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자명 全南大學敎 人文科學硏究所
학술지명 용봉논총YONG BONG NON CHONG
권 30
호 1
출판일 2001. 12. 30.
현대 기호학의 미래
김치수
이화여대 교수
2-241-0101-10
--------------------------------------------------------------------------------
1. 지난 20년 동안 우리의 사회적 문화적 환경은 격변을 겪고 있다.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과 휴대용 전화기의 일상화는 정보에 대한 개념을 바꿔 놓고 있고 의사 소통의 방식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 세기말적 변화를 두고 흔히 21세기를 영상의 시대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역사이래로 인류가 사용한 의사전달 수단으로서의 문자 문화의 위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 질문 때문에 인문학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고 많은 인문학자들이 존재론적 위기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특히 정보 산업의 엄청난 확산과 위력은 다른 산업을 압도하고 있고 그로 인해서 인간의 재화 구축의지는 모든 사람을 모험의 세계에 뛰어들게 함으로써 왜곡된 과정을 쫓아가게 한다. 역사이래 문자문화에 의존해 온 인문학은 문자문화 자체의 위기와 함께 그 역할이 축소되고 새로운 형태의 문화에 의해 대체될 위기에 빠져 있다. 선조적lin?aire인 문자로부터 입체적인 영상으로 의사 전달의 방법이 달라지고 있는 문명사적 전환기는 전통적인 인문학의 입지를 축소시켜버렸고 새로운 인문학의 출현을 촉발시키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인문학을 전통적인 인문학인 ‘이해의 인문학’에 대응할수 있는 ‘표현인문학’이라고 제시한 바 있다(정대현 외 지음 『표현인문학』 참조). 디지털 시대의 도래를 전제로 한 ‘표현인문학’은 동서양의 고전을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pc가 보급되고 인터넷이 일반화된 오늘의 사회에서 개인은 과거의 위대한 정신의 유산에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자 한다. 그 표현은 과거의 위대한 정신이 가지고 있는 반성적 비판적 성질에 비하면 사소하고 순응주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구체적이고 표현적이며 직접적인 대중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는 모험적이고 전위적이다. 의사 소통의 체계에서 보면, 그것은 새로운 시대에 삶의 조건에 해당한다. 그것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개인의 운명을 이보다 더 적절하게 드러내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인문학에서 이러한 변화는 어느날 갑자기 온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삶의 조건이라고 하는 외부적인 요인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인간과 세계의 이해에서 충분한 해석에 도달하지 못하여 끝없는 새로움을 추구해 온 인문학은 20세기 중반부터 종래의 식사주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한다. 언어학으로부터 출발한 ‘구조주의’는 인류학, 사회학, 정신분석학, 문학 등 인간의 모든 현상을 내적인 구조로 파악하고 그 구성 요소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함으로써 전체 구조의 설명에 도달하고자 한다. 이른바 내재주의라고 할 수 있는 구조주의는 외재주의라고 할 수 있는 역사주의에 반대되는 것으로서 모든 것을 구조적인 문제로 파악하고자 하는 사고의 획기적인 전환이었다. 모든 대상을 구조적인 텍스트로 보고, 필요 충분 조건을 갖춘 텍스트를 분석하여 그 구조를 밝힘으로써 대상의 진정한 의미를 드러내게 할 수 있다는 구조주의는 그 객관성과 엄밀성 때문에 매력적이고 흥미 있는 패러다임을 제공하지만, 구조주의 언어학이 그러한 것처럼 바로 객관적이고 엄밀해야 하는 이유 때문에 극히 제한적인 설명에 머물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2.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서 모든 것을 하나의 기호로 보는 기호학의 등장을 가져온다. 대상을 사물 자체가 아닌 다른 것으로 표현한 것을 기호라고 한다면 기호학은 바로 그 기호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학문이다. 그것은 구조주의만큼 분석적 객관적 엄밀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보다 훨씬 더 이해와 설명의 폭이 넓어서 인간의 모든 현상으로 그 대상을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그러나 모든 분석과 해석을 이론화해서 어떤 대상에나 적용시킨다는 것은 몇 세기의 이론적인 축적이 없는 한 불가능한 일이며 따라서 그 이론화 작업 자체가 당대에서 현저하게 성취되지 않는 한 기호학의 이론화는 절망적인 시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기호학은 20세기초 언어학자 소쉬르F. de Saussure와 철학자 퍼스 C.S.Peirce에 의해서 그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소쉬르는 ‘사회적 삶 속에서 기호들의 생명을 다루는 일반과학’으로서 기호학의 가능성을 예견했고 퍼스는 ‘우주 전체가 기호들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예견이 있은 다음 기호학은 서구에서 다양한 이론과 다양한 학파에 의해 산발적으로 주도되었고 그 과학적 위상과 방법론도 통일된 관점을 획득하지 못했다. 기호학은 모리스Ch. Morris가 『통합과학 국제백과사전』에서 주장한 것과는 요원하게 통합된 과학에 이르지도 못했고 통일적 관점이라 말할 처지도 되지 못했다. 그것은 기호학자들이 기호학에 관한 정의를 내리려고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제 각각 정의를 내리려 했지만(Pelc ed. 1971), 그것을 하나로 꿸 수 있는 실과 바늘이 아직 없다고 보는 것이 정직한 대답일 것이다. 현대 기호학은 커뮤니케이션과 의미작용의 현상들을 연구하는 학문분야이다. 그것은 문화를 구성하는 다양한 언어들을 지시하고 설명하기 위해 시도된 메타언어들을 다룬다. 따라서 기호학 연구의 기본 가설은 모든 커뮤니케이션 형식들이 심층의 기저에 있는 코드에 종속되는 메시지 발송으로서 작동한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커뮤니케이션 과정 속에는 일정한 문화적 계약에 근거하는 규칙들이나 코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기호학이 모든 문화적 과정들을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으로 연구하며, 문화적 과정들의 심층 속에 있는 체계와 법칙들의 존재를 보여주려고 한다.(Eco, 1986)
시비억T.A.Sebeok이 편찬하는 연감 형식의 『기호학의 마당Semiotic Sphere』 에는 현대 기호학을 특징짓는 어휘들로 ‘운동’, ‘활동’, ‘프로젝트’, ‘분야’, ‘메타 학제적’, ‘메타과학’ 등이 혼란스럽게 나타난다. 이런 현상을 기호학의 위기로도 볼 수 있고 기호학의 종언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20세기 초에 소쉬르가 “기호학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할 권리가 있으며, 그 자리는 이미 새겨져 있다”라고 한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후 1세기가 흘렀지만, 이 말은 기호학의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 데 아직도 유효한 말이다. 실제로 그레마스A.J.Greimas는 기호학이 진행중인 프로젝트라고 보았고 시비억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있는 과학적 학문분야’라고 진단했다.
기호학을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잡게 하기 위해서 그 하위 영역들에 관한 이론들을 설정하는 것도 주요한 과제이다. 모리스는 순수기호학, 기술기호학, 응용기호학으로 나누었고 카르납R. Carnap은 일반기호학과 특수 기호학으로 나누었고 옐름슬레우L.Hjelmslev는 기호체계들의 메타 언어로서의 기호학과 다양한 과학적 기호학들의 메타 학문 분야로서의 메타기호학을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보편적인 구분은 이론기호학과 응용기호학으로 분류된다.
기호학이 갖고 있는 중요한 인식론적 특성은 자기 반성성self-reflexivity이다. 이 특성을 모리스는 기호학이 과학인 동시에 과학들의 도구, 다시 말해서 메타과학이라고 규정한다. 크리스테바J.Kristeva도 이같은 반성 가능성을 인지하고 기호학을 텍스트 과학으로서의 메타언어와 대상언어로 나누어 생각하고 끝없는 자기 비판을 하는 연구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기호학의 하위 영역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생명기호학
-사회기호학
-문화기호학
-시각기호학
-비구두 커뮤니케이션 기호학
-영화기호학
-멀티미디어 기호학
-생태기호학
-법기호학
-건축기호학
-문화기호학
-언어기호학
-공간기호학
-종교기호학
-연극기호학
-회화기호학
-도시기호학
-의학기호학
-문학기호학
-광고기호학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호학은 그것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에 하위 영역 전체를 열거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생성 중에 있다. 그리고 각 그룹별로 영역의 확장과 이론화 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
프랑스에서 오늘의 기호학의 이론화 작업은 1960년을 전후로 바르트R.Barthes에 의해 촉발된 이래 쿠르테즈J.Court?s나 코케J.-Cl Coquet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파리학파?cole de Paris, 퐁타니유J. Fontanille 중심의 문학기호학, 플로슈J-M. Floch 중심의 광고기호학, 위베르스펠트A.Ubersfeld, 파비스P. Pavis, 코르벵M.Corvin 중심의 연극 기호학으로 진행되고 있고, 그 밖의 지역에서는 타르투학파의 문화기호학, 노베르그-슐츠Norberg-Schultz, 브로드벤트Broadbent, 프라크Prak, 프레지오시Preziosi 등의 건축기호학 등에 의해서 이론화 작업이 진행중일 뿐 그것이 완료된 것은 아니다.
3. 그런데 이러한 진행 과정을 보면 기호학이 어떻게 하여 이해와 반성과 비판을 기본적인 정신으로 삼고 있는 인문학의 범주에 들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실제로 위에서 든 많은 하위 영역들이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것이어서 인문학의 범주에 분류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그런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인문학의 상황과 조건이 달라진 오늘날, 인문학은 여전히 순전히 이론적이고 관념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이론으로부터 실용적이고 실천적인 분야로까지 영역을 확대하여 존재론적 위기를 극복해야 할 것인가 질문을 던져 보면 해답은 분명해진다. 이 글의 서두에서 밝히고 있는 인간 조건의 급격한 변화는 인문학 자체에게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인문학이 이해와 반성과 비판을 하는것은 ‘사람다운 삶’이 어떤 것이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알기 위해서다.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이 교양을 갖추게 하는 단계에 머물던 시대는 지나갔고 그처럼 고정된 인문학이 위기에 처한 것은 당연하다. 역사적으로 인문학이 위기에 처하지 아니한 시대가 있었는지 질문을 던지면 인문학의 변화는 그 위기의 극복을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의 영역 확대는 인문학의 다양성과 개방성의 확보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하여 20세기초의 소쉬르 이론을 토대로 언어 현상을 과학적으로 체계화하는 데 성공한 구조주의 언어학은 인문학의 과학화에 하나의 모델이 된다. 다 알다시피 구조주의는 언어, 사회, 정치, 경제, 문학 등의 분야에서 내적인 구조를 밝히고 그 구조적 모순이 삶의 조건의 악화에 상응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횡적인 구조주의는 종적인 역사주의에 대해 혁명적인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의 과학성에도 불구하고 각 구조가 체계화되지 않으면 분석의 적설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구조주의는 사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그 이후의 모든 분석과 해석에 혁명적인 영향을 행사하지만, 개념과 방법의 엄격성 때문에 이해와 설명에서 극히 제한적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가령 구조주의 언어학은 하나의 문장을 다룰 수 있는 대상의 최대 단위로 생각하고 그 이상으로 나아가고자 하지 않았다. 하나의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언어 행위란 한계가 있을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등장한 것이 기호학이다.
4. 기호학의 인문학적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낸 사람이 앞에서 든 롤랑 바르트이다. 그는 기호학의 교과서를 쓰기 전에 『현대의 신화Mythologies』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자명한 것le ce-qui-va-de-soi’처럼 보이는 것을 분석한 결과 자명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낸다. 그는 당시의 여러 현상과 사건들의 보도에서 이념적 왜곡을 밝혀내고, 문화적인 것을 자연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후천적으로 획득된 것을 타고난 것처럼 만드는 속임의 정체를 드러낸다. 1954년부터 1957년 사이에 씌어진 그것은 기호학적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기호학적 직관으로 가득찬 예리한 분석은 프랑스 사회에서 신화처럼 통용되고 있는 사회적 현상들을 현대의 신화로 간주하고 그것의 위선과 거짓을 드러나게 한다.
여기에 덧붙여서 바르트는 ‘오늘의 신화’라는 글을 이 책의 후기로 삼고있다. 여기에서 그는 소쉬르의 언어학 개념을 원용해서 앞에서 이루어진 분석을 기호학적 분석의 차원으로 옮겨 놓는다. 그 예를 하나 들어보자.
나는 이발소에서, 이발사가 내민 파리-마치Paris-Match의 표지에서 프랑스 군복을 입은 젊은 흑인이 삼색기의 깃발을 향해 눈을 들고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것은 그 그림의 의미sens이다. 그러나 그 그림이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잘 안다. 즉, 프랑스가 하나의 위대한 제국이라는 것을, 소위 식민주의라고 비판하는 자에게는, 이른바 압제자들에게 충성하는 이 흑인의 열정보다 더 훌륭한 대답이 없다는 것을.
바르트가 잡지의 표지를 분석한 이 글은 그가 「현대의 신화」에서 분석하고자 한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표지는 프랑스가 관용과 애국심으로 이루어진 ‘위대한 제국’이라는 것을 흑인을 포함한 모든 프랑스인에게 주지시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그는 해석해 낸다. 그는 여기에서 기호학의 체계를 적용한다. 이미 주어진 체계로 형성된 하나의 기표(한 흑인 병사가 프랑스 군대식 경례를 한다)가 있고, 하나의 기의(프랑스적 특성과 군대적 특성의 의도적 혼합이다)가 있으며, 그 기표를 통한 기의의 현존 즉 기호가 있다. 이것을 신화의 차원으로 말하면, 기표significant는 형식forme에 해당하고 기의signifi?는 개념concept에 해당하며 이 두항의 상관관계인 기호signe는 의미작용signification에 해당한다. 이것을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따라서 신화는 형식과 개념의 통합적인 것이고 언어의 기호는 형식에만 관계된다. 신화의 읽기는 언어 차원에서는 이루지지 않고 신화의 의미작용 차원에서만 가능하다. 바르트는 이처럼 언어학 이론을 신화에 적용함으로써 신화의 의미작용을 밝혀낸 결과 자신의 기호학을 의미작용의 기호학이라 명명하고 언어학자들이 말하는 기호학을 커뮤니케이션 기호학이라 명명하여 두 기호학을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바르트는 어느 순간에 기호학 이론의 정립으로부터 텍스트 자체로 돌아온다 모든 텍스트는 읽는 사람에 의해 새로 씌어지는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캐논 중심의 고전적인 사유를 해체한다. 추구나 읽을 수 있고 누구나 표현할 수 있다는 그의 텍스트이론은 해체주의 철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문학에 있어서 해체주의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들이 바르트의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해체주의의 등장에서의 그의 영향을 간과하고 있다. 그것은 해체주의가 미국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에 의해 일시적인 유행처럼 도입되게 만들었으며 나아가서는 해체주의가 갖고 있는 영상시대와의 관련성을 전혀 도외시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전통적인 인문학의 위기와 연결되고 새로운 인문학의 대두라는 시대적 요구와 상응한다. 이 과정을 밝히는 것은 오늘의 인문학의 혹은 문학의 위기를 제대로 진단하고 새로운 인문학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나아가서는 문자문화의 주류를 형성해온 문학이 영상문화의 시대에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거나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밝혀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롤랑 바르트는 일찍이 ‘저자의 죽음’을 주장한 바 있다. 이 말은 절대 권력의 상징이었던 저자가 대중 앞에서 자신의 저작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시대의 도래를 예견한 말이면서 혁명적인 선언이다. 저자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무엇을, 어떻게, 왜 말하고자 했는지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독자가 그 작품에서 무엇을 어떻게 읽었는지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모든 작품은 그 자체로 완결된 작품이기 때문에 ‘닫혀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읽는 독자는 작가의 의도와는 독립적으로 자신에게 읽히는 대로 작품을 읽을 수 있는 자유를 갖는다. 그 경우 작품은 움베르토 에코U. Eco의 표현에 의할 것 같으면 ‘열린 작품’이다. 이 ‘열린 작품’에 접근하는 방식이 작가의 의도에 의하지 않고 독자의 해석에 의한 것일 때 작가의 존재는 가려지고 그것을 읽어내는 독자의 존재만 남게 된다.
여기에서 모든 현상을 기호로 설명하려는 기호학의 등장은 필연적인 것인가 살펴보아야 한다. 소쉬르가 예견한 기호학s?miologie은 언어학을 포함한 일반과학으로서 삶의 모든 현상을 새로운 방법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기제가 될 가능성을 지니고 태어난다. 소쉬르의 정의와 달리 바르트는 언어학에 포함되는 기호학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그것이 하나의 학문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이론화 작업을 시도하는 한편, 기호학적 분석을 여러 분야로 확대한다. 프랑스 사회의 여러 현상들을 분석하여 자신이 속한 부르주아 세계의 위선과 허위의식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고전적인 작품과 대중적인 작품을 분석하여 기호학의 틀을 마련하고 패션에 관한 기사들을 분석하여 모드의 체계를 세우고자 한 그의 노력은 오늘날 각 분야에서 시도되고 있는 여러 가지 기호학의 토대가 된다.
구조주의보다는 열려있고 역사주의보다는 과학적인 기호학을 체계화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은 『현대의 신화Mythologies』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시민들의 ‘신화’로 통용되고 있는 것의 가면을 벗겨내고, 부르주아지가 자기네 계급의역사적 지식을 ‘보편적 자연nature universelle’으로 변화시키고 있음을 폭로한다.
기호학에 관한 교과서를 염두에 둔 『기호학 요강』에서 바르트는 우리의 일상적 삶 속에 있는 언어활동을 다루는 기호학을 정립하고자 한다.
그는 의복, 음식 메뉴, 도로표지판 등 일상생활에서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 쓰이는 것을 분석하여 계열체paradigme와 통합체syntagme개념을 기호학적인 것으로 정착시킨다. 그것은 그가 기호학의 랑그langue의 문법을 세우고자 하는 그의 의도를 드러낸다. 그는 소쉬르의 랑그/파롤parole, 기표/기의, 통합체/체계syst?me, 외시d?notation/함의connotation를 기호학적 개념으로 바꿔 놓는다.
「이야기의 구조적 분석 입문Introduction ? 1'analyse structurale des r?cits」 에서 그는 방브니스트E. Benveniste의 기술층위niveau de description 이론을 도입하여 통합 관계relation int?grative와 분포적 관계relation distributionnelle을 구분하고, 프로프V. Propp의 설화 이론을 도입하여 이야기를 기능층위fonction, 행위 층위action, 서술 층위narration로 나누어 이야기의 분석 모델을 개발한다.
『모드의 체계Syst?me de la modes』에서 패션이 기호로 작용하고 있는 현상을 밝혀내고 아직 확립되지 않은 기술된 의복의 랑그를 정립하여 옐름슬레우의 후계자가 된다.
『S/Z』에서 이야기를 해독할 수 있는 다섯 가지의 코드를 내세워 읽기의 코드 확대 가능성을 추구하고 있다. 그는 발자크의 단편소설 한편을 분석하여 1) 해석학적 코드code herm?neutique, 2) 의미소적 코드code s?mique, 3) 상징적 코드code symbolique, 4) 행위적 코드code proairetique, 5) 문화적 코드code culturel 등 다섯 개의 코드를 발견한다. 이야기에 따라서 이 다섯 개의 코드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증감 변형될 수 있어서 이야기 분석 이론으로서 열려 있는 것이다. 그는 여기에서 ‘읽을 수 있는 것le lisible’과, ‘씌어질 수 있는 것le scriptible’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고전과 현대의 텍스트 읽기의 차이를 주장한다.
이러한 과정이 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 현상 전반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틀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바르트는 여기에서 기호학의 이론 정립 노력을 중단하고 텍스트로 돌아온다. 초기의 기호학이 바르트에게 이론의 정립이었다면 후기의 기호학이 텍스트를 해체하여 그로 하여금 해체주의로 전환하게 만든다. 그가 여기에서 기호학의 이론을 정립하려는 노력을 중단하고 텍스트를 해체하여 창조적인 글쓰기에 전념하게 된것은 기호학의 이론적 엄격성으로부터 기호학의 개방성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바르트에게 있어서 해체주의는 텍스트의 읽기가 무한히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과 함께 탄생한 것이다. 텍스트texte는 작품oeuvre과는 달리 작가에게서 독립되어 독자의 소유물이 되기 때문에 독자는 텍스트를 가지고 놀고 그러한 자신을 관찰한다. 바르트는 텍스트를 하나의 육체성으로 파악하고 그것과의 접촉에서 쾌락plaisir을 느끼고 그 순간 자아의 상실과 같은 희열jouissance을 맛본다. 바르트에게 있어서 텍스트의 읽기는 이제 하나의 텍스트의 생산으로 전환되고 모든 텍스트는 새로운 텍스트로 끝없이 해체된다. 모든 현상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목표로 출발한 바르트의 기호학적 모험이 이처럼 해체주의로 끝나고 있는 것은 오늘의 디지털 문화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세계 자체에대한 새로운 이해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이미 르네 웰렉Rene Welleck이 반세기 전에 제시한 내재주의 비평이 바르트에 와서 구조주의적 방법론을 거쳐 기호학을 정립하게 만들고 텍스트의 해체에 이르게 된 것은 문학을 비롯한 모든 삶의 현상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길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론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구조주의와 기호학이라고 하는 새로운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것은 전문적인 인문학자가 아니면 접근을 금지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인문학 자체를 한편으로는 전문화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보편성을 배제하여 인문학의 위기를 초래하게 된다. 그것은 인문학이 과학화하는데 기여한 반면에 지나치게 전문화해서 많은 사람들을 인문학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는 비판의 소지를 갖고있다. 실제로 바르트의 지적인 모험이 전통적인 인문학이 담당했던 ‘사람다운 삶’에 어떤 전망을 제시하는 역할을 얼마나 수행했는지 평가해 보아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바르트의 기호학이 인문학의 일부인지 알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한다.
1) 사르트르Sartre, 브레히트, 마르크스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서 바르트는 자신의 독특한 ‘읽기’를 시작한 이래 왜 역사주의를 배격하고 구조주의를 선택했는가?
2) 그 구조주의가 역사주의와는 반대로 가치 중립적인 위상을 지니고 있다면 부르조아 사회의 거짓 신화를 들추어내고자 한 바르트는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배치되는 방법론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3) 삶의 모든 현상을 기호로 설명하고 그것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어떤 모델을 만들고 싶어한 바르트는 위기의 인문학을 구하고자 한 것인가 아니면 절망의 상태로 빠지게 한 것인가?
4) 저자의 죽음을 선언한 그의 읽기가 텍스트로 돌아와서 모든 읽기의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은 저자의 새로운 탄생인가 아니면 영원한 죽음인가?
5) ‘읽을 수 있는 것le lisible’과 ‘씌어질 수 있는 것le scriptible’ 사이에 있는 무수한 복수적 텍스트는 저자의 죽음 다음에 무수한 독자의 탄생을 의미하는 데, 이 독자는 또 다른 저자가 아닌가?
6) 원래의 저자로부터 텍스트를 빼앗은 독자는 텍스트를 자기 마음대로 다룰 권한을 누구로부터 위임받았는가?
7) 텍스트를 육체로 본다면 텍스트의 내용 즉 정신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가, 바르트의 ‘읽기’의 이론은 누구나 표현하는 포스트모더니즘사회를 예견한 것인가?
8)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해체주의와 그의 ‘읽기’의 이론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만약 이러한 질문의 해답이 나온다면 바르트의 지적인 모험은 영상시대에 있어서 인문학의 가능성을 찾아 나선 것임을 입증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바르트의 변신이 오늘의 사상적 전환과 맞물려 있음을 규명할 수 있다.
5. 지난 9월 28일 한국 기호학회는 “소리 없는 언어, 움직이는 언어”라는 제목으로 국제학술대회를 가졌다. ‘비 구두 커뮤니케이션의 기호학’을 다룬 이 학술대회에는 이화여대 이어령 명예교수의 발제와 세계기호학회 회장으로 있는 포스너R. Posner교수, 파리3대학의 보스르동B. Bosredon교수, 쓰쿠바대학의 미타무라 ?스께三田村 晙石 명예교수, 소피아대학의 로자노바vessela Lozanova교수 등의 발표로 성황을 이루었다. 여기에서 다루어진 주제는 도산서원의 공간기호론, 관습화된 일상 제스처, 이미지의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언어예절과 신체언어, 연극에서 무대언어 등이었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현상도 기호학의 엄격한 이론화 작업이 아니라 기호학의 영역의 확장이었다. 이론적으로는 느슨해지고 분석의 대상은 확대되어서 기호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셈이다. 그러니까 기호학이, 이론적인 엄격성은 몇 가지 주요 개인으로 한정된 반면에 그 영역은 끝없이 확장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뿐만 아니라 인문학으로서의 기호학은 한편으로 우리의 삶과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고 설명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지속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 실용적이고 실천적인 분야를 개척함으로써 위기에 선 인문학에 어떤 돌파구를 열어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
이력사항
김치수
이화여대 불문과교수
'퍼온~사유..! > 인지와 언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ㅍ] 일반 어의론의 인식론적 적용 (0) | 2008.05.07 |
---|---|
[ㅍ] 대화형식과 비의 (0) | 2008.05.07 |
[ㅍ] 기호학 사각형-그레마스 (1) | 2008.05.06 |
[ㅍ] 기호의 해석체 (0) | 2008.05.06 |
[ㅍ] 랑그와 기호학-소쉬르 (0) | 2008.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