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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둑계의 갈등구조에 관한 고찰

온울에 2008. 5. 30. 00:20

바둑계의 갈등구조에 관한 고찰

정 수 현

명지대
 

  바둑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집단들은 여러 가지 갈등을 겪고 있으며, 이러한 갈등이 바둑계의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바둑계의 조직과 집단의 구성원들은 서로 협조하며 상호작용해야 하고 외견상 그렇게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종종 다른 집단과 갈등과 분쟁을 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자원의 희소성, 동료의식의 결여, 소속집단 우선주의, 주도권 쟁탈의 열망, 역할 정체성의 모호함, 유아론적 사고, 권위주의적 태도 및 피해의식 등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바둑계를 거시적으로 보는 관점, 잠재적 자원의 개발을 위한 공동체 의식의 형성, 제도적인 문제에 대한 합리적 접근, 집단의 역할 정체성 명료화, 사회적 사명감 인식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I. 서론
  바둑계는 바둑과 관련된 다양한 조직과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대표적인 조직으로는 재단법인 한국기원, 사단법인 아마바둑협회, 전국바둑교실협회, 한국여성바둑연맹 등이 있고, 바둑마케팅을 하는 기업조직으로는 바둑TV, 스카이바둑, 휴먼바둑채널, 세계사이버기원, 타이젬, 월간 바둑세계, 한일바둑판상사 등이 있다. 인적인 면에서 보면 프로기사, 아마고수, 바둑지도사, 바둑평론가, 바둑기관 종사자, 바둑업체 종사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들 조직과 인물들은 바둑계의 각 부분을 담당하면서 상호공존하는 체제 속에 있다. 이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창조해 내는 활동, 상징, 산물이 한국의 바둑문화를 만들어낸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바둑계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유기체의 각 부분들처럼 공조하는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바둑계의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하기보다 대립하고 갈등하는 관계를 빚어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1975년에는 기사파동이 일어나 대한기원이라는 신흥단체가 생긴 적이 있고(한국기원, 1998), 한국기원과 아마바둑협회와의 대립, 프로기사와 한국기원 이사장과의 불화, 바둑업체간의 과잉경쟁 등 다양한 갈등양상을 보여왔다. 프로와 아마고수, 바둑지도사간에도 갈등관계가 존재하며, 심지어는 프로기사나 지방 바둑협회 등 동질적인 집단 내에서도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이와 같은 갈등은 바둑계를 발전시키는 동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바둑계 각 요소들의 협력에 의한 시너지 효과를 방해하고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 역기능을 하고 있다. 예컨대, 어린이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바둑지도사들과 초등학교 특기적성 바둑강사들이 서로 협력하여 아동바둑교육을 활성화하지 않고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체계적인 바둑교육 방식의 정립이 시급한 현실에서 볼 때 퍽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논문에서는 바둑계에 존재하는 갈등의 실태를 정리하여 그 원인을 분석하고, 거시적인 틀에서 이러한 갈등구조의 해소 방안을 모색해 보려고 한다.  

  II. 바둑계의 갈등 현상

  1. 갈등의 정의

  갈등은 ①칡덩굴이 얽힘과 같이 일이 복잡하게 뒤얽혀 알력을 낳게 하는 상태나 관계, ②서로 상치되는 견해․처지․이해 따위의 차이로 생기는 충돌, ③정신 내부에서 각기 틀린 방향의 힘과 힘이 충돌하는 상태를 가리킨다(한국어사전편찬회, 1993). 바둑계의 갈등은 이 중에서 두 번째 정의에 해당한다. 바둑계의 하위조직이나 집단이 서로 상치되는 입장에서 발생시키는 알력이나 충돌을 의미한다.

  갈등은 당사자들이 그것의 존재를 인정할 때 존재하며, 대립․희소성․방해 등의 개념과 관련이 있고, 서로간의 이해나 목표가 상충하는 둘 이상의 당사자가 존재할 것을 전제로 한다(박내회, 2004). 바둑계의 갈등은 당사자들이 언설이나 행동으로써 갈등의 대상에 대한 대립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승부 위주의 바둑계 정책에 대하여 바둑문화연구회에서 문화적 접근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승우, 2001)과 같이 어느 한 쪽만이 갈등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는 일본의 사카타 에이오 9단과 후지사와 슈코 9단 사이에 있었던 바둑시합에 관련된 갈등(1973., 조남철)과 같은 개인과 개인간의 갈등은 제외하고, 집단간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2. 바둑계 갈등의 실태
  바둑계의 집단적 갈등은 한국기원이나 전국바둑교실협회와 같은 조직, 프로기사 집단이나 프리랜서 집단과 같은 동종의 직업․직능을 가진 집단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을 가리킨다. 지금까지 발생한 갈등 양상 중 비교적 객관적으로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프로기사집단과 아마추어 고수집단
  프로기사가 소속된 한국기원과 아마추어 집단과의 사이에 적지 않은 갈등이 존재한다.  아마추어 고수집단에서는 한국기원이 프로기사협회로서의 성격을 갖는다고 보고 아마추어바둑연맹이 생겨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정수현, 1997).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프로를 지망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많은 아마추어 고수들의 애환이 있었다. 아마강자들은 한국기원이 자신들에 대해 너무 배려를 하지 않는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을 ‘아마기사’라고 칭하며 실제로 프로기사와 매우 흡사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정수현․김달수, 2003). 아마강자들이 참가하는 전국 규모의 바둑대회는 상금 위주로 운영되어 프로대회와 유사한 양상을 띠었다.

  한편, 프로기사들은 아마강자들을 ‘총잡이’라고 부르며 이들이 순수한 아마추어의 축제를 막는다고 비난을 했다. 상금을 겨냥한 총잡이들이 아마대회를 휩쓸기 때문에 일반 바둑팬들은 참가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2) 한국기원과 타 기관
  바둑의 총본산으로 불리는 재단법인 한국기원은 바둑에 관한 활동에서 가장 주도적인 입장에 있기 때문에 다른 기관과 마찰을 빚는 일도 잦다. 대표적인 갈등으로는 한국기원과 국제기원, 아마바둑협회와의 갈등을 들 수 있다. 조치훈후원회를 기반으로 한 국제기원이 생겨 프로를 배출하자 한국기원은 이 단체를 인정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압력을 넣기도 했다. 결국 국제기원에서 프로자격을 인정받았던 기사들은 모두 탈퇴하여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기업인, 정치인과 아마강자들이 힘을 합쳐 아마추어를 중심으로 한 단체―아마바둑연맹이나 아마바둑협회―를 창설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한국기원에서는 이 단체가 산하단체로 들어올 경우 허용하겠다고 했으나, 아마연맹측에서는 그것을 원하지 않아 일이 쉽게 추진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7년에 독립단체인 아마바둑협회가 결성되었다.

  아마바둑협회와 한국기원은 서로 협조하며 바둑문화 발전에 기여하기로 했으나, 1999년 아시아바둑선수권전을 아마바둑협회에서 개최했을 때 한국기원이 프로기사 참여를 금지시킴으로써 냉각된 관계로 발전하였다.

  한국기원의 산하단체로 되어 있는 전국바둑교실협회와는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나, 종종 한국기원의 사무총장이나 프로기사들과 갈등을 빚는 일도 있다. 갈등의 원인은 500여 곳의 바둑교실이 소속된 전국바둑교실협회가 지방조직을 바탕으로 지나치게 권한을 행사하려 한다는 것 때문이다.

  한국기원과 바둑회사와의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는 일도 있다. 바둑TV, 타이젬 등 회사와 저작권, 경영활동 등을 놓고 잡음을 일으키기도 한다.  

  (3) 바둑교실 원장집단과 특기적성 강사집단
  어린이를 대상으로 바둑을 가르치는 바둑교실 원장집단과 초등학교에서 바둑을 가르치는 특기적성 강사집단간에는 직업영역을 둘러싼 갈등이 있다. 바둑교실 원장들은 특기강사들이 어린이 바둑교육 시장의 질서를 무너뜨린다고 비난을 한다. 20년 이상 바둑학원을 운영해 온 Y씨는 이렇게 말한다.

  초등학교에서 바둑을 가르치면 어린이바둑은 무너집니다. 엉터리로 가르치는 데다가 바둑의 이미지를 버려놉니다.  

  이런 주장에 대하여 특기적성 강사를 다 년간 해 온 L씨는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라고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바둑교실 지도사 집단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바둑교실에서는 교수방법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지도사의 자질을 향상시키려는 노력도 별로 하지 않는다. 공식 교육기관인 학교에서 바둑을 가르치면 바둑의 위상이 올라가는데 자신들의 입장만 생각하여 반대하는 것은 좁은 생각이다.

  동일한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집단 사이에는 어느 분야에서나 경쟁적인 대립구조가 형성되게 되지만, 바둑계의 경우 자신의 집단과 파이를 나눠 가져야 한다고 생각될 때 상대 집단에 대해 심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어린이 바둑학습 시장을 둘러싼 갈등은 2003년에 출현한 바둑학습지 회사와 바둑교실원장 집단간에서도 엿볼 수 있다.  

  (4) 유사 바둑기업간
  바둑팬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는 기업간에는 경쟁의식과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월간「바둑」지를 출간해 온 한국기원 출판부와 다른 바둑잡지와 종종 대립적인 관계를 맺어 왔다. 외부 잡지사에서는 한국기원이 기보에 대한 저작권을 이유로 취재나 기보 사용을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방송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유선방송사들은 공급 루트를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관계에서는 새로이 진출한 기업이 기존의 기업이 구축한 시장에 뛰어들려고 할 때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양상을 띤다.

  인터넷 바둑기업 간에도 시장경쟁을 둘러싼 갈등이 있다. 여기에는 한국기원의 자회사인 세계사이버기원과 몇몇 유명기사가 관련된 타이젬 사이에서 한국기원과 프로기사들이 갈등을 보이는 복합적인 양상을 띠기도 한다.  

  (5) 유사 바둑기관간
  지방의 바둑계 인사들이 지역바둑본부를 두고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해 갈등하는 경우도 있다. 부산과 대구 지역에서 이러한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여 한국기원 당국을 곤혹스럽게 하였다. 이 두 지역의 갈등은 한국기원의 중재로 해결이 되었다. 지방 바둑단체의 분쟁에는 프로기사, 아마강자, 바둑교실원장 등이 연루되어 갈등을 증폭시키는 양상을 보인다.

  이런 갈등은 다른 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미국이나 이태리의 경우 바둑협회의 대표성을 놓고 갈등을 일으킨 적이 있고, 대만에서도 몇 개 바둑단체가 존립하면서 경쟁적인 관계를 유지한 적이 있다.  

  (6) 조직 내의 갈등
  같은 조직 내에서 성격이 다른 소집단간에 갈등이 발생하는 일도 있다. 한국기원에 소속된 프로기사와 직원간에는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기사들은 한국기원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 직원들의 무사안일주의에 젖어있다고 비판을 했고, 직원들은 기사들이 상전처럼 행동하는 것에 심한 거부감을 표현했다. 한국기원의 주요활동이 프로기전과 관련된 마케팅이라고 볼 때 이 두 집단은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는데도 이들은 오랫동안 갈등구조를 유지해 왔다. 물론 이런 갈등관계와는 대조적으로 직원과 기사간에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한국기원 이사회를 대표하는 이사장과 일부 혹은 상당수 프로기사집단간에 갈등이 발생하는 일이 있다. 대부분 이사장의 행정적인 처리나 운영에 관한 불만이 갈등의 도화선이 된다.

  동질 집단인 프로기사 간에도 신구 세대간 갈등이 노출되기도 한다. 이런 갈등은 기원행정의 중요한 위치인 사무총장, 기사회장의 선임과 관련될 때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40~50대 연령층에서 후배계층에 주도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하여 대립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일도 있고, 유명기사 집단과 일반 기사 집단간에 퇴직적립금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기도 한다.

  어린이 바둑교실 간에도 영업이나 헤게모니 쟁탈을 둘러싼 갈등이 있다. 이 경우의 갈등은 동종의 상품을 놓고 경쟁하는 기업간의 갈등과 비슷한 양상을 띤다.

  (7) 한국기원과 학부모
  프로의 자격과 관련하여 한국기원 연구생의 학부모들이 불만을 품고 한국기원과 갈등을 일으키는 일도 있다. 소수의 프로기사를 선발하는 제도가 자격증에 관한 사회적 관행에 비추어 너무 보수적이고 불합리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 학부모들의 일반적인 생각인데, 한국기원은 프로기사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것이 재정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기사의 희소가치를 감소시킨다는 점에서 난색을 표하는 입장이다.

  이 갈등구조에서는 사회적 약자의 처지에 있는 학부모들이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내적으로 불만을 비축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밖에도 프로기사와 바둑지도사, 바둑평론가와의 갈등 등 적지 않은 갈등관계가 존재한다. 집단 내에서 갈등과 관련된 인원의 비율은 알 수 없을 지라도 바둑계의 거의 모든 집단간에는 갈등구조 속에 있는 계층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둑계의 갈등을 정리해 보면 표1과 같다.  

                표1. 바둑계의 갈등 구조

갈등의 소재 갈등의 주체
집단간 이질

집단

한국기원․아마협회,  프로기사․아마강자, 한국기원․바둑회사(방송, 인터넷), 프로기사․지도사, 한국기원․학부모, 프로기사․평론가
동질

집단

지도사․특기적성강사, 한국기원․국제기원, 바둑방송사간, 지방바둑협회, 바둑잡지사간 
집단 내 프로기사․이사회, 프로기사 세대간, 유명기사․일반기사, 프로기사․직원, 바둑교실간
 
 
 

  III. 갈등의 원인

  위에 열거한 바둑계의 갈등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인간사회에는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얽혀 갈등과 분쟁이 발생하고 있는데, 바둑계의 갈등 역시 이러한 이해관계가 주요한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이해관계 외의 다른 요인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바둑계 갈등의 주요한 원인들을 생각해 본다.  

  1. 자원의 희소성

  사회적 갈등의 대부분은 집단의 생존과 관련된 자원이 희소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사회학의 갈등이론에서는 인간이 소유하고자 하는 대상물은 제한되어 있고 인간의 소유욕은 무한한데 이 모순을 해결할 길이 없으니 인간간의 경쟁과 갈등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전제한다(송병순, 임종익, 안병환, 이영호, 우은복, 김철훈, 2002). 자원이 풍부하다면 굳이 그것을 얻기 위해 갈등을 하고 투쟁을 할 이유가 없겠으나, 자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쟁취하기 위하여 집단간에 분쟁이 발생하는 것이다.

  바둑계의 갈등 중에는 이와 같은 자원의 희소성과 그것을 둘러싼 경쟁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 적지 않다. 어린이 바둑교육을 둘러싼 바둑교실원장과 특기적성 강사와의 갈등, 공급루트를 놓고 경쟁하는 바둑방송사간의 갈등, 프로기사 선발을 놓고 입장 차이를 보이는 학부모와 한국기원의 의견 대립 등 많은 갈등의 이면에서는 자원의 희소성이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자원의 규모를 확장함으로써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 대부분의 조직들은 대부분 주어진 자원만을 놓고 경쟁하는 양상을 보인다.

  2. 공동체 의식의 결여
  바둑계의 갈등 양상을 살펴보면, 갈등의 당사자들이 모두 바둑계의 구성원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결여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바둑계를 하나의 공동체로 본다면 각 조직의 구성원들은 공동의 문화를 공유하며 바둑계를 지탱해 나가는 동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을 빚는 당사자들간에 이러한 동료의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바둑계의 각 조직들은 크건 작건 서로가 연관성을 갖고 자신들의 목표를 수행해 가고 있다. 예컨대, 한국기원은 프로기전을 개최하여 기보를 생산하고, 관전기자들은 그 기보를 해설하여 팬들에게 전달한다. 바둑방송이나 인터넷에서는 프로의 활동과 기보를 가공하여 팬들에게 서비스한다. 바둑교실 지도사들은 어린이들에게 바둑을 지도하여 새로운 바둑인구를 형성시키며 유망한 어린이를 전문기사로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한편 바둑교실은 한국기원을 중심으로 산출되는 바둑활동 내지 정보가 없다면 국민들의 바둑에 대한 인식도가 떨어져 존립 자체가 문제가 된다. 이러한 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이들 조직과 구성원들이 상호의존하는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Durkheim 등 기능주의 사회학자들은 사회는 하나의 전체요, 그 전체는 여러 부분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분요소들은 전체의 생존에 기여한다는 뜻에서 그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설명한다(송병순 외, 2002). 즉, 사회를 마치 생물 유기체와 같은 체계로 보아 사회를 구성하는 부분요소들이 상호의존관계를 가지고 서로 다르게 기능함으로써 사회를 유지․존속한다고 본다. 바둑계의 각 부분들이 상호의존관계를 갖고 협력함으로써 바둑문화가 이루어지며, 바둑계가 유지되고 존속하고 있다고 봐서 틀림이 없을 것이다.

  바둑계라는 공동체 속에서 다른 조직들과 유기적인 상호의존 관계에 있음을 지각하지 못하는 것이 갈등의 한 원인으로 간주된다.  

  3. 주도권 확보의 열망
  갈등의 주요한 한 원인으로 갈등하는 집단들이 어떤 지위를 놓고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지를 강하게 갖고 있는 경향을 지적할 수 있다. 지방바둑협회를 놓고 하위집단들이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려고 경쟁하는 양상이라든가, 어떤 한 조직이 그와 유사한 단체의 출현을 방해하려는 움직임은 주도권 쟁탈의 욕망과 관련이 있다.

  주도권을 쟁탈하려는 욕망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권력 행사의 욕망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를 확장시키려는 욕망을 갖고 있는데, 자기를 확장시키려는 욕망은 직접 다른 사람에 대해서 우월적인 지위를 얻음으로써 충족시키려는 경우에는 자아우월의 욕망으로 되며, 구체적으로는 경쟁의 욕구와 공격의 욕구로서 나타난다. (이극찬, 1995). 

  Russell(1938)은 끊임없이 일어나는 인간의 욕망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과 영광에 대한 욕망이라고 하며, 권력욕과 영광욕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결코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영광을 누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권력을 장악하는 일이라고 한다.

  이러한 주도권 쟁탈의 이면에는 그 지위를 획득할 경우 수반되는 경제적 이익이나 명성과 관련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바둑계의 경우 그런 부수적인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에서 단순히 이익이나 명예와 같은 요소와는 다른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어떤 지위를 획득함으로써 그 지위에 관한 활동에서 주인의식(ownership)을 갖고자 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또한 자존심과 체면을 살리고자 하는 측면도 있다.

  종합해 볼 때, 주도권 확보의 경쟁에는 이런 경쟁에서 승리할 경우 전쟁의 승자처럼 위에 열거한 여러 가지 권익을 누릴 수 있다는 암묵적인 가정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4. 집단이익 우선주의
  집단간 갈등의 이면에는 대개 그렇듯이, 바둑계 조직간의 갈등에는 집단 이기주의적인 사고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자신이 소속한 집단의 이익을 다른 집단에 양도할 수 없다는 사고가 만연되어 있다. 이러한 집단이익 우선주의는 동종의 활동이나 사업을 놓고 경쟁하는 집단 사이에 강하게 나타난다.

  프로기사와 아마기사간의 갈등, 바둑교실원장과 특기적성 강사간의 갈등, 바둑방송 업체간의 경쟁에는 자기 집단이 이익을 독점하겠다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한국인은 일반적으로 집단주의 문화의 특성을 많이 갖고 있다고 주장되는데(한규석, 1998), 전체적인 입장에서 사태를 보지 않고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풍조는 바둑계 갈등의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5. 권위주의와 피해의식
  바둑계 갈등에서 특별하게 나타나는 양상의 하나는 권위주의적 행태와 그에 따른 피해집단에게서 나타나는 갈등이다. 한 집단이 기존의 규범이나 규칙을 적용해 권위주의적으로 행동할 경우 불이익을 받는 집단이 있게 마련인데, 후자의 집단에서 피해의식을 느끼고 저항하는 양상을 띤다. 이것은 사회의 기득권층과 소외계층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갈등의 형태이다.

  Dahrendorf(1959)는 사회 안에는 갈등이 항상 있는 것이고, 사회질서는 갈등하는 이해관심을 지닌 집단들 사이에서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강제적으로 복종시키는 관계에서 성립하며, 갈등을 통하여 사회변동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김경동, 1978). 바둑계에서도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 대한 지배적인 위치를 갖으려고 함으로써 갈등이 야기되는 현상을 종종 볼 수 있다. 한국기원에서 아마연맹을 자기 조직의 산하단체로 만들려 하고 아마연맹에서는 그에 반발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이러한 갈등의 근원은 주로 바둑계의 중추기관인 한국기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프로기사의 배출을 둘러싼 학부모의 불만, 자신들을 배려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아마추어 강자 집단, 기보에 관한 저작권을 남용한다고 생각하는 바둑정보 제공업체 등 한국기원의 정책이나 행정에 의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생각하는 계층이 의외로 많다.  

  6. 유아론적(唯我論的) 사고: 다양성 거부
  바둑계의 많은 조직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만이 존재해야 할 것 같은 관념을 갖고 있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유아론적 관념은 자기 이외의 다른 집단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게 만들어 타집단의 구성원들과 갈등을 빚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프로기사 집단과 바둑교실지도사 집단이 서로 상대 집단을 배제하려는 사고를 갖고 있고, 한국기원이 유사한 단체나 아마추어협회의 출현을 극력 방지하려고 한 데는 자신의 집단이나 조직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깔고 있다. 만일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처럼 상대집단을 배제하려 하거나 경원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7. 역할 정체성의 모호함
  집단의 지위와 관련된 갈등의 원인에는 각 집단의 역할 정체성이 모호함에 의해 촉발되는 것도 있다. 예컨대, 프로기사와 바둑지도사의 갈등을 보면 프로기사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상이함을 발견할 수 있다. 바둑지도사들은 프로기사의 역할을 바둑기술을 연마하여 프로시합에 참가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 반면, 프로기사들은 자신들의 역할이 바둑에 관한 전문적인 일―대국, 지도, 해설 등―을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역할 인식의 차이로 인해 미묘한 갈등이 빚어진다. 프로기사가 어린이 초심자를 대상으로 한 바둑교실을 개업하려고 하면 바둑지도사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비난을 하고, 이런 분위기를 의식하여 프로기사들은 프로지망생 위주의 바둑도장을 경영하는 쪽으로 선회한다.

  이러한 역할 갈등은 조직적인 수준에서도 나타난다. 한국기원의 역할을 놓고 프로기사협회로 하라는 아마강자 집단의 주장, 아마추어 단체에서는 아마추어를 위한 단증과 급증을 발행할 수 없다는 한국기원의 주장 등에는 각자의 역할에 대한 이해가 달라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사례들이다.  

  위에서 살펴본 갈등의 원인을 성격별로 정리하면 표2와 같다. 각 요인들은 다른 요인과 혼합되어 갈등의 강도를 증가시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표2. 갈등의 원인

구분 요인의 종류 대표적 사례
경제적 요인 자원의 희소성 어린이바둑교육, 바둑방송
집단이익 우선주의
정치적 요인 주도권 쟁탈의 욕망 지방바둑협회, 한국기원과 아마연맹
구조적 요인 권위주의 vs 피해의식 한국기원과 학부모, 잡지사
사회심리적 요인 공동체 의식의 결여 프로기사와 바둑지도사
유아론적 사고 한국기원, 바둑사업체
제도적 요인 역할 정체성의 모호함 프로기사, 아마기사, 지도사
 

  IV. 바둑계 갈등의 영향
  1. 부정적 효과
  바둑계의 조직과 집단의 구성원들이 갈등관계를 갖고 있을 경우 바둑계의 유지․발전에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정적인 효과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갈등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를 방해받는다. 집단간에 갈등 대신 협력을 한다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을 상황을 가로막게 된다. 예컨대, 아마협회와 한국기원이 적절히 역할 분담을 하면서 공조한다면 바둑보급에 훨씬 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바둑사업체 간에 특성화를 하여 각자 부족한 부분을 아웃소싱하면서 공략해야 할 시장의 전반적인 부분에 균형있게 접근한다면 경영면에서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둘째, 구성원 간에 적대적이고 냉소적인 인간관계가 형성된다. 갈등은 대립과 투쟁을 낳아 바둑계 구성원들 사이에 적대감과 냉소적인 분위기를 팽배하게 만든다. 바둑지도사와 프로기사 사이에 갈등이 빚어져 과거에 친밀한 인간관계를 가졌던 사람들이 적대적인 관계로 발전할 수가 있다. 바둑을 애호하는 지방의 바둑팬들 사이에 주도권 장악으로 인한 갈등에 의해 불편한 관계를 형성한 사례도 있다.

  셋째, 갈등하는 조직의 목적 달성이 저해되어 조직의 존립이 위협받는다. 특기적성 바둑강사와 바둑학원 지도사들이 갈등할 경우 대립적인 상황을 넘어 집단의 목적―아동에게 바둑을 가르쳐 건전한 여가선용의 기회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직업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흔들리고, 결과적으로 집단의 존립이 문제시될 수 있다. 아마추어 바둑협회는 한국기원과의 갈등으로 적절한 목적―아마추어 바둑팬 관리, 바둑보급, 아마추어 바둑대회 주관 등―을 수행하지 못하고 유명무실한 단체로 전락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프로기사들은 바둑지도사들과의 갈등으로 기전 참가 외의 바둑지도 활동 등에 대한 기회를 얻지 못해 직업인으로서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인 효과는 거시적인 면에서 바둑팬들에게 대한 서비스의 부실을 가져오게 된다. 예로서, 바둑방송, 바둑지도사, 인터넷 바둑사이트 등이 많이 있음에도 성인이 바둑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 없고, 기력이 낮은 바둑팬들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 또한 한국이 바둑최강국으로 자부하고 있음에도 해외의 바둑팬들에게 바둑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노령층 인구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구통계학적 상황에서 노령층을 대상으로 한 바둑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는 곳도 없다. 이러한 서비스 부실이 반드시 바둑계의 갈등구조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갈등으로 인한 부작용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해 뵌다.

  2. 갈등의 긍정적 효과
  갈등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은 갈등이 상당히 부정적인 것으로서 조직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보았으나, 194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 널리 받아들여졌던 행동주의적 견해(behavioral view)에 의하면 모든 조직과 집단에서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고 보았고, 갈등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으며 갈등이 때로는 집단의 성과를 향상시키기도 한다고 보았으며, 최근에는 갈등이 오히려 조직 내에서 추진력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갈등은 조직이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박내회, 2004).

  갈등이 오히려 순기능을 할 수도 있다는 입장에서 바둑계 갈등이 가져오는 긍정적인 효과를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집단 내의 결속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투쟁의 대상이 외부에 있을 경우 그 집단은 외부의 적에 대한 공조를 하기 위해 내부적으로는 협력을 하게 되는 것을 인간사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바둑교실협회와 같은 조직의 경우 한국기원이나 프로기사 집단과 갈등하는 상황일 때 집단의 안정을 위해 구성원들이 단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 아마추어 강자들로 구성된 ‘청아모’ 집단은 프로선발제도와 관련된 제도적 상황에 피해의식을 강하게 느낄 경우 집단 내 결속이 상당히 강화될 수 있고, 이를 중심으로 한 반문화적(反文化的) 활동을 할 수 있다.

  둘째, 경쟁적인 분위기를 조장시켜 업무수행에 더 노력을 기울이도록 한다. 동종의 시장이나 아이템을 놓고 갈등관계를 갖고 있는 동질적 집단들 간에는 경쟁적인 분위기가 생겨 업무에 에너지를 더 투입하는 현상이 생기게 된다. 독점적으로 유선방송 사업을 하던 바둑TV는 스카이바둑 위성방송이 생기자 보다 참신한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1975년에 한국기원 운영진의 소극적인 경영에 반기를 들고 시위를 벌였던 프로기사 파동으로 한국기원은 책임자를 경질하고 보다 발전적인 행정을 지향하게 되었다.

  셋째, 서비스 상품의 질이 향상된다. 동종의 아이템을 놓고 경쟁적인 갈등관계를 형성할 경우 서비스나 상품의 질이 높아지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 바둑사이트들은 경쟁사보다 더 나은 하드웨어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팬들이 이용하기에 좋은 환경을 구축하였다. 후발 방송업체에서 기존의 방송보다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출연자에게 화장을 시키고, 바둑해설 방식을 개선하고, 의상도 특별히 신경을 쓰는 등 노력을 함으로써 방송 프로그램의 질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세 번째의 경우 갈등보다는 상품에 관한 경쟁의 측면이 강한데, 이와 같은 선의의 경쟁은 서비스 향상을 위해서는 절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하나의 가정이지만, 만일 한국기원과 유사한 단체가 있어 프로기사 선발과 기전 참가 등에 대한 협약 하에 서로 경쟁을 하는 체제였다면 어떤 상황이 전개되었을까? 두 단체가 서로 상대편 단체보다 앞서려는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기전 방식, 단급 인정제도, 프로기사 매니지먼트 및 복지, 바둑이벤트 등 많은 면에서 현재보다 더 발전된 상황이 왔을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도 바둑팬들은 이런 경쟁체제로부터 훨씬 더 나은 서비스를 받게 되었을 것이다. 바둑의 규칙을 지키며 시합을 하듯이 공정한 룰을 지키며 선의의 경쟁을 하는 시스템은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나 서비스 향상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적절한 갈등은 오히려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된다.  

  V. 갈등의 해소 방안
  바둑계의 갈등 양상에 대해 살펴보고 그 원인과 영향을 분석해 봤다. 여기서는 갈등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둑계가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계층간 긴밀한 협응구조를 갖고 있기도 하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한 다른 단체나 조직에 비해 갈등의 성격이나 강도가 그리 강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바둑계에 엄연히 갈등구조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며, 이로 인해 바둑계의 발전이 저해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바둑계에 종사하는 H씨는 이렇게 증언을 한다.  

  바둑계의 조직들이 경직되어 있습니다. 조금 양보하면 되는데 별 것 아닌 걸로 싸우다가 중요한 대회가 없어지는 일도 있습니다. 저희가 볼 때는 싸울 만한 이유가 아닌 것 같은데…

  이처럼 바둑계의 갈등이 바둑문화의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면 바둑계의 각 조직은 가능한 한 갈등구조를 탈피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바둑계의 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몇 가지 제시해 본다. 박내회(2004)는 갈등의 해결방법으로 문제의 공동해결, 상위목표의 설정, 집단간 상호의존성 감소, 자원의 확충, 상호작용의 촉진 등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갈등이 너무 적을 경우 조직이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고 환경변화에 둔감하게 되어 역기능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관점에 따라 역으로 갈등을 촉진하는 방법도 제안한다. 여기서는 갈등을 해소하는 방안을 생각해 본다.  

  1. 거시적 관점과 공동체 의식 형성
  바둑계의 갈등관계를 보면 갈등 주체들의 바둑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상당히 협소하고 고립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바둑계의 구조를 그림1과 같이 표시해 볼 수 있는데, 외부의 바둑팬 집단의 중심에 서 있는 각 개별집단은 상호작용하면서 생존을 하고 있다. 알파벳으로 표시된 집단들간의 화살표는 서로가 상부상조하는 관계를 나타낸다. 그러나 바둑계의 많은 구성원들은 각 집단이 이처럼 유기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한다. 이러한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각 집단이 거시적인 안목으로 바둑계 전체를 바라본다면 집단이기주의나 자기 집단 중심적 사고에서 생기는 갈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부분집단의 입장에서 사물을 볼 때와 전체집단 내지 사회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사물의 가치는 달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둑에서는 “부분에 눈을 고정하지 말고 바둑판 전체를 보라”는 것을 강조하는데, 바둑계를 보는 관점에서도 이와 같은 총체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그림1. 바둑계의 구조 모형>

  바둑기관, 바둑기업, 바둑지도사, 프로기사, 바둑기고가, 기우회 등이 전체 바둑계를 이루는 하위조직 및 구성원들이다. 바둑계 전체가 유지되고 발전이 되어야 바둑계의 구성원들이 생존할 수 있다고 본다면, 구성원들이 부분적인 이해득실에 사로잡혀 갈등을 빚음으로써 전체 바둑계를 해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관전기자나 바둑기고가가 명문으로 바둑에 관한 평을 하여 팬들을 감동시킬 때 바둑팬의 수가 늘어나고, 이것이 프로기사나 바둑지도사에게도 도움이 된다. 또한 바둑사업체들이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할 때 바둑계의 활동을 증대시키고 프로기사나 아마추어 동호인의 활동 무대도 넓어질 것이다. 그런데도 기보 저작권 문제나 특정기업과의 연관성 때문에 한국기원이 다른 조직들과 갈등을 빚는다면 바둑계 전체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가 된다.

  자기 집단만이 바둑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부분적 관점에서 벗어나는 것이 갈등을 줄이는 주요한 방안이 될 수 있다. 바둑계의 각 조직과 집단이 거시적인 틀에서 상호협력하는 공동체라는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2. 자원 개발을 위한 공생 관계  
  바둑계 갈등의 상당 부분은 동일한 자원을 둘러싼 시장 다툼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 많다. 파이를 하나 놓고 두 사람이 서로 차지하려고 하면 자연히 갈등과 분쟁이 발생할 것이다.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면 둘이 파이를 적당히 나눠 갖는 것에 만족하거나, 새로운 파이를 만드는 방법의 두 가지가 있다. 전자의 방법은 마케팅에 의한 수익이 빈약해져 생존의 문제가 대두될 수 있으므로, 양자에게 유리한 후자의 방법을 택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예컨대, 어린이 바둑교육 시장을 놓고 바둑교실 원장과 초등학교 특기적성 강사가 서로 그 시장을 독점하려 한다면 자연히 갈등과 분쟁이 발생할 것이며, 그렇다고 한정된 자원을 놓고 시장을 분할한다면 마케팅의 규모가 너무 왜소해질 것이다. 따라서 두 집단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잠재적인 고객층을 개발하여 시장 규모를 확대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 전국바둑교실협회에 등록된 바둑교실의 수는 600개 정도이며, 여기서 바둑을 배우는 아동의 수는 연간 10만~2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 인구는 우리나라 인구 중 바둑학습의 주요 연령층인 5~9세 인구 3,444,056명(통계청, 2000년 조사)에 비추어 보면 극히 적은 비율이라고 할 수 있다. 바둑교실 지도사와 특기적성 강사가 협력하여 더 많은 아동들이 바둑학습에 참여하여 제대로 바둑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이와 동일한 논리로 바둑방송이나 바둑인터넷 회사간에도 잠재적 고객층을 개발하여 시장의 규모를 늘리고 공생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태국의 기업인이자 바둑협회장인 Korsak Chairasmisak은 요충지를 경쟁사가 점유하는 동안 다른 곳을 개척하여 상생(相生)의 경영을 실천했다고 한다(정수현, 1997).

  3. 제도에 대한 합리적 분석
  바둑계 갈등 중에는 제도상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들도 있다. 프로기사 선발제도와 기전 참여의 허용, 상금제도, 연구생 제도, 아마 단급 인정제도 등이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제도에서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집단에서는 자연히 불만이 표출되고, 이것이 쌓여 집단적인 갈등으로 비화되게 된다. 어떤 제도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불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으나, 그것이 집단적 갈등으로 표현될 때는 그 원인과 해소방안에 대하여 신중하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바둑계의 제도들은 대부분 해방 이후 조남철 9단과 주변 사람들이 일본의 제도를 모방하여 확립한 것들인데,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굳어져서 마치 절대적인 제도인 것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아마단증을 인허할 때 상당히 비싼 인허료를 부과하는 제도는 기력을 정상적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대다수의 아마추어 바둑팬들에게 부담을 주며, 건전한 바둑보급을 사명으로 하는 한국기원의 설립목적에도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기원에서는 고액의 인허료를 극히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이와 같은 제도에 대해 합리적으로 분석하여 문제의 원인과 대안을 찾는 체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4. 집단의 정체성 및 역할 명료화
  바둑계 구성원들의 역할에 대한 정체성을 명료하게 하는 것이 갈등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프로기사, 아마기사, 바둑지도사 등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분명치 않아 혼선을 빚고 이로 인해 불필요한 갈등이 발생한다. 현재 이 세 계층의 관계는 골프의 PGA프로, 세미프로, 레슨프로의 관계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자격을 규정하는 명확한 규정이 없어 역할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이러한 혼란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하여 먼저 프로기사가 전문바둑선수의 역할에 국한되는 것인지, 바둑지도 등 바둑기술과 관련된 전문가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또한 프로기사와 거의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아마기사” 계층에 대해서도 공식화된 자격을 부여하여 바둑계의 떳떳한 구성원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바둑지도사 제도는 1991년에 시행된 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으나, 자격요건을 충족시키는 시험절차가 미흡하여 공인 자격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바둑지도사 또한 자격제도를 엄격히 시행하여 이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적 위상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역할 정체성의 문제는 한국기원, 아마바둑협회, 바둑교실협회와 같은 기관에도 해당된다. 각 기관이 목적을 분명히 하고 실제로 그 목적에 맞는 운영을 해 나감으로써 조직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명료해지고, 갈등의 소지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5. 사회적 사명감 인식
  현실적인 면에서 실행 가능성이 좀 희박하지만 바둑계 구성원들이 사회적 사명감을 인식할 수 있다면 갈등을 줄이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바둑계의 여러 비영리 조직들은 국민들에게 건전한 바둑문화를 보급하여 여가선용에 기여토록 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그러나 비영리 조직의 구성원들은 자신이 소속된 기관이 마치 영리적 목적의 조직인 것처럼 여기며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영리 추구의 행태는 자칫 사회적 사명감을 망각하고 이해관계에 집착케 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로 인해 바둑팬들에게 권위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집단이라는 인식을 하게 할 수 있다.

  사회적 사명감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서도 중요시된다. 많은 기업에서는 조직의 사명을 명료화한다. Kotler와 Fox(1995)는 조직의 목표를 세울 때 그 기관의 사명, 목적, 목표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사명은 그 기관의 기본적 목적, 즉 그 기관이 성취하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영리조직인 기업들도 조직의 사회적 사명을 고려하므로 바둑계의 비영리 조직들이 사회적 사명을 생각하는 것은 극히 당연하다고 하겠다.

  바둑계의 조직이나 집단이 사회적 사명을 생각하며 접근한다면, 사소한 경제적 이익이나 주도권 다툼보다 그 사명을 중시하게 되어 갈등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가령, 한국기원이 “바둑계 인재 육성 및 건전한 바둑문화 창달”을 사명으로 삼고, 전국바둑교실협회가 “바둑을 통한 아동의 인간성 배양”을 기치로 내건다면, 많은 일을 판단하는 데 바로미터가 되어 소리(小利)에 집착하는 폐단이 감소될 수 있을 것이다.

  갈등을 해소하는 방안을 몇 가지 제시해 보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방안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까? 이런 일을 추진할 수 있는 핵심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바둑계를 거시적인 공통체로 승화시킬 수 있는 바둑계 대표자회의 개최, 지도자 집단 양성, 조직학습 등의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 중에서 조직학습(organizational learning)이란 관련 당사자들을 점차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조직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개인, 집단, 시스템의 수준에서 학습과정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Dixon, 1994). 조직의 구성원들이 학습을 통해 노하우와 같은 암묵적인 지식을 추출해 냄으로써 조직의 능력을 높일 수 있다. 이러한 조직학습의 개념은 바둑계에서 약간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집단 내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암묵지를 자연스럽게 털어놓아 구성원들의 지식을 모으고 이를 통해 조직의 능력을 높임과 동시에 조직의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 토대로 삼도록 한다. 조직학습은 바둑계 조직의 지적 능력을 제고하고 합리적 의사결정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 또한 연수교육 등을 통해 조직의 문제점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바둑계의 실제적인 문제를 제시하여 협동으로 해결하는 훈련을 하는 것도 유익하다. 이와 같은 학습을 통하여 바둑계의 구성원들은 부정적인 갈등의 늪에서 벗어나 공동의 이익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VI. 결론
  바둑계의 갈등 양상에 대하여 실태와 원인 및 극복방안을 살펴보았다. 바둑계의 갈등에 대해서는 문헌상으로 기록되는 일이 드물고 학술적으로 다뤄진 적도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자료를 연구자의 경험에 의존하였다. 그런 점에서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되었음을 배제할 수 없겠으나, 이 논문에 언급된 갈등의 내용은 실제로 대부분의 바둑계의 구성원들이 인정하는 내용들이다.

  이 글의 목적은 이러한 갈등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 원인과 대처방안을 합리적으로 찾아보자는 데 있다. 만일 갈등을 분석하고 적절한 처방을 함으로써 바둑계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면 이러한 논의는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본 논문에서 분석한 바둑계 갈등의 원인은 주도권 다툼, 집단이기주의, 유아론적 사고 등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원인은 종교적 분쟁이나 숙명적인 갈등처럼 현실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의식과 거시적 관점의 확산으로 충분히 극복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바둑계의 구성원들이 싸워서 무찔러야 할 적이 아니라, 같이 협력하며 바둑문화를 창조해 나가야 할 동지라는 공동연대감을 갖는다면 해결 가능한 성질의 것이다.

  갈등의 해결을 위해 바둑계의 각 조직과 집단을 수용하여 공동체 의식을 배양시킬 수 있는 주도적인 기관이 필요하다. 바둑계의 구조로 볼 때 한국기원이 이 역할을 담당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체이나, 앞의 여러 예에서 보았듯이 한국기원은 바둑계에서 가장 많은 갈등을 낳은 원천이 되고 있다. 한국기원이 바둑계의 지도적인 기관이 되려면 여러 가지 갈등의 원인을 분석하여 수정하는 쇄신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이 연구를 계기로 바둑계의 소집단 문화에 관한 심층연구 등 갈등을 포함한 바둑문화에 대하여 체계적인 분석과 논의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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