 것인가? 밭을 직접 확보하면 낳음의 대상이 될 수 없는가? <낳음>을 규칙으로 결정해도 되는가? 밭의 확보가 진행규칙인 것은 아직 아니다. 먼저 <놓음>을 규정 해 보자. 절약의 원칙을 적용하여 선택의 폭을 최대로 하기 위하여 '단 하나의 돌을 자리에 놓는다'.


   <놓음> :  단 하나의 돌을 자리에 놓는다.


 <낳음>의 경우는 놓음처럼 선명하지가 않다. 밭을 확보할 가능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추구 과정이 완결되지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판의 네 변에서 1선을 모두 흑돌로 채워보자. 그리고 2선을 백돌로 모두 채운 다음 네 귀의 흑돌 네개를 들어내면 이 흑돌들은 밭을 확보할 가능성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추구가 불가능한가 하면 최소한 두 귀의 자리에 놓음을 해도 된다. 이제 규칙을 위한 선택을 할 차례이다. 하나는 밭을 추구할 가능성이 없는 모든 돌을 낳음한다. 또 하나는 추구과정이 완결되면 낳음한다. 이 두개의 상태를 비교해 보면 밭의 추구가능성이 추구과정의 완결을 포함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위에서 예로 들었던 경우에서 추구과정이 완결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밭은 바둑을 설명하는 근거이지만, 진행과정을 조절하는 것은 밭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추구과정의 완결을 낳음으로 선택한다. 추구하는 과정을 조정하는 것이 진행규칙이지 밭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 진행규칙의 기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추구과정의 완결은 어떤 것인가? 현행의 규칙을 거의 그대로 수용해도 될것 같다.


   <낳음> :  이음자리가 없는 돌(들)을 모두 낳는다.


 <놓음>은 밭의 추구에서 직접 유추되지만 <낳음>은 같은 종류의 돌들이 이음인 근거로서 만족해야 한다. 가치에 얽메이면 가치를 추구할 수 없다. 밭은 추구의 대상이지 추구가 아니다. 그러므로 밭은 추구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 기능을 한다. 진행규칙은 추구과정의 지침이다.


 추구의 대상으로써 밭 개념은 바둑에서 설명을 요구하는 제반 사항에 대해서 그 설명의 근거이고 이유이다. 그리고 바둑의 한계이기도 하다. 즉, 밭을 추구할 최소의 가능성마저도 없으면 바둑이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밭을 추구한다고 해서 꼭 밭을 평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밭을 추구하지만 밭을 추구하는 방법은 대국 당사자의 주관적인 성향에 따를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바둑을 두는 즐거움이요 선택의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평가는 객관적이다. 평가가 객관성을 상실하면 갈등의 소지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밭 개념을 통해서 바둑의 추구와 평가가 서로 다를 수 있고 그 기준이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추구와 평가의 기준을 일치시키느냐 아니냐에 따라 다양한 평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바둑을 다양한 형태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평가의 대상으로 (밭), (차지한 자리), (밭/차지한 자리), (돌/밭), (돌/차지한 자리), (빈자리/밭), (빈자리/차지한 자리) 등으로 다양하게 바둑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지금까지는 상대적인 가치평가만 있었다면, 야구의 타율처럼 이제 내적인 효율성을 측정(밭수/차지한 자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절약의 원칙을 적용해서 밭을 평가의 대상으로 한다.



    제 4 장 :  규칙적용의 순서.

       1.  순환마디의 결정과 규칙의 우선성.

  패의 순환마디( *|...| )를 결정해보자. 우선 <놓음>과 <낳음>을 사용하기 편하게 다음처럼 기호화 한다. <놓음>은 <ㅗ>으로,  <낳음>은 <ㅏ>으로,  흑은 p로,  백은 q로,  생략은 ( )로, 흑이 흑돌을 놓는 것은 <ㅗ>p 혹은 p:<ㅗ>p로, 흑이 백돌을 들어냄은 p:<ㅏ>q로, 규칙 안에서 전환은 -로, 흑백의 교차는 =로 표기하기로 한다. 이제 순환의 일반형을 표시하면(1형),

                          ...    p:<ㅗ>p,  p:<ㅏ>q,  q:<ㅗ>q,  q:<ㅏ>p  ...   이를 적용 대상에 맞추면(2형),

      p에 대해서 =   ...    p:<ㅗ>p,                              q:<ㅏ>p  ...       
      q에 대해서 =                 ...    p:<ㅏ>q,  q:<ㅗ>q,      ...      이를 흑백의 작용자에 맞추면(3형),

      p가  =            ...      <ㅗ>p,     <ㅏ>q,                           ...
      q가  =                   ...                          <ㅗ>q,     <ㅏ>p ...     (3형)에 (2형)을 맞추면,

      (p)   =   ...   <ㅏ>p,  <ㅗ>p,                                 <ㅏ>p,  <ㅗ>p         ...
      (q)   =                    ...          <ㅏ>q,     <ㅗ>q,      ...

 바둑에서 생략은 '생략 과정의 논리적 압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생략 결과와 생략하지 않은 결과가 같을 때만 생략이 가능하다. 패의 순환마디 안에서는 생략이 있을 수 없다. 생략이 존재하면 순환이(마디) 아니다. 그러므로 오직 첫번째 순환마디 안에만 생략이 있을 수 있다. 이를 정리하면 *| <ㅗ>q-(ㅏ)p | <ㅗ>p-<ㅏ>q = <ㅗ>q-<ㅏ>p | 이 된다. 현재 이렇게 순환마디를 정리하고 있고 순환마디의 중간에서 금지규칙이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순환마디를 결정하는 것은 여러가지로 불편할 뿐만 아니라 심각한 모순을 내포하게 된다. 즉, 생략 불가능 한것을 생략할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이제 보다 합리적인 순환마디를 제시 해 보겠다.

     ...  *| (ㅏ)q-<ㅗ>q = (ㅏ)p-<ㅗ>p | <ㅏ>q-<ㅗ>q = <ㅗ>q-<ㅏ>p | ...

 이렇게 하면 첫번째 순환마디에서만 생략이 있는 전체 순환마디를 결정할 수 있다. 순환마디와 규칙의 순서를 일치시켜보면 <낳음>-<놓음>의 순서로 결정된다. 여기에 흑을 대입하면 <낳음>p-<놓음>p의 순서가 됨을 알 수 있다. 즉, 규칙적용의 대상(흑돌)과 규칙적용자(흑)가 일치(흑에서)한다. 즉, p:<놓음>p-p:<낳음>q의 순서가 아닌 p:<낳음>p-p:<놓음>p의 순서이다. 달리 말하면 내가 내 것을 가지고 정리하고 놓는다. 규칙의 상대적인 독립성 뿐만 아니라 내적인 완결성 혹은 독립성을 찾아 볼 수 있다. 대국자가 직접 책임져야 할 한계는 그 대국자에세 허용된 것에 대해서 이다. 두 대국자에게 허용되는것이 무엇인가? 대국자는 흑을 선택하거나 백을 선택할 수 있다. 둘을 동시에 선택할 수 는 없다. 그리고 그 선택을 바둑이 진행되는 도중에 바꿀 수도 없다. 왜 바꿀 수 없는가? 선택에 대한 책임이 종국에까지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대국자에게 허용된 것은 흑과 백 중에서 오직 하나이다. 이것은 둘중 하나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 종류에 대해서만 규칙을 적용한다는 것이 선택의 책임성과 진행과정의 지향성을 더 명확히 설명한다. 따라서 자신의 돌에 대해서 자신이 수용한 규칙을 자신의 책임범위 안에서 적용한다. 덧붙여서 규칙(?)을 악용하는 폐단도 없앨 수 있다. 규칙은 합리적인 상호합의에 따라야 한다. 더구나 바둑에서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상호합의가 선결되어야 한다. 최대의 장점은 이렇게 <낳음>-<놓음> 순서로 하면 단패에 대한 규칙도 필요 없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적용규칙(낳음, 놓음)이 유효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행규칙이 유효하려면 그 규칙적용(낳음p)의 효력이 그 다음의 같은 규칙적용(낳음q)까지는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놓음>p-p:<낳음>q는 상대에 대한 배려이지 진행규칙이 꼭 그러해야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가정규칙1 : 낳음> :  이음자리가 없는 돌(들)을 모두 낳음한다.

   <가정규칙2 : 놓음> :  단 하나의 돌을 자리에 놓는다.


    제 5 장 :  바둑에서 순환의 경우.

  바둑은 밭을 추구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그 추구의 과정이 보장되지 않으면 밭을 추구할 수 없다. 바둑의 과정이 어떤 이유로 그 진행이 무효화되어 계속해서 밭을 추구할 수 없는 상태가 바로 바둑에서 말하는 순환이다. 순환이 발생하고 그 순환을 벗어나지 않고자 의도하면 진행과정은 끝 맺음을 할 수가 없다. 과정에 대한 평가나 다시 한번 더 바둑을 즐길 수도 없는 것이다. 단적인 표현으로 순환이 발생하면 바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바둑에 참여하고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대국자에게 있다. 일단 바둑에 참여를 선택하면 바둑의 진행규칙을 위반하지 않는 한 바둑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이 바둑에 참여하고자 하는 선택이다. 그러므로 바둑은 바둑 그 자체 내에서 바둑을 종료하는 수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대국자가 바둑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재구성하고자 하는 바둑에서는 그 어떠한 순환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제 바둑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순환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기로 한다.

 먼저 바둑은 한판, 두판 이렇게 판을 단위로 해서 셈할 수 있다. 판에서 다음 판으로 바둑이 연결된다면 한 판의 바둑을 끝맺을 수 없게 된다. 바둑의 진행규칙은 대국자에게 진행 과정의 정당성과 합리적으로 수용할 가치가 있음을 알려 준다. 대국자는 진행규칙에 의지해서 자신의 선택을 적절히 추구하는 것이다. 즉, 진행규칙은 진행과정에 관여한다. 바꿔 말하면 진행규칙은 진행과정 이외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진행규칙은 판에서 판으로 순환하는 현상을 억제할 힘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진행규칙이 억제할 필요도 없다. 진행규칙 한계 밖의 문제이므로 진행규칙이 아닌 진행규칙에 대한 이차적인 규칙(?) 혹은 바둑의 규범으로 제약해야 한다. 바둑의 규칙을 한 종류로만 이해하려는 과도한 단순화가 오히려 바둑을 이해하는데 저해가 된 경우이다. 체계 내적인 규칙과 그 체계에 적용되는 규칙을 구분해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판에서 판으로 넘어가는 순환은 '밭을 추구한다'는 바둑의 정의를 통해서 밭을 추구할 수 있는 최소의 추구가능성 유무로 제약하고자 한다.

 둘째로  바둑은 돌을 놓음으로 그 진행 과정이 유지된다. 그런데 돌을 놓지 않음이 허용 된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바둑의 진행 과정은 무효화 될 것이다. 바둑에 경제원리를 도입하는 것은 절약을 위해서이지 무효화까지는 아닌 것이다. 경제원리를 바둑에 적용하는 이유는 최대의 기회를 갖기 위한 효율성을 위해서이다. 효율성을 위한다는 표현은 최소한의 기회를 이미 전제하고 있다. 기회가 없는 데 그 기회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이다. 따라서 바둑은 경제원리와 효율성의 극대화를 위해서 최소한 하나의 돌을 놓음(경제성)해야 하고 최대한 하나의 돌을 놓음(효율성)해야 한다. 하나의 돌을 놓음은 바둑을 두기 위해서 대국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이자 최대한 선택의 자유를 누리기 위한 대국자의 권리이기도 한다.  수넘김은 오직 일본식 바둑에만 있으며 대만과 중국식 순장식 바둑에는 없다. 잘못된 규칙이라도 그러한 규칙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다양한 각도에서 바둑을 생각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나 규칙의 오류를 파악하고서도 규칙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이보다 더한 어리석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수넘김이 왜 필요한가? 수넘김이 도입된 까닭을 추측해 보자면 바둑의 종국에 이르러서 불필요한 수순을 생략하다보니 이 생략이 논리적인 압축이란 사실을 세월이 흐름에 따라서 잊어버린것 같다. 오히려 생략이 생략이 아닌 사실로 왜곡되어 수넘김이 규칙이 되고 일단 규칙으로 수용된 이후에는 규칙이 그러하니 규칙을 수용하라는 잘못된 규칙의 오용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직관적으로 순환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넘김을 마무리에서만 허용하고 있다. 또 수넘김을 상호적으로 연속해서 2회 이상 반복할 수 없다 등의 규칙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규칙은 수넘김이 허용 될 때의 이야기이고 수넘김 그 자체가 불필요함을 알면 수넘김에 대한 규칙은 자연스럽게 버릴 수 있게 된다. 수넘김은 언제 어디서나 불필요 하다. <규칙1,2>는 절대적으로 독립적이다. 독립성을 위해서는 하나의 규칙이 또 다른 규칙을 완전히 지배할 수 없다. 규칙간의 상호작용이 없는 것이다. <놓음, 낳음>이 절대적이라면 놓음한 돌을 낳음한다는 것은 모순이고, 낳음한 돌을 놓음하는 것도 모순이다. 놓음과 낳음은 어떤 수행성을 포함한다. (p, q)가 어떤 것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따른 결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수행의 결과는 언제나 과거이다. 수행은 미래를 수행할 수 없다. 그리고 수행은 언제나 현재이다. 앞으로 놓음(가능성)하고 싶은 자리에 대한 순환발생을 해소하기 위해서 <낳음, 놓음>은 서로 상대적으로 독립적일 필요가 있고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수용이 필요하다. 상대적인 미래의 가능성을 받음/버림으로 표기하고 하고 <낳음, 놓음>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다.

   <규칙1 :  낳음> :  이음자리가 없는 돌(들)을 모두 낳아 버림한다.

   <규칙2 :  놓음> :  단 하나의 돌을 자리에 받아 놓음한다.

 이렇게 상대적인 독립성을 가진 진행규칙으로 재구성하면, 상대적인 관계가 무엇인지 또 어떤 가능성을 가지는지 그리고 그 가능성을 어떻게 받고 버림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규정이 필요하다. 이 상대적 독립성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진행규칙에 포함시켜야 한다. 받음은 가능성을 받거나 불가능성을 받거나이다. 버림은 가능성을 버리거나 불가능성을 버리거나이다. 즉, 불가능을 포함한 가능성에 대한 수용 혹은 배제가 받음과 버림이다. 불가능을 받으면 불가능하므로 수행할 수 없다. 불가능을 버리면 가능하므로 수행할 수 있다. 가능성을 받으면 가능하므로 수행할 수 있다. 가능성을 버리면 불가능하므로 수행할 수 없다. 새롭게 재구성 되는 바둑에서 돌을 놓지 않음(수넘김)은 허용하지 않는다. <낳음>과 <놓음>을 지배할 수는 없지만 그 가능성에 영향을 줄 수는 있다. 따라서 받음과 버림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낳음, 놓음]에 제한을 가할 수 있게한 것이다. 종국의 문제는 바둑의 정의로 해결하고 계가의 문제는 종국 이후의 문제로 구분할 수 있다. 계가의 전략을 파악함으로써 평가의 기준을 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로 돌을 놓음이 무효화 된다면 어찌 될까? 돌을 놓음 하였는 데 그 돌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기도 전에 무효화(낳음)된다면, 그리고 상대방의 돌도 마찬가지라면 바둑의 과정이 계속해서 무효화 된다. 살아 있는 상대의 돌이 포함하고 있는 눈에 놓음(자살수)하는 경우이다. 상대 눈에 놓음이 상호 중복되면 바둑의 진행과정은 순환 한다. 그러나 진행규칙이 중복을 규제할 수는 없다. 그런 까닭으로 그 한 부분인 상대의 눈에 놓음 자체를 배제해야 한다. 이러한 순환을 극복하기 위해서 한울규칙으로 돌 놓음의 무효화를 배제한다.

 녯째 바둑에서 대국자의 합의(?)로 진행규칙을 악용하는 사례가 있을 수 잇다. 다시말해서 '밭을 추구한다'는 바둑의 취지를 벗어나 바둑을 바둑의 진행규칙 그 자체를 이용하여 바둑을 무효화하려는 시도이다. 돌이 삶을 유지하고 있는 형태에서 스스로의 눈에 돌을 놓음으로써 상대로 하여금 자신의 돌을 들어낼 수 있도록 한다면, 그리고 상대도 마찬가지라면 무의미한 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순환은 바둑을 그 내부에서부터 붕괴시킨다. 바둑의 정의에 문제가 없고 진행규칙에도 아무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대국자의 합의에 따라서 바둑 그자체를 붕괴시킬 수 있는 것이다. 바둑은 내부적인 붕괴에 스스로 저항할 수 있어야 하고 저항해야 한다. 바둑을 재구성하면서 내부적인 붕괴에 저항할 수 있는 진행규칙을 빈울규칙으로 정리하였다. 왜냐하면 진행규칙은 어떠한 경우에도 바둑의 진행과정을 보호하고 유지해야하기 때문이다. <놓음>은 자리에 놓는다는 것 뿐이지 놓을 수 없는 자리가 있다던가 하는 것은 포함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금지규칙이 없는 상태에서 보면 자충수-자기 돌의 눈에 놓음-가 생기는 것이다. 흑백 쌍방이 자충수를 의도적으로 두면 [규칙]의 무효화와 무한순환이 가능하다. 수줄임의 경우에서 우리는 <놓음>이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인 한계를 지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바둑의 진행규칙은 상대적인 한계성을 수용하는 형태로 확장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국자의 합의와 상관 없이 <낳음>과 <놓음>만으로 순환이 가능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밭을 추구한다'는 바둑을 두는 데에도 불구하고 순환이 발생 가능한 경우이다. 구조적으로 발생 가능한 순환은 먼저 그 구조를 규정하고 두울규칙으로 순환을 배제하기로 한다.


 

    제 6 장 : 바둑과 용어의 정의.

  0.  바둑 :  0.  바둑의 구성요소를 가지고,          .

                 1.  [수행규칙]을 순차로 적용하여,

                 2.  한수의 충분한 가능성이 있을 때까지,

                 3.  밭을 추구하는 것이다.

      [바둑의 규약 : 1] :  구성요소를 가지고 밭을 추구한다. (시작)

      [바둑의 규약 : 2] :  한수의 충분한 가능성이 없으면 바둑이 끝이다. (끝)


  1.  돌이음( 돌, (p|q) ) :  돌이음의 결과를 돌(p) 혹은 돌(q)이라 한다.

  돌과 (p|q) 그리고 판, 판의 단위에서 자리와 둑과 밭은 공리적인 무정의 용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약간 억지스럽게나마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 말이 그 말인 당연한 말들이다. 한편 판의 입장에서 돌(p)은 하나의 가능성이지 판에 수용되어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판 밖에서 판 안(위)으로 어떤 가능성의 수용과 (p|q)가 판 밖에서 판으로 진입하는 수행은 차이가 있다. 가능성과 수행성에 대해서 그 수용과 배제를 판의 관점에서 기술하면,

  2.  가능성의 받음과 버림( 자리, 형식i ) :

     1.  자리에 받음 :  자리(p)는 자리와 (p)의 결합(이음)이다.

     2.  자리에 버림 :  자리(p)에서 자리와 (p)의 분리(맺음)이다.

     3.  한울(p)는 { 자리와 (p) } 그리고 { 한울과 (p) }의 이중결합(이음)이다.

     4.  ...

  3.  수행성의 놓음과 낳음( 자리(p), 돌(p) ) :

     1.  자리(p)에로 놓음 :  돌(p)은 돌(p)과 자리(p)의 결합(이음)이다.

     2.  자리(p)에서 낳음 :  돌(p)에서 돌(p)과 자리(p)의 분리(맺음)이다.

 이렇게 가능성과 수행성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다소 번거롭지만 엄밀한 규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가능성과 수행성을 구분하지 않으면 용어의 정의가 순환론에 빠져 든다. 그러므로 이러한 구분을 수용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서 다음 용어들을 규정한다.

  4.  자리이음( 형식i, 둑 ) :  자리이음의 결과를 자리(p), 돌(p) ...

     1.  자리(p) :  자리(p)는 자리(p)와 둑의 결합(이음)이다.

     2.  돌(p) :  돌(p)은 돌(p)과 둑의 결합(이음)이다.

     3.  한울(p) :  한울(p)과 둑의 결합(이음)이다.

     4.  ...  

 자리이음은 한마디로 판 밖의 돌(p)을 판에서 기능하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즉, 자리이음에 따라서 기능을 한다. 자리(p)와 자리(p)를 구분해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들어 여울자리(p)는 하나의 자리(p)이다. 이 여울자리(p)는 바둑을 두면서 '놓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는 자리(p)와는 다르다. 하나의 자리(p)가 판에서 기능을 하고 있을 때 자리(p)가 된다. 마찬가지로 판 밖의 돌(p)과 판에서 기능하는 돌(p)을 구분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결과적으로 자리이음은 판에서 기능하는 모든 경우를 받쳐주는 근거이다. 자리이음 없이 어떠한 구조와 기능도 있을 수 없다.

  5.  둑이음( 형식1, 형식2, 둑 ) ...(단, 형식1과 형식2의 형식은 같다.)

     1.  둑(p) :  둑(p)은 자리(p)1와 자리(p)2가 둑과 이중결합(이음)이다.

     2.  돌둑(p) :  돌둑(p)은 돌(p)1과 돌(p)2이 둑과 이중결합(이음)이다.

  6.  이웃(이음)관계( 형식1, 형식2, 둑 ) :  ...(단, 형식1과 형식2의 형식이 다르다.)

     1.  돌둑(p)의 이웃(이음)자리(p) :  돌둑(p)이 자리(p)와 둑으로 이웃(이음관계)이다.

     2.  자리(p)의 이웃(이음)돌둑(q) :  자리(p)와 돌둑(q)이 둑으로 이음(이웃)이다.

 둑이음은 자리이음의 수평적인 연장 혹은 확장이라 할 수 있다. 자리이음으로 기능을 갖는 어떤 형식이 내적으로 상호 중첩될 때를 둑이음이라 한다. 즉, 하나의 둑에 인접한 두 돌(p)이 함께 자리이음으로 둑을 공유하고 있을 때, 달리 표현하면 이중으로 규정에 참여하는 둑일 때이다. 이는 자리이음의 열어 짓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자리이음의 상호성을 규정한 것이 둑이음이다. 따라서 둑이음은 두개의 형태와 하나의 둑이 결합(이음)하여 그 기능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둑이음은 두개의 형식이 같지 않을 때, 이음관계로 있다고 하고 이웃한다, 인접한다 등으로 우리가 파악하는 경우이다. 이음이 바둑을 기능적으로 파악하는 데 또하나의 핵심입니다. 돌이음(대전제)을 출발점으로 해서 자리이음으로 돌이 기능을 하고 둑이음으로 기능을 발휘하고 그리고 한울이음으로 확장되어 한계를 알고 두울이음으로 순환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모두 이음이다. 이음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바둑의 기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구조를 생각할 수도 없다.

  7.  돌둑.

     1.  둑(p) :  둑(p)은 자리(p) 혹은 둑이음인 자리(p)n이다.

     2.  돌둑(p) :  돌둑(p)은 돌(p) 혹은 둑이음인 돌(p)n이다.

     3.  올둑(p) :  올둑(p)은 이웃한 둑(p)n과 이웃한 돌둑(p)n의 조합이다.

  8.  섬.

     1.  섬(p) :  돌둑(p)이 자리와 이웃하지 않는다.

     2.  마주섬(p) :  돌둑(p)이 섬이고, 돌둑(p)의 모든 돌(p)이 돌둑(q)n에 이웃한다.

        1.  맞섬(p) :  돌둑(p)의 모든 돌(p)이 어떤 돌둑(q)에 대해서  1:1 대응이다.

        2.  서로섬 :  돌둑(p)이 돌둑(q)에 대해 그리고 돌둑(q)이 돌둑(p)에 대해 맞섬이다.

     3.  안에섬(p) :  돌둑(p)이 섬이고, 둘러섬(q)이 하나이다.

  9.  이음과 맺음.

     1.  이음 :  서로 같거나 다른 두가지 형식을 결합하여 새롭게 하나의 기능을 창출하는 결합이다.

     2.  맺음 :  어떤 하나의 형식을 완료하여 구체화 하는 것이다.


    제 7 장 :  여울의 구조와 기능.

  여러개의 울타리에서 여울의 개념을 빌리려 한다. 여울은 안섬과 둘러섬을 그 구성요소로 한다. 둘러섬은 어떤 형태를 결정하는 둘레로 결정된 구조이고, 안섬은 둘러섬에 의해서 결정되는 둘레 안에 섬인 구조이다. 간단히 원의 중심과 원의 둘레인 원주를 생각하면 된다. 바둑에서 모든 순환을 배제하는 데 필요한 여울의 종류는 빈울과 한울 그리고 두울이다. 여울의 기능은 진행과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여울의 구조를 활성화하고 필요한 정도로 연속한다. 먼저 구조적으로 규정한 순환의 형태에서 순환하는 자리를 결정한다. 이렇게 결정된 자리가 여울자리(p)이다. 그리고 그 여울자리(p)에 대한 이차적인 가능성(받음과 버림)을 결정하는 일이다. 가능성의 수용과 배제는 모든 가능성이 허용될 경우와 어떤 가능성도 허용되지 않을 경우 그리고 그 사이인 경우이다. 비유적으로 시작과 끝 그리고 중간에서 시간적 가능성(변화)을 처리하는 것이다. 그 기준은 당연히 새로움이다. 왜냐하면 순환은 새로움이 아니라 중복이고 순환이기 때문이다. 여울자리는 과거형으로 결정된 순환의 자리이다. 순환의 자리가 놓음이라는 수행을 통해서 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러한 여울자리는 받아 놓을 수 있게해야 한다. 제일 먼저 완전한 새로움일 경우는 허용해야 한다. 다음으로 새로움의 요소가 단 하나도 없는 경우는 배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허용과 배제 사이에서 새로움의 요소가 없고, 순환이거나 중복인 경우는 배제해야 하고 허용해서는 안된다. 새로움이 단 하나도 없는 경우는 순환이나 중복인 경우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규칙적용의 중복을 순환이라 한다. '새로운 가능성은 언제나 수용해야 한다(열림)' 그리고 '순환과 중복을 언제나 배제해야 한다(짓기)'. 이와 같은 여울의 기능을 요약하면 여울을 열어 짓는다.

   [여울규칙] :  여울(p)을 열어 짓는다.

       ★  여울자리(p)의

                   [열기] :  둘러섬이 전변이면, 여울자리(p)를 버릴 수 있다.

                { [짓기] :  둘러섬이 무변이면, 여울자리(p)를 받을 수 없다. }

                   [열어짓기] :  둘러섬이 불변이면, 여울자리(p)를 받을 수 없다.


        1.  빈울의 구조와 기능.

  빈울(p)의 구조는 자리(p)n을 안섬으로 하고 돌둑(p)n을 둘러섬으로 한다. 빈울(p)의 안섬인 자리(p)n을 빈둑(p)라 한다. 그리고 빈둑(p)이 오직 하나의 자리만을 그 요소로 갖는 경우를 숨자리(p) 혹은 빈울자리(p)라 한다-빈울자리는 빈둑의 맺음자리이다. 빈울은 양립 불가능성을 포함하는 상대적인 관계가 아니다. 오로지 내적이고 전체적인 관계만을 갖는다. 빈둑(p)의 크기가 충분할 때는 빈울의 한계가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빈둑(p)이 최소의 크기로 축소되면 빈울의 유지를 위해서 규제적 작용을 하게 된다. 이 규제력이 추구가능성의 억제력 혹은 배제력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빈둑(p)의 크기가 하나(숨자리)일 때 기능하는 빈울(p)이 발생하고 빈울자리(p)를 제약할 수 있는 작용력을 갖는다. 빈둑(p)이 숨자리(p)를 포함할 때의 둘러섬은 어떤 양태를 띄고 있는가? 숨자리(p)에 이웃한 모든 돌둑(p)들은 숨자리(p)와 이음관계(이웃하고)에 있다. 거꾸로 빈울(p)의 모든 둘러섬은 숨자리(p)와 이음관계에 있다. 그런데 빈울(p)이 이미 이음관계에 있다면 어떻게 될까? 즉, 숨자리(p)에 돌(p)을 받아 놓으려는 이유 중 하나가 이음인 데 이미 이음이라면 놓음의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것이 밭의 추구를 위한 효율성에 의해서 놓음의 가능성을 제한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한번 더 거슬러 올라가 둘러섬(p)이 존재하지 않는 숨자리(p)를 가정하면 그 숨자리(p)의 둘러섬인 돌둑(p)n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존재하지 않는 가정적인 둘러섬을 빈돌둑(p)이라 한다. 또 하나의 경우가 있다. 둘러섬이 모두 상대의 돌둑(q)n인 경우이다. 이 경우는 빈울이 아니다. 그러나 빈둑(p)으로보고 숨자리를 포함하는 경우를 발생적인 입장으로 기술하면, 숨자리(p)이고 둘러섬이 모두 변한 걸로 볼수 있다. 이렇게 보면 빈울을 열어 짓는 것이 한울을 낳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빈울과 한울이 동시에 존재하므로 빈울규칙을 적용해야 할지 아니면 한울규칙을 적용해야 할지 선택할 수 없는 모순에 빠진다. 그러므로 우선성 해결의 원칙을 적용하여 우선적으로 두울규칙을 적용하고, 그 다음에 한울규칙을 적용하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빈울규칙을 적용한다. 발생적으로는 빈울이 한울을 낳고 한울이 두울을 낳지만, 구조적으로는 진행규칙을 적용하는 순서가 두울-한울-빈울의 순서인 것이다. 즉,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모순을 위계적인 우선성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빈울의 둘러섬이 하나의 돌둑(p)이 아닌 경우로 확장하여도 같은 결과를 얻는다. 빈울의 둘러섬이 공유하는 이음자리를 두개 이상 포함하면 빈울자리(p)를 받을 수 없다. 하나의 빈울이 기능한다는 것은 추구가능성을 확보(내재화)할 수 있다는 조건을 만족시킬 때의 기능을 말한다. <열기>와 <짓기> 그리고 <열어짓기> 사이의 우선관계는 내재화 순서 때문에 다음과 같이(우선성 해결의 원칙) 우선성이 결정된다. 먼저 추구가능성이 확실히 보장되는 조건이 있을 때는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제약이 우선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열기조건). 다음으로 열기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가장 확실히 무효화 되는 경우(한 것이 없다)를 제약해야 하는것이 당연한 순서가 된다. 빈울의 둘러섬을 숨자리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숨자리를 통해서 모든 둘러섬들이 이음일 가능성이 있다. 달리 표현하면 숨자리는 모든 둘러섬과 이음인 자리이다. 또 숨자리를 둘러섬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모든 둘러섬이 이음 가능성의 자리로서 숨자리를 공유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둘러섬이 이미 이음관계를 충족시키고 있다면 숨자리의 기능은 중복이다. 이 중복을 빈울의 순환이라 하면, 규칙이 밭의 추구가능성(숨자리)에 대해서 두 번째 적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이미 규칙적용의 순환이다. 따라서 숨자리의 추구가능성을 규제할 수 있는 것이다(짓기조건). 끝으로 열기조건과 짓기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가 남게 되는 데 이에 대한 빈울의 제약조건이 명시되어야 한다(열어짓기). 이렇게 규칙적용의 순서가 결정되며 그 기준은 바로 추구가능성(밭)이다. 진행규칙의 적용은 <열기>-<짓기>-<열어짓기>순서인 것이다.

    [빈울규칙] :  빈울(p)을 열어 짓는다.

         ★  빈울자리(p)의

                  { [열기] :  둘러섬이 모두 존재하지 않으면, 빈울자리(p)를 버릴 수 있다. }

                  { [짓기] :  둘러섬이 모두 하나로 존재하면, 빈울자리(p)를 받을 수 없다. }

                    [열어짓기] :  둘러섬이 모두 여울에 포함이면, 빈울자리(p)를 받을 수 없다.

         ☆ 오직 빈울자리(p)만이 모든 둘러섬과 이웃이면, 놓을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는 빈둑은 양적으로 최소한 크기가 하나이거나 둘 이상인 경우로 나눌 수 있다. 둘러섬은 돌둑이 없거나 하나이거나 둘 이상일 때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빈울은 둘러섬이 없는 경우를 무한대로 이해(역전)하면 무한대의 둘러섬에서 몇개의 둘러섬 그리고 단 하나의 둘러섬인 경우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서 추구가 가능한 것은 자명하다.


        2.  한울의 구조와 기능.

  빈울은 상대방(타자)과의 관계를 내재화하므로 외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있다. 반면에 한울은 내적인 관계가 아니라 외적인 관계이므로 반드시 상대방과 상호관계가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한울(p)의 구조는 안섬이 돌둑(p)이면 둘러섬이 돌둑(q)n임을 말한다. 한울안섬은 어떤 조건을 만족시키고 있는가? 진행규칙이 적용되는 흑의 한울안섬은 흑의 빈울을 포함하고 있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한울의 둘러섬에서 보아 그 한울안섬(흑)이 낳음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조적인 입장에서는 한울의 안섬이 빈울을 포함할 수 있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빈울을 포함하지 않지만 빈울 그 자체가 한울의 안섬일 수 있다. 여기서 한울의 일반적인 구조와 진행규칙이 적용되는 한울의 구조가 서로 동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의하여야 한다. 즉, 한울의 구조와 한울(p)의 구조는 그 위상이 서로 다르다. 빈울과 마찬가지로 한울도 그 크기가 충분할 때는 규제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안섬의 연결 가능성이 최소일 때 그 최소 가능성을 간직한 자리가 섬자리(p) 혹은 한울자리(p)이다. 차례대로 추구 가능성을 근거로 하여 구분하기로 한다.

  먼저 섬자리(p)에 대해서 둘러섬이 가장 단순한 하나의 돌둑(q)일 때를 기준으로 흑의 한울에서 안섬에 받음을 가정했을 때 둘러섬인 백의 돌둑이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낳음)면 추구 가능성이 확보됨을 알 수 있다. 한울의 모든 둘러섬이 돌의 받음에 의해서 낳음상태(이음자리가 없는 섬)가 되면 한울의 둘러섬 기능을 할 수 없다. 따라서 한울의 구조에서 모든 둘러섬이 돌(p)의 받음에 따라 받음 이전의 둘러섬이 받음 이후에 모두 안섬-돌둑(q)n-이 되어버리면, 받음 이후에 한울안섬인 돌둑(p)은 둘러섬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을 한울을 열어 짓는다 일컫는다.

<한울열기> : 둘러섬(q)이 존재하지 않으면, 섬자리(p)를 버릴 수 있다.

  다음으로 <한울열기>조건에서 벗어나 있다는 전제에서 확실하게 추구 가능성 없음이 확실한 경우를 찾아보자. 이러한 경우는 하나인 둘러섬이 돌(p)의 받음에 의해서 하나도 변하지 않을 때이다. 즉, 돌(p)의 받음 이전의 한울이 돌(p)의 받음 이후의 한울로 아무런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이를 '한울을 한울 위에 겹쳐 쓴다'는 비유로 이해해 보면 한울이 중복됨을 알 수 있고 이 중복을 순환이라 간주할 때, 흑의 추구가능성 자체가 무효화(자살)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추구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음(둘러섬이 하나로 존재)은 추구 가능성의 확보(받음가능성)가 존재하지 않음이다.

<한울짓기> :  모든 둘러섬(q)이 하나로 존재하면, 섬자리(p)를 받을 수 없다.

  끝으로 <열기, 짓기>조건을 보면 받음 이전의 하나의 둘러섬이 받음 이후에 모두 변하거나, 받음 이전의 하나의 둘러섬이 받음 이후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 때이다. 이와 같은 두 조건에서 벗어난 경우는 둘러섬이 하나인 경우에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둘러섬이 하나가 아니고 받음 이전과 이후에 둘러섬의 일부만이 변할 때이다. 이렇게 부분적으로 둘러섬이 변할 때의 제약조건은

<한울의 열어짓기> :  모든 둘러섬(q)이 받음 이전의 둘러섬(q)에 포함되면, 섬자리(p)를 받을 수 없다.

  이제 올둑(p)의 크기가 둘 이상일 때로 확장해서 적용해 보면 크기가 하나인 자리에서 크기가 하나보다 더 큰 흑의 올둑(p)에 대해서도 그리고 둘 이상의 둘러섬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첫째로 가능돌둑(흑)에 대해서 둘러섬이 오직 하나일 때는 위에서와 동일한 구조의 단순한 확장으로 볼 수 있고, 둘째로 올둑(p)에 대해서 둘러섬이 둘 이상일 때에도 마찬가지 구조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빈울과의 연관성을 함께 고려하기 위한 방편으로 구조적인 동일성을 비교하기가 쉽기때문이다. 흑의 섬자리는 구조적인 자리이므로 기능을 포함한다고 단언할 수 없다. 기능적으로 추구 가능성을 제약하는 자리(섬자리)를 한울자리로 구분하여 표기하고자 한다. 구조적으로 각각의 한울의 섬자리를 한울자리라 할 때 한울자리를 가지는 구조는 한울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 된다. 한울자리를 포함하면 추구 가능성을 제약하는 기능을 가지는 각각의 한울(흑)이 발생하는 것이다.

    [한울규칙] :  한울(p)을 열어 짓는다.

         ★  한울자리(p)의

                     [열기] :  둘러섬이 모두 존재하지 않으면, 한울자리(p)를 버릴 수 있다.

                  { [짓기] :  둘러섬이 모두 하나로 존재하면, 한울자리(p)를 받을 수 없다. }

                     [열어짓기] :  둘러섬이 모두 여울에 포함이면, 한울자리(p)를 받을 수 없다.

         ☆ 오직 올둑(p)만이 섬이면, 한울자리(p)를 받을 수 없다.

   빈울과 한울의 우선성을 간단히 살펴보면 빈울의 구조에서 빈울(p)의 둘러섬이 모두 백이면 빈울(p)의 숨자리(p)에 돌(p)을 받아 놓음이 가능하다. 구조발생적인 입장에서 기술하면 빈울을 열어 지음으로써 한울이 발생한다. 이러한 모순을 처리하기 위해서 "우선성 해결의 원칙"을 적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면 아주 간단하게 <한울>-<빈울>의 순서로 규칙을 적용하면 된다. 규칙의 중복적용 역시 순환이므로 <한울>규칙을 적용하면 <빈울>규칙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 둘이상의 크기를 가지는 돌둑에 대해서는 해당되지 않는다-설명을 위해서. 이렇게 보면 발생의 방향과 규칙적용의 방향이 정 반대임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고려의 대상(받음)으로서 많은 한울과 빈울을 생각할 수 있지만 규칙의 적용은 단 하나의 구조에만 적용된다는 사실을 주의하여야 한다. 관계적인 측면에서 빈울은 내적인 상호관계만을 가지며 내적상대성이 아닌 외적으로 드러난(상식적) 상호관계를 갖지 않는다. 이러한 폐쇄성을 관계적인 용어로 번역하면 외적 상호관계를 내재화 혹은 수용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빈울은 그 자체에 우선성이 없다. 왜냐하면 내재화의 내재화란 결국 동어반복이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결국 빈울은 빈울을 포함할 수도 있고 빈울은 빈울과 병렬적일 수 있지만 빈울과 빈울이 순서를 다툴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빈울은 내재화의 원리라고 해야할 것 같은 공시적인 통합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빈울은 자체 내에서 스스로 완결되는 절대성을 주장하지만 이 주장이 언제나 빈울의 내부에서만 그 효력이 유효하다는 한계를 가진다. 반면에 한울은 언제나 상대적이며 이 상대성을 벗어날 수 없다. 순서를 무시하고 생각하면 한울의 섬자리는 언제나 빈울의 숨자리를 열어지음에 따라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생성적인 관점에서 파악할 때에는 빈울의 바탕 위에 한울이 열린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구조적으로는 빈울이 하향적으로 내재화에 의한 통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상향적으로는 구조생성의 근거이자 바탕이 된다. 빈울은 두울과도 역시 이러한 수직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구조적인 관점에서는 모든 구조(빈울, 한울, 두울)가 수평적이지만 설명을 위한 발생적 관점에서는 수직적인 관계를 찾아볼 수 있다.


        3.  두울의 구조와 기능.

  두울의 (바탕)구조는 서로 섬(상호낳음)인 돌둑(p&q)n 쌍을 안섬으로 하고 안섬에 이웃한 돌둑(q&p)n 쌍을 둘러섬으로 한다. 두울구조의 모든 경우가 순환인 것은 아니므로 순환 가능한 두울 (순환)구조를 결정해야 한다. 두울(바탕)구조에서 순환이 가능한 경우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거꾸로 순환이 불가능한 경우를 확인하는 것이 편리하다. 순환이 불가능한 경우는 안섬인 돌둑(p)에 대해서 안섬인 돌둑(q)n이 양립 불가능한 경우이다. 하나의 돌둑이 판 위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하나의 이음자리가 있어야 한다. 안섬인 두 올둑(q)n의 이음자리 두개가 모두 돌(q)로 채워질 때 그 쌍인 돌둑(p)이 섬이어야 하고, 그 안섬인 두 올둑(q)n이 동시에 돌둑(q)n이 될 수 없을 경우이다. 올둑(q)n-가)-의 맺음자리에 돌(q)을 놓을 때 또 하나의 안섬인 올둑(q)n-나)-은 최소한 하나의 자리가 있다. 그러면 돌둑(p)은 섬이 아니다. 따라서 안섬인 올둑(q)n-가)-의 맺음자리는 놓음할 수 없는 한울자리(자살수)이다. 한울규칙의 위반이다. 반대로 또 다른 안섬인 올둑(q)n-나)-을 완료할 경우도 마찬가지 이다. 하나의 백돌을 구체화 할 때 가)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이미 나)의 구조가 돌둑으로 구체화되어 있어야 하고, 나)를 돌둑으로 하는데 가)의 돌둑이 이미 구체화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는 모순이고 동시적으로 가)와 나)를 돌둑으로 실현시킬 수 없다. 이제 양립 가능하다는 것을 가)와 나)의 가능한 올둑(q)n이 실제적인 돌로 된 돌둑(q)n으로 판 위에 둘 다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뜻하기로 한다. 가)와 나)의 두 돌둑이 양립 불가능하기 위해서는 가)와 나)의 돌둑(q)n이 모두 흑의 돌둑과 마주섬의 관계에 있거나, 안에섬의 관계에 있어야 한다. 거꾸로 마주섬이 둘 이상이거나 안에섬이 둘 이상이거나 마주섬과 안에섬이 합하여 둘 이상이면 이러한 가)와 나)는 양립 불가능 하다. 이제 반대로 순환이 가능하려면 마주섬과 안에섬이 합하여 하나 이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두울(순환)구조의 조건은 가능한 올둑(p)이 여울구조를 포함하지 않고, 이에 관계하는 돌둑(q)n이 (마주섬+안에섬) < 2 이다. 앞으로는 두울(순환)구조만을 두울구조라 한다.

0.  안섬쌍(p&q)n을 돌둑으로 가정하면, 모두 다 섬이다(전제).

       1.  안으로, 여울의 구조를 포함하지 않는다.

       2.  밖으로, { 마주섬 or 안에섬 }이 하나 이하이다.

  ◎ 두울의 확장조건 :  어떤 자리(p)를 포함하는 올둑(p)이 어떤 올둑(q)n에 이웃할 때,

       1. 안섬쌍 조건을 만족하는 올둑(q)n이 있다-안섬쌍(q)n.

       2. 그 안섬쌍(q)n에 이웃한 어떤 올둑(p)n이 안섬쌍 조건을 만족한다-안섬쌍(p)n.

      ★  안섬쌍(q)n이고 그리고 안섬쌍(p)n인 그러한 흑의 자리(p)이다.

  하나의 한울안섬(p)-섬을 만족-과 하나의 둘러섬 돌둑(q)을 가정할 때, 한울안섬인 올둑(p)에 대해서 둘러섬 돌둑(q)이 안으로 팽창함에 따라서 이음자리가 없고 동시에 둘러섬 돌둑(q)도 이음자리가 없는 경우를 말한다. 즉, 한울안섬이 빈울을 포함하지 않는다. 한울안섬(p)에서 둘러섬(q)을 보면 한울안섬(p)이 밖으로 팽창함에 따라서 둘러섬(q)의 이음자리가 없어진다. 즉, 둘러섬(q)의 모든 이음자리가 한울안섬(p)에 포함되어야 한다. 두울의 형태를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두울은 두개의 한울이 분리되어 있으면 두울구조를 형성할 수 없다. 따라서 두울구조는 반드시 두개의 한울이 최소한 경계를 마주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두종류의 돌이 한 자리에 동시에 있을 수 없으므로(우선성) 상호 포함인 형태만이 존재한다. 한편 벤다이어그램에서 보여지듯이 한울안섬이 중심이고 원주가 둘러섬인 원으로 비유하면 하나의 원이 다른 원 안에 포함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처럼 하나의 한울이 또 다른 한울을 포함하는 두울구조가 가능하다. 둘러섬이 하나가 아닌 경우에도 이를 확장하면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먼저 안섬쌍이 모두 빈울을 포함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빈울을 포함하는 돌둑은 두울의 둘러섬이 되지 안섬쌍이 될 수 없다. 둘째로 흑의 안섬쌍은 둘 이상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한번에 하나의 돌(p)만 놓음(경제원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안섬쌍에 계속해서 낳음이 적용될 수 있으므로 흑의 마주섬(백) 혹은 안에섬(백)이 하나 이하여야 한다. 그리고 위의 세 조건을 충족시키고 안섬쌍의 크기가 같으면 순환가능하다.

    [두울규칙] :  두울(p)을 열어 짓는다.

         ★  두울자리(p)의

                  { [열기] :  둘러섬이 모두 존재하지 않으면, 두울자리(p)를 버릴 수 있다. }

                  { [짓기] :  둘러섬이 모두 하나로 존재하면, 두울자리(p)를 받을 수 없다. }

                     [열어짓기] :  둘러섬이 모두 여울에 포함이면, 두울자리(p)를 받을 수 없다.

         ☆  두울자리(p)의 모든 둘러섬이 여울에 포함이면, 두울자리(p)를 받을 수 없다.


     제 8 장 :  두울기능의 한계와 제약.

  두울규칙은 빈울이나 한울처럼 단순한 하나의 수행에 대한 제약으로 끝나지 않는다. 두울규칙은 규칙의 순환에 대한 이차적인 규칙이다. 수행에 대한 직접적인 관계가 아니고 규칙의 순환에 대한 간접적인 관계이다. 이차적인 제약을 수행의 제약과 구별하기 위하여 가능성에 대한 받음과 버림이라는 이차적인 용어를 수용하였던 것이다. 두울규칙이 간접적이기 때문에 빈울자리와 한울자리 처럼 직접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두울은 과거의 형식과 미래의 형식을 포함하는 것이다. 두울자리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두울의 발생과 유지 그리고 연장과 그 끝을 먼저 규정하고 파악해야 한다. 두울 안섬쌍에 놓으면 두울이 발생한다고 단순하게 결정할 수는 없다. 두울의 발생은 빈울과 한울의 경우를 달리 해석하면 된다. 빈울과 한울은 올둑이 포함하는 자리가 하나일 때 기능하는 빈울과 한울이 발생한다. 이 올둑을 하나의 형태로 보면 어떤 형태가 완성 혹은 맺음되기 바로 전 상태에서 빈울과 한울은 발생한다. 그러나 두울은 두울구조에서 이차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가 완료 혹은 맺음된 바로 다음에 발생한다. 두울구조를 벗어난 자리에 놓음하면 두울규칙을 적용할 필요가 없다. 이 규정은 이차적인 순환을 배제하고 있으나 적용범위가 너무 넓다. 바둑에서 밭을 추구하는 수행성을 너무 강하게 제약하고 그 구조를 파악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래서 순차적이고 연속적인 두울구조의 흐름을 규정하고 그 규정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에 한해서 광범위한 두울구조의 조건을 적용하면 훨씬 실용적이고 수행가능한 두울규칙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두울이 연속하는 경우를 규정하기로 한다.


       1.  한울이음.

  한울이음은 한울에서 두울로 향하는 이음이다. 가장 단순한 단패에서 처럼 서로섬(상호낳음)이면 두울이 발생한다고 하는 데 구조적인 관점에서는 너무 단순한 결론이다. 물론 두울이 발생한다. 그러나 서로섬인 모든 경우에 두울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두울의 발생조건을 찾아보면 순환의 절반만으로 조건을 만족할 수 있다. 왜냐하면 미래에 순환할 수 있도록 나머지 절반을 생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두울조건을 만족시키는 경우에 대해서 어떻게 두울이 억제력을 가지는가? 순환의 일부만을 규정해야 하고 이 순환의 부분이 다음에 올 순환의 부분과 결합하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연속이 아닌 기능적인 연속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그 기능적인 연속을 위하여 한울이음 개념이 필요하다. 한울이음은 한울에서 두울에로 기능적인 연속성을 가진다. 이 기능적인 연속성은 상호간에 연속성 조건을 만족시킬 때에 한해서 입니다. 즉, 서로 도와가면서 한울을 두울에로 발전시켜 나아간다고 보는 것입니다(의도적이든 아니든 상관 없이). 이렇게 했을때 두울의 구조에 놓음하는 것을 모두 허용할 수는 없으므로 여기에서는 최대의 제약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상호합의에 따른 순환의 경우를 배제해야 하고 동시에 추구 가능성을 최대한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한울이음은 한울의 발생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따라서 한울이음의 과정도 한울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즉, 최소한 하나의 돌둑이 낳음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미 낳음인 돌둑의 자리에 놓음으로써 순환이 가능하므로 이미 낳음인 곳에 놓음도 허용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첫번째 조건은 두울구조에 낳음이 적용될 때 이고 두번째 조건은 첫번째  경우의 낳음된 자리에 놓음할 때 이다.

  ◎  한울이음 조건 :  아래와 같은 조건을 만족하는 자리에 놓음인 경우이다.

      0.  두울의 안섬 조건을 만족한다.

      1.  안섬쌍(p)에 포함된 자리(p)가 돌둑(q)n의 단 하나 뿐인 이음자리이다.

      2.  이미 한울이음인 안섬쌍(p)의 자리(p)이다


       2.  두울이음.

   두울이음은 두울에서 두울로 향하는 이음이다. 두울구조에서 한울이음에 의해서 여울(두울)이 활성화 됨을 보았다. 이제 두울이 어떻게 유지 연장 그리고 끝 맺는지를 살펴 보아야 할 차례이다. 먼저 두울의 연장에 대한 것이다. 두울이 한울이음에 의해 발생하고 그리고 연속해서 또 다른 한울이음에 의해서 두울이 계속해서 발생하면 이 두번째 한울이음을 구별하기 위하여 두울이음이라 한다. 그런데 이 두울이음은 그 성격에 있어서 한울이음과 완전히 같지 않다. 따라서 두울이음의 성격과 그 발생(연장)조건을 명시해 보자.

  ◎  두울이음 조건 :

      0.  두울의 안섬 조건을 만족한다.

      1.  자리(p)에 이웃한 돌둑(q)n의 모든 이음자리가 안섬쌍(p)에 포함이다. 

      2.  두울이음인 안섬쌍(p)n의 자리이다.

  이렇게 정리한 한울이음의 조건이 다소 느슨해진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두울이음은 이미 두울이 발생하였으므로 반드시 섬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섬을 포함하지 않는 조건으로 말미암아 발생 가능한 모든 순환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다. 즉, 두울조건을 만족하고 최소한 이웃한 돌둑이 안섬쌍이 될 수 있거나 이미 안섬쌍인 곳에 놓음할 때이다. 두울이음의 유지는 두울의 이음 조건(2)을 만족할 때이다. 이미 여울이 발생한 곳에 놓음하는 것을 유지한다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다음으로 두울이음 혹은 여울의 연장을 생각해 보면 여울이 다른 곳에서 연속해서 발생할 때이다. 흑이 두울을 발생시키고 연이어서 백이 다른 두울구조를 활성화(발생)시킨다면 이를 두울이 연장된다고 한다. 이 연장은 기능적인 연속으로 보아야함으로 둘러섬이 같을 경우에도 새로운 두울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이러한 경우도 두울의 연장으로 본다. 즉, 두울이 부분적으로 중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울이 중첩인 경우에는 둘러섬이 중첩되는 것은 허용하지만 안섬이 중첩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안섬의 중첩은 구조 전체가 반복되는 것으로 순환이기 때문이고 둘러섬의 중첩은 두울구조가 완전히 중첩되는 것이 아니므로 반복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올둑(흑)이 두울구조 안에 있다는 것은 그 올둑(흑)이 먼저 여울의 구조를 포함하지 않아야 한다. 빈울(흑)과 한울(흑) 그리고 두울을 포함한다면 두울구조의 안에 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올둑(흑)이 여울구조를 포함하지 않아야 고려하는 시점에서 하나의 순수한 돌둑(흑)이 될 가능성을 가지는 것이다. 이것이 흑이 만족시켜야 하는 조건이다.

  이를 구조적인 입장에서 관찰해 보면 안섬 조건을 만족하는 모든 돌둑이 한울이음이나 두울이음의 안섬쌍이다. 흑(발생자)의 입장에서 안섬쌍은 여울구조를 포함하지 않는 낳음가능한 올둑이면 되고, 백(수용자)의 입장에서 안섬쌍은 여울구조를 포함하지 않고 흑에 의해서 낳음가능한 돌둑이다. 여울의 통합기능에 의해서 여울이 발생하면 한울이음의 모든 안섬쌍이 여울의 안섬쌍이 된다. 여울구조는 순차적으로 발생하지만 여울기능은 동시적으로 통합한다. 여기서 돌 놓음하는 가능한 올둑만 여울이음을 발생시키지만 중간에 여울의 통합기능에 의해서 순서를 무시하고 돌 놓음과 상관 없이 안섬쌍의 조건을 만족하는 모든 올둑을 안섬쌍으로 한다. 발생자로서는 스스로 낳음이 가능한 올둑이 수용자로서는 상대방에 의해 낳음이 가능한 돌둑이 안섬쌍이다. 그러므로 한울,두울이음(연장)은 이 통합의 결과를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연속성에 따라서 규정된 조건들은 두울구조의 모든 순환을 포함하지 않는다. 연속 순환은 아니지만 순환이 가능한 경우를 단속적인 순환이라 한다. 단속적인 순환에서 두울이음이란 한울이음 혹은 두울이음의 유지와 연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순환 가능한 두울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아닌 경우이다. 


    제 9 장 :  수행규칙의 적합성.

  바둑의 진행규칙은 바둑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순환을 배제한다. 그러나 진행규칙은 그 적용범위가 너무 넓고 비현실적이다. 진행규칙을 실제로 수행할 수 있는 형식으로 변형시킬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진행규칙은 '바둑은 밭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규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바둑이 밭을 추구한다는 지향성을 고려하면 수넘김, 판의 순환, 자충수, 자멸수 그리고 단속적인 두울의 연장을 무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순환을 무시하기만 하면 시간이 지나 수넘김의 경우처럼 규칙의 오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순환을 무시하는 경우와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를 모두 포함시키는 것이 규칙의 오용을 방지하면서 효율성을 살리는 방법이라 생각 된다. 모든 경우를 무시하는 것은 바둑의 이해와 수행을 오히려 저해하므로 그 적합한 정도를 살려 규칙으로 규정한 것이 수행규칙이다. 수행규칙을 적용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환이 발생하면 수행규칙을 진행규칙의 형식으로 전환하면, 바둑에서 밭을 추구한다는 수행성을 유지하면서 모순되는 경우를 모두 방지할 수 있게 된다. 이 전환의 조건을 수행규칙의 충분조건이라 한다.


        1.  충분규칙.

  충분규칙은 두울이 연속순환인 경우에 앞으로 올 미래의 안섬쌍이 그때까지 과거의 안섬쌍과 수맞섬(안섬쌍의 크기가 같음)일 경우를 배제하기 위한 규칙이다. 앞으로 올 미래가 무엇일지 모르는 데, 그 미래의 가능성까지 수용해서 현재의 놓음을 규정한다는 것은 진행규칙이 너무 과도한 제약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충분규칙은 구체적인 근거 위에서 진행규칙을 적용하고자 하는 노력 혹은 현실성이다.

    [충분규칙] :  그 두울에서 서로 다른 안섬쌍(p&q)n이 있으면, 여울자리(p)를 버릴 수 있다.

    

        2.  수행규칙.

  수행규칙은 '바둑에서 밭을 추구한다'는 사실에 입각해서 먼저 빈울규칙을 생략한다. 왜냐하면 빈울규칙은 그 자체로는 순환이 아니지만 합의적 순환 혹은 순환에 기여한다고 할 수 있다. 밭을 추구한다면 규칙의 오용을 꾀할 이유가 없으므로 생략한다. 그러나 순환이 발생하면 언제든지 [빈울규칙]으로 되살아 난다. 다음으로  수넘김의 배제는 [놓음규칙]에서 오직 하나의 돌만을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만으로 규정한다. 마지막으로 [두울규칙]은 둘러섬쌍(p&q)이 동시에 섬일 수 없다. 둘러섬쌍은 섬에 대해서 언제나 양립 불가능하다. 어떤 과정의 변화 없이는 그 자체로 항상 양립하고 있다. 따라서 진행규칙으로써 두울규칙의 열기는 무용지물이다. 구조적인 파악에 도움을 주나 수행적인 측면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 구조적인 진행규칙이 뜻하는 바를 수행규칙으로 변형시켜야 한다. 수행규칙은 미래의 가능성을 모두 수용하지 않는다. 두울에서 수행규칙이 수용하는 앞으로 올 형태는 안섬 조건을 만족하고 동시에 즉각적으로 발생이 확실한 경우만을 수용한다. 왜냐하면 바둑의 경험으로 순환이 발생할 것이 확실한 경우를 일일이 순환이 되었을 때 규칙을 적용하는 것은 효율성의 원리를 위반한다. 이렇게 구체적인 순환의 경우를 수행규칙에 포함시키면 동일한 결과로 압축할 수 있다. 간단히 두울자리를 규정할 때 안으로 안섬쌍의 맺음자리, 밖으로 서로 맞섬인 안섬쌍의 맺음자리이다. 이러한 변형은 진행규칙의 압축이다. 수행규칙을 적용한 결과는 진행규칙을 적용한 결과와 동일하다. 따라서 진행규칙에서 수행규칙으로 변형(생략)이 가능하다.

    [여울규칙 0 ] :  여울을 열어 짓는다.

        ★  여울자리(p)의

           [열기 0 ] :  둘러섬쌍(q)n이 모두 없으면, 여울자리(p)를 버릴 수 있다.

           [충분 1 ] :  그 두울에서 서로 다른 안섬쌍이 있으면, 여울자리(p)를 버릴 수 있다.

           [짓기 2 ] :  둘러섬이 모두 여울에 포함이면, 여울자리(p)를 받을 수 없다.

    [낳음규칙 1 ] :  섬인 돌둑(p)n의 돌(p)n을 모두 낳아 버린다.

            < 따름 > :  여울자리(p)를 버릴수 있으면, 자리에서 버린다.

    [놓음규칙 2 ] :  오로지 하나의 돌(p)을 자리에 받아 놓는다.


        3.  충분조건.

  [충분규칙]을 적용할 때 적용되는 조건이다. 다시말해서 연속 순환조건이다. [충분규칙]으로 순환이 풀리지 않으면 [충분규칙]을 무효화하고 충분조건 역시 무효화 한다. 그러면 한울과 두울의 유지 조건이 두울의 확장 조건으로 환원되며 [수행규칙]을 그대로 적용-단, 충분규칙은 생략-해도 모든 진행규칙의 순환을 배제할 수 있다. 충분조건을 적용할 경우  한울이음과 두울이음에서는 안섬의 조건을 올둑(p)이 만족하는지 먼저 확인하고 나서 안섬쌍(p)이면, 상대의 돌둑(q)n이 안섬조건을 만족하는지 확인-안섬쌍(q)n-해서 두 종류 모두 안섬조건을 만족하면 한울이음과 두울이음이다. 충분조건을 적용하지 않는 경우 두울의 확장조건을 적용하여 먼저 상대방의 올둑(q)n이 안섬조건을 최소한 하나는 만족하는지 확인-안섬쌍(q)n-하고 그리고 나서 안섬쌍(q)n에 이웃한 자신의 올둑(p)이 안섬조건을 만족하는지 확인-안섬쌍(p)-한다. 즉, 충분조건은 (p)에서 (q)로, 충분조건이 아닐 경우는 (q)에서 (p)로 조건을 적용한다.


    제 10 장 :  결론

  바둑은 일상의 노동이 아니다. 바둑 놀이의 고유한 시간과 공간이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바둑은 문화와 역사에 가려져 왔다. 바둑이 어떻게 발생하였는지 지금 결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화와 역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할 수는 있다. 바둑을 재구성하는 전제 조건으로 선택적 우선성과 경제적 효율성 그리고 논리적 합리성을 그 전제로 하였다. 바둑의 전제들은 일상에서 우리가 수용할 만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들이다.

 구체적인 문제를 제기하면 첫째로 종국을 확실이 결정하지 못한다. 바둑은 시작이 있고 어떤 과정을 거쳐 끝이 난다. 바둑의 과정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추구하는 바가 존재하는 동안 추구과정이 지속된다"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바꿔 말하면 최소한의 추구 가능성이 존재하는 동안 추구과정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최소한의 추구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추구과정은 끝난다. 어떤 가치와 그 가치에 대한 추구과정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어떤 가치가 없이 그 가치에 대한 추구과정이 있을 수 없다.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 가치를 추구할 가능성 자체가 없다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이다. 그러므로 어떤 가치에 대한 추구는 그 가치를 전제하는 것이다. 이렇게 전제한 가치가 없이 그 가치를 실현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 전제로서 가치가 사라지면 그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도 사라진다. 즉,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가능성이 없으면 추구하는 과정도 없다(끝). 이러한 사실을 받아 들이면 '집'이라는 개념이 추구의 대상으로는 부족함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수없이 많은 바둑이 두어졌지만 '집' 개념이 종국을 확정짓지는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종국을 결정지었을까? 대국자의 직관적 능력으로 종국을 결정지었다고 본다. 그러나 종국이 대국자의 직관에 의존한다면 대국자에 따라 종국이 서로 다를 수 있다. 아마도 프로기사라면 끝내기에 들어가기도 전에 종국일 것이고 프로와 아마츄어의 대국이라면 100수 쯤이면 종국일 것이다. 대국자의 직관에 의존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국자들이 끝을 알고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둘째로 낳음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왜 둘러싸면 낳음인가? 너무 당연한 것을 묻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답을 어디에서도 들을 길이 없다. 낳음하는 방법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규칙이다.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 놓는다. 별다른 이의가 없다. 단지 가치가 무엇인지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낳음은 사정이 다르다. 왜 하필 둘러싸면 낳음인가? 전통놀이인 고누처럼 상대의 돌이 내 돌 사이에 있으면 낳음이다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개념이 바둑에서 낳음을 설명할 수 있는가? '둘러싸면 낳는다.'는 방법론적인 규칙이다. 그러나 왜 이러한 방법을 채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와 그 근거가 필요하다고 본다.

 셋째로 돌들이 왜 하나로 기능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같은 종류의 돌이 서로 이웃하고 있으면 하나로 기능하며 하나이다. 그런데 왜 그러한가? 상대방의 돌과는 하나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이고, 같은 종류의 돌들이 하나로 기능하고 하나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하나로 기능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이러한 물음들이 설명을 기다리지만 어디에도 그러한 설명은 없다.

 넷째 집을 셈하는 동일한 근거가 없다. 한.중.일.대만의 바둑이 '집'을 셈하는 방식이 다 다르다. 즉, '집' 그 자체가 다르다. 순수 한국 바둑은 경계를 제외한 자리가 집이고, 대만(응씨룰)의 경우는 미리 같은 크기의 '집'을 가지고 바둑을 두고, 중국에서는 살아 있는 돌과 차지한 자리가 모두 '집'이고, 일본식 바둑에서는 살아 있는 돌은 '집'이 아니지만 죽은 돌은 한 '집'의 가치를 가지고 차지한 자리도 한 '집'의 가치를 가진다. 이렇게 상이한 개념들이 모두 집 혹은 다른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종합해서 살펴보면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돌과 자리가 '집'이다. 왜 돌 혹은 자리라 하지 않고 '집'이라 하는가? 무슨 차이가 있는가? 차이가 없다면 괜한 낭비이다. 그런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집'이란 단어를 쓰지 않고도 계가할 수 있고 돌과 자리만으로도 번거롭기는 하겠지만 충분하다. 굳이 '집'을 따로 이름할 필요는 없다. '집'을 배제하고 나면 돌은 바둑을 두기위한 도구이다. 즉, 돌은 도구적인 가치를 가진다고 표현할 수 있다. 자리는 판의 구성요소다. 바둑을 두기 위한 영역이다. 돌이라는 도구적 대상을 가지고 판이라는 영역에 포함된 자리에 어떤 가치를 실현한다. 자리는 어떤 가치의 수용자이지 추구하는 가치는 아니다. 즉, 자리는 어떤 가치의 수용자로써 생산된 가치를 2차적으로 저장 혹은 드러내는 가치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자리와 돌은 바둑을 두는 동안 대국자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아니다. 이렇게 숨어있는 가치는 도대체 어떤 것인가? 도구적 가치와 추구적 가치가 서로 다르다면 숨어 있는 추구적인 가치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다섯째 추구하는 대상이 명료하지 않다. 도구적인 대상들은 뚜렷하다. 돌과 판 그리고 오직 둘로 구분된 참여이다. 추구의 대상은 아직까지 드러나지도 않았고 구체화 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충분한 용어를 사용하면서 대국자의 직관에 의지하고 있다. 그 결과로 나라마다 문화마다 서로 다른 가치를 셈하고 있는 것이다. 각자의 문화적인 편견에 휩싸인 체 추구의 대상을 힘싸움으로 변질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승리한다고 해서 추구의 대상이 명료하게 구체적으로 드러나는지 묻고 싶다.

 여섯째 집이 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집'이 불충분한 내용으로 사용되므로 '집'이 수행해야 할 기능까지 영향을 받아 아예 잊혀져 버렸다. '집'은 추구의 대상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집'을 추구할 가능성이 없을 때 '집'은 추구의 과정을 마감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집'의 힘이고 그 기능이다. 현행의 집개념은 과정을 마감하는 힘을 잃었고 그 기능을 상실했다. 집과의 혼동을 막기위해서 '밭'의 개념을 제안한다. '밭'이라는 개념은 추구의 대상이어야 하고, '밭'의 가능성이 없을 때 바둑을 마감하는 힘을 가지고 바둑을 끝내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일곱째로 순환을 정의하지 못하고 순환의 경우를 모두 배제하지 못하고 있다. 패를 금지하는 규칙은 있다. 그러나 패의 구조가 무엇인지 명시하지 않고 있다. 패의 기능 역시 규정되어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실정이니 패의 종류를 생각한다는 것은 너무 먼 일이 되어 버렸다. 규칙적용에서도 순환하는 것은 드러나 있지만 정작 규칙이 적용되는 구조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있다. 규칙적용의 구조가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모두 다 대국자의 직관적인 소양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바둑 입문 서적들 대부분이 그림으로 설명을 대신하고 있다. 설명을 듣는자의 이해력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 :  "바둑에서 밭을 추구한다".

 첫번때부터 여섯째까지의 질문은 밭 개념으로 답할 수 있다. 바둑을 재구성하면서 얻은 성과들이다. 밭 개념을 바둑에 적용하므로써 그동안 설명을 하지 않고 넘겨버린 많은 질문들을 묻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종국을 확정지을 수 있고, 놓음과 낳음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고, 지향과 평가를 분리하여 파악할 수 있고, 무엇보다 일상의 비유 혹은 차용이 아닌 놀이로서 바둑 그 자체의 근거를 체계 안에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둑을 체게화하는 데 구조적인 파악은 바둑의 형식화에 지대한 기여를 하고 있다. 당면한 문제에 대한 임시방편이 아닌 발생 가능한 모든 문제에 대한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구조적인 단순성이 바둑을 파악하는 데 더 효과적인 것은 당연하다.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면 그 구조의 기능들에 대한 조건을 파악하기가 훨씬 단순 해 진다. 그리고 바둑에서 '규칙'으로 규정했던 많은 것들이 하나의 규칙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찾아 낼 수 있었다. '규칙'이 여러 의미로 사용된 까닭으로 오해의 소지가 다분했던 것이다.

 바둑은 체계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구조와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체계적인 관점에서 바둑을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바둑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앞으로 바둑의 세계화와 바둑과 인접 체계들 간의 상호관계를 보다 다양하게 검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렇게 일상으로부터 독립된 바둑을 그 자체로 성립시키는 것이 바둑의 재구성이고 새로움일 것이다.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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