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I. 서론
II. 본론
A. 근원적 자의성의 원리
B. 근원적 자의성과 가치체계
C. 소쉬르의 이원적 대립(dichotomies)
1. 언어와 화언(langue/parole)
2. 공시태 통시태(synchronie/dachronie)
3. 기표와 기의(signifiant/signifi?)
4. 형식과 실질(forme/substance)
5. 통합관계와 연합관계(rapports syntagmatiques/rapports associatifs)
III.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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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자명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학술지명 硏究論集
ISSN
권 16
호
출판일 1988.
언어기호의 근원적 자의성과 이원적 대립
(소쉬르의 C.L.G.를 중심으로)
이화봉
황경자
8-598-88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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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론
구조주의 언어학은 일체의 언어현상을 역사주의의 견지에서 설명하려는 19세기의 지배적 경향에 대한 반동으로 언어자체의 형식적 체계화라는 과학적 분석의 방안을 토대로 Ferdinand de Saussure의 언어이론에서 비롯된 20세기의 산물이다.
결국 20세기의 사상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구조주의는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 강의(Cours de linguistique g?n?rale)에서 생겨난 것이며 넓은 의미로 볼 때 인문과학(sciences humaines)에 있어서의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모든 언어에서 구조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소쉬르 언어학의 방법론에 의하면 연구대상은 관점에 앞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정한 관점에 의해서 대상이 생겨나는 것이다1). 소쉬르는 언어란 순수 가치체계이며 그것은 기호의 통합관계와 연합관계에 의해서 구성되는 것으로 보고 그의 연구의 촛점을 기호와 기호사이에서 유지되는 가치와 그 체계에 두고 이러한 공시론적 방법론에 의해 언어langue)와 화언(parole)의 이원적 대립을 설정했다.
언어학의 대상인 언어를 규정하는 문제는 소쉬르에게 매우 중요했으며 여기서 이원적 대립이 결정적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이원적 대립은 방법론적 관점으로 구조주의의 근본원리가 되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소쉬르가 기호의 제1원리로 내세우는 근원적 자의성의 원리에 대해서 알아보고 이 자의성의 원리에서 이원적 대립이 나올 수 있는 연결점을 지적하면서 「일반 언어학 강의」에 나타난 이원적 대립을 살펴보기로 한다.
II. 본론
A. 근원적 자의성의 원리
소쉬르는 언어기호의 첫번째 원리로 언어기호의 자의성(l’arbitraire du signe)을 들고 있다.
언어기호란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의 결합이다. 언어기호는 사물과 명칭을 결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개념과 청각영상을 결합한 것으로 두개의 면을 갖고 있는 정신적 실체이다.
소쉬르는 개념이란 용어대신 기의(s?)를, 청각영상대신 기표(sa)란 용어를 사용하여 이둘을 결합시키는 관계는 근원적으로 자의적이라고 한다2). 이러한 소쉬르의 언어기호의 개념은 언어를 사물의 명칭의 목록(nomenclature)으로 보는 명목론(nominalisme)과 대립된다.
명목론에서 주장하는 언어란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작업이며 대상이나 개념이 우선하고 그리고나서 기호가 있다는 것이다3). 즉 언어보다 개념이 우선한다고 본다.
그러나 소쉬르에 의하면 우리의 사고는 단어에 의한 표현을 제외한다면 무정형의 분명치 못한 덩어리이고 사고 그 자체에는 미리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언어가 나타나기 전에는 아무것도 분명하지 않다.
Psychologiquement, abstraction faite de son expression par les mots, notre pens?e n’est qu’une masse amorphe et indistincte. …Prise en elle-m?me, lapens?e est comme une n?buleuse o? rien n’est n?cessairement d?limit?. Il n’y a pas d’id?es pr? ?tablies, et rien n’est distinct avant I’apparition de la langue.4)
결국 개념은 언어에 앞서 존재하지 않는다.
이 무정형의 덩어리인 사고와 또 이 사고가 필요로 하는 기표(sa)를 공급하기 위해 역시 구분이 명확치 않은 음성 재료에 동시에 분할이 가해지면서, 이 둘이 결합되면 필연적으로 이 둘은 서로를 한정하게 된다.
사고는 원래 혼돈된 것이지만 분할되면서 언어기호를 이루어 분명하게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사고 덩어리에서 기의(s?)가 분절되고5) 음성재료에서 기표(sa)가 분절되는데 이때 분절자체가 자의적으로 이루어지기에 이 기표와 기의의 결합이 이루는 언어기호는 그 근원에 있어서 자의적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여기서 다음에 언급될 형식(forme)과 실질(substance)의 대립이 생기게 된다.
한편 벵베니스트(Benveniste)는 언어기호가 개념과 청각영상의 결합 즉 기의(s?)와 기표(sa)의 연합이라는 정의를 받아들이면서도 이 둘 사이의 관계가 자의적이라는 언어기호의 성질이 피력되기까지 소쉬르의 논리 전개과정에서 나타난 모순점을 지적하고 있다. 즉 처음에 언어기호의 정의에 포함되지 않았던 사물이라는 제3의 요소가 언어기호의 성질을 말할 때에는 우회에 의해 포함되어 있음을 지적하면서6) 자의적인 관계의 영역은 바로 이 사물과 언어기호와의 사이이며 기표(sa)와 기의(s?)의 결합은 필연적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7).
벵베니스트가 이런 결론을 이끌어내고 논리적 모순점을 지적할 수 있었던 것은 C.L.G.가 소쉬르에 의해 직접 쓰여진 것이 아니라 그의 사후에 제자들에 의해 편집되었기 때문에 소쉬르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데서 연유한다.
B. 근원적 자의성과 가치체계
언어기호를 이루는 두 요소 기표와 기의는 언어체계에 앞서서 존재할 관념이나 음적 차이를 내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이 체계에서 생기는 관념적 차이와 음적 차이를 내포한다. 한편 기호들을 서로 비교할 때는 이미 차이라는 것은 말할 수 없게 된다. 하나의 기표와 기의를 제각기 가지고 있는 두개의 기호는 차이 즉 상이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구별될 뿐이다. 양자간에는 대립만이 있게 된다.
소쉬르의 방법론이 현대 구조주의의 근원이 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언어기호가 이루는 언어(langue)를 하나의 자립적 체계로 파악했다는 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언어기호들은 근원적으로 자의적이기 때문에 언어라는 체계는 기호들 사이의 상관적인 관계에 의해서만 유지된다. 이 상관적인 언어체계에 사회적 동의와 특별한 합의가 바탕이되어 의사소통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소쉬르에게 있어 언어(langue)는 그 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즉 언어기호들)이 서로 관련을 맺고 있는 구조이며 한 요소의 가치는 체계내에서 대립 또는 유사한 관계를 통해 생겨난다.
이상과 같이 규정된 자의성의 원리와 가치체계와 관련하여 소쉬르의 이원적 대립을 C.L.G.에 나타난 순서대로 언급해 보기로 하자.
C. 소쉬르의 이원적 대립(dichotomies)
1. 언어와 화언(langue/parole)
언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서 출발해서 소쉬르는 언어활동(langage)으로부터 언어(langue)를 구분한다. 즉 언어는 언어활동과는 별개의 것이며 언어활동의 한정된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나 그 본질적인 부분이다.
언어는 언어활동 능력의 사회적 산물이며 각 개인에게 이 능력의 행사를 가능케하는 사회단체에 의해서 채택된 필요한 규약의 총체인 것이다.
그런데 언어활동은 전체적으로 보면 다면적이고 혼질적이다. 다시말해 그것은 물리적이고 생리적이며 동시에 정신적인 분야에 걸쳐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영역에도 또한 사회적인 영역에도 속해 있다. 그러므로 그 단위(unit?)를 어떻게 추출해낼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언어 활동이라는 대상에 질서를 세울 수 없다.
그러나 언어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전체이고 분류원리이기 때문에 언어활동의 여러 사실들 중에서 언어를 제1위에 둔다면 어떻게 분류할 수 없는 언어활동의 총체에 본래의 질서가 서게된다8).
소쉬르는 이처럼 언어활동의 능력과 언어를 상호 대립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 둘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도 아울러 밝히고 있다9).
화언(parole)이란 소쉬르에게 있어 개인적인 의사전달 행위의 수행 자체로 정의된다. 즉 의사전달 행위의 수행은 대중에 의해서가 아니라 항상 개인이 주가 되어 극히 개인적인 행위로 성취함을 말한다. 화언은 문법이전의(pr?grammatical) 언어활동의 형태라는 점에서 언어보다 선행하게 된다10).
이러한 화언에서 언어를 분리시켜 보면 개인적인 것에서 사회적인 것을 부수적이며 다소 우연적인 것으로 부터 본질적인 것을 동시에 분리시킬 수 있다.
언어활동에서 화언을 제외시킨 것이 언어라고 할 때 이 언어가 있기 위해서는 언중이 필요하다. 이 언중이 바로 언어의 사회성을 말해준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곧 기호의 자의성과 연결되는 것이다. 즉 언어가 근원적으로 자의성을 지닌 언어기호의 순수 가치체계 이므로 이것이 일정사회에서 하나의 제도로 작용하는 것은 언중의 합의를 묵시적으로 내포하는 것이다.
언어는 말하는 이의 기능이 아니라 개인이 수동적으로 기억에 담아둔 산물이다. 언어는 절대로 사전 숙고를 전제하지 않으며 그것이 개입되는 것은 단지 통합관계와 연합관계에 의해서 나타나는 분류활동의 경우에 한해서이다.
이와는 상대적으로 화언은 개인적인 의지와 지능의 구체적인 행위로서 여기에는 사람이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서 언어의 준칙(code)을 사용할 때 발생하는 결합과 이 결합을 실현할 수 있게 해 주는 정신 물리학적 메카니즘이 포함된다. 소쉬르는 언어활동에서 이 둘의 대립을 다음과 같은 도표로 제시해 보이고 있다11).
한편 이러한 화언을 지배하는 체계는 화언보다도 위에 존재한다. 왜냐하면 어떤 기의(s?)와 다른 기의 사이의 구분, 어떤 기표(sa)와 다른 기표사이의 구분은 정신(l’esprit)이나 세계의 본질 또는 소리의 성질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우로(Mauro)는 언어를 경계획정의 체계(syst?me des limites)라고 규정한다.12) 그러므로 언어를 화언보다 우위에 둘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언어는 지각될 수 있는 본질체들을 제시하지 않는 특질을 보이고 있으므로 우리는 관찰이 가능한 화언의 사실들을 통해 동일성을 판단한 후에 언어단위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언어와 화언은 굳게 결부되어 있고 서로 상대를 전제하고 있다.
언어기호는 기표와 기의가 근원적 자의성에 의해 연결된 것이므로 변동을 가해오는 요소들에 대해 지극히 무력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언어는 변화할 수 있는 것인데 이때 변화의 시초는 언제나 개인의 언어사실 즉 화언을 통해서 먼저 시작되고 이것이 사회적 사실이 될때 언어가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언어는 진화를 하게 되는 것이며 공시태(synchronie)와 통시태(diachronie)를 공유하는 것이다.
2. 공시태 통시태(synchronie/dachronie)
소쉬르는 모든 과학에 있어서 그 과학이 연구대상으로 삼는 사물이 위치하는 축을 보다 더 세심하게 표시하게 되면 분명히 이로울 것이라고 하며 오른편과 같은 두개의 축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13).
이는 동시성의 축 axe des simultan?it?s(AB)과 계기성의 축 axe des successivit?s(CD)이다. AB축은 공존하는 사물들간의 관계에 대한 축으로 시간의 어떠한 간섭도 배제되며, CD축은 변화를 나타내는 축으로 동시에 고찰할 수 있는 사물은 단 한 가지 뿐인 축이다.
이러한 종축과 횡축의 구분은 가치를 추구하는 모든 과학에 실제적으로 요긴할 뿐더러 절대적인 필요성을 띨 경우도 있다. 그러한 경우란 자체내에서 고려된 가치체계와 시간에 따라 고려된 가치를 구분하지 않고서는 연구가 잘 이뤄질 수 없는 분야를 말하는 것으로 언어학의 분야가 그 으뜸이다.
언어란 그 사항들의 순간적인 상태를 벗어나서는 아무것도 밝혀낼 수 없는 순수한 가치체계이기 때문이다.
기표와 기의는 자의적으로 분절된 것으로 이둘의 결합은 아무런 합리적 근거에도 의존하지 않기에 언어기호의 가치는 그 사항을 고려하는 순간의 체계에 의해서 발생되는 것이다.
반면에 가치가 본연의 바탕을 가지고 있는 한 그 가치는 현재에 있어서나 과거에 있어서나 별 차이를 나타내지 않으므로 어느 정도까지는 그 가치를 시간속에서 추적할 수 있다.
그러나 언어학에 있어서는 본연의 자료가 없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가치체계의 복잡성이나 그 조직의 엄밀성이 더 하면 더 할수록 이 두 축을 따라 차례로 연구해나갈 필요성이 더해지는데, 언어의 체계는 복잡하고 정밀한 가치체계인 만큼 언어를 연구할 때 이 두 축의 설정이 긴요한 것이다.
언어기호의 수는 너무나 많으면서도 상호의존 현상이 어느 관계에서 보다도 엄격하기 때문에 시간과 체계의 관계를 구별하지 않고 연구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소쉬르는 두개의 언어학을 구별하여, 진화언어학(linguistique ?volutive)과 정태언어학(linguistique statique)의 구별을 제시해 보이고 있다14).
진화언어학은 언어를 어떤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가게 하는 여러 현상을 고찰하는 반면 정태언어학은 그와는 대조적으로 언어상태의 과학을 말한다.
그러나 동일대상에 관계되는 이 두 현상의 대립을 더 잘 나타내기 위해 소쉬르는 공시언어학과 동시언어학이라는 명칭을 제언하여 정태적인 면에 관계되는 모든 것은 공시적이고 진화에 관계되는 모든 것은 통시적이라고 하였다.
이와함께 언어상태를 공시태로, 언어 진화의 위상을 통시태로 지칭하여 그 대립 개념을 밝혀주고 있다15).
언어라는 것은 표현할 개념을 고려해서 만들어지고 짜여진 메커니즘이 아니다. 어떤 변화에서 생겨난 상태는 우연적인 것으로 공존하는 사항들 사이에서만 그 의미가 발생한다. 즉 언어기호는 근원적으로 자의적이기 때문에 기호들 사이의 공시적인 상관관계에 의해서만 가치가 발생한다. 이것은 곧 언어가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하며 역사적 변화를 거친다는 것을 전제해주는 것이다.
결국 소쉬르는 시간이라는 요인을 언어연구에 개입시킴으로써 두 언어사실을 구분한 것이다. 시간은 언어기호가 자의적 원리에 의해 결합된 것이므로 언어기호의 연속성을 보장하기도 하지만 언어기호를 변천시키기도 한다. 즉 기호는 연속되는 것이기에 변천을 겪는데 이때 변천은 결국 기표와 기의 사이의 관계의 변동이다. 이 변동이 언어를 진화시키는 것이고 이 진화사실은 통시태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소쉬르의 反 명목론적 관점에서 볼 때 언어학적 동일성의 문제는 자의성의 공시적 형태이고 기호의 양면에 대한 언어학적 변화의 문제는 자의성의 통시적 형태이다16).
3. 기표와 기의(signifiant/signifi?)
언어기호는 사물과 명칭의 결합이 아니라 개념(concept)과 청각영상(image acoustique)의 결합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concept verval과 image verval의 결합이다.
청각영상은 구체적인 음성 즉 순수하게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그 음의 정신적인 흔적이며 우리의 감각에 의해서 증명되는 음의 표상인 것이다. 따라서 이 영상은 감각적이고 이러한 의미로만 일반적으로 훨씬 더 추상적인 개념(concept)에 대립해서 이 영상을 물질적이라고 할 수 있다17).
그러므로 언어기호는 양면의 정신적인 실체(entit?s psychiques)이며 이러한 형식적인 실체들은 소리(son)와 의미(sens)의 구체적 실현들을 분류하는데 사용된다18).
이 두 요소는 서로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으며 서로 상응하고 있어서 arbor라는 라틴어의 뜻을 구하려 하거나 《나무》라는 개념을 나타내는 라틴어 단어를 구하려 하거나 간에 그 언어를 통해서 인정된 결합만이 실재에 분명히 부합한다.
소쉬르가 언어기호에 대해서 내리고 있는 이러한 정의는 용어의 문제로 발전되어서 기호, 기표, 기의라는 세개의 용어를 대립적으로 설정 제안하고 있다.
기호라고 부르는 것은 개념과 청각영상이 동전의 표리처럼 결합된 것임에도, 일반적인 관용으로는 가령 arbor라는 언어기호가 있을 때 《나무》라는 개념을 망각하고 감각적인 부분으로 그 전체를 대표하게 하여 그의 청각영상만 지칭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기호의 명료성이 결여된다.
그래서 개념과 청각영상과 그 두가지의 총체의 개념에 대한 용어를 확립함으로써 언어기호에 대한 모호성을 해소했다. signifiant과 signifi?19)의 결합을 signe로 정의함으로써 소쉬르는 언어기호의 자의성에 대한 개념을 제시할 수 있었다.
예를들어 《나무》라는 기의와 [namu]라는 기표는 각기 개념적 실질과 청각적 실질에서 자의적으로 분절되었기 때문에 이 둘 사이에는 아무런 내재적 관련도 없는 것이다.
이처럼 언어외적 현실체와 필연적인 관계가 없는 언어기호는 양면을 가진 이중적 실체이고 기호들 사이에서 상관적으로 한정된 실체이다.
이러한 기표와 기의의 각각은 다음에 언급할 기호의 형식적인 면에 해당한다.
4. 형식과 실질(forme/substance)
사고(pens?e)에 대한 언어 특유의 역할은 관념 표시를 위한 물리적 음의 수단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사고와 음사이에서 매개자 역할을 하는 것이며 사고와 음이 결합되면 필연적으로 단위들이 서로의 경계를 획정하게 된다. 사고는 원래 혼돈된 것이지만 분해됨으로써 명확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사고와 음의 무정형의 덩어리 사이에서 언어가 구성되면서 그 단위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즉 언어기호는 무정형의 사고 덩어리 (A)와 회반죽과도 같은 음성재료(B)로 부터 자의적으로 분절되면서 이루어지는데 이때 이루어진 언어기호들의 총체는 형식(forme)이며 무정형의 사고 덩어리와 음성재료는 실질(substance)을 이룬다. 다음의 도표는 이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20).
우리는 청각영상이 음성자체와 혼동되지 않는다는 것과 그 자신에 연합되어 있는 개념이나 마찬가지로 정신적(psychique)이라는 설명을 할 때 이미 언어는 형식이지 실질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볼 수 있다.21)
언어학의 대상은 실질이 아닌 바로 이 형식이 되는 것이다. 형식이란 각 언어가 잠재적 실질에 부여하는 추상적 관계의 망을 의미한다. 언어를 연구할 때는 그 연구대상이 형성하고 있는 관계를 알아야 한다. 형식은 체계안에서의 언어사항들간의 상호 의존관계를 잘 나타내주기 때문에 언어 학자의 연구 영역이 되는 것이다.
소쉬르는 실질에 앞서 형식에 우위성을 부여하고 형식이 의미하는 관계의 망을 통해 체계를 설정하고 구조(struture)의 개념을 확립한 것이다.
5. 통합관계와 연합관계(rapports syntagmatiques/rapports associatifs)
언어기호는 기표와 기의의 자의적인 결합이므로 이 기호가 속해있는 체계내에서 부여된 관계의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가치는 결합의 축인 수평축과 연상의 수직적인 축 위에서 표현될 수 있다.
즉 언어사항들 사이의 관계와 차이는 뚜렷이 다른 두 영역을 이루는데 이들은 각각 어떤 계층의 가치를 낳는다. 이 두 계층간의 대립은 그 계층 각 개의 성질을 더 잘 이해시켜 준다. 이것들은 언어의 생명에 필요 불가결한 우리의 정신 활동의 두 형태에 해당한다.
한편 담화(discours)속에서 낱말들은 연쇄되어 있기 때문에 시니피앙의 선조성의 특질에 근거하는 관계를 상호간에 맺는데 이런 특질이 두개의 요소를 동시에 발음할 수 없게 한다. 이 요소들은 발화연쇄 위에 차례 차례 자리잡게 되는데 이렇게 일차원적인 길이를 의지로 하는 언어 기호의 결합이 통합체(syntagmes)22)인 것이다. 따라서 통합체는 항상 두개 이상이 잇따른 단위로 구성된다. 예컨데 relire ; contre tous ; Dieu est bon 등 파생어 합성어 단어군 문장등은 모두 통합체이다.
통합체속에 자리잡은 사항은 그것에 선행하거나 후속하는 것에 또는 양자에 대립함으로서만 가치를 지니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담화 밖에서는 무엇인가 공통되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기억속에서 연합되는데 그럼으로써 매우 다양한 관계로 얽혀지는 단어집단이 형성된다.
가령 enseignement이라는 단어는 무의식 중에 enseigner, renseigner, armement, changement, 또는 ?ducation, aprentisage 같은 많은 단어를 떠오르게 할 것이다. 어느 모로 보든 이것들 모두는 그들 사이에 무엇인가 공통적인 것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등위배열(coordination)은 첫번째의 결합과는 전연 다른 종류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위배열은 각 개인에게 언어를 구성해 주는 내적인 보물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속하는 사항들 사이의 관계를 연합관계라고 부른다23).
통합관계는 현존하는 사항들 사이의 관계다. 그것은 실제 계열안에 다같이 현존하는 두개 이상의 사항들에 의거한다. 이에 반해서 연합관계는 잠재적인 기억의 계열안에 숨어서 보이지 않는 사항들을 연결시킨다24).
언어를 구성하는 음적 개념적 차이들의 총체는 두 종류의 비교에서 얻어진다. 이 비교는 곧 통합적인 비교와 연합적인 비교이다.
우리의 기억속에는 그 종류나 크기를 불문하고 다소 복잡한 모든 형의 통합체들이 저장되어 있는데 이것들을 사용할 순간에 선택을 결정하기 위해 여러 연합군을 개입시키는 것이다.
기호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고유의 가치도 지니고 있지 아니하므로 통합적 연합적 관계속에서 기호의 성립에 필요한 대립이 얻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기호의 자의성의 근본 원리에 제한이 가해지는 것을 보게된다. 즉 통합적 관계와 연합적 관계가 각기 지니는 연대성에 의한 제한이다. 체계로서의 언어에 관계되는 것은 이 자의성의 제한이라는 관점에서 언급되어야 한다.
언어체계 자체는 만일 기호의 자의성이 무제한으로 적용된다면 더 할 나위없는 혼란에 빠지게 될 터이나 다행히도 정신이 기호군의 어느 부분에 질서와 규칙성의 원리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통합적 관계와 연합적 관계에 의한 상대적 유연성의 역할인 것이다.
통합관계와 연합관계에 의한 언어의 이러한 메카니즘이 자의성을 제한하는 것으로 보고 언어를 연구할 때만 언어의 본성 자체가 과해주는 관점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III. 결론
C.L.G.에 나타나 있는 자료를 중심으로 근원적 자의성에 관련시켜 소쉬르 언어이론의 토대가 되고 있는 이원적 대립을 살펴 보았다.
언어와 화언, 공시태와 통시태의 대립에 이어 통합관계와 연합관계의 대립 즉 이 두 관계형을 제시함으로써 소쉬르는 현대 구조 언어학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언어상태는 모든 것이 관계에 의존하고 있으며 언어 구조는 요소 사이의 관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언어가 근원적으로 자의적인 언어기호들이 이루는 순수한 가치체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쉬르의 이원적 대립은 Amacker가 지적한 것처럼 "모순(antinomies)의 단순한 확인이 아니라 우리가 순진하게 언어사실에 접근할 때 명백하게 드러나는 이중성(dualit?s)을 보다 심오한 개념적 단일성속에서 설명하기에 적합한 보다, 개념적으로 통일성을 갖고 있는, 이론적 구성체"라고25)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원적 대립을 전후 연결성이 있는 총체로 정리해주는 것이 바로 근원적인 자의성의 원리라는 점을 염두에 둘 때 근원적인 자의성의 원리야 말로 소쉬르 언어학의 중요한 공리(axiome)임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결국 이원적 대립은 근원적 자의성의 필연적인 결과(corollaires)이며 이 근원적 자의성의 원리가 언어학 전체를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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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Amacker, Rene' (1975), linguistique saussurienne, Ge'ne've: Droz,
Benveniste, E'mile (1966), Proble'mes de linguistique ge'ne'rale, I, Paris: Gallimard.
Godel, Robert (1969), Les sources manuscrites du cours de linguistique ge'ne'rale de F. de Saussure, Ge'ne've: Droz, Paris: Minard.
Saussure, F de (1972), Cours de linguistique ge'ne'rale, Edition de Mauro, Paris: Pay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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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주
1 F. de Saussure (1972), Cours de linguistique g?n?rale, Edition de Mauro (Paris: Payot), p.23이하 C.L.G.로 약칭.
2 Engler의 자료에 의하면 《le lien unissant le signifiant au signifi? est radicalement arbitraire》 (1122B Engler)라고 밝히며 편집자들에 의해 「일반 언어학 강의」에는 radicalement이 누락되어 있음을 Mauro는 지적하고 있다. C.L.G. p.442, notes (136).
3 R. Amacker (1975), Linguistique saussurienns (Paris: Droz), pp.81-82.
4 C.L.G. p.155.
5 분절─언어 사항은 각각 하나의 분절인데 이때 개념이 음으로 고정되고 음이 개념의 기호로 된다.
6 cf. C.L.G. p.101: "…arbitraire par rapport au signifi?, avec lequel il n’a aucune attache naturelle dans la r?alit?."
7 cf. E. Benveniste (1966), Probl?mes de linguistique g?n?rale, I (Paris: Gallimard), pp.49-53.
8 C.L.G. p.25.
9 《la facult? du langage est un fait distinct de la langue mais ne peut s’exercer sans elles》 R. Godel (1969), Les sources manuscrites du cours de lingurstique g?n?rale de F. de Saussure (G?n?ve: Droz et Paris: Minard), p.147.
10 R. Godel (1969), p.149에서 재인용, 《historiquement le fait de parole pr?c?de toujours》 라는 C.L.G. p.3구에서 ‘historiquement’ 은 편집자들에 의해 삽입된 것이다.
11 R. Godel (1969), p.153.
12 C.L.G. p.420.
13 C.L.G. p.115.
14 C.L.G. p.117.
15 C.L.G. pp.115-117.
16 R. Amacker (1975), p.58.
17 C.L.G. p.98.
18 R. Amacker (1975), p.78.
19 signifiant은 소리의 부류(classe)이고 signifi?는 구체적 의미의 부류이다. R. Amacker (1975), p.78.
20 C.L.G. p.156.
21 언어가 형식이라는 생각은 Humboldt에게로 거슬러 올라감을 Mauro는 지적하나 언어는 동시에 표현과 내용의 두면에 대해서 실질로부터 독립된 형식이라는 것은 소쉬르가 처음으로 제시했다고 Amacker는 말하고 있다. R. Amacker (1975), p.60.
22 소쉬르의 이 syntagmes는 오늘날 변형문법에서 말하는 명사구(syntagme nominal) 또는 동사구(syntagme verval)와는 관계가 없다. cf. J. Dubois et autres (1973), Dictionnaire de linguistique (Paris: Larousse), p.479.
23 현대 언어학에서는 연합관계라는 용어 대신에 계열관계(rapports paradigmatiques)라는 말을 쓰고 있다.
24 C.L.G. pp.170-171.
25 R. Amacker (1975),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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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사항
이화봉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황경자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추천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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