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1. 서론
2. 구성주의와 심성모델
3. 서구의 심리모델
<서구 심리철학에서의 mind>
<인지과학에서의 마음>
<인공지능에서의 마음>
4. 성리학 심성모델의 지향과 구성주의적 해석의 방향
5. 성리학적 수양론과 심성모델의 구성원리
6. 성리학 통합心性모델의 구성-퇴계와 율곡의 통합모델
7. 현대윤리학의 방향과 성리학 심성모델
8. 결론 : 성리학 통합심성모델과 서구심리모델의 비교와 연관성 검토
--------------------------------------------------------------------------------
발행자명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학술지명 民族文化硏究
ISSN
권
호 37
출판일 2002. . .
인지과학적 시뮬레이션을 통한 朝鮮 性理學의 禮교육 心性모델 개발(1)
The Development of Moral-Value Cultivation Model Through Cognitive Science Simulation of Chosun Dynasty Neo-Confucianism(1)
유권종
(Yoo, Kwon-Jong)
박충식
(Park, Chung-Sik)
장숙필
(Jang, Suk-Pil)
5-912-0202-09
이 연구는 유교, 특히 조선 성리학의 도덕교육에 의한 인격변화의 과정과 그 결과를 컴퓨터로 모의 실험하기 위하여, 조선 성리학자들이 이해했던 心의 구조와 그 작동의 모형을 작성해보고자 하는 데 그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아울러 그것을 통해서 조선 성리학의 큰 줄기를 형성한 퇴계의 심학과 율곡의 심학을 연구대상으로 포용하고, 그 둘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점과 공통점을 살피고, 그 결과를 근거로 일종의 성리학 통합심성모델을 작성해보고자 할 때 필요한 이론적 정지작업을 하는 것이 본 연구의 실제 내용이다.
그 작업을 위하여 먼저 통합심성모델 작성의 이론적 관점과 기반으로서 일종의 구성주의의 관점을 채택한 이유를 밝히고, 그것에 의하여 성리학의 심성론의 해석과 그에 따른 심성모델의 구성 방식을 제시하였다.
아울러 서구의 심리철학에서 이해되는 mind, 인지과학에서 연구되고 있는 인간의 마음, 인공지능에서 이해되는 마음을 분석하고 그것과 구성주의에 의하여 재해석된 성리학자들의 마음과의 비교를 행하였다.
중요한 것은 성리학의 역사로 볼 때 똑같이 주자학 계열의 성리학자이면서도 인간의 심성의 관념에 관해서 대립적인 견해를 지녔던 퇴계와 율곡의 관점을 하나로 묶어서 통합심성모델을 작성하는 작업이다.
이에 대해서 본 연구는 퇴계와 율곡이 근본적으로 禮실천에 의하여 인간의 심성의 순수함과 정직함을 기르고 회복하려는 점에서 동일한 입장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사단과 칠정, 인심과 도심 등에 관한 理氣論적 해석에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통합해 볼 수 있는 이론적 체제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현대에 논의되는 서구철학적 관점의 윤리학과는 다소 다른 방향과 관점에서 진행되는 이 논의는 인지과학과 비트겐슈타인류의 언어철학 등의 관점과 상호 통하는 면이 있으며, 현대 서구철학의 윤리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인간의 도덕적 앎과 행위와의 괴리를 넘어설 수 있는 이론적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전망된다.
그 점을 인지과학자인 프란시스코 바레라, 언어철학자인 허버트 핑가레트 등의 이론을 근거로 추론하였다.
결론적으로 퇴계와 율곡의 성리학 심성모델은 현대 윤리교육에 대해서 인간의 심신관계 및 실천지향의 윤리교육의 기초를 제시할 수 있으며, 나아가서 그에 관한 실용성도 풍부하게 지니는 것으로 생각된다.
This study has a purpose to make a structure of mind and its working principles, which had been thought and understood by confucians of Chosun Dynasty, for computer simulating processes of personality changes through Chosun Dynasty's moral education.
This study includes Simhak(心學) of famous Chosun confucians, Toegye and Yulgok, and compares commons and differences of two scholar's theory. The key of this study prepares a necessary theoretical foundation for making a Neo-confucian integrated mind model from such results.
We explained why we adopt radical constructivism as a theoretical framework for the integrated mind model, and proposed an interpretation of Neo-confucian mind theory and a method of constructing mind model.
Futhermore, we look around a mind of western psychological philosophy, a mind of cognitive science, and a mind of artificial intelligence, and we have compared the confucian mind which is re-interpreted as radical constructivism with such minds.
An important work is to make an integrated mind model of Toegye and Yulgok because two scholars are same Neo-confucian, but assisted own theories about human mind.
Although the interpretations of Sadan(四端) and Chiljung(七情), Insim(人心) and Dosim(道心) are different each other, encouraging and recovering purity and honesty human mind with the practice of rituals is very much alike. Therefore we want to prepare theoretical foundation for integrating both.
This argument is different from ethics of modern western philosophy, but have something to do with cognitive science and Wittgenstein-like philosophy of language. We expect that this idea show a theoretical possibility beyond the dissociation between ethical thinking and behavior, which modern western ethics can't solve.
Such a conclusion is inferred from the concepts of Francisco Valera, the cognitive scientist, and Herbert Figarette, the linguistic philosopher.
Now to conclude, the confucian mind model of Toegye and Yulgok can provide the explainable mind-body relationship and the foundation of practical moral education for modern education. We believe that the model has much possibility for practical use.
--------------------------------------------------------------------------------
1. 서론
원래 이 연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유교적 도덕교육에 의한 인격변화의 과정과 그 결과를 컴퓨터로 모의 실험하기 위하여, 조선 성리학자들이 이해했던 心의 구조와 그 작동의 모형을 작성해보고자 하는 데 있었다. 이전의 연구에서는 그것을 퇴계의 心學에 근거하여 작성했다. 그리고 그 모델을 유교 혹은 성리학 심성모델이라고 이름하였다[유권종, 박충식 2002], [유권종, 박충식, 강혜원 2002]. 그러나 이 연구는 퇴계의 심학에만 근거함으로써 心에 대한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의 공통된 이해의 틀을 제시하지는 못하였고, 따라서 성리학 심성모델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 그 부족한 점을 채워가기 위해서 우선 필요한 것은 퇴계의 심학과 더불어 조선시대 심학의 기초와 전통을 형성한 율곡의 심학을 연구대상으로 포용하고, 그 둘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점과 공통점을 살피고, 그 결과를 근거로 일종의 통합심성모델을 작성해보는 작업이다.
퇴계와 율곡은 똑같이 주자학의 이론에 근거하였기 때문에 심의 구조와 작동원리에 대해서 커다란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으나, 그 내부로 들어가면 心·性·情을 비롯한 기타 心의 요소들의 정의와 그 관계 및 작동에 관한 이해는 서로 다르다. 그것이 이후 조선 성리학의 心에 대한 이해에서 학파적 분리를 낳는 근원이 된다.
그러나 그러한 분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양자는 주자학의 개념과 이론을 공동의 학문적 기반으로 삼았다는 사실, 인격이란 자신의 노력에 의하여 형성된다고 보고 그 형성의 원리로서 心身修養의 방법을 중시하였다는 사실, 그러한 심신수양은 禮의 학습과 실천 및 格物窮理, 敬, 誠 등을 주요 원리로 삼는다는 사실 등은 그들의 심에 대한 이해의 공통된 틀, 나아가서 성리학의 통합심성모델을 작성할 수 있도록 한다[유권종 2001], [장숙필 1992]. 그리고 그것은 서구인들이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해온 내용과 어떤 차이 혹은 공통점이 있는가 하는 점을 밝히기 위한 하나의 기준을 정립하는 데에도 유용한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본 연구에서는 이 같은 목적을 위하여 구성주의의 관점에 입각하여 성리학자들의 心에 관한 이해를 해명하는 방법을 사용하고자 한다. 인지과학들의 일부에서 형성된 급진적 구성주의의 관점에 대해서는 바로 뒤에 설명하겠지만, 그것이 우리의 목적에 부합하는 분석의 틀을 제공할 것으로 믿는다. 아울러 시뮬레이션의 논리를 개발하기 위하여 퇴계와 율곡의 심학적 이해의 공통점에 접근하는 작업은 동양철학과 인공지능의 학제간 연구의 방법을 취하게 된다.
2. 구성주의와 심성모델
구성주의는 지식이 어떻게 정의되든 사람의 머리 속에 있는 것이며 자신의 경험에 기반을 두고 구성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가정한다. 구성주의의 연원을 따지면 소크라테스, 버클리, 칸트, 비코까지 거슬러 올라 갈 수 있지만 최근의 구성주의는 근간에 이루어진 생물학, 심리학, 컴퓨터과학, 인지과학과 시스템과학 등의 연구성과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러한 예는 버트란피의 일반시스템이론, 삐아제의 발생인식론과 관련된 글라저스펠트의 급진적 구성주의[그라저스펠트, 1999], 슈미트의 경험구성적 문예학[슈미트, 1995a], 푀스터의 제2계 사이버네틱스 이론[슈미트, 1995b], 마투라나와 바레라의 오토포이에시스[Mingers, 1995, 바레라, 1997], 켈리의 PCP(Personal Construct Psychology), 파스크의 대화이론, 루만의 커뮤니케이션 이론[루만, 1996], 레이코프(Lakoff)의 은유이론[Lakoff, 1980, 1999] 등 관련된 많은 것을 모두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 구성주의는 매우 다른 학문분야로부터 개개 연구자들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차라리 구성주의 담론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수 도 있다.
다양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구성주의 담론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그 특징을 정리할 수 있다. 우선 구성주의 담론은 인식의 대상보다는 인식의 과정을, 또한 그 과정의 구체적인 경험 조건들에 관심의 초점을 두고 있다. 때문에 그 관심의 초점은 의미를 구성하는 관찰하기(인지하기)가 된다. 사실 말해지는 모든 것은 관찰자에 의하여 다른 관찰자에게 말해지는 것이고, 또 다른 그 관찰자는 자신일 수도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인지는 생물학적인 현상이며, 현상을 체험하는 유기체에 관련된 것으로 생각한다. 인지하는 개체는 자신의 신경시스템의 변화라는 형태로만 세상에 관여할 수 있다.
세 번째, 이러한 관찰하기는 관찰자의 구성이며 이 구성은 자의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인지적 그리고 문화적인 조건에 따라 이루어진다. 따라서 지각이나 인식은 외부세계를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자의 인지체계가 행하는 조작들의 목록화라고 할 수 있다[슈미트, 1995b].
네 번째, 이러한 점에서 인지체계는 조작적 폐쇄(operational closure) 또는 조작적 재귀지시성(operational referentiality)하에 있으며, 이러한 조작적 폐쇄에 의하여 스스로의 체계와 환경의 차이점을 스스로 정의하고, 어떤 환경 접촉들을 자신에게 알맞게 가공, 처리함으로써 하나의 체계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다섯 번째, 따라서 구성주의에서 이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인지체계와의 정합성 문제가 된다.
여섯 번째, 구성주의는 인지체계가 물리적인 토대에서 일어나는 신경생물학적 현상이기 때문에 심신이원론적인 육체와 정신의 구분을 거부한다.
일곱 번째, 또한 인지체계에 외부의 물자체가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객관적 진리의 인식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아라는 개념도 관찰자에 의한 구성적인 산물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에 실체가 의문시될 수 있다.
여덟 번째, 절대적 현실의 인식가능성이 무의미하게 됨으로써 모든 연구활동의 가치는 인간의 삶을 위한 유용성에 입각하여 입증되어야 한다.
아홉 번째, 이런 점에서 구성주의는 과학이 자기생산의 확보, 생명조건의 최적화, 그 종의 장기적인 생존의 확보라는 현실적인 학문 활동의 목표를 갖는 실용적인 노선을 추구한다.
열 번째, 이와 연관되어 진리나 현실이 기본적으로 인간으로부터도 인식되거나 소유될 수 없기 때문에 행위의 구속적인 근거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다면 우리는 윤리적으로 우리의 행위와 인지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본 연구의 심성모델 구성에 있어서 구성주의적 해석은 방법적, 그리고 내용적 측면의 2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구성주의적 입장은 절대적 진리의 확인 가능성에 대하여 부정적이기 때문에 여하한 심성모델에 대해서도 진리임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방법적인 측면에서 구성주의는 서구의 심리모델이든 성리학의 심성 모델이든 삶의 유용성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 준거의 틀로 이용될 수 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구성주의는 마음이라는 것이 개체나 집단의 생물학적, 문화적 구성체라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심신문제에 있어서 심신이원론을 대체할 만한 이론적인 기반을 제공한다. 심신문제에 대한 구성주의적 입장은 동양적인 전통의 심신이론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의 인지과학적 연구성과들도 수용할 수 있는 이론적 바탕을 가지고 있다.
본 연구에서 작성하고자 하는 심성모델이란 인간 행동의 핵심으로서 인간의 마음을 이루는 요소들과 그들의 상호관계를 정형화한 것이다. 그것을 성리학에 적용하여 더 자세하게 정의한다면 다음과 같다. 즉 도덕적 인간의 품격을 갖추게끔 하기 위하여 禮를 교육할 때 禮敎育의 내용을 수용하여서 人格의 변화를 이루어내는 內面의 작동 구조를 컴퓨터로써 구현할 수 있도록 하여주는 내면적 구조와 작용을 설명하는 이론 모형이 곧 성리학 심성모델이다.[유권종, 박충식 2002]
구성주의 입장에서 볼 때 심성모델이란 인간 스스로 인간의 마음을 파악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절대적인 원리는 될 수가 없다. 지금까지 연구되어온 수많은 심성모델들은 단지 그 심성모델을 통하여 그와 같은 심성모델을 상정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느냐에 대한 구성적 요소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줄 뿐이다. 그러나 모든 심성모델이 똑같은 정당성을 가진다고 할 수는 없다. 전술한 바와 같이 구성주의에서 연구활동의 가치는 인간의 삶을 위한 유용성에 입각하여 입증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성주의적 심성모델의 탐구는 그 심성 모델로 인해 가지게 되는 세계에 대한 이해를 명확히 하고 그 속에 담겨있는 이데올로기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다양한 배경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마음에 대한 이해로서의 심성모델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의미와 관계를 가진 마음의 요소들이 비교 가능한 요소들로 해석되어야 한다. 본 연구에서는 전통적인 서구의 심성모델과 성리학적 심성모델을 비교함에 있어 급진적 구성주의 관점에서 인지과학적 접근을 모색하였다.
3. 서구의 심리모델
<서구 심리철학에서의 mind>
서구에서 이루어진 마음에 대한 이론은 플라톤의 심적 실체로서의 영혼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근대 이후 현대까지 서구의 과학적 전통에 힘입어 발전한 심리학은 크게 행동주의적 접근, 신경생물학적 접근, 인지적 접근, 정신분석학적 접근 등의 연구전통을 세워왔다. 마음의 연구에 관한 한 철학적 접근과 심리학적 접근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특히 인지적 접근은 마음 연구에 대하여 학제적 경향이 매우 강한 방법이다. 본 연구에서 복잡다단한 여러 가지 서구의 심리모델을 일일이 다루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때문에 본 연구에서는 최근에 이루어진 심리철학의 인지과학의 연구내용을 중심으로 논의를 하고자 한다.
철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서구에서의 마음에 대한 탐구는 근대 이후에는 전통적으로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의 강한 영향 하에서 이루어져 왔다. 이후로 심신이원론의 비실체적인 마음에 대한 논의에 대항하는 행동주의적 접근이 이루어졌다. 행동주의적 접근은 지나친 행동중심주의적 연구로 인하여 많은 비판이 있었고, 컴퓨터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정보처리모델을 중심으로 하는 기능주의적 설명이 이루어졌다. 생물학과 두뇌과학의 영향으로 마음의 연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많은 과학적 사실증거들과 논의들이 심신문제를 다시 심리철학의 핵심적인 사항으로 만든 것이다. 심리철학은 인지과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심리철학자와 인공지능 및 인지과학자들 사이에 이루어진 기계 지능의 가능성에 관한 중국어방 논변 등이 전형적인 예이다. 현재 심리철학은 "물리적 상태가 같다면 마음의 상태도 같다"는 수반적 물리주의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김재권, 1999].
이러한 서구철학 심리학 인지과학의 연구들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는 윤리적 능력의 함양을 찾기보다는 마음의 현상과 그 실재를 규명하려고 하는 실재론적 관심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현대의 마음 관련 연구들이 추구하는 내용은 실재론적 관심에 따른 마음의 구명에는 많은 성과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윤리적 행위를 실천하고 구현하는 인간의 능력을 함양하기 위한 방도를 찾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함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비록 심리철학의 분야에서 최근 몸과 마음, 물질과 정신간의 인과관계를 주요관심사로 연구하고 있어도 현대 윤리학의 논의에서 보듯이 이성에 입각한 도덕적 판단이 곧 윤리적인 행위의 본질이라고 보는 관점이 우세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성 중심의 사고조차 인지과학의 새로운 성과에 의하여 비판받는 상황이고 보면 이성을 마음의 실재로 간주하는 철학적 관점도 반성과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과연 인간의 윤리적 실천능력의 함양에 관해서 서구의 철학과 윤리학은 과연 어떠한 공헌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도 제기된다.
<인지과학에서의 마음>
최근 들어 인지과학, 특히 컴퓨터 과학, 신경 과학, 진화 생물학, 인지고고학 등은 서구 심리철학이나 윤리학, 또는 심리학에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인지과학의 새로운 증거들은 주로 인간의 마음의 물리적인 토대를 일부 밝히고 있으며, 이러한 물리적인 토대가 심신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경향은 철학에서도 인지과학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철학의 자연화를 부추기고 있다[골드먼 1998]. 데넷은 신경생리학적용어로 설명될 수 없는 의식적인 경험의 속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마음에 대한 관점은 환원주의적인 입장과는 다른 것이다[Dennett, 1992].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이란 자연 선택의 결과일 뿐 아니라 수많은 속성들이 문화적으로 다시 디자인된 결과라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의 마음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무엇이라고 본다.
심리학에서도 신경생리학이나 사회 생물학에 기반을 둔 정서나 동기에 대한 연구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인간의 행동을 논리적 정합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정서나 동기의 연구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서구의 심리 모델은 인지과학의 점진적인 발전으로 인하여 새로운 모색의 길에 있기 때문에 당장 하나의 통합적인 모델로 제시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구의 심리모델이 두뇌과학이나 생물학 등의 자연과학적인 토대 위에 서려고 하는 경향은 분명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세워진 중요한 가설 중에 하나는 인간의 마음은 신경생리학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이 사실이라면 뇌 과학이나 생물학의 발전에 따라 점차 세부적인 것이 밝혀지겠지만 마음이 신경생리학적인 현상이라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의식, 자아, 의지, 신념 등의 개념들도 실체가 아닌 것이 된다. 그 모든 것은 개인과 집단의 경험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모든 것들을 인간이라는 종에 바람직한 형태로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기반으로 불교나 유학과 같은 동양적인 통찰에 관심을 갖는 인지과학자들이 나타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인공지능에서의 마음>
인공지능은 사람처럼 지능적인 기계를 만들고자 한다. 이러한 기계에 대한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러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인공지능 개발 초기, 사이먼, 알랜 뉴엘, 맥카시와 같은 인공지능 학자들은 기호주의 또는 표상주의라고 할 만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즉, 사물이나 개념에 대한 표상을 기계가 처리함으로써 지능적인 기계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기호적 인공지능이 큰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맥클러치, 헵, 류멜하트, 세즈노프스키 등과 같은 학자에 의하여 연결주의(신경망)적 접근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연결주의적 접근도 만족할 만한 지능적 기계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였다. 연결주의적 인공지능은 지각을 중심으로 한 자기조직화라는 면에서 구성주의적인 면이 있지만 고차적인 지능의 형성으로 발전시키는데 실패하였다. 이후 진화개념을 이용한 유전자 이론이 등장하여 부분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사실 인공지능은 심리학, 생물학, 언어학, 철학 등과 인지과학의 한 축을 이루면서 다른 학문영역으로부터의 다양한 이론을 수용하여 지능적인 기계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지능이란 불확실한 환경에 대한 개체의 적응으로 파악하고, 기호적, 연결주의적, 진화론적 이론들이 구성주의적 안목에서 통합적으로 같이 고려될 수 있는 구성주의적 인공지능이 검토되어야 한다. 브룩스의 로보트 연구[Brooks 1991]는 이러한 관점에서 선구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구성주의적 인공지능은 지능적 기계는 이성적인 기능만으로 구현될 수 없고 생물학적인 기반을 토대로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정서적, 동기적 기능이 같이 이성적 기능과 동반되어야 지능적 개체로써 존립할 수 있다고 본다. 생명은 지능의 기본적인 전제가 되며, 이러한 생명활동이 개체의 환경적응에 의한 진화를 통하여 지능의 출현을 초래하였다. 생명으로서의 지능은 환경의 적응을 위한 생존에 관련된 기본적 동기적, 정서적 욕구를 기반으로 지각들과 인식의 통합, 그리고 더욱 생존기회를 높이기 위한 다른 지능과의 상호작용을 위한 의사소통의 개발과 그에 따르는 고차적인 동기적, 정서적 기능강화에 이르는 진화에 의하여 발전되었다. 구성주의적으로 볼 때 이러한 연장선상에 개체의 윤리적인 기능도 고차적인 지적 능력과 더불어 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때문에 지능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지능적인 기계를 만들고자 하는 인공지능의 실현은 지금은 다소 시들해진 기계와 마음에 관련된 논쟁은 차지하고라도 생명의 동기적, 정서적 모델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인공지능이 만들고자 하는 지능적인 기계가 인간과 같을 필요는 없지만 인간이 지능적인 존재가 될 수 있도록 가능하게 하는 원리들은 이용될 것이다. 거꾸로 우리가 밝혀낸 원리들은 인공지능을 통하여 명확히 정형화되고 구현됨으로써 검증될 수 있을 것이다.
4. 성리학 심성모델의 지향과 구성주의적 해석의 방향
성리학은 특히 心學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심성의 구조와 그 작동원리에 대한 체험적 분석과 그 설명이 틀을 형성하였다. 고려 말부터 수용된 주자학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16세기에 이르러 心學으로 발전하게 된다. 성리학과 심학은 그 뿌리는 하나이지만, 심학은 유학의 이상의 성취란 心性의 원리를 밝히고 그것에 의거한 修身으로써 성인의 인격을 성취하는 것에 달려있다고 생각해서 수신의 방법에 절대적인 의미를 두는 것이다.
대표적 학자로서 退溪의 心學은 眞知와 實踐(力行)을 강조한다. 퇴계가 말하는 眞知란 진정한 깨달음과도 같은 것인데, 그것의 대상은 사물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이 아니라 人倫 道義의 옳음과 당연함, 그것밖에는 별도의 길이 없다는 철저한 자각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眞知에 도달하는 길은 매일의 삶에서 맞닥뜨리는 人倫의 現場에서 禮儀를 실천하면서 그 예의가 몸에 배도록 하여 그 예의가 언제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발출되도록 하는 방법이다. 다시 말하면 禮의 습득과 숙달에서 眞知가 성립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眞知와 實踐, 致知와 力行의 관계는 知行竝進의 필연성으로 표현되는데, 또 그 방법은 理想(聖人)으로 나아가는데 어느 하나라도 결여되어서는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새의 양 날개’ 또는 ‘수레의 두 바퀴’의 상호의존적 관계로 설명되기도 한다[유권종 2001].
우리의 심성모델 作定과 관련지어 볼 때, 心學的 사유와 心性에 관한 설명의 유형은 유교 禮교육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기본적 설명의 틀로 수용하기에 적합한 면이 있다. 즉 그 이전의 유학들 예를 들면 공자의 유학이나 맹자의 유학에서는 禮 실천의 중요성 또는 그것의 효과에 대해서는 언급이 많지만, 그것이 왜 그러한 효과를 가져오는가 하는 점에 대한 분석과 이론은 발달하지 않았다. 대체로 『논어』와 『맹자』의 언사들은 遂行的(performative)이다. 그러나 성리학 특히 심학에 이르면 물론 수행적 언사들이 많지만, 그 이면에 심성의 원리와 그 작용에 관한 분석이 세밀하고, 외면적 행위(禮실천)와 내면적 변화와의 연관성에 관한 분석이 행하여져서 나름대로의 설명이론이 형성된다.
그러한 설명이론의 한 형태로서 조선조 성리학의 ‘四端七情에 관한 理氣論的 解釋’(四端七情論辯), ‘人心道心에 관한 이기론적 해석’(人心道心論辯) 등을 거론할 수 있고, 그 해석(논변)의 계기가 되었거나 또는 결과로서 작성된 관련 圖解를 통해서도 설명 이론의 형태를 파악할 수 있다. 관련된 圖解로는 陽村의 「天人心性合一之圖」, 秋巒(鄭之雲) 退溪의 「天命圖」, 퇴계의 「心統性情圖」, 「心學圖」, 율곡의 「心性情圖」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또한 心學의 학설들에는 인간의 내면과 외면을 함께 닦는 修身의 이론이 정립되고 있다. 心學은 性理學의 사유를 기초로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앞서 언급한 道統을 계승한다는 의식도 대단히 강한 유학이므로 孔子이전부터 전해 와서 공자 이후로 성리학에까지 이르는 工夫의 방법론들을 종합하여 계승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전승되어오는 기왕의 방법론들을 하나로 종합하는 한편, 그것들을 하나로 꿰는 원리를 개발하여서 보다 차원 높은 방법론의 정착에 도달한다.
性理學 또는 心學의 궁극적인 목적은 聖人의 인격을 성취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인격을 통해서 治國과 平天下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個人이 목적하는 理想의 경지는 孔子가 그의 70세에 도달한 경지로 표현했던 "從心所慾不踰矩"(마음이 원하는 대로 따라 해도 법도를 어기지 않는다)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심성모델의 구현에서 이상적 결과로 삼을 수 있는 내용이 이것이다. 즉 마음의 작용과 육신의 행동이 合一되고 그것이 그대로 법도(禮)와 어긋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것이다.
이를 구성주의적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다음과 같은 점들이 주목된다. 즉 우선 修身에 의한 인격의 성취의 과정은 자신의 심신에 의한 자기구성의 원리를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성리학자들이 학습하고 조작했던 心性 및 修身에 관한 개념들은 서구의 이성, 행동, 정서 등의 개념들과 상응하지 않는 독자적인 체계 속에서 분배된 의미 영역을 지니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성리학자들은 그들의 개념으로써 몸과 마음의 실제적 현상을 감지하면서 어떠한 개념적 이론적 조작, 즉 心에 대한 이해와 설명 등의 작용을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성리학자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적이 지능적 개체라기보다는 도덕적 개체라고 하는 점, 그리고 그 목적의 성취는 자신들의 개념을 스스로 조작하고 활용하면서 자신의 심신의 수양이라는 일종의 자기형성 또는 자기생산의 과정을 추구하는 것에 의존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조선시대 성리학의 풍토가 조성하고 있는 유교의 禮라는 문화적 환경과의 상호교류 속에서 자신의 마음과 몸을 디자인하는 과정이라는 점도 구성주의적 해석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5. 성리학적 수양론과 심성모델의 구성원리
성리학 혹은 심학은 하나의 분명한 목적을 내포한다. 그것은 곧 성인의 인격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하여 강조되는 것이 바로 인격의 수양이다. 수양에 관한 이론에서 성인의 인격성취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심신의 일관성과 조화를 얻는 것이다.
一貫性이란 항상 中庸의 상태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中庸이란 산술적 평균이 아니고, 至善의 도리나 예절에 항상 들어맞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調和란 우선 내면의 다양한 요소들간의 균형과 어울림을 말하고, 나아가서는 마음과 육신의 균형과 어울림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균형과 어울림이란 내면은 내면대로, 心身은 心身대로 복잡한 요소들이 상호 관계를 맺으면서 복잡다단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먼저 내면을 보자면, 心學에서는 전체를 心이라고 규정하면서, 그 구성을 우선 ‘理氣之合’이라고 표현한다. 또 心의 내재적 성향이면서 동시에 本具된(innate) 것으로 간주되는 것도 本然性과 氣質性으로 나누어 보고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발출하는 마음의 작용에 대해서도 情(四端)과 七情(喜怒哀懼愛惡欲), 意, 念, 志, 또는 人心과 道心 등등의 요소로 표현한다. 陽村의 「天人心性合一之圖」, 퇴계의 「天命圖」와 「心統性情圖」 등에서는 이들의 관계에 대한 언급이 있다.
퇴계를 예를 들어 설명해보기로 한다. 퇴계는 이들의 복잡다단한 관계를 善과 惡으로 나누어보고 있다. 純善無惡한 것은 本然性과 四端의 情, 道心이고, 惡으로 흐르기 쉬운 것은 七情, 人心, 人慾 등이다. 이 가운데 意는 七情을 善으로 가게 할 수도 있고 惡으로 가게 할 수도 있는 작용이다. 그런데 문제는 『書經』 大禹謨의 글에서 인용된 데서 알 수 있듯이 道心의 작용은 미약한 데 비하여 人心의 작용은 위태로울 정도로 거세다는 점이다. 이는 수양이나 학습을 하지 않고 자연상태로 방치하면 慾望(인심)의 노예가 되어서 도덕적으로 善한 마음과 행동이 발출되기 어렵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래서 수양이란 이러한 人心의 작용을 순화하고 道心의 작용을 확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다시 말하면 本然性을 원래 그대로의 내용대로 회복시키고 밖으로(言行으로) 표출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도식화하자면, 本然性→四端의 情(道心)→身體의 道德的 言行의 형태이다.
유학사상이 서구의 철학이나 교육학과 차이가 있는 점은, 인간의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하여 선택 가능한 몇 가지의 길을 열어놓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핑가레트 1993]. 이는 허버트 핑가레트의 견해인데, 사실 유학자들에게서 그것은 공통된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도 교육과 수신에 있어서 목적하는 바에 대해서는 다양한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놓을 필요가 없고, 오로지 공자의 경지를 하나의 통일된 목적으로 삼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일은 몸과 마음의 복잡다단한 요소들에 질서를 주고 또 하나로 꿰어서 일신의 전체가 일관된 방향성을 지니고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退溪가 주목하는 점은 우선 心의 主宰 작용이다. 그는 心은 一身의 主宰者라는 관념을 지닌다. 一身의 主宰者라는 것은 몸과 마음의 다양한 요소들을 통합하고 그것들을 일관하여 하나의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그것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는 것이 ‘心統性情’이라는 명제이다. 이에 대한 해석은 ‘心이 性情을 통합한다(combine).'는 의미, 또는 ’心이 性情을 통솔한다(command).'는 의미로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우리의 작정하려는 심성모델에서는 오히려 양자를 다 포괄하여 보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그런데 퇴계는 심의 주재력을 중시하면서 동시에 그렇게 해서 통일된 마음(一心)을 주재하는 것은 敬이라고 강조한다. 즉 敬이란 一心의 主宰者인 것이다. 敬이란 ‘主一無適’(至善한 것 하나를 주장하여서 마음이 다른 곳으로 움직여 가지 않음), ‘常惺惺’(항상 정신이 깨어있는 상태)라고도 표현되는데, 그것과 더불어 ‘整齊嚴肅’(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태도를 엄숙하게 한다)이라고 설명된다[유권종 2001]. 敬에 대한 설명이 다른 것은 그 설명자가 다르기 때문이지만, 그 차이는 敬을 어떠한 각도에서 보고 설명하는가 하는 차이점에 해당하지 본질적인 敬의 이해가 차이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퇴계는 그 설명들을 동일한 원리의 다른 면으로 생각하였다고 보인다.
敬의 원천은 원래 禮의 실천에 있다. 『禮記』 「曲禮篇」 서두에 ‘毋不敬’이라고 하였다. 이는 『禮記』 전체의 정신을 하나로 뭉뚱그려 표현한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리고 위에서 보듯이 ‘整齊嚴肅’이라는 것도 실은 단정한 복장과 몸가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심성모델에서 찾으려고 하는 禮가 心性의 一貫性과 調和의 원리로서 어떠한 중요성을 차지하는가 하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心學者들의 말대로 "바깥에서 공을 들이면 내면이 수렴되는" 효과를 얻게 하는 것이 바로 禮와 敬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整齊嚴肅이라는 것은 신체의 외면을 檢束하는 것인데, 그러한 檢束의 효과가 단순히 겉모양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내면의 작용과 상태에도 일관성과 조화를 부여하는 효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敬齋箴圖」나 「夙興夜寐箴圖」에서 퇴계가 敬을 일관된 생활의 원리로 강조하는 것도 음미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우리가 심성모델을 작정하려고 한다면, 禮의 실행이 내면의 작용과 상태에 미치는 변화 자체와 더불어서 그러한 변화를 일으키는 체계가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성리학자들의 설명에서도 명확하게 밝혀져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들은 현대의 학문에서 이해 가능하고 다른 학문의 개념과 비교가 용이한 개념과 용어로 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 작업은 心性情의 상호관계를 설명하는 틀을 개발할 의무와 관련이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小學集註增解』의 설명들, 『養正篇』의 원리, 그 밖의 『聖學十圖』와 『聖學輯要』, 퇴계 율곡의 서한이나 심학에 관한 각종 언급들에서 자료가 될 만한 것을 선별해내는 일이 필요하다. 그와 더불어 중요한 할 일은 심성모델을 작정한 다음에 거기에 투입할 禮교육의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절차와 방식에 대한 논의이다.
6. 성리학 통합心性모델의 구성-퇴계와 율곡의 통합모델
앞서 밝힌 것처럼 성리학 통합심성모델은 성리학자들의 심성에 대한 공통된 이해를 근거로 정립하고자 하는 심성의 모형을 의미한다. 퇴계는 「천명도」와 「심성정도」를 통해서 그가 생각하는 심성의 모형을 제시했고, 율곡은 「심성정도」를 통해서 그의 심성 모형을 제시했다. 이들의 모형과 그에 관한 견해는 대체로 인간이 수신을 해나갈 때 지켜야 하는 심성 작용의 원리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모형에서 제시된 심성의 구조와 작동에 관한 제안은 규범적 혹은 당위적 성격을 지닌다[유권종 2001], [장숙필 1992], [김경호 2001].
그런데 그것들과 현대의 인지과학이나 인공지능에서 언급되는 심리모델과의 비교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규범적 내용보다는, 규범적 내용의 이면에 전제된 실제의 작동원리 및 작동과정, 인격변화의 심리적 과정과 요인에 대한 분석과 설명이 필요하다. 이에 입각하여 본다면, 퇴계와 율곡이 심성에 관한 견해를 구성주의의 관점으로써 재구성할 때 기본적 요소로 간주했던 理, 氣, 心, 性, 意, 敬, 禮 등에 관한 사고를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추론하고 정리할 수 있다.
① 理氣의 합성 구조에 대한 이해-理는 心 性 情 意 志 등 모든 내면적 요소들 또는 신체까지 포함한 요소가 나아가야 하는 공동적이고 당연한 궤도라고 해석된다. 氣는 몸과 마음을 하나로 이어주는 실체이면서 작용을 하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氣로써 이루어진 몸을 形氣라고 하는 동시에 우리의 마음이 理氣의 합으로 되어 있다고 할 때 그 기는 형기와 다른 기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氣에 근거하여 성리학자들은 예의 실천과 같은 행위가 착한 심성의 회복에 관건이 된다고 하였던 것이다.
② 理의 성질-理는 일종의 올바른 삶의 궤도 내지 과정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것을 성리학자들은 元亨利貞 또는 仁義禮智라고 하였고, 理는 일정하고 불변하는 것이며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성리학자들에게 하나의 삶의 표준이 될 뿐 아니라 수신을 통해서 추구하는 당위적 도리의 실체이다. 그럴 때 理는 公共된 것이며, 내면에 존재하는 동시에 외부세계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理는 內 또는 外로 구분된 영역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있든 항상 열려있는 것이며 다른 존재와 공통된 것이고, 항상 전체(公共)를 지향한다. 삶의 상황과 과정 속에서 理의 구체적인 표상으로 제시된 것이 곧 禮이다. 理에 부합하는 행위의 패턴 혹은 행위의 구체적 형태가 곧 예라고 생각되었다. 문제는 理의 실천이 곧 禮의 실천과 다름없는 것인데, 禮의 실천은 신체에 의한 행위가 결부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기의 작용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③ 氣의 성질-마음과 관련하여 성리학자들은 그것을 靈한 작용이 있다고 한다. 그 작용을 靈하다고 한 것은 인간의 내면적 외면적 작용이 실현되는 실질적 바탕이 氣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즉 인간의 마음이 道義를 실천한다고 할 때, 도의의 지각과 판단 및 실천에 이르는 작용 자체는 氣에 의한 것이고 그 작용이 道義라는 표준과 지향을 가지는 것은 理 때문이다. 形氣 내지 마음을 이루는 氣는 個體의 생명을 보전하고 지속시키기 위한 생명활동의 실체이다. 그런데 기의 생명활동은 사람마다 지닌 氣에 존재하는 淸濁 粹駁의 차이로 인하여 그 생명활동의 내용이나 차원, 혹은 지향에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氣는 변화가 있는 것이므로 수신을 통한 인격의 변화는 이러한 기의 탁한 상태로부터 맑은 상태로, 잡박한 상태로부터 순수한 상태로의 변화로 인하여 이루어진다는 사고가 가능하다.
④ 理氣의 관계-理는 共存과 共生이 진정하고도 영속적인 삶의 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럴 경우 氣는 그러한 理를 지향하는 마음과 행위를 실제로 구현하는 작용을 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氣는 그것을 왜곡하고 一身의 평안과 만족으로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氣는 理를 구현하는 실질적 작용의 바탕이면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⑤ 心에서의 理氣-성리학자들에 의하여 心은 理氣之合이라고 정의되었다. 孟子는 心은 大體, 四肢는 小體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면 이 양자의 관계는 육체의 욕구를 의미하는 小體가 大體인 마음의 한 영역을 차지하여 道義를 추구하는 마음과 갈등을 일으키는 관계에 있음을 말한다. 작용의 측면에서 본다면 도의를 추구하는 마음은 그 기가 理를 지향하고 구현하는 작동을 하는 셈이고, 소체는 기의 작용이 理를 왜곡하고 일신의 평안과 만족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전자는 理氣가 잘 조화된 상태에서 나오는 마음이고 후자는 양자가 갈등 대립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우리는 心을 무엇이라고 볼 것인가? 우리의 신체 내면에 있거나 작용하는 모든 것들이 섞이고 하나로 어울려서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意識(consciousness)을 이루어내는데, 그러한 흐름을 총칭하는 것이 곧 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특히 思慮와 行動을 이루어내는 의식의 총체적 흐름 또는 그 패턴을 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볼 수 있다면, 理와 氣 혹은 本然性과 氣質性, 道心과 人心, 四端과 七情은 마음의 내부에서 대립적인 상태가 될 수도 있으나 잘 조화가 된다면 하나로 조화될 수도 있는 유동적인 상호관계에 놓인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분열된 상태면 분열된 상태로 마음은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하게 작용하는 것이고, 그것들이 상호 조화되면 마음의 길은 순수하고 명백하여서 항상 道義에 맞는 사려와 판단 및 행동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 성리학적 사고라고 해석된다. 즉 心이란 그러한 요소들이 어울려서 이룩한 전체의 흐름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心이 별도로 理氣 本然性과 氣質性 등을 벗어나서 존재하는 또 하나의 실체(substance)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⑥ 心의 主宰力-심의 주재력은 내면의 다양한 요소들을 통합하여 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힘이다. 心學에서는 이러한 주재력을 얻는 것은 敬을 통한 存心養性과 省察을 비롯한 각종 禮에 입각한 일상적 인륜의 실천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재력을 지니는 심은 내면의 다양한 요소들과는 별도의 존재인가? 바로 앞에서 밝혔듯이 주재란 내면의 다양한 요소들이 어울려서 이룩한 전체의 흐름이 다시 부분적 요소들에 되먹임 작용(feedback)을 일으키면서 나타나는 일종의 통제작용 내지 인솔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⑦ 敬과 禮에 의한 수양-敬은 본래 禮실천의 태도를 의미한다. 그것은 행위의 일관성을 잃지 않는 내면적 통제력, 자기조절력, 응집력, 주의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앞에서 밝힌 대로 理에 부합하는 기의 작용이 심신에 확보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심신에 공통적인 氣의 작동을 매사에 또는 언제라도 理와 일치되도록 하는 응집력, 자기조절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을 성리학자들은 心이라고 했지만, 心의 구성은 이와 기 외에 별도의 요소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심의 자기조절력 혹은 응집력은 역시 이에 부합하는 기의 작용을 확보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 방법으로서 가장 근본적이고 실제적인 것은 예의 실천이다. 예의 실천은 몸(形氣)에 대한 통제로써 마음의 일관성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물론 마음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志를 강조하는 것, 窮理와 思慮 意를 강조하는 것이 있지만, 이들이 비롯되는 근원이 예의 학습과 실천에 있음을 고려한다면, 예 실천이 곧 마음의 자기조절력, 응집력, 주의 등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퇴계와 율곡의 통합심성모델 구성--퇴계와 율곡의 심성에 관한 견해는 性과 情에 관해서 서로 대립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위에서 언급한 예 실천의 강조와 경을 중시하는 입장은 다르지 않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이기론의 관점에서 제시하는 심의 구조와 작동의 원리는 대동소이하다. 그러므로 사단칠정의 해석에서 나타난 차이보다는 예 실천에 의하여 확보되는 敬의 과정과 구조를 모델로 제시하면 성리학의 통합 심성모델이 가능하다. 비록 사단과 칠정의 발출 원리에 관한 해석에 두 학자의 견해가 차이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예를 실천함으로써 경의 태도가 형성되고, 그것은 理에 부합하는 氣의 작용이 유형화하게 된다는 점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를 구성주의의 관점에 의하여 분석하고 설명하면, 퇴계와 율곡의 관점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즉 예를 실천하게 되면 몸과 마음의 여러 요소들이 禮, 즉 理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통합된다. 그리고 이러한 예 실천을 지속하게 되면 理에 부합하는 몸과 마음의 요소들이 일관성을 형성하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心이 그 요소들과 몸에 대하여 예에 입각한 주재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율곡에 의하여 氣質의 변화가 강조되든, 퇴계에 의하여 理發에 의한 사단의 발출이 중시되든 결과적으로는 유교적 理致에 부합하는 기작용의 과정을 유형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퇴계가 사단의 발출에 있어서 理發을 강조했어도 그것은 기의 부수작용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기작용이 理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퇴계의 입장을 중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7. 현대윤리학의 방향과 성리학 심성모델
현대 윤리학의 과제는 개인의 윤리적 실천능력의 진정한 함양과 제고의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동안 현대의 윤리교육을 이끌었던 서구 철학의 입장은 일부 급진적 구성주의자들에 의하여 비판을 받고 있어서 주목된다. 그것은 우리의 논지 구성에 중요한 근거가 되었으므로 소개한다.
논의를 인간의 윤리적 실천능력에 한정시켜서 말한다면, 이 논의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은 윤리적 실천능력의 본질에 관한 것부터 새롭게 정의하는 일일 것이다. 생물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바레라에 의하면 서구 윤리학의 전통에는 그 관점과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윤리의 실천을 관찰하는 일반화된 방법이 있다. 그 일반적 방법이란 어느 한 가지 행위에 작용한 의도를 분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도덕적 판단들의 합리성을 평가하는 것으로써 끝마치는 것이다[Varela 1999]. 즉 서구의 윤리학은 윤리의 실천이란 이성적 판단과 추론에 근거하며, 그 판단과 추론이 실재하는 진리(윤리적 가치)와 부합하는가의 여부가 윤리적인 실천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관건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레라는 윤리적 행위에다가 이성에 의한 윤리적 판단과 추론을 무분별하게 결부시키는 것에 대하여 반대한다. 윤리적 행위의 대부분은 이러한 판단 없이 혹은 그러한 판단 이전에 이미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윤리적 실천의 본질은 이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다.
바레라는 일상생활에서의 진정한 윤리적 생활은 상황에 따라서 즉각적으로 대응하는(immediate coping) 행위의 일련 과정이라고 해서 주목된다[Varela 1999]. 이러한 즉각적 대응의 신속함과 자연스러움이 곧 윤리적 행위의 실제적 효과를 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순간마다 이루어지는 즉각적 대응의 과정에 이성적 사유, 즉 판단과 추론이 개입할 틈은 없다. 그에 의하면 윤리적인 일상의 행위들은 이성적 사유의 산물이 아니라 실은 평소에 학습을 통해서 익힌 윤리적 노하우(ethical know-how)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단 그렇게 익힌 노하우가 통하지 않는 낯선 상황에 직면해서야 우리는 비로소 심각하게 사려함으로써 적절한 행위의 방식을 찾으려고 하게 된다. 이는 그 노하우가 단순한 기계론적 관점 혹은 행동주의적 관점에서 나온 것은 아님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윤리적 노하우는 실은 맹자 등이 말하는 덕의 의미와 유사하다.
이 같은 관점에서 그는 서구의 전통적인 윤리학의 방향으로부터 동양의 전통적 윤리학으로 선회하는 구성주의의 입장을 잘 보여준다. 진실로 윤리적인 행동은 단순한 습관에서 발출하는 것은 아니고, 또 어떠한 표준형들이나 규칙들을 맹종하는 것으로부터 발출하는 것도 아니다. 진실로 숙달된 사람은 확장된 경향들을 따라서 행위하게 되는 것이지, 교훈을 따라서 행위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순전히 습관적인 대응의 방식들 속에 담긴 한계를 초월하는 것이다. 이것이 훈련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진실한 윤리적 행위가 가끔 깊이를 잴 수 없는 듯이 보이는 이유이고, 金剛乘(眞言)의 전통에서 비범한 지혜(crazy wisdom)라고 불리는 것이 될 수 있는 이유이다. 이러한 유연성은 자신의 숙달된 기술(expertise)을 닦아온 사람이 지닌 중요한 요소들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그의 숙달된 기술은 맹자가 知라고 부르는 지적 주의력(intelligent awareness)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Varela 1999].
바레라의 관점에 따르면 진정한 윤리의 본질은 몸과 마음이 함께 터득하여 자연스럽게 발출되는 경향을 지닌 행위와 그것의 확장성이다. 그것이 바로 윤리의 노하우가 되는 것이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지적 주의력과 확장에 관한 것이다. 지적 주의력이란 일종의 응집력과 적응력으로서 수시로 변화하는 상황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의 실체인 것이다. 또 확장성이란 지적 주의력을 통해서 평소에 익힌 것과 똑같지 않더라도 유사한 상황이면 막히지 않고 통하게 하는 힘이다. 이 양자의 근원을 바레라는 장기간에 걸친 실천적 훈련을 통해서 체화된 마음(embodied mind)이라고 설명된다.
구성주의의 이러한 입장과 설명은 성리학의 禮學이나 수신의 논리와 많은 유사성이 있으며, 오히려 성리학의 방법을 보다 실증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고 판단된다.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하겠지만, 예를 들면 위에 언급한 지적 주의력, 혹은 확장성은 성리학자들이 말하는 禮를 익히는 데서 비롯되는 敬과 같다고 보인다. 아직 구성주의와 동양철학을 연결시켜서 논하는 것은 일반화되지 않았고 국내에서는 그렇게 다룬 예를 아직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바레라의 입장은 서양철학의 이성중심의 윤리학이 앞으로 그 유용성을 주장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대로 동양철학의 修身을 중시해온 전통이 현대 사회의 윤리문제 해결에 더 실제적이고 유용한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때문에 동양의 전통적 지혜를 인격화한 표상이 君子 또는 보살인데 바레라는 이 인격체의 구성에 대한 깊은 관심을 지닌다.
그 내용을 모두 살필 수는 없기에, 다만 그가 주장하는 요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서양철학이 2천년 넘도록 주장해온 내면의 중앙통제장치로서의 이성에 환원되는 자아는 실재하지 않는다. 즉 우리의 내면은 사실 주체의 실재에 관한 한 空, 즉 無我이다. 우리가 상정하는 주체성이란 내면세계의 무수한 요소들이 함께 중앙통제 없이 활동하는 가운데 그것이 목적적이고 통일된 전체로서 관찰자에게 나타나는 그 무엇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지과정에서 우리에게 관찰되는 자아는 자아의 역사와 행동 등이 그 일부가 된다. 그러므로 ‘나’는 신경시스템을 가진 모든 존재에게 공통적인 육체로써 구성된 신체와 인간이 살고있는 사회적 과정 사이의 다리이다. 즉 나의 나는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이라기 보다는 두 가지가 함께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무아에 대한 체험을 열어가면서 내외의 의식과 행위의 일관된 흐름을 이루어나가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무아의 체득과 윤리적 노하우의 숙달을 위해서 바레라가 강조하는 것은 온정과 자비이다. 그것은 자아중심적 습관을 버리고 자비가 즉각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유지되도록 하는 훈련을 통해서 개발되고 체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유교든 불교든 수신의 중요성에 주목한다. 말이나 이성적 사고만으로는 즉각적인 대처능력을 키워서 이기적 욕망과 무규범적 행위로 향한 일탈을 방지할 수 없다. 그것보다는 수신의 지속적인 체험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이상에서 살핀 바레라의 견해는 일찍이 국내에 소개된 미국의 언어학자인 허버트 핑가레트의 견해와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다. 핑가레트는 禮는 인간적 충동의 완성, 즉 충동의 문명적 표현이지, 결코 형식주의적 비인간화가 아니라고 설명한다[핑가레트 1993] 예를 학습하게 되면 祭禮와 같은 신성한 儀式의 현장에서나 혹은 일상생활의 현장에서나 그 상황에 맞는 행위가 억지 없이 자연스럽게 발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억지 없이 자연스럽다는 말을 기계적이거나 또는 자동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핑가레트는 말한다. 오히려 자연스런 자발성이 발휘됨으로써 예식에 참여하는 개개인들이 진지하고 성실하게 몸과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에, 예식에는 생명력이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또한 예식에는 그러한 생명력으로 인해서 (외부적 타율적) 강제력 없이도 예식에 참여하는 개개인들이 서로서로 한마음이 되어 협조하는 미묘함과 놀라운 복잡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핑가레트 1993].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핑가레트가 禮의 신비스런 기능을 강조했던 것이 바레라에 의해서 윤리적 노하우라고 개념화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양자의 견해는 禮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유교의 修身의 의미함축이 행동주의적 관점이나 기계적 습관화라는 평가의 차원을 넘어선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성리학자들이 강조했던 敬의 발원이 禮에 있다는 점, 그리고 아울러 그것이 心의 주재력을 형성하는 점, 나아가서 다른 개체와의 친화력을 이끌어내어서 결국 전체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힘의 근원이 된다는 것을 두 학자의 견해는 지지하는 것이다.
8. 결론 : 성리학 통합심성모델과 서구심리모델의 비교와 연관성 검토
구성주의적 입장에서 볼 때 마음에 대한 이론은 특정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구성체이다. 그러한 구성체로서의 심리모델들은 심리모델이 설명하려는 현상, 심리 모델을 천착해 나가는 방법과 그 방법에 토대가 되는 가정들, 모델을 구성하는 요소들과 그들의 관계 설정, 심리모델의 발전 가능성, 그리고 심리모델로서 이룰 수 있는 실천적 가치와 효용 등에서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에서 다루고자하는 서구 심리모델은 최근 인지과학적 성과를 토대로 하고, 기존의 서구 심리모델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데넷, 바레라 등의 심리모델 들이다. 이러한 심리 모델들은 심리철학적으로 수반 물리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신경과학의 최근 성과를 수용하는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가치 중립적인 서구 심리모델, 특히 윤리적 행위에 대한 서구의 심리 모델은 철저히 개인의 이익을 중심으로 탐구되고 있다. 죄수의 딜레마를 이용하여 게임이론적으로 인간의 이타적인 행위를 분석하는 응용윤리학에서는 특히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윤리적인 서구 심리모델에 대한 태도는 논리적 정합성에만 목적을 두고 있으며, 공동체를 위해서는 절망적인 결론에까지 이르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그러나 전제한 바와 같이 인지과학에서의 마음은 자연선택의 결과 일뿐 아니라 문화에 의하여 디자인된 결과로 보는 까닭에 새로운 접근이 가능할 수 있다. 응용윤리학의 윤리 시뮬레이션에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동체에 대한 정서적, 동기적 원인으로 이타적 행위가 생기는 사례를 볼 수 있다. 이러한 공동체에 대한 정서적, 동기적 원인은 문화적인 디자인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성주의적 입장에서 볼 때 성리학에서의 인간 마음에 대한 이해는 도덕 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에 설계되고 정착된 문화(禮)의 학습과 실천을 통해서 윤리적 마음이 형성된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구성주의가 주장하는 문화에 의하여 디자인된 마음과 사실상 다르지 않다. 그러나 성리학은 서구의 철학이나 심리학 내지 인지과학 등과는 전혀 다른 개념 혹은 은유의 체계로써 마음과 몸에 관한 이해를 해왔다. 그러한 이해를 하면서 성리학자들은 유교의 인륜도덕이야말로 인간 마음을 디자인하는 중요한 틀로 간주한 점에서 유교적 도덕을 지향한다는 특징을 지녔다. 성리학이 도덕 지향적인 이유는 인간의 올바른 삶을 위한 모색이 학문과 삶의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 올바른 삶의 근거로서 유교의 도덕을 중시한 것은 그 도덕이 인간을 포함한 자연 전체에 원활한 질서와 조화를 가져온다는 공동의 믿음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예문화와 그에 내재된 유교의 인륜도덕은 오랜 세월동안 중국과 한국 등지의 유교인들에 의하여 성립되고 변화를 거듭 하면서 성리학자들에게 전승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성리학자들이 인간의 윤리적 행동을 앙양시키기 위한 심성모형을 구성하고 다듬어 온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지금까지 성리학에 관한 연구는 서구 근대철학의 심신이원론적 관점의 영향을 받아서 心과 身을 분리하여 보는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心의 구성이 理氣의 合이라고 하는 규정에서부터 출발하여, 수양의 원리가 심신을 분리하여 보지 않는 관점이 존재하는 점, 禮에 부합하는 신체의 행동이 올바른 마음을 형성하는 기초가 된다고 하는 관점 등은 앞서 언급한 인지과학의 마음에 대한 수반물리주의적 이해와 유사한 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레라 등이 강조하는 체화된 마음(embodied mind)의 이론과도 매우 가까운 유사성이 있는 것이 성리학자들이 이해한 마음이다. 더 나아가 인간은 오랜 동안의 예의 학습과 실천을 거쳐서 성인의 인격과 마음을 획득한다고 하는 수양론의 내용은 사실 문화에 의한 마음의 구성, 및 마음이란 주어진 실재가 아니라 삶의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라는 구성주의적 관점과 매우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성리학은 인간의 윤리적인 행동을 앙양시키기 위한 실천적인 지침서와 정교한 마음의 모델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성리학적 이해와 그에 입각하여 보편화되어온 유교문화는 개인화되고 이기적으로 흐르는 현대 문명을 위한 대안으로써 이타적인 마음을 디자인하기 위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현대의 인지과학이 발견하고 있는 인간의 도덕적 실천능력의 본질과 관련하여 그것을 양성할 수 있는 방법과 원리는 성리학적 심신수양론으로부터 응용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성리학 심성모델의 탐구와 모색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과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
--------------------------------------------------------------------------------
참고문헌
[유권종, 박충식, 강혜원 2001] 유권종, 박충식, 강혜원, ?유교 심성론에 근거한 체화방법이 유아의 기본생활습관 및 자율성에 미치는 효과?, 아동학회지 제22권 4호, 한국아동학회, 2001.
[유권종, 박충식 2002] 유권종, 박충식, ?도덕심성모델의 새로운 시도 : 퇴계학, 구성주의, 인공지능? Journal of Korean Studies Vol. 2 Central Asian Association for Korean Studies, April 2002.
[유권종, 박충식, 강혜원 2002] 유권종, 박충식, 강혜원, ?성리학적 심성모델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유교 禮교육방법의 효용성 분석?, 동양철학 제16집 한국동양철학회, 2002.
[유권종 2001] 유권종, ?퇴계예학연구의 과제와 전망? 퇴계학보 109집, 퇴계학 연구원 2002. 5.
[장숙필 1992] 장숙필, 『栗谷 李珥의 聖學硏究』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1992.
[김경호 2001] 김경호, ?栗谷 李珥의 心性論에 관한 硏究?.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1. 12.
[골드먼 1998] 골드먼(저), 석봉래(역), 『철학과 인지과학』 서광사, 1998.
[그라저스펠트 1999] 그라저스펠트(저), 김판수 외 6명(역), 『급진적 구성주의』 원미사, 1999.
[김재권 1999] 김재권(저), 하종호, 김선희(역), 『심리철학』, 철학과 현실사, 1999.
[루만 1996] 루만, 니클라스 (저), 이남복(역), 『생태학적 커뮤니케이션』 유영사, 1996.
[바레라 1997] 바레라, 톰슨, 로쉬(저), 석봉래(역), 『인지과학의 철학적 이해』 옥토, 1997.
[슈미트 1995a] 슈미트, 하우프트마이어(저), 차봉희(역), 『구성주의 문예학』 민음사, 1995.
[슈미트 1995b] 슈미트(저), 박여성(역), 『구성주의』 까치, 1995.
[윤사순 1997] 윤사순, 『한국유학사상론』 예문서원, 1997.
[이상은 1988], 이상은, 『이상은선생전집 2』 예문서원 1988.
[최상진 1999] 최상진 외, 『동양심리학』 지식산업사 1999.
[핑가레트 1993] 핑가레트, 허버트, 『공자의 철학』 서광사 1993.
[한덕웅 1994] 한덕웅, 『퇴계심리학』 성균관대 출판부 1994.
[Brooks 1991] Brooks, Rodney, Intelligence without Representation, Artificial Intelligence, 47(1/3):139-159, January 1991.
[Dennett 1992] Dennett, Daniel, Consciousness Explained, Little Brown and Co., 1992.
[Lakoff 1980] Lakoff, Goerge and Johnson, Mark, Metaphors We Live By, 1980
[Lakoff 1999] Lakoff, George and Johnson, Mark, Philosophy in the Flesh : The Embodied Mind and Its Challenge to Western Thought, Basic Books, 1999.
[Mingers 1995] Mingers, John, Self-Producing Systems: Implication and Application of Autopoiesis, Plenum Press, 1995.
[Varela 1999] Varela, Francisco, Ethical Know-how, Stanford Univ. Press 1999
--------------------------------------------------------------------------------
이력사항
유권종
(Yoo, Kwon-Jong)
중앙대학교 교수
박충식
(Park, Chung-Sik)
영동대학교 교수
장숙필
(Jang, Suk-Pil)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퍼온~사유..! > 논문 자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ㅍ] 철학의 종말과 주체의 미래 (0) | 2008.05.06 |
---|---|
[ㅍ] 현대 과학철학의 윤리적 재평가 (0) | 2008.05.06 |
[ㅍ] 철학의 탈철학화-콰인 (0) | 2008.05.06 |
[ㅍ] 니체의 철학과 동양철학 (1) | 2008.05.06 |
[ㅍ] 인간의 생명과 정신 (0) | 2008.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