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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과학철학에서 진보의 문제

온울에 2008. 5. 6. 22:11

목 차

들어가는 말
Ⅰ. 실증주의에서 본 과학의 진보
Ⅱ. 상대주의에서 본 과학의 진보
Ⅲ. 로단이 본 과학의 진보
1) 과학의 정의
2) 연구전통론
3) 이론과 연구전통의 평가
4) 진보와 합리성의 관계
5) 로단의 진보관에 대한 비판
맺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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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자명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학술지명 硏究論集 
ISSN  
권 21 
호  
출판일 1991.  

 

 

 

과학철학에서 진보의 문제
(로단을 중심으로)


윤혜린
소흥렬
8-598-91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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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과학철학에 있어 과학의 합리성, 진보의 문제는 과학적 실재론과 더불어 현대에 와서 중요하게 논의되는 주제로 보인다. 특히 과학적 발견의 속도와 물량이 비약적으로 증대되면서 과학의 합리성, 진보의 문제는 과학적 탐구의 논리, 과학의 방향성, 진보의 질적 규정에 대한 인식적 진보의 차원이 두드러지게 관심을 끌어 모으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철학의 큰 흐름 중에서도 과학적 탐구의 본성, 그것의 논리적 측면이 더욱 깊게 연구대상이 되는 쪽과, 과학사를 매개로 하여 과학의 합리성, 진보의 문제에 접근해 들어가는 쪽은 대조가 된다. 전자는 포퍼-헴펠 진영으로서 가설-연역적 방법으로 특징되는 과학적 탐구의 체계를 정비해내었고, 관찰과 실험에 의한 반박을 통해 이론의 박진성 (verisimilitude)이 판정될 수 있다고 보는 실증주의 과학철학이다. 어떤 이론의 테스트와 반증이 정당한 방법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기반하고 있는 연역논리의 성격 때문인데 후건부정의 방법을 통하면, 소극적이기는 하나 거짓의 전제를 제거해 내는 식으로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후자는 실증주의에 대한 반박으로서 나오게 되었는데 여기에서는 쿤을 대표로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실증주의의 기본 토대인 관찰언명에 대한 불인정에서부터 실증주의와 갈라서게 되는데, 쿤, 한슨 등에 의하면 관찰은 중립적일 수 없고,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기대, 신념, 이론, 더나아가 패러다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즉 관찰은 언제나 이론 의존적이 되어, 관찰에 의해 이론을 반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불가통약성 논지로 이어져, 경쟁하는 이론들 사이의 객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 상대주의적 입장을 취한다고 볼 수 있다.

실증주의와 상대주의의 두 입장을 대조시키는 것은, 이글에서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로단의 진보관에 대해 그 두 전통이 논의의 중심 배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Ⅰ. 실증주의에서 본 과학의 진보
포퍼에 의하면, 모든 과학적 연구는 문제로부터 시작된다.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증가능한 가설을 내어놓는다. 어떤 가설은 곧 제거되고 또 어떤 가설은 엄중한 비판과 테스트를 통과하는 데 성공한다. 이런 절차를 통해 택해진 이론은 가장 유효하거나, 이전의 이론과 비교하여 더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같은 포퍼의 방법론은 시행착오의 방법이고, 오류제거의 방법이고, 추측과 반박의 방법이다. 그리고 이론에 대한 테스트, 이론의 전복을 위한 비판적 방법이다.

포퍼는 연역논리에 의해 거짓전제(가설, 이론)의 제거를 해낼 수 있고, 엄중한 테스트에 견뎌낸 이론이 보다 진리에 접근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 객관적 기준(증거보강의 정도, 박진성의 기준)하에서 이론간의 선택도 가능하다고 본 점에서 과학의 합리성을 승인하였다. 즉 그는 과학의 합리성을 방법의 합리성, 인식론적 논리성에서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실증주의에서는 이런 합리적 활동의 누적의 결과 과학의 진보가 이루어진다고 본다. 과학적 지식의 성장이 단선적으로,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라고 보는 진보모델이다.

로단에 의하면 바로 이 지점에서 누적적 진보관이 갖는 난점이 있다고 한다. 과학사의 위대한 발견 가운데 많은 경우-예컨대 코페르니쿠스 천문학, 뉴우튼, 아인슈타인의 발견 등-를 볼 때 포퍼식의 합리성 모델을 추구한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반증이라는 실증주의 방법론의 핵심 개념에서도 난점이 지적되는데, 과학사의 실행을 보면 일시적 반증에서도 폐기되지 않고 살아남아 몇세기후에, 몇십년후에 법칙으로 새롭게 확립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실증주의적 진보관에 대한 로단의 비판은, 상대주의 입장에서 누적적 진보관에 대한 반박의 많은 내용을 공유하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Ⅱ. 상대주의에서 본 과학의 진보
지금까지 살펴본 바 실증주의에 의하면, 과학은 진리추구라는 목표를 지향하고, 과학적 지식의 성장은 그러한 목표를 향하고 있다는 확인이다.

그러나 이와달리 쿤과 같은 상대주의자는 과학의 목적지로서의 진리개념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론들 사이 불가통약성 때문에 객관적 평가의 불가능성이 뒤따르게 되며, 경쟁관계에 있는 패러다임의 각각의 지지자들은 "상이한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패러다임간의 선택은 합리성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므로 종교적 개종에 비유되고, 하나의 패러다임이 다른 패러다임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논리적인 논증을 통해서 증명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첫째, 과학이론의 장점을 파악하는 과학자들의 판단에는 다양한 요소가 작용하며 둘째, 경쟁적인 패러다임의 지지자는 상이한 기준과 상이한 형이상학적 원리 등에 동의한다는 사실로부터, 경쟁적인 패러다임간의 선택은 양립불가능한 사회생활양식간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쿤에 의해 재구성된 과학의 진보는 어떤 것인가? 아니면 상대주의에서 진보를 논의할 수가 있는 것인가? 과학이 생존능력을 가진 경쟁적인 패러다임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혁명기에 들어설 때 요구되는 것은 두 패러다임과 관찰결과 사이의 비교이다. 그러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 관찰결과를 기록하는 패러다임-중립적인 언어가 주어져 있지 않다면 과학의 진보기준은 마련되지 못한다.

사실 실증주의에서의 과학의 합리성은 너무 좁은 범위의 합리성이라고 할 수다. 왜냐면 과학적 탐구의 단선적, 누적적 진보의 틀 안에서는 과학세계의 연속적, 불연속적 전개의 총체성이 다 담아질 수 없고, 과학사의 변칙사례도 설명되지 못한다. 그리고 법칙화될 수 없는 많은 현상에는 연역주의 모델로는 접근할 수 없는 제한점이 있다는 생각에서 좁은 범위(혹은 좁은 시야)의 합리성이라고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탐구에서 합리적 방법의 훌륭한 한 모델을 정립하여, 과학철학의 규범성을 확보해 준 의미는 있었다고 한다면, 그에 비해 상대주의에서는 규범성은 포기되고 과학사를 뒤쫓아가는 기술적 (서술적)작업만 의미있게 되어버리지 않나 생각되고 과학철학의 입지를 크게 제한하고 있다고 본다.

이 상대주의는 과학적 지식의 진보(자신들의 용어로는 과학혁명에 있어서의 변화)에 대한 주관주의적 의미부여에서 생긴다고 지적되고 있다. 독단적 합리론자(실증주의)와 달리 상대주의는 진리를 과정으로 이해하는데서 출발하지만,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것, 즉 객관적 내용을 제거한다. 그렇게 되면 진리는 오류와 구별되지 않고, 과학사는 하나의 오류에서 다른 오류에로의 이행에 불과하게 된다는 것이다.

Ⅲ. 로단이 본 과학의 진보
로단은 과학을 진리지향적 활동으로 보면서 합리성=진보라는 실증주의의 누적적 진보관과, 과학사를 통해볼 때 합리성의 모델을 정식화하기 어렵다는 상대주의의 입장 모두를 비판해 내면서, 과학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과학의 합리성과 진보의 관계를 재구성하고 있다.

1) 과학의 정의
로단은 우선 과학이 문제 해결 활동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이제까지의 과학철학자들과 과학사가들이 이 문제를 명료화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과학철학자들은 과학의 합리성을 밝혀내려는 분석적 작업에 치중함으로써, 또한 과학사가들은 과학이론들의 연대기적 나열에 우위를 둠으로써 과학의 목표가 문제의 해결에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포퍼도 문제→제안된 해결 즉 새로운 이론의 발명→새로운 이론으로부터의 테스트 가능한 명제의 연역→테스트 : 관찰과 실험에 의한 반박의 시도→경쟁하는 이론들 사이의 선택이라는 방법론을 제기하고 있기는 하나 문제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지는 못했다. 문제해결의 모델과 진리확인, 진리에의 접근, 박진성 등 개념을 혼합해서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로단에 의하면 문제해결이란 "애매성을 용해하고, 불규칙성을 제일성으로 환원하고, 발생하는 일들이 여하튼 알려질 수 있고 예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는것" 인데, 로단은 과학활동을 진리-독립적인 문제해결활동으로 보는 점에서 포퍼적 진리-지향적 문제해결과 대조되는 것이다.

과학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크게 경험적 문제와 개념적 문제로 나뉜다고 로단은 구분한다. 경험적 문제는 과학이론이 해결해야 할 가장 친숙하고 전형적인 문제로서, 해결된 문제, 미해결된 문제, 변칙적 문제로 구성된다. 개념적 문제는 경험적 문제보다 상위차원의 문제로서 로단이 독창적으로 구사하고 있는 개념인데, 기존 과학철학자, 과학사가들이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분야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내적 개념적 문제는 개념 안의 모순성, 애매성, 순환성을 해결하여 개념적 명료성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과학적 진보의 중요한 방식의 하나이다. 외적 개념적 문제는 다른 이론 혹은 다른 교의, 방법론, 연구전통과의 갈등에서 나오는 문제로서, 로단은 이것을 통해 방법론적 취약점의 개선과 이론-방법론사이의 양립불가능성이 제거되어, 인식적 진보를 가져오는 가장 인상적인 방법이라고 한다.

2) 연구전통론
과학의 개별이론들은 보다 근본적인 이론 복합체의 실례들이며, 이론이 변화하고 수정되는, 그리하여 인식적 진보를 가져오는 방식은 이러한 보다 포괄적인 관련 배경에 근거해서 볼 때 더 잘 이해된다고 하여 로단은 바로 이러한 근본적인 견해를 구성하는 일반적 가정들이나 신념들의 집합을 연구전통이라 한다. 이 연구전통은 그 안에 포섭되어 있는 개별 이론에 대해 존재론적이고 방법론적인 허용이나 금지와 같은 규범적 힘을 지닌 보다 거대한 분석단위인 것이다.

3) 이론과 연구전통의 평가
이론은 문제해결 효율성에 의해 평가된다. 그것을 공식화하면 해결된 경험적 문제의 수자와 비중에서, 발생된 변칙적, 개념적 문제의 수자와 비중을 빼는 것이다. 이 방법을 통해 다양하고 경쟁적 이론체계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비교, 평가, 선택함으로써 과학적 진보의 기준이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전통을 평가하는 것은 적합성과 진보율에 따라서 행해진다고 로단은 말하는데, 전자는 共時的(synchronic) 방법으로, 주어진 시점에서 가장 높은 문제해결 효율성을 갖는 이론이 속해 있는 연구전통을 받아들이게 되는 기준이 된다. 후자는 通時的(diachronic) 방법으로서, 일정기간 동안의 진보율에 비교하여 비상하게 높은 진보율을 드러내보이는 연구전통을 따라 작업하는 기준이 된다.

4) 진보와 합리성의 관계
로단에게 있어서 과학의 존재이유는 설명가능한 경험적 문제에 대한 해결의 극대화에 있으며 동시에 변칙적·개념적 문제의 발생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로단에게 있어 과학의 합리성은 바로 이 목적에 의존되어 있다. 실증주의 전통에서 합리성의 증가, 진리 접근성, 누적성의 개념으로 과학의 진보를 설명한 것과 달리 로단은 진보를 약속해 주는 것이야말로 합리적인 것이라고 한다. 실증주의에서 합리적인 것이 바로 진보적이게 되는 관계를 뒤집어 진보적인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문제의 해결이라는 과학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성취하고, 최대의 진보를 가져오는 이론과 연구전통의 선택에서 합리성은 보장된다는 것이다.

특히 경쟁이론, 혹은 경쟁 연구전통보다 문제해결에서의 성공도(적합성, 효율성)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급속한 진보율을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장래성있는 이론, 연구전통을 과감히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또한 합리적인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기존의 틀로 합리성을 바라보는 경우에는 이것은 불합리한 선택이 되겠지만 로단의 경우 진보적인 것이 합리적이므로 문제가 해소된다.

로단의 진리 독립적 진보모델은 과학적 활동을 통해 확실성의 추구, 진리체계의 정립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철학사나 과학사를 통해서 진리추구 활동으로서의 과학은 결코 성공을 찾아보기 어려운 유토피아였다는 진단이다. 실증주의 철학자들은 엄밀하게 과학의 영역을 구획짓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결과적으로 볼때 과학을 지나치게 협소한 테두리 안에 가두어버렸다. 로단은 이에 대한 비판을 통해, 자신의 모델은 과학의 좁은 합리성을 너머 더욱 포괄적인 입장에서 과학외적 합리성(종교, 도덕 기타 여러 지적 분야들)까지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한다.

5) 로단의 진보관에 대한 비판
거팅은 로단의 「진보와 그것의 문제」에 대한 서평에서 로단의 견해가 갖는 두가지 이점을 말한다.

그 하나는, 결정적인 것으로서, 로단이 진리에 관계시키지 않고도 과학활동의 합리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이것은 실증주의의 약점을 극복한 것으로 해석한다), 또 다른 하나는 과학이 합리적인지 아닌지를 결정해 줄 기준을 마련해 주었다는 점(이것은 상대주의의 약점을 극복한 것으로 해석한다)이다.

그러나 동시에 과학의 진리독립적 모델은 많은 포인트에서 진리에 호소할 것을 요구하는 자기모순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로단에게 특징적인 주장이 바로 그의 난점이 되는 것인데 예컨대 내적 개념적 문제에서 '모순성'의 경우, 우리가 로단을 따라서 진리에 대한 고려를 배제하면 모순성을 제거하려는 작업이 무의미해진다. 무모순성에 대한 요구는 곧 바로 진리개념과 관계되는 것이다. 외적 개념적 문제의 경우 이 난점은 더욱 뚜렷해진다. 갈릴레오와 다아윈 각각의 경우에 과학과 신학사이의 논쟁이 그토록 격렬했던 것은 과학적 설명과 신학적 설명이 서로 양립불가능했기 때문에, 즉 둘 중에 하나는 반드시 거짓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더욱 근본적인 난점은 그가 과학을 문제해결활동으로 정의하자마자 발생한다. 문제해결을 통해 인식적 진보에 이르게 된다고 하면서, 진보의 평가에 진리가 무관하다고 하는 주장을 동시에 하는 것은 반박될 수 밖에 없는 논의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수한 난점으로서, 실제의 과학적 탐구와 이론 선택의 과정에서 해결된 문제나 변칙의 수를 어떻게 개별화하고 헤아려 계산할 수 있는지, 해결된 문제나 변칙적 문제의 비중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지 제시되지 못했다. 진보율의 계산도 얼마의 기간을 잡아 산출할 것인지 자의적이 된다.

이러한 세부적인 난점들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로단이 실증주의와 상대주의 꼭 두 독단을 피하고자 실용주의에 의탁한 데서 찾아질 수 있다고 본다.

실용주의에서 추구하는 효율성은 그것 자체가 목적으로서 수단의 적법성 여부, 과학활동의 도덕성 문제와 관련을 맺지 않는 것이며, 과학이 객관적 진리의 탐구 활동이라는 것도 승인하지 않는 입장이다. 그리고 어떤 문제를 해결할 과제로 보는가에 대한 가치기준이 없다.

물론 과학의 탐구는 문제 설정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영역은 광대하므로 그것 모두를 문제로 삼아 해결할 수는 없다. 그 거대한 문제 영역 가운데 어느 것에서부터 시작하는가 하는 것은 좁게는 연구자 개인의 관심분야, 취향, 신념체계와 관계되겠지만, 크게는 사회적, 역사적 조건에 따른 문제가 된다.

가령 현대과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는 열핵반응의 제어인데, 이 문제는 몇 세기 전 아니 불과 50년 전에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이 문제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 특히 자연과학의 발전이 국민경제상의 필요에 의해 수소핵과 헬륨의 융합에서 생기는 에너지를 이용하고 제어할 방법에 대한 탐구를 실재적인 과학적 기초위에서 제기할 정도로 발전해야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은 그 사회의 단계와 조건에 의해 문제로 제출된 것에 대해서 탐구성과를 생산해내는 활동이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지금 우리에게는 과학의 성격(방향성, 도덕성)자체를 문제삼아야 할 시점이 아닌가한다. 왜냐하면 과학의 문제해결 효율성은 현대에 들어와 급속하게 증대되고, 과학적 실재에 대한 새로운 발견도 경이롭게 진척되고 있다는 점만을 보면 인류의 미래는 낙관적일 수 있지만 사정은 그렇게 평화롭지 않은 것 같다. 한두가지 사례를 들어 생각해보자.

첫째, 걸프전에서 우리는 무기재료과학이 첨단기술과 결합하여 엄청난 파괴력을 행사한 것을 목격했다. 그것은 20c의 위대한 과학혁명의 하나라고 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원자폭탄제조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을 때 체험한 당혹성과 같은 것이다. 신소재개발, 첨단 장비의 개발 등 전쟁을 한번 치루고나면 그 분야의 과학발달이 급속화되는데 그것은 효율성의 측면에서는 진보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파괴의 효율까지 인정해야 하는가?

둘째, 논의를 국내로 돌려보자. 국내 과학자가 몰두하고 있는 작업 중의 하나가 행정전산망의 완성에 있다고 하는데, 그 결과 권력 체제편에서 정보자원을 독점하고 그것을 통해 국민의 사적, 공공적 활동의 감시, 통제가 결과된다면 어떻게 되는가? 컴퓨터과학이 발전하여 인간의 삶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 조작 통제의 대상이 되고 기본권마저 침식당하는 게 아닌가?

20c에 들어 과학은 기술과 밀접히 결합하여 사회적 생산력의 획기적 발전을 창출해 내었다. 과학자는 이제 고립된 연구실 안에서 진리탐구에 종사하던 고전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게 되었다. 과학이 이미 사회와 어떤 식의 연관을 맺을 수 밖에 없는 이 시대에서는 과학의 사회적 역할이 새롭게 정초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로단이 실증주의와 상대주의의 제한점들을 극복하고자 시도했던 점은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제대로 행해지기 위해서는 각 입장의 논리를 본격적으로 분석했어야 한다는 점이다. 연역논리의 한계(실증주의), 과학사에 의존하는데서 오는 기술주의, 무규범성 (상대주의)을 논리차원에서 지적해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과학의 합리성과 진보에 대한 시각을 논리적으로 정확하게 포괄적으로 규정했어야 한다.

맺는말
지금까지 로단의 실용주의적, 진리독립적 진보관을 실증주의, 상대주의의 전통과 대비시켜 가면서 살펴보았다. 그가 과학사의 풍부한 예증을 토대로 진보가 행해지는 많은 다양한 양식들을 정리하고, 특히 합리성과 진보의 관계를 역전시켜 진보성을 제1의적 과제로 추구한것은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과학이 갖는 많은 과제 가운데서도 과학의 제대로된 방향성, 정확한 의미의 진보성이 절실하고 긴급한 상태에 있음을 고려한다면, 그가 실용주의적 입장의 한계를 그대로 노출시켰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시대의 과학이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서 역사적 통찰력을 가지고 방향제시를 했어야할 것이다. 과학 철학자의 혜안으로 과학의 생산력을 지휘해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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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소흥렬 실증주의 과학철학과 역사주의 과학철학", 「철학과 현실 1990. 봄호.
코프닌. 「>르크스주의 인식론」이성과 현실사 1988.
차머스, 「현대의 과학철학」 서광사 1985.
브라운 논리실증주의의 과학철학과 새로운 과학철학, 1987.
로제, 「과학철학의 역사」, 한겨레 1986.
김영남, "로단에게 있어서 과학적 진보의 문제", 「철학연구」 22집 1987.
G.Doppelt, Laudan's "Pragmatic Alternative to Positivist & Historicist Theories of Science", Inguiry 24 1981 pp.253-71.
G.Gutting Review Article, Erkenntnis 15 1980. pp.91~103.
L.Laudan, Progress and It's Problems, 1977 Univ. of California Press.
L.Laudan "A Problem-Solving Approach to Scientific Progress" In Scientific Revolution 1981 (Hacking, 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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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사항

윤혜린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소흥렬
추천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