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1.들어가는 말
2.생애와 활동
3.진동(Amplitude)의 철학
1)철학의 유형
2)정신적 인간과 문화적 인간
3)격동(Ersch?tterung)의 삶
4.비주관적(asubjektiv) 현상학
1)궁극적 기초로서 나타남(Erscheinen)
2)세계와 타자
5.나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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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자명 새한철학회
학술지명 철학논총JOURNAL OF THE NEW KOREAN PHILOSOPHICAL ASSOCIATION
ISSN 1226-9379
권 26
호 1
출판일 2001. 10. 30.
파토쉬카의 비주관적 현상학과 진동의 철학
홍성하
(Hong, Seong-Ha)
우석대학교 ( Woosuk Univ. )
1-066-0104-07
국문요약
진동의 철학은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파토쉬카의 삶과 생활세계에 뿌리내리고 있는 철학이다. 행복을 추구하며 균형을 이루고 있는 안정된 삶과 달리 격동의 삶은 불안정과 박해로부터 기인하지만 이 한계상황을 극복하는 실천적인 삶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철학자는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는 삶을 통해 실존의 한계를 넘어서서 격동의 삶을 체험하는 것이다. 진동의 철학은 후설과 하이데거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후설의 반성개념과 하이데거의 실존개념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비주관적인 현상학으로 정초된다. 비주관적 현상학은 궁극적 기초로서 나타남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철학이며, 현상의 장에서 현상학적 분석을 수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비주관적 현상학에서 나타나는 세계는 가장 근원적인 통일성이며 궁극적 지평이다. 파토쉬카의 철학은 현상 배후에 존재하는 참된 세계를 발견하고자 하는 형이상학이 아니라, 나타남 자체를 그 전체성에 꿰뚫어 보고자 시도한다는 점이 다른 현상학자와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점이다.
영문요약
?ber die asubjektive Ph?nomenologie und die Philosophie der Amplitude won J. Pato?ka
In dieser Abhandlung wird die Philosophie von Jan Pato?ka behandelt, der bedeutendste tschechische Philosoph dieses Jahrhunderts ist. Pato?kas Denkweg wird vor allem durch Husserl und Heideggers Philosophieren gepr?gt. Aber er geht seinen eigenen Weg mit der Kritik am Subjektivismus der transzendentalen Ph?nomenologie Husserls und an der fundamentalen Ontologie Heideggers. Wir verbinden im ersten Teil die Philosophie der Amplitude mit seiner Kozeption der Geschichte und Politik, w?hrend wir im zweiten til von seiner asubjektiven Ph?nomenologie ausgehen, um einige der Motive ins Auge zu fassen, die Pato?ka die Kritik an das transzendentale Idealismus aus?bte. Pato?kas ph?nomenologische Philosophie kreist von Anfang an um das Thema Erscheinung der Welt. Es geht nicht um die Frage der Welt und ihrer Strukturen, sondern um die frage nach dem Erscheinen der Welt. Seine sp?te Philosophie geht von der kritischen Revision des Ansatzes von E. Husserl zum entwurf einer asubjektiven Ph?nomenologie ?ber.
한글키워드
파토쉬카, 후설, 하이데거, 비주관적 현상학, 진동의 철학
영문키워드
J. Pato?ka, E. Husserl, M. Heidegger, asubjektive Ph?nomenologie, Philosophie der Amplit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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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들어가는 말
현상학과 현상학적 운동을 논할 때, 우리는 흔히 후설과 하이데거에 이어 메를로 퐁티, 핑크, 란트그레베 등 독일을 중심으로 서유럽에서 활동한 철학자들을 언급하게 된다. 그렇지만 후설과 하이데거로부터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면서 현상학을 독창적으로 전개시킨 동유럽 현상학자들을 우리는 거명하지 않을 수 없다. 이중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현상학자가 폴란드의 인가르덴과 체코의 파토쉬카1) 다. 인가르덴의 연구는 이미 국내에서도 철학뿐만 아니라 문학 등에서도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파토쉬카에 대한 연구는 전무한 실정이다.
최근까지도 파토쉬카의 현상학이 국제적으로 특별히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은 그 동안 파토쉬카의 저서나 논문들이 영어나 독일어, 프랑스어들로 번역되거나 연구된 것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단지 리쾨르나 데리다와 같은 프랑스 철학자들이 부분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실정이며, 독일어권에서조차 거의 논의가 되지 않았다. 현상학 분야에서 Ph?nomenologische Forschungen 17권이 ‘파토쉬카 철학에 대한 연구’라는 주제로 출간되었지만, 단지 스르바(I. Srubar)의 논문에서만 파토쉬카의 현상학 개념을 상세히 다루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최근 10년 동안 파토쉬카 철학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저작을 독일어로 번역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은 오스트리아 빈의 ‘인간연구소’(Institut f?r die Wissenschaften vom Menschen)였다. 이 연구소에서 1987년부터 1992년까지 파토쉬카 전집을 총 5권으로 편지 출간하였다. 이 전집에는 현상학에 관련된 저술 뿐만 아니라, 철학, 미학, 체코문화 및 역사에 관련된 대표적인 저술들이 들어 있어, 파토쉬카의 현상학적인 사유와 철학사, 예술과 문화적 전통과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1999년 출간된 Texte-Dokumente-Bibliographie는 파토쉬카의 전집을 두 가지 관점으로 보충하고 있다. 하나는 다른 현상학적 입장에 대한 파토쉬카의 견해와, 다른 하나는 파토쉬카에 대한 참고목록들을 방대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파토쉬카와 현상학’이라는 제1부는 30년대에 쓰여진 텍스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파토쉬카가 다른 현상학자들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를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파토쉬카의 사상이 후설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하이데거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아울러 후설의 조교였던 란트그레베와 핑크와의 지속적인 유대관계를 통해 사상적 교류를 하였음이 나타나 있다. 제2부는 파토쉬카의 생애와 작품을 정리하였으므로, 그의 사상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데 필요한 귀중한 자료들이 들어 있는 부분이다2).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무엇보다 프라하의 챨스대학교 부설 파토쉬카 아키프를 중심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연구재단의 후원을 받아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파토쉬카 철학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국제학술회의에서도 파토쉬카를 주제로 다루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이 논문에서 아직 국내에 전혀 소개가 되지 않은 파토쉬카의 철학을 크게 철학 일반과 현상학이라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 다루고자 한다. 이 연구방법론으로는 주로 일차 문헌을 충실하게 해석하면서 논의를 전개시켰다.
2.생애와 활동
먼저 파토쉬카의 철학을 다루기 전에 그의 생애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를 위해 간략하게나마 언급하고자 한다. 파토쉬카는 프라하의 찰스 대학교에서 코작 교수로부터 후설 현상학을 처음으로 소개받게 된다. 그 후 1929년 프랑스 유학 중이었던 파토쉬카는 소르본 대학교에서 후설의 강연을 ‘떨리는 가슴’으로 직접 경청하게 된다. 이렇게 파토쉬카의 가슴을 벅차 오르게 했던 가장 큰 이유는 파토쉬카가 오랫동안 후설을 진정한 철학자로서 추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3).
1933년 파토쉬카는 훔볼트 장학금을 받아 베를린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수학할 기회를 얻게 되어 후설과 그의 조교였던 핑크와 개인적인 친교를 쌓게 된다. 당시에 후설과 핑크는 현상학적 선험적 관념론에서 파생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현상학적 환원개념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파토쉬카는 프라이부르크 시절에 하이데거의 강의에도 참석하면서 그의 존재론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파토쉬카의 초기 저술을 보면 후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지만, 후기에는 오히려 하이데거 철학으로부터 많은 감화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파토쉬카는 하이데거를 “추상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강단 철학자가 아니고, 그 사유의 결과가 모두에게 관계가 있는 위대한 사상가 중 하나”4) 라고 격찬을 보내고 있는 점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다른 곳에서도 하이데거를 “우리가 처해 있는 위기의 사상가, 새벽이 오는 유럽시대의 사상가, 재난의 시대에 집대성한 사상가”5) 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파토쉬카가 현상학의 두 대가로부터 직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지만 그 그늘 속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펼치게 된다.
1934년 프라하 철학회(Cercle philosophique de Prague)가 창립되며, 파토쉬카는 이 학회의 총무로 활동하게 된다. 이 학회에서 기획한 첫번째 행사가 후설을 초청하여 강연을 듣는 것이었는데, 이 행사를 파토쉬카가 맡아 추진하게 된다. 후설은 이 강연을 위해 소위 ‘프라하 논문’이라는 이름으로 원고를 쓰게 된다.6) 1934년 크리스마스 휴가기간 동안 파토쉬카는 후설을 만나기 위해 프라이부르크에 다시 오게 된다. 이 만남에서 후설이 프라하와 빈에 와서 강연을 할 것을 결정한다. 우여곡절 끝에 후설은 프라하 철학회의 초청으로 1935년 11월 14일과 15일에 프라하에서 두 개의 강연을 하게 된다7).
이처럼 파토쉬카의 철학이 후설과 하이데거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적으로는 전혀 소개가 되지 않고, 국제적으로도 연구가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파토쉬카가 현상학자, 또는 철학자로서 알려지기보다는 1977년 1월 1일 프라하에서 제정된 ’77 헌장’8)을 발표하면서 정치가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후 대통령이 된 하벨과 프라하의 봄 당시 외무장관이었던 하젯과 더불어 국제사회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제 3의 인물로 세계여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파토쉬카가 당시의 공산주의체제 아래에서 행해진 인권탄압을 세계에 호소하기 위한 헌장의 의도와 목표를 제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토쉬카를 자유주의 정치가로 지칭하는 것을 주저하게 되는 이유는 그의 강직성이 정치적이기보다는 도덕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헌장이 발표된 이후에 파토쉬카는 투옥되어 고문을 받는 등 온갖 고초를 겪게 되며, 그의 철학, 특히 현상학도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 많은 탄압을 받게 된다. 결국 1977년 3월 13일 파토쉬카는 11시간이 넘는 고문 끝에 뇌졸증으로 사망하게 된다. 그의 죽음이라는 극적 상황을 통해 파토쉬카의 이름은 서방세계의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9).
3.진동(Amplitude)의 철학
1)철학의 유형
파토쉬카의 철학적 사색은 무엇보다 그리스 철학자, 특히 당시 그리스 도시국가에서의 삶과 철학적 사유와의 관계에 대한 깊은 고찰로부터 시작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철학은 도시국가의 형성과 함께 인간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의문을 갖고 물음을 제기하기 이전의 신화나 서사시 안에 암시되어 있지 않았고, 또한 단순한 원시적인 삶에 내포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플라톤의 철학과 유사하게, 파토쉬카의 철학은 무엇보다 당시 유럽인들에게 있어서 숙명과도 같았던 역사와 정치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유럽의 역사가 철학과 정치로부터 생겨났다는 것이다. 정치가 인간의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역사는 자유를 통해 개시되기 때문에 정치와 역사는 상호 분리될 수 없고, 또한 철학이 자유로운 사유라는 점이 이러한 정치와 역사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 파토쉬카의 표현을 빌리면 “공동적인 오성의 자명성이라는 형태로 비철학을 통해 철학이 처음부터 위협받고 있듯이, 정치적인 것은 공공성, 비사태성과 선동을 통해, 즉 전통의 상실과 전통초월(?bertraditionalisierung)을 통해 위협받고 있다10).” 이는 자유를 추구하는 역사 속에서 정치적 실존은 외부적으로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위협을 받는 것을 의미하며 철학적 물음이 정치적인 실천과 비슷한 근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단할 수 잇는 인간의 자유에 근거하는 철학은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으로서 실족적인 본질을 지니고 있다. 파토쉬카의 30년대 논문에서 “철학은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해야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철학자가 결단을 위해 스스로 진력하지 않는 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점에 이르게 된다11).”
우리는 파토쉬카 철학을 시기적으로 크게 두 단계로 나누어 검토할 수 있다. 30년대를 중심으로 전개된 초기단계와 60년대 중반부터 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후기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초기 파토쉬카 철학에서는 “영원한 것과 무한한 것, 외적인 한계와 내적인 한계, 저항과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이 중심과제로 다루어진다. 특히 “불안감, 불일치,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것들이 우리 안에서 점차 확대되고 있다”12)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첫째, 인간을 근본적으로 조화로운 능력이 있는 존재로서 파악하는 입장이다. 즉 인간은 최선을 다해 행복과 균형을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역사는 자연의 법칙에 합당하게 균형과 조화라는 목표를 향해 도달하고자 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삶을 낙천적이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평균적 일상적 생활 태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철학에서는 삶 속에 내포되어 있는 과정된 것이나 환상적인 것들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폄하하게 된다. 파토쉬카에 따르면 인간은 그 도안 자연적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살아 왔다. 왜냐하면 다른 생명체에게 있어서 균형을 삶 자체로부터 주어지게 되지만, 인간의 삶은 다른 피조물의 삶보다 “더 복잡하고 예술적인 기능을 수행”13)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삶이 복잡한 것처럼 보여도 근본적으로 하나의 단순한 사건에 불과하다. 즉 평범한 인간이 일정한 교육을 받아 도구를 능숙하게 사용하게 되고 이를 기초로 활동하게 되듯이, 바로 인간의 생계를 꾸리는 역사가 바로 인간의 삶의 역사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역사는 근본적으로 완성된 진행이며, 인간이 추구하는 안정은 인간사회의 목표에 대한 노력으로서 정당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회적으로 행하는 모든 노력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에는 이것이 단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은 불충분성(Unzul?nglichkeiten)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둘째, 인간은 결코 결정적인 생활형식으로 고정시킬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더욱이 사태의 본질, 즉 자기 자신으로부터 유래하는 그러한 종류의 존재는 아니다. 무엇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평가절하하고 있기 때문에 안정과 완성에 도달할 수 없다.14) 그러므로 인간은 고정된 생활방식이나 형식을 파괴하고, 정상적이라 여기는 삶 속에 숨겨져 있는 문제들을 밝혀내어 불안정한 것들과 극단적인 것들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일상적인 생활태도는 균형의 삶과 격동의 삶으로 구분하는 파토쉬카의 삶에 대한 이해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즉 균형의 삶이 조화를 추구하고 낙관적이고 현실적이라면, 격동의 삶은 매사를 문제시하고 불안정하고 극단적이며 환상적인 삶을 의미한다. 이런 격동의 삶은 단순히 동요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격동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서로 연대감을 지니게 되며, 이런 연대감은 박해와 불안정으로부터 기인하게 된다. 그러므로 격동의 삶은 단순한 삶의 강도나 열광, 또는 황홀경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 속에 스며 있는 ‘두려운 한계성’(furchtsame Beschr?nk-theit)을 극복하는 것이고, 고유한 실존의 한계에로 나아감이며, 실천적 삶의 작은 목표를 넘어서서 세계 전체를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15) 그러므로 파토쉬카에 의하면 “인간은 유한하며 세계의 부분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세계를 소유하고 세계에 대해 알고 있는 존재”16) 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파토쉬카는 삶의 유형을 크게 격동과 균형으로 구분하면서, 이러한 삶과 철학이 어떤 관계를 지니고 있는가를 철학적 유형으로 해명하고 있다. 이 철학적 유형은 무엇보다 그리스 철학자의 생활방식과 관련하여 분류하고 있다.
첫째, 소크라테스적인 방식으로서 세계는 어둡고 문제가 많이 내포된 것으로 우리와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키면서 영원히 우리는 세계를 소유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둘째, 플라톤적인 것으로서 세계와 공동체와의 갈등으로부터 우리가 철학적인 탐구에서 어떤 것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지니게 되며, 그 결과 정신적인 인간을 상정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소피스타가 되는 길이다.
이런 세 유형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소피스트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고 참된 정신적 인간이라고 파토쉬카는 규정하고 있다. 정신적 인간은 본래의 실존방식을 묻게 됨으로써 애매함의 근원을 파악할 뿐만 아니라, “참된 인식(episteme)과 관련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선입견”17) 이라는 점을 근본적으로 밝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실존적인 동요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앎을 괄호에 넣고 그 타당성을 배제하며 판단과 결정을 중지하게 되는 판단중지인 셈이다. 그러므로 정신적 인간은 모순되는 삶의 영역에서 확고한 토대 없이도 통일성을 찾을 수 있고, “절대적 부정성, 즉 부정적 회의와 부정적 허무주의를 극복하게 된다18).”
2)정신적 인간과 문화적 인간
여기서 우리는 파토쉬카가 의미하는 정신적 인간의 본질에 대해 논구할 필요가 있다. 파토쉬카에 따르면 정신적 인간은 어떤 사회적 상황에 따라 희생양이 되더라도 이를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정신적 인간은 정치인도 아니고 정치적일 수도 없다. 그렇지만 그가 속해 있는 세계가 자명하지 못할 경우에 그는 비존재로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정치적일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인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적 활동이며, 무엇보다 자신이 정신적 삶이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정신적인 삶은 단순히 명상이나 예술적인 활동이 아니다. 정신적인 삶은 현실이 경직되어 있지 않고 만들어져 간다는 인식으로부터 나오는 행위이다19).”
이처럼 우리는 한 사회를 구성하는 존재로서 평범한 인간과 정신적 인간 외에도 문화적 인간을 떠올릴 수 있다. 문화적 존재와 정신적 존재를 구분하는 것은 간단하지는 않지만 분명 차이가 있다. 이를 구분하고자 시도한 최초의 철학자가 플라톤이며, 플라톤은 그의 대화편에서 소피스트, 지식인(Intelligenzler), 지성인(Intellektuelle), 문화인을 구분하여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준다20). 파토쉬카에 따르면 문화적 존재는 인간적 삶의 풍요에 대한 단순한 향락적 태도를 지닌 존재가 아니라, 문화 안에서 살아가면서 세계 전체로부터 감동을 받고 살아가는 존재를 의미한다. 이러한 용어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두 가지 것, 예를 들면 사물과 음영(Schatten), 현실성(Wirklichkeit)과 홰곡된 상이 숨겨져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 연관하여 파토쉬카는 인간을 “진동의 삶, 불안정과 극단적인 모호함을 선택하는 정신적 인간이거나 타협자, 소피스트 그리고 기만자 중의 하나21)” 라고 밝히고 있다. 즉 정신적 인간의 형상은 명백히 드러나 있고 현실적이지만, 소피스트는 어둠 속에 그 형상을 숨김으로써 자신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적 인간은 세계의 부정적인 면을 발견하고도 이를 바로 망각하는 평범한 일상적 존재와는 달리, 놀라움과 경이로움으로 사태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물음을 제기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물음을 제기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동물의 삶과는 달리 인간의 삶은 “은폐성 속에 놓여 있는 불확실함”22) 에 대해 물음을 제기하는 것이다. 달리 물음을 제기한다는 것은 의심스러움을 제거하는 것이고, 이는 곧 확실성을 추구하는 것이라 하겠다. 파토쉬카에 따르면 확실성은 오랜 정신적 활동과 투쟁의 결과지만, 앞으로도 이런 “정신적 투쟁은 계속 진행될 것이고 그 결과는 더욱 부정적이 될 것”23) 이라는 강조하고 있다.
파토쉬카는 이처럼 확실성과 명백성을 추구한 정신적 인간과는 달리 문화적 인간 개념을 끌어들이면서 더욱 극단화한다. 정신적 인간이 명백한 존재지만 정신적 인간보다 문화적 인간이 더욱 분명하고 명백한 존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추상적 이념적 존재가 아닌 사회적, 경제적인 활동을 수행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파토쉬카에 따르면 플라톤 자신이 매우 뛰어난 정신적 인간이었기 때문에 정신성을 가장 자명한 것으로 왜곡하고 있었으며, 정신적 세계로서 철학의 세계를 전도하였다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정신적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현실적인 세계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에게 주어져 있고, 열려져 있으며 우리가 현실성으로 받아들이는 세계 안에서 우리는 살아 가고 있는 것이다.”24) 이 현실성은 세계 안에 단순히 현존하는 것이지만 절대적인 자명성을 지닌 기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한 세계 안에서 우리의 삶도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예를 들면 우리들이 어떤 사물을 지칭하거나, 또는 어떤 사태에 대해 입장을 표명할 때, 이런 점들이 교육이나 전통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운 것으로부터 연유하고, 동시에 명백하고 자명한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명성이 우리를 기만한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일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와 함께 사는 다른 사람들이 바로 나 자신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얼마든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기치 못한 죽음과 같은 경험들을 통해 우리에게 자명하게 보이는 삶이 분명 문제가 있고 다른 사람들이 나와 일치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세계는 규칙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우리에게 어떤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때 우리 행위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대답에 불과할 뿐이다25).”
철학이 세계에 대한 놀라움에서 시작했다는 점은 바로 무를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파토쉬카에 의하면 세계는 동일한 사물과 주위환경으로 이루어져 있어 물질적으로 이전과 동일하다 할지라도 지속적으로 변화되고 있다. 그러나 변화를 통해서 새로운 사물이나 새로운 사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사물도 존재하지 않고 어떤 사실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줄 뿐이다. 이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할 때 이를 사물로 간주할 수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새로운 삶은 우리가 단순히 삶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삶과 연관된 물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파토쉬카의 생철학을 종합적으로 보면 우리가 삶을 산다는 것은 매순간 무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들이 더 이상 자명하지 않고 단지 선입견에 불과하다는 점을 밝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상적으로 행하게 되는 부정적 경험을 간과하지 말고 이를 문제시하면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창조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확고한 토대 위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요동치면서 움직이는 현실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3)격동(Ersch?tterung)의 삶
소위 ‘프라하의 봄’이라 일컬어지는 체코의 민주화운동기간으로부터 ’77 헌장’에 관여하였던 10여년 동안 파토쉬카는 깊은 철학적 성찰을 하게 된다. 후기 파토쉬카 철학에서는 플라톤적인 선과 이데아에 대한 물음이 실존주의 철학의 문제들과 함께 중요한 논제로 다루어지게 된다. 이 당시에 강조한 진리 안에서의 삶이란 비고정적 존재(Unverankertsein) 또는 격동의 삶으로 규정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진리 안에서의 삶에 대한 고찰은 인간적 실존의 근본적인 운동에 대한 고찰을 전제한다26).” 비고정적인 삶의 형식은 인간의 근본적인 결단을 요구하는 삶을 의미하며, “실존론적인(existentiell) 동요가 클 때, 이 삶이 개시되는 것이다27).” 파토쉬카는 동요되는 삶 속에서 이를 직접 해결하는 정치적 힘을 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유와 삶이 구체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정신적이고 철학적인 삶이 정치적인 삶이 될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이러한 비고정적인 격동의 삶은 평범한 인간이 누리는 일상적인 삶의 속박, 또는 “무미건조한 비진리”28) 의 삶보다 선행하는 삶을 의미한다. 파토쉬카에 따르면 이성적인 편협함이 행복한 종말에 대한 보장, 즉 현존재의 이성적이고 실천적인 합목적성에 대한 보장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 편협함으로 인해 우리는 삶이 짧은 휴식기간과 같이 제한적이라는 점을 외면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우리의 삶이 중단된다 하더라도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와 같이 노동을 하면서 삶을 이어갈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세계는 노동의 세계이기”29) 때문이다. 동물과 달리 인간은 짐을 짊어져야만 하는 노동을 통해 자기를 유지하게 된다. 파토쉬카에 따르면 진동의 철학은 우리의 삶이 순간에 세계가 지고 있는 전체의 짐을 부담해야만 한다는 점을 의식하게 하는 것이다.
엄밀하게 보면 파토쉬카의 진동의 철학은 하이데거의 고유성(Eigentlichkeit)으로부터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무 앞에서 눈을 감고 노동과 행위의 광기에 빠지게 되는 것을 일상적 삶의 퇴락성이라 할 때, 이를 분명히 의타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파토쉬카에 따르면 노동과 행위는 “한편으로 자연적 욕구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수단이며, 다른 한편으로 반성의 헛수고를 통찰하고 삶을 혼란에 빠지게 하는 것으로부터 보호”30)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파토쉬카가 유한적인 것을 극복하고 유한성에 의해 충족되지 않는 점에서 인간존재의 본질적 차원을 추구한다면, 이는 극단적인 유한성에 대한 하이데거의 철학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간다고 할 수 있다.31) 그러나 파토쉬카는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철학자는 아니다. 왜냐하면 철학자는 인간의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인공적이 낙원을 찾거나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의 삶이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가 고립되고 제한된 영역에서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야스퍼스32) 말대로 우리 실존의 한계를 넘어서서 격동의 삶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개시된 한계상황에 들어가면서 우리 자신이 될 것이다”33)라는 격언으로 설명될 수 있으며, 우리가 한계상황에 맞선다면 이 상황은 개시된 낙원으로서 그에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파토쉬카는 두 가지 실존의 한계를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 한계는 물리적 약점이고 의지의 편협성인데, 이것은 물리적 고통, 질병, 죽음 등과 같은 현상에서 나타난다. 인간에게 있어서 위협은 우연적일 수 없으며, 이것으로 인한 고통은 일종의 긍정적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동물도 괴로워 할 수 있지만 인간은 동물보다 자주 더욱 심오하게 괴로워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더욱 큰 고통은 더욱 높은 의식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다. 둘째, 내적 한계로서 더 높은 의식인데 이 의식이 우리 자신보다 우리 안에 더 깊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완전히 충족할 수 없고 우리가 체험한 세계의 통일적인 구조는 물리적이거나 정신적인 사실의 축적물과는 다른 것이다. 오히려 이 구조로 인하여 우리는 더욱 희망을 갖게 되고 삶을 조망하게 되어 더욱 괴로워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삶을 에워싸고 있는 이런 한계상황을 통해 격동의 삶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런 한계상황을 넘어서게 되는 격동의 삶은 자기 자신에 대한 시험이며 일종의 저항이다. 인간은 격동의 삶을 통해 단순히 추상적이며 자명한 것에 대해 저하하게 되는 것이다. 즉 너무나 인간적인 허상, 조화로운 영혼의 단순한 낙원, 평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꿈에대해 저항하는 것이다. 물론 파토쉬카는 진동의 철학을 통해 낙원을 찾지만 이는 폐쇄된 눈으로 보는 낙원이 아니라 개방된 눈으로 보는 낙원이라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격동의 삶은 인간에게 고유한 자유를 주고 가능한 자유로부터 현실적인 자유를 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유는 “격동을 의미하고 이 격동이 이제까지의 삶의 전체의미에로 향하고 새로운 목표(Umwillen)를 세우게 한다.”34) 바로 자유가 존재자를 존재하게끔 하는 것이며 “인간적 본질의 어떤 측면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유한하며, 이 존재가 모든 단순한 확실성이 동요하는 데에 있다는 점을 근본적으로 의미하게 된다35).”
격동의 삶에 근거한 인간의 현실성과 현실가능성은 인간다움의 두 가지 방향, 즉 물질의 길과 정신의 길 사이의 심연을 보다 구체화하게 한다. 여기서 정신은 단순히 고상하고 비물질적인 사물에만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세계 전체와 관계하게 된다. 즉 정신은 격동의 삶에서 세계 전체를 이해하게 된다. 파토쉬카에 따르면 정신은 “결코 지적이지 않고 삶을 통해 불타오르는 빛으로부터 생기는 보편적 해석(universale Interpretation)이다36).” 정신은 우리에게 큰 약점이 되는 단순한 가상으로부터 우리를 보다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자유는 보여진 것을 가상으로서 드러나게 한다. 그리고 이 자유는 불안정을 감수함으로써 완전한 안정을 얻게 되고, 인가의 고유한 삶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격동의 삶은 도달할 수 있는 것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유를 위한 투쟁은 “공동의 의지를 궁극적으로 실현해야만 하는 공동작업의 양태”37) 라 할 수 있다.
파토쉬카에 따르면 올림포스 신들의 밝은 세계를 변조한 그리스의 서사시는 크톤적인 신화의 어두운 힘으로부터의 자유행위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화는 “모든 물음과 애매함 이전의 암시”38)이며 이야기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신화에 의거하여 인간이 세계로 갑자기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의 모습은 신화적 의식에서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신화 속에서 생각하고 해석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실존하였는가를 이해하게 된다. 이는 철학이 심오한 반성을 통해 모든 물음의 근거를 정초시키고자 한다며, 신화적인 이야기는 이런 “물음을 제기하기 이전에 대답을 하는 것이다.”39) 그리스 철학은 본질상 경악스러운 신화와 천박한 원시종교에 저항하고자 하였다면, 중세 기독교사상은 인간을 고통과 죄의 영역으로 떨어트리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상들은 우리 앞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 놓은 것으로, 이런 격동의 삶에서 인간은 외적인 한계뿐만 아니라 내적 한계도 인정하게 된다.
격동의 삶에서 받는 괴로움은 우리에게 세계를 발견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그 의미를 자유롭게 해석하도록 개시한다.파토쉬카에 따르면 괴로움은 우리를 개방된 차원으로 이끌며 내적이고 변화된 빛을 드러나게 하기 때문에, 우리는 권력과 성공으로부터 나오는 활홀경보다 더욱 깊고 큰 괴로움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권력과 성공은 언제나 유한한 것이며 이 유한성이 인간다움의 본질이 아니다. 괴로움을 통해 변화된 사람은 비천한 번영과 단기간의 권력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권력과 행복의 추구하고 부르는 일반적인 공허감과 목표상실의 희생물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것과 무한한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저항과 괴로움을 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저항은 굴복적인 천성이나 맹목적인 미신이나 환상적인 것을 거부하는 태도다. 이처럼 파토쉬카의 전동의 철학은 구태의연한 경험이나 관점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태도를 거부하며, 허구적 환상을 경고하면서 영원한 것에 대한 사랑을 권장하는 것이다.
4.비주관적(asubjektiv) 현상학
1)궁극적 기초로서 나타남(Erscheinen)
파토쉬카의 현상학을 논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 후설과 하이데거에 대한 파토쉬카의 견해와 입장을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는 이 주제에 대해서는 상세히 다루지 않고 주로 현상학적 경향에 대해서만 약술하고자 한다.40) 파토쉬카가 명증성과 관련하여 박사학위를 쓴 이래 “현상 자체를 개시(Offenbarwerden)”41) 하는 현상학은 파토쉬카의 텍스트를 규정하는 하나의 틀이 되었다. 무엇보다 1936년에 제출한 「철학적 문제로서 자연적 세계」라는 교수 자격논문에서 파토쉬카는 현상학의 의미를 “근원적이고 구성하는 주관성의 은폐(Versch?ttung)와 자유의 경험을 반대하고, 인간이 실존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포기하는 자기포기에 항거하는 것”42) 이라 주장하고 있다.
파토쉬카의 현상학적 작업은 그의 전후기 작품에서 나타나 있다. 후설, 하이데거 그리고 란트그레베와 핑크와의 친교를 통해 현상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 파토쉬카는 이들 현상학자들의 사상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자신의 철학을 보다 심도 있게 전개시키게 된다. 그렇지만 파토쉬카는 자신의 독창적인 길을 가면서도 현상학과의 연속성을 강조하였다.43) 특히 1931년 찰스 대학교에 제출한 박사 학위 논문인 「인식학에 있어서 명증성의 개념과 그 의미」에서 명증성 문제를 체계적이고 역사적으로 다루게 되며,44) 교수자격논문인 「철학적 문제로서 자연적 세계」는 무엇보다 후설 현상학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45) 이 논문은 『위기』의 처음 두 부분과 같은 해에 간행되었는데, 『위기』에서 다룬 선학문적이고 비학문적인 생활세계문제를 주제로 다루게 된다. 파토쉬카에 따르면 “판단중지의 단계를 통해 생활세계의 구조를 선험적 주관의 토대 위로 소급시키고자 한 후설의 시도는 올바르게 제시된 생활세계의 현상적 특성을 지나쳐 버렸다”46)고 지적한다.
파토쉬카는 생활세계를 선험적 의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역사적인 현실로서 파악하는데, 이 현실 안에서 우리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의 인간 존재는 일반적인 사변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실천을 규정하는 중심이다. 이는 후설을 넘어서서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적 관점을 수용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47) 즉 실천으로 철학을 규정하면서 세계 전체를 논제로 삼고자 하였다. 이때 현상학적인 전통에서 후설의 선험적 현상학과 초기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후설의 반성개념과 하이데거의 인간적 실존개념에 대한 현상학적 해석에 대한 비판이다.파토쉬카에게 있어서 반성은 절대적일 수도 없고 후설의 주장처럼 “반성하는 사람의 관점이 세계를 넘어서 있지도 않다”48) 는 것이다. 그러므로 후설처럼 세계를 주관적인 반성에서 분석할 필요는 없다. 설사 이론적 반성이 삶과 연관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허구(Fiktion)일 뿐이며, “외적인 것에 상응하는 내적 시선의 도움으로 행해지는 의식의 지작작용 신화”49) 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파토쉬카는 이런 비판적 입장을 초기 하이데거에 대해서도 견지하게 된다.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실존개념은 철학의 완전한 변혁을 위한 열쇠라 할 수 있다. 즉 반성적 통일성에 대한 전통적인 철학적 개념을 뛰어넘어 모든 삶의 반성된 통일성이 된다. 그렇지만 하이데거는 철학의 기투를 정초시키는데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 파토쉬카의 지적이다. 왜냐하면 하이데거의 존재론은 “세계 안의 인간적 현존재의 존재론적 영역을 넘어서 현상학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떠났기 때문이다50).”
파토쉬카의 후기 비주관적 현상학은 궁극적 기초로서 나타남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철학이며, 이 현상학적 탐구를 체험작용의 내재적 자기소여성의 확실성과 연관시키지 않고 나타남의 의미를 체험작용의 합법칙성으로 소급시키게 된다. 의식작용과 그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해명되는 후설의 의식현상학은 일종의 주관화(Subjektivierung)라고 할 수 있으며, 현상의 장(Erscheinungsfeld)에 대한 파토쉬카의 분석은 이 나타남이 처음부터 자아 위에 확립되지 않기 때문에 비주관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자아는 존재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시간적이고 동적으로 실존하는 존재자의 존재특성이다.”51) 파토쉬카의 비주관적 현상학의 의도는 현상학적 분석을 완전한 현상의 장에서 수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서 현상의 장은 주관적인 구성이라는 의미에서 주관적이기 않고, “주관의 고찰을 통해 현상적(ph?nominal) 장은 개시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아 자체에서는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52) 파토쉬카는 절대적 소여성에 근거하는 현상하는 것과 그 특성 사이의 현상학적 차이가 현상방식의 다양성으로 파악될 때 재차 은폐되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의식의 내재성에 근거하는 분석방식은 비현상학적 또는 독단적이라 말할 수 있으며, 현상학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접근방식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다양한 현상방식들이 자아 쪽에서가 아니라 자아에 대해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상하는 것의 특성이다.
파토쉬카에 따르면 나타남은 “변덕스러우며 이를 규정하는 계기 중 하나가 우연성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나타남이 확실성의 마지막 근거이며 이로부터 진리가 유래한다”53) 는 점도 동시에 밝히고 있다. 나타남이 확실성의 마지막 근거라는 통찰은 파토쉬카에 의하면 주객관계 외부에서 확고한 점을 얻을 수 없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철학은 나타남 자체와 체험된 대상의 초월성을 탐구해야 한다. 그러나 “존재(?tre)는 나타남(para?tre)”54) 이라는 주장처럼 반성을 통해 나타남을 넘어서는 것이 불가능하기 대무에 대상의 초월성에 대한 의미에 도달할 수 없다. 이처럼 파토쉬카는 주관적 자아를 절대화시키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의 현상학은 더 이상 현상의 장의 일부로서 선험적 주관이나 인간적 현존재와 관계하지 않는다.
2)세계와 타자
파토쉬카가 후설로부터 받아들인 판단중지는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을 위한 이론적인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유를 실현하고자 하는 인간적 실존의 가능성을 개시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후설과는 달리 파토쉬카에게 있어서 판단중지는 절대적인 존재의 기반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공하는 방법이 아니라,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를 극대화하기 위해 도입한 방법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판단중지는 파토쉬카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것의 자기 인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절대적인 근원은 순수하게 객관적으로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구성적 현상학은 순수하고 객관적인 이론이라는 의미에서 절대적인 학이 될 수 없고, 단지 자유롭게 한다는 의미에서 절대적인 것의 자기표명(Selbsterweis)이다.”55) 후설이 자유를 대상화하는 의식의 자유로서 파악하고 있다면, 파토쉬카는 자유가 주관에 속하지 않고 의식을 모든 존재자의 원천으로 파악하는 입장을 거부한다.
이처럼 후설의 선험적 관념론에 대한 비판적 견해는 하이데거와 유사하게 전개된다. “세계내존재의 개방존재는 심리학적이거나 정신적인 종류의 현상이 아니라, 의식에 선행하는 존재론적인 틀(Verfaßtheit)이다.”56) 이처럼 파토쉬카는 새로운 문제제기를 통해 현상학을 보다 깊이 있게 다루고 후설로부터 하이데거로의 관계에서 그 연속성을 확립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후설의 판단중지는 존재자 전체 이전, 즉 현상의 장 그 자체에로 되돌아가는 것이며, 이 현상의 장은 현상 그 자체와 그 안에서 나타나는 전재자라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차이개념과 연관된다. 이런 차이와 함께 파토쉬카는 모든 존재자에 대해 존재론적으로 구별되는 존재라는 용어를 수용하면서 존재를 일원적이고 전체로 보는 입장을 바구게 된다. 특히 존재론적 차이에 어떤 고유한 삶을 부여하지도 않고 이를 실체화하지도 않고, 오직 실존주의적인 기본틀로서 접근하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나타남에 대한 분석이 근본적으로 존재의미에 대한 철학적 물음이며 이로부터 인간의 행동방식의 다양한 양태를 파악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파토쉬카에 의하면 하이데거는 “세계내존재 현상을 불충분하게연구하였고, 존재사유를 위해 성급하게 비약하고 있다”57) 고 비판한다. 파토쉬카에 따르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세계는 순수한 주관으로 사라지지 않고 현상은 곧 세계내 현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전체는 현상과 상이한 것이 아니라 현상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세계는 변화 가능하며 우리 실존의 형식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파토쉬카는 세계를 가장 근원적인 통일성이며 궁극적 지평으로 이해한다. 체코어로 세계(sv?t)라는 단어는 어원적으로 빛(sv?tlo)58)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즉 세계는 삶의 빛이며, 우리의 길이 이 빛을 가능케 하며, 재차 그 빛이 우리의 길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길이 빛을 창조하며 이 빛이 길 자체와 분리될 수 없는 구성요소가 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세계는 우리에게 대상적인 내용처럼 외적이지 않고 우리의 고유한 주관성도 아니다. 오히려 세계는 기획, 즉 길로 가는 계획이며, 이 길로부터 주관성이 구성된다. 이런 세계 속에서 인간 관계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되어 형성된다. 첫째, 타자를 통한 자신에 대한 무한한 관계인데, 이는 무한한 삶에 대한 직관을 목표로 한다. 둘째, 자기 자신과 타자에 대한 관계로서 사회조직체, 노동윤리나 도덕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셋째, 유한적인 것을 통한 자기 자신에 대한 관계인데 이는 욕망의 충족을 조직화하는 것처럼 간접적인 노동을 포함한다59).
파토쉬카에 따르면 선험적 주관성은 그 자체가 단자와 같이 개체화되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상호주관적이다. “단자적인 선험적 주관성은 단어의 본래적인 의미에서 실존을 지니고 있지 않다.이 주관성은 자기자신을 위해 주어져 있지 않고, 존재적 논제의 대상도 아니라 선험적 관찰자를 위해서만 실존한다.”60) 이 세계 안에서 자아는 타자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 이러한 삶이 세계를 근원적으로 개시하며, 이 근원적 세계는 일련의 구체적 현상에서 보여진다. 즉 인간의 삶은 타자를 자기 자신에서 발견하며 타자에게 자신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처럼 “타자와의 접촉이 자연적 세계의 일차적이고 가장 중요한 중심요소다.”61) 파토쉬카에 따르면 자아는 인간적 실존의 형식으로서 운동62) 이라는 개념을 통해 타자를 존재자로서 경험하게 된다. 이때 세계는 모든 것을 매개하는 시공간이며, 동시에 인간적 실존과 모든 존재자가 나타날 수 있도록 해주는 공간이다.63) 인간은 모든 다른 존재자처럼 나타나는데, 여기서 나타나는 모든 존재자는 나에게 나타나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세계가 중심을 유지하게 된다. 즉 “세계가 주위세계(Umwelt)가 되며 나에게 나타남을 통해 세계가 중심을 얻게 된다.”64) 이렇게 중심화를 통해 세계가 주위세계가 되며 자기 자신 안에서 투사된다. 이 투사는 세계 안에서 있지 결코 세계를 넘어설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끝없이 타자와의 경쟁의 역사에서 승리해야만 하고, 이런 비실질적인 승리에 만족하면서 자기 자신 밖에서 스스로를 투사하게 된다. 자기투사는 이성적이고 자명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인간이 역사의 주인공이나 이상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처럼 보이게 한다. 65)”
세계와 타자에 대한 연구에서 파토쉬카는 인간의 근원적인 지평관계로서 기분(Stimmung)을 다루게 된다. 기분은 지향작용의 대상이 아니라, 기분에서 사물과 같이 주관이 드러나게 된다. 이는 “기분이 우리의 고유한 내적 상태지만, 동시에 우리 주변의 사물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66) 는 것을 의미한다. 파토쉬카에 따르면 기분은 정신도 아니고 행위도 아니다. 왜냐하면 정신은 비객체적인 것이지만, 기분은 어떤 상황의 계기가 아니라 상황 전체와 관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분은 “근원적인 깨달음을 통한 감동”67) 이며, 이 깨달음에서 전체가 나타나므로 기분에서 삶과 세계 전체가 관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파토쉬카에게 있어서 현상학은 학문적인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강단철학도 아니고, 세계변혁을 꾀한다는 점에 있어서 혁명적인 철학도 아니다. 현상학은 우리가 처한 위기에 대한 신념이며 신조(Besinnung)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상학은 인간의 위기를 근원적으로 탐구하기 때문에 일종의 “극단적인 되돌아감”68)이라 할 수 있다.
5.나가는 말
지금까지 체코의 대표적인 철학자이면서 현상학자인 파토쉬카의 사상에 대해서 논하였다. 그의 철학을 보다 체계적으로 논하기 위해서는 전후기를 엄격하게 구분하여 접근하면 보다 이해하기가 용이할 수도 있겠지만, 중복적으로 다루어지는 부분이 많아 주제 중심으로 분류하여 다루었다. 물론 다양한 주제들을 이 한편의 논문에서 전부 다루기는 지면상 어려움이 있기에 제한적으로 주제를 선정하였고, 경우에 따라서는 소홀하게 다루어진 점이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이 논문이 국내에 전혀 소개가 안된 파토쉬카의 철학을 다루기 때문에 그의 사상 전반에 대한 이해에 주목하였음을 덧부치고 싶다.
파토쉬카의 삶 자체가 안정과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끝없이 요동쳤던 격동의 시대를 살았기에 그의 철학은 한 마디로 진동의 철학이었다. 이 진동의 철학은 멀리 그리스 철학에 그 뿌리를 두면서, 동시에 정치와 역사라는 타학문과의 연관속에서 전개되었다. 격동의 삶 속에서 요구되어지는 진동의 철학은 공동체에 대한 깊은 관심을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면서 추상적 관념론과 절대적인 부정의 철학을 극복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러므로 파토쉬카를 “백과사전 적이고 인도주의적인 사상가”라 칭하기도 하며, “역사철학자일 뿐만 아니라, 역사분석가”69) 라 명명하기도 한다. 동시에 후설과 하이데거와 같은 현상학자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그의 철학적 작업에 있어서 다른 현상학적 견해들을 예리하게 비판하면서도, 이런 현상학적 사유의 출발점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정당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도 그의 철학이 지니는 역동성이라 할 수 있겠다.
파토쉬카의 철학은 현상 배후에 존재하는 참된 세계를 발견하고자 하는 형이상학이 아니라, 나타남 자체를 그 전체성에서 꿰뚫어 보고자 시도한다는 점이 다른 현상학자와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파토쉬카에게 있어서 현실적인 것을 더 이상 이념적인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체로서 파악하기 때문 이다. 즉 전체는 이념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현상의 장의 연관으로서 드러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방식을 전체의 현상으로서 파악하였지 부분들의 단순한 결합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처럼 파토쉬카의 철학적 사유의 근본의도는 비주관적인 현상학을 기획하는 것이고 어떤 상아탑적인 토대를 다지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의 터전인 생활세계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이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실천적 철학이 되고자 시도하였던 것이다.70) 그러므로 파토쉬카에게 있어서 생활세계는 실천적 세계로서 후설의 선학문적 세계, 하이데거이 역사 이전의 세계와 비교되는 세계라 할 수 있다. 그의 세계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는 세게구조를 해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나타남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 철학으로부터 후설과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철학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자신의 철학을 전개시키고 있다는 점이 파토쉬카의 철학의 깊이를 더해 준다고 하겠다.여기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의 저서는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칸트, 헤겔, 마르크스 등 철학사에 나오는 주요 철학자 대부분을 때로는 수용적으로, 때로는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방대한 철학사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주관성을 극복하고자 시도하는 파토쉬카의 비주관적 현상학은 란트그레베의 지적처럼 "매우 극단적"일 수 있다. 왜냐하면 파토쉬카가 비판하는 "선험적 주관성은 근본적으로 존재자가 아니라 존재자 전체를 초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험적 반성은 세계에 대한 관심에 있어서 자기망각과 퇴락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는 자유에 대한 기억71)" 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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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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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ocˇka, J., Die Bewegung der menschlichen Existenz (BE), Klett-Cotta. Stuttgart 1992
Patocˇka, J., Texte - Dokumente - Bibliographie (TDB), Verlag Karl Alber. Freiburg / M?nchen 1999
Husserl, E., Aufs?tze und Vortr?ge (1922-1937), Bd. XXVII. Dordrecht/Boston/London 1989
Heidegger, M., Sein and Zeit, T?bingen 1957
Srubar, I., Ist Ph?nomenologie aktuell? Zur praktischen Philosophie Jan Patocˇkas, Ph?nomenologische Forschungen, Bd. 30, Verlag Karl Alber. Freiburg / M?nchen 1996
Biemel, W., Laudatio anl?ßlich der Verleihung der Ehrendoktorw?rde an Professor Dr. Jan Patocka in Prag am 24. November 1975, Ph?nomenologische Forschungen, Bd. 4, Verlag Karl Alber. Freiburg / M?nchen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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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주
1) 파토쉬카는 1907년 6월 1일에 보헤미안 지역의 투나우에서 태어났다. 1925/26년 겨울학기에 프라하의 찰스 대학교에서 철학, 로만어, 슬라브어를 수학하게 된다. 1928-29년에 파리 소르 본 대학교에서 유학을 마친 후 찰스 대학교에서 철학, 체코어, 프랑스어로 국가시험을 보게 된다. 그리고 철학박사학위를 취학하게 되며, 1931년 이후 찰스 대학교의 조교로 근무하게 된다.
2) 『파토쉬카 전집』과 관련한 설명부분은 TDB, 496쪽 이하를 참조 바람.
3) NW, 11쪽.
4) BE, 579쪽.
5) TDB, 397쪽.
당시에 후설이 하이데거를 과소평가하지 않고 그의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고 파토쉬카는 술회하고 있다(TDB, 275쪽 참조). 파토쉬카도 하이데거를 높게 평가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후설의 철학적 깊이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있다. 파토쉬카가 1976년 죽기 전 마지막으로 드클레브에서 보낸 서한에서 “하이데거는 기본적으로 인간학에서 중요하지만, 후설은 하이데거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많은 구체적인 것들을 보았다”(NW, 294쪽)라고 기술하고 있다.
6) Hua ⅩⅩⅦ에 실려 있음
7) TDB, 211쪽 이하 참조.
파토쉬카는 이 강연을 통해 후설의 인품과 그의 사상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게 되었음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우리 대강당에서 이전에 그리고 이후에도 이런 사건을 결코 보지 못했다. 우리는 이러한 강연을 결코 듣지 못했고 철학의 정신을 직접 만나지도 못했다”(같은 책, 284쪽). 이 강연을 계기로 당시의 나치 치하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후설은 프라하 철학회의 도움으로 자신의 미간행 원고의 보존 및 체계적인 발행과 자신과 그의 부인의안전을 희망하지만, 이런 기대는 재정적인 이유와 정치적인 이유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같은책, 241쪽)
8) 소련의 지배를 받았던 1968년 당시 체코에서 자유화운동인 일명 ‘프라하의 봄’이 일어나지만 좌절되고, 그 후 1977년에 당시 공산정권의 인권탄압에 항의하고 헬싱키 조약의 준수를 촉구하는 ’77 헌장’을 공포하게 된다. 파토쉬카가 해석한 이 헌장의 내용은 1977년 2월 10일자 Le Monde지에 실려 있다. 여기서 파토쉬카는 인권과 자유에 대해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TDB, 467쪽 이하 참조)
9) 란트그레베는 파토쉬카의 죽음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그는 이런 위기를 처음부터 의식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철학적 사유가 단순히 이론적으로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유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점을 통해 진리를 지니게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감내하였던 것이다.” (TDB, 463쪽)-
10) KE, 184쪽.
파토쉬카는 오성을 객관적인 자연과 대립되는 기술적인 것을 의미한다.
11) KE, 327쪽.
12) TDB, 124쪽.
13) TDB, 91쪽.
14) TDB, 95쪽.
15) TDB, 125쪽 참조.
세계전체에 대한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파토쉬카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철학에서 나타나는 분리(Chorismos), 즉 존재하는 것과 단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가상에 대한 구분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분리작업을 통해 현상들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첫 번째 현상은 역사로부터 만들어진다. 역사는 그 사료를 통해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인간의 생활형식이 변화된다. 역사 안에서 다른 목표, 다른 느낌의 동요, 다른 관심 그리고 다른 실재들이 계속 나타난다. 이런 예민하고 변화 가능한 차원 중에 일부는 삶에 있어서 고정된 것, 즉 인간적인 삶의 욕구의 자연적인 소여성과 자연적인 환경에 반동적으로 작용을 한다. 두 번째 현상은 역사의 이해로부터 추측할 수 있다. 역사에 대한 추측이 정확하지 않고 역사의 문제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해결할 수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역사에로 접근 가능하며, ?선 세계, 즉 우리에게 은폐된 차원까지 자주 들어가게 된다. 이를 파토쉬카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비밀 속에서 새로운 하늘이 시선을 열며 당신의 한낮의 태양이 그림자를 다른 방향으로 보낸다”(같은 책, 95쪽 이하).
16) NW, 97쪽.
17) TDB, 130쪽.
18) TDB, 132쪽.
19) TDB, 120쪽.
20) TDB, 103쪽 이하 참조.
21) TDB, 129쪽.
22) KE, 36쪽.
23) TDB, 111쪽.
24) TDB, 105쪽.
25) TDB, 106쪽.
26) BE, 255쪽.
27) TDB, 128쪽.
28) TDB, 97쪽.
29) KE, 37쪽.
30) NW, 35쪽.
31) TDB, 129쪽 참조.
32) 야스퍼스에 대한 파토쉬카의 논의는 BE, 486쪽 이하 참조.
33) TDB, 126쪽.
34) KE, 167쪽.
35) KE, 74쪽.
36) TDB, 100쪽.
37) NW, 133쪽.
38) KE, 233쪽.
39) KZ, 78쪽.
40) 이 주제에 대해서는 『철학과 현상학 연구』17집 참조.
41) NW, 270쪽.
42) TDB, 491쪽.
파토쉬카에 의하면 자유의 경험이 역사적 생성과 발전에서 보면 형이상학의 근거가 되기 때문에 이 경험이 실증적이거나 대상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KE, 416쪽 이하 참조)
43) 파토쉬카의 사상은 “무엇보다 후설 그리고 하이데거의 철학함으로부터 각인된다. 여기서 ‘그리고’는 파토쉬카가 현상학의 거두 중에 누구와도 결코 연관되지 않는 한에 있어서 의미 심장하다.”(I. Srubar, BE 서문 7쪽)
44) 체계적인 부분에서 체계론자의 접근방식과 고안자(Erfinder)의 접근방식을 구분하고 역사적인 부분에서 합리적인 명증성 파악과 경험적 명증성 파악으로 나눈다.
45) 파토쉬카는 교수자격논문에서 크게 네 가지 테마를 다루고 있다. 1. 삶의 위기에 대한 선험적 관점. 2. 근원적인 길로서 판단중지와 환원, 3. 지각에서 자연적 세계관계의 선험적이고 발생적인 재구성, 4. 언어와 담론 철학에 대한 요약. 마지막 두 부분은 후설의 「경험과 판단」의 도식과 일치하며, 첫 번째는 후설의 「위기」, 두 번째는 핑크의 논문과 「제6성찰」과 관계한다.
46) BE, 21쪽.
47) Ilja Srubar, Ist Ph?nomenologie aktuell? Zur praktischen Philosophie Jan Pato?kas, Ph?nomenlogische Forschungen, Bd. 30, Freiburg/ M?nchen 1996, 175
쪽.
48) TDB, 29쪽.
49) BE, 421쪽.
50) BE, 248쪽.
51) BE, 284쪽.
52) BE, 27쪽.
53) TDB, 144쪽.
54) TDB, 146쪽.
55) TDB, 156쪽.
56) KE, 11쪽.
57) TDB, 129쪽.
58) BE, 150쪽 주 참조.
59) BE, 216쪽 참조.
60) NW, 90쪽.
61) BE, 210쪽.
62) 파토쉬카는 인간적 실존의 근본운동을 고정(Verankerung), 자기연장, 돌파(Durchbruch)로 표현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철학과 현상학 연구』17집 참조.
63) TDB, 34쪽.
64) BE, 262쪽.
65) TDB, 98쪽.
66) NW, 103쪽.
67) TDB, 166쪽.
68) BE, 451쪽.
69) W. Biemel, Laudatio anl?ßlich de Verleihung der Ehrendoktorw?rde an Professor Dr. Jan Patocka in Prag am 24. November 1975, Ph?nomenologische Forschungen Bd. 4, Freiburg/ M?nchen 1977, 134쪽.
70) BE, 29쪽
71) NW,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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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사항
홍성하
(Hong, Seong-Ha)
우석대학교
관심분야 : 현상학, 존재론, 실천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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