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1. 과학철학적 입장
1) 형식주의(formalism)
2) 신과학철학
2. 심리학과 이론적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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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자명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학술지명 大學院 論文集
ISSN
권 2
호
출판일 1989.
과학으로서의 심리학
방희정
조혜자
8-620-8901-07
국문요약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을 고려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과학을 합리적으로 만드는가하는 물음에 대한 과학철학자들의 다양한 답변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행동주의 이래 실증주의적 입장이 고수되어온 심리학의 철학적 입장은 새로이 대두된 과학철학 이론들에서 논의되는 이론과 방법, 설명에 대한 태도를 받아 들임으로서 심리학 이론들 간의 갈등과 긴장을 해결하고, 보다 통합적인 이해가 가능해질 것이다. 본고에서는 먼저 과학철학의 몇 가지 입장을 살펴본 뒤 심리학의 이론과 설명, 방법론들이 어떠해야 할지를 논의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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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학철학적 입장
1) 형식주의(formalism)
희랍시대 이래 수 세기 동안 인간의 앎의 과정은 경험주의나 합리주의적으로 형식화 없이 설명되어 왔다. 그러나 수학, 논리학, 철학에서의 형식주의 발전과 함께 인간의 앎의 문제와 마음의 문제에도 엄밀한 형식구조를 적용하여 분석, 기술, 설명할 것이 제안되었다.
형식주의에서는 어떤 종류의 과학이든 그 내용은 논리적 구조를 지닌 형식체계로 표현할수 있다고 보았다. 형식체계는 공리와 규칙들로 이루어져 있고 무수한 정리들이 규칙들을 사용하여 공리로 부터 도출될 수 있는 체계이다. 따라서 형식주의에서는 공통되는 형식구조가 실재 한다고 보아 과학적 법칙, 가설, 관찰들을 그 독특한 논리적 기능에 의해 규정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의 타당성, 확률, 확증 정도, 그리고 과학적 논지의 판단에 개입되는 모든 다른 증거적 관계성들에 대해서도 엄밀한 형식적 정의를 원칙적으로 줄 수 있다고 기대하였다. 따라서 현실적 실재, 즉 의미가 없어도 정의와 공리, 규칙에 의해서 완전한 형식체계에 도달할 수도 있는데, 이것을 형식통사체계라 한다.
현대의 과학은 이러한 입장의 영향 하에서 자연을 설명함에 있어서 수리적이고 기계적인 형식적 요소들을 강조하게 되었으며, 명제를 사용하여 명백한 체계로 진술할 수 있는 형식체계만이 개념을 순수한 형태로 다룰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논리는 타당하며, model이 제시하는 보편적 이론의 검증역할을 할 수 있고, 방법론적으로 더 복잡하게 하지 않고도 보다 용이하게 data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형식체계의 요소들이 인간 경험이나 현실적 세계의 어떤 부분의 요소들과 관련시키게 되면 해석이 되고 이것에 의해 의미가 나타나고, 이로써 우리가 추구하는 세계에 대한 체계적 이해가 가능해진다. 우리는 통사체계의 규칙을 사용하고 요소들의 해석으로부터 아직 경험하지 않은 무한한 경우들에 까지도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형식 구조의 언어를 이상 언어로 보았다.
Turing machine의 출현으로 인간의 사고 과정도 실체없는 추상적이고 불가해한 과정이 아니라 추상 논리체계를 지닌 자동기계가 상징을 조작하는 것처럼 명확하고 구체적인 절차를 가진다고 보아, 형식적으로 기술할 수 있다고(computable) 보았다. 자동기계의 조작 과정은 물리적 과정과 같이 구체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동시에, 그것의 추상적 규칙은 서로 다른 기계 체계에도 적용될수 있어 동일한 추상규칙이 적용되는 자동기계들은 서로 상대방 기계 체계끼리 행동 절차를 충분히 흉내낼 수 있음이 밝혀졌다. 이것은 심리학(인지심리학) 예서 인간의 앎의 과정을 컴퓨터에 모사하여 형식화해서 엄밀히 설명하고 기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심리구조와 과정의 내용과 조작을 기술하고 설명할 때 막연한 추상적 용어를 사용 하는 것이 아니라 명제논리를 비롯한 수학적 공식, 도식적 이론표기법, 형식문법 등과 같은 엄격한 현실적 틀을 갖게 된 것이다.
형식구조 내의 공리체계는 올바른 한가지 해석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즉 정당한 해석이 다원적으로 가능하다. 따라서 단일 형식체계라도 다원적 의미체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형식구조는 어떤 현상과 다른 현상과의 동형구조를 보여줄 수 있는등 강한 설명력을 갖는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자연현상이나 심리현상이 지니고 있는 어떤 특성들이 과연 형식화될 수 있는가, 형식체계 자체가 형성가능한가는 문제로 제기된다. 자연이나 인간의 형식화 가능한 성질(formalizable property)을 전제 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철학적 가정들이 존재론적, 인식론적, 방법론적 측면에서 고려되어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형식주의 입장은 명제체계의 정적인(static) 형식구조와 과학발달의 어떤 특정한 시간적 단면에서의 내용에 주의를 집중한다는 점 때문에, 과학의 개념 조직화가 변화하는 양식에 대한 충분한 질문을 던지지 못하고 있다. 즉, 형식주의는 과학을 정적인 논리적 용어로 분석하는 것에 치중하므로서 지적, 개념적 변화라는 역동적인 과정분석에서는 본유적인 제한점을 갖게 된다. 더우기 인간의 앎이나 마음의 문제는 단일 공리체계로 설명될 수는 없다. 이들은 설명하는 체계가 순수 논리체계처럼 계산가능(calculable)하지 않으며, 설명 대상이 외연적(extensional)이지 않고 오히려 순수하게 지향적(intenionnal)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합리적이라 할 때 그것은 형식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생존과 관련된 합리성이고, 인간의 인지는 computer식의 인공적 인지(artificial cognition)가 아닌 생동적 인지(animate cognition)이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진화해 왔고 문화적, 사회적 역사의 영향 속에 진화 과정의 산물로서 현재의 인지 상태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이러한 역동적인 정신 기능에 대해 엄격한 형식구조의 적용은 조심스럽게 취해져야 할 것이다.
2) 신과학철학
심리학은 과학적으로 발전되어 오면서 세련된 방법과 절차를 통해 많은 지식체를 생산해 내었고, 그 결과 일치되지 않은 많은 이론적 입장과 방법론, 해석들이 내재하고 있다. 신과학철학의 입장들은 이러한 심리학의 여러 접근법들을 합일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framework을 제시해 주고 있다.
전통적으로 과학적 지식은 편견없는 관찰과 실험에 의해 사실들을 수집하고 논리적 절차를 통해 일반 법칙을 도출해낸 입증된 지식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전통적 귀납주의에서는 이론은 편견없는 관찰을 통해 얻어진 사실들에 의해 형성되어야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귀납추리는 낱개의 경험적 사실들에서 직접 검증할 수 없는 보편적 법칙을 추론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실증주의자들은 이러한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 과학적 지식의 참됨을 검증하려고 했지만, 여전히 보편적 법칙은 검증될 수 없고 가설의 진실성은 확률적으로만 검증할 수 있다는 문제가 남았고, 따라서 우리가 사례들에 근거해서 과학적 지식의 참을 따지는 것은 확률적인 참의 확인(confirmation)에 불과하다고 보게 되었다. 이들 입장에서는 객관적 관찰에 기초하여 이론적 진술의 논리적 단일체계로 과학을 재구성하려 하였다. 따라서 현상 발생의 조건에 따른 변이는 불확실성에 규칙을 주어 규칙성으로 표상코저 하였고 이는 확률이론, 통계이론으로서, 심리학의 방법론으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관찰이나 관찰대상, 용어의 의미가 순수하게 객관적이지 않고 이론의존적(theory-laden)임이 드러나면서 순수한 data에 근거한 귀납, 검증, 확인은 의문시되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귀납적 문제들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Popper는 관찰 증거에 의해 이론에 대해서도 절대적 참이란 부여될 수 없지만 거짓임을 밝히므로서 점점 참에 가까운 이론을 규명해갈 수 있다는 반증주의, 진리근사치이론을 내세웠다. 그는 관찰이 이론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은 반례를 발견하여 반증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에 따르면 이론은 관찰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서 출발한다. 문제는 세계와 우주의 여러 측면들을 설명하는 것과 관련이 된다. 이런 문제가 제기되면 그 해결을 위한 가설이 생길 수 있는데, 이 과정은 합리적 논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이 작용할 가능성이 많다. 일단 가설로서의 이론이 제시되면 이것은 실험이나 검사를 받고, 잘 견디어 내면 그 이론은 잠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렇지 못하면 새 가설이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따라서 이 입장에서는 과학은 확증된 언명의 체계가 아니며, 眞知(episteme)가 아닌 것이다. 진리 탐구의 과정은 목적지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그 목적지가 어딘가에는 있다고 믿고 전진하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반면 Kuhn은 과학사적으로 볼때 과학이나 이론이 귀납주의나 반증주의처럼 객관적인 관찰증거에 의해 점진적, 축적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 집단이 합의본 이론에 의거해 관찰 대상과 연구 방법, 문제등이 규정되고 따라서 과학의 발전은 한 이론이 다른 이론으로 대치되면서 일어나는 혁명적인 것이라고 본다. 즉 사실과 이론은 개념적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진리란 객관적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이론의 선택과 결단에도 과학자 집단의 합의나 개인적 취향등이 영향을 미친다는 상대주의적 과학철학관을 제안하였다.
이들의 이론에서 우리는 동일한 문제에 대해 하나의 참 이론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여러 다른 이론들이 있을 수 있고 그 중 어떤 이론도 절대적인 참이론으로 검증될 수는 없음을 이해할 수 있다.
신과학적 사조를 크게 실제론과 도구주의 입장으로 나누어 볼때, 실재론의 입장에서는 과학은 세계를 표현하려는 목적으로 이론을 반영하는 것이고 참된 이론은 세계를 올바르게 기술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 관점에서는 세상은 복잡한 혼합체이고 인간 활동도 다양한 수준에서의 상호작용으로 짜여진 구조이므로, 과학이 그러한 구조와 성질들을 밝히고 설명적 이론을 구축하려 하기 때문에 과학도 계층적(stratified)이라고 본다. 세상의 사건이나 사물들은 계층화되어 있고 구조적인 복잡성을 개방체계 내에서 인과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밀폐된 상태에서 조작될 수 없으며, 포섭적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수준에서 인과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본다.
반면, 도구주의자들은 이론을 현실 내의 관계를 기술하기 위해 사용 되는 연구의 도구로서 생각한다. 따라서 이론은 현상들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처방(prescription)이다. 이론의 중요성은 이론이 주도하는 활동들, 즉 개념과 법칙을 형성하고 실험을 주도하고 측정하고 설명과 예측을 제시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이러한 신과학철학적 입장들은 각기 문제점들이 있지만, 심리학의 이론과 연구방법, 설명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시사해 줄 수 있다.
2. 심리학과 이론적 설명
과학은 인간과 인간의 세계인 자연을 연구하는 'mathod', 이러한 방법으로부터 유도된 'data',그리고 그 데이타를 이해가능하게 해주는 'theory'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서도 이론은 경험된 관찰내용에다 상징적 차원에서 의미를 부여해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고도 고유한 과학적 활동에 속한다. 과학은 단순히 서로 독립적인 'fact'들을 실험 방법에 의해 집적해나가는 활동, 즉 개별적인 사실의 축적 그 자체가 아니다. 과학이란 일종의 창의력을 동원해야하는 작업으로서, 특히 이론구성에는 합리적으로 통제되고 훈련된 지적 상상력이 요구된다.
이론이란 사실을 조목별로 요약해주는 단순한 고안품(devices)이 아니라 인간의 창조물이다. 이는 이론이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일종의 상징적 구조물로서, 조야한 사실 자체를 넘어선다는 의미이다. 실례로 어떤 현상에 대해서는 대단히 많은 사실들이 발견됨에도 그러한 현상의 메카니즘은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종종 있다. 이 경우 가설을 통해 필요한 메카니즘이 추론되어져야 하며, 일단 그 메카니즘을 생각해내면 우리는 어떤 식의 관찰이 그것을 독립적으로 발견하게 만들 것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론이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이론은 자신이 설명하고자 하는 현상이 산출되는 방식을 기술해야 하며, 그 결과 즉 데이터뿐 아니라 그현상의 기저 메카니즘까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관찰된 현상에 대한 단순한 '기술'만으로는 현상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라고 볼 수 없다. 데이타의 제시 역시 과학적 훈련에 의해 얻어질 수 있는 기술(skill)이지 과학 특유의 창조적인 측면은 아니다. '이론'을 통한 접근이야말로 과학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어떤 현상들이 일어나는 조건을 기술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조건들 아래서 어떻게 해서 그러한 현상들간의 관계가 일어났는지에 대한 설명이야말로 이론의 핵심이 된다. 과학적 이론의 기능이란 한 사상과 다른 사상과의 관계성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과학이 세계를 이해하려는 지적 활동이라면, '이론'과 '설명'은 과학자들의 지적 활동의 결정체인 셈이다.
그러나 과학을 예술이나 형이학상과 같은 다른 지적 작업과 구분해주는 것은 그 방법이며, 과학이 실험적 방법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단 경험적, 자료집적 중심의 실험적 연구라는 편협한 이상만을 추구할 경우 오히려 과학이란 작업(enterprise)을 흥미없고 보잘 것 없는 도로로 전락시켜버릴 수 있다는 위험성은 경계되어져야 한다. 자료집적 중심의 실험방법의 우상화는 모든 지식은 반드시 확실한 지식이어야만 한다는 식의 초보자들의 무지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 이론이 실험에 의한 단순한 증거 자료 보다 더 신빙성이 있는 것일 경우도 많다. 우리는 과학적 '앎'이라는 개념이 '짐작함'이라는 개념과 대비된다는 것을 보여주므로서 실험방법을 맹신하는 편협한 독단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론적 진술이 실재로 존재하는 사물이나 과정을 지칭하거나 기술할 수 없다는 주장역시 불합리하다. 종래에 '이론'과 'observables'를 구분해왔지만 관찰가능한 것의 개념을 간접적으로 관찰가능한 것으로 확대해 볼 때 이에 해당하는 이론적 실체란 실재하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이론적 실체 그 자체가 직접 또는 간접으로 관찰되었기보다는 이들의 효과가 관찰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이론과 관찰되어지는 것사이의 연역적 관계가 논리적 관계이며 인과적 관계임을 기술할 수 있다면 그 원인과 효과(결과)는 둘 다 실재하는 것이며, 관찰이 원칙적으로 불가했던 것도 이론적 참 실체에 내포될 수 있게 된다.
모든 종류의 지식을 한가지 종류의 지식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대신 과학적 지식에는 적어도 두가지 종류의 지식, 즉 '사실'에 대한 지식과 '이론'지식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모든 사실들이 자가충족적이며 자폐적인 특성을 갖는다면, 이론은 사실을 넘어서는 것이자, 이론 그 자체를 넘어서는 것이다. 만약 이론이 그 자체를 넘어서서 어떤 외현적 지칭과의 연결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이론은 상징적일 수 없으며 더 이상 이론이 아니게 된다. 이 점에서 이론에의 노력이 언제든지 실패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이론에의 노력에 내재해있는 본질적인 특성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론'에의 우위성이 '사실' 그 자체에 대한 중요성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완벽한 날개를 갖추고 있는 새라도 비상을 위해서는 공기가 필요하듯이 과학자들에게 있어서도 사실이란 이론적 도약을 위한 발판과 같은 역할을 한다. 궁극적으로 사실이 뒷받침되어질 수 없는 이론이란 공허한 주장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론과 사실을 양분법적으로 구분지으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진실에 대한 이 론적 희구 속에는 분명 사실에 대한 갈망과 노력이 내재해 있다. 진실성과 확실성이 사실의 특성이듯, 이론은 보다 높은 차원에서 그러한 진실성과 확실성을 추구해나가기 위해 역설적으로 오히려 오류에의 도전과 불확실성에의 모험을 선택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A truth as well as a fact is like a sack, so it won't stand up till we've put something in it. 결국 우리 앞에 드러나는 세계란 우리의 이해력과 실제 세계가 우리에게 가한 재구성의 산물일진데, 사실과 이론을 구분하는 확고부동한 선은 그어질 수 없다. 과학은 사실에서 출발해서 사실로 되돌아간다고 하지만, 이 말은 과학은 이론에서 출발하여 이론으로 되돌아 간다고 바꾸어져 진술될 수있다-Data are not enough ; theories are needed as well.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은 역동적인 research science로서 아직 성숙한 정상과학의 위치에 있지 못하다. 많은 질문들이 미해결인 채로 던져져 있을 뿐아니라 그러한 질문과 사실들을 체제화시켜줄 수 있는 학자들간의 합의된 이론 체계도 없다. 그 결과 연구 문제조차도 어떤 합리적인 과학적 절차 규칙에 의해 선택되기 보다는 개인이 속해 있는 지적 풍토에 따라 달리 채택될 소지가 크다.
이러한 심리학의 현 상태는 과학적 연구란 완전히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활동으로서, 지식에서의 갭이나 설명안된 사실에 의해 새로운 질문이 제기되며, 하나의 이론은 그것이 실험 결과에 의해 확증되지 못했을 때 폐기된다는 식의 통념의 과학관을 갖고 있는 초보자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그러나 실제 수행되고 있는 과학과 이상적으로 그렇게 수행되어져야 한다고 믿는 과학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심리학도들은 다음과 같은 측면을 염두에 두면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첫째, 과학은 고정된 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규칙이외에 관습적인 규칙에 의해서도 지배된다는 점이다. 과학의 합리적인 요소가 어떻게 관찰해야 하는가에 대해 제한을 가한다면 실제 무엇을 관찰할 것인가를 선택함에 있어서는 다른 종류의 자원, 즉 collective wisdom에 의존하게 된다. 이러한 집단적 지혜란 부분적으로는 이전의 관찰이나 실험에 기인하기는 하지만 대체로 당시과학자 집단에 의해 암묵적으로 합의된 작업 가정 (working assumptions)의 산물로 이루어진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데이터만을 따르기보다는 선입관(preconception)에 의해 다음에 진행해나가야 할 바를 결정한다. 즉 합리적 규칙이 실패할 때마다 관습적 지혜로 물러서서 자신들의 전문적 훈련에 의해 획득된 비명시적 ideology에 의해 결정을 한다. 이러한 연구자의 과학직 패러다임인 ideology가 과학에서 제거해내야할 비합리적 특성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과학의 절차가 의미있고 해석가능해지려면 패러다임이 그 배경을 이루어주어야 하며, 이런 의미에서 과학자 사회의 ideology란 강력한 보충물의 역할을 맡게 된다. 특히 심리학은 그 짧은 학문의 역사속에서도 패러다임의 변동(shake-up)을 많이 경험해왔다. 심리학도라면 이제 과학의 특성이 과학적방법에 의해서 뿐 아니라 paradigm적 판단에 의해서도 형성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둘째, 과학적 대상이 가능한한 객관적으로, 즉 인식 주체자의 주관과 관계없이 파악되어져야 한다는 시각(편견)은 수정되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과학이란 의미의 세계를 다루며, 이는 언어의 문제이자, 언어사용자의 삶의 양식의 이해의 문제이다. 여기에 필연적으로 주관과 관계없이 생각되어진 순수한 절대적인 객관성의 한계가 드러나게 된다. 현상은 새로운 국면하에서 그리고 새로운 연관성 속에서 관찰되고 물어지며 이해된다. 주관은 그것이 객관을 관찰하며 바라보는 태도와 방식을 통하여 객관을 제약한다. 이와 같이 주관성이 객관을 봄과 관련되는 이상 단적으로 주관과 관계없는 순수한 객관이란 없다. 그 결과 과학의 범위을 구성하는 경험적 문제도 사실상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며, 그것이 흥미있고 중요한 것으로 문제시되어 설명이 필요하게 될 때, 비로서 '사실'을 넘어서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즉 하나의 사실이 경험적 문제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인식 주체의 관심과 흥미가 선행되어져야함을 심리학도는 기억해야한다. 이 점에서 경험적 문제란 단순히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창조되는 것임이 주장될 수 있다.
셋째, 과학에서의 미해결의 문제란 언제라도 해결된 문제로 바뀌어갈 수 있는 가능성에 열려져 있으며, 그런 과정에서 경험적 진보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역설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문제가 많음으로 하여, 심리학이란 보다 흥미롭고 도전적일 수 있는 학문일 수 있다. 미해결의 문제란 과학자들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는 잠정적 질문들이다. 어떤 문제가 한 이론에 의해 아직 적절하게 설명되지 못하고 있더라도, 그것이 미래의 탐구에 문을 열어놓고 있는 이상 영원한 미해결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문제해결의 실패 자체가 곧 이론의 부정에로 이끌어질 수도 없다. 데이타와의 양립 불가능때문에 이론을 포기한다는 것은 데이타에 대한 지식의 확실성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그것 역시 개연적인(probable)것에 불과한 이상, 변칙의 발생 자체가 필연적으로 이론의 폐기를 요구하지는 못한다. 용기있고 성실한 과학자라면 오히려 변칙 사례를 확증 사례로 바꾸어나가려는 노력을 통해 이론의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를 통해 과학적 진보를 가져을 수 있을 것이다. 이론의 가치란 그것이 제공하는 확실한 대답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론이 제기하는 질문에도 있게 된다-Science is as much as a search for questions as for answers.
경험적 문제에 관한한 해결된 문제라해서 불변의 절대적 진리를 갖고 영원히 해결된 문제로 남아있을 수는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진리란 지금 여기에 완성된 상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로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뿐이다. 과학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론적 결과와 실험적 결과사이에 정확한 일치가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근접한 유사성(resemblance)이 요구될 뿐이다.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자연 법칙도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진리란 어떤 의미에서 그 참의조건에는 동의하기 어려워도 그 거짓에 대해서는 밝혀낼 수가 있고, 그렇다면 과학자란 그 거짓됨을 바꾸어나감으로써 참에 가까이 갈 수 있을 뿐이다-Truth as itself is a matter of degree, not the ever-receding horizon but the ground beneath our feet as we traverse it. 미 해결된 문제가 많다는 것은 이제 더이상 심리학도들의 고민거리일 수 없으며, 오히려 도전적 미래에의 보상을 약속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측면을 인정한다하더라도 심리학이 정상과학의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체내에 몇가지 장애요소를 안고 있다.
첫째, 결정주의(determinism), 기계주의(mechanism)적인 설명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자연과학에서는 엄밀한 설명을 위해 그 탐구 대상을 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에 제한했고, 모든 질적인 규정성을 배제해 왔다. 동시에 과정의 인과적 설명에 촛점을 두어 사상의 목적적인 의미연관성을 무시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과학적 설명 방식이란 개별 현상을 보편적 법칙에로 인과적으로 역행시킴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종래의 과학적 설명방식이 심리학에서 다루고 있는 인간 행동이나 심적 내용에 대해서도 동일한 설명력을 갖을수 있는가하는 의문이 제기되어진다. 인간이 자유 의지를 갖고 선택을 하고 자신에 책임을 지는 특성을 지닌 존재인 이상, 종래의 결정주의적, 기계주의적인 작용인(efficient cause) 설명만으로는 인간의 제한된 국면만이 과학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게 될 뿐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설명에 그 설명가능성의 조건으로서 하나의 의미를 해명해주는 이해가 선행되어야함을 깨달아야 한다. 과학자는 개별현상을 인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기 이전에, 그 현상부터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설명의 각 단계가 다시 이해되어져야 한다. '이해' 그 자체가 '설명'이 될 수 없으나 이해없는 설명이란 존립할 수 없다. 심리학이 깊은 통찰력을 갖고 인간에의 이해를 근거삼지 않는 한, 형상인(formal cause), 종인(final cause) 측면에서의 인간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 한, 의미 전체성으로의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밝히는데는 제한점을 갖게 될 것이다.
둘째, 직접 관찰하거나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측정해내야하는 문제점이 있다. 본질적으로 과학이란 그 탐구 대상의 특성, 변이성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것이다. 객관적인 측정치를 통해 하나의 상징적 개념 수준이 과학화될 수 있다. 그러나 심리현상은 그 측정가능성 여부에 제한이 있으며, 적절한 측정도구의 문제도 뒤따른다. 그 결과 연구자들 대다수가 측정될 수 있는 심리특성에만 관심한 나머지 극히 사소하고 주변적인 측면, 즉 인간 이해에는 무의미 하기 쉬운 속성만을 연구대상으로 삼기 쉽다. 그러나 비록 심리학의 특성상 'unobservables'가 다수이며, 앞으로 측정수단을 개발한다하더라도 모두가 관찰가능한 위치에 서지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서의 최선의 방법은 잠정적으로 관찰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구성체(construct)에 도전하여 그 측정가능함을 보여주는 시도가 측정도구 개발과 병행되어져야 할 것이다.
셋째, 심리현상을 연구함에 있어 단일 방법이 있지 않다는 multiple methods의 문제가 있다. 한 현상을 연구함에 있어서 여러 방법이 있다는 것은 자칫 연구 방법상의 왕도성 논쟁을 초래하기 쉽다. 그러나 복잡한 심리현상을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수준에서의 접근이 요구되어지며, 그렇다면 오히려 multiple levels of explanation, multiple levels of methodology는 권장될 만한 것일 수도 있다. 현재 심리학에는 많은 parallels가 있으나 방법론중 어떤 것이 선험적으로 잘못되었다거나 한 특정 방법론만이 획기적인 발견을 해낼 수 있다고 판단할 기 준도 없다. 그보다는 여러 분야의 다양한 methodology가 상호작용함으로서 보다 설명력있는 이론을 만들어내려는 종합적(synthetic)입장이 요청되고 있다. 어느 날 심리학이 이론적으로 통합될 수 있다해도, 방법론上의 단일화(unify)는 상상할 수 없다. 결국 다양한 방법들의 복수화(plurality)를 인정하는 과학적 방법론의 민주화를 통한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바람직하다.
넷째, 연구자 개인의 이익, 관심, 신념, 태도등이 연구 결과를 왜곡시킬 가능성, 즉 편파성(bias)의 문제가 제기된다. 심리학은 다른 자연과학보다 특히 인간생활에 관심하는 학문으로서, 개인적 또는 집단적 편파성이 강력한 형태로 개입해올 소지가 많기 때문에, 올바른 독자적인 학문 발달을 저해받기 쉽다. 그러나 value-free science 의 존립성 문제는 역사이래 우여 곡절을 거치면서도 과학은 여전히 지금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어왔다면, 편파성 자체가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측면에서 작용하지 않는 이상, 오히려 연구자들이 자신의 학문을 창의성있게 시작하여 열정을 갖고 소신껏 밀고 나감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주관성의 요소일 수도 있다.
이제 논리실증주의 중심의 고정관념식 과학시대는 지나갔고 'post-modern' science시기에 들어서 있다. 지난 반세기간 심리학이 편협한 과학적 방법론을 고수해왔다면, 이제 경험적 데이터만이 사실을 밝혀줄 수 있다는 naive realism에서 벗어나 이론적 측면에 보다 관심을 돌려야 할 것이다. 심리학에서도 과학혁명은 일어나야 한다. 과학적 연구의 목표는 단순히 데이터의 기술, 통제, 예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 발달(theoretical development), 개념적 발달(conceptual development)에 있다. 여기서 심리학에서의 혁명이란 방법적 측면보다는 그 이론적 측면이 강조되어져야 함이 분명하다.
지금까지 심리학이 강조해 온 실험적 방법에의 commitment는 독단적 입장으로서, 한 유형의 이론화 방법일 뿐이었다. 과학적 방법이란 어떤 기준을 통제·예언하는데 사용되는 기술적 언어로서 사용되어서는 안되는 theoretically-free activity이어야 한다. 과학적 태도란 과학 수행에서의 이야기이지 이론에 대한 독단론은 오히려 비과학적 태도로서, 대안 연구의 가능성을 억압하고 배제하게 될 뿐이다.
우리는 심리학이 인간과학(human-science) 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심리학은 그 탐구 대상인 인간 본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종래의 S-R 심리학의 제시해온 인간에 대한 편협한상(image)을 고쳐 나가야 할 것이다. 과거 심리학의 지적풍토가 machanistic-statistical-cybernetic formulation을 중시하는 경험적 연구의 양산에만 치중해왔다면, 이제 우리 심리학도는 인간성(humanity)을 오해시킬 수 있는 단일유형의 독단적 심리학 지향에서 벗어나 'theory'와 'theorizing'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돌려야 할 것이다.
심리학도로서의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있다. 우리의 항해가 보다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telic organism으로서의 우리가, 심리학이라는 전체 상(picture)속에 정확히 어디쯤 서있는지를 파악하고 자신을 그 중심에 commit시켜나갈 수 있도록 다른 관점들로부터의 주장들에 대해 개방적인 시각을 취해야할 것이다 -Knowledge normally develops in a multiplicity of theories, each with its limited utility. 어떤 단 하나의 관점이 인간의 전체 모습을 설명해 줄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상대방의 관점에 대해서 지금보다 덜 신랄하고, 덜 오만해져야 되겠으며, 다양한 시각의 설명에 수렴적일 수 있는 성숙한 지적 '겸손'이 절실히 요구된다. 과학에는 natural piety가 있다. 자연은 겸손함 앞에서만 그 진면목을 드러내 보인다 -When nature is commanded our own will prevails only when we have first obeyed. 이제 우리에게 맡겨진 일은 학문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때로는 시대사조(Zeitgeist)에 맞서 스스로를 그 맞은 편에 위치시켜 놓을 수 있는 지적 '용기'와 그러한 자신의 믿음에 대한 지치지않는 '열정'과 주변으로부터 또는 학문 그 자체로부터 주어지는 압박감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심리학에 도전하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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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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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x,M.H.,& Goddson,P.E.(Eds.) (1976), Theories in Contemporary Psychology, N.Y.:McMillan.
Polkinghorne,D.(1983), Metheodology for the Human Science, Albany: state University of N.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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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사항
방희정
조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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