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1.문제제기 또는 문제해명
2.존재론의 탈철학화: 경험론의 형이상학 비판
3.인식론의 탈철학화: 콰인의 경험론 비판
1)분석성 비판
2)환원주의 비판
4.콰인의 철학개념: 과학의 자기-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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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자명 새한철학회
학술지명 철학논총
ISSN 1226-9379
권 24
호 1
출판일 2001. 4. 30.
철학의 탈철학화: 콰인의 철학연구
시영주
경북대
1-066-0102-07
국문요약
이글은 콰인을 주축으로 그 전과 후를 살펴봄으로써 영미철학에 어떤 일관된 흐름을 읽어 내고 그 결과 콰인에 이르러 새로이 전개되는 철학 개념을 삼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철학의 탈철학화이자 과학의 자기-인식이다. 먼저 영미철학의 철학적 특징인 형이상학 부정은 그들의 철학의 탈철학화 운동 중 존재론의 탈철학화이며, 다음으로 콰인에 이르러 완수된 인식론의 자연주의화는 인식론의 탈철학화이다. 마지막으로 이 두 가지의 탈철학화 운동이 모두 성취되는 것이 철학의 탈철학화 운동의 완결이라 할 수 있다. 이리하여 철학의 개념이 전이되는 것과 그렇게 전이된 철학개념에 입각한 새로운 철학의 전개가 콰인에게서 보여진다. 콰인의 새로운 철학 개념은 더 이상 제일철학ㆍ제일과학이 아닌 과학 내의 철학, 과학 내의 인식론, 과학의 자기-인식이다. 과학의 정당화를 포기한, 따라서 과학 이론이 오류가능성에 열려 있음을 시인하는, 콰인의 과학적인식론은 불확실성에 대한, 콰인 식으로 하면 불확정성에 대한, 반-데카르트적 대처방법이다.
영문요약
Dephilosophizing of Philosophy : Quine's Philosophizing
The aim of this essay is to read out a consistency running through the modern Anglo-phone philosophy of which W. V. Quine is the axis, and to looking into a new concept of philosophy being unfolded by him. It is no more than the dephilosophizing of philosophy and the self-knowledge of science. Firstly the repudiating of metaphysics, characteristic of Anglo-phone philosophy, might be called its dephilosophizing of ontology. Secondly, naturalizing of epistemology, accomplished by Quine, the dephilosophizing of epistemology. Lastly, the accomplishment of broth dephilosophizing taught be regarded as the fulfillment of the dephilosophizing of philosophy. Consequently the shilling of the concept of philosophy to a new one being unfolded by Quine could be shown. The new concept of philosophy of Quine is not any more a first philosophy, nor a first science, but philosophy within science, epistemology within science, self-knowledge of science. This scientific epistemology, abandoning the role of sensory evidence of science, that is, the justification of science, and accordingly acknowledging the corrigibility of scientific theories, is the anti-Cartesian coping with uncertainty, in Quine's phrase, with indeterminacy.
한글키워드
콰인, 경험론, 과학적 인식론, 과학의 자기인식, 반-데카르트주의
영문키워드
Quine, empiricism, scientific epistemology, self-knowledge of science, anti-Cartes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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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문제제기 또는 문제해명
우리는 콰인W. V. Quine1)을 주축으로 그 전과 후를 살펴봄으로써 영미철학에 어떤 일관된 흐름을 읽어 내려고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철학의 탈철학화(dephilosophizing of philosophy)이다. 영미철학은 영미권으로 철학을 특성화하기 시작한 근대 영국 경험론에서 현대의 논리원자론과 논리실증주의, 이어서 현대 후기분석철학에 이르기까지 철학을 탈철학화 하려 한다는 것이 우리가 보는 영미철학의 일관성이다. 철학을 탈철학화 한다는 것은 철학에서 철학의 특성을 제거한다는 말인데, 이것을 그들의 철학활동으로 확인한다는 데는 모순이 있다. 철학을 더 이상 철학이 되지 않게 하면서 그 활동을 바로 철학으로 확인하다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 활동을 다름 아닌 철학으로 확인한다면 이때 철학에는 의미의 변이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을 탈철학화하면서 그것을 바로 그들의 철학활동으로 확인한다는 것은 동시에 종래의 철학개념을 부정하고 새로운 철학개념을 정립하려는 어떤 의지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영미철학의 어떤 일관된 흐름은 새로운 철학개념 정립이라고 해도 되겠다. 그리고 콰인은 이 일에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이정표 하나를 추가했다.
어떤 의미에서 어떤 의미로 철학의 개념이 이동하는지, 거기서 콰인의 역할은 또 어떤 것이었는지 하는 점들이 이 글에서 기대되는 것들이겠다. 먼저 종래의 철학개념을 이해하는 데는 두 가지 관점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하나는 종래 철학자 그들의 관점에서 철학개념을 이해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새로운 철학개념 정립을 꾀하고 있는 그들 영미철학자들이 비판하려는 개념으로서 종래 철학개념을 살펴보는 것이다. 어느 편도 손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선택하는 방법은 목적 상 후자이다. 우리의 목적은 영미경험론 전통의 철학적 일관성을 읽어내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콰인에 의해서 완결되는 현장을 목격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미철학의 철학개념 자체에 대한 비판이나 콰인의 영미철학 전통 비판 및 그의 철학개념 이해들을 다시 비판하는 일은 지면관계 상 다음으로 미룬다.
과연 영미철학의 철학개념이 종래 철학개념과 구별되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혹 있겠다. 영미철학으로 불릴 수 있는 최초의 역사적 시간을 가린다면 그것은 바로 로크(J. Locke) 이래 근세 철학일텐데, 흔히 영국 경험론이라 불리는 이들 철학적 경향이 종래 철학과 구별된다고 하기 보다 동시대 대륙 합리론으로 명명되는 일단의 철학적 경향과 대립한다고 보는 것이 통상적 이해방식이겠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륙합리론은 자신을 전시대 중세 스콜라 철학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정체확인하고 있기에, 그런 대륙합리론과 대립하는 영국경험론이라면 이 영국경험론이 어떻게 종래 철학개념과 구별되느냐고 의문스러워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 공히 전시대 중세의 철학적 경향에서 벗어나려 하되, 대륙의 합리론은 고대 철학적 전통과 상통하는 점이 있는 반면 영국의 경험론은 이 고대의 철학적 전통에도 반대한다는 것은 철학사적 상식일까. 더구나 영국 경험론이 특징 중 하나가 형이상학 비판이라는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일까. 문제는 경험론 전통의 영미철학을 종래 철학개념과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논문 "경험론의 두 도그마" 한 편으로, 경험론의 역사적 최종 흐름이었던 논리실증주의를 와해시킨 콰인의 철학에서 어떻게 영미철학의 일관성을 읽어 낼 수 있는지 밝혀 내는 것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경험론을 비판하는 자를 경험론 전통의 철학적 흐름 속에 있는 자로 평가하는 데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기에 말이다.
사실 우리 논문의 초점을 영미철학의 경험론적 전통보다는 콰인의 철학개념에 있다. 영미철학의 일관성에 대한 논의는 콰인을 제대로 조명하기 위해 설정한 주변장치이다. 아니, 콰인의 철학활동을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읽어 내려고 할 때 도리어 그의 개인적 차원 또한 오롯히 부각되기 때문에, 영미철학의 전통적 흐름을 강조하는 일이 더욱 요긴하다. 영미철학의 철학적 특징은 콰인에 이르러 더욱 철저해지며, 콰인 이후 신개념의 철학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영미철학의 특징은 철학의 탈철학화이고 이를 설득력 있게 해명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다. 철학의 탈철학화는 철학의 부정에 다름 아니다. 철학이란 없다는 것이다. 철학적 인식이란 없으며 무엇가 인식이 있다면 그것은 과학적 인식뿐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철학적 인식을 부정하고 과학적 인식만을 긍정하는 인식활동을 과학으로 분류하지 않고 여전히 철학으로 분류하는 까닭은 무엇이며 이것이 어떻게 철학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콰인은 자신의 학문활동이 무엇으로 불리든 관심 없음을 표하기도 한다. 자신의 연구가 철학으로 분류되는 것에 아무런 관심도 책임도 느끼지 않는다. 콰인은 자신의 연구가 어디로 분류되든 상관없다2). 그는 당장 자신의 관심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지만 그것이 어느 전체의 어떤 부분인지는 전혀 관심 없었던 것인가. 하지만 그는 때로 철학에 대한 언급, 철학의 연구 주제에 대한 언급도 주저하지 않는데 이때 그는 철학에 대한 어떤 개념을 확정하고 있었던가3). 우리는 앞으로 영미철학의 철학적 특징인 형이상학 부정을 그들의 철학의 탈철학화 운동 중 존재론의 탈철학화로, 콰인에 이르러 완수된 인식론의 자연주의화를 인식론의 탈철학화로 읽어 내고 이 두 가지의 탈철학화 운동이 모두 성취되는 것을 철학의 탈철학화 운동이 완수되는 것으로 읽어 낼 것이다. 이리하여 철학의 개념이 전이되는 것과 그렇게 전이된 철학개념에 입각한 새로운 철학의 전개를 콰인에게서 찾아 볼 것이다.
2.존재론의 탈철학화: 경험론의 형이상학 비판
콰인의 철학 부정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선, 앞서 말했듯이, 콰인 한 사람을 두고 볼 것이 아니라 그를 영미철학의 큰 흐름 위에 올려놓고 볼 것이 필요하다. 그 역시 경험론 전통 속에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영미철학의 경험론적 전통을 더욱 명료화하고 철저하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철학적 인식을 부정하는 것, 더 정확히 말해서 초감각적 실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인식주장을 거부하는 것은 콰인 한 사람의 특징이 아니라 현대 영미철학의 기조흐름이다. 논리실증주의, 논리원자론 모두 공통되게 주장하는 것이다. 콰인 역시 그 흐름, 그 역사 위에 함께 서 있을 뿐이다. 거슬러 올라가서는 근대 영국경험론까지 가게 되며, 논리실증주의를 논리경험론이라 부르는 이들은 영국경험론을 고전적 경험론이라 부르면서 일체감을 표현한다. 영미권 철학의 공시적ㆍ통시적 특징으로 '철학적인식 부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철학적 인식 부정이 영국경험론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데 의아할 수도 있다. 영국 경험론도 분명 하나의 철학조류이니까. 대륙합리론과 함께 서양근대철학의 이대조류라는 것은 철학사적 상식이 아닌가. 그런데 영국경험론이 철학적 의식을 부정한다고 해도 되는가. 지금 여기서 영미권 철학의 철학적 흐름이 철학적인식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좀 앞서 간 감이 없지 않다. 영국경험론이 철학적 인식을 부정한다고 하는 것보다 대륙합리론과 다른 철학을 전개한다고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겠다. 대륙의 합리론이 이성을 그들 진리주장의 근거로 삼았다면 영국의 경험론은 말 그대로 경험을 인식의 기원ㆍ원천으로 채택했으며 이러한 차이에서 영국경험론의 철학적 특징이 두드러진다고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겠다. 영국경험론에서 발원한 철학적 흐름의 본색이 종국에는 철학의 부정임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현대 영미의 철학적 경향까지 호흡을 길게 끌고 와야 한다. 그리하여 영국경험론의 철학적 특징의 함축이 바로 철학의 부정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해야 한다.
우선 영국경험론의 철학적 특징을 살펴보기로 하자. 누구의 철학이든, 어느 학파의 철학이든 그의 철학적 특징을 살펴보는 일은 이중적으로 이루어진다. 소위 그의 철학이라고 할 내용이 있을 것이고 또한 철학에 대한 그의 이해, 이른바 철학관이 있을 것이다. 그러그러한 내용이 그의 철학이 되는 데는 철학에 대한 그의 특정한 이해와 무관할 수 없고, 그의 철학 개념 때문에 바로 그러그러한 그의 철학이 전개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느 누구의 철학이든 그에게서 그의 철학뿐만 아니라 그가 철학을 무엇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찾아낼 수 있어야 하고 그는 또한 우리의 요구에 답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의 철학과 철학개념은 상호함축(reciprocal containment)4)관계에 놓여 있다5). 영국경험론의 철학적 특징을 살펴보는 일도 마찬가지다. 로크, 버클리, 흄, 그들의 철학 개념이 명시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구체적으로 그들의 철학 내용을 살펴보는 데서 거기 함축되어 있는 그들의 철학개념을 읽어 낼 수 있겠다.
절대확실성을 찾아 거듭되는 절대적 회의를 특징으로 하는 데카르트와 달리 가능한 확실성을 찾는 것이 로크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데카르트의 사유하는 존재의 확실성 및 본유관념에 대해 로크의 일차적 주제는 인식의 기원과 범위 및 한계에 관한 것이었다. 데카르트가 중세와 다른 새로운 실체개념을 정립하고 데카르트 이후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 모두 그들의 실체개념이 그들을 서로 구별하는 기준이자 공통 주제였다면 로크는 중세의 주제 개념인 실체개념 대신 관념을 중심개념으로 채택함으로써 이후 버클리, 흄과 함께 대륙의 합리론과 전혀 다른 철학적 전통을 세우게 된다. 그들은, 영국 경험론자들은 더 이상 실체개념을 그들의 철학적 사유의 중심주제로 삼지 않았다. 만약 실체개념이 그들의 철학을 전개하는 데 주요 역할을 했다면 그것은 부정적 역할이다. 실체개념 부정이 그들의 철학연구 방향이었다. 신이라는 무한실체, 정신과 연장이라는 유한실체를 본유관념으로 확인하는 데카르트와 달리 로크는 정신과 물질의 실체성은 인정하지만 본유관념이란 없음을 논증하고6), 우리 인식의 대상인 모든 관념은 감각경험이나 반성경험, 즉 외부감각이나 내부감각을 통해서 생긴다는 주장으로 영미 권철학에 '경험론'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7).
로크에서 버클리, 흄을 거치면서 주제어는 '관념'에서 '지각' '인상'으로 바뀌어 가지만 인식의 원천으로서 감각경험에 대한 강조는 변함 없이 흐르는 일관된 정신이다. 버클리는 로크에게서 이어받은 경험론 정신을 더욱 철저하게 고수하게 "존재는 지각되는 것이다"(To be is to be perceived)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지각되는 것ㆍ지각된 것만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감각을 통해 지각하는 사물들은 직접적으로 지각되는 것이요, 직접적으로 지각되는 사물들은 관념들이며 또 관념들은 정신과 무관하게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그것들의 존재는 지각되는 데 있다8)." 물질적 실체가 부정된 것이다. 버클리의 대표문구를 완전하게 표현하면 "존재는 지각되는 것이거나 지각하는 것이다"(Esse est aut percipi aut percipere)가 되는데 이는 한 편으로 물질적 실체에 대한 부정을, 다른 한 편으로 정신적 실체에 대한 긍정을 함축하고 있다.
경험론의 마지막 대표주자 흄에 이르면 사정은 어떻게 되는가. 철학하는 시간 보다 당구공을 치는 데서 더 큰 즐거움을 누렸고, 철학 저술보다 영국사 저술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낸 흄에게서 영국경험론 마지막 주자의 모습을 찾는다는 것은 좀 아이러니다. 흄은 어떤 실체도 부인한다. 실체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하지 않는다. 실체는 우리가 그것에 대해 뭐라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없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물질적 실체뿐만 아니라 정신적 실체도 마찬가지다. 흄의 경험론 정신은 더욱 철저해져 그에게 남은 건 감각인상 뿐이다. 무엇인가 있다면 인상과 인상에서 생긴 관념 및 그 관념들의 연합이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흄에 이른 경험론은 현상론이라 불리게 된다.
영국경험론은 실체부정의 과정에 다름 아니다. 동시에 실체 개념을 대체하는 개념으로서 관념, 지각, 인상을 철학무대에 올려놓았다. 실체개념이 철학적 사유의 중심개념이 되기 위해서는 "실체란 무엇인지" 물어야 하고, 그에 앞서 "무엇이 정말 있는지" 물어야 한다. 이른바 존재론적 물음이다. 반면 실체개념을 부정하고 관념 내지 인상을 철학연구의 중심개념으로 등장시켰다는 것은 "무엇이 정말 있는지" 묻기 이전에 "우리가 어디까지 알 수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확실하게 알 수 있는지"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는지" 같은 문제에 자극되었음을 가리킨다. 즉 그들은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나 전제 없는 곳에서 물음을 시작하려 한 것이다. 실체가 무엇인지 묻고 사유하기 전에, 실체를 전제하기 전에 해야 할 물음과 숙고가 있었던 것이다. 인식의 기원, 범위, 한계에 대한 물음 등이 존재의 의미, 본질, 확실성에 대한 물음보다 앞서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인식론 상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실체 등 존재론적 문제를 더 이상 공허하게 다루지 않을 것으로 믿었다. 철학의 초점이 존재론에서 인식론으로 돌려진 것이다.
로크는 "이해를 넘어서는 사물을 다룰 때는 더 주의할 것을 우리의 분주한 마음에 권유하고, 그것이 한계의 절정일 때에는 멈추며, 조사하여 우리 능력의 범위를 뛰어넘는 것으로 발전견되는 일에는 조용히 모르는 채 않아 있는 것이 유용 할 것이라" 한다9). "우리의 일은ㆍㆍㆍ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위에 관계되는 것을 알고자 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ㆍㆍㆍ합리적 피조물이 그의 견해 및 그 견해에 의존하는 행동을 지배하고 또 지배해야 하는 그런 수단들을 발견할 수 있다면, 몇몇 다른 것들이 우리 지식(의 한계)을 벗어난다는 것에 대해 우리가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Book 1, Chap. 1, §6). 버클리 역시 그의 주저『인간인식의 원리에 관한 논고』(A Treatise concerning the Principles of Human Knowledge)에서 밝히는 목표는 학문활동의 오류와 난점의 주요 원인을 탐구하는 인식론적 관점이다. 흄의 경우 그의 인식론적 철학연구 결과 선언하는 저 유명한 흄의 포크(Hume's Fork)는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을까. "만일 우리가-예를 들어 신성이나 강단 형이상학에 관한-어떤 책을 손에 쥐고 있다면 다음과 같이 물어 보자. 이것이 양이나 수에 관한 추상적 추론을 담고 있는가? 아니다. 이것이 사실과 존재에 관한 실험적 추론을 담고 있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불 속에 던져 버려라. 그것은 궤변과 환상 이외에는 아무 내용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10)." 당시 존재론적 초점의 철학연구가 지니는 폐해를 가장 극명하게 비판한 이는 흄이다. "어떤 철학적 용어가 아무런 의미 없이 사용되고 있다는 의심이 조금이라도ㆍㆍㆍ들 때(이런 일은 아주 빈번하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묻기만 하면 된다. 즉 그런 가정된 관념이 어떤 인상으로부터 유래하는가? 그리고 나서 어떠한 것도 찾아낼 수 없다면, 이것은 우리의 의심을 확고히 하는데 기여할 것이다"(ICHU, 30). "학문을 이러한 난해한 문제로부터 즉시 벗어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 오성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여, 그 힘과 능력을 정확히 분석함으로써 그것이 결코 그러한 심원하고 난해한 문제들에 적합하지 않음을 보이는 것이다.ㆍㆍㆍ정확하고 정당한 추론만이 모든 인간과 기질에 적합하고 유일한(즉 보편적인) 구제책이며, 이것만이 난해한 철학과 형이상학의 횡설수설-대중적 미신과 혼합되어 있어서 부주의한 사람들이 얼마동안 그것을 간파하지 못하게 만들고 그것에 과학과 지혜의 분위기를 부여한다-을 전복시킬 수 있다"(ICHU, 21). 이들 영국경험론의 철학적 특징을 무엇인가. 영국경험론을 실체개념 거부의 역사로도 볼 수 있는 이것은, 곧 초감각적 '형이상학적' 인식의 거부이다.
이십세기 초엽 영국의 분석운동에는 브래들리(F. H. Bradley)가 동인을 제공 했다고 할 수 있다. 러셀(B. Russell)과 무어(G. E. Moore)의 철학운동은 브래들리의 절대적 관념론에 대한 반작용이었기 때문이다11). 브래들리의 형이상학에 대한 반발에 기인한 러셀의 논리원자론이 감각소여를 기술하는 원자명제를 세계 구성의 기초요소로 간주하는 데서 저 영국경험론의 철학 전통이 여전함을 읽을 수 있지만, 러셀이 자신의 철학에서 형이상학적 요소를 완전히 제거한 것은 아니다. 브래들리의 극단적 일원론에 반대한 결과 극단적 다원론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또 한 명의 논리원자론자 비트겐슈타인(L. Wittgenstein)은 의미(sinnvol)ㆍ무의미(sinnlos)ㆍ반의미(wiedersinn) 구별을 보이며 단호하게 형이상학을 학문의 영역에서 축출해 버린다. 논리실증주의는 비트겐슈타인의 형이상학 비판을 그들의 철학정신으로 물려받는 동시에 유의미성의 구분 기준 역시 비트겐슈타인에게 의지한다. 슐릭(M. Schlick), 카르납(R. Carnap), 에이어(A, J. Ayer)등 논리실증주의자들이 의미검증 원리에 입각해서 철학을 유의미한 인식영역에서 축출하는 것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저 흄의 포크에 기원한다.
논리실증주의는 원래 유럽에서 독일어권 철학자들이 시작한 운동인데 왜 그것을 영미의 철학흐름으로 돌리는지 의아할 수도 있겠다. 물론 형이상학을 비판한 건 영국경험론자들뿐인 것은 아니다. 칸트도 신칸트학파도 형이상학을 비판했으며 논리실증주의의 최초의 발원지인 독일어권 철학자들, 마하, 슐릭, 카르납 등도 형이상학을 비판했다. 그러나 형이상학 비판을, 존재론을 탈철학화 하려는 경향을, 철학을 경험론화 하려는 일관성을 저들 영미권 철학전통으로 돌리는 까닭은 그들의 비판은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논리실증주의 초기 비엔나 학파를 결성하며 철학적 노선을 천명할 때 그들이 밝힌 가장 주요한 선조는 흄과 마하(E. Mach)이었다. 독일어권 철학자들은 독일의 관념론 전통에 반발해서 형이상학을 비판했지만 오래지 않아 다시 형이상학으로 돌아갔으며 독일어권에서 논리실증주의는 이제 거의 스러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논리실증주의가 독일어권에서 처음 발생했지만 국가사회주의의 집권으로 그들의 철학적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자 영미권으로 이주하게 되고 거기서 이미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던 영미의 분석운동과 합류해서 전반적인 철학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논리실증증주의를 영미의 철학흐름으로 돌리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또한 논리실증중의의 비판ㆍ극복이, 경험론적 전통을 더욱 철저화한 결과 '내부적으로' 이루어짐을 가산하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영미의 경험론적 철학정신에서 철학의 본래적 성격과 위배되는 어떤 문제를 감지한다. 그것은 인식의 원천을, 인식의 가능성을 경험이라고 하는 데서부터 배태되어 있다. 다름 아니라 경험론적 철학정신을 끝까지 밀어붙이면 철학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과연 영국경험론의 마지막 주자 흄에 이르면 형식과학이나 내용과학이 아닌 것이면, 그러면서 모종의 인식을 주장하는 것이면 뭐든지 모두 불태워 버리라는 극단적인 선언까지 하게 되지 않는가. 형이상학이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제일철학이 없어지는 것이다12). 경험론적 철학전통이 부정하는 철학적 인식이란, 감각에 기초한 경험을 통해서 그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인식이고 바꾸어 말하면 형이상학적 인식, 제일철학적 인식이라 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형이상학(形而上學; metaphysics)을 부정하고 나면 남는 건 형이하학(形而下學), 피직스(physics), 자연학, 과학이다. 경험론적 철학정신의 이러한 함축을 간파한 이는 바로 콰인이다. 콰인은 영국경험론 이래 일관되게 경험론을 견지한 영미권철학이 몇 백년 동안 도그마를 숨기고 있었음을 간파했다. 바꾸어 말하면 영미권 철학이 경험론적 철학정신이 그 동안 미진하게 추구되어 왔음을 폭로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콰인이 어느 지점에서 경험론과 다른 길을 걷게 되는지 살펴 볼 차례다. 그리하여 콰인의 철학적 인식 부정이 얼마나 철저한지 살펴 볼 차례이다.
3.인식론의 탈철학화: 콰인의 경험론 비판
1)분석성 비판
라이프니츠, 흄, 칸트 등 다같이 진리는 두 가지로 나뉜다고 여겼다. 이성의 진리와 사실의 진리로 나뉘어진다고, 관념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과 사실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나뉘어진다고 믿었다. 이것 외에는 모두 아무 진리주장도 하지 않는 것으로, 의미 없는 것으로 버리기로 했다. 여기에 관해서 수백년 동안 아무런 이의도 없었다. 칸트의 선천적 종합판단의 유무에 관해선 이의가 많았지만 말이다. 논리원자론을 거쳐 논리실증주의를 거쳐도 저 구분에 관해선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다. 영미권 철학에는 그들이 형이상학을 부정한다는 공통점 외에 이 공통점도 있었던 것이다. 콰인이 형이상학 부정을 경험론적 철학전통과 공유한다면 진리의 구분에 관해선 그들과 결별한다. 이렇게 콰인이 경험론적 철학적통에서 한 발짝 떨어지는 데서 경험론의 중요한 이정표 제시된다. 콰인은, 판단을 분석판단과 종합판단 두 가지로 구별하고 그것을 당연시해 오던 철학적 상식에 의문을 제시한다. 이후 영미권 철학전통에서 분석성은 예전과 같은 당연성을 결코 얻지 못하게 된다. 콰인은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그 의미만으로 참이 되는 그런 인식이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성의 진리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분석성 비판이다.
이성의 진리가 없다니, 필연적인 진리가 없다니,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독신남성"이라는 것이 어떻게 필연적 진리가 아니란 말인가. 총각을 봐야 그가 결혼하지 않은 독신남성이라는 것을 아는가. 안 봐도 안다. 총각이란 말만 알면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독신남성이란 건 누구나 다 아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총각이 결혼하지 않은 독신남성이라는 건 또 어떻게 아는가? 그것이 총각의 의미이기때문에? 총각의 의미를 분석하면 그렇게 된다고? 그러니까 분석판단이라 한다고 할 텐가? 그것이 총각의 의미라는 것 그것이 총각과 같은 의미라는 것은 어떻게 아는가? "총각은 총각이다"는 곧바로 맞는 말인 줄 알겠는데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독신남성이다"가 맞는 건 어떻게 아는가? 사전에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독신남성이라고 정의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사람들이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독신남성이라는 의미로 다들 사용한다고? 오히려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사용하기 때문에 사전이 그런 용법을 보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총각'은 오랫동안 사람들이 모두 지금의 의미, 즉 결혼하지 않은 독신남성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은 적어도『시경』(時經)이 찬집되기 전까지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문자 그대로, 당시 결혼하기 전에 두 갈래로 갈라 머리 위 양쪽에 뿔처럼 동여맨 머리 모양 및 그렇게 맨 아이를 가리키는 '총각'(總角)이 결혼하지 않은 독신남성과 동의어로 쓰이게 되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일 것이다. 더구나 총각이 미혼남성을 가리키는 것은 한국에서 통용되는 것이고, 이 단어의 탄생지인 중국에서는 남녀 통칭이었다13). 한국에서만 보더라도,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보면, 오늘날의 결혼하지 않은 독신남성은 거의 대부분 총각이 아니지 않은가. 또한 결혼한 남성 중에서 총각을 보게 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독신남성이다'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사전 상의 정의들은 보고적 정의이다. 사전에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진 정의도 있지만 이들 방법 모두 근저에선 오히려 동의어 개념에 의존한다. 정의 개념에 호소해서는 동의어와 분석성의 열쇠를 찾을 수 없다.
"총각은 총각이다"가 진리가 되는 소이하고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독신남성이다"가 진리가 되는 소이는 서로 다르다. 전자는 논리적 진리인데 후자는 그 진리가 동의어 개념에 의존한다. 후자가 문제다. 후자는 동의어로 연결되기 때문에 후자의 판단형식이 전자의 판단형식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총각"이라고 할 자리에 언제든 "미혼남자"하고 쓸 수 있으면, 그렇게 해도 통하면 ?라이프니츠의 용어로 '진리값의 변경 없이' 이루어지면 ? 동의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교환가능성을 동의어 확인의 근거로 삼자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진리값의 변경 없는 상호대치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서 동의어는 단지 인식적(cognitive)동의어다. 논리적 진리를 만들어 줄 동의어이다. 그런데 진리값의 변경 없는 상호대치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고려되는 언어는 외연적 언어이다. 외연이 일치하면 어떤 두 술어들도 진리값의 변경 없이 서로 교체될 수 있다. 그러나 외연의 일치는 의미에 근거한 일치 뿐 아니라 우연한 일치도 포함된다. '심장을 가진 피조물'과 '신장을 가진 피조물'의 외연상의 일치를 생각해 보라. '진리값의 변경 없는 상호대치가능성'은 '인식적 동의어'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 역이다. 또한 동의어는 분석성의 열쇠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 역이다. 의미론적 규칙을 가정해서 "어떤 진술이 의미론적 규칙에 의해 참이라면, 그 진술을 분석적이다"하고 해 볼까. 그러나 여긴에는 다시 설명되지 않은 어구 '의미론적 규칙'에 대한 호소가 있다. '~의 의미론적 규칙'은 적어도 '~에서 분석적' 만큼이나 명료화될 필요가 있다.
결국 콰인은 모든 진리는 언어와 사실 둘 다에 의존한다고 본다. "진리는 일반적으로 언어와 언어 외적 사실 둘 다에 의존함이 명백하다(obvious)14)"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명백한 것과 정반대 되는 것을 철학자들은 저들대로 당연한 것으로 여겼단 말인가. 이에 대해 콰인은 한 진술의 참ㆍ거짓을 결정하는 요소가 사실이라고 여길 만한 측면도 있고 또한 단어의 의미라고 여길 만한 측면도 있음을 보이며 "한 진술의 진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언어적 구성요소와 사실적 구성요소로 분석될 수 있다고 가정하도록 유혹 받는"(TDE, 55) 경향이 인간에게 있으며, 이것이 받아들여지면 "그 다음에는 어떤 진술에는 사실적 구성요소가 전혀 없어야 한다는 것이 그럴 듯하게 보인다"(TDE, 50)고 한다. 콰인은 분석성을 이해하기 위해 동의성 개념에 의지하고, 동의성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정의개념, 교환가능성 개념, 의미론적 규칙 개념 등 여러 방면으로 애써 보지만 길이 없음을 보이고, 마침내 저러한 진리의 구분과 정반대 되는 것이 오히려 명백하다고 맺는다. 또 저 구분이 어떻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는지 심리적으로, 인과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준다15).
콰인은 분석성 비판을 맺음 하는 시점에서 경험론자들이 가장 꺼려할 비난을 선사한다. 형이상학적이라고, 비경험적이라고ㆍㆍㆍ. 분석 진술과 종합 진술간의 경계를 긋는 그런 구분이 있다는 주장은 "경험주의자들의 비경험적인 하나의 독단이며, 일종의 형이상학적 신념의 항목이"(TDE, 55)라고 단언한다. 경험을 인간인식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전혀 비경험적인 전제를 지녀 왔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형이상학이라고 한다. 경험이 우리 인식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면, 경험론자라면, 어떤 경험으로도 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는, 그런 분석/종합 진술 구분은 전제하지 않았어야 한다. 경험 이전에 그 어떤 것도 전제되어선 안 된다. 경험으로 증명할 수 없는 그 어떤 것도 전제되어선 안 된다16). 콰인에게는 존재론적으로 초경험적인 실재에 대한 인식체계뿐만 아니라 인식론적으로 초경험적ㆍ초자연적 인식 또는 독단을 허용하는 인식이론 역시 형이상학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경험론적 철학운동인 논리실증주의가 전혀 비경험적인 주장을 전제한 것을 '형이상학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콰인이 영어권 경험론적 철학전통과 다른 점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가 오히려 콰인이 철저하게 경험론적 철학정신을 실천하고 있음을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존재에 대한 초자연적 실재성을 부정하다는 것, 곧 존재론에 있어서 형이상학적인 주장을 부정하는 건 공통사항이다. 공히 존재론적 형이상학을 부정한다고 할 수 있겠다. 반면 인식론적 문제인 진리의 구별 문제는 그렇지 않다. 경험론이 진리는 두 종류, 분석판단과 종합판단으로 구별된다는 것을 당연시했던 반면, 콰인은 그 구별을 문제삼았다. 분석판단을 집어서 그것이 그렇게 생각처럼 분명하지 않다는 것을 밝혔던 것이다. 이때 문제삼은 것은 논리적 진리말고 인식적 동의어 개념에 의존하는 분석성 개념이었다17). 결국 진리는 일반적으로 언어와 언어 외적 사실이라는 두 가지 요소 모두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석성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 동시에 종합성 개념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건 분석성 비판의 논리적 함축이다. 어떤 진리든 거기에는 언어와 언어 외적인 사실 모두 관련되어 있다면 말이다. 즉 경험만으로 성립하는 인식, 언어외적 사실만으로 성립하는 인식도 성립할 수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이 바로 환원주의 비판의 주제이다.
2)환원주의 비판
경험만으로 성립하는 인식이 있다는 것은 바꾸어 표현하면 한 진술의 의미를 그 진술을 확증하거나 확인시켜 주는 방법과 동일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논리실증주의의 의미검증이론이다. 분석적 진술은, 이미 검증이론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어떤 방법으로도 확증되는, 한정된 경우의 진술이다. 한 진술이 그 진술의 확증에 기여하거나 실패하게 되는 경험과 맺는 관계에 따라 의미검증이론을 다시 표현할 수 있다. 어떤 의미 있는 명제든지 즉각적 경험에 관한, 참이거나 거짓인 진술로 번역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극단적 환원주의가 된다. 진술과 경험의 관계는 직접 보고이다. 모든 관념이 감각경험에서 직접적으로 유래 하든가 아니면 그럼 관념들의 복합이라고 한 로크나 흄이 해당된다. 쾅인은 이것을, 그의 경험론사 해석인「경험론의 다섯 이정표」 중 제1이정표의 원인으로 기록하는 투크(J. H. Tooke)의 조명을 비춰서, 의미론적으로 다시 해석한다. "모든 의미 있는 용어는 감각 자료의 이름이거나 그런 이름들의 복합어이거나 또는 그런 복합어의 약어이다"(TDE, 57). 논문 "경험주의의 두 도그마"에서 콰인은 이러한 극단적 환원주의가 '감각 사건으로서 감각 자료'와 '감각 성질로서 감각 자료'간의 애매함을, 곧 감각 자료의 단위가 용어뿐 아니라 진술이 될 수도 있음을 문제로 지적하며 용어가 아니라 완전한 진술을 유의미한 단위로 간주할 것을 제안한다.
일차적인 의미의 전달자를 용어가 아니라 진술로 보게 되는 것은 벤담(J. Bentham)과 프레게(G. Frege)에게서 보이는 방향 전환이다. 이것을 콰인은 경험론의 두 번째 이정표로 간주한다. 이 단계의 가장 두드러진 경험론자들은 논리 실증주의자들이다. 그들은 감각 자료 언어를 구체화하는 작업, 다시 말해 원자명제 또는 프로토콜 명제를 구체화하는 작업 및 의미 있는 논의의 나머지 부분들이 어떻게 한 진술씩 감각 자료 언어로 번역되는지 보여주는 것을 과제로 삼았으며 카르납의『세계의 논리적 구성』(Der Logische Aufbau der Welt)가 그러한 환원을 도모한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카르납은 뒤에 가서, 우리의 모든 인식을 긍극적으로 기초적 감각경험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는 것, 물리적 세계에 관한 진술을 직접 경험에 관한 진술로 번역될 수 있다는 개념 전체를 포기하게 된다.
이렇듯 극단적 형태의 경험주의는 이미 오래 전에 카르납의 철학에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더 세련되고 섬세한 형태로 남아 있는 환원주의의 독단을 콰인은 이렇게 표현한다. 즉 "각 진술에 혹은 각 종합적 진술에 가능한 감각 사건들의 고유 영역이 결합되어 있어서 그 중 어떤 사건이 발생하든지 그 진술의 진리에 그럴 듯함을 더해 줄 것이고, 또한 각 진술에 가능한 감각 사건들의 다른 고유 영역이 결합되어 있어서 그것들이 발생함으로 인해 그 진술의 그럴 듯함이 감소될 것이라는 생각"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TDE, 40-41). 다시 말하면, 환원주의에 의하면, 어느 진술 혹은 종합진술이든 저마다 고유한 영역의 감각 사건과 관련되어 있어서, 그것의 발생이 그 진술을 참이나 거짓이 되게 하는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이 독단이 그 위에서 버틸 수 있도록 떠받쳐 주는 또 다른 가정은 무엇인가? "진술이 그와 같은 류의 진술로부터 고립되어도 결국 확증되거나 확인 될 수 있다"는 가정이다(TDE, 41). 경험과 대응할 인식 단위를 용어로 하건 진술로 하건 어느 경우나 개별적으로 경험과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용어 하나와 경험 하나, 아니면 진술 하나와 경험 하나의 대응 여부를 통해 용어나 진술의 유의미성을, 또는 용어들 간의, 진술들 간의 동의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콰인은, 유의미성의 단위를 용어에서 문장으로 확장하는 듯 싶었지만 여전히 개별적 인식을 단위로 하고 있음이 환원주의의 한계임을 간파한다.
"외적 세계에 관한 우리의 진술들은18)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총체적 전체로서만 감각 경험의 법정에 선다"(TDE, 59-60). 그 경험이, 경험적 인식이 의미 있으려면, 의미 있게 세계와 대응하는 것을 찾으려 한다면 그때는 경험 전체가 세계 전체와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인식내용과 인식대상의 상웅성을 증명하려는 문제는 인식론의 아포리아이다. 인식과 인식 외부 세계의 상응성을 검증ㆍ확인하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감각경험의 우위를 주장하면서 프로토콜 문장ㆍ원자문장을 찾는 논리실증주의는, 여전히 형이상학적 요소를 안고 있는 것이다. 콰인은 '전체'를 가지고 이 인식론의 아포리아에 맞선다. 경험전체와 세계전체ㆍㆍㆍ. 하지만 여기에는 형이상학적인 점이 하나도 없는가.
경험 전체와 세계가 대응한다는 것은 내 경험 하나하나 참된 인식인지 알려면 내 경험, 아니 인류의 경험전체, 과학전체를 먼저 알아야 된다는 말인가? 그러고도 경험론인가? 그렇게 허수아비로 만들 일은 아니다. 사실 그의 후속 논문들은 이 논문을 보완ㆍ확충하는 것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증주의ㆍ환원주의를 비판하는 데는 삼중적 의미의 상대성ㆍ불확정성이 함축되어 있다. 전체가 아니고는 어떤 의미, 어떤 단위로도 개별 상웅 검증이 불가능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용어 대 용어 경험주의"(TDE, 61) 비판이 지시 불확정성으로 이어지고 이것은 저 경험론의 다섯 이정표 중 첫 이정표로 지정되며, 〈진술 대 진술 경험주의〉비판은 번역 불확정성으로 이어지고 두 번째 이정표로 지정된다. 경험적 의미의 단위를 과학 전체로 결정하는 콰인 자신의〈전체 대 전체 경험주의〉19)는 이론의 경험 과소 결정성 비판을 통해 세 번째 이정표를 세우게 된다. 이러한 주제들은 이후의 논문들에서 세밀하게 논증된다20). 이러한 비판의 경험론사적 결과는 논리실증주의 와해이다. 반형이상학을 표방한 경험론에 잔존해 있던 반경험론적 형이상학이 내부에서 고발된 것이다.
환원주의와 분석-종합 이원론이 비판된 후 경험론은 어떻게 변모하는가? 사실 콰인은 경험론의 두 도그마를 비판한 후에도 여전히 경험론자로 자처한다. 경험론의 두 도그마를 폐기함으로써 생기는 두 결과 중 하나를 실용주의로의 전환이라고 했지만 그는 자신이, 분명한 의미를 알지 못하는 실용주의자보다 경험주의자로 불리기 원함을 곧잘 드러낸다21). 그의 경험론은 이전과 어떻게 달라져 있는가? 그의 경험론자 분석에 의하면 경험론의 마지막 이정표인 제5 이정표는 자연주의로의 전환이자 "제일철학의 이념 포기(abandonment of the goal of a first philosophy)"이다(FME, 72). 더 정확히 말하면 제일 철학이라고 하는 어떤 것(a first philoSophy)이 있고 그것에 어떤 긍극목표가 있다고 하는데(the goal) 이제 더 이상 그 긍극목표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콰인이 상정하는 제일철학이란 무엇이며 그 제일철학의 제일목표는 또 무엇인가?
경험론자들이 생각하는 제일철학과 콰인이 생각하는 제일철학은 동일하지 않다. 경험론자들이 비판하는 제일철학ㆍ형이상학이 초월적 실재에 대한 초경험적인 주장이고 이에 대해서 인식 통로가 감각경험인 실재 및 감각경험에 기초한 인식방법만을 인정하는 존재론ㆍ인식론이 그들의 반형이상학적 경험론이라면 콰인이 극복하려는 제일철학은 다름 아닌 경험론의 인식론이고 이를 극복하면 제일철학은 사라진다22). 콰인에겐 경험론자들의 인식론에 아직 극복되어야 할 형이상학적 요소가 남아 있었으며 그것은 바로 인식의 정당화 요구였다. 이 요구에 응답하려는 노력이 환원주의이고 환원주의가 완수 불가능한 의지임이 밝혀지면서(제 1, 2, 3 이정표) 인식론의 과제도 바뀌게 된 것이다. 사실 분석-종합 이 원론이 폐기될 때 벌써 방법론에 변화가 생겼다. 콰인은 이를 경험론의 제4 이정표로 확인하며 방법론적 일원론을 선언한다. 이로써 "사변적 형이상학과 자연 과학 사이에 가정되었던 경계가 흐려진다."(TDE, 35)
그러나 "사변적 형이상학과 자연 과학 사이에 가정되었던 경계가 흐려진다"는 것은 콰인 입장의 아주 약한 표현이다. 철학이 그 목표ㆍ이념ㆍ과제로서 자신의 정체해명이 가능한 것이었다면 그런데 이제 그런 제일철학의 제일이념이란 없다면, 철학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자연과학에 대한 제일철학의 우선성은 근거 없는 것이다. 자연주의는 철학가 과학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아니라 철학의 종언이다. 그런데 그가 생각하는 형이상학ㆍ제일철학은 "자연과학에 앞서는"(prior to natural science) 것이다(FME, 67). 자연과학 앞에 서서 마치 자연과학의 앞길을 밝혀 주려는 듯, 자연과학의 토대ㆍ목표ㆍ방법 등을 제시해 주려는 듯 한데 이제 제5 이정표에 이르러 그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결국 콰인이 이해하는 제일철학(first philosophy)는 제일과학(first science)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과학과 자연과학 사이의 경계를 흐릴 수 있는 것이다.
4.콰인의 철학개념: 과학의 자기-인식
우리는 콰인의 철학 개념을 살펴보고 있다. 그의 철학적 인식 부정을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먼저 콰인의 철학적 인식 부정이 경험론의 그것하고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이 문제
되었는데, 형이상학 부정은 둘 다 공통부분이고, 인식론에서 진리 구별과 진리 확인이라는 문제에 대해 서로 차이를 보였다. 콰인은 형이상학만 부정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두 종류의 진리 구별에 기초한 인식론인 경험론도 부정한다. 즉 콰인의 철학적 인식 부정은 경험론의 인식론 부정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보면 콰인은 경험론자들이 존재론적 형이상학을 비판 하는데 그치자 않고, 그 경험론자들 자신의 인식론적 형이상학도 비판한 것이라고, 이제야 말로 형이상학 전체를 비판한 거라고 해도 되겠다. 이제야 말로 존재의 문제에서든 인식의 문제에서든 과학에 앞서는 여하한 형이상학적 인식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철학의 탈철학화가 완수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제일철학, 아니 제일과학이란 개념을 완전히 불식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철학을 언급한다면 이때 콰인은 "철학"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가?
경험론의 공통된 전제는 인식론을 철학의 본분이라고 보는 것이다. 긍극적 존재가 무엇인지, 도대체 무엇이 정말로 있는 것인지 하는 문제에 몰두하지 않고, 뭐가 있다고 하든 그것을 어떻게 아는지, 어떤 것을 우리의 인식으로 인정할지 하는 문제로, 실제로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있는데 도대체 그 앎이란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또 얼마나 참되게 아는지 하는 문제로 초점을 바꾸는 것이다. 이렇게 인식론적 문제를 철학의 주요문제로, 즉 인식론을 제일철학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콰인은 여기에서 경험론과 길을 달리 하며 인식론을 철학의 소임으로 보지 않는다. 인식론은 제일철학이 아니라, 과학의 한 분과이다. 인식론은 제일과학이 아니라 여러 과학 중 또 하나의 분과학이라는 것이다. 철학적 인식론에서 과학적 인식론으로 이전하는 것이라고 할까? 여하튼 그는 제일철학에서 인식론을 빼내서 과학으로 넣어 버린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저 분류상의 문제가 아닌 다른 중요한 문제가 있다. 인식론의 과제가 바뀐 것이다. 경험론이든 합리론이든 지금까지 공유해 온 인식론의 과제ㆍ목표ㆍ임무가 있었는데 콰인은 그것을 거부한다. 이제 인식론은 더 이상 옛 철학이 무작정 부과해 온 임무를 떠맡을 필요가 없다.
인식론의 과제는 이제 어떻게 바뀌었는가? 인식의 기원ㆍ원천을 찾는 일, 인식의 가능성ㆍ근거를 밝히는 일, 우리 인식의 참ㆍ거짓 여부를 밝히는 일 이런 일을 인식론이 안 할 수 있는가? 간단히 말하면 인식의 정당성 증명이라는 종래 과제를 벗어버린 것이다. 우리의 인식이 정말 참인지, 우리는 진리를 알 수 있는지, 그것이 진리인지는 또 어떻게 아는지 등 종래 인식론의 물음들이 완수 불가능한 과제라는 것은 환원주의가 수행 불가능한, 경험론의 독단이었음이 밝혀지는데서 함께 드러났다. 환원주의가 추구하는 것이 바로 과학의 정당화였기 때문이다. 이제 "감각소여에서 과학을 연역하는 꿈을 포기"한다(EN, 84). "그 위에 과학을 세울 어떤 굳건한 기초를 제공하는 것23)"이 철학이라는 그런 공허한, 데카르트주의적 꿈을 콰인은 거부한다(PT, 19참조). 경험론의 환원주의가 독단임을 알게 되는 동시에 과학적 인식의 정당화라는 이를 수 없는 꿈에서도 깨어나는 것이다24). 새 인식론은 반-데카르트주의이며, 과학을 정당화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IQT참조). 그러나 새 인식론의 관심이 여전히 과학과 감각소여의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전통 인식론"(PT, 19)과 공통분모가 있으며 이런 까닭에 콰인은 새 인식론에 대해서도 "철학적 관심"(같은 곳), "철학적 동기"(RR, 3)라는 말을 쓴다.
콰인이 데카르트주의적 꿈과 결별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감각이나 감각질, 감각소여 대신에 책택하는 용어는 신경 수용기들 및 그들의 자극작용이다. 그의 『자극에서 과학까지』(1995)25)는 제목에서부터, 우리 인식의 최초 입력과 최종 출력이 무엇으로 간주되는지 드러나 있다. 콰인의 "과학적 인식론자"(FME, 72) "해방된 인식론자"(RR, 3)의 구체적인 물음은 다음과 같다. 즉 "물리 세계의 물리 주민인 우리가 어떻게 저 세계와의 미약한 접촉으로부터 전 세계에 관한 우리의 과학적 이론을 기획했는지"하는 것이다(SS, 16; 이 외에도 TT, 21; TT, 24-25; TT, 72; EN, 83; OR, 82-83; RR, 2, 3 etc. 참조). "저 세계와의 미약한 접촉"은 감각ㆍ감각질ㆍ감각소여가 아니라 자극ㆍ자극작용ㆍ촉발ㆍ신경흡입ㆍ표면자극이다. 과학의 정당화를 포기한 인식론자들의 새로운 과제는 물리적 입력에서 과학까지 원인-결과의 인과적 관계를 추적하는 것이다.
이제 "새로운 인식론은, 심리학의 한 장으로서, 자연과학에 포함된다."(EN, 83) 어떠한 의미에서도 인식론은 과학의 토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과학의 성과를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같은곳; TT, 85참조). 이제 "인식론자는ㆍㆍㆍ더 이상 과학보다 더 견고한, 과학의 토대가 될 수 있는, 어떤 제일철학을 꿈꾸지 않는다(RR, 3). "제일 철학을 위한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OR, 26). 콰인이 생각하는 철학은 "과학의 연속, 아니 과학의 일부분이다"(IQ, 170). "물리학자는 어떤 종류의 사건들 사이의 인과연쇄를, 생물학자는 다른 종류의 사건들
사이의 인과 연쇄를 알려주려 하겠지만 철학자는 인과연쇄 일반에 관해 묻는다."(같은 곳) 과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연구하는, "과학의 과학은 또 하나의 과학이다26)." 과학의 과학, 즉 철학은 과학의 한 쪽 끝 부분,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끝 부분에 해당한다. 철학은 또 하나의 과학, 분과학일 뿐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여전히 철학 운운하는 것은, 앞에서 콰인의 언급을 보았듯이, 편의상 학제간 분류일 뿐이다27). 단 그것은 전체 과학 내에서의 분류이다.
콰인의 새 인식론, "과학적 인식론," "자연화된 인식론," "과학의 과학"은 과학에 대해 증거가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감각 증거라고 하는 점에서 여전히 경험론적 노선을 견지하고 있지만, 그의 경험론은 경험의 확실성을 주장하는 경험론이 아니라 경험의 불확실성을 시인하는 경험론이다. 환원주의 비판에서 보았듯이, 〈용어 대 용어 경험주의〉가 〈진술 대 진술 경험주의〉로 후퇴하고 내처〈전체 대 전체 경험주의〉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정을 보여준다. 환원주의의 좌절은 결국 과학의 정당화 추구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인식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은 과학적 인식의 성격을 진리보다는 "보증된 신념"(TT, 39)으로 이해하게 한다. 이러한 과학적 이론이 오류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는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다.
하나의 용어, 하나의 진술이 하나의 이론, 나아가 전체 이론에 상대적으로 이해 가능하다는 것이 경험ㆍ인식의 불확실성을 시인하는 것과 같은 의미는 아니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데카르트가 확실성을 찾아가는 방법적 회의에서 인식의 불확실성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인식의 불확실성 앞에 놀라 당황하는 자, 사유하는 자 자신을 절대ㆍ유일 확실성으로 포착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콰인은 다만 의미론적 상승을 통해 경험의 불확실성을 이론의 다양성ㆍ상대성으로 변모시킨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의심을 종결짓는 방법의 차이다. 그러므로 콰인의 새 인식론은 불확실성에 대한, 콰인 식으로 하면 "불확정성"에 대한, 반-데카르트적 대처이다. 그는 "과학의 자기-의심에 대항하여, 과학을 옹호한다."(RR, 3). 이런 의미에서 경험의 불확실성을 시인하는 그의 사유는 "과학의 자기-인식"이라 할 수 있겠다. 불확실성에 대한 과학의 자기-인식은 그로 인하여 위상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만큼 더 분명하게 제 자리를 자각하게 되고 위기 대처 능력이 배양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이 자생력이 될 것이다. 콰인의 철저한 경험주의 정신은 결구 철학에서 형이상학적 찌꺼기를 남김없이 제거했으며 콰인의 경우 이것은 과학의 자기-인식으로 종결된다. 굳이 철학이 할일이 있다고 한다면 이것, 과학이 자기-인식이 바로 그 일이라고 생각함직하다. 철학의 탈철학화 후 콰인의 새로운 철학 개념은 바로 과학의 자기-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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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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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주
1) 이 글을 쓰는 중에 W. V. Quine이 92세를 일기로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운명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2) R. Ostermannn이 The National Observer에 미국의 철학자들에 대한 기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콰인에게 보낸 질문에 대한 답장에서 이러한 사정을 읽을 수 있다.
"'철학'은 철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학문과 관련된 엄청나게 많은 주제와 문제들을 분류하고 장학금을 지급하기 위해서, 도서관원과 학장들이 도매금으로 사용하는 포괄적인 용어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ㆍㆍㆍ)개개인들은 철학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서로 본질적으로는 다른 연구들에 몰두합니다. 그들의 관심 분야들은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받드시 도서를 분류하거나 대학을 운영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철학'이라는 용어가 확정되는 것과 똑같은 크기나, 똑같은 비율로 확장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ㆍㆍㆍ)제가 저술을 하고 강의를 하는 부분은 철학으로 간주됩니다. 또한 그것은 수학으로도 간주됩니다. 사실 저는 수학과에서 대학원 과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도서관원들과 학장들이 십중팔구 '수학'이나 '철학'으로 분류한 것들에 대해서 거의 책임을 느끼지 않습니다. 대학교수는 자신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즉 그가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자문을 하는-주제들에 대해서만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가 연구하고 있는 주제들에 철학과 수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다른 주제들에 대해서까지 책임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콰인, "철할과 철학자들에 대한 나의 생각"(1964), C. J. 본템포, S. J. 오델 엮음,『미네르바의 올빼미』(1975)(서울: 서광사 1994) 271-275쪽.
3) 대표적으로 하나 꼽자면 제일철학의 제일목표 포기를 선언하는 "경험론의 다섯 이정표"(1975)를 꼽을 수있겠다. W. V. Quine, "Five Milestones of Empiricism"(1975) in Theories and Things(Harvard Univ. Press; 1981). 이 논문은 원래 1975년 10월 31일에서 11월 1일 South Caroling 대학에서 열린 심포지움에서 발표한 "The Pragmatist's Place in Empiricism"(eds. R. J. Mulvaney & P. M. Zeltner, Pragmatism; Its Sources and Prospects(Columbia, South Carolina Univ. Press: 1981))의 일부분이다. 이하 "Five Milestones of Empiricism"은 FME으로, Theories and Things를 가리킬 때는 TT로 약칭한다.
4) W. V. Quine, "Epistemology Naturalized" in Ontological Relatiuity and Other Essays by W. V. Quine(N. Y. & London: Columbia Univ. Press, 1969), p. 83. 이 개념은 콰인이 그의 인식론과 자연과학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사용하는 용어이다. 이하 EN으로 약칭한다.
5) 그러므로 콰인 역시 논리학과 수리논리학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해서 논리철학으로 철학과 연관된 그의 학문적 삶이 점차 철학 자체에 대한 언급에까지 미치게 된다고 할 수 있겠다.
6) 그들이 본유관념을 서로 동일하게 이해했는지 하는 문제는 여기서 차치하기로 하자.
7) 물론 로크가 철학사상 최초의 경험론자는 아니다. 철학사상 최초의 경험론자를 꼽는다면 아마 그리스의 에피큐로스(B.C.341-270)일 것이다. 그는 불확실한 세상에서 인식의 유일한 원천은 감각이라고 주장했다. 극단적 원자론자인 그는 우리 주위의 물체들에서 나오는 원자들과 우리 영혼의 원자들의 접촉의 결과 감각지각이 생긴다고 했다. 이런 의미로 현상(appear-ance) 개념이 정립된다. P. Edwards eds., Encyclopedia Of Philosophy(New York:The Macmillan Company & The Free Press, 1975), Vol. 2, Empiricism및 Vol. 3, Epicurus항목 참조.
8) George Berkeley, Three Dialogues between Hylas and Philonous, 한석환 옮김,『하일라스와 필 로누스가 나눈 대화 세 마당』(서울: 철학과 현실사 1997), 187쪽.
9) J. Locke,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Book 1, Chap. 1, §4 in British Empirical Philosophers, ed. A. J. Ayer, London: Routledge and Kegan Paul Ltd, 1952, p. 33.
10) D. Hume, An I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ed C. W. Hendel(Indianapolis: BobbsMerrill, 1965), p. 173. 이하 ICHU로 약칭.
11) J. O. Urmson, Philosophical Analysis: Its Deuelopment between the Two World Wars(Oxford: Clarendon Press, 1956) pp. 1-5 참조.
12) '형이상학'과 '제일철학'은 동일한 것에 대한 다른 명칭이라는 것, 즉 '제일철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에 대해 본인이 붙인 명칭인데 반해 '형이상학'은 편집자가 후에 붙인 명칭이라는 것은 철학적 상식이라 생각하기에 다른 설명을 더하지 않는다.
13) 민중서림 편집국 편『한한대사전』(서울: 민중서림, 1998), 1620쪽; 고대민족문화연구소 중 국어대사전편찬실 편,『중한사전』(서울: 고대민족문화연구소, 1995), 3200쪽 참조. 실제로 시경 권3에서 여성이 자신을 가리켜 총각이라고 하고 있는 노래를 볼 수 있다.
14) W. V. Quine, "Two Dogma of Empiricism" in From a Logical Point of View(Mew York and Evanston: Harper & Row, 1963), Second Edition, revised. p. 36. 콰인지음, 허라금 옮김,『논리적 관점에서』(서울: 서광사, 1993). 이 책은 TDE로 약칭하고 인용 시 페이지는 번역본으로 한다.
15) 콰인이 분석성을 이해하려는 온갖 노력이 실패로 끝남을 보이는 것으로 그 개념의 허위성을 증명하려 했다면 그것은 무지에의 오류가 아닌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신의 부재가 증명되었다고 하는 경우처럼 말이다. 하지만 콰인의 이 경우는 좀 다르게 보아야 할까. 그 자신 분석적 진리와 종합적 진리의 절대적 구분을 비판하는 입장에 서 있으니 그의 논증이 오로지 논리적으로 완벽하길 요구할 수는 없다고 말이다.
16) 이것은 뒤에 경험이 '원인'이 되는 인식으로 바뀐다. 즉 인식의 정당화 요건이 사라지고 인식의 인과적 원인이 인식의 근거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17) 논리적 진리를 문제삼지 않은 이유를 콰인은 밝히지 않는다. 논리적 진리의 근거인 동일성이 분석성의 기초가 될 수 있는지 고찰하지는 않는다.
18) 번역본에는 '진술들' 다음에 조사 '이'가 따르는데, 여기 문맥을 고려해서 '은'을 쓴다.
19) 〈진술 대 진술 경험주의〉와〈전체 대전체 경험주의〉는 콰인의 어구 "용어 대 용어 경험주의"와 동일선 상에서 우리가 조어한 것이다.
20) W. V. Quine, Pursuit of Truth(Cambridge, Massachusetts: Harvard Univ. Press, 1990) Revised Edition(1992) 이하 PT로 약칭; "Three Indeterminacies"(1990) in Perspectiues on Quine(Cambridge, Basil Blackwell; 1990) R. B. Barrett & R. F. Gibson ed; "Ontological Relativitiy"(1969), "Epistemology Naturalized"(1969)등.
21) "The Pragmatists' Place in Empiricism", "Interview between W. V. Quine and Yasuhiko Tomida" May and June of 1992 at Emerson Hall, Harvard참조. 이 인터뷰는 다음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얻을 수 있다. http://sortes.hs.h.kyoto-u.ac.jp/quine.html.이하 IQT로 약칭.
22) EN, 87쪽 참조.
23) Bryan Magee, "The Ideas of Quine" in Men of Ideas(London: BBC Publications, 1978) 168-179: p. 170. 이하 IQ로 약칭.
24) 또한 "자연화된 인식론"에서 콰인은 인식론을 진리론과 의미론 두 측면으로 조명하여 진리론으로서 인식론이 수행 불가능함을 보이고 난 후 의미론으로서 인식론만 남겨서 인식론의 자연화를 선언하고 있다.
25) W. V. Quine, From Stimulus to Science(Cambridge Massachusetts & London England: Harvard Univ. Press, 1995). 이후 SS로 약칭.
26) W. V. Quine, "On Mental Entities" in The Ways of Paradoxes and Other Essays(Cambridge Massachusetts & London England: Harvard Univ. Press, 1966), Revised and Enlarged Edition(1976), pp. 221-227, p. 226.
27) 각주 2번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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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 : 메타철학, 인식론, 경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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