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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류 정석의 특성에 관한 연구

온울에 2008. 5. 12. 15:53

목 차

Ⅰ. 서 론
Ⅱ. 한국류 정석의 발생 과정
Ⅲ. 한국류 정석의 특성
1. 實戰 중심의 패러다임
2. 形態觀念의 초월
3. 格式의 탈피
4. 布石的 맥락 중시
5. 기존정석의 再解釋
6. 최대 效果의 추구
Ⅳ.결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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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자명 명지대학교 예체능연구소 
학술지명 藝體能論集 
ISSN  
권 11 
호  
출판일 2000.  

 

 

 

한국류 정석의 특성에 관한 연구


Study on the Charateristic of Korean-Style Jeongsuks


정수현
(Jeong, Soo-Hyun)
5-717-0001-10

영문요약
"Korean-style Jeongsuk" indicates the corner-fight patterns which appeared around the end of the twentieth century along with the Korean professional Baduk players’ outstanding achievements in the international Baduk contests. It is thought to be different from exisisting josekis(Japanese jeongsuks) In its feature as follows:

1) It is based on the real game paradigm, not theoretical paradigm.

2) It tends to transcend the idea of ‘form’ of stones, which has long been related to the thoughts that a nice shape can lead to a favorable result.

3) It sometimes avoids formality as a fighting pattern because of the flexible viewpoint of a jeongsuk.

4) Unlike the concept of a jeongsuk that means an equal division in part, it often has a relatinship with the opening as a whole.

5) It was made by re-examining the exisisting jeongsuks with a critical viewpoint, while the ordinary new patterns are derived from creative moves.

6) It pursues the most effective result in every move consisting of a jeongsuk.

These characteristics reveal the strong point of Korean-style baduk, which seek for a new recognition from the practical point of view on the basis of a real game, and thus finds a new value of moves ignored in the past time due to theoretical prejud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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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 론
중국에서 고안되어 한국과 일본에 보급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바둑은 18세기 무렵에 일본을 중심으로 技術的 理論의 기틀을 갖추며 크게 발전하였다. 일본에서는 '棋院四家'라는 바둑계 4대문파가 '名人基所'라는 지위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시기가 있었는데(田村龍騎兵, 1994), 이들의 경쟁적 연구에 힘입어 합리적인 바둑이론이 확립되었다. 현대에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는 바둑의 기술적 이론은 17세기에서 20세기까지의 기간에 집대성된 일본의 바둑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특히 바둑수의 定型化된 틀인 定石은 거의 전부가 일본바둑계를 무대로 創案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석과 그 변화를 다룬 「정석대사전」 (聆木爲次郞, 1980) 다섯 권에는 7000여 개의 接戰形이 들어 있는데 이 모든 형들은 일본 바둑을 무대로 생성된 정석과 그 派生形들이다. 한국에 현대적인 바둑이론을 보급하는 데 기여한 조남철 9단은「實戰定石精解」 (1995)라는 저서에서 수백 종류의 정석형을 다루고 있는데, 이 역시 일본에서 두어진 實戰對局들과 그 곳에서 연구된 정석을 소재로 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흔히 '定石'이라고 하면 일본 바둑계를 배경으로 그 곳에서 활동하는 專門棋士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의미했다고 해도 틀림이 없다.

定石 生成에 관한 일본의 주도적 역활은 20세기 말경에 '韓國流定石'이라는 것이 출현하면서 변화를 보이게 되었다. 1900년대에 성행한 국제 바둑시합에서 한국 전문기사들이 拔群의 성적을 내기 시작하면서 그들이 즐겨 쓰는 새로운 形들이 流行 하게 되었고. 이런 형들이 몇 가지 쌓이게 되자 바둑계에서는 '韓國流定石'이라는 신조어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일본의 전통적 바둑 잡지인 「棋道」 (일본기원, 1998)에서는 '유행정석에 강해지는 신강좌-韓國의 常識'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생긴 新形에 대하여 연재 강좌를 하였고, 한국의 월간 「바둑」 지(한국기원, 2000)에서도 '이것이 韓國形'이라는 정석 강좌를 다루고 있다. 1900년대 중반 무렵부터 한국기사들이 연구하고 애용하는 정석들이 '定石市場'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는 점에서, 20세기 말은 정석 창조의 주역이 일본바둑계에서 한국바둑계로 넘어온 시기라고 할 수 있다(정수현, 1999).

그런데 바둑이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바둑기술의 영역에서 어떤 특정 국가의 類型으로 분류된다는 것은 매우 특수한 현상이다. 바둑기술의 분야에서는 일본식 행마법, 중국식 중반전술, 한국식 끝내기 등과 같은 용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中國式布石’이라는 것이 있긴하지만, 바둑의 原理가 지역을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타당한 이론에 의해 설명되고 있음에 비추어 볼 패 바둑의 기법이 어떤 특정 지역의 유형으로 지칭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류 정석'이라는 말이 인구에 膾炙되는 것은 이 技法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일본식 바둑과는 상이한 특징을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서. 한국류 정석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종래의 정석과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어떤 異質的인 요소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만일 한국류 정석이 기존의 정석과 거의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다면 굳이 '한국류'라는 이름으로 분류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류 정석은 기존의 일본 정석과 어떤 차이점을 갖고 있는가? 월간 「바둑」 지의 '이것이 한국형'(김승준, 2000)에서는 "세계 최강 한국바둑의 원동력이 된 한국형 新手의 特長은 일정한 틀이나 惰性에 얽매이지 않고 實戰的인 수법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설명에 의하면 한국류 정석은 固定觀念 탈피와 實戰的이라는 두 가지로 특징지어진다. 그러나 이런 설명만으로 한국류 정석의 특성을 나타내기엔 미흡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것이 틀과 타성에서 탈피한 것인지, 실전적인 수법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구체적으로 摘示하고 있지 않아 추상적인 묘사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실정에서 본 연구에서는 '한국류정석'이라고 일컬어지는 정석이 종래의 정석에 비해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알아 보고자 한다. 한국류 정석의 出現 배경을 살펴보고, 이 정석을 기존의 정석과 비교하여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는가를 분석해 보려고 한다.

Ⅱ. 한국류 정석의 발생 과정
바둑에서 '한국류 정석'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韓國流'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곳은 일본 바둑계인데, 圍碁年鑑(일본기원, 1998)의 바둑해설란에는 '한국류의 두는 법'(p73)이라든가, 흑39는 '한국에서 流行하는 수'와 같은 표현을 쓰고 있다. 맨 처음 한국류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다음의 형이다.

<1도> 1994년에 중국의 네웨이핑 9단과 한국의 조훈현 9단간에 두어진 바둑이다(바둑년감, 1995). 좌하귀 흑7, 9의 수에 대하여 백10으로 흑돌의 옆구리에 붙인 수가 당시 한국기사들에 의해 자주 시도되었고, 흑11에서 19까지의 새로운 모양이 하나의 정석으로 확립되었다. 이 정석을 두고 일본에서는 '한국류 정석'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 모양에서 옆구리에 붙이는 수는 1993년 경에 한국 기사들에 의해 자주 시도되었는데(바둑년감, 1994), 다른 나라 기사들이 사용하지 않는 수를 한국 기사들이 둔다는 점에서 한국류로 인식되었다고 하겠다.

이 정석을 필두로 해서 이후 다음과 같은 新型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2도> 공식기전에서 행해진 이창호9단과 유창혁9단의 實戰譜(바둑년감,1995)이다. 좌하귀에서 흑17로 나가 전투로 돌입하는 이 형은 백6의 돌이 절호의 공격지점에 있다는 이유로 고려되지 않다가 1992년 일본의 가토 마사오 9단과 다케미야 마사키 9단이 새롭게 시도하었는데(圍碁年鑑, 1993), 그 후 한국 전문기사들에 의해 빈번하게 시도되어 여러 異形을 낳았다.

한국 청소년 기사들의 연구모임인 소소회는 이 형에 관한 연구를 하여 이 전투형을 몇 개의 정석으로 정립하였다(이창호, 1995),


  <1도>

 

  < 2도>


<3도> 서봉수 9단?조훈현 9단의 실전보(바둑년감, 1993)인데, 백8의 붙임수에 곧바로 좌상귀의 3 삼에 들어가 11로 넘는 수법이 등장했다. 붙임수에 젖히지 않고 이렇게 넘어가는 것은 바둑의 상식에 어긋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흑29까지의 새로운 형을 만들어 쌍방이 둘 만한 정석으로 규정지었다. 이 형태에서 몇 가지 異形이 도출되었고, 일본 기사의 바둑에서는 흑17을 두지 않는 모양이 채택되었다(圍碁年鑑, 1995).


  <3도>

 

  <4도>


<4도> 화점의 두 칸 높은 협공에서 시도된 '젖힘 없는 3·삼침입'이 한칸협공에서도 행해졌다. 이 바둑은 이창호 9단·서봉수 9단의 실전보인데(바둑년감, 1995), 백12의 붙임에 흑13·15로 넘는 수법이 앞그림과 동일하다. 백10의 위치로 인해 이 형은 두 칸 높은 협공과는 상이한 정석들을 출현시켰다.

<5도> 조훈현9단 이창호9단의 實戰布石(바둑년감, 1996)인데 백6의 협공에 흑7로 한 칸 뛰고 9에 씌워서 17까지 진행하는 형이 신형으로 나타났다. 백16까지의 형은 이미 존재하는 정석(聆木爲次郞, 1980)이나, 다음 흑17로 씌우고 백18로 우변에 착수할 때 흑19로 잇는 이 진행은 새로운 정석으로 인식되었다.


  <5도>

 

  <6도>


<6도> 조훈현9단·이창호9단의 實戰譜(바둑년감, 1998). 백12의 수에 흑13으로 건너붙여 귀를 정비하는 이 수단은 백을 굳혀주는 惡手의 의미가 있으나, 대신 하변 黑陳을 효과적으로 강화 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 정석은 이후 일본 기사의 실전에서도 두어졌다(圍碁年鑑, 1999).

<7도> 국제기전에서 이창호 9단과 마 샤오춘 9단이 둔 바둑(바둑년감, 1996)의 초반 장면이다. 흑7의 밀어붙이기로부터 복잡한 接戰이 벌어지는데. 이 형은 백22때 종래에는 흑29로 두던것을 23으로 움직여 버틴 것이 특징. 대단히 난해한 이 형은 이후 다른 대국에서도 종종 시도되어 다양한 변화를 낳았다.

E8도> 화점의 날일자 굳힘에 백1로 들어간 데 대하여 흑2로 두고 이하 백9까지 되는 형은 한국에서 창안된 신정석이다. 이 정석은 일본 기사들 사이예서도 사용되어 1998년 명인전 리그에서 린 하이펑 9 ·요다 노리모토 9단전에서도 나타났는데. 이 그림이 두 기사의 실전보이다(圍碁年鑑. 1998).


  <7도>

 

  <8도>


이 밖에도 한국류 정석으로 분류되는 형과 거기서 派生되는 형은 상당히 많다. 수십 종에 달하는 한국류 정석을 여기에 모두 열거할 수는 없으므로 본 연구에서는 위에 제시한 8가지 정석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Ⅲ. 한국류 정석의 특성
韓國流로 분류되는 정석들은 몇 가지 점에서 종래의 정석과 異質的인 성격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이질적인 요소로 인해 한국류 정석에 대하여 외국 기사, 특히 일본의 기사들은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정수현. 1999). 한국류 정석을 다룬 강좌에서 오야 코이치 8단(1998)은 한국류 정석을 소개하며 "귀를 지키는 것도 아니고 사이를 째는 맛도 남아 어중간한수로 보인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결과는 흑이 나쁘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이 언급은 한국류 정석이 기존의 바둑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특이한 점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기존 정석과 비하여 한국류 정석이 갖는 이질적인 특성을 다음과 같이 抽出해 보았다.

1. 實戰 중심의 패러다임
한국류 정석은 정석의 추에 대한 사고에서 바둑의 원리에 관한 이론을 중시하기보다는 實戰大局에서의 效用性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경향이 짙다. 다시 말해서, 실전적 패러다임에 의해 정석을 구성하는 바둑수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실전적 패러다임'이라는 것은 바둑수에 대한 선악판단의 근거를 실전에의 適合性이라는 면에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대조적인 개념은 '理論的 패러다임'인데 이는 바둑수에 관한 이론의 관점에서 수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을 가리킨다. 종래에는 바둑수의 판단 근거로 이론적 패러다임에 주로 의존해 왔으며, 특히 바둑이론을 체계화한 일본바둑에서 그런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한국바둑에서는 전반적으로 이론보다는 실전적 관점에서 수를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고, 이런 경향이 한국류 정석의 기저를 이루게 된 것이 다.


  <9도>

 

  <10도>


<9도> 예를 들어, 이 모양에서 백1에 대한 흑2는 바둑의 원리면에서 보면 생각하기 어려운 수이다. 백a로 돌파하는 수를 남겨 주변의 돌과 연관된 형태를 이루기가 없기 때문이다. 기존의 정석은 좌하귀의 흑2처럼 백1을 봉쇄하면서 세력을 쌓는 등으로 쌍방이 무난하게 妥協하는 유형으로 되어 있다. 종래의 이론적 패러다임 하에서는 우상귀의 흑2와 같이 상대에게 돌파 수단을 남기면서 對應한다는 사고방식을 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한국기사들은 백a로 돌파하면 흑b에 두어 백돌을 未生馬로 공격할 수 있다는 사고를 하였고, 이는 실전적 사고방식에서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10도> 우상귀의 흑2에 대해 백의 입장에서도 백3 다음 5라는 묘한 수로 대응하게 된다. 과거의 정석에서 이처럼 스스로 움츠러드는 형태를 취하며 귀살이를 하는 경우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데, 이 경우 백5로 7에 두면 흑5을 당해 약간 불리하다. 또한 흑6도 실전적 패러다임에서 着手가 가능한 수로서, 이론적 패러다임에서라면 좌하귀의 흑2 한칸뜀을 생각할 것이다. 돌의 능률이라는 이론적 측면에서 볼 때 흑2의 한칸뜀이 우상귀 흑6의 뻗음보다는 효율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 한칸뜀은 백5로 응수하여 장차 백a에 껴붙이는 뒷맛을 노리게 되므로 우상귀의 모양보다 결코 유리하지 않다.

우상귀의 한국류 정석은 이론적 관점에서 보면 쉽사리 두기 어려운 흑2, 백5, 흑6과 같은 실전적인 수를 도입하여 정석을 보다 강력하고 박력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이런 면에서 오야 코이치(1998)는 "왜 흑2와 같은 發想이 떠오를까? 거기에서 역시 한국류의 매운 맛, 엄한 맛이 들어 있습니다."라고 표현한다.

이 예에서처럼 한국류 정석은 실전적 패러다임에 입각해 수를 새롭게 바라보았다는 특징이있다.

2. 形態觀念의 초월
바둑기술에 관한 종래의 관념은 "모양이 좋아야 결과도 좋다"는 思想을 담고 있다. 이 사상은 모양이 나쁘면 대체로 돌의 能率이 떨어지고 뒷탈이 나기 쉽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일본에서 공부하고 귀국하여 해방 후 현대 한국바둑 발전에 크게 공헌한 조남철9단은 「바둑개론」 (1992)에서 모양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기존의 정석들은 기본적으로 이 사상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데, 한국류정석은 이러한 사고방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11도>

 

  <12도>


<11도> 이것은 한국에서 여러 번 시도된 끝에 상당히 많은 變種을 탄생시켰던 전투정석이다. 이 정석에서 흑14, 백19의 빈삼각은 行馬法에서 禁忌視하는 수이며, 백21의 빈 호구도 돌의 모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두기 어려운 수이다. 또한 흑22에 대한 백23의 마늘모 행마도 모양의 관점에서 보면 바람직하지 않은 행마임이 분명하다.

이처럼 모양상으로 달갑지 않은 수를 자유롭게 두어 새로운 정석으로 이끈 것이 한국류 정석의 한 특색이다. 형태관념을 초월한 한국류의 이러한 경향은 "모양이 나쁘더라도 실질직으로 有用하다면 당연히 수로서 성립한다. "라는 현실주의적 관점을 반영한다. 이 역시 앞서 말한 실전적 패러다임과 궤를 같이 한다.

<12도> 여기에 나온 상하의 두 형태는 기존의 정석인데, 이것과 11도의 한국류 정석을 비교해 보자. 두 정석형 모두 최대한 모양을 중시하면서 서로가 利益을 나눠 갖는 양식을 취하고 있다. 11도의 정석에서 보는 것과 같은 형태상의 逸脫을 찾아보기 힘들다. 기존의 정석은 거의 대부분이 이처럼 모양상으로 瑕疵가 없는 수들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상을 밑바탕에 깔고 있으나, 한국류 정석에서는 이러한 형태관념의 초월이 흔하게 나타난다.

3. 格式의 탈피
한국류 정석은 모양이나 이론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着手를 추구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정석으로서의 격식에서 벗어나는 특징이 있다. 정석은 흔히 '흑백 쌍방이 모범적인 착수를 하여 쌍방 불만없게 매듭지어진 형'으로 정의되는데(정수현,1993). 거의 대부분의 정석은 서로간에 적당한 이익을 나눠 갖으며 타협하는 일종의 격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류 정석에서는 이러한 격식이 파괴되는 경향을 보인다.


  <13도>

 

  <14도>


<13도> 한국에서 창안된 괴상한 모양의 정석(바둑년감,1994)이다. 이 형은 거대한 세력을 형성한 백에 비하여 변의 저위를 긴 흑의 모양이 비참해 보이기 때문에 과연 정석으로서의 자격을 부여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모양이다. 그러나 흑은 13과 35로 큰 곳을 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상변에서의 불리함을 堪耐할 수 있다(이창호,1995).

이 정석을 다음의 형과 비교해 보자.

<14도> 백1의 두 칸 높은 협공에 흑3으로 3·삼에 들어간 이 정석은 흑이 實利를 취하고 백에게 勢力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13도와 유사하다. 이 정석은 백이 얻은 세력이 좌변의 돌과 호응하여 백도 불만이 없는 것으로 이해된다. 백이 이 정석을 채택하려면 이 세력의 가치를 제대로 활용시켜 줄 주변의 配石이 필요하다는 것이 기본 상식이다. 이런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이 정석은 격에 어긋나는 것으로 인식된다.

13도의 형에서는 이와 같은 정석으로서의 격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변으로 활용하기 어려운 지나치게 거대한 백의 세력과 비참하리만큼 低位를 긴 흑의 실리가 보는 이에게 기괴한 느낌마저 갖게 한다. 이처럼 정석의 격식에서 탈피하고 있는 것이 한국류 정석이 갖고 있는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이다.

4. 布石的 맥락 중시
기존의 정석은 '부분적으로 互角'이라는 성격을 강하게 가졌고, 정석을 고려할 때 일차적으로 는 그 부분에 국한된 接戰으로서의 성격을 가졌다. 그러나 몇몇 한국류 정석은 정석 자체가 줄 全體布石과의 연관성 하에서 성립되는 경향을 보인다.

<15도> 흑1에서 백12까지 되는 형은 예전에 하나의 정석으로 존재했었다. 그러나 흑이 다소 불리하다는 설이 지배적이었다(조남철, 1995). 1995년에 조훈현 9단은 이 형에서 즉시 흑13에 두는 수를 시도하여 새로운 정석으로 이끌었는데. 부분적으로 불리하다는 이 형이 새롭게 부각된 이유는 전체적 포석이라는 관점에서는 불리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다음 흑세력을 牽制하기 위해 우변에 백14로 둘 때 흑15로 이어 a와 b의 공격을 맞본다는 것이 흑의 戰略이다.

부분적으로는 결코 유리하지 않으나 전체적 포석이라는 맥락에서는 채택할 수 있다는 성격을 띤 이 정석은 확실히 기존의 정석과는 색다른 특색을 보인다. 물론 정석은 주변상황에 어울리지 않으면 좋지 않다는 것이 기본 상식으로 되어 있으나, 이 정석처럼 정석의 형성 자체가 전체적 맥락과 관련을 맺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15도>

 

  <16도>


<16도> 동일한 狀況에서 전개되는 기존의 정석이다. 흑1에서 11까지 되는 이 정석은 부분적으로 利害得失이 비슷하다는 측면에서 정석으로 성립되며. 특별히 정석의 성립 여부가 전체적 포석과 관련을 맺고 있지는 않다 백12에서 16까지의 정석도 전체적 맥락이라는 차원에서 정석의 성립을 따지지 않는다.

이 두 기존정석과 비교해 볼 때 15도의 형은 정석의 영역을 포석적 상황과 連繫시킴으로써 정석의 개념에 革命을 가져 왔다고 볼 수 있다. 다른 한국류 정석이 모두 이와 같은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몇몇 한국류 정석에서 이러한 포석적 맥락이라는 요소의 쫀ff 현상을 엿보인다.

5. 기존정석의 再解釋
한국류 정석은 완전히 새로운 수로서 創案된 것이 아니라 종래의 정석을 재해석하여 과거에 무시되었던 점을 파고듦으로써 새로운 형태로 이끌었다는 특징이 있다. 과거의 정석에서 미처 생각지 못했거나,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수를 도입하여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미 정석에 관해서는 「정석대사전」 5권이 나와 있을 정도로 귀의 각 부분에 관해 전반적인 연구가 이루어져 있는 상태여서 순수하게 새로운 형을 창안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며, 신정석이라고 하더라도 기존의 형에서 약간씩 다른 형태를 취하며 새롭게 출현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종래의 '新手' 혹은 '新型'이라는 것은 과거에 보지 못 했던 수를 시도하여 어떤 형을 도출해낸 것을 의미했던 데 비하여, 한국류 정석은 대체로 과거에 있었던 형의 의미를 다시 해석하여 새로운 정석을 도출해 냈다는 차이점이 있다.


  <17도>

 

  <18도>


<17도> 이 바둑은 일본 명인전 挑戰棋 후지사와 히데유키·린 하이펑의 실전인데. 흑17에 끊은 수는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수이다(石田芳夫, 1976). 후지사와 9단은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수를 제도하여 신형을 창조해 낸 것이다 대부분의 新型定石이란 이와 같은 신수로부터 발생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국류 정석은 '신수'라고 부르기 어려운 수에서 신형을 탄생시킨 것이 주류를 이룬다. <18도> 우상귀의 밀어붙이기 정석에서 백19로 움직이는 수는 1990년대 초반까지 전문기사의 公式對局에 거의 등장하지 않다가 한국에서 새롭게 照明되었다. 이 수는 원래 정석에 있었던 수로서 정석대사전(鈴木爲次郞, 1980)에는 좌하귀의 백1로 몰고 3에 잇는 수로부터 도출된 백7까지의 형이 수록되어 있으나, 그 외의 다른 변화는 다루지 않고 있다. 1990년대 중엽 한국기사들은 이 형에서 우상귀의 백27로 막는 强靭한 수를 사용하여 새로운 형을 만들어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신정석은 백27이라는 신수의 발견에 의해 신정석의 대열에 들었다고 볼 수 있지만, 백19라는 수를 신정석의 출발로 본다면 신수에 의해 창안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정석대사전에 규정된 좌하귀의 형에 의문을 품고 이 정석을 재검토함으로써 신정석을 유도해 내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한 것이다.

한국류 정석이 대체로 기존정석의 재검토 내지 재해석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다른 정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6. 최대 效果의 추구
한국류 정석은 주어진 장면에서 최대의 효과를 추구하려는 것을 생명으로 삼는다. 가장 효과 있는 수를 찾으려고 하다 보니 이론과 모양을 무시하고 심지어는 정석의 개념까지 뛰어넘는 현상이 나타난다. 최대 효과를 추구하는 한국류 정석의 특성은 자연히 기존의 정석보다 辛辣하고 강렬한 느낌을 갖게 한다

(19도) 우상귀 백1 · 3의 수에 흑4로 붙이는 한국류는 양쪽을 효과적으로 두면서 백에게는 많은 이득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흑14까지 되는 정석은 백이 약간의 두터움을 얻고 안정한 데 비하여 흑은 양쪽을 처리하여 能率的인 모습이다. 이 정석을 좌하쪽의 정석과 비교해 보면, 좌하귀의 기존 정석이 흑백간에 이익을 적당히 나눠 갖은 데 비해 우상귀는 흑이 실리상 유리한 것으로 해석된다.

<20도> 한국 기사들이 여러 차례 시도하여 상당히 많은 異形을 출현시켰던 모양이다 흑1에 어깨짚고 흑3에 씌운 것이 최대의 능률을 추구한 수로서. 백4로 둔다면 흑5로 컨너붙여 9까지 되는 진행이 예상되는데, 흑1과 백2의 교환이 흑의 활용으로 되어 있다. 흑3을 먼저 하여 백8까지 된 모양이라면 흑1과 백2의 선수 교환은 불가능한 곳일 것이나, 이것을 흑1에 먼저 두어 결과적으로 동일한 모양을 만들려고 유도한 것이다.


  <19도>

 

  <20도>


이 두 예에서 우리는 한국류 정석이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수를 찾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에서 오야 코이치 8단이 한국류를 "매운 맛, 엄한 맛"이라고 표현한것은 한국류 정석이 최대 효과를 추구하여 예전의 정석보다 훨씬 강렬한 특성을 띠게 된 것을 지적한 것이라고 하겠다.

Ⅳ.결 론
20세기 후반에 出現한 '韓國流 定石'은 바둑기술의 영역에서 새로운 성격을띠며 현대바둑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석이라는 것이 국가나 지역을 떠나 보편적인 바둑枝法 내지 지식으로서 기능하므로 정석에 어떤 국가의 명칭을 넣는다는 것은 다소 부적 절함에도 불구하고 '한국류'라는 이름이 널리 퍼져 있는 것은 일본에서 정립된 종래의 정석과는 異質的인 요소가 있음을 반영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 연구에서는 한국류 정석이 어떤 것이며 기존의 정석과는 어떤 차이점을 갖고 있는지를 분석해 보았다.

한국류 정석은 1994년 경부터 한국기사들에 의해 연구되고 실전대국에서 자주 시도되어 정석으로 굳어진 새로운 형태를 가리키며, 그 종류는 수십 종에 달한다. 한국류 정석이 갖는 특징으로는 실전 중심의 패러다임, 형태관념의 초월, 격식 탈피, 포석적 맥락 중시, 기존정석의 재해석, 최대의 효과 추구라는 6가지를 들었다. 이것을 요약하면, 한국류 정석은 理論과 모양에 입각한 일본식 정석에서 벗어나 實戰 狀況이라는 맥락에서 돌의 효율성을 추구하여 자유분방하게 수를 驅史하는 특색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美的?原理的 형식의 틀에 지배되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수를 바둑구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정석의 영역에 새롭게 도입한 것이다. 한국류 정석이 기존의 일본식 정석에서 과거에 출되었거나 무시되었던 수를 재해석하며 그로부터 신정석을 도출해 내었다는 특징을 갖는 것은 바독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출현을 의미 한다.

한국류 정석이 갖는 이러한 신패러다임은 20세기 후반부터 국제기전에서 그랜드슬렘을 달성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정석의 영역에서 이론적 패러다임으로 인해 간과되었던 바둑수가 실전적 패러다임에 의해 발견되는 현상은 바둑기술의 다른 영역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그것이 바둑기술에서 한 걸음 진보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바둑에 관한 理論的 原理를 무시하고 순전히 實戰的 시각에서만 바둑수를 바라본다면 수의 이해에서 歪曲이 일어날 수 있지만, 이론적 원리에 바탕을 두고 실전적인 측면을 고려한다면 바둑수를 보다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해방 후 일본의 바둑이론을 踏襲한 한국바둑이 어떻게 해서 기존의 일본 정석과는 이질적인 성격의 정석을 창조하게 되었을까? 이 문제는 본 연구의 범위을 넘어서지만, 일본과는 다른 바둑 전통-戰鬪的이고 자유분방한 순장바둑의 전통-과 한국인의 現世的 성향 및 20세기 말의 한국기사들의 풍부했던 實戰對局 기회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류 정석이 출현하게 된 院因에 관해서는 본 연구와는 다른 측면에서 탐구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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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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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사항

정수현
(Jeong, Soo-Hyun)
바둑학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