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Ⅰ왜 자기결정권인가?
Ⅱ노동법상 자기결정권의 의의와 구분
1자기결정권의 의의
2개인적 차원의 자기결정권
3집단적 차원의 자기결정권
1)독일에서의 논의 : 공동결정에 대한 보편적인 권리
2)공동결정권의 구체적 형태
Ⅲ자기결정과 종속성
1근로계약에 의한 자기결정과 종속성
2자기결정의 이중구조
3국가적 조력에 의한 자기결정의 실질화
4집단적 자기결정의 의의
Ⅳ근로자의 자기결정권과 근로조건법
1근로조건법의 내용
1)노동보호법과 근로계약법의 구분
2)근로보호법과 근로계약법의 관계
2근로조건에 대한 근로자의 자기결정권
1)근로조건에 대한 근로자 자기결정권의 의의
2)근로조건법에 의한 자기결정의 부정원칙과 예외
3근로조건법에 의한 자기결정 부정의 원칙
1)근로조건법에 의한 자기결정 부정의 원칙의 정당화
2)근로조건법에 의한 자기결정의 실질화
3)근로조건법의 불비
4근로조건에 관한 자기결정 부정의 원칙의 예외
1)근로조건에 관한 자기결정 부정의 원칙의 예외에 대한 평가
2)임의규정과의 구별
Ⅴ자기결정과 획일적 결정
1취업규칙의 문제
2단체협약의 문제
3근로조건법과 집단적 자기결정
Ⅵ맺음말
--------------------------------------------------------------------------------
발행자명 嶺南大學校 附設 社會科學硏究所
학술지명 社嶺南大學敎附設 會科學硏究The Insititute of Social Science Yeungnam University Gyongsan,Korea
권 18
호 1
출판일 1998. 8.
노동법과 자기결정권
박 홍 규
사회과학연구소 소원, 영남대학교 법과대학 법학부 교수
2-175-9802-01
pp.1-18
국문요약
<요약문>
근로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한다는 이념 하에서 사용자의 의사만이 아니라 근로자의 의사에 반해서도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실현하고자 하는 근로조건법은 노동법 중에서도 자기결정의 이념과 가장 동떨어진 영역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는 경우 근로조건법 상의 규제를 완화하거나 그 탄력화를 주장하는 견해가 생겨난다. 그러나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는 것이 필연적으로 규제완화의 요구와 직결되는 것이 아님을 주의하여야 한다.
우리는 근로조건법의 여러 조항을 자기결정권과 관련하여 재검토할 필요가 있음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근로조건법에 의한 자기결정에 대한 과도한 제한을 검증하는 것만이어서는 안 된다. 도리어 그것은 현행법에 의한 규제의 의의를 명확하게 밝히고, 그것에 더욱 강고한 기초를 부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곧 자기결정이념과 근로자보호이념이라고 하는 두 개의 축을 염두에 두면서 현행법을 추상적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현실 노사관계 하에서 당해 규정의 기능을 신중하게 검토하여야 한다. 그러한 검토에 의하면 자기결정을 위한 규제완화 보다도 도리어 자기결정을 후퇴시킨 규제 강화가 요구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근로자의 자기결정을 보장하기 위하여 해고제한의 강화, 개별적 동의없는 전직 및 시간외근로의 금지, 권리행사를 이유로 하는 불이익취급의 금지 등과 같은 규제가 필요하다.
학문분류기호: C1108(노동법)
한글키워드
주제어: 자기결정권, 규제완화, 탄력화, 근로조건법, 근로계약법
--------------------------------------------------------------------------------
Ⅰ왜 자기결정권인가?
최근 노동시장의 규제완화 내지 탄력화라고 하는 소위 자유주의적 정책목표하에서 노동법을 개정했고, 그것을 더욱 탄력화하기 위해 다시 개정하고자 하는 주장도 나타나고 있으며, 심지어 노동법을 폐지하고 민법의 원리에 따라 자유로운 계약으로 노사관계를 구성하고자 하는 견해까지 대두하고 있다. 이미 학설이나 행정해석 또는 판례에는 민법적으로 노동법을 이해하고자 하는 경향이 농후하게 나타나고도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보면 노동법 제정 이전의 민법 지배의 암흑시대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지극히 보수 반동적인 견해라고도 평가 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민법의 계약자유라는 이념하에 노사간의 자유로운 근로계약이라고 하는 것이 노사간의 종속성이라고 하는 현실을 은폐하고 사용자에 의한 근로자의 착취를 결과하여 노동법이 그 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 제정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그러한 현실이 극복되지 않는 한, 민법의 차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있을 수 없으므로 그러한 주장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라고 하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보수적인 경향과는 달리 노동법 고유의 문제로써 근로자의 자기결정권을 중시해야 할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이는 노동법만이 아니라 현대법 전반의 문제라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엄격한 관리사회라는 특징을 갖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자립이 위기에 처해 개인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는 자기결정권이 중시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나, 특히 개인의 자립도가 전통적으로 약한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 그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법분야에서 그것은 앞서 본 바와 같은 역사적인 이유에서 무관하거나 적대적인 것으로까지 평가되어 왔다.
이론적으로 자기결정권은 고전적인 의미의 자유방임적인 자유권과 같은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으나, 엄격한 의미에서 단순한 사회생활상의 자유에 불과한 것과, 권력과의 대립이 전제되는 자기결정권은 구별되어야 한다. 예컨대 성행위의 자유는 단순한 사생활상의 자유로서 법적인 문제가 되지 않으나, 그것이 동성애의 자유로 나타나는 경우에는 국가의 법제도와 관련되는 것으로서, 공권력과 개인의 긴장관계를 전제로하는 자기결정권의 문제가 된다. 물론 사상의 자유나 신앙의 자유와 같이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자유권도 권력과의 대항관계에 섰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으므로 현대사회의 새로운 자유권도 그런 점에서는 일치한다고 볼 여지도 있다.
그런 차원에서 최근 서구에서 나타나는 현대적 자유권으로서는 피임과 중절, 동성애, 안락사와 수혈거부, 건강관련행위와 안전벨트착용, 학생의 표현권, 개인의 양조권 등을 둘러싼 자기결정권의 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되어 온 것을 들 수 있다. 그 어느 경우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개인은 자신에 관한 사항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국가나 사회는 그것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법리가 수립되고 있다.
물론 우리 나라에서는 이러한 법리수립이 아직도 요원하나 조만간 우리도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노동법의 경우에도 예컨대 근무시간 중의 근로자의 표현권(두발이나 복장 또는 정치적 주장 등), 사용자에 의한 시간외근로나 전직 등의 강제에 대한 제한 등이 문제될 수 있다. 이를 우리는 개인적 차원의 자기결정권이라고 부를 수 있다.
자기결정권을 둘러싼 또 하나의 문제는 민주주의적 참가에 관한 것이다. 예컨대 행정법상의 주민자치, 민사소송법상의 당사자주의의 철저와 화해 등 소송외 분쟁해결방법에 관련된 것이다. 여기서 자기결정권은 국가와 사회의 제도형성과 운영에 시민이 주체적이고도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앞서 말한 소극적인 자유권적인 것과는 구별되는 적극적인 권리를 뜻하므로 그것은 개인의 권리가 아니라 공동체의 주체인 주민의 권리라고 하는 점에서 구별된다. 노동법의 경우에도 이는 집단으로서의 자기결정, 곧 근로자의 경영참가 또는 공동결정 등으로 문제될 수 있다. 이를 우리는 집단적 차원의 자기결정권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집단적 차원의 자기결정권의 문제는 경제법, 노동법, 사회보장법 등 종래 헌법상 사회권에 근거하여 사회법이라고 분류된 것에 속하는 것으로서 그 속에서 개인적 차원의 자기결정권을 다시 묻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 곧 경제법의 경우 기업이 소비자에 대하여 일률적으로 약관을 강요하는 것에 대하여 계약상의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약관의 효력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노동법의 경우 단체협약과 다른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자유를 보장하는 것 등으로 나타나며, 사회 보장법의 경우 자조와 자기노력 및 임의적 봉사활동의 중시 등이 주장되는 것들이다.
사회보장법의 그런 경우는 노동법상 근로자의 공동결정과 같이 앞서 말한 민주주의적 참가와도 관련되는 사항이나, 경제법 및 노동법의 경우 사회적 힘의 차이에 따른 당사자간의 문제이고, 사회적 힘이 약한 소비자나 근로자를 국가가 원조하여 자기결정권을 실질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또한 그것은 보호대상이 사회권의 주체인 집단화된 인간이 아니라 자유권의 주체인 개인이라고 하는 점에서 종래 사회법의 논의와 다른다.
이와 같이 자기결정권은 기본적으로 자유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위에서 본 광의의 자기결정권 속에서 다시 생기는 개인의 자기결정권 문제는 헌법상 규정된 사회권과의 관계라는 차원에서 문제를 낳는다. 왜냐하면 사회권을 강조하는 경우 자유권은 사회권 앞에서 침묵하게 된다고 생각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노동조합은 사회권에 의해 성립되는 단체이므로 그 내부에서 조합원의 자유권은 단결을 위해 제한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따라서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는 것과 사회권의 조화있는 이해가 필요해진다.
여기서 사회권은 자유권의 향수를 실제로 가능하게 하기 위해 자유권 행사시에 불리한 조건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 조건을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목적은 자유권이고 사회권은 수단에 불과하며, 구체적으로도 여러 사회권에는 자유권적 요소가 포함된다는 사실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회권은 자유권의 개인주의를 단체주의적으로 수정하는 것이고, 그러한 한에서 자유권을 제약하며, 동시에 사회권은 자유권에 의해 제약되고 자유권을 현대사회에 실질화하는 수단이며 그것은 자유권을 내재하고 있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이와 같이 자유권과 사회권은 상호보완성과 대립성이라고 하는 차원에서 그 관계가 정립되어야 한다.
자기결정권과 관련된 논의 가운데 민법적 차원에서 개인의 의사를 중시하고자 하여 예컨대 약관의 효력을 한정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음은 앞서 지적했다. 그러나 의사자치를 중시하는 것은 독일적 경향에 불과하고 그 전제가 되는 사회적 기반이 결여된 사회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견해라는 비판이 있고, 따라서 문제는 의사자치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선 등의 일반원칙을 중시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뒤따른다. 그러나 앞서 말한 자유권과 사회권의 상호관계에서 보듯이 의사자치와 공공선은 함께 추구되어야 하는 대상이지 결코 어느 하나가 선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주지되다시피 한국은 전근대, 근대, 현대가 공존하는 사회이다. 그 각각에 대해 자기결정권 논의는 복잡하게 대응된다. 곧 보편적으로 개인적 자유의식이 뒤쳐진 것에 대해, 나아가 최근 일부의 특수한 근로자를 중심으로 개인적 자유의식이 높아진 것에 대해, 마지막으로 현대사회의 기계화·획일화·관료화에 수반된 개인의 주체성이 위기에 처한 것에 대해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는 것이다. 최근의 노동법 탄력화 경향은 주로 두 번째 문제와 관련된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하게 일부의 문제이고, 보다 일반적인 문제는 첫째와 셋째 문제이다.
이같이 노동법의 경우에도 그러한 강조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으나, 앞서도 지적했듯이 조금은 특수하게 자기결정권의 문제는 무시되거나 적대시되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강력하게 종속되어 있는 상태에서 참된 의미의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사용자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그러한 종속성이 해소되었기 때문에 자기결정권을 중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우리 나라에서도 그것을 따르는 입장도 있으나, 그것은 독일 얘기이지 우리의 현실과는 사실상 무관한 얘기이다. 게다가 독일에서도 그런 견해에 반하는 입장도 있다. 여하튼 적어도 노동자보호법의 완비나 노동조합의 역할 정도에서 독일과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한국에서 노동자의 종속성은 현저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노동자는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고 그 요구도 다양하므로 근로자의 자기결정권을 중시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종래에도 자기결정권에 근거한 노동법상의 여러 제도가 존재했고, 특히 1997년 근로기준법 개정시에 근로시간제와 관련하여 그런 제도들이 새로이 등장했다. 문제는 그것이 과연 근로자의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보장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그러한 탄력화가 과연 필요한가 하는 문제이다. 이는 노동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하는 근본적인 문제와도 관련된다. 도대체 자기결정권은 노동법의 영역에서 어떻게 구현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Ⅱ노동법상 자기결정권의 의의와 구분
1자기결정권의 의의
우리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는 인권의 기본규정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국제인권규약에는 이러한 조항이 없다. 인권은 구체적으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본다면 헌법에 이러한 추상적인 규정을 둠은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결국 그 내용은 학설이나 판례에서 결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헌법학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의 구체적 내용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으나, 비슷한 규정을 두고 있는 독일이나 일본에서는 '자기결정권'이 그 중요한 내용의 하나로 논의되어 왔다. 독일에서는 헌법 제2조의 인격의 자유로운 전개에 대한 기본권과 제12조 1항의 직업의 자유라는 기본권에 근거해서도 자기결정권이 나온다고 본다. 이러한 견해에 의하면 자기결정권이란 '개인적 사항에 관하여 공권력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이다. 이러한 권리는 국가의 개입에 대한 비판의식이 박약한 한국에서는 특히 강조될 필요가 있고, 더욱이 노동법의 영역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이해는 과도하게 협소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국가권력의 문제보다 더욱 심각한 것이 사회권력, 특히 노사관계상 근로자에 대하여 엄청나게 우월한 힘을 갖는 사용자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개인적 사항이라고 하는 점도 협소하므로 노사관계에서는 고용이나 근로조건에 관련되는 모든 집단적 사항에까지 자기결정권이 인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개인적 사항에 관한 자기결정권과 집단적 사항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구분한다.
이와같이 근로자의 자기결정권은 국가와 사회적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나 평등을 전제로 하나, 그것에 그치지 않고 더욱 적극적인 또는 동태적인 내용을 갖는다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자유의 이념을 '…으로부터의 자유', 평등의 이념을 '…과의 평등' 이라고 하는 소극적이고 상대적인 의미로 파악하고, 적극적인 자기결정 또는 자율의 이념과는 구별하도록 한다.
2개인적 차원의 자기결정권
개인적 차원의 자기결정권은 자기에게만 관련되는 사항에 대하여 자신이 단독으로 결정하는 권리를 뜻한다. 노동법에서는 근로자가 그 사적 영역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사용자의 간섭을 배제하고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하는 자기결정권은 먼저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고, 사적 영역의 자유를 국가적 간섭으로부터 보호할 필요성에 관한 한 근로자와 기타의 시민은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근로자에게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사용자로부터의 자유이다. 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성'이 국가가 아닌 사인에게도 적용되는가 하는 것은 인권의 사인간의 효력의 문제가 되나, 인간의 존엄에 대한 헌법 제10조는 최소한 노사관계에서도 간접적 효력을 가지며, 일정한도를 넘은 사용자에 의한 간섭이 위법·무효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나는 법률의 근거규범인 헌법이 사인관계에 직접 적용된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직접 적용된다고 보든, 간접 적용된다고 보든간에 적용이 된다고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 근로기준법 제3조는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바로 근로자의 자유로운 자기결정권을 명정한 것이다. 물론 그것은 근로자만이 아니라 사용자의 자유로운 결정도 규정한다. 따라서 이론상으로는 사용자에 대한 제약도 일정 한도를 넘는 경우 헌법 위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사용자는 이미 최대한의 자기결정권을 향유하고 있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노사관계의 실제에 있어서 근로자의 의사가 사용자에 의해 극단적으로 무시되는 경향이 있고, 특히 근로조건의 결정과정에 있어서 근로자는 거의 주체적인 관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사용자가 기업경영이나 근로조건의 결정에 대하여 최대한의 재량, 곧 자기결정권을 확보하고 있음에 비해, 근로자의 자기결정이나 관여는 최소한으로 억제되고 있는 현실이다. 예컨대 채용시에 근로자는 문서로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임금이나 근로시간 등의 여러 근로조건은 취업규칙 또는 단체협약에 의해 결정된다. 특히 채용내정의 단계에서는 근로조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듣지도 못하고,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을 제시받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근로자에게 지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직무의 내용이나 근무장소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경우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나아가 직무의 내용이나 근무장소도 기업의 사정에 따라 사용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변경된다. 왜냐하면 취업규칙에는 보통 사용자의 포괄적인 업무명령권이 정해지고, 법리적으로도 근로자는 입사에 의해 근무지이동 등에 포괄적으로 동의했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또한 근로자는 언제라도 시간외근무를 명령받을 수 있고, 그것을 거부할 자유를 갖지 못한다. 그것도 보통은 취업규칙에 명정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사용자는 근로자의 사적 영역에 속하는 여러 문제에도 관여하여 근로자는 사생활에 있어서도 자기결정권을 침해받고 있다.
또한 노동조합의 경우 기업 차원에서는 복수노조가 금지되어 하나의 노조만이 인정되고, 나아가 그 대부분은 사용자와 유니온 협정을 체결하여 근로자는 그 조합에 대한 가입을 강제당한다. 곧 조합가입에 있어서도 자기결정권은 침해당한다. 게다가 노동조합 자체는 기능이 저하되어 근로조건의 결정과정에 실질적으로 관여하지 못하고 있어서 근로자는 집단적 차원에서도 근로조건 결정과정으로부터 배제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근로자의 존엄성, 특히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부당하므로 시정되어야 한다. 곧 근로자는 근로계약에 의해 일정한 시간에 사용자의 지휘명령에 따라 약속한 근로제공의 의무를 지나, 그 외의 시간은 기본적으로 자유여야 하며, 취업시간 중이라도 근로제공과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시민적 자유를 계속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헌법 제10조에 기초한 자기결정권의 이념이 요청하는 것이다. 한국의 사용자 중에는 자기의 지휘명령권의 범위를 넘어 근로자의 사적자유에 개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컨대 휴일이나 휴가 등의 여가를 보내는 방법에 대한 규제, 휴게시간 중의 정치활동의 금지, 기업 밖에서의 근로자의 행위를 이유로 한 징계처분, 근로자의 복장이나 두발 등에 대한 규제 등이다.
이러한 사용자의 행위는 근로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원칙으로 위법·무효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근로자의 근로제공의무의 이행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한 사용자에 의한 규제가 인정되며, 근로자의 완전한 자기결정이 타당한 사적 영역과 사용자의 지휘명령이 인정되는 직업생활의 영역을 구분함이 이론적으로도 실무적으로도 중요한 문제가 된다. 여기서 기업질서를 이유로 하여 사용자의 지휘명령권을 과도하게 인정하는 한국의 학설과 판례에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
3집단적 차원의 자기결정권
위에서 본 개인적 차원의 자기결정권은 사실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관한 문제로서, 그렇게 협소하게 자기결정권을 이해하는 한 그것은 노동법의 중심적 이념이 될 수 없다. 인간이 적어도 자기에게 관련된 문제에 관하여 완전하게 타인결정에 복종하지 않고, 가능한 한 주체적으로 결정하여야 한다는 것이 자기결정의 이념이라고 한다면, 자신만에 관련된 것은 아니어도 자신에게 관련되는 사항에 대하여 자신도 그 결정에 관여할 수 있다고 하는 권리를 포함하여, 자기결정권을 광범하게 생각하는 것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와 같이 자기결정의 이념을, 타인과 공동하여 결정에 관여하는 권리를 포함하여 이해한다면 자기결정의 이념은 노동법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이념이 된다.
1)독일에서의 논의 : 공동결정에 대한 보편적인 권리
독일 헌법 제1조 1항이 규정한 '인간의 존엄'에는 인간이 타인의 단순한 객체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 따라서 자신에게 관련되는 일은 스스로 결정한다고 하는 자기결정의 이념이 포함된다는 것은 독일의 학설과 판례가 공히 인정하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은 근로자 개인의 차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특히 도이블러(Daubler)는 헌법이 인간의 존엄을 선언한 독일 헌법 제1조는 사회적 법치국가 원칙을 선언한 동 제20조와 함께 생산과정에 의해 매개된 것을 포함하여 인간의 객체화를 폐기하고자 하는 것으로서, 관계자가 자신에 관련되는 사항에 공동하여 관계할 수 있다고 하는 의미에서의 '공동결정에 대한 보편적인 권리'를 승인한 것이라고 본다 1)
2)공동결정권의 구체적 형태
생산과정에서 개별 근로계약은 노사 지위의 상위와 생산의 집단적 성격으로 인하여 합리성을 지닐 수 없으므로, 그것을 대신하는 자기결정의 수단으로서 노동 및 경제적 제조건의 집단적 결정, 곧 제도화된 공동결정과 집단적인 계약인 단체협약이 등장한다. '인간의 존엄'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집단적 계약은 일정한 비정형적인 여러 조건 하에서의 헌법적 가치판단의 논리필연적인 실현, 곧 더욱 고차적인, 집단적 평면에서의 개별적 계약자유의 재생이다. 2) 이러한 의미에서 단체협약만이 아니라 그 전제로서의 단결권, 단체행동권도 자기결정권, 곧 공동결정권의 관점에서 파악될 수 있다. 단결권과 단체협약을 이러한 관점에서 보는 것은 독일에서도 예외적인 것이 아니고, 3) 프랑스에서도 일반적인 입장이다. 또한 단체행동을 이러한 관점에서 보는 견해도 드물지 않다. 4)
Ⅲ자기결정과 종속성
1근로계약에 의한 자기결정과 종속성
타인과의 자기결정으로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개인적 차원의 근로계약이다. 근로계약은 근로자의 의사를 매개로 한 근로조건결정의 수단으로서 중요하며, 또한 근로자의 다양화로 인하여 타당한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근로자 개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할 경우가 증대되고 있어서 더욱 중시된다. 예컨대 근무의 장소나 시간 등의 결정이 특히 그러하다.
그러나 노사합의 영역에서 자기결정의 존중은 사용자에 대한 근로자의 종속성으로 인한 계약 대등성의 결여 때문에 노사의 합의=공동결정은 사용자의사의 관철을 은폐하는 외피가 되고, 근로자의 자기결정의 존중은 사용자의 단독결정을 추인하는 것이 된다. 여기서 집단적 자기결정으로서의 공동결정이 필요하게 된다.
2자기결정의 이중구조
근로자의 자기결정은 진정한 자기결정(제1차적 자기결정)과 종속성에 근거한 허위적 결정(제2차적 자기결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예컨대 전자는 근로시간을 8시간으로 하고자 하는 근로자 스스로의 결정이고, 후자는 사용자의 요구에 의해 마지못해 9시간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후자도 외면적으로 보기에는 자기결정이다. 이러한 허위적 자기결정은 그 결과 생기는 위험의 수용을 논리적·필연적으로 포함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2차적인 자기결정은 '강요된 자기결정'에 불과하므로 그것을 법적으로 존중한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보장이라고 하는 헌법과 노동법의 기본이념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노동법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근로자의 제1차적 자기결정을 실현함에 있다. 그것이 집단적 차원의 공동결정을 인정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집단적 자기결정은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경우에야 가능한 문제이고, 실제로 한국 노조의 조직률은 20% 미만에 머물고 있으므로 노동조합이 없는 상당수의 기업에서는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제정하는 취업규칙 등이 작용한다. 또한 노동조합이 존재하여도 반드시 근로자의 이익을 위하여 기능한다고 볼 수도 없다. 이 경우 인간다운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의 보장은 자기결정권이 아니라 국가법(근로조건법)의 제정과 적용 등과 같은 국가적 조력에 의해야 한다.
3국가적 조력에 의한 자기결정의 실질화
국가는 노동법을 통하여 자기결정의 환경정비와 의사해석의 양면에서 진정한 자기결정의 실현에 조력하여야 한다. 첫째, 자기결정의 환경정비로서는 특히 법룰에 의한 근로조건이나 노동법질서의 정립을 들 수 있다. 그것은 자기결정권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최저기준의 설정이나 사용자권한의 제한을 통하여 근로자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하기 쉽도록, 곧 진정한 자기결정을 표시하기 쉽도록 환경을 정비한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어야 한다. 효과적인 해고제한도 그러한 환경정비를 위하여 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둘째, 근로계약에 대한 사법부의 해석을 통한 조력이다. 곧 국가가 노동법을 통하여 근로자의 진정한 자기결정의 실현에 도움을 주는 하나의 측면은 계약이나 합의의 의사해석이다. 여기서 재판관은 근로자가 표시한 자기결정이 그 종속성으로 인하여 강요된 것에 불과한 것이지, 결코 진정한 자기결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진정한 자기결정의 내용을 고려하여 합리적인 해석을 도모하여야 한다. 곧 제1차적 자기결정과 제2차적 자기결정과의 괴리가능성은, 제2차적 자기결정에 대응하는 계약내용에 대한 사법적 통제를 요청한다. 이러한 통제는 사회질서위반에 의한 법적 효력의 부정, 신의칙 등에 근거한 의사해석의 형태로 행해질 수 있는데, 이러한 일반조항은 계약대등성의 결여라고 하는 근로계약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구체화되어야 한다.
나아가 근로자의 제1차적 자기결정이 중요한 기준으로 되어야 한다. 본래 계약내용의 통제는 일반적으로 타당한 강행법규나 사회질서의 요청에 의해 당사자의 합의를 규제한다고 하는 측면을 갖는 것이나, 그 이상의 종속성으로 인하여 그 발현이 방해되는 근로자의 제1차적 자기결정의 실현에 대하여 도움을 준다고 하는 관점을 충분히 고려하여야 한다. 이 경우 진정한 자기결정과 표시된 자기결정의 괴리정도는 대상사항의 성격이나 근로자의 지위, 직종 및 고용형태 등에 따라 상이할 것이 예상되므로, 재판관은 그러한 여러 사정을 신중이 고려하여, 구체적인 타당성의 실현이라고 하는 입장에서 합리적인 의사해석을 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곧 근로자가 종속적 입장에 있지 않고 자유롭게 판단하였다면 어 떤 선택을 했을까라고 하는 관점이 계약해석의 기본적 시각으로 되어야 한다. 물론 진정한 자기결정은 표면에 나타나지 않으므로 그것을 증명하기는 곤란하나, 당해 근로자와 같은 지위, 직종 및 고용형태하에 있는 평균적 근로자가 그러한 문제에 부닥친 경우에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라고 하는 관점에서 추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4집단적 자기결정의 의의
집단적 자기결정을 보장하기 위한 노동단체권의 인정은 근로자의 종속성으로 인하여 개인적 차원에서는 필연적으로 형해화되는 자기결정=계약자유를 집단적 차원에서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서 노동단체권은 소위 생존보장의 수단이 아니라 근로자의 자주적 활동 그 자체를 권리로 보장하는 것임을 주의해야 한다. 곧 그것은 집단적 자기결정권, 근로조건 결정과정에 대한 관여의 권리이다. 따라서 노동단체권은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전제로 한다. 자기결정권은 국가에 의해 방해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기본적으로 자유권이다.
그러나 자기결정이념의 의미내용은 단순히 국가로부터의 자유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노동단체권이 종속적 지위에 있는 근로자에게 참된 의미의 자기결정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서는 공동결정의 상대인 사용자의 의무를 전제로 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는 기본권의 사인간의 적용문제로 논의되는 것이지 사회권 또는 생존권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는 없는 차원의 문제이다.
Ⅳ근로자의 자기결정권과 근로조건법
근로조건법의 중심임무는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결정하고 그것을 형벌의 위협에 의해 당사자에게 강제하는 것이나, 그 최저기준의 위반이 근로계약 또는 근로자의 개별적 동의에 근거한 경우에는 물론 공동결정에 의한 경우에도 그것은 용인되지 않는다. 이는 국가가 근로자를 근로자 자신으로부터도 보호하고자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 그리고 평균적 근로자를 상정하여 획일적 기준을 설정해야 되는 법은 경우에 따라 평균적 근로자의 보호를 위하여 평균을 벗어난 근로자의 희망도 부정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근로조건법이 인간다운 생활의 보장을 위하여 그것에 위배되는 근로자의 자기결정권을 부정하는 것이므로, 노동법을 순수한 계약법으로 인정할 수 없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따라서 노동법의 자기결정이념은 형식적인 자기결정이 아니라 실질적인 자기결정을 그 내용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1근로조건법의 내용
1)노동보호법과 근로계약법의 구분
최근 우리 나라에서는 독일과 같이 근로계약법을 구상하는 견해가 나타나고 있다. 독일에서는 근로조건법이 법률로 규정된 최저기준 등의 요청을 주로 공법적 수단에 의해 실현하고자 하는 근로보호법(Arbeitsschutzrecht)과 사법적 강행성에 의해 그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근로계약법(Arbeitsvertragsrecht)으로 나누어지나, 한국에서는 그것이 대체로 공법적인 성격을 갖는 근로기준법에 함께 규정되어 그러한 구분이 그다지 명확하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독일의 근로조건법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독일에서는 우리 나라와 같이 근로기준법과 같은 근로보호법에서 근로계약이라는 개념을 두지 않고, 민법 제611조의 고용계약 중에서 자립적 노무급부를 제외한 비자립적 노무급부를 이론적으로 근로계약이라고 부른다. 후자는 소위 인적인 종속성을 그 특징으로 하는 것으로 그것이 노동법을 민법과 구별하여 종속적 노동에 관한 법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된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민법에서도 비자립적 노무급부만을 규정하고 근로기준법을 그것을 다시 근로계약으로 규정하므로 그런 독일식의 이해가 필요없다. 요컨대 한국법에서는 민법의 고용계약이나 근로기준법의 근로계약이나 모두 비자립적 노무급부를 내용으로 하는 것인 점에서는 같다. 구별되는 점은 전자는 후자에 비해 보다 자유롭다고 하는 점 뿐이다. 곧 후자는 근로기준법상의 여러 근로보호법에 의해 그 계약의 내용이 대폭 제한되고 있다.
이러한 근로계약의 체결은 독일법에서 헌법 제12조 1항의 직업선택의 자유에 근거한 기본권의 하나로 인식된다. 5) 이는 직업선택의 자유가 사용자에게는 기업활동의 자유이고, 근로자에게는 직장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자유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해는 우리 나라에서도 헌법 제15조의 해석으로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 나라에서도 근로계약의 체결은 기본권으로 보호된다. 나아가 우리 나라에서는 헌법 제32조 1항에 의해 근로의 권리가 보장되는데, 그 권리도 기본적으로 근로계약 체결의 자유를 포함하는 것이다. 곧 헌법 제15조와 제32조 1항에 따른 근로계약과 제32조 3항에 따른 근로조건의 법정이 근로조건법의 근거가 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도 헌법적 차원으로부터 근로계약법과 근로보호법이라는 구분은 가능하고 이는 근로기준법 등 근로조건법에서도 일응 구분되고 있다. 곧 근로기준법 제1장 총칙은 제17조의 근로계약의 정의규정을 위시하여 대체로 근로계약에 관련된 규정을 두고 있고, 제2장은 '근로계약'이라고 하고서 제22조부터 제41조까지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규정(정의 규정 등을 뺀)은 사법적인 것이 아니라 공법적인 것으로서 최저기준과 그 위반시의 처벌조항이 붙어 있다. 벌칙이 부과되지 않는 것은 제25조의 단시간근로자의 근로조건, 제26조의 근로조건 위반시의 즉시해제권, 제30조의 해고의 제한, 제31조의 경영상 이유에 의한 고용조정, 제37조의 임금채권 우선변제 등의 사법적 규정일뿐이다. 그외 사법적 규정은 제51조의 선택적 근로시간제, 제60조의 유급휴가 대체, 제66조의 미성년자 임금청구 뿐이다. 그러나 그것들 중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사법적인 성격을 갖는 것은 제30조, 제31조 및 제37조규정뿐이다.
또한 독일에서는 근로계약법에 속하는 연차유급휴가나 임금지급의무 또는 차별이 한국에서는 각각 제59조와 제42조에서 최저기준이 규정되고 벌칙이 부과되는 공법적 규정이다. 요컨대 벌칙이 부과되지 않는 사법적인 근로기준법 규정은 정의, 시효 규정, 적용제외 또는 계산특례 등과 같이 기술적인 것에 그치고 대부분의 규정은 공법적 규정이다.
근로보호법과 근로계약법을 구별하는 기준은 전자는 공법적으로 강제되나, 후자는 사법적으로, 곧 소송을 통하여 해결하고자 하는 근로자의 자기결정에 의해 비로소 실현된다고 하는 점이다. 그러나 그러한 실현은 적어도 한국의 경우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우므로 독일과 달리 대부분의 근로기준법 규정을 공법적으로 규제하려는 것은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근로감독행정체제의 불비로 인하여 역시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재판을 통하여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또한 공법적 규제는 죄형법정주의의 제약, 예컨대 유추적용의 금지 등에 의해 충분히 기능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근로조건에 대한 공법적 규제가 반드시 적정한 것이냐에 대해서는 재검토의 여지가 있다.
여기서 근로자의 생명이나 건강 및 최저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항, 예컨대 근로시간, 안전위생, 최저임금 등을 제외하고는 사법적 강행성을 통한 보호의 실현을 중시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는 현행 사법제도를 그대로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노동법원의 설치와 그것에 대한 노사참여를 전제로 한 구성의 개혁과 그 절차의 개선 등을 전제로 한 이야기이다.
한국법에 특유한 또 하나의 문제는 한국 근로조건법에는 독일의 경우와 달리 취업규칙이라고 하는 제도가 있다고 하는 점이다. 그것을 계약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그것을 계약이라고 보기에는 무리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근로조건법은 독일식의 근로계약법과 근로보호법(그러나 사실상 근로보호법이 중심이다), 그리고 한국 특유의 취업규칙법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2)근로보호법과 근로계약법의 관계
근로보호법에 의한 계약자유의 제한은 자기결정이념과 대항관계에 있는 것만은 아니고, 근로보호법은 근로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촉진하는 것에도 기여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강행법규는 사적 자치를 전개하기 위한 불가결한 기반이고, 사적 자치 이념과 저촉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점이 근로보호법에도 그대로 타당하다.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이 법률로 확실하게 규정되는 경우에만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용자와 안심하고 교섭하며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만약 근로보호법이 없다면 재판관은 사회적으로 공정한 결과를 얻기 위하여 근로계약 내용의 모두를 심사해야 하게 되나, 이는 노사간의 자기결정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국가법이 근로자보호의 관점에서 근로계약 당사자의 자기결정에 일정한 틀을 부여함에 의해 비로소 그 범위 안에서 근로조건 결정을 자기결정에 위임할 수 있게 된다. 국가법에 의한 일반적인 근로조건 규제의 틀이 정비되면 정비될수록 재판관에 의한 계약 내용 심사의 필요성은 줄어들고, 그만큼 근로자의 자기결정권이 더욱 잘 보장될 수 있다.
나아가 근로보호법은 근로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함에 직접 도움이 되는 규정도 포함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해고제한이다. 그 일차적 목적이 근로자의 고용보장에 있음은 물론이나, 그것은 근로계약의 실행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곧 근로자는 사용자에 의한 자의적 해고로부터 충분히 보호받아야 자기결정권에 근거한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근로계약상의 의무범위를 넘은 사용자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으며, 또 사용자에 의한 근로조건 인하의 제안을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로자에게 현실적인 자기결정권 행사의 가능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해고제한법은 대폭 개선되어야 한다. 나아가 근로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중요한 근로조건의 변경시에 근로자의 개별적 동의가 필요하다는 규정을 법률에 명기할 필요도 있다.
2근로조건에 대한 근로자의 자기결정권
1)근로조건에 대한 근로자 자기결정권의 의의
근로기준법 제3조는 '근로조건의 결정'이라고 하여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의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의 동등성이란 형식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차원까지 요구하는 것임은 당연한 해석이다.
그 규제대상은 근로기준법 제2조의 그것('근로관계당사자')과 달리 근로자와 사용자이고, 그 '근로조건'은 근로계약에 의한 것을 말한다. 따라서 근로기준법 제3조는 취업규칙이나 단체교섭에 의한 근로조건의 결정을 예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근로계약을 제외한 근로조건의 결정 근거 규범인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 및 강행법이 그 원칙의 적용을 받지 않고 있는 점에는 문제가 있다. 곧 취업규칙은 사용자의 일방적 의사에 의해 제정됨을 근로기준법이 용인하며, 단체협약은 노동조합과 사용자에 의해 그리고 근로기준법 등 강행법은 국가에 의해 제정된다. 특히 취업규칙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제정하는 것인 점에서 근로기준법 제3조와 모순이다. 또한 현실의 근로계약의 결정도 실제로 자유·평등의 이념에 충실하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근로기준법 제3조를 이유로 하여 어떤 법적 효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 규정은 근로계약의 법적 이념을 규정한 것으로 이해된다. 입법자는 근로계약을 근로관계의 기본으로 본 듯 하나 그것은 현실과 부합되는 것이 아니라 이념적으로 상정된 것에 불과하다.
2)근로조건법에 의한 자기결정의 부정원칙과 예외
근로조건법은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설정하고, 사용자에게 그 준수를 의무화하여 근로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법이다. 그것은 본래 계약 당사자가 자유롭게 결정해야 할 근로조건을 강행적으로 규율하여 사적 자치의 원칙(계약자유의 원칙)을 수정한다. 따라서 근로기준법 제4조 및 제22조 이하의 규정은 근로기준법의 기본정신과 모순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근로자의 자기결정권이란 근로자가 자신의 사적 사항에 관하여 자유롭게 결정하는 권리이다. 그것은 사적 자치(계약자유)의 전제조건이다. 따라서 근로조건법은 사적 자치의 원칙을 수정하여 사용자만이 아니라 근로자의 자기결정권도 부정한다. 예컨대 근로자가 자유의사로 1일 8시간(연소자의 경우 1일 7시간) 이상의 시간을 근로하고 싶다고 생각해도, 그 의사는 1일 8시간제(연소자의 경우 1일 7시간)로 정해진 근로기준법 제49조 및 제67조에 의해 부정된다. 그러나 근로조건법에서 자기결정권이 전면적으로 부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 근거가 바로 근로기준법 제3조이고, 동 제22조 이하의 근로계약 규정들이다.
근로기준법에는 근로자의 일정한 권리에 대하여 근로자의 발의=자기결정을 권리발생의 요건으로 하는 조항들이 있다. 예컨대 근로기준법 제34조 3항의 퇴직금의 중간정산, 제38조의 사용증명서, 제44조의 비상시지불, 제72조 2항의 임신중 여자근로자의 경이한 근로 전환, 제73조의 육아시간등을 근로자의 청구가 있는 경우에 인정하는 것들이다. 그러한 경우는 법상 명확하게 청구가 규정되나, 그렇지 않은 경우, 예컨대 제59조의 연차유급휴가의 경우 그 시기에 대해 근로자의 발의는 필요하다.
또한 근로시간 규제의 원칙에 대한 예외로서 근로자에 의한 자기결정권이 인정되는 경우가 있다. 곧 근로기준법 제51조의 선택적 근로시간제에서 시업 및 종업기각이 근로자의 결정에 맡겨지며, 동법 제56조 3항의 재량근로제에서 업무수행방법이 역시 근로자의 결정에 맡겨진 다.
그외 근로기준법 등에는 근로자의 동의를 요건으로 하여 강행적 규제를 완화하는 규정이 있다. 예컨대 근로기준법 제50조 2항에 의해 제49조의 1주 44시간제(연소자의 경우 1주 42시간)는 당사자의 합의에 의해 1주 12시간(연소자의 경우 1일 1시간, 1주 6시간)까지 연장될수 있다. 또한 근로기준법 제42조의 임금지급시의 통화 및 전액지급원칙도 단체협약에 의해 수정될 수 있듯이 집단적 자기결정에 의해 근로조건규제를 완화한다. 근로기준법상에는 그 정도의 규정 밖에 없으나 해석론상 근로자의 동의에 근거한 근로계약의 내용이 검토되고 있고 (예컨대 동의에 의한 임금의 은행 구좌대체) 앞으로 더욱 문제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근로조건법과 자기결정권의 문제는 앞으로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3근로조건법에 의한 자기결정 부정의 원칙
1)근로조건법에 의한 자기결정 부정의 원칙의 정당화
근로자가 단순히 보호의 객체로 파악되어 근로자의 의사가 중시되지 않는 경우 국가법에 의한 자기결정의 부정은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근로자를 자기결정의 주체로 파악하고자 하여 근로계약의 체결을 기본권의 행사로 이행하려는 경우, 그것은 당연한 것일 수 없고 그 정당화의 이유가 필요하다. 예컨대 독일의 경우 그것은 사회국가원리이고 일본의 경우 그것은 생존권 이념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그것이 헌법 제32조의 3항의 '인간 의 존엄성'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 이념만으로 문제가 해명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이념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에서 자기결정을 제약하는지가 따져져야 한다.
강행법규에 의한 계약자치의 제한은 노사의 힘이 상위하므로 근로계약의 내용이 근로자의 진의에 근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곧 계약자치의 제한은 근로자의 자기결정권 보장이 불충분하다는 점에 의해 정당화된다. 이는 근로자의 권리의식이 강하지 못하며, 노동조합등의 노동단체가 사용자에 대항하여 근로자의 이익을 충분히 옹호하지 못하여 근로자가 사용자의 제안에 쉽게 동의하는 한국에서 특히 강조되어야 하는 점이다.
그러나 예외적이기는 하나 근로자가 특별한 기능을 갖기 때문에 사용자와 대등한 입장에서 교섭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에 근로조건법에 의한 자기결정의 부정은 어떤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것은 근로자를 경솔한 판단으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고, 또한 그것이 근로자간의 경쟁을 불러일으켜 일반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효과적인 근로기준 감독은 사업장 단위에서 통일적·획일적으로 행해져야 한다는 기술적 필요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강행법규에 의한 자기결정의 부정은 모든 경우에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근로자의 참된 자기결정에 대해서는 국가법을 후퇴시켜 근로자의 다양한 요구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적절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근로자를 강력한 사용자에게 맡기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으므로 주의하여야 한다.
2)근로조건법에 의한 자기결정의 실질화
현실적으로 근로자는 사용자에게 종속되어 있으나, 법은 그것을 극복하여 실질적 대등(근로자의 자기결정)을 확보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강구한다. 단체협약의 보장과 취업규칙의 규제가 바로 그것이다. 그 어느 경우이든 근로자가 사용자와 대등한 입장에서 교섭했다면 어떤 내용의 권리 의무를 형성했을까라는 견지에서 합리적으로 해석해야 된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만으로는 노사간의 대등관계를 충분히 실현할 수 없으므로 근로조건법상의 최저기준이 대등관계의 실현을 목표로 하여 규정된다. 그것은 근로자의 자유의사를 부정하는 측면도 가지나, 한편 사용자의 자의적 결정을 배제하고 타당한 근로조건을 확보함에 의해 자기결정을 실질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예컨대 8시간 근로제는 근로자가 사용자와 대등한 입장에서 교섭했다면 최저한으로 그것을 요구할 수 있는 계약내용(근로조건)을 법정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근로자는 그 법규제를 배경으로 하여 개별적 및 집단적인 자기결정권을 추구한다고 하는 의미에서 근로조건법은 자기결정권을 실현하는 기반을 형성한다. 근로기준법 제3조는 이러한 법규제의 성격에 따라, 근로조건 대등결정의 원칙을 근로조건법의 기본이념으로 선언한 것이다. 그 외 근로조건의 기본 원칙도 사용자의 부당한 구속을 배제하고 근로자의 자기결정을 보장함을 목적으로 한다.
3)근로조건법의 불비
우리의 근로조건법은 그 내용과 수준에 있어서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예컨대 채용과 해고의 일반적 규제, 권리의무의 기본적 내용, 전직, 전출, 복무규율, 징계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도 두지 않고 있다. 또한 근로시간을 비롯한 근로조건의 수준도 국제기준이나 선진기준에 비하여 현저히 후진적이다. 특히 취업규칙의 제정 및 변경시에 근로자측의 관여를 의견청취에 한정하여 근로자의 자기결정권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근로조건규제의 탄력화가 국가와 사용자에 의해 강력하게 요구되고 있고, 국제적으로도 그것은 하나의 경향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근로자측은 반대하고 있으나, 무조건적인 반대가 능사는 아니다. 규제의 탄력화는 근로자에게 이익을 주는 경우도 있으며, 특히 이 경우 근로자의 동의를 요건으로 하여 허용할 필요가 있다.
4근로조건에 관한 자기결정 부정의 원칙의 예외
1)근로조건에 관한 자기결정 부정의 원칙의 예외에 대한 평가
앞서 본 자기결정 부정의 원칙의 예외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예외를 인정하는 경우에도 그 원칙의 정신에 입각하여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첫째 근로기준법의 원칙적 최저기준에서 벗어나는 근로자의 의사가 그 진의에 근거해야 한다는 점이 불가결한 전제이다. 여기서 '진의'란 단지 민법상의 착오나 사기 또는 강박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근로자의 자기결정이 그것에 이르지 않는 압력에 의해서도 왜곡되지 않았다는 점, 곧 문자 그대로 근로자의 '본심'에 의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근로기준감독관은 감독시에 특히 이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근로감독관은 탄력적 근로시간제나 재량근로시간제와 같이 근로자의 자기결정을 전제로 하는 제도가 본래의 취지에 맞게 운용되고 있는가, 거꾸로 그것이 사실상 사용자가 멋대로 결정하는 최악의 근로시간제로 타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엄격하게 감독해야 한다.
또한 그 제도에 대한 재검토가 이러한 관점에서 필요하다. 근로기준법 제51조의 경우 일정 기간의 총근로시간이 규정되므로 나날의 시업 및 종업시각에 관한 근로자의 자기결정이 보장되는 한, 과중노동의 우려는 없다고 볼 여지도 있으나, 근로기준법 제56조 3항의 경우 그러한 규제가 없어서 총근로시간까지 근로자의 결정에 위임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사실상 근로자의 자기결정권이 무시되고 사용자의 지시에 따르는 경우, 근로자는 '강요된 자기결정'에 의해 장시간근로에 종사하면서 그것에 대응된 시간외 수당을 지급받지 못하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특수한 직종에 한정되어야 하고, 그 유효성에 대한 민사소송에서는 근로자의 진의에 의한 동의를 사용자가 증명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둘째, 근로자를 근로자 자신의 경솔한 판단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근로자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는 근로조건에 대하여, 또는 그 범위에 정하여 예외적인 자기결정을 인정해야 한다. 나아가 예외 허용의 요건으로서 그것을 제든지 철회할 수 있는 자유가 인정되어야 한다. 곧 근로자의 동의는 원칙적 금지에 하는 근무를 개시하는 요건일뿐만 아니라, 그것을 계속하는 요건이기도 하다고 이해하여야 한다.
근로자의 동의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곧 그것이 참으로 근로자의 의사에 의한 동의인가를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사용자와의 종속관계로 인하여 압력을 받기 쉽고, 따라서 탈법의 위험성이 항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근로자의 동의만을 규제해제의 요건으로 해서는 안되고, 근로조건법 자체에 규제해제의 요건(예컨대 행정관청의 허가 등)을 달아 자기결정의 실질적 보장을 도모해야 한다. 셋째, 자기결정에 의한 예외의 허용이 근로자간의 경쟁을 불러일으켜 근로기준법의 원칙기준을 하회하는 조건으로 근로하는 것이 곤란한 근로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근로자의 다양성에 따라 조정이 필요한 경우에는 위 세가지 요건을 충족하는 한 법률이나 판례가 근로자보호를 위한 원칙을 정립함에 있어서 근로자의 자기결정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근로조건법은 경직된 원칙에 구애받지 않고 실정에 따라 유연성을 내포하는 경우에 비로소 그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판단은 위 세가지 요건에 비추어 신중하여야 한다.
2)임의규정과의 구별
또한 개인의 동의에 근거하여 원칙적 금지를 해제하는 규정과 임의규정은 명확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규제완화의 관점에서 임의규정화하자는 주장도 있으나 이는 원칙을 해체하는 것이다.
Ⅴ자기결정과 획일적 결정
위에서 본 독일 등을 비롯한 서양에서의 자기결정의 문제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가, 한국과 일본에서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취업규칙, 그리고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기업 차원에서 획일적으로 결정하는 단체협약의 문제이다
1취업규칙의 문제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근로조건을 통일적이고 획일적으로 결정하는 취업규칙은 그 정도에 따라 근로자 개개인의 구체적인 자기결정을 배제할 수 있다. 취업규칙은 사회규범으로서의 성질을 가질 뿐만이 아니라 노사간에 그것에 따른다고 하는 사실인 관습이 성립한다는 보는 입장에서 그 법적 규범성을 인정함이 한국의 다수설이다. 이러한 견해에 의하면 근로자는 취업규칙에 동의하기는 커녕 그 존재와 내용을 알지 못하여도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게 되어 자기결정의 이념과는 큰 괴리를 보이게 된다. 실제로 노동현장에서는 사용자가 취업하는 근로자에게 취업규칙을 제시하지도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근로계약 체결시의 취업규칙상의 근로조건 등의 명시를 규정한 근로기준법 제24조에 명백히 위배되나 그 규정은 현실적으로 거의 무시되고 있다.
취업규칙에는 복무규율과 같이 획일적인 기준을 본질적으로 요구하는 부분도 있으나, 또한 직무의 내용이나 장소와 같이 개별 근로자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사항도 있다. 따라서 그런 개별사항에 대한 사용자의 포괄적인 명령권을 규정한 취업규칙의 효력을 무조건 인정할 수 없다. 나아가 근로자 사이에서도 근로조건상의 상위가 있을수 있다. 그것에 합리적 근거가 있는 이상 그것은 평등취급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2단체협약의 문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33조에 의해 단체협약의 규범적 효력이 인정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노동조합의 단결과 통제력 및 집단적 규제력의 존중에 의해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통일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것으로 설명됨이 보통이다. 그리고 단체협약에 의한 근로조건의 불이익변경이 긍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설령 단체협약에 의한다고 하더라도 취업규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개별 근로자에게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까지 획일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고, 근로자 개인의 자기결정권이 존중되어야 한다.
3근로조건법과 집단적 자기결정
집단적 자기결정은 단체교섭에 의한 단체협약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으나, 근로기준법상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 과반수의 찬성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근로기준법 제97조 등). 그 어느 경우에나 개별 근로자의 참가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 최저한의 절차로서 교섭담당자의 민주적 선거절차와 근로자에 의한 통제의 가능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행법에는 그러한 제도적 절차가 규정되지 않아 문제가 된다.
따라서 입법론적으로 취업규칙의 작성시에는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과반수의 대표자와의 동의방식이 채택되어야 한다. 그것이 아직도 시기상조라고 한다면 권리와 의무의 내용이 명확하게 법정되어야 한다. 예컨대 전직시에 근로자가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를 인정하고, 나아가 근로자의 동의를 요구하며, 해고시의 정당사유를 규정하는 것 등이다.
Ⅵ맺음말
근로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한다는 이념 하에서 사용자의 의사만이 아니라 근로자의 의사에 반해서도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실현하고자 하는 근로조건법은 노동법 중에서도 자기결정의 이념과 가장 동떨어진 영역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는 경우 근로조건법상의 규제를 완화하거나 그 탄력화를 주장하는 견해가 생겨난다. 그러나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는 것이 필연적으로 규제완화의 요구와 직결되는 것이 아님을 주의하여야 한다.
우리는 근로조건법의 여러 조항을 자기결정권과 관련하여 재검토할 필요가 있음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근로조건법에 의한 자기결정에 대한 과도한 제한을 검증하는 것만이어서는 안 된다. 도리어 그것은 현행법에 의한 규제의 의의를 명확하게 밝히고, 그것에 더욱 강고한 기초를 부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곧 자기결정이념과 근로자보호이념이라고 하는 두 개의 축을 염두에 두면서 현행법을 추상적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현실 노사관계 하에서 당해 규정의 기능을 신중하게 검토하여야 한다. 그러한 검토에 의하면 자기결정을 위한 규제완화 보다도 도리어 자기결정을 후퇴시킨 규제 강화가 요구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근로자의 자기결정을 보장하기 위하여 해고제한의 강화, 개별적 동의없는 전직 및 시간외근로의 금지, 권리행사를 이유로 하는 불이익취급의 금지 등과 같은 규제가 필요하다.
--------------------------------------------------------------------------------
각 주
(1) Wolfganf Daubler, , Frankfurt/Main, 1976, S. 161.
(2) Daubler, Mitbestimmung 180.
(3) 예컨대 진쯔하이머, 최근의 예로는 Belling, , 1984.
(4) 예컨대 Seiter, , 1975.
(5) 연방헌법법원 1983년 10월 19일 판결, AP Nr. 2 zu § 1 BetrAVG Unterstuetzungskassen.
'퍼온~사유..! > 논문 자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ㅍ] 計算機를 活用하여 問題 解決 指導를 위한 瓷料 開發에 대한 硏究 (0) | 2008.05.12 |
---|---|
[ㅍ] 문장의 정보구조와 대명사의 지시 (0) | 2008.05.12 |
[ㅍ] 의사 소통 중심 교실에서의 효과적인 듣기 지도 방안 (0) | 2008.05.12 |
[ㅍ] GATT에서 WTO로의 분쟁해결제도의 변화 (2) | 2008.05.12 |
[ㅍ] 선형 행위체계에서 사회구조와 제도 분석 (0) | 2008.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