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바둑..!/관련 자료들~

[=] 바둑은 계산이 아니다(답변5)

온울에 2008. 5. 29. 12:42

http://math.berkeley.edu/~berlek/cgt/go.html

위 사이트에 바둑에 관련된 수학적 논의들이 잔뜩 있군요.

첨부한 파일은 Berlekamp라는 버클리 교수가 쓴 페이퍼입니다(위 사이트에 링크 걸려있습니다.)

혹시라도 참고하실게 있으면 건지시기 바랍니다.
(아직 저도 읽지는 않았답니다.^^)

아래는 예전에 제가 캡쳐해 놓은 자료의 일부입니다.(지금 찾아보니 해당 사이트는 사라진것 같습니다?)
www.amat.co.kr의 '문용직'이라는 분이 올린 내용입니다.
(왕님의 의견과 비슷한 부분이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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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답이란 바로 그러한 게임트리의 과정에서 얻어진다.
그런 점에서 바둑은 답을 찾기 힘든 게임이다. 아니, 어느 수학자에게 듣기로 바둑은 답이 없는 게임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답이 없다 하여 게임의 성격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요, 승부가 갈라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오묘한 바둑의 세계. 프로들은 수를 아주 깊게 멀리 본다.
과연 어느 정도? 일본에서는 1907년 12월 2일 이시이(石井 千治)와의 대국에서 다무라(田村 保壽)가 148번째 수를 8시간의 장고 끝에 둔 예가 있었다.
묘사(描寫)하기를 ‘수도(修道)하는 자세로 8시간을!’ 그 8시간에 대해서는, 277수까지 간 그 대국의 나머지 수를 다 읽고, 한 집 이기는 수순을 확인하고 두었다는 설이 떠돌았다.
그렇다면 적어도 130수 정도를 읽었다고 볼 수 있겠다.
사실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명인이라면 그 정도는 읽을 수 있으리라고 여겨진다.
문제는 그 130수를 읽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가지가지 변화들. 하나의 착수에서 경우의 수가 두 가지만 된다 하더라도, 변화는 2의 130승(乘)이 된다. 그 얼마나 큰 수인가.


자기복제와 학습능력의 생명체만의 승리할 수 있는 게임’

몇 년 전인가,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Deep Blue)가 세계 체스 챔피언을 이겨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체스가 컴퓨터에 정복된 것이다.
그래서 또 한 번 화제에 오른 것이 바둑의 세계. 바둑도 정복될 것인가?

이 의문에 대한 답의 하나로, 버클리의 수학자 벌캄프(Berlekamp)는 100년이 걸려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벌캄프 교수는, 바둑의 잔끝내기 분야에서 수학적 정리(定理)를 발견, 해법을 찾은 것으로 유명하다.  

바둑은 왜 컴퓨터에 의하여 정복되기 어려울까?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바둑이란 게임의 특징에 있다. 바둑은 분할된 부분과 부분의 합(a disjunctive sum)의 게임이 아니라는 데 있다. 바둑은 폐쇄된 영역으로 이루어진 게임이 아니다.

사활묘수풀이를 예로 들어보자. 사활은, 외부 조건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않는다.
즉, 폐쇄된 영역인 것이다. 따라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어떤 묘수풀이는 너무나 어려워서 300년이 지나 새롭게 답이 발견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자, 이제 포석을 생각하여 보자. 초반 포석의 단계에서, 이미 어느 한 부분에서 두어진 돌은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준다.
돌과 돌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착점 - 선(線)과 선(線)이 마주치는 곳 - 의 여지, 그 값어치가 착점의 순간 순간마다 변동한다.
361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반상은 첫 번째 착점이 놓여진 순간부터 나머지 360개의 점이 첫 수에 의하여 영향을 받고 유동한다.
두 번째 수는 첫 번째 수를 고려하여 착점되고 평가된다. 요컨대 바둑의 또 다른 특징의 하나는, 부분은 전체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즉 구조주의적 논리가 지배하는 게임으로서, 전체의 맥락이 부분을 결정한다. 관계가 부분을 결정한다.

바둑이란 확률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대수의 법칙(the laws of large numbers)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과 공간 속에서 발전해 가는, 구조와 패턴과 모양(shape)이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프로들이 공부하는 방식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프로들은 수련의 과정에서 먼저 패턴에 익숙해지도록 수없이 많은 바둑의 기보를 놓아본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그 결과 얻어지는 패턴의 기억을 우리는 감각이라고 부른다).
다양한 행마(行馬)가 패턴화되어 존재하고, 순간 순간 주변의 모양이 변화하는데 적응하여 답이 변동한다는 점에서 - 필자가 보기에 - 생태학적인 질서와 무질서도 바둑에는 잠재되어 있는 듯하다.

따라서 바둑의 세계가 정복되기 위해서는, 자기복제와 학습능력을 갖춘 생명체로서의 인공지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딥블루(Deep Blue)가 1초에 2억 번의 연산 능력으로 인간을 이겼다고 하지만, 단순히 연산 능력의 발전과 빠름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고 본다.
특히 바둑이라는 게임의 속성에 다위니즘(Darwinism)이 있다면? 앞서 말했듯이 부분의 답이라는 것이 전체의 평가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찾을 수 없다면?


패배에서 즐길 수 있는 게임의 또다른 묘미

필자는, 그 언젠가는 바둑의 세계에서도 인간은 컴퓨터에 패퇴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 이유는 바둑이 대단한 게임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인간이 알고 있는 바가 별 것 아니라는 데 있다. 그렇다. 현재 우리 인간이 알고 있는 바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인간은 바둑의 세계에서도 인간이 만들어낸 그 어떤 존재에 의해 새로운 세계를 맛볼 가능성이 높다.

소박한가? 소박해도 좋다.
그런 소박한 생각이 인간을 인간답게, 겸손하게 만들 것으로 본다. 바둑의 세계가 정복된다는 것이 인간의 고유한 존재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불안에 떨면서 초월적인 공간을 추구하여 왔다. 종교와 예술, 사이버 세계는 그 일부의 예에 불과하다.
게임의 세계도 그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그리고 다양한 논리도 - 경제학, 정치학, 철학, 종교 - 인간과 인간의 세계를, 사회를 형성하여 왔다.

논리 자체가 어찌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으랴.
논리는 우리의 사고를, 사유의 지평을 열고 제한하여 왔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이 어찌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으랴.

그러나 흘러가고 소멸하는 존재로서, 인간의 실존은 언제나 우주의 본질적 존재로 - 절대적이고도 아름답게 - 간주되어 왔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기게 될 때, 우리 인간은 새로운 지평(地平)을 맛보게 될 것이다. 바둑의 묘미를 훨씬 더 즐기게 될 것이다.

인생의 목적은 승부가 아니라, 자재(自在)와 소요(逍遙)에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로 인한 소외를 벗어나는 노력을 얼마나 경주하느냐에 달려 있겠지만. 앞으로 바둑과 인공지능의 관계는 그 하나의 척도가 될 것이다


- 착한왕 [2004-11-03 16:06:35]
잘 봤습니다. 바둑에서 패턴이 중요하다는 데는 일치하지만 사이트의 저자는 바둑과 체스의 차이를 저와는 다르게 접근합니다, 저자의 경우 체스는 계산에 의한 질점들, 킷초님의 표현에는 string들을 축적해 나가는 것인 반면에, 바둑은 일종의 경매(auction) 게임에 비교합니다. 위 문용직 사범의 부분의 합은 전체가 아니다라는 표현이 오히려 제 의견과 비슷한데, 벨캄프의 의견은 아닙니다. 벨 캄프는 어디까지나 saddl point가 초기에 없는 상황에서 수 하나 하나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에 근거합니다. 언급하신 사이트에서 해당 파일을 찾아 올렸습니다.

벨캄프는 끝내기 일부분을 가지고 주장했다면, 저는 초기 포석을 가지고 주장합니다. 문용직 사범도 마찬가지입니다. 벨캄프가 경매 게임에 바둑을 비교했다면, 저는 원초적인 환경 단서에 의한 판단법을 가지고 접근한 것입니다. 질적으로 다릅니다. 원 글 저의 Troubling Problem을 잘 보시면 알 겁니다. 이 문제는 벨캄프의 경매 게임이론에 근거한 수학적 서술과 무관합니다. 다만 문용직 교수가 원래 프로 기사였기에 그의 직관은 맞습니다. 벨캄프가 바둑은 체스가 아니라는 주장이 알려진 후 프로 기사로서 바둑이 체스가 아닌 이유를 첨언한 것입니다. 그러나 벨캄프의 수학적 방법론이 프로 기사의 초기 포석에 담긴 직관을 보여준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바둑이 단순 체스가 아니라 패턴이라는 환경 혹은 지형적 단서에 근거한 판단에 크게 의존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첫 걸음은 역시 Troubling Problem을 정확히 푸는 것입니다. 벨카프가 한 것은 단지 바둑이 체스와는 다른 포커게임과 같은 성격, 곧 베팅에 의한 인센티브가 있는 게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겁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이런 식의 접근에 호감을 갖지 않습니다.

프로기사로서 문용직 사범의 직관에 제가 동의하는 점: "바둑은 분할된 부분과 부분의 합(a disjunctive sum)의 게임이 아니라는 데 있다." 나머지 얘기는 조금은 다 느슨합니다. 진화심리학에서 연구되는 발견법은 아직 바둑철학에 도입되지 않았지만, 역시 프로기사들은 암묵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용직 사범의 글이 그 증명입니다.

우리는 그 직관을 수학적으로 구체화합니다. 그리고 목적은 단순히 바둑과 체스의 차이 규명이 아닙니다. 하지만 원 글의 Troubling Problem을 풀어서 바둑과 체스의 차이를 보일 수 있다면, 이것은 끝내기 전략을 베팅 혹은 인센티브에 의한 게임에 유비해 그런 차이를 보이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왜냐하면 그 문제의 핵심은 바둑 첫수부터 환경적 제약, 곧 지형 패턴이 판단에 개입한 발견법으로 나타남을 함축하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논의가 진행되면 더 드러날 듯!

알려주신 사이트에서 찾은 위 논문은 있다 집에 가서 자세히 보겠습니다. 혹시 수학적 방법론에서 건질 것이 있는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은 약간은 회의적입니다. 제가 원하는 증명은 경매 게임이론이 아니라 computation과 pattern과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