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I. 서 론
II. 이데올로기론의 이론적 재구성
1. 이데올로기의 매카니즘과 기능
2.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와 지배 이데올로기
III. 과학적 실천과 과학적 층위의 자율성
1. 이데올로기에서 과학으로 : 인식론적 단절의 문제
2. 이론적 실천과 과학적 지식의 생산
3. 과학적 층위의 상대적 자율성
IV.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재정립
1. 『이론적 실천』으로서의 철학의 문제
3. 『이론에 있어서의 계급투쟁』으로서의 철학의 재정의
V. 결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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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자명 동국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학술지명 社會科學硏究(東國大學校)
ISSN
권 1997
호 4
출판일 1997.
루이 알뛰세의 이데올로기 · 과학 · 철학개념
주원덕
4-648-9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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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 론
오늘날 마르크스주의 사상사에서 알뛰세(Louis Althusser)가 차지하는 위상이 새롭게 정립되어야 할 필요성은 그의 저작들 속에 제기되어 있는 문제들 즉 마르크스의 저작에 대한 알뛰세의 해석과 문제제기로부터 야기된 논쟁이 현재에도 부단한 반향(反響)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1) 『마르크스를 위하여』의 서문에서 논술하였듯이 서구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 그의 등장은 1956년의 소련공산당 20차 대회에서 후르시초프(N. S. Khrushchev)의 스탈린 비판으로2) 야기된 전후 국제공산주의의 위기와 스탈린주의의 위기라는 정치적 국면과 이것을 계기로 형성된 전후 실존주의적 마르크스주의 또는 인간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출현에 대한 이론적, 철학적 개입으로 특징지워진다. 그는 후르시초프의 자유화로 인한 서구바르크스주의의 再헤겔화를 스탈린주의적 교조주의로부터의 탈출을 위한 '우(右)편향적' 현상으로 간주하였으며 이러한 이론적 편향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과학성과 이론적 혁명의 의의를 재인식하고 마르크스 사후(死後) 그의 과학적 공산주의 이론에 대한 왜곡된 평가들로부터 그 과학성을 보증하기 위한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철학과 과학을 새롭게 정초하는 것을 그의 과업으로 설정 했다.
따라서 당시의 서구 마르크스주의를 지배하는 이론적 편향偏向)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성과 순수성을 옹호하려는 야심찬 계획에서, 알뛰세는 과감하게 비마르크스적 사유경향으로의 이론적 우회(theoretical detour)를 채택하였다. 이것들 중 대표적인 것은 첫째로, 바슐라르(G. Bachelard)와 까바이예(Cavaille) 그리고 깡귀옘(G. Canguilhem)에 연관된 프랑스 科學哲學 내의 '합리적 유물론(rational materialism)'과 협약론(conventionalism) 그리고 역사적 인식론(historical epistemology)이었다. 둘째로, 스피노자(Spinoza)의 '미증유의' 합리주의적이고 결정론적 철학체계로서 그 중심원리들의 몇몇을 알뛰세는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에서 수용하려 하였다. 왜냐하면 그에게 마르크스의 '역사적 선구자'였던 것은 헤겔이 아니라 스피노자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헤겔에 있어서 지식의 발전은 축적적인 과정이며 과거의 지식은 지양(Aufhebung)과정을 통해 현재의 지식에 보존되는 반면에, 스피노자는 지식의 축적보다는 불연속성(discontinuity)을 강조하였으며, 그로 인해 제기된 다른 문제들의 근거에 따라 상이한 사유체계를 구별하였기 때문이다.3) 셋째로, 쏘쉬르(F. de Saussure)의 뒤르껭(Durkheim)의 방법론적 집단주의의 재구성에서의 구조주의적 페러다임의 측면들과 '사회적 사실들'의 비(非)환원적 특수성에 대한 주장, 그리고 특히 라깡(J. Lacan)의 프로이드(S. Freud)의 재(再)이론화 등의 범주들을 마르크스주의적 변증법과 이데올로기론을 재(再)개념화하기 위해서 차용했다.4)
특히 알뛰세는 바슐라르(G, Bachelard)의 '합리적 유물론(rationalistic materialism)'으로부터 사적 유물론에 '과학/이데올로기'와 '문제설정/인식론적 단절'이라는 일련의 개념들을 도입하여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혁명적 재구성을 시도하였다. 즉 독일의 관념론 철학(특히 헤겔과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특수성, 영국의 고전 정치경제학(특히 리카아도)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의 특수성, 그 귀결로서의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utopian socialism)에 대한 과학적 사회주의(scientific socialism)의 특수성을 구별함으로써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철학과 마르크스주의적 정치경제학 그리고 과학적 공산주의 이론의 토대를 설정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반(反)경험주의적 인식론,즉 '지식들의 생산의 이론'이었다. 즉 그 '중심적 테제가 의식과 경험의 반대'였던 이론이었으며, 그의 반(辰)인간주의(anti-humanism)와 반역사주의(anti-historicism)의 이론적 토대는 구조주의적 사유경향 속에서 구축된 것이었다.
그러나 알뛰세의 사상을 논하는데 있어 당면하는 일차적 문제는 그의 저작의 시기구분(periodization)에서 나타나는 이론적 변화를 어떻게 수용하는가의 문제이다. 이것은 그의 이론적 입장이 정치적 변화에 부단히 영향을 받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초기 저작에서 강조되던 마르크스주의 재해석의 이론적 입장은 프랑스 공산당(PCF)의 친소(親蘇)주의,중국의 문화혁명,유로커뮤니즘의 등장 등의 정치적 변화를 겪으면서 입장의 차이를 보여 왔으며, 부단한 자기정정과 재(再)사유의 과정을 거쳐왔다.5) 이 점에서 그의 사상을 일관되게 초기 저작에서 후기 저작까지를 이론적으로 통일시키는 데 있어서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기존의 연구의 대부분이 그의 저작의 특정 시기에 중점을 두어 분석하여 왔으며, 이것은 알뛰세의 논의에서 연구자들의 시각에 따라 상이한 평가와 오해를 야기시킨 원인이기도 하다.
알뛰세의 구상은 첨예한 논쟁을 야기했으며 우파(右派) 뿐만 마니라 좌파(左派)로부터 극단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우파적 비판가들은 개인주의적이고 인간주의적 인간에 대한 이해에 기초하여 사회과정을 분석하려 했던 실존주의적, 주관주의적 편향을 가진 이론가들이었던 반면, 좌파의 비판가들은 마오이즘(Maoism)의 추종자들로서 알뛰세의 이론주의적 정향을 비판했다. 특히 알뛰세의 제자였던 랑시에르(J. Ranci?re)는 정치적 보수주의와 교조주의의 입장에서 "우리가 알뛰세 학파에게서 배웠던 마르크스주의, 이는 일종의 질서의 철학인데, 그 모든 원리들은 우리로 하여금 부르조아적 질서를 뒤흔드는 프롤레타리아 운동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다"고 혹평했다.6) 그러나 알뛰세 인식론의 주요한 토대는 거의 그의 초기 저작들을 통해 체계화되었으며, 『자아비판론』 이후의 저작들은 주로 그의 이론주의적 편향들(theoretical deviations)을 교정하는데 중점이 두어진다. 즉 이론적 실천으로서의 철학의 개념을 계급투쟁의 실천적 과업과 연계시키고 철학과 정치의 관계를 규명하여, 그의 이론적 저작의 제 결과를 현실정치의 역동성(dynamics)과 연계시키는 것으로 전환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이상의 관점으로부터 알뛰세의 철학적 저작에서 중심개념인 이데올로기, 과학, 철학의 상호연관과 상호규정을 중심으로 알뛰세의 이론적 진화과정을 살펴보고 일관된 맥락을 재정립해 보는 것이 연구의 의도이다. 이러한 접근방법의 특성상 초기 저작의 중심으로 한 핵심주제들이 논의의 쟁점이 된다 따라서 후기 저작에서 나타나는 그의 이론주의(theoreticism)에서 정치주의(politicism)로의 변화, 마르크스주의 국가 · 당 · 조직이론에 있어서의 문제들, 마르크스주의 위기론의 문제 등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전개되지 못하는 것이 논의의 주제와 지면의 제약 상 본고가 가지는 한계임을 미리 밝혀두고자 한다.
II. 이데올로기론의 이론적 재구성
1. 이데올로기의 매카니즘과 기능
알뛰세의 초기저작을 지배하는 문제설정(problematique)은 이데올로기는 과학에 대립되며 인간주의(humanism)는 '이론적 반(反)인간주의(theoretical antihumanism)'에 대립된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인간의 의식은 결코 사회 과정이 갖는 진리가 아니며 모든 사회과정들이 위장된 또는 변형된 형태로 현상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생산체계의 참가자들은 그것의 작동 매카니즘을 실제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르크스에 의해 인간이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로 규정되고 있는 한 인간이란 실재에 대한 연구는 사회적 관계들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하에 이데올로기를 허위의식(false consciousness)으로 보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이데올로기 개념을 비판하고 이데올로기적 지식과 과학적 지식의 대당(對當)의 인식론에 기초하여 사회주의적 인간주의(socialistic humanism)의 토대들을 비판함으로써 알뛰세는 그의 독특한 이데올로기 개념을 설정한다. 이데올로기를 의식에서 사회적 현실의 반영으로 개념화시키는 것을 거부하고, 이데올로기의 개념화를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사회적 관계들의 구조로 置換시켜 이데올로기의 적극적 의미를 재발견하려는 시도에 그의 이데올로기 개념의 獨創性이 있다.
그는 첫째로, 이데올로기를 실천적-사회적 기능이 이론적 기능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에서 과학과 구별되는 '표상들(representations)'의 체계로 정의하고, 일반적인 이데올로기의 초(超)역사성, 편재성(ubiquity)과 영구성(permanance)을 강조한다. 둘째로, 이데올로기를 과학의 반(反)테제(anti-theses)로서 정의하여 이데올로기가 그 자체로 이론적 실천의 한 형태라는 점에서 과학과 공통적 지위를 공유하나 그들의 인식론적 지위에서 이데올로기는 '암시들-환상들' 그리고 '오인들', 오류들의 '망(web)'의 총체(ensemble)라는 점에서 과학과 구별된다고 한다.
우선 알뛰세는 이데올로기가 '순수한 상상(pure imagination)' 또는 '허위의식(false consciousness)'이라는 마르크스의 관점을 교정하려고 시도한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에서 이데올로기는 허위의식, 장막, 필터로서 실체가 없는 몽상이고 환영이며, 그 자체로서는 어떤 생산적 능력도 규정력도 갖지 못한다. 이데올로기는 그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고립된 이미지들이나 표상들은 이데올로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표상들의 기능적 총체로서 이데올로기는 사회구성체들(Social formations)의 존재에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에 '전사회적 총체성의 유기적 부분'이며 전체사회가 기능하기 위한 필수적인 것으로 이데올로기를 통해 사람들은 시대와 역사 속에 위치한 어떤 사회구조의 작동에 참여한다.
사람들은 그들의 세계에 대한,그리고 그 세계와 그들의 관계에 대한 어떤 표상 없이는 살 수 없는 '이데올로기적 동물(ideological animal)'이다. 마치 인간이 태어나기 전에 경제 및 정치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그 표상이 이미 형성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따라서 이데올로기가 사회생활에서 행하는 기능은 인간이 사회적 행위자로서 기능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인간들 사이에 그리고 그들과 그들의 과업 사이에 응집력을 확보해 주는 '시멘트(,ement)'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그들의 '존재조건들'의 총체에 대한 개인들의 '체험된' 관계들을 지배하는 모든 인간의 행위들과 실천들에 침투하며, 계급사회와 무계급사회 그리고 공산주의 하에서도 이데올로기의 정지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데올로기는 계급구분(class division)이 나타나기 이전에 발생하며 이 구분들이 사라진 후에도 존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급사회에서의 이데올로기는 사회적 통일성을 확보하는 이상의 기능을 갖게 되는데,그것은 지배계급의 합리화의 수단으로서 계급질서(class order)의 유지를 재생산하는 기능에 의해 과잉결정(overdetermination)된다. 이것은 계급지배의 긴급성에 수반되는 이데올로기의 경향성이 잠재적으로 이행적 현상인 반면, 구조에 의해 결정적으로 일어나는 사회적 전체의 불투명성은 불변적 특성을 지니며 이데올로기적 표상의 체계가 왜곡과 신비화의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데올로기로부터는 사회구조의 담지자(support)인 인간 주체를 위한 객관적 판단이 부여될 수가 없으며, 오직 이론적 실천만이 이데올로기의 허구를 파괴하고 사회구조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 알뛰세가 과학의 반(反)테제로서 이데올로기를 규정하는 근거이다.
그러나 그의 초기의 이데올로기론의 관점들은 그 추상성과 모호함으로 인해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며 비판의 논점은 다음의 두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로, 그는 이데올로기의 실천적-사회적 기능은 이데올로기를 통해 그리고 이데올로기내에서 인간은 그들의 존재조건들의 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형성되고 변형된다고 주장함으로써, 이데올로기는 모든 사회에서 역사적 필연성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둘째로, 과학에 대해 이데올로기를 '허위의식' 또는 '왜곡'의 고전적인 구별로 복귀하여, 이데올로기와 과학 사이의 관계에 대한 부정확한 해결을 제시함으로써 과학의 역할을 과대평가하고 과학과 철학간의 구별을 모호하게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데올로기는 과학의 정립을 위한 물질적 기초에 불과하며, 이데올로기와 과학 사이의 대립은 진리와 오류 사이의 추상적 대결로 환원되고 만다. 이것은 알뛰세 자신이 인정하듯이 그의 이데올로기론에 내포된 가장 중대한 모순이었다.7) 그 결과는 과학의 역할이 과대평가되고 계급들 사이의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이데올로기적 투쟁(ideological struggle)의 현실은 무시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초기의 이데올로기 개념의 문제점들은 그의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1970)』에서 새로이 교정되고 보완된다. 이것은 1960년대 세계적인 학생운동, 프랑스 5월 혁명, 중국의 문화혁명 등의 정치적 이념의 영향하에에 대두된 것이다. 1968년 이전에 알뛰세는 이미 중국 공산주의,특히 모택동으로부터 새로운 철학적 개념들과 관점들을 수용하였다. 후기 철학적 개념의 중요한 주제들, 즉 '철학은 이론에 있어서의 계급투쟁이다' 또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혁명적 무기'이다라는 것과 그의 이론적 발전에서 정치적 국면들과 계급적 입장들의 중요성의 인식으로의 전이(轉移) 등이 그것이다. 문화혁명의 영향하에 그는 상부구조적 영역들에서의 계급투쟁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만일 이데올로기와문화의 영역들이 그들 자신의 자율성과 현실성을 가진다면 이 영역들은 정치적 계급투쟁의 장(樣)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2.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와 지배 이데올로기
이제 그는 이데올로기적 층위(level)가 담당하는 생산적 기능이 사회경제적 생산의 조건을 재생산하는 데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 생산관계의 재생산'을 이데올로기 층위의 특징적 생산기능으로 규정한다. 모든 사회관계와 사회구성체들은 특정의 지배적 생산양식의 산물이므로 그 지속을 위한 조건들을 재생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모든 사회구성체는 생산조건의 유지를 위해 노동력, 생산수단, 생산관계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해야 한다. 따라서 '노동력의 숙련과 노동력 그 자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재생산되느냐'의 문제로 집중된다. 그의 대답은 이 재생산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데올로기적 복종이라는 형태로,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복종이라는 형태 아래에서'뿐이라는 것이며, 이 매카니즘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 억압적 국가장치(RSAs)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ISAs)를 구분함으로써 가능해 진다.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적 전통에서는 국가를 '억압적 장치(repressive apparatus)', 그리고 계급지배의 도구로 간주되었으며, 권력을 국가장치 안에 위치시키고 이 국가기구를 특권을 가진 한 계급의 다른 계급에 대한 권력의 도구로 정의하였다. 그는 이러한 관점에서는 상부구조의 역할을 설명하는데 부족하다고 보고 전통적 관점은 국가권력(state power) - 정치적 계급투쟁의 목표 - 과국가장치(state apparatus) ? 계급지배의 도구 - 사이의 구별, 그리고 억압적 국가 장치(Repressive State Apparatus)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Ideological State Apparatus)사이의 구별에 의해 보완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억압적 국가장치(군대, 경찰, 감옥, 법원 등)가 주로 억압(repression)에 의해 기능하는 반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는 주로 이데올로기에 의해 기능하며 생산관계의 재생산은 이 양자의 국가장치들 속에서 국가권력이 행사됨으로써 확보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 분류된 다양한 상부구조적 기관(institudons)들의 공통된 목적은 그들에게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기능하는 이데올로기는 그것의 다양성과 제 모순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사실상 지배 이데올로기하에서 통일되기' 때문이며, 국가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하나의 계급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 대한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내에서 헤게모니를 획득하고 보호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국가 이데올로기 장치 위에서 그리고 그 안에서 헤게모니를 행사하지 않고 오래도록 국가권력을 쥐고 있을 수 있는 계급은 하나도 없다"고 단언(斷言)한다.8)
자본주의의 착취적 생산관계의 유지와 정당화를 위한 억압적 국가장치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사이에 일정한 분업적 기능과 상호작용이 전개된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들에서 이것은 생산의 영역 외부에서 - 특히 교육체제에서 그리고 가족 내에서 - 제공된다. 노동력의 재생산의 전제조건은 '지배 이데올로기(ruling ideology)에 대한 그것의 복종의 재생산'이므로,자본주의하에서 상부구조는 노동력 그러므로 생산력의 재생산에 결정적으로 개입한다. 이중에서 교육적 이데올로기 국가장치(education ISAs)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배적 역할을 한다. 알뛰세는 특히 학교와 대학을 포함한 교육기관을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국가기구로 설정하고 교육내용 그 자체가 중립적일 수 없다는 것을 지적 했다.
또한 그는 초기의 이론적 대안들에 대한 수정을 통해 "첫째로, '이데올로기는 개인과 개인의 실제조건과의 가상적인 관계를 표현한다'는 부정적 명제와 둘째로, '이데올로기는 구체적인 존재를 갖고 있다'는 이데올로기의 물질성(materiality)의 긍정적 명제"를 제시한다.9)
첫번째 명제는 이데올로기가 사람의 존재를 조정하는 현실적 관계들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대한 가상적 관계를 표현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즉 "이데올로기에서 '인간은 가상(假想)의 형태로 스스로에게 자신의 실제 존재조건을 설명'하는 것"이다.10)반면에 두번째 명제는 이데올로기가 생산되는 것은 소집단의 사람들이 현실에 대한 거짓된 표상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거나, 인간들이 그들의 존재조건들의 소외된 성격을 표현하기 때문이 아니며, 이데올로기가 투영하는 것은 현실 세계가 아니라 인간과 현실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관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그것은 항상 '어떤 기구 속에 존재하며 또한 그 기구의 실천 또는 실천들 속에 존재한다. 이러한 존재는 구체적이다'11)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들이 이데올로기속에서 '살게 되는' 것은 특수한 이데올로기적 기구들 안의 어떤 실천에 참여함으로써 이며, 거기에서 개인은 그 속에서 그들이 믿는 관념들이 형성되고 보존 되는, 그러므로 그들의 신념에 일치되게 행동을 이끌어 내는 의식이 부여된 주체(subject)라는 것이다.
그가 도달한 결론은 이데올로기가 단순히 허위의식으로 환원될 수 없는 새로운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고 재생산하는 하부구조의 수동적 반영이 아닌 독자적 실천의 생산적 층위(層位)이며 '생산관계의 재생산'을 담당하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적 층위는 사회구성원을 사회적 주체로 탄생시킴으로써 사회관계를 재생산하는 특수한 기능을 수행한다. 사회적 개별주체들은 특정의 이데올로기적 문화질서(cultural order)에 편입됨으로써 주체가 된다. 이 질서 속에서 개인들은 탄생 이전부터 존재하면서 그의 사회환경을 구성하는 문화의 법에 의해 주체로 규정받는 이데올로기적 존재이며, 이 기존의 문화질서는 특정한 생산양식에 기초한 지배 이데올로기의 영향하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가 구성하는 상상적 관계가 단순히 허위의식으로 환원될 수 없는 새로운 사회적 현실이며, 이데올로기를 독자적인 실천영역으로 파악한 것이 알뛰세의 이데올로기론의 가장 혁신적인 측면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이론적 독창성에 수반되는 난점 또는 내부모순으로 인해 비판적 논쟁이 제기되었다. 벤튼(T. Benton)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와 억압적 국가기구의 구별은 정도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즉 장치들의 기능에서 권력(power)이 우세하느냐 또는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냐 하는 문제이며, 이것은 그람시에 의해 주도적 지배(hegemonic domination)의 매카니즘은 동의와 강제의 특수한 결합이며, 그들은 단일한 과정의 불가분한 측면들로서 이해되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12) 또한 캘리니코스(A. Callinicos)는 알뛰세가 생산관계들을 상호주체적 관계들로 환원함으로서, '이념론(ideologism)' 으로 경도된다고 주장하였다.13)
알뛰세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에 대한 그의 논문의 "후기(後記)˚에서 그의 명제들의 '추상성'을 인정한다.14) 첫째로, 생산관계들의 재생산은 계급투쟁의 문제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것이 오직 계급투쟁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면, "재생산의 관점을 택한다는 것은 최종심(in the last instance)에서 계급투쟁의 관점을 채택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둘째로, '이데올로기 일반'의 매카니즘에 중점을 둠으로써 계급이데올로기의 문제에 대해 답변하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즉 한 사회 구성체 내에 존재하는 이데올로기들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계급투쟁의 관점일 뿐이며, 이데올로기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내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 속에서 맞붙은 사회계급들의 존재조건과 실천 · 투쟁경험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임을 강조하고, 이데올로기적 실천의 차원을 한 단계 발전시키고 있다.
III. 과학적 실천과 과학적 층위의 자율성
1. 이데올로기에서 과학으로 : 인식론적 단절의 문제
이데올로기와 과학의 분리라는 알뛰세의 구상은 과학적 실천으로서의 이론적 층위에 해당되는 것으로 사회라는 구조적 총체를 형성하는 실천영역(경제, 정치,이데올로기,과학)의 분할된 각 층위는 상호 긴밀히 연결되면서도 상호 환원되지 않는 독자성과 자율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과학의 상대적 자율성(relative autonomy)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과 과학적 인식을 그 기초에 있어서의 변증법적 과정으로 해명하려는 노력으로 구현되며 무엇보다도 인식론적 단절(epistemological break)의 개념에서 형성된 비판적 과제를 헤겔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성을 준별하는 과제와 연관시킨다. 이 개념은 전(前)과학적 관념세계와 과학세계간의 단절을 설명하며 기존의 준거체계와의 단절 및 새로운 문제 설정의 구성을 포괄한다.
바슐라르(G, Bachelard)에 의하면 과학의 철학들은 이중적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즉 그것은 한 측면에서 과학에서의 혁신(革新)들의 효과들이었던 반면, 다른 측면에서 그것들은 과학의 발전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 하나의 새로운 철학은 오직 진실로 과학적인 혁명 후의 과학의 담론(淡論)내에서 구별될 수 있었다. 따라서 그는 제 과학에서 객관성은 우리 사유의 이러한 성향들의 실증적 권능에 대한 끊임없는 투쟁을 요구한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에서 과학의 두 가지 특정이 도출된다. 첫째로 과학적 지식은 경험론(empiricism)이 주장하듯이 무지(無知)의 반대물이 아니라 오히려 오류(談謬)들의 망(綱)이며, 둘째로 과학의 역사는 지속적인 지식의 축적과정이 아니라, 초기의 개념들이 새로운 이론적 구성물들에 의해 부인되고 대체되는 단절적인 혁명적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15) 따라서 어떤 새로운 과학의 설립의 순간에는 새로운 수준의 과학적 담론을 의미하는 이론의 발전에서 필수적인 '단절(rupture)'이 있다고 주장한다. 16) 과학적 지식(scientific knowledge)과 상식적 지식(connaissance commune)사이에 전적으로 불연속성(discontinuity)이 존재하며, 과학적 지식이 개념적인 반면 상식은 비(非)개념적인 것으로 과학적 지식의 발전에 인식론적 장애(epistemological obstacle)가 된다. 그러므로 제(諸)과학의 역사는 그 스스로를 비(非)과학적인 것으로부터 구분했던 '합리적 가치들'의 진보적 출현에 의해 결정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상의 바슐라르의 '단절'개념을 '인식론적 단절(opistemological break)'로 재명명하여, 알뛰세는 이데올로기의 문제설정과 과학의 문제설정 사이에는 근본적인 질적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바슐라르의 이러한 단절의 개념은 단지 역사적 개념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것은 이론을 구성하는 인식론적 지위의 변전(mutation)을 설정하는데 기여하는 한편, 이 단절이 발생하는 과학적 이론에 대한 인식론적 지위에서의 변전(變轉)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단절은 새로운 과학의 출현을 야기하는 '불귀점(Point of no return)'이었다.
그는 새로운 철학의 출현은 과학의 토대로부터 유발되는 이론적 혁명(theoretical revolution)의 결과이지만,새로운 철학은 새로운 과학과 깊이 연루되어 있어서 그 철학이 '새로운 과학과 혼동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적하였다.17) 여기에서 새로운 철학의 출현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원리의 개입가능성이 상존한다. 인식론적 단절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인간 주체가 차지하는 역할은 부차적이고 종속적인 것에 불과하게 된다. 알뛰세는 이 개념을 통해 유물사관(唯物史觀)이라는 과학을 수립한 마르크스는 바로 그와 같은 인식론적 단절로 말미암아 그의 선행자들(헤겔, 포이에르바하, 스미스, 리카아도 등)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청년시절에 그가 지였던 이데올로기적 개념들로부터 결별하게 되었다는 것을 주장한다. 즉 선행하는 철학적 전통에 대한 마르크스의 관계의 진정한 의미는 재구성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2. 이론적 실천과 과학적 지식의 생산
알뛰세는 이론적 실천의 범주를 이데올로기적 · 이론적 실천과 과학적 · 이론적 실천으로 대립시키고, 후자는 과학적 개념들을 생산하기 위해 전자의 결과에 작업을 하는 것으로 본다. 마르크스주의 과학이 경험주의적 또는 교조주의적 방식에서 해석되는 위험을 경고하면서 우리가 형성하는 과학의 관념은 결코 '일상 생활의 경험과 실천의 직접적 소여(所與)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하나의 과학은 오직 '그것들을 질문하고 그들과 단절하는' 조건에서만 구성된다는 스피노자와 바슐라르의 원리를 준용한다. 알뛰세는 스피노자의 이론을 '상상과 진리의 구별에 관한 이론'으로 부르고 그것을 원용해서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마르크스주의적 대립에 관해 사유했다. 즉 '진리는 진리 자체의 기준이자 동시에 거짓의 기준이다(verum index sur et falsi)' 라는 스피노자의 공리(公理)를 준용하여, 과학적 지식은 그 자체의 기준일 뿐 아니라 또한 비과학적인 또는 이데올로기적인 지식의 기준이기도 하고 주장했다.
이론적 실천의 대상은 현실적 대상에 관한 비(非)과학적 표상이거나 직관의 형태로 존재하는 추상적인 복합적 개념이다. 이론적 실천과정의 결정적 계기는 일반성(Generality)Ⅱ, 즉 '변형의 노동'이다. 이론적 실천은 일반성 Ⅲ을 일반성Ⅰ에 대한 일반성 Ⅱ의 작용에 의해 생산한다. 즉 "이미 구성된 하나의 과학이 발전해 나갈 때, 그것은 여전히 이데올로기적인 개념들이나 과학적 '사실들' 혹은 이미 과학적으로 정교화되었으나 과학 이전 단계에 속하는 개념들 (전(前)과학적 Ⅲ)로 구성된 원재료(일반성 Ⅰ)에 작용한다. 그러므로 일반성 Ⅰ을 일반성Ⅲ(지식)으로 변형시킴으로써 과학은 노동하고 생산하는 것이다. "18) 일반성Ⅲ의 타당성의 기준은 과학적 지식이 현실에 대에 대한 인지적 파악을 제공해주는 고유한 지식효과(knowledge effect)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나 일반성 Ⅰ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그 결과는 경험주의(empiricism)로 나타나며, 일반성 Ⅲ에 의존하는 결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관념론(idealism)이다.
알뛰세에게 이론적 실천의 이론의 가장 큰 적은 '지식의 경험주의적 개념'이다. 경험주의적 지식개념에서의 지식과정은 단순한 '시각(vision)'의 문제로 파악 될 뿐, 지적노동 내지 생산의 문제로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험론적 인식론은 모든 자명한 지식은 궁극적으로 경험에서 도출된다고 주장한다. '감각자료, 의식의 단면, 관찰된 사실'들은 인간 주체의 경험에 주어져 있는 것으로 간주되며 지식은 귀납적으로 작동하는 주체의 산물이다. 즉 특정한 경험에서 일반적 결론이 산출되고 사물의 본성은 사고로 재생산된다. 알뛰세에게 이러한 지식의 개념화는 '독해의 종교적 신화'의 '세속적인 복사판'이었다.19) 그에게 지식은 시각이 아니라 생산, 추상이 아니라 전유(專有)였다.
알뛰세는 인식과정을 전적으로 사유 내적인 생산과정으로 제시하기 위한 근거를 마르크스의 『1857 서문』에서 찾고 있다.20) 거기에서 마르크스는 '실재적 대상'을 지식의 대상과 동일시하고 현실과정을 지식과정과 동일시하는 헤겔적 혼동'을 거부하고, 실재적 대상과 지식의 대상의 구별을 옹호했는데, 지식의 대상은 사유의 생산물이고 사유는 사유적 총체로서 지식을 생산한다. 여기에서 사유적 총체는 실재적 대상, 현실적 총체성과 구별되는 사유대상으로서,그것에 대한 지식은 사유적 구체, 사유적 총체성 등에 의해서만 획득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가 지식의 생산과정과 지식의 대상의 생산과정이 전적으로 사유내에서 이루어진다고 했을 때, 이 사유는 초월적 주체의 능력도 개별 인간의 심리적 주체의 능력도 아니며, 주어진 역사적 사회의 현실세계에 기초한 독자적 현실 체계이며, 하나의 독자적인 구조로서 다른 사회구조와 제 관계를 유지하고 결정한다는 것이다.
3. 과학적 층위의 상대적 자율성
알뛰세는 이론적 실천과 경제적 · 정치적 · 이데올로기적 실천 사이를 구별하기 위해, 이론적 실천에 내재적인 구별 즉 '과학적 · 이론적 실천'과 '전(前)과학적 또는 이데올로기적 · 이론적 실천'을 구별하였다. 그는 후자를 과학의 전사(前史)를 형성하는 '지식의 형태들'로서 범주화했다.21) 즉 그는 스피노자를 따라서 이론적 이데올로기를 일종의 지식,그러나 열등한 종류의 지식 즉 "존재들을 지칭하는…그러나 우리에게 본질을 제공하지 않는"22)지식으로 인식했다. 그것은 단순한 오류 또는 환상이 아니라 객관적 실체이며, 과학에 의해 논박될 수 있고 그 스스로 이론적 계기들을 가진 물질적 실천(material practice)이었다.
그러므로 '단절'은 단순히 실천적 개념들의 이론적 개념들로의 전화(轉化)에 뒤이어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실천적 개념들 그 자체의 모순들 속에서 진행되는 하나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과학은 과학의 모태인 이데올로기와 관련하여 '이데올로기의 과학' 으로서만 고찰될 수 있다"23)고 한다. 따라서 과학의 전사(前史)를 이루는 이데올로기를 현실역사로서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전복(顚覆)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24)
알뛰세에게 과학성(scientificity)의 지표는 특수한 이론적 영역내부에서 과학적인 것과 비(非)과학적인 것 사이의 단절이며 한 과학의 이론적 실천은 그 자신의 기준이 된다. 따라서 과학이 초래하는 혁명은 단지 해결이 다르다는 사실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과학은 전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문제들을 제기함으로써 그 문제해결이 이데올로기적 이론적 실천(ideological theoretical practice)에 의해 미리 판단되고 부과되지 않도록 개입하는 것이다. 이론적 실천을 통한 지식의 생산은 사회구성체를 이루고 있는 다른 실천영역과 제 영역의 지식을 연결시킨다. 제 실천영역이 각각 상대적 自律性을 가지듯이 과학은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실천영역이다. 이론은 그것의 근원이나 타당성에 비추어보더라도 사회구조의 영역이나 관념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다른 실천영역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여기에서 생산의 개념과 상대적 자율성의 개념은 사회과학과 사회현실에 대한 비(非)경험주의적 · 비(非)도구주의적 관점에 관련된 것으로, 사회와 세계에 대한 객관적 지식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그 지식은 사회구성체의 제(諸)구성요소를 완벽하게 개념화함으로써 획득된다고 알뛰세는 보았다. 과학과 이론을 생산적 실천으로 보는 견해는 그의 독특한 관점이었다.
또한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적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알뛰세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과학의 개입양식을 1902년의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25) 논의된 정치적 고찰로부터 도입한다. 즉 계급사회에서의 계급구분은 사회의 불투명한 성격을 과잉결정하고 그리하여 양 측면 모두가 이데올로기가 가진 왜곡하고 신비화하는 성격을 결정하게 된다. 따라서 이데올로기가 계급사회에서 존재하는 한 그것은 서로 다른 사회계급들의 표상을 표현하는 여러 이데올로기적 경향들 -상이한 계급들의 적대적 이데올로기들 -로 구분된다. 피지배 이데올로기들은 어떤 상황하에서 자발적으로 정립된다해도 이는 지배계급의 언어와 논리 안에서 일 뿐이다. 이 때문에 노동계급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없고 외부로부터 과학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은 그들의 단순한 실천을 통해 사회구조에 대한 과학적 인식에 도달할 수가 없으며, 그들은 다른 실천, 즉 '이론적 실천' 또는 과학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가 아무런 원조나 충고를 받지 못한다면 "사회에 관한 과학과 나아가 자신의 실천에 관한 과학이 아니라 사회에 관한 개량주의적인 유토피아 이데올로기만을" 산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알뛰세에게 프롤레타리아의 '자생적' 이데올로기의 해방은 마르크스주의 과학의 개입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지식인들에 의해 설립되고 발전된 과학은 이데올로기적 변형에 대한 지식을 공급할 수는 있으나, 지배 이데올로기를 일소할 수는 없다고 본다.26) 객관적 실체로서 존재하는 이데올로기의 권능(權能)에 대항하는 과학적 이론의 필연성과 계속되는 이데올로기적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지식인의 이론적 실천에 의해 노동계급 외부에서 발전되어 노동계급 속으로 수입되었다는 카우츠키(Kautsky)와 레닌(Lenin)의 명제에 동조하여, 알뛰세는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프롤레타리아 및 그들의 실천을 외재적 관계로 만들었다. 이것은 레닌이 1920년대에 "올바른 혁명적 이론은‥‥진실로 대중적인 실천활동 및 진실로 혁명적인 운동과 밀접한 연관을 맺을 때에만 완성된 형태를 갖게 된다"고27) 한 점을 경시한 결과였다. 그는 단절이 일어날 때의 그에 대한 계급영향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또한 그 단절의 계급기반도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로 인해 그는 일반적으로 이론을 강조하고 실천을 무시하게 되었다. 알뛰세는 유물사관은 단지 혁명적 이론이 아니라 이론에 있어서의 혁명이라는 마르크스의 주장에 충실하여, 인간본성 또는 인간의 본질의 문제설정에 의존하는 부르주아과학은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가 아닌 과학으로 인식된 마르크스주의와 반대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28) 그러므로 계급사회에서 이데올로기는 상이한 계급들의 적대적 이데올로기로 구분되며,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켜 과학적 인식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주의 과학의 개입이 필연적이라는 논리적 귀결에 이르게 된다.
결국 초기저작에서 부르조아 이데올로기로부터의 맑스의 단절은 단지 이론적 태도, 즉 인식론적 태도로만 귀결되었으며, 그 결과는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실천은 사회구성체내에서 이루어지지만 그것들에 대한 이론은 사회 구성체 밖에서 존재하며 과학의 역사는 사회의 역사에서 독립된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여 이론주의(theoreticism)로 편향되게 되었다. 이것은 알뛰세가 거부했던 과학관이었다. 과학적 · 철학적 대상의 '추상성', '이론성'을 분리함으로써 그리고 과학적, 철학적 대상을 경험주의 ·실용주의에 대립시킴으로서, 알뛰세는 그것들의 변증법적 상호연관 외부에서의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에 대한 형이상학적 단절의 영역에 제한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알뛰세의 프로그램적 테제들은 절대화의 위험에 처하게 되고 그의 개념구조에서의 왜곡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알뛰세가 자아비판(self-criticism)을 통해 나아가는 곳은 초기의 과학과 철학과의 관계를 수정하고 철학을 재(再)정의하는 것이었다.
IV.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재정립
1. 『이론적 실천』으로서의 철학의 문제
초기 저작을 통해 알뛰세가 철학을 '이론적 실천'의 이론으로 정의하게 된 것은 당시의 '이론적 스탈린주의(theoretical Stalinism)' 하에서 왜곡된 변증법적 유물론(dialectical materialism)의 이론적 토대들을 정립하기 위한 이론적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가 인식했던 변증법적 유물론은 그 자신의 개념들과 대상을 가진 이론적 실천의 과학이었으며, 선행했던 철학적 이데올로기와 단절했던 과학적 철학의 차원에서 해석되었다. 그것은 그 자신의 대상 · 이론과 방법을 가진 어떤 역사적 의식에 독립적인 과학적 원리였다. 따라서 그는 과학과 이론적 이데올로기를 구별하는 문제설정에 의한 질적 도약(跳躍) 또는 변전(變轉)의 인식론적 단절의 수용으로 과학성(scientificity)의 지표를 설정하였으며,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적 대당(opposition)에 준(準)하여 알뛰세는 과학적인 이론적 실천과 이데올로기적인 이론적 실천을 구별하는 것에 집착하여, 지식은 이론 내적인 생산과정이었다는 것을 수용하는데 그의 인식론의 특징이 있었다. 이것은 마르크스의 역사의 이론과 자연과학들간의 어떤 인식론적 구별을 지우려는 그의 노력에 있었다. 즉 마르크스주의는 자율적이고 과학적인 '다른 것들 중의 과학'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집중했다.
변증법적 유물론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이데올로기에서 과학적 이론으로 역사과학 뿐 아니라 다른 모든 과학들을 위한 지침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이것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이론적 스탈린주의였다. 그 역기능은 첫째로, 마르크스의 유물론을 '전(前)마르크스주의적인 교조적 유물론(dogmatic materialism)'에 동화시켜 혁명적 참신성을 희석시키고, 둘째로 변증법(辨證法)을 현대과학으로부터 차단시켜 실증주의(Positivism)와 과학주의(scientism)를 초래했으며, 마지막으로 변증법적 유물론의 구성에서 엥겔스의 철학적 유산인 헤겔적 체계를 준용하여 변증법적 유물론을 빈곤하게 하였다는 데 있었다. 이러한 스탈린적 편향이 그 이후의 전체 공산주의 운동을 위한 마르크스주의 과학과 철학으로 간주되어, 과학은 인식적 자율성이 제거된 계급투쟁의 장으로 전락하여 '역사적 그리고 상대적인 이데올로기'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목표는 사적 유물론의 과학성을 보증하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개념적으로 심화시키는 것이었다. 이것이 알뛰세가 '사적 유물른(historical materialism)의 이론적 장래는 오늘날 변증법적 유물론(dialectical materialism)의 심화에 달려 있다'고 한 이유였다.29) 그러나 알뛰세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해석에서 윤리적 형태와 역사주의적 형태 그리고 실증주의적 해석의 경향이 존재함은 마르크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30) 마르크스는 『철학의 반곤』, 『독일 이데올로기』, 『1857 서문』,그리고 『자본론』의 몇 구절에서, 그것에 대한 토대를 단지 놓았을 뿐 그것의 논리학을 엄밀하게 정립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뒤이은 엥겔스의 『반뒤링론』,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은 그 시기의 이데올로기적 투쟁에서의 논쟁적 개입의 산물이었다손 치더라도 『자본론』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서의 사적 유물론에 비교할 만한 정도의 정교함 또는 체계성, 과학성'을 보여 주지 못했으며,31)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이후로 거의 진보하지 않았고 오히려 종교적 세속형태인 교조주의(dogmatism)와 헤겔주의(Hegelianism)로의 복귀에 의해 침해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변증법적 유물론을 '이론적 실천의 이론'으로서 정의하려는 그의 초기 저작의 시도는 어떤 실증주의적 특징들을 내포하고 있었다. 과학의 상대적 자율성은 궁극적으로 사회구성체와 그것의 역사로부터 철저한 독립적 형식을 취했고, 또한 과학이 사회적인 것으로부터 분리된 만큼 동시에 경험적인 것으로 분리되었다. 알뛰세는 모든 철학을 계급투쟁과 과학적 실천의 복합된 결과에 의해 이론적 틀 안에서 산출된 것으로 재(再)정의함으로써 자신의 초기 저작의 오류를 시정하려고 한다. 초기저작들의 기본적인 명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자기비판과 근본적인 재(再)사유는 『철학과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에서 철학과 특수 과학의 관계, 철학과 이데올로기의 관계, 그들의 공통성이 다루어지고,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으로서 철학의 정의가 맹아적 형태를 보이고 있다. 철학은 과학을 보장해 주지 않으며, 철학에는 어떤 보장을 해주는 대신 실재 대상이 독립적으로 그리고 그것이 이해되기 전에도 존재한다는 필연성만이 있다. 과학지식의 생산은 투쟁 속에서 일어나며, 과학의 발전을 방해하고 위협하는 어떤 것에 대해 그 자신의 것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는 담론적 특징을 갖는다. 더우기 과학과 연결된 유물론자의 입장은 노동운동의 실천적이고 정치적인 이익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으며 이 과학은 직접 정치와 연결된다. 과학과 철학 그리고 계급투쟁 내에서 과학의 역할을 재(再)규정함으로써 알뛰세는 초기 저작의 철학의 정의에 대해 그에게 가해진 비판들을 재(再)사유하고, '이론의 자율성'의 포기와 '이론주의의 정치주의로의 대체' 그리고 철학을 '이론에 있어서의 계급투쟁' 또한 정치적 개입(political intervention)으로 재(再)정의 한다.
3. 『이론에 있어서의 계급투쟁』으로서의 철학의 재정의
철학의 대상은 과학의 대상과 구별되며, 철학의 방법은 특수한 세계관적 기능과 연관된다. 이데올로기는 단순히 전(前)과학적 의식이 아닌 복합적인 개인의 행동방식으로 고찰되며, 이데올로기가 현실에 대해 갖는 관계는 거짓(false)된 것인 반면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현실에 대하여 이데올로기가 갖는 관계가 참(correct)으로 규정된다. 동시에 이데올로기는 과학자들의 실천적 활동의 필연적인 구성부분으로서 그들의 '자생적 철학'으로 해석되며,과학발전의 분기적이고 위기적인 시기에만 의식될 수 있으며 그때에만 실제적인 성격을 획득한다. 유물론 철학의 과제는 그와 같은 관념론 철학의 착취로부터 과학을 보호하기 위한 것에 있다. 왜냐하면 과학의 내재적인 자기비판은 과학적 실천 속에 존재하는 이데올로기의 영역으로부터 해방되게 하지 못한다. 오직 유물론적 철학자들의 연합만이 이 같은 세력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알뛰세는 철학적 명제들을 과학적 명제로부터 분리하여 테제(theses)로서 정의하여 철학적 명제들은 과학적 입증 또는 검증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것들은 '진리(truth)' 또는 '허위(false)'가 아니라 '옳음(correct)'과 '그름(incorrect)'으로 판별될 수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먀르크스주의는 지식이 물질성과 사회성을 담보한다는 다른 장소에서 출발한다. 왜냐하면 과학의 대상들은 검증되고 경험적으로 증명되는 반면에 철학의 대상들은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철학의 역사는 두 가지 경향들 즉 관념론적 경향과 유물론적 경향 사이의 투쟁으로 환원되며, 철학적 개입의 목표는 과학적인 것을 이데올로기로부터 분리시키는 구획선(dividing line)을 긋는 것이다. 어떠한 철학도 중립적이지 않으며 철학에서 나타나는 경향성들(tendencies)은 최종심에서 관념론과 유물론간의 적대관계를 축(軸)으로 형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철학은 갈등의 장으로서 여기에는 순수한 유물론자나 관념론자가 있을 수 없으며 철학의 모든 입장은 정치적 효과(political effect)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철학은 최종심에서 이론의 장에서의 계급투쟁이다'고 한 이유이다. 왜냐하면 관념론 철학의 정치적 효과는 이데올로기 투쟁을 분산시킴으로써 사회 전체를 변혁하려는 노력을 상쇄시키며 기존 상태의 이익을 구하는 사람들에게만 유효하다.
그러나 관념철학에서의 기원과 마찬가지로 경제가 사회적 전체의 중심 또는 유일한 기원이라고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경제는 최종심에서 복잡하고 불균등한 사회적 전체를 결정한다. 왜냐하면 경제는 그 자체로 불균등하고 모순과 투쟁의 장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요 경제적 모순은 노동과 자본간의 모순인데, 이는 프를레타리아와 부르주아간의 계급투쟁을 불러일으키는 모순이다. 존재와 경제, 계급투쟁의 우위는 서로 연관된 명제이며 그들을 연결시키는 고리를 갖고 있는 것이 철학적 테제이다. 그러므로 과학적 지식의 문제에서 철학은 정치적인 동시에 이론적인 효과를 갖는다.
다음으로 철학과 과학의 관계에서 시간성의 문제를 다루면서 알뛰세는 철학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과학의 존재를 전제로 하며, 모든 철학은 과학적 단절을 통한 새로운 철학으로 정립되기 위해서는 '철학적 침묵'이 존재하며, 과학이 철학을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지연의 시간(time-lag)'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철학은 언제나 사후(事後)에, 과학의 출현 뒤에 등장한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 철학이 필연적으로 과학에 뒤처져 발전에 장애를 받아 왔으며 그 대표적 편향이 제2인터내셔널의 편향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편향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필연적인 '지연(lag)'의 기능으로서 불가피한 것이었다. 즉 과학이 철학을 재구성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며 철학은 필요한 '지연의 시간'이 없이는 탄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철학은 단순히 과학들과 유지하고 있는 관계로서만 설명될 수 없는 이유가 과학들에 대해 철학의 관계는 철학의 고유한 결정을 구성하며 여기에 철학의 능동적 역할이 있다. 즉 철학과 다른 이데올로기적 세계관들 사이의 전체적 구별은 철학이 과학적 개념들을 조정 또는 방어하며 철학은 언제나 사후(事後)에 나타나지만 과학적 발견을 지배한다.
알뛰세의 철학에 대한 새로운 정의에서 가장 논쟁적인 것은 알뛰세가 철학을 '이론의 영역에서의 정치학(polities)'으로 재(再)정의하고, '철학에 있어서의 당파성(partisanship)'을 주장하면서 철학자들의 비타협적인 계급입장을 주장하는 데 있다. 즉 마르크스주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과학'이 될 수 없으며, 이 과학은 경제, 정치, 이데올로기 내의 계급착취와 억압 · 지배의 매카니즘을 폭로하기 때문에 오직 노동자계급 운동 속에서 마르크스주의 과학은 혁명의 이론적 무기가 되어왔다. 철학적 투쟁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궁극적으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ideological hegemony)'32)이며, 관념론적 철학의 공격으로부터 과학적 실천을, 관념적인 것들의 공격으로부터 과학적인 것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 구획선을 긋고 있는 것은 유물론적 철학이다. 철학에서는 '혁명'만이 아니라 '반(反)혁명'도 가능하며 전진운동 뿐 아니라 반동적인 운동들도 반영된다. 따라서 반대 경향에 대항하는 모든 철학은 당파적이며, 이러한 경향들은 계급입장 또는 계급갈등과 연관되어 철학은 계급투쟁에 참가한 계급 곁에서 정치의 과학성을 나타낸다. 따라서 역사의 원동력은 따라서 대중(mass)이 아니라 계급투쟁(class struggle)이었으며, 계급투쟁의 물질성은 경제적 생산의 모순들 내에 계급투쟁이 정착된다는 사실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었다.
즉 사회계급이나 개인을 넘어서 있는 계급투쟁의 우위성에서 출발한다. 사회적 생산의 제(題)실천의 진정한 주체들은 생산관계이며 인간의 사회적 그리고 역사적 과정들의 주체가 아니라 담지자(support)에 불과하므로 어떤 개인도 자본주의적 재(再)생산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인간은 언제나 제(諸)계급의 구성원들, 분파들로서 계급투쟁에 개입되고 또한 계급 이데올로기들(class ideology)로써 작용하고 행동한다. 결론적으로 새로운 철학의 정의에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알뛰세에 의해 존재론이나 인식론이 아닌 하나의 실천, 즉 혁명적 정치학의 지속적실천으로 인식되고, 그것은 추상에서의 마르크스주의 과학이 아닌 정치적 계급 투쟁 내에서의 마르크스주의 과학을 구체적 상황들에 적용함으로써 인도된다는 것이다.
V. 결 론
알뛰세는 그의 이데올로기론을 통해 지배 이데올로기가 구체적인 국가장치 속에서 실행되는 보편적인 사회적 실재로 재구성했으며, 계급투쟁 속에서 대립하는 사화계급들의 존재조건과 실천을 규정하는 하나의 사회적 실천양식으로 정의하였다. 또한 인식론적 단절의 개념을 통해 '이론적 실천(theoretical practice)'으로서의 철학의 개념을 '이론에서의 계급투쟁(class struggle in theory)'으로써의 철학으로 재 정의하여 철학적 영역에서의 계급입장과 비타협적인 이론적 투쟁이 과학자와 철학자의 중요한 임무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철학이 가지는 세계관적 역할을 인식함으로써 이데올로기를 전(前)과학적 의식이 아닌 과학과 철학의 필연적인 구성부분으로 해석하며, 오직 과학발전의 위기적인 상태에만 인식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알뛰세의 이론적 진화과정에서 초기 저작의 문제설정은 '자기비판과 재(再)사유'의 두번째 시기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거치지만, 그의 이론 시기에 설정된 목표들은 이후의 시기에서 '이론에서의 계급 투쟁'으로서의 철학의 완성과 연관된 자신의 의미를 유지 · 보존하고 있다.
다음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스탈린주의와 관계된 그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스탈린주의가 마르크스주의와 인류역사에 끼친 폐해를 인정하지만, 우파로부터의 스탈린 비판을 부르죠아 수정주의의 우(右)편향적 결과로 인식했다. 그에게 후르시초프의 스탈린 비판은 스탈린주의 일반을 문제삼은 것이 아니라 주로 스탈린의 권력남용 내지 개인숭배(personal cult)에 국한되었기 때문에, 스탈린주의의 이론적 핵심인 생산력주의(productionism), 경제주의(economism), 주의주의(voluntarism)는 청산되지 않은 채 계승되어 여러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물질화된 점을 지적하였다. 스탈린적 편향의 근본문제들을 간과한 것은 현대 마르크스주의 속에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서의 수정주의가 재생산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들을 산출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스탈린적 편향이 단순히 '개인숭배'와 '사회주의 합법성의 위반'에 대한 비판으로 극복될 수 없음을 인식하고 그 대안을 마오(Mao)의 중국에서 구했다. 그는 '대장정'에서 '문화혁명(cultural revolution)'에 이르는 중국혁명 이 스탈린 사후 소련에 대한 사회주의적 발전과 민주주의적 공산주의(democratic communism)의 명백히 우월한 모델을 제공했다고 생각했고 또한 그렇게 이론화했다. 중 · 소분열을 기화로 제기된 중국의 소련에 대한 수정주의(revisionism)논쟁은 중국의 스탈린주의 옹호의 전거를 제공하였고 알뛰세의 친중(親中)노선은 은연중에 그를 스탈린주의자로 비취지게 하였다. 그러나 결코 그는 스탈린주의자로 간주될 수는 없다. 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편향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를 구원하는 것이었고, 알뛰세의 스탈린주의의 청산문제 역시 이것과 동궤(同軌)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그 이후 1976년에서 1978년에 걸쳐서 발표된 글들 - 「마침내 맑스주의의 위기가」, 「오늘날의 맑스주의」, 「공산당내에서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것」 등 ?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스탈린주의에 의해 재(再)활성화되고 동시에 봉쇄된 혹은 억압된 하나의 본질적인 위기로 인정하고 마르크스주의 국가이론의 부재를 선언하였다. 이것은 그의 이전의 진술을 상당 부분 무효화시키는 자기파괴적인 흔적을 내포하였고 오늘날 제기되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 논쟁의 단초를 제공하는 진술이기도 하다. 그의 마르크스주의와 당시 정세(conjuncture)사이의 시대적 괴리(乖離)는 알뛰세의 이론적 동요의 원인이었으며, 이것은 그가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에서 미래의 그 철학이 맞이하게 될 운명을 예고한 것으로 표출되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세계적 규모의 역사적 차원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현상이며 오늘날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기반한 혁명적 투쟁조직이 직면한 제반 난점과 모순 및 딜레마 등에 관한 문제"라는 것을 인정한다.33) 여기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직면한 위기는 그 위기는 일시적이거나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누적된 결과로 폭발하며 스탈린적 편향(Stalinist deviation)으로 환원될 수 없는 마르크스주의의 모순에 기인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마르크스주의 내부에 침투되어 있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은 단순히 부차적인 경향에 머무르지 않고 주요한 것이 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동구에서 당과 국가가 융합되어 국가가 소멸하기보다는 더욱 강화되는 이유는 바로 부르주아 국가의 이데올로기가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재생산되는 데 있다고 주장하였다.34)4 현존 사회주의권의 붕괴가 외적요인 보다는 내적 모순의 결과이며,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의 근원은 결국 근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마르크스 이론의 내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결과임을 감안할 때 알뛰세의 주장은 현재성을 가지며, 그의 테제들이 우리 시대의 혁명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다시 제기하고 정식화할 수 있게 해 주며, 오늘날의 마르크스주의를 설명하는 타당성을 제기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는 많은 질문들을 우리에게 제시하였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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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주
1 S. 카르츠는 알뛰세의 저작들이 "철학, 정치, 과학, 혁명전략을 망라해서 건드리는 첨예한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고 지적한다. S. Karsz, Theorie et Politique : Louis Althusser (Paris: Fayard, 1974), p.17.
2 Nikita S. Khrushchev, "Secret Report to the 20th Party Congress of the CPSU," The Stalinist Legacy (Harmondsworth : Penguin Books, 1984) 참조
3 L Althusser, For Marx (London: New left Books, 1969), p.78 참조.
4 Gregory Elliott, 'Althusser's Solitude", Economy and Society, Vol. 17, No.4 (1983), p.482 참조
5 엘리어트는 알뛰세의 이론적 편력에 따른 그 정치적 입장의 변화를 제1의 '정통주의'에서, 제2기의'마오주의(Maoism)'를 거쳐, 제3기의 '좌익 유로코뮤니즘'으로의 이행에 의해 추동(推動)된다고 본다. T. S. Elliott, The Detour of Theory (London: Verso, 1987) 참조
6 J. Ranci?re, La L?con d'Althusser (Paris: Gallimard, 1974) 참조. 또한 반(反)알뛰세의 입장에서 씌여진 대표적 저작들로는 다음을 참조. E. p. Thompson, The Poverty of Theory and Other Essays(London: Monthly Review Press, 1978); Adam Schaff, Structural Marxism (New York: Pergamon Press, 1978); Simon Clarke (ed.), One Dimensional Marxism (London: Allison & Busby), 1980) etc.
7 L. Althusser, essays in Self-Criticism (London: New Left Books, 1976), pp.117-125
8 L. Althusser, Lenin and Philosophy and Other Essays (London: New Left Books,1971), p.152.
9 Ibid p.l66.
10 Idid, p.167
11 Ibid, p.170.
12 T. Benton, The Rise and Fall of Structural Marxism (London: MacMillan Publishers, 1984), pp.101-102 참조
13 A. Callinicos, Is There a Future for Marxism (London; Macmillan Press, 1982), p.76.
14 L. Althusser, Lenin and Philosophy and Other Essays, pp.183-186.
15 Steven B. Smith, Reading Althusser (Ithoca Cornell Univ. Press, 1984), p.87 참조.
16 바슐라르는 『과학정신의 형성』에서 과학의 발전의 시기를 전(前)과학적 시대, 과학적 시대, 새로운 과학정신의 시대로 나누고, 인식론적 단절이란 과학정신이 전과학적 시대로부터 벗어나 발생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Gaston Bachelard, La Formation de l’esprit Scientifique(Paris: Librairie Philosophique J. Vrin, 1972), p.7 참조.
17 L. Althusser, For Marx p.33.
18 Ibid., p.184.
19 L Althusser and B. Balibar, Reading Capital, p.35.
20 Ibid., pp.40-1.
21 L. Althusser, For Marx, p. 167.
22 Ibid., p.233.
23 L. Althusser. and E. Balibar, Reading Capital, p.46.
24 L. Althusser, For Marx, p.192. Alain Badiou는 "과학이 변형(變形)의 과정인 반면, 이데올로기는…반복(反覆)의 과정이다'고 한다. Alain Badiou, "Le (Re) Commencement du M?terialisme Dialettique: Critique 240 (1967), p.449.
25 V. I. Lenin, "What is to be Done?,," Collected Works,, Volume 5 (Moscow, Progress Publishers, 1961) 참조
26 L.Althusser, Lenin and Philosophy and Other Essays, p.230.그리고 "practique Th?orique et Formation Th?orique. Id?ologie et Lutte Id?ologique," p.23 참조
27 V.L. Lenin,"’Left- Wing' Communism - An Infantile Disorder," Collected Works, Vol. 31 (Moscow: Progress Publishers, 1966), p. 25.
28 Mike Gane, "On the ISAs Episode," Economy and Society, V이. 12, No. 4 (1983), p.435 참조
29 L Althusser and B. Balibar, Reading Capitial, p.77.
30 Ibid., p.90.
31 L. Althusser, "Th?orie, Practique Th?orique et formation Th?orique et Lutte Id?ologique," Mimeoraphed, (April 1965), p.6.
32 L Althusser, "Is it simple to be a Marxist in Philosophy," Essays in Self-Criticism (London: New Left Books, 1976), p.166.
33 L. Althusser, "Ihe Crisis of Marxism" in Il manifesto (ed.), Power and Opposition in Post-Revolutionary Societies (London: Ink Links, 1979), pp.225-237 참조
34 Ibid,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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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사항
주원덕
동국대학교 정외과 강사 사회과학연구원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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