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노동과 놀이 2.놀이의 諸학설 (1)고전적 놀이 이론 (2)역동적 놀이 이론 <1> 정신분석학적 놀이 이론 <2> Piaget의 놀이 이론 <3> 호이징아의 놀이 정의 <4> 놀이 연구회의 정의 |
1. 노동과 놀이
놀이라고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서 바라본다. 이는 문화적인 환경이 노동을 중시하고,그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놀이를 생각하며,놀이를 천시하였던 데에서 기인한다.
놀이에 대하여 언급한 여러 책에서는 노동과 놀이에 대한 관계를 여러 가지 방향으로 서술하고 있다. 놀이를 처음 이야기하게 될 때, 항상 등장하는 주제인데, 이는 노동과 놀이를 따로 떼어서는 생각할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놀이를 생산이나 노동과 떼어서는 생각할 수 없음을 놀이의 유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놀이의 유래>
생명이 있는 모든 동물은 놀이를 한다고 한다. 의식적이든 아니든간에 장안을 치거나 뛰어다니거나 하며 신진 대사를 활발히 해야 몸속의 모든 찌꺼기가 발산이 되고 그래야 건강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인간은 동물과 달리 노동을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놀이를 통해 노동을 하는 과정에서 쌓이는 모든 피로와 찌꺼기를 풀면서, 다시 자연에 도전할 집단적 힘을 충전해가는 과정으로서 놀이를 해왔다고 보여진다. 이것을 그 옛날 원시인류가 처해있던 경제적 조건과 연결해 생각해보면, 당시 인간은 자연 속에서 의,식,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얻어야 했는데,부분적으로는 자연의 변화에 적응하고, 그 이치를 깨닫고 자연과 싸우기도 했지만 자연은 거대하고 때로는 느닷없이 생명을 위협하는 이해할 수 없는 무서운 존재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거대한 자연을 움직이는 어떤 존재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고 그것을 신이라 생각하였다. 자연을 보다 잘 활용하기 위해선 신이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인간은 ‘의식(儀式)’을 시작하게 되었을 것이며 여기서 그들 나름대로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춤과 노래가 벌어졌을 것이니, 이것이 바로 놀이의 기원이라 하겠다. 이때의 ‘의식(굿)’이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보다 원할한 생산활동을 위해서였던 것처럼 놀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또 거친 자연 속에서 집단 생활과 집단 노동을 하던 원시 공동체 내부에서 사람들끼리의 갈등도 있었을 것이니, 보다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선 이러한 것도 풀어내어야 했을 것이고 놀이과정은 그런 점에서도 필요했을 것이다.
노는 것과 일하는 것은 인간 행동의 본질이다( 하나 더, 사랑하는 것 => 사랑하는 것이 빠지면 인간 행동이 값어치가 없게 된다. 사랑하고 함께하는 것이야 말로 사람이 사람다워질 수 있는 조건이다.). 노는 것과 일하는 것은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삶의 총체이다. 오늘날 노는 것과 일하는 것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변질은 오늘날 문화의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다음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일과 놀이의 순환 구조>
흔히 인류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을 두고 ‘노동 인간’으로도 보고 ‘유희 인간’으로도 본다. 말하자면 일하는 것과 노는 것은 인간의 삶의 양태를 규정하는 두 개의 커다란 범주라 할 수 있다. 노동과 유희는 둘 다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 되, 전자는 의지의 산물임에 비해 후자는 본능적 작용이라는 점에서 일단 차이점을 갖는다. 그러나 일하는 것과 노는 것은 결코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그 둘은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서 삶의 총체를 이룬다.
노동과 놀이는 인간의 육체를 통해 실현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노동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육체 활동이며, 그 노동의 결과로 생기는 육체적 노폐물을 인간은 휴식을 통하여 말끔히 씻어버린다. 그러나 인간 사이에 사회적 갈등이 생겨나면서 부터는 단순한 휴식보다는 이러한 사회적, 정신적 노폐물을 씻어내는 놀이의 기능이 더욱 강화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 사회적 갈등은 한마디로 노동의 결과가 노동한 사람에게로 정당하게 돌아가지 않을 때 빚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본원적인 의미에 있어서 노동이란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취하기 위해 신체를 사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좀더 포괄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 노동이란 자연속에 내재한 어떤 생명력을 다른 생명력으로 전화. 순환시키는 인간의 활동이다. 삶의 근본이 노동에 있다는 사실은 바로 이같은 자연 생명력의 순환구조에 연관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노동의 결과가 노동한 사람에게로 당연히 돌아가야 하는 것은 사회적 순화을 위한 본성적인 기능이며, 그 노동의 순환구조가 차단됨으로써 생겨나는 갈등을 해소해나가는 놀이의 기능 역시 본성적인 것이다.
오늘날 노동의 형태도 많이 달라져 있고 놀이 양상도 크게 바뀐 지금 노동과 놀이가 본래의 순환적 성격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야말로 이 시대 문화의 핵심적인 문제이며, 이는 오늘날 우리들의 삶 자체가 본원적인 삶의 실상으로부터 크게 일탈되어 왔다는 사실의 한 반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놀이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는 일하는 것과 노는 것을 어떻게 구분지어서 생각해 보아야 하는가? 분명히 놀이와 일은 같은 맥락에서 시작되었고, 따로 떼어서 생각해 볼 수는 없다고 하지만, 놀이를 정의 내리기 위해서는 놀이와 일을 분리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놀이와 일을 꼭 분리시켜서 생각할 수 있는 관계일까? 놀이와 일, 둘 다 인간 행동에서는 같을 수도 있다. 인간 행동이 똑같은 모습을 보였다 해도 그 행동이 일어나게 된 조건이나, 그것이 주는 만족도등을 생각해보면 일과 놀이의 구분이 생기게 되기도 한다.
다음 [학습매체로서의 유아놀이]의 일부에서는 일과 놀이를 구분하는데 있어서의 몇 가지 준거를 제시하고 있다.
<일과 놀이의 구분>
종종 우리는 놀이를 일과는 분리된 것으로 정의한다. 우리는 우리의 활동이 일이 아니면 놀이라고 생각한다. 활동의 본질을 살펴봄으로써 일과 놀이를 구분해 본다면, 우리는 같은 활동이 어떤 조건하에서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조건들에서는 놀이로 설명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이 토요일 아침에 축구를 한다면 그것은 놀이이다. 그러나 축구 선수가 일요일 오후에 축구 시합에 참가한다면 그것은 놀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매우 진지한 업무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의 책상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사람을 고용한다면, 그 사람은 일을 하는 것이다. 내가 우리집 지하실에서 책상을 만들기로 했다면 같은 활동이 놀이로 보여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쓸데없는 것이 아니며 매우 진지한 책상 만들기 활동인 것이다.
놀이인지 일인지를 결정짓는 것은 활동 그 자체가 아니라 활동이 일어나는 이유들인 것이다. 놀이에 대한 기준은 관찰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놀이인지 아닌지는 만족의 근원들로부터 추론된다. 활동 그 자체를 위한 활동은 놀이이고, 외적 보상,월급을 위해서 하는 활동은 일이다. 그러나 그런 해석 조차도 문제가 있다. 정말로 자기 일을 즐기는 사람은 일을 하고는 있지만 놀이의 특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놀이와 일을 구분하기 위한 준거로서 ‘심각성’을 생각할 수 있다. 즉, 일은 심각한 활동이고 놀이는 하찮은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준거를 사용한다면 하찮은 것은 모두 놀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극놀이 활동에 몰두하고 있는 유아들을 보면 하찮아 하는 면을 찾아보기 어렵다. 유아의 놀이는 매우 진지하게 행하여 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정의와 준거들은 흑백론적인 경향이 있다. 우리는 활동을 모두 일이 아니면 놀이로 보는 경향이 있다. 즉, 어떤 활동이 놀이라면 ‘일’일 수 없고 ‘일’이라면 놀이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Eva Neumann 은 [놀이의 요소](The Elements of Play;1971)에서, 놀이에 관한 문헌을 분석하여 놀이으 정의와 준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녀는 놀이와 일의 구분을 위한 3가지 준거를 놀이와 일의 연속선 상에서 제시하였다. 즉, 대부분의 활동들은 놀이와 일의 중간 부분에 위치한다(대립쌍의 구조는 우리가 개념을 형성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필수조건이다. 예, 선/악, 내/외, 상/하, 좌/우, 추상/구체, 이상/현실, 과거/미래, 여기/저기, 물질/정신, 감정/이성, 신/악마, 천국/지옥...)고 보는 것이다. 세 가지 준거는 다음과 같다.
a.통제(Control)
활동의 내적 통제와 외적 통제 간에도 차이가 있다. 통제가 내부로부터 행해지면 그것은 놀이이다. 그러나 통제가 외부로부터 행해지면 그것은 일이다. 대부분의 경우 통제는 전적으로 내적이지도 않고, 전적으로 외적이지도 않다. 누군가가 자신의 놀이 활동을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때는 그가 혼자서 놀이하는 경우이다. 한 사람의 놀이자라도 개입하게 되면 통제는 나누어지며, 따라서 통제는 내부에서 외부로 이동하게 된다.
b.실재(reality)
Neumann은 또한 내적 실재와 외적 실재를 구분했다. 놀이의 준거 가운데 하나는 현실을 정지시키고 ‘마치 처럼’ 활동하고, 가정하고, 가상하여 외적 실재의 영향을 억눌러서 내적 실재로 대신하는 놀이자의 능력이다. 활동이 현실에 얽매이면 놀이는 중지된다. 그러나 역시 대부분의 놀이는 외적 실제와 어느 정도 연관되어 있다.
c.동기 유발(motivation)
내부로 부터 동기 유발된 활동은 놀이이다. 그러나 외부로부터 동기 유발되면, 그것은 놀이가 아니다. 동기 유발은 완전히 내적이지도 않고 완전히 외적이지도 않다.
J.Nina lieberman에 의하면 모든 활동은 놀이 다운 특질을 갖는다. 그녀는 놀이다움을 발산 적 사고와 관계가 깊다고 보았다. 즉,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장난스러운 생각을 보다 많이 한다는 것이다. liberman 의 5가지 놀이다움에 대한 준거는 다음과 같다
즉, 1.신체적 자발성, 2.사회적 자발성, 3.인지적 자발성 4.기쁨 그리고, 5. 유모어 감각 등이다.
레크리에이션에서의 분야 중에도 놀이에 대한 부분이 있다. 레크리에이션은 일과 놀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레크리에이션의 지도 기술]이라는 책의 일부분을 살펴보자.(* 레크리이이션의 자세한 내용과 또 놀이와의 관계는 어떤것인가는 이후 살펴보도록 하겠음.)
노동과 놀이의 양면 생활이 상호보완되고 상호협조적 위치에 있을 때만이 인류 생활의 완성이 있고, 인류는 그 생존을 유지하고 행복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과 놀이의 가치적 차이는 있을 수 없다. 어디까지나 동격으로 생각하여야 한다.
어린이의 세계에서나 어른의 세계에서나 생활사의 노동만이 중시 되어지고, 그 반면의 놀이에 대해서는 도리어 부당한 것으로 믿었던 개념은 버려야 하며, 노동과 병행해서 명항한 놀이의 세계가 인정되고, 노동과 놀이가 꼭 같은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인류생활에 새로운 서광이 비칠 수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노동과 놀이의 관계는 놀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관심있게 살펴 보는 것이며, 놀이연구회에서도 일하는 것과 노는 것의 관계에 대한 인식을 확실히 해 두어야 할 것이다.
2.놀이의 諸학설
위에서 놀이와 일의 구분을 위한 준거를 제시한 것을 보았을 것이다. 위에서 제시된 준거는 우리가 놀이를 명확히 정의하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준거들은 사람들이 왜 놀이하는지를 이해하는 데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놀이란 무엇인가? 왜 하는가? 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론을 펴고 있으나 인간의 놀이하는 심리를 정확하게 밝혀 냈다고는 볼 수 없다. 여기서는 많은 이론들을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정리하여 보고자 한다.
J.Barnard Gilmore는 [놀이;그 특별한 행동]에서 사람들이 놀이하는 이유에 관한 여러 이론들을 두 가지 범주로 분류하고 있다.
즉, 고전적 놀이 이론과 역동적 놀이 이론이다.
고전적 놀이 이론은 사람들이 놀이하는 이유를 설명하려 하며, 역동적 놀이 이론은 사람들이 놀이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놀이 과정을 설명하려 하고 있다.(학습매체로서의 유아 놀이.도리스 스폰셀러 편저. 신헤여, 정수경 공역. 창지사)
(1)고전적 놀이 이론
잉여 에너지설-(Surplus energy theory)Spencer.Schiler(1875) 휴양설,이완설(Relaxation and Recreation theory) 반복설(Recapitulation theory)-Hall(1906) 생활준비설,유전설(Preparation theory or Inheritance theory)-Gross(1897) 태도로서의 놀이-James Sully(1902) 정화설(Catharsis theory)-H.A.Carr 모방 본능설 표현 본능설 놀이연구회 |
<1>잉여 에너지설
“아동의 놀이는 기본적 생존에 더이상 필요하지 않은 에너지의 소산”이며 “고도의 에너지를 맹목적으로 소비하는 활동”
--- 놀이는 과잉된 생명력의 발산행위이다.
[비판] 활동적인 어린이는 비축된 에너지가 적기 때문에 놀이 활동에 적극 참여하지 않을 것이고, 비활동적인 어린이가 더 적극적인 놀이 활동에 참여할 것이라는 가정이 성립되지만, 실제 이런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며, 요는 놀이의 대상이 아동에게 어떤 의미를 주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놀이를 맹목적인 소비 행동으로 본다면 놀이의 가치는 전무할 것이다. 놀이가 발생하는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 사람이나 동물의 여러가지 놀이 활동이 잉여 에너지의 발산일지는 모르나, 이와 동시에 다른 동기,조건도 있을 수 있어 반드시 에너지의 발산만이라고는 할 수 없다.이 학설은 사람에게 보다는 오히려 동물에 적합한 이론이 아닌가 생각됨.
<2>이완설
-- 결핍된 자신의 에너지를 충족시키려는 수단이다. 이를테면, 열심히 일을 한 후 골프나 테니스를 치는 것은 소멸한 자신의 에너지를 회복시키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비판] 놀이와 일의 분화가 트여 있지 않는 유아에게는 타당치 않다고 할 수 있다.
<3>반복설
-- 놀이는 선조들의 생존 유지 수단이었던 행동 특성을 반복하는 것이다.
모든 어린이의 놀이 활동은 종족이 지나온 문화 발전 단계에 대응해서 자기의 선조의 활동을 되풀이하고 종족의 역사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비판] 현재 그 어린이가 소속되어 있는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
<4>생활준비설
-- 놀이는 훗날의 생활을 위하여 필수적으로 유용한 활동의 수단
[비판] 현대 사회에서 성인의 역할 행동은 유아의 놀이와 유사한 부분이 거의 없다. 현대 사회의 직업을 유아기 동안에는 상상조차할 수 없다는 사실은 준비설의 타당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 이상에서 살펴본 고전적 놀이 이론은 모순된 두 쌍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놀이에 대하여 잉여 에너지설은 이완설과는 모순된 설명을 하고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의 활동은 새로운 에너지를 창조하기 위한 수단과 잉여 에너지를 소모하기 위한 수단 모두는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준비설은 미래에 대한 준비로 놀이를 설명하는 반면, 반복설은 과거에서 놀이의 근원을 찾고 있다. 따라서 고전적 놀이 이론 중 어느 것도 모든 놀이 상황에 대한 원인을 설명하는 데 적당치 못하다.
위의 고전적 놀이 이론은 주로 아동의 신체, 근육 운동을 통하여 즐거움을 주며, 욕구 충족의 수단으로 이용된다고 하였으나 인지적,사회적,정서적,신체적으로 종합적인 측면의 고려가 결여되어 있으며,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른 놀이 이론에 미흡한 점이 많다고 볼 수 있다.
<5>태도로서의 놀이
--- 일상생활에서 목적없이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행위이다.
<6>정화설
-- 놀이의 가치는 그것이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필요가 없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해루운 것들을 발산시켜 조금이라도 해로운 것을 덜게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비판] 놀이활동의 한 면은 설명하는 것이 되지만, 모든 놀이 활동을 설명하는데는 불충분함.
<7>모방 본능설
-- 모방본능의 충족행위이다.
<8>표현 본능설
-- 지배욕구와 경쟁욕구 속에서 또는 어떤 재능을 발휘하려는 천성적인 충동을 채우려는 행위이다.
(2)역동적 놀이 이론
<1>정신분석학적 놀이 이론
.Freud -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면서 어떤 행동도 그 원인이 없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아동의 놀이 활동도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그 아동의 감정과 소망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하였다.
.Almy(1967) - 놀이는 경험이 가질 수 있는 즐거움을 주는 어떤 국면도 맛볼 수 있는 기회의 제공은 물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경험에 의해 입는 심리적 상처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Isaacs(1950) - 아동의 놀이나 추리 작용은 현실 세계에서 얻은 직접적이고도 즉각적인 결과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어떤 요소를 선별하여 변화시킨 것
.Griffith(1935) - 어린 아동의 자발적인 놀이 속에서 인간 정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 정신분석학적 놀이 이론은 주관적 접근 방법을 택하고 있으므로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결여되어 있으며, 정상인이 아닌 비정상적인 환자의 놀이 행동의 동기가 무엇과 같은가에 대한 주관적 견해에 불과하며, 감정이나 정서적 측면에 너무 치우친 감이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Piaget의 놀이 이론
아동의 인지 발달에 관한 단일 연구로서 Piaget 만큼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Play,Dreams,and Imitation in Childhood(1962)]에서 영아기로부터 유아기 사이의 놀이에서 나타나는 아동의 사고 발달에 관해서 3살난 자기 아들의 관찰을 통하여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또한 [The Early Growth of Logic in Child]에서 2살된 어린이를 피험자로 하여 유사성에 따라서 사물을 분휴하는 능력을 또 차이의 속성에 따라서 순서대로 배열하는 능력의 발달을 다루었으며, 5살 이상의 아동을 대상으로 수,양,공간 ,시간 및 속도의 개념을 연구하였다.
이와 같은 연구를 통하여 Piaget는 인지 발달의 대전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아동이 성장해 가고 경험이 풍부해 짐에 따라서 정신적으로 더 많은 정보를 축적하고, 또 그 정보를 인출 및 적용하는 새롭고도 효과적인 방법을 구성하게 됨으로 사회적 적응을 용이하게 해준다.”
따라서 영아기에 얻은 정보는 동작형의 인지 도식에 축적되며, 그 도식을 통하여 자기의 환경을 알게 되고, 국민학교 입학 시기쯤 되면 아동은 자기 세계를 해석하는 비교적 안정적인 개념을 갖게 된다. 이와 같은 안정성은 아동의 지각,행동 및 정보가 남과 같이 인지됨으로써 적응이 가능할 때 생기게 된다.
Piaget에 의하면 아동의 행동이나 사고는 외적 현실에 적응하는 과정의 조절과 기존의 읨(힘) 체제 속에 정보를 통합하는 동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고 하였다. 이 두개의 과정은 발달 단계의 주어진 시점에서 평형 상태가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지만, 두 개의 과정은 상호 보완적 관계에 놓여 있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어린이는 5라는 수를 헤아리는 경험이 5라는 수개념을 동화하기 이전에 5를 헤아리는 학습에 상당한 언어적 조절이 이룩된 상태에 놓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Piaget는 이러한 경우를 모방으로 인하여 조절이 동화보다 앞서는 경우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하였다.
이와는 반대로 동화가 선행할 경우에 아동은 놀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자발적인 놀이 속에서 어린이는 성인,다른 아동,동물 및 여타 사물을 모방하는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놀이에서 지배적인 과정을 동화로 보고 있다.
놀이 활동 중에 어린이는 장난감 등을 조작해 봄으로써, 그가 당면하는 대상의 유사성을 알게 되고, 또 어떤 면에서는 유사하지만은 다른 면에서는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속성에 따른 분류나 배열을 하게 되며 보다 고차적인 정신 작용, 즉 지적 발달을 가져오게 된다.
한편, Piaget는 발달 단계에 따른 놀리적 경험을 제공해 주는 놀이 활동이 자발적인 창안에 의해 이루어지는 놀이 활동ㅇ보다 나을 것으로 여길지 모르나, 어린 아동에게는 교사나 성인에 의해 구조화된 놀이보다 스스로 창안한 놀이가 더 효과적이며, 구조화된 놀이는 어린이의인지 발달에 적합하지 못한 결점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이유에 대하여 piaget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성인의 사고로 특징지을 수 있는 논리적 사고 체계에 적응하기 이전에 자기 나름대로, 또 자기의 감정이 가미된 방법대로 현실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아동의 자발적 성장에 필요하기 때문”이며“ 논리적 사교력의 배양은 직접 사물과 접촉하는 아동의 활동에 좌우될 뿐더러, 다른 아동과의 사회적 협동을 통해서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즉 아동의 발달 단계상에 나타나는 특징으로 취학전 아동은 자기와 다른 관점을 확인하고 신뢰하는데 어려움이 많이만 자발적 놀이를 주고 받는 동안에 동료와의 상호 작용을 통하여 자신의 사고를 남의 사고와 조절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조절의 필요성은 놀이를 통하여 뚜렷이 나타나며 논리적 사고는 물로 사회성과 도덕성도 점차 발달되어 가게 된다.
Piaget는 아동의 자발적 놀이가 가져다 주는 결과를 다음과 같이 종합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즉 “아동의 자발적 놀이는 동기 유발,불안에 대처하는 방법(일종의 심리 요법)자아 개념의 형성의 자극과 같은 통합적 지력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하였다. (동화/조절)
(3) 호이징아의 놀이 정의
일반적으로 놀이의 의미와 본질을 규정한 것들은 공통적으로 놀이는 놀이 자체가 아닌 어떤 다른 것을 목적으로 행해진다는 점이다 . 그러나 놀이는 어떤 목적을 추구하는 수단으로서의 활동이 아니라 놀이 자체에 의미가 있고 놀이하는 그 자체에서 기쁨을 얻는 활동이다.
그러므로 놀이는 삶의 한 기능이지만 정의를 내릴 수 없고 인간을 호모사피엔스(생각하는 인간), 호모파베르(도구(노동)를 만드는 인간)과 같은 범주로 호모루덴스(놀이하는 인간)를 인간의 속성에 넣어야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놀이의 주요한 특성을 설명한다.
첫째 모든 놀이는 자발적인 행위이다.
둘째 놀이가 일상적인 혹은 실제의 생활이 아니라는 것이다.
셋째 놀이는 장소와 지속성에 의해 일상적인 삶과는 구분된다.
네째 모든 놀이는 그 고유의 규칙을 가지고 있다.
(4) 놀이연구회의 정의
사전에서의 정의 : “놀이란 특별한 목적이나 생존 자체에는 직접 관계가 없을지라도 그것 자체로서 흥미가 있는 것을 스스로 느끼는 활동의 총칭이다.”(교육학 대사전-유희:742쪽)
아무 목적도 없고 생존에도 관계하지 않는 것이 놀이이다. 그것은 사실이나 아무 목적도 없고 생존에도 관계하지 않는 것이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아닐까?
놀이는 목적을 갖고 있지 않은가? 생존 자체에 관계가 없는가?라는 점을 자세히 알아보자.
하나하나의 놀이가 아니라, 일반적인 문화 양식으로 놀이전체를 ‘놀이군’으로상정해보자.
인간이 받는 제반 스트레스는 놀이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아이들의 경우 끊임 없이 놀고자 하는 것은 나름대로 그런 스트레스를 해소할 목적을 본능적으로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아울러 인간에게서 놀이를 모두 없애버린다면 인간은 과연 생존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놀이는 인간이 건강하게 살아가려는 목적을 가지고 행해지는 것이다. 다만 각각의 놀이가 행해질 때 외형적으로는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인간의 역사와 더불어 놀이는 존재해 왔다. 개별적인 놀이와 사회적인 놀이가 공존해 가면서 개개인에게는 휴식과 안정을 사회에서는 사회생활에서 생긴 제반 갈등을 해소하였다. 그래서 서양의 교육학자 오토베링거는 다음과 같이 놀이를 정의하면서 기존에 사적적인 놀이를 부정하고 있다.
“놀이는 무목적이거나 무방향적인 활동이 아니다. 놀이는 무언가를 성취하고 안락감을 느끼기 위한 행동의 시도이기 때문에 인간은 그 세계를 혁신하고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
이런 전제에서 놀이연구회는 다음과 같이 놀이를 정의하고자 한다.
“놀이란 낱낱으로는 목적이나 생존에 관계없이 행해지지만 놀이군이라는 형식으로 낱낱을 묶어서 정의하면 생존과 직접 관계하며 내면적인 목적을 가지고 행해지는 문화행동양식으로 재미와 자발성에 근거하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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