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Ⅰ. 시작하는 말
Ⅱ. 페미니스트 연구방법의 등장배경
Ⅲ. 페미니스트 연구방법의 인식론적 틀
1. 페미니즘과 인식론적 문제들
2. 페미니스트 인식론과 연구 지향점
Ⅳ. 페미니스트 이론과 연구방법
1. 전통적 페미니스트 연구방법
2. 근대 후기 페미니스트 연구방법
Ⅴ. 교육학에서의 페미니스트 연구방법론
Ⅵ. 맺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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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자명 한국교육인류학회
학술지명 교육인류학연구
ISSN 1229-3911
권 5
호 1
출판일 2002.
교육학에서의 페미니스트 질적 연구방법의 틀1)
A Framework of Feminist Research Methodology in Education
곽삼근
(Kwak, Sam-Geun)
1-127-0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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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시작하는 말
본 연구는 페미니스트 연구방법의 필연성과 방법론적 틀을 분석하고 교육학에서의 페미니스트 연구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의 주요내용은 첫째, 페미니스트 연구방법의 등장배경과 전개과정을 고찰하고, 둘째, 연구방법에서의 인식론적, 방법론적 틀을 살펴보며, 셋째, 교육학에서의 페미니스트 방법의 가능성과 의미를 고찰한 후 연구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연구방법은 학문의 남성중심성에 대한 이론적 도전에서 대두되었다. 연구방법상에서 페미니스트의 틀이 과연 별도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연구방법이란 무엇인가. 이는 연구가설을 논증하기 위한 증거들을 수집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어떠한 연구가설을 설정하는가에 따라 연구방법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하겠다. 즉, 교육학에서 연구가설과 방법상 획기적인 인식의 전환(paradigm shift)을 수반하지 않고서는 기존의 남성중심적 연구의 틀에서는 여성들의 교육과 삶을 올바로 파악하여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학문세계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는 다각도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그 인간이해에 관한 지식은 거의 남성 이해라는 해석이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지적되고 있다. 그렇다면 학문세계에서 여성들의 삶은 어떻게 묘사되고 있나? 남성의 시각에서 여성의 삶은 거의 학문세계에 대두되지 못하였거나 또는 왜곡되게 표출되었을 뿐이다. 여성은 남성과 다른 삶을 살아왔으므로 여성들의 삶이 올바로 해석되려면 기존의 이론과 연구방법이 아닌 새로운 접근방법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페미니스트 연구방법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하겠다.
그 일례로 인간 발달 연구에서 방법적 전환과 기존 이론에의 도전. 그리고 이론의 변형이라는 과정을 살펴보자. 그동안 성인발달의 정도는 분리와 자율이라는 잣대로 측정되었으나, 여성의 발달은 분리와 자율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기보다는 애착과 소속에 상당한 정도로 기초를 두고 있음을 밝혀준 사례가 있다. 쵸도로우(Chodorow, 1978)가 밝혀준 양육방식에서의 남녀차이를 이론적 토대로 길리건(Gilligan, 1982)은 도덕성 발달에서의 남녀차이를 밝혀주었다. 발달이론은 성장의 단계를 자율성의 지향정도로 규정하였으나, 남을 돌보고 서로 나누고 공유하며, 또 지역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인간능력의 진보 및 함양은 무시하였다. 여성과 남성의 발달에서의 차이를 기존 연구방법으로는 밝힐 수 없었으나, 길리건은 콜버그(Kohlberg, 1981)의 도덕성 발달 연구는 남자 중심이라는 표집상의 문제를 지적하며 자신의 연구 결과 새로운 주장을 하게 된 것이다. 즉, 길리건은 여성을 대상으로 연구하여 그들의 삶으로부터 발달 구조를 얻어냈으며, 콜버그와는 다르게 도덕 개념의 발달을 설명하였다.남성이 개인의 권리, 정의의 윤리를 중시하는 데 비해 여성은 인간의 관계, 돌봄의 윤리를 중요시한다는 새로운 주장을 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페미닌" 접근이라며 그 한계성을 비판하는 측도 있으나, 길리건의 연구는 여성의 독특성을 밝혀주는 데 매우 획기적인 공헌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교육학에서도 남녀의 능력차 연구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이룬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페미니스트 연구방법은 사회 의식적이고 가치 지향적이며 그 자체의 논리적 체계를 갖고 있다. 기존의 인간과 조직연구는 남성이 표준이었으며 여성을 포함한 연구라고 하더라도 동일한 기준을 사용하여 양적으로 측정하고 비교하였으므로, 여성의 독특한 경험은 학문 연구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연구자들은 표준화된 도구를 사용하여 실증적으로 결과를 측정하는 데 관심이 있었으며, 여성들의 행위는 남성과 똑같은 기준에 의거하여 양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연구모델의 문제는 인간의 특수한 경험에 기초한 정서 및 인식이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여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여성들의 학습경험을 연구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이 출현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에 도달한 것이다.
Ⅱ. 페미니스트 연구방법의 등장배경
기존의 학문연구 영역에는 수많은 성 차별적 편견들이 내재하여 있음이 지적되고 있다. 아이흘러(Eichler, 1988: 2)는 이와 관련하여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성차별이 전혀 없는 사회에서 살아 본적이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론상으로는 그러한 사회가 구사 될 수 있으나, 실제로 우리가 현재 살고있는 생활반경에 존재하는 한 성차별이 전혀 없는 사회에 산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지적으로 한정된 우주에서 양육되어 왔다. 우리의 딜레마는 우리의 개념들, 현실을 보는 방법, 실재를 수용하려는 의지 등은 한 차원 -하나의 성별- 에 의하여 형성되어 왔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와 같은 지적세계에 남겨져 있는 한, 우리는 그것이 존재하는 유일한 세계라고 믿을 것이며 또한 그 지적세계의 한계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이흘러가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의 우주를 진정 이해하려면, 우리는 두 가지 측면을 관찰하고 설명 할 수 있는 관점을 창조하여 최초의 전환점을 구축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교육이라는 현상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가치 지향적인데, 우리나라 교육 이념상 성(性)의 구조를 인식한다면 교육이념 차원에서도 이미 성차별이 내재함을 이해하게 된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한명희, 1987). 또한 연구방법에 있어서 성차별주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여성의 관점에서 성별차이를 고려한 연구의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연구방법상 존재하고 있는 성차별주의를 인식할 때, 우리는 그 편견들을 피할 수 있고 기존의 연구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재해석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소위 과학적 연구라는 것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입장을 살펴보자. 하딩(Harding, 1986)은 주장하기를 서구 과학이 사회의 어떤 부분을 발전시키는 데 확실히 도움을 주었으나 동시에 다른 사람들, 이를테면 제 3세계와 세계 각 부분의 여성 그리고 빈곤층들을 무기력화 시키는 역할도 하였다고 주장한다. 과학의 여러 과제들을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의 필요에 연결시키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든가, 단지 이미 과도하게 이득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바램에만 계속 연계시켜서는 안된다는 비판가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 하나의 중요 주제는 페미니스트는 다른 해방주의적 사회운동과 관점을 통합시켜서 보다 효율적인 동맹관계를 형성해야한다는 것이다. 토마스(Thomas, 1991: 6)의 주장을 보자.
페미니스트 과학 프로젝트는 반군사주의, 생태운동, 반 인종, 후기 식민주의 투쟁, 그리고 건강 및 노동운동 등과 상호 도움을 주고받았다... 각각의 집단은 그들의 이익을 대표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삶의 관점으로부터 생각하도록 배워야 한다. 페미니스트의 경우도 역시 이것은 진리이다. 여성들의 삶을 생각한다는 것은 모든 여성의 삶을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우리가 연구할 때 여성의 삶으로부터 시작한다면, 우리는 다른 질문을 할 것이고, 다른 자료를 모을 것이며, 결국 세계에 대한 보다 덜 부분적이고 덜 왜곡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연구의 초기 진행 과정을 보면 페미니스트 연구가 무엇인가를 밝히며, 주로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페미니스트 비평의 글들을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기존 사회학의 주류에 페미니스트 관점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Roberts, 1981). 워렌(Warren, 1988)은 현장연구에서 연구결과 산출에 젠더가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에 초점을 둔다. 사회학적이고 인류학적인 토대에서 연구가 진행되며, 젠더가 사회적 삶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방식과 현장연구과정, 자료분석 등을 소개해주었다. 또한 래더(Lather, 1991)는 질적연구와 페미니스트 탐구가 교육연구에서 상호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제시해준다.
성별차를 긍정적으로 고려하는 페미니스트 연구는 단지 여성들을 기존 남성의 시각에서 해석되었던 연구에 덧붙여 여성이라는 연구대상자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연구가 실시되었던 개념적 틀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내포한다. 여성연구들은 연구목적이나 연구방법 면에서 다양하겠으나 조직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연구는 다음과 같이 여섯 단계로 제시되고 있다(곽삼근, 1998).
제1단계: 여성의 희소성을 밝혀주는 연구들이다. 즉 어느 지위에 여성이 수적으로 얼마만큼 존재하는가를 조사 연구하는 것으로 각 단체와 기관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있는 여성을 파악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의 활동이 매우 희소한 시기에는 꼭 필요한 조사연구이다.
제2단계: 예외적인 여성에 대한 연구들이다. 사회적으로 명성을 갖거나 유명해진 여성들을 조사하여 그 여성들이 어떠한 특징을 지녔는가를 밝혀준다. 어렸을 때 성장과정이나 교육, 성격, 가족관계 등 설문지를 통하여 특출한 여성들의 공통적 특성을 찾아내는데 역점을 둔다고 할 수 있다.
제3단계: 여성이 지닌 단점이나 장애들을 조사하는 연구들이다. 사회적으로 활동하는 여성의 희소성에 대한 원인 규명의 단계라고도 볼 수 있으며, 여성이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장애 요인을 설문지 등의 방법으로 조사한다.
제4단계: 여성들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는 연구이다. 여성을 남성과의 비교에서가 아니라 여성들만이 생활하고 느끼는 그들의 세계에 대하여 밝혀주는 것이다. 여성들은 자신의 삶과 경험을 어떻게 묘사하는가를 탐구하고 그것을 여성들 자신의 용어로 묘사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기존의 조사연구방법 이외에 인터뷰와 관찰법을 적극 사용한다.
제5단계: 기존의 이론에 도전하는 여성연구의 단계이다. 기존의 남성 중심 이론은 여성의 경험을 포함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앞의 제 4단계 연구들이 입증해 준다. 따라서 여성의 경험을 포함시키기 위해서 이론은 어떻게 변화되어야만 하는가를 탐구하는 단계이며, 연구방법은 이론의 분석과 기타 적절한 방법을 사용한다.
제6단계: 이론의 변형을 실천하는 연구단계이다. 조직에서 남성과 여성의 행동을 모두 설명해 줄 수 있는 이론은 무엇인가? 남성이나 여성이 아닌 인간의 행동에 관한 이론으로 새로이 자리 매김 하는 연구들이 추진될 것이다. 새로운 대안을 구축하기 위하여 다양한 연구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위에서 제1단계와 제2단계의 연구들은 남성을 기준으로 남성과 여성을 비교하여 여성을 연구하였다. 따라서 조직에서 여성의 활동이 희소한 것은 성공한 극소수의 여성에 대한 연구와 함께 대다수 보통 여성의 자질결핍이라는 결론을 이끌어온 것이다. 즉 특별한 위치의 소수 여성이 지닌 남성적 특성이 그들을 성공하도록 한 요인이고, 그 밖의 다른 여성들은 지나치게 정서적이며 조직 활동에 필요한 인간 관계 기술도 부족했다는 것이다(Crawford & Marecek, 1989). 또한 조직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하는 남성은 절대적 기준이고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여성은 무엇이 문제인가를 조사한 것이 제3단계의 접근방식이다. 왜 극소수의 여성들만이 사회조직에서 성공적인가의 이유를 규명하는 단계인 것이다. 제3단계에서는 여성들의 종속적 위치와 장애요인 등 제 문제들이 밝혀진다.
여섯 단계 중 페미니스트 질적 연구방법의 본격적인 도입은 제4단계에 해당한다. 제4단계의 연구는 남성표준의 논리에 과감히 도전하여 여성들의 세계만을 연구대상으로 한다. 이것은 기존의 틀인 남성과의 비교에서 탈피하였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즉 조사연구에만 의존하지 않고, 인터뷰나 관찰법을 적극 활용하여 그동안 숨겨져왔던 여성들 삶의 세계를 여성 자신들의 용어로 묘사하고 설명하는 방법이다. 이는 그 이후에 추진될 5단계, 6단계 연구를 위한 필연적 과정으로, 여성의 경험을 학문세계에 반영시킨다는 큰 의의를 지닌다. 제4단계의 연구가 우선되지 않고는 그 다음 단계의 연구가 더 이상 진행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제4단계의 여성 연구는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이기 때문이다. 즉, 남성중심의 연구에서 여성중심의 시각으로 관점을 전환하여 여성의 삶을 관찰하고 묘사하는 것이다. 그동안 남성세계와의 비교에서만 의미를 지녔던 연구결과는 여성 세계 그 자체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묘사함으로써, 무엇이 우수하고 열등한가의 비교가 가능하지도 않고 또 의미도 없다. 중요한 것은 여성들이 삶의 주인공으로서 여성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인식하고 묘사하는가이다.
제4단계의 연구가 상당 부분 진척되면 여성의 삶의 세계가 학문의 대열에 회자되고 하나의 지적 영역으로 자리 매김 될 수 있다. 그런 연후에 제5단계인 이론에의 도전 단계가 도래하게 된다. 왜냐하면 여성의 삶과 경험의 세계가 학문적으로 밝혀지면 기존의 남성중심 이론이 지닌 한계에 자연스럽게 도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길리건(1982)의 경우 여성의 목소리를 연구한 방법은 제4단계에서 출발하여 5단계의 기존 이론에 도전하여 토론을 거친 후에는 결국 이론의 변혁이 시도된다. 제6단계는 궁극적으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조직이론에 등장 할 수 있도록 이론을 변형시키는 단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90년대 이후 4단계 연구방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왔고 특히, 여성에 대한 생활사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윤택림, 1993; 곽삼근, 1998). 페미니스트 연구방법이 우리나라에서 적극 활용되기 시작한 이후 여성연구나 정책은 변화를 맞기 시작하였다. 여성연구는 모든 단계에서 아직도 더 활발히 진행되어야 하지만 특히 여성연구의 방향을 제시하고 이론을 구축하려는 시도로써 여성의 숨겨져 있던 삶의 경험을 탐구하여 학문세계에 반영하는 작업은 더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한다. 여성의 시각에서 여성의 경험과 학습세계를 밝히는 교육학연구는 더욱 활발히 추진되어야 하며, 페미니스트 연구결과는 성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Ⅲ. 페미니스트 연구방법의 인식론적 틀
어떠한 지식이 과학적 지식이라고 주장될 때, 그러한 주장을 정당화하는 기준이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이론을 인식론이라고 할 수 있다. 남성중심적인 학문세계에서 여성학적 지식과 이론의 과학적 지위와 권위를 관철하기 위해 페미니스트들이 발전시킨 것이 페미니스트 인식론이다.
페미니스트 인식론에 대해서는 상반되는 두 견해가 존재한다. 하나는 주로 정치학 사회학적 관점에서 기존 남성중심 과학 탐구에의 변형을 추구하는 페미니스트 인식론의 필연성을 강조하는 관점이다. 다른 하나는 주로 순수 철학적 관점에서 인식론을 해석하여 인간의 순수 인식론 이외에 페미니스트 인식론 자체로는 정당화의 규범적 이론으로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페미니스트 이론이 인식론적 물음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과는 구별된다. 이는 페미니스트 인식론적 기반은 인식론적 문제를 윤리적, 정치적 물음과 분리시키지 않고 고찰해야만 얻어질 수 있다는 주장과도 상통한다. 여성주의 지식과 과학이 자신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식론을 창출하려는 시도보다는 "과학적 탐구의 담론을 변형시켜야 하고, 인식론적 과제들의 구조에 도전을 해야 하는 것"(Code, 1991: 314)이라는 입장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1. 페미니즘과 인식론적 문제들
산드라 하딩(Harding, 1989: 120)은 페미니스트 이론에서 논의의 초점이 되는 인식론은 지식이론이라고 강조한다. 인식론에서 문제가 되는 인식은 궁극에는 참된 인식이며, 우리가 앎 혹은 지식이라고 부르는 것이 믿음이나 억견과 구별되는 기준이 무엇인가하는 물음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지식론이 된다. 인식론은 어떠한 지식이 대상에 대한 가장 좋은 신념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기준을 정해준다는 의미에서 규범적 주장을 한다고 본다. 인식론은 그러한 기준의 설정과 함께 그 기준을 정당화해야 하며, 인식론의 또 다른 하나의 중요영역은 과학적 인식작용의 탐구이다.
페미니즘이란 사회변화를 위한 정치적 운동으로 볼 때 그 방향은 보다 명백해진다. 하딩이 말하는 과학적 자기이해의 전제가 되는 믿음이란 과학적 지식을 추구한다는 것은 가치중립적이고, 객관적이며, 정념이 개입되지 않고, 이해나 관심이 개입되지 않아야 한다는 믿음과 과학적 규범에 의해 과학적 지식의 탐구가 정치적인 관심이나 이해가 개입되는 것으로부터 보호되어 왔다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과학적 규범이라는 것은 여성주의와 같이 특수한 관심을 가진 정치적 운동의 목표와 사회적 탐구의 수행방법과는 엄격히 분리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러한 과학의 자기이해 또는 과학적 규범을 지지하는 입장을 객관주의라고 칭한다. 과학적 객관주의에 대한 비판은 오래전부터 논쟁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여성주의 과학비판의 핵심적인 주제도 바로 기존의 과학적 규범에 대한 것이었다. 이제까지의 과학적 탐구는 과학의 객관주의적 자기이해에 반하여 남성중심적이고 남성편견적으로 조직되어왔고 수행되어 왔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매우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며 하이폰 여성주의의 종류에 따라 강조점이 다르므로 통일된 연구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페미니즘을 여성주의적이라 할 수 있는가, 여성주의의 대안으로서 제시될 수 있는 하이폰 여성주의적 페미니즘은 가능한가 또 여성주의적인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정교화될 수 있다. 이 물음을 본격적으로 주제화한 하딩의 문제의식에서 세 가지 용어인 방법, 방법론, 인식론을 구별하여 검토해 보자. 연구방법이란 연구가설을 논증하기 위한 증거들을 수집하는 기술을 의미하고, 방법론(methodology)이란 이론의 일반적 구조가 개별과학 속에서 적용되는 특정한 방식에 대한 이론과 분석을 의미한다. 인식론(epistemology)이란 지식에 대한 이론으로서 지식의 본성과 범위, 지식의 전제조건, 기반과 타당성 등에 관심을 둔다. 이상화(1994: 10)는 페미니즘에서의 인식론적 물음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 누가 지식을 생산해내느냐. 누가 지식에 대한 권위를 부여하는가 - 지식과 권력의 상관
관계: "누가 아는가" 인식주체에 관한 물음은 지식생산자에 대한 물음과 함께 고찰되어야 한다.
2) "무엇을 아는가" 인식대상에 관한 물음 - 이는 과학적 지식의 대상을 누가 선택하고 어떠한 가정으로부터 출발하여 어떠한 방법론으로 접근하는가하는 물음과 함께 고찰되어야 한다
3) "어떻게 아는가"하는 물음은 인식주체와 인식대상간에 이루어지는 인식과정과 참된 인식
의 원천에 대한 물음이다. 이 물음은 지식생산 과정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조직되며, 과학적 지식의 권위를 판정하는 기준이 누구에 의하여 결정되는가를 함께 고찰해야 답변될 수 있는 물음이다.
여성주의 연구방향은 새로운 주제 첨가 정도가 아니라 여성주의적 이론과 주장들의 타당성과 진리를 논변할 수 있는 새로운 인식론적 기반의 모색이 요구되는 것이다.
2. 페미니스트 인식론과 연구 지향점
페미니스트 인식론의 대표적인 두 모델로 페미니스트 경험론과 페미니스트 관점이론을 들 수 있다. 페미니스트 경험론은 ‘보다 좋은 이론’, 즉 수준 높은 객관성을 보장해주는 이론이 페미니스트 방법에 의해 획득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스트 관점이론은 주변화 된 집단 혹은 억압받는 집단으로 여성들이 사회와 세계를 더 올바르게 이해하고 알 수 있는 인식적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두 유형의 여성주의 인식론은 기존의 인식론에서는 과학적 지식의 ‘정당화의 맥락’만을 중요시했고, 과학적 ‘발견의 맥락’을 소홀히 해왔다는 점을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과 더불어 여성주의 인식론에서는 과학적 발견의 맥락에서 작용하는 편견들, 즉 남성중심주의, 성차별주의, 성별 이데올로기 등을 밝혀내 보여주었다. 어떠한 방식으로 연구대상이 선택되고 가설들이 세워지는가하는 것을 기술적으로 분석해 내었다. 그러나 여전히 남는 문제는 그러한 가설들이 과학적 지식이라고 인정될 수 있는 합당한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정당화’의 문제이다(Longino, 1989: 205).
경험론은 기존의 과학에 대한 이해와 규범을 인정하면서 출발하고 관점이론은 기존의 과학이해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여성주의적 지식의 정당화전략이 여성주의 경험론이다. 이 이론은 주류지식과 학문을 지배하는 가치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주류지식의 내용이 남류지식인 것을 폭로하면서 기존의 주류지식에서 무시되고 배제되었던 여성에 관계된 이슈들과 주제들을 연구하고 다시 씀으로써 기존하는 지식을 수정, 보완하는 작업에 집중한다.
관점이론에서는 여성주의 지식의 주변적 위상은 지적 권위를 부여하고 행사하는 다수가 남성이며, 지식과 지적 권위의 사회적 배치가 외관상으로는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서로 밀접하게 상호연관 되어 있음을 보여주고자 시도한다. 이 전략을 취하는 페미니스트 인식론은 지식에 대한 이해자체를 문제시하고, 과학적 지식을 그 객관성과 가치중립성을 정당화해야 하는 고정된 산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역동적인 사회적 과정으로 보고자 한다(이상화, 1994: 11).
페미니즘 관점이론에서 보면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생산된 지식이나 기술은 체계적으로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배계급에 속한 남성들의 활동에 의해 생산된 지식은 그 추상성과 비인격성으로 특징 지워질 수 있다. 남성들은 일상적인 삶의 필수적인 것들을 생산해내고 재생산해내는 일로부터 자유로운 위치에 있다는 사실이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반영된다. 반면 여성들은 물질적인 것과 더 많은 상호작용을 하며,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구체적인 일상 속에서 일하고, 돌봄의 형태와 감정적 투자가 요구되는 일을 하고 있다(이상화, 1994: 16). 경험론에서는 인식주체를 어떠한 외적인 요소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지 않는 순수한 주체로 상정하는 반면, 관점주의에서는 이상적인 인식행위자는 외부적 조건이나 주관에 의해 제약을 받지 않는 주체가 아니라 억압의 사회적 체험에 의해 조건지워진 주체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출발점의 차이는 남성과 여성의 교육요구, 학습경험, 그리고 학습결과의 활용 등 교육전반에서 상이한 현상을 초래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페미니스트 인식론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인식론적 공동체 이론이나 비판적 상대주의가 관심을 끌고 있다. 이는 인식주체를 개인에서 공동체로 바꾸는 전략인데 이는 인식론적 개인주의가 빠지게 되는 객관주의와 인식론적 관점주의가 빠지게 되는 상대주의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제시되는 대안으로 볼 수 있다. 인식론적 공동체 이론은 개인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인식주체로서의 개인에 대한 대안으로서 제시된 것이다. 누가 아는가하는 인식론적 물음에 대한 답변이라 할 수 있다.
코드(Code, 1991)는 인식론적 분석은 페미니즘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여성주의들은 인식론적 과제 속에 놓여있는 남성중심주의를 볼 수 있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의 헤게모니가 갖는 정치적 귀결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인식론적 과제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여성억압의 뿌리를 밝히고 그것을 근절하고자하는 실천에 대한 강한 참여의식을 의미하며, 또한 인식론적 문제는 윤리적, 정치적 물음과 엄격히 분리시켜서 고찰할 수 없다. 즉 과학적 탐구가 객관성이나 정확한 예측을 위한 관심을 포기할 필요는 없지만, 생태학적이고 해방적인 과제와 항상 균형을 이룰 필요가 제기된다. 과학적 방법과 방법론은 항상 인간과 자연에 대한 책임감을 우선으로 하고 선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과학자도 그 과학자가 생산해내는 지식의 사회적 정치적인 영향을 생각해본다면, 사회와 전혀 무관한 행위자일 수 없다. 코드는 생태론과 평화운동에의 참여와 더불어 사람들 사이의 협동과 환경과의 조화와 협동을 증진시키고 촉진시키기 위한 전략들을 생산적으로 그리고 비판적으로 정교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모든 과학적 연구와 탐구를 할 것을 강조한다.
특히, 교육학의 영역에서는 올바른 관계의 정립, 즉 인간, 사회, 환경과의 관계정립이 핵심 과제이다. 페미니스트 인식론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공동체 이론과 조화와 협동 지향성은 최근 교육학에서 대두되고 있는 생태여성주의 교육(곽삼근, 2001)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절에서는 페미니스트 이론을 소개하고 다양한 관점을 지닌 페미니즘에 대하여 각각의 연구방법 및 과제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Ⅳ. 페미니스트 이론과 연구방법
1. 전통적 페미니스트 연구방법
페미니즘은 다양하게 그 용어가 번역되었고, 여성해방론, 여성중심주의, 여권주의 여성론, 여성주의 등으로 쓰이고 있다. 페미니즘이란 여러 가지 모습을 지닌 복잡한 개념이다. 쟈가와 스트럴(Jaggar & Struhl, 1978)은 페미니즘을 자유주의적 여성 맑스적 여성주의, 급진적 여성주의, 사회주의적 여성주의의 네 주류로 분류하였고 액커(Acker, 1984)는 맑스주의를 사회주의에 통합시켜 세 관점으로 분류하였다.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은 기회균등, 사회화, 성 역할, 성차별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교육을 논한다. 그들의 전략은 태도 변화와 입법화를 활용하여 사회화 과정을 변화시키는 것을 포함한다. 이에 대한 비판은 개념적 한계와 권력 및 가부장제에 대응하지 못함을 제기한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있어서 성별 분업의 재생산에 대한 학교의 역할을 분석한다. 주요개념은 사회문화적 재생산이고 그 외에 성별 인식과 저항의 개념이 주로 관심 대상이다. 현재까지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교육적 연구 작업은 실천적이기보다는 주로 이론적이다. 이것은 지나친 결정론과 더불어 학교를 토대로 추진한 연구가 불충분하다는 면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교육에서 급진적 페미니즘은 주로 지식과 문화의 남성 독점 및 학교의 일상생활에서의 성 정치학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주요 전략은 여성과 여학생들의 관심을 우선으로 하여 필요하다면 성별 그룹으로 분리하여서라도 우선 여성을 배려하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한 비판론자들은 급진적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환원주의, 설명보다는 묘사 위주, 그리고 방법론적 취약성 등의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이론적 틀은 특정 딜레마에 봉착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구조의 억압적인 권력과 개인의 저항하는 힘 사이에 상대적인 강조를 어디에 둘 것인가. 모든 여성은 동일하다는 보편성과 계급과 인종에 따라 여성은 상이하다는 다양성 사이의 긴장에 관한 딜레마가 존재한다. 전통적인 페미니즘에서의 주요 연구방법은 기회의 불평등을 비교학적으로 밝히고, 지식과 문화의 남성독점 현상을 이론적으로 분석하며, 노동시장에서의 여성 소외 현상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와 같은 연구는 앞서 살펴본 여성연구 여섯 단계 중 주로 셋째 단계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2. 근대 후기 페미니스트 연구방법
페미니즘은 여러 모습을 지니고 있는데, 앞서 살펴본 전통적 페미니즘 이외에 여러 가지 페미니즘 중 여기서는 포스트모던 페미니즘과 에코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매우 복합적이고 함축적 이론적 틀을 제시해주고 있다. 우선 기존의 서구 중심 이론과 실천에 대응하는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게 해주고, 여성성을 긍정적인 가치로 볼 수 있게 인도한다. 여성이란 어디까지나 구성된 범주이므로 여성범주를 구성해내는 사회문화적, 언어적 요소에 주목하도록 해준다. 여성들의 다양한 인식과 경험이 소중한 학습의 소재로 여성에 관한 지식을 형성하는데 기여하고 있고, 그동안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았던 목소리들이 점차 학문세계에 등장하고 있으며, 한가지 틀에서 모든 것을 설명하는 방식은 붕괴되고 다양성을 강조하게 유도하였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지배질서의 유형을 비판하면서 여성적인 것과 타자의 가치를 향상시키고자 한다. 이는 획일성을 거부하고 해체주의적 성향을 지니며 근대성이 지닌 이분법직 사고를 비판한다. 즉. ‘나’를 중심으로 타자를 대상화하고 파악하며 그들을 정복함으로써 세계를 경영하려는 근대성을 비판한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에서는 이 근대성을 곧 남성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지적한다. 이러한 근대성에서 여성은 항상 감성적 존재이며 ‘타자’로서 주변화 대상화되어 왔던 것이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에서는 엘렌 식수스(Helene Cixous), 루스 이리가레이(Luce Irigaray) 등이 대표적 이론가이다.
한편 생태여성주의는 여성과 자연을 분리하고 배제시키는 가부장적 세계관과 사회구조가 근대성의 중심에 엄존 하며, 이것이 자연착취와 여성억압을 낳는 근본원인이라고 파악한다. 생태여성주의(eco-feminism)는 생태학과 여성주의가 만나 생겨난 말이다(Rae, 1994: 23). 근대적 패러다임과는 달리 자연을 모든 생명체를 낳고 부양하는 어머니로 보고 이 상처 입은 어머니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대안적인 삶의 유형을 모색하는 것이기도 하다(마리아 미스 외, 2000).
생태여성주의라는 용어 자체는 지구상에서 인간의 생존을 보장해 줄 생태학적 혁명을 일으킬 만한 여성의 잠재력을 표현하기 위해 1974년 프랑스의 작가 프랑수아 듀봉(Francoise d’Eaubonne, 1980)에 의해 고안되었다. 생태여성주의는 여성과 자연의 연관성에 대한 깨달음에서 나온 것이다. 여성운동이 무르익어 가던 1970년대에, 여성들은 여성에 대해 ‘타자’(the other)로 규정하는 사회문화적 관습과 질서가 자연 역시도 타자화(他者化). 곧 대상화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여성 억압과 자연억압을 ‘쌍둥이 억압’으로 명명하기 시작했다(Merchant, 1992: 185). 이처럼 관심의 지평이 넓어지자. 여성주의자들은 여성차별(sexism)과 자연차별(naturism), 그리고 인종차별(racism)과 계급차별(classism)이 서로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맞물려 있는 복합적인 문제임을 각성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 네 가지 억압의 뿌리에 가부장주의가 놓여 있음을 통찰할 수 있었다. 특히, 가부장주의의 다양한 표현들 중에도 인간의 현실을 이원화하여 한 쪽이 다른 쪽보다 더 높고 우월하다고 보는 위계체제적 이원론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에 근거하여 생태여성주의는 총체적인 생명의 해방을 목표로 삼는다.
카렌 워렌(Karen Warren, 1996)은 생태학적 문제들은 오직 페미니스트 관점을 포함할 때에만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생태여성주의는 결국 여성과 자연의 종속성을 밀접하게 동일시하고, 생태학적, 여성주의적 원리에 따라 사회를 변혁시키도록 요구하는 이론과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주의와 생태운동은 각각 여성과 자연에 대한 지배와 착취를 벗어난 새로운 가치창조와 사회구조를 제안한다는 점에서 평등주의적 관점을 갖는다.
Ⅴ. 교육학에서의 페미니스트 연구방법론
교육학에서 페미니스트 연구방법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법론적 의의를 지니는가. 교육학에서의 페미니스트 연구는 여러 학문 영역 중에서도 비판이나 기존 연구에 대한 파괴정도가 덜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데 교육은 필연적 핵심요소이며 모든 삶의 지혜가 전수되고 학습되는 문화적 현상을 일컫는다.
인간의 삶은 역동적이며 삶의 역동적 측면을 교육학의 입장에서 분류해보면 그것은 한마디로 관계의 학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첫째는 시간적 관계로 누적된 경험의 역사와 현재라는 삶의 상황과의 관계학습이고, 둘째는 공간적 관계로 누적된 자연과 사회 등의 환경과 인간과의 관계학습이며, 셋째는 인간적 관계로 누적된 나와 남 사이의 모든 관계 학습이다. 이러한 관계의 학습을 하는 활동이 곧 인간의 삶의 현상이고 또한 교육현상이다.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볼 때 여러 가지 관계의 학습은 성별간 평등하게 이루어지지 못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관계학습의 평등성을 지향하는 것이 교육학의 과제라면 페미니스트 연구방법은 그동안 성별간 존재하였던 불평등성을 만회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교육실천 영역에서의 페미니스트 연구는 보다 구체적으로 임파워먼트(empowerment)를 통한 억압상황의 종식에 초점을 두고 있다. 즉 페미니스트 교육학의 기본 목적은 여성의 임파워먼트에 있으며, 이는 여성이 겪고 있는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중요한 원천을 제공한다(Tisdell, 1995: 송현주, 2001). 여성의 앎의 방식이 남성과 상이하다는 연구결과(Belenky et al., 1986)를 토대로 하여, 페미니스트 교육은 더 나아가서 여성 각 개인의 능력신장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분리중심의 학습경험’(separateness)이 아닌 새로운 ‘연계중심의 학습경험’(connectedness)을 통하여 지금까지 여성들에게 타자의 세계로만 여겨졌던 현실을 여성들도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세계로 다시 건설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하자면, 여성의 능력 함양과 이러한 능력을 통한 사회의 전환-가부장적 사회에서 성 평등한 사회로의 전환-이 페미니스트 교육학의 핵심이다(Weiler, 1988; Hooks, 1995). 그러므로 페미니스트 교육학은 교육 내에서 성불평등으로 인한 여성의 억압과 종속을 드러내고 양성평등교육을 위한 대안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토대인 것이다.
페미니스트 질적 연구방법을 사용하여 교육현상을 탐구한다는 것은 기존의 질적 연구와 비교하여 정치적이고 가치지향성이 강하다. 교육학에서의 페미니스트 연구는 다음의 몇 가지 기본 방향을 지향한다.
첫째, 교육의 이념 및 실천에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성을 밝혀 준다.
둘째, 남성중심체제의 교육조직에서 여성존재의 소외를 밝혀준다.
셋째, 남성중심의 기준이 아닌 새로운 관점에서 여성학습경험의 독특성을 밝혀주고 묘사한다.
넷째, 여성의 임파워먼트를 강화하는 방향을 모색한다.
다섯째, 생명, 환경, 공동체 지향의 교육과제를 탐구한다.
이상의 공통적인 기본 방향을 기초로 페미니스트의 다양한 관점에 따라 연구의 목적이나 내용은 보다 세분화되고 구체화될 수 있다.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교육학 연구의 가설이 다르므로 연구방법은 기존의 양적인 접근 중심에서 질적인 접근으로 이행할 수밖에 없다.
성별차를 고려하는 페미니스트 연구는 그 연구목적이 해석학적 접근과 보다 근접하다고 하겠다. 에릭슨(Erickson, 1986)은 해석학적 접근을 일련의 연구 방법 즉, 민속학적 연구, 질적 연구, 사례연구, 상징적 상호주의 연구, 현상학적 연구 및 문화형성주의 연구 등을 총괄하여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이 전통의 연구는 실험연구에서 밝히지 못했던 특정 참여자의 구체적인 의미와 연계 관계를 탐색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 그러므로 그동안 긍정적인 측면에서 밝혀지지 못했던 여성의 경험을 탐색하는 연구는 여성들의 용어를 그대로 묘사하고 그들의 의미를 해석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질적 연구에 있어서는 자료분석 및 연구에 있어 연구자와 연구 대상자간의 상호작용이 강조되어야 하므로 인식의 해석, 풍부하고 깊이 있는 묘사 등을 추구하기 위하여 연구자는 연구 대상자와의 접촉과정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자료분석과정은 연구자 자신의 민감성과 분석적 기술에 의존하며, 개인적 메모, 비형식적인 대화들, 인터뷰 직후의 느낌들, 그리고 여러 순간에 얻은 통찰 등은 실제의 다른 자료들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게 된다. 이러한 접근은 기존의 조사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개방적인 인터뷰에 의거하여 자료를 수집하며, 문서분석, 대화 및 관찰을 통하여 자료를 수집함과 동시에 연구의 시작 단계부터 끝마무리 단계까지 계속적인 자료 분석을 병행하는 분석방법(on-going data analysis)을 사용하게 된다.
자료 분석의 결과를 제시 할 때에도 페미니스트 연구는 가치 지향적이며 사회 의식적이므로 주체를 강조한다. 즉, 연구자는 기존의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연구대상자의 경험을 학문세계에 노출한다는 의도로 가급적 인터뷰 대상자들의 응답에서 나타난 용어를 결과 제시에 직접 사용하기도 한다. 연구자의 위치 역시 객체적 입장이 아닌 주체로서 ‘본 연구자’ (the researcher)라는 삼인칭 용어가 아닌 ‘나’ (I)라는 용어를. 또 수동적 문장보다는 능동적 문장을 사용하는 것이 또 하나의 특징이다.
Ⅵ. 맺는 말
페미니즘은 매우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학에서의 페미니스트 연구방법은 일정한 특성을 지닌다. 페미니스트 이론의 기틀은 무엇보다도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 문제를 언급한다. 그 종속은 어떻게 발생되었으며, 어떻게 또 왜 영속하게 되는가, 그것은 어떻게 해야 변화 할 수 있으며, 언젠가 남성에의 종속이 끝나는 날이 온다면 그때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를 탐구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다양한 유형으로 전개됨에 따라 여성의 권리와 존재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과거 1970년대까지 전통적인 페미니스트들이 강조하였던 남녀간의 평등을 지향하자는 운동은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남녀간의 차이를 긍정하는 새로운 움직임으로 전환되었다. ‘여성적인 것에 가치를 부여하자’는 새로운 페미니즘의 가치 속에는 남성적 주류의 담론 속에 여성을 동화시키기보다 여성적인 지식과 존재. 가치평가 등의 영역을 중시하자는 주장이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연구방법의 혁신적인 전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페미니스트 질적 연구방법이 부각되고, 그동안 숨겨져 있었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표현되는 다양한 기법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페미니스트 이론은 두 가지 목적을 갖는다. 하나는 성별 불평등을 이해하는 지침으로 또 하나는 행동을 위한 지침으로 이중의 목표를 갖는다. 어떻게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사회변화를 달성케 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는 관점 간에 논쟁의 여지가 많다. 이 연구는 페미니스트 연구방법의 필연성과 그 인식론적 기초를 고찰해본 후 교육학에서의 페미니스트 방법의 방향성을 논의하였다. 구체적인 연구내용과 방법은 어떠한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연구를 추진하는가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자유주의 여성주의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추구하므로 평등에 역행하는 문제를 분석한다. 그러나 마르크스 여성주의는 자유주의자들의 ‘평등’ 개념이 사실상 계급구조화된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주의 관점은 그러한 평등이 생산 및 재생산 수단의 사회적 소유관계의 변혁없이는 성취될 수가 없다고 보며 제도개혁에 관심을 둔다. 급진주의 여성주의는 좀 더 근본적인 여성 억압의 문제로 들어가서 지식과 문화의 남성 독점양상과 성 정치학의 문제를 지적하며, 남성의 지배와 폭력을 지탱해 주는 문화적·의식적 구조를 보도록 촉구한다. 이러한 이분법적 양상에 문제를 제기하며 다양성과 차이를 부각시키는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관점과 시각의 다양화에 기여하였다. 최근 지구환경의 위기에 직면하여 생태여성주의는 성별과 계급, 그리고 인종을 초월한 새로운 관심사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까지 교육학적 연구영역에는 큰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다.
일반적인 질적 연구와 비교하여 페미니스트 질적 연구는 정치적이고 가치지향성이 강하다. 교육학에서의 페미니스트 연구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성, 교육조직에서의 여성소외, 여성학습경험의 독특성 등을 밝혀주고, 여성의 임파워먼트, 공동체 형성 지향의 교육과제를 탐구해야하는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공동체 형성과 함께 생태계와 환경 및 평화를 주요 주제로 연구해야할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인식주체를 개인에서 공동체로 바꾸는 전략을 이제는 교육학에서 인간개인을 생태계의 공동체에 대한 관심으로 변혁시키는 방안을 강구하여야 한다. 페미니스트 교육학의 주요 목표인 여성 임파워먼트의 성취를 통하여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지향하려는 연구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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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주
1) 이 연구는 2001년 한국교육인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을 수정 보완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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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사항
곽삼근
(Kwak, Sam-Geun)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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