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사유..!/논문 자료들.

[펌] 근대사변철학 비판에 대한 고찰

온울에 2008. 5. 6. 22:18

목 차

I. 머리말
II. 근대철학의 정립과 그 성격-철학과 자연과학의 결합에 의한 자연의 복권
1. 베이컨과 질적 자연관
2. 홉스와 기계론적 자연관
III. 근대철학의 사변철학적 단초와 그 전개과정-자연과 정신의 분리와 매개, 통일의 과정
1. 데카르트의 이원론-정신과 물질의 분리
2. 스피노자의 범신론-정신과 물질의 매개
3. 라이프니쯔의 단자(Monade)론-자기활동성의 원리
IV.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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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자명 全南大學校 人文科學硏究所 
학술지명 龍鳳論叢 
권 19 
호 1 
출판일 1990.  

 

 

 

포이에르바하의 "근대사변철학"비판에 대한 고찰(I)
("새로운 철학"의 형성과정을 중심으로)


Feuerbach's Critigue of Modern Speculatire philosophy I.


백금서
(Paik, Kum-Seo)
전남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 강사
2-241-9001-03
pp.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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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머리말
본 논문 1) 에서는 포이에르바하의 「근대철학사 : 베이컨에서 스피노자까지」 (1833) 2) 와 「라이프니쯔의 철학의 서술과 발전과 비판」 (1837) 3) 을 중심으로 근대철학사에 대한 포이에르바하의 입장과 비판을 고찰하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포이에르바하는 근대철학에 대한 고찰과 비판을 통하여 그의 "새로운 철학"을 형성하기 위한 원리를 찾는다. 이러한 포이에르바하의 시도는 헤겔철학에 대한 비판에서 완성된다. 결국 그는 헤겔의 "사변철학"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그의 "새로운 철학", 즉 인간학적 유물론의 입장을 정립하는 것이다. 이런 연관에서 포이에르바하는 자신의 "새로운 철학"을 근대사변철학에 대한 부정과 실현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바로 근대철학 속에 "새로운 철학"의 싹이 감추어져 있고 따라서 그 핵심적 내용을 끌어냄으로써 "새로운 철학"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는 이와 같은 "새로운 철학"의 입장에서 근대철학전체를 재조명한 다음, 새로운 시대와 인류의 욕구에 상응하는 "새로운 철학"의 입장이 유물론, 실재론이라는 데 의거하여 근대철학에 있어서 "합리화된 신학" 4) 이라는 외피로 감추어져 있는 유물론적인 내용을 도출해낸다. 5)

물론 포이에르바하가 철학사에서 몰두한 이유는 요들(Jodl)도 지적하고 있듯이 대학의 교수직을 얻으려는 노력 이외에 근본적으로는 헤겔의 영향 때문이다. 6) 헤겔은 1818년 이래 베를린 대학에서 철학사를 강의했고 포이에르바하는 헤겔의 많은 제자들 처럼 철학사를 강조하는 스승의 영향을 받았다. 7) 따라서 그는 헤겔과 마찬가지로 철학사를 변증법적인 발전으로 서술하였고 각 철학자의 체계를 정신의 자기의식화의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필연적인 계기로 보았다. 그러나 이때에도 그는 헤겔철학의 부조건적인 신봉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근대철학자」나 「라이프니쯔」는 비록 헤겔의 영향 하에 '합리적 관념론' 8) 의 입장에서 서술되나 그 속에는 그의 독창적인 후기 사상의 싹이 내포되어 있다. 9) 더구나 「근대철학사」「라이프니쯔」는 1847년에 부분적으로 개정되었는데 각주나 후기의 형식을 통해 그는 후기의 '새로운 철학'의 유물론적 관점에 서서 초기의 그의 관념론적 입장에 대한 비판적, 아니 정반대의 태도를 표명하고 있다. 이 점에서 철학사에 대한 저술 속에는 모순된 두 입장이 공존하고 있다고 까지 말할 수 있다. 10) 그러나 이와 같이 모순된 입장이 공존함에도 불구하고 포이에르바하는 기본적으로 근대철학의 출발을 자연의 복권으로 보고 이와 같이 복권된 자연이 정신과 분리, 매개, 통일되는 과정을 근대철학의 변증법적 전개과정으로 본다. 이때 변증법적이라 함은 긍정 속에 부정이 부정 속에 긍정이 깃들여 있다는 헤겔의 부정의 부정 범주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포이에르바하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근대철학의 전개과정은 필연적으로 근대철학의 부정을 통해 실현되는 "새로운 철학"의 원리가 형성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포이에르바하의 입장에 대한 고찰이 본 논문의 목표이다. 물론 근대사변철학에 대한 포이에르바하의 비판은 피에르 바이에(Pierre Bayle)에 대한 고찰 11) 과 헤겔철학에 대한 비판 12) 을 통하여 완성되며 이는 별도의 고찰을 요하므로, 본 논문은 포이에르바하의 근대철학비판 중 1부에 해당한다.

II. 근대철학의 정립과 그 성격-철학과 자연과학의 결합에 의한 자연의 복권
1. 베이컨과 질적 자연관
포이에르바하는 「근대철학사」의 서론에서 자연이 고대철학에서 처럼 주요한 철학의 탐구대상으로 다시 설정되고 그 자립성이 복권된 것이야말로 근대철학의 출발이라고 주장한다.(GNP, III,19 참조) 그리고 이와 같은 출발이 근대에 가능했던 것은 중세신학의 시녀로 전락했던 철학이 새로운 방법으로 자연탐구에 몰두하던 근대 자연철학자들과 즉 자연과학자들과 결합함으로써 신학을 부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포이에르바하에 의하면, 근대철학의 출발점은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자연철학자들에게 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13) 이들은 여전히 신비적인 방식으로 자연에 접근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근대철학의 출발점으로 볼 수 없다. 중세에서 처럼 자연의 신의 피조물인 비본질적인 것으로 여겨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인식하는 방법적 원리로서 감각적 경험을 정립한 베이컨이야말로 근대철학과 근대자연과학의 진정한 출발점을 이룩한 아버지라고 포이에르바하는 주장한다. 14) 즉 포이에르바하에 의하면, 근대철학의 정립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성격은 철학과 자연과학의 결합에 의한 신학의 부정이고, 이와 같은 신학의 부정은 자연의 자립성에 대한 복권과 자연탐구 방법의 확립을 의미한다.

베이컨에 있어서 경험은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방법으로서 스콜라철학에서의 경험과 다른 의미를 갖는다. 즉 스콜라철학에서는 경험이 단지 특수자에서 특수자로만 나아가는 무한한 분류, 특수화과정인데 반해서 베이컨에 있어서 경험은 특수자로부터 보편자의 획득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포이에르바하는 이와 같은 귀납적 절차에 의해 획득된 베이컨의 보편자는 자연 밖에 있는 추상적인 공허한 이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자연에 내재적인 이념, 보편자로 본다. 따라서 베이컨은 특수자에 대한 감각적 지각으로부터 출발하는 경험에 의해 다수성에서 단순성으로, 다양성에서 통일로 나아가 참된 특수자에 대한 인식을 확보함으로써 보편자에 대한 인식에 도달될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베이컨은 "따뜻함의 개념, 이념, 유(類)는 운동이다. 그러나 운동을 따뜻함으로 만드는 규정 혹은 차이는 그것이 여타의 운동과 달 리 팽창하는 운동이"라는 예를 들어 이념이 사물의 특수한 규정과 어떤 연관관계를 맺는 지를 보여준다. (Nov.Org.1.c.a.20참고 / GNP,III,s. 52-3 재인용) 그래서 베이컨은 경험을 "인식의 유일한 원천으로서 사유와 감각적 지각의 가장 내적인 결합"(Nov.Org. 1.A.95. / GNP, III,s.34-5 재인용)이라고 규정한다. 포이에르바하는 이와 같이 베이컨에 있어서 자연과학은 경험적 방법을 통해 자연의 현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현상의 원인 및 그 원인을 탐구해냄으로써 자연 전체에 대한 철학적 개관을 가능케한다는 이유로 베이컨의 경험개념을 극찬한다.

더구나 포이에르바하는 베이컨이 강조한 경험에서 사용되는 실험이나 도구가 자연을 인간 및 그의 감각과의 직접적 관계나 영향에서 부터가 아니라 그 자체의 관계로부터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본다. 즉, 예컨대, 내가 뜨거운 손을 미지근한 물에 넣었을 때 나의 느낌은 물이 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의 눈은 온도계에 의거하여 그 반대를 가르친다. 즉 물의 온도에 대한 나의 판단은 이제 물이 수온에 가한 작용에 의거하므로 객관적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포이에르바하는 베이컨에 있어서 이렇게 경험이 강조된 이유를 그가 자연을 수학적 사변적이 아니라 감각적 물리적인 측면에서 접근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베이컨은 자연의 사물을 현실적으로 즉, 특수하고 질(質)적인 존재에 있어서 파악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질(質)은 자연의 일차적 형식"(GNP,III,38)이라고 보고 최초의 물질조차 운동 및 질과 결합되어 생각되어야 한다고 본다. 포이에르바하는 이것이 베이컨의 자연관의 특징이라고 보고 "베이컨을 규정하고 지배하는 정신은 질(質, Qualit t)의 정신이다."고 말한다.(GNP,III,38) 그런데 포이에르바하에 따르면 자연에서의 질(質)은 감각적 지각, 즉 경험의 대상이고 간접적으로만 사유의 대상일 뿐이므로, 베이컨이 경험을 강조하고 수학을 물리학의 하위에 위치지운 것은 당연하다. 15) 포이에르바하는 베이컨의 이러한 입장을 자연에 있어서 양(양 : Quantit t, Gr sse)을 강조하고 수학을 중시하는 홉스나 데카르트와 구별지운다. 베이컨 자신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학의 대상인 양(量, Quantit t)은 소위 물질에 적용되어 자연의 한 구성부분을 이루며 심지어 대부분의 자연과정에서 인과적인 구성부분이다. 양은 본질적 형식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물론 양은 자연의 모든 형식들 중에서 가장 추상적이고 물질로부터 가장 쉽게 분리되는 것이다. 이것이 양보다 더 밀접하게 물질과 결합되어 있는 다른 형식들보다 양이 사람들에 의해 보다 열심히 강조되고 보다 주도면밀하게 탐구되는 이유이다. 본래는 물리학에 봉사해야하는 수학이나 논리학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인식의 명증성에 압도된 나머지 오히려 통치권을 요구하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De Augemtis Scientiarum, III,c.6 / GNP,III,38 재인용)

요컨대 포이에르바하에 따르면, 베이컨은 여기서 물리학적이고 질적인 경험론과 수학적 추상적인 경험론을 대립시키고 전자가 자연의 현실적 파악을 가능케 한다고 보는 것이다. 포이에르바하 자신도 질적 경험론의 입장에 서는 베이컨을 지지하는데 그 이유는 그를 통해 자연에 대한 실제적 진리, 철학적 인식을 얻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16) 여기서 우리는 이미 포이에르바하의 후기 입장의 싹이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포이에르바하는 그의 "새로운 철학"에 있어서 자연에 있어서 질을 강조하고 자연은 우리에게 감각경험을 통해 현실적으로 주어진다는 것을 주장한다. 또한 이런 맥락에서 포이에르바하는 베이컨에 있어서 자연은 감각적 자연이지만 동시에 실재적 자연임을 강조한다. 즉, "자연은 물리적, 감각적, 물질적 존재이다."(GNP,III,73) 더욱이 이 대목에 대한 1847년의 각주에서 그는 베이컨 이래로 눈과 감각으로 느껴지는 자연은 추상물이 아니라 실존을 갖는 것임을 언표했다고 주장했다. 17) 여기서 또한 포이에르바하의 후기의 유물론적인 입장의 싹이 드러난다고 하겠다.

2. 홉스와 기계론적 자연관
포이에르바하는 베이컨에 반해 홉스의 경험론 혹은 유물론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다. 18) 그 비판의 핵심은 홉스의 철학은 공허한 정신이 지배하는 기계론적 철학이라는 것이다. 즉, 홉스의 기계론이 해당되는 영역은 특정 대상, 즉 운동하는 물체인데 이를 홉스는 모든 영역에 확대 적용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홉스에 있어서는 정신의 활동도 단지 기계적 계산 조작에 불과하다. 또한 자연도 살아있는 질적 자연이 아니라 죽은 양적 대상으로서 다루어진다. 그래서 포이에르바하는 이런 홉스의 입장을 추상적 유물론 19) 이라고 규정한다. 즉, "홉스는 전적으로 추상적 유물론자다. 즉 그의 철학을 지배하는 개념은 단순한 물질(Materie), 단순한 물체(K rper)의 개념이다. 혹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본질적 규정이 단지 양(量)인 바, 추상적이고 수학적인 물체의 개념이다. 이런 순전히 사유에 투철한 물체가 그의 철학에서 실체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순수하고 추상적인 물체는 모든 감각적 우연, 즉 모든 질(質)의 관념적 부정이다.(GNP,III,80)

요컨대 포이에르바하에 따르면, 홉스는 자연에 대한 추상적 파악을 한다. 그는 자연을 수학적으로 계산가능한 양(量) 혹은 크기를 지닌 물체로 환원시킴으로써 물체를 무차별한 것으로 만든다. 물론 홉스는 이런 물체의 무차별성을 지양하기 위해 운동을 도입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물체의 모든 운동은 다른 물체에 의해 기계적으로 야기될 뿐 자체 속에 어떤 근거도 갖지 않으므로, 모든 운동은 조건적이며 상대적이다. 따라서 운동의 원리와 시초는 단순한 물체로서 자연 자체 내에 있을 수 없고 사유하는 자에 의해 자연에 도입되는 것이다. 결국 홉스에게 있어서 "운동은 자연에 내재적인 것이 아니다."(GNP,III,89)

포이에르바하는 홉스의 한계를 1) 물체와 운동 양자가 다 추상적 사유의 구성물이다. 2) 자연에 있어서 운동의 필연성을 인식했지만 운동을 외적으로만 물질과 결합시키고 운동을 물질에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지 못했다. 3) 특수한 기계적인 수학적으로만 규정될 수 있는 운동을 일반적 원리로 고양시켰다고 지적하고 그 결과 "생명체, 질을 가진 자연, 물리적 자연에 대한 참된 직관은 발생할 수 없다." (GNP,III,90)고 비판한다. 20)

그리고 그는 홉스에 있어서 사유도 자기원인을 갖지 못하고 기계적 원인들의 무한복귀로 사라진다고 비판한다. 즉 홉스는 "정신이란 다름아닌 유기적 물체의 일정부분에서의 운동일 뿐이다."(GNP,III,79)고 규정하는데, 이는 정신의 모든 인식과 개념은 감각의 표상과 현상에서 발생하며 감각은 기관과 그에 작용을 가하는 대상사이의 운동과 작용일 뿐이고 이때 작용을 가하는 운동도 또 다른 제약된 것의 운동이므로 결국 이런 운동은 무한히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이에르바하는 이런 점에서 홉스의 유물론을 정신의 공허화와 소외(Entlerrung und Ent usserung des Geistes)(GNP,III,70)라고 비판한다. 21)

III. 근대철학의 사변철학적 단초와 그 전개과정-자연과 정신의 분리와 매개, 통일의 과정
1. 데카르트의 이원론-정신과 물질의 분리
앞에서 고찰했듯이, 포이에르바하는 감각적 자연의 자립성을 부인하는 중세철학의 지배적 경향에 대항하여 경험의 원리에 의거하여 그 자립성을 복권시킨 베이컨을 근대철학의 직접적이고도 진정한 출발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자연의 자립성을 확립하는 방법은 경험의 원리 외에도 정신의 원리가 있다. 데카르트가 보여주고 있듯이, 정신의 독자성과 자립성에 대한 자각은 필연적으로 자연의 자립성에 대한 승인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이에르바하는 데카르트도 베이컨과 마찬가지로 근대철학의 출발을 이루었지만((GNP,III,21-22 참조), 경험의 원리가 자연을 직접적으로 복권시키는 데 비해서 정신의 원리는 간접적으로 복권시킨다는 점에서 간접적인 출발을 이루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는 이와 같은 출발의 간접적 성격에서 즉 정신과 자연과의 관계에서 근대사변철학의 단초22) 와 그 전개를 보고있기 때문에, 사변철학의 부정을 통해 실현되는 "새로운 철학"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사변철학적 단초와 그 전개과정을 보다 상세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정신과 사유를 물체의 기계적 운동형식으로 환원하고 마는 홉스와는 달리, 정신의 독자적 자립성(즉 실체)을 주장하는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를 통해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를 철학의 제일원리, 즉 출발로 삼는다. 그리고 이 출발의 의미는 그 문장형식에도 불구하고 "생각"(즉 사유)와 "나"와 "존재"의 동일성이라고 데카르트는 주장한다. 그러나 포이에르바하가 보기에 이 명제의 진정한 의미는 다음과 같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의 의미는 내가 나를 물체 및 물질적인 것과 구별하는 것일 따름이다. 그리고 나는 그 때문에 또한 그 점에서 구별되어 있다. 내가 나를 구별하는 것이 바로 나의 구별이다…… 내가 구별되지 않는다면, 나는 나를 구별할 수 없다. 내가 구별되어 있음의 증명은 내가 구별한다는 것이다. 이런 나의 구별이 나의 의식, 나 자신의 확실성, 나의 자아, 나 자신의 직접적 긍정으로서 모든 물체적이고 물질적인 것의 부정이며 내가 나자신이라는 것, 물체가 아니라는 무제한적 확실성이다. 정신이, 마치 비물질성이 독자적으로 술어인 것 처럼 혹은 보편적으로 술어인 것 처럼, 비물질적이고 생각한다는 것이 아니다. 또한 정신은 비물질적이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생각하므로 그리고 생각하는 한 비물질적이다."(GNP,III,206-7)

즉 데카르트에 있어서 "생각"은 방법적 회의를 통해 철학의 출발로 정립된 것이지만, "회의" 없이 "생각"이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생각"은 "회의"인 것이다. 그리고 "회의"는 일차적으로 감각적 대상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기 때문에 "생각"역시 비감각적인 것, 비물질적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비물질적인 "생각"(=사유활동=의식활동)을 자립화시킨 것으로서 정신이라는 실체를 뜻한다. 그러므로 "존재" 역시 비물질적 존재를 의미하게 된다. 따라서 데카르트의 정신은 실체로서 신을 사유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신학의 부정이나, 감각적 자연의 부정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신학의 입장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포이에르바하는 이 점을 신학의 입장에서 선 신학의 부정이라는 사변철학의 단초로 본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감각을 통해 파악되는 자연은 부정하나 오성(사유)를 통해 파악되는 자연, 즉 추상적, 기하학적, 양적인 자연(혹은 연장성(延長性)을 본질로 삼는 자연)은 실체로서 인정한다.(Meditation II. / GNP,III,223 참고)이 점에서 데카르트 역시 근대철학의 출발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정신과 날카롭게 대립되는 자연은 근본적으로 홉스적 자연관과 동일한 한계를 갖는 것이라고 포이에르바하는 비판한다. 그리고 포이에르바하가 보기에 데카르트가 이런 자연관에 빠지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사유의 생리학적 근거와 물질에 대한 무지에 기인하고, 그 결과 데카르트는 사유의 자립화로 나아가 추상화된 자연과 나란히 정신을 실체로 만든다는 것이다.

2. 스피노자의 범신론-정신과 물질의 매개
스피노자에 의하면, 실체는 그 개념상 하나이고 따라서 실재와 본질과 실존이 전적으로 일치하기 때문에 실체는 신이자 자연이다. 포이에르바하가 보기에는, 이와 같은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가장 탁월한 점은 종교의 대상과 철학의 대상을 구별한 점이다. 즉, 스피노자는 종교의 대상은 신의 도덕적인 인간적 본질인데 비해서 철학의 대상은 신의 자연적인 본질 즉 비인격적인 본질이라고 보는데, 이때 철학적 신은 포이에르바하가 보기에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인간적 속성은 없고 정의로움과 자비로움이 없고 눈과 귀도 없는 이런 신은, 인간을 고려치 않고 작용하는 신은, 종교가 유일하게 주목하는 인간의 복지가 아니라 자연의 전체에 관한 법칙에만 따라 작용하고 자신의 본질의 필연성에 따라서만 작용하는 그런 철학적 신은 누구인가? 그는 다음아닌 자연이다"(GNP,III.s.376)

물론 스피노자도 "통상 사람들은 신의 위력과 자연적 사물의 위력을 두개의 서로 구별되는 위력이라고 표상한다. 그러나 자연의 힘과 위력 만이 신 자신의 힘과 위력이다."(Tract, Theol-Pol. Cap.6,GNP,III,376 재인용)고 말한다. 또한 "우리의 신의 위력을 우리가 자연적 원인을 아는 정도까지만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한 자연적 원인 즉 신의 위력을 알지 못할 때, 신의 위력에 도피처를 구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다."(Tract. Theol-pol, Cap. 1, GNP,III,376 재인용)고 말한다. 이렇게 볼 때 포이에르바하가 스피노자의 실체를 유물론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스피노자에 있어서 신과 실체, 자연은 동일한 것으로 인식되며 실체는 유일한 현실이므로 결국 그는 자연을 현실 전체로 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23)

그러나 포이에르바하는 스피노자의 자연이 감각적인 것으로서의 대상이 아니라 비감각적인, 추상적, 형이상학적 본질로서의 대상임을 비판한다. 즉 스피노자에 있어서 자연의 본질은 오성의 본질일 따름이며 이때 오성은 감각과 대립된 오성이고, 물체실체는 연장성으로 환원된다는 것이다.

1847년 후기에서 포이에르바하는 스피노자에 있어서 실체의 통일에 의해 일원론이 완성된 것 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이원론적 요소가 남아있다고 비판한다. 스피노자철학의 비밀은 자연이며 스피노자는 자연 속에서 신을 지양한다. 그러나 그는 재차 자연을 신 속으로 지양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 포이에르바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스피노자는 신과 자연의 이원론을 폐기한다. 자연의 작용은 기적이 아니라 신의 작용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신이 자연과 구별된 본질로서 근저에 놓여있고 그래서 신은 주어의 의미를, 자연은 술어의 의미를 갖고 있다. 기독교철학자와 신학자는 스피노자를 무신론자라고 비난한다. 정당하다. 친절함, 평화, 정의, 초자연성, 요약컨대 신의 인간성의 지양은 신 자체의 지양이다. 어떤 기적도 행하지 못하는 신, 자연적 작용과 구별되는 작용을 야기시키지 못하는 신, 자연과 구별되는 본질로 입증되지 않은 신은 사실상 신이 아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무신론자이길 원치 않았고 또한 그의 관점에서는 무신론자일 수 없었고 그의 시대에는 그렇지 못했다. 따라서 스피노자는 신의 부정을 신의 긍정으로 자연의 본질을 신의 본질로 만들었다. 너는 왜 자연주의자로서 여전히 유신론자이고 유신론자로서 동시에 자연주의자이길 원하는가? 이런 모순과 순을 떼라! "자연 뿐 아니라 신도 또한"이 아니라 "신 혹은 자연 둘 중의 하나"가 진리의 표어다. 신이 자연과 혹은 역으로 신과 동일시되는 곳에서는 신도 자연도 없고 신비적인 잡종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스피노자의 근본 한계다."(GNP,III,383)

결국 포이에르바하에 따르면 스피노자의 일원론은 초월적인 신의 표상을 자연의 합법칙성의 이념을 통해 추방시킨다는 점에서 유물론적인 요소를 포함하나 24) 동시에 여전히 신이라는 관념을 유지시킴으로서 관념론의 지반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25) 다시 말해서 "스피노자의 철학은 데카르트 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긴 했지만 여전히 신학의 관점에 선 신학의 부정"(GNP,III,346)이라는 사변철학적 도상 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 26)

3. 라이프니쯔의 단자(Monade)론-자기활동성의 원리
포이에르바하는 라이프니쯔를 「근대철학사」에서 취급하지 않고 별도로 단행본으로 취급할 정도로 중요하게 다루는데, 그 이유는 라이프니쯔 철학에 "새로운 철학"의 원리가 풍부하게 들어있기 때문이다. 27) 따라서 여기에서는 "새로운 철학"과의 연관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물질과 감각개념 28) 을 중심으로 라이프니쯔철학의 사변철학적 성격을 살펴보고자 한다. 29)

라이프니쯔는 모나드(monade)론에 의거하여 데카르트가 1) 실체를 정신과 물체로 이원론적으로 파악하고 2) 물체를 연장체로 보고 운동의 근거를 물체 밖에서 찾는 것을 비판한다. 즉, 실체는 그 개념상 단순하기 때문에 정신과 물체를 별개의 실체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Leibniz,IV,39-40 참고) 30) 그러나 이 단순성을 스피노자와 같이 무한한 유일성으로만 파악하면 이와 같은 무한성에서는 유한자가 도출될 수 없기 때문에 단순실체의 다수성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31) 그리고 실체의 단순성과 다수성을 아울러 인정하기 위해서는 실체를 자기활동적 힘으로 보아야 한다고 라이프니쯔는 주장한다. 따라서 실체로서 물체 역시 연장을 근본속성으로 갖는 것이 아니라 자기활동적 힘이기 때문에 운동은 물체와 분리되어 외적인 것처럼 파악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기활동성"(Selbstt tigkeit)(Leibniz,IV,29) 개념은 독일관념론에서의 주체의 활동적 측면을 선취하는 점이다. 32)

그러나 포이에르바하는 라이프니쯔의 단자론에는 관념론에의 길과 아울러 "새로운 철학"에의 길이 예비되어 있음을 주목한다. 즉 라이프니쯔에 있어서 단자의 자기활동성은 표상을 의미하는 데, 표상(Vorstellung)은 필연적으로 표상되는 대상을 전제한다. 이 대상이 다른 단자들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필연적으로 다른 단자를 전제한다는 점이 단자가 원자와 다른 점이다. 원자는 다른 원자와 우연적으로만 관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전제되는 것은 전제하는 것을 제한한다. 전제되는 대상이 무수하게 많은 때 제한의 정도는 더욱 심해진다. 따라서 단자는 단번에 우주전체를 표상할 수 없으며 부분적으로 연이어서 무수한 다수성의 상(Bild)으로 표상한다. 이때 단번에 표상하는 것이 정신이고 "혼란된 표상들의 혼합물이 다름아닌 감각들이며 다름아닌 물질이다."(Leibniz,IV,58) 33)

라이프니쯔는 이 혼란된 표상은 자발성에 근거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것이 그 속에 있다는 점에서 "혼란 혹은 수난(당함, Leiden)"이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Leibniz, IV, 58)즉 물질은 자유로운 자기활동이 한계에 부딪칠 때, 혼란된 표상이 등장할 때 지각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포이에르바하는 인간의 경우를 예를 들어 설명하는데 그 속에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후기의 입장의 싹을 보이고 있다.

"인간에 있어서 다른 인간의 직관은 그 자신의 한계의 직관이다. 타자들을 봄으로써 비로소 그는 그가 유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 인간들 중의 하나이며 유한하고 제약하는 표상이며 고통스런 표상이다. 물론 (엄격한 철학적 의미에서) 다른 본질, 즉 타아(Alter Ego)에 대한 표상은 외적 사물에 대한 표상처럼 나와 무관하게 아무래도 좋은 표상이 아니다. 이 표상은 오히려 최고로…고통스런 성격을 지닌 표상이다… 그리고 그런 격렬한 생동적인 고통을 느끼는 표상은 다른 단자들에 대한 표상으로서의 물질이다. 따라서 물질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최초의 형이상학적 규정은 물질이 내 밖에서 나와 독립하여 실존하고 있는 본질에 대한 표상과 직관이라는 것이다……. 내가 다른 인간을 모름지기 나에게 다른 사람들로만 표상한다면 나는 유물론적인 인간관을 가질 뿐이다. 즉 나는 만인은 만인과 투쟁한다는 홉스의 자연권의 입장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내가 타자를 타자로서가 아니라 나의 본질의 본질로서 나의 다른 자아로서 고찰할 때 비로소 나는 정신적인 인간관을 갖게 된다."(Leibniz,IV,60-1)

라비도비쯔(Rawidowicz)는 여기서 타자의 원리가 등장했다고 본다. 즉 라이프니쯔에 있어서 외부세계의 현존은 감각의 원리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34)

그런데 라이프니쯔에 따르면, 물질은 단자들의 집합이나 단자들의 상이므로 본질이 아니다. 그러나 포이에르바하는 라이프니쯔에 있어서 표상이 비실재성의 표현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한다. 즉 "상식은 관념적인 표상을 실재적인 물질에 직접 대립시키고 표상을 생명이 없는 상(Bild) 그림자로, 물질을 현실적인 것으로 이해하므로, 물질을 표상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상식에 대한 모독처럼 보인다. 그러나 라이프니쯔철학에서 표상은 모든 실재의 유일한 원천이자 근거인 단자의 본질이며 힘이며 생명을 이룬다"(Leibniz,IV,63-4)

또한 포이에르바하는 라이프니쯔에 있어서 물질의 참된 개념이 단순히 돌덩이나 통나무가 아니라 "동물, 인간 속에서 감성, 충동, 욕구, 정열(Leidenschaft)로, 부자유와 혼란으로 실 존"(Leibniz,IV, 64)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와 같은 라이프니쯔의 물질개념이 나중에 포이에르바하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용되어 "새로운 철학"에서도 물질은 바로 인간의 신체적 욕구, 감성을 매개로 해서 설명된다.

이와 관련하여 포이에르바하는 라이프니쯔철학을 파악하는 데 단자에 있어서 이 수동과 능동의 결합의 문제가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본다. 즉 라이프니쯔에 있어서 단자는 능동적 자발성을 가진 것으로서 모든 것을 자신의 고유한 능력으로부터 끌어내야하며 그 내적 규정성을 타자에 의해 방해받을 수 없다. 따라서 단자는 모든 외적인 것의 표상을 자체 내에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단자는 수많은 단자 중의 하나이므로 방해받지는 않지만 특정한 길을 가도록 제약된다. 이와 같은 점에서 수동성은 능동성과 결합되어 있지만, 라이프니쯔는 이와 같은 결합을 신에 의한 예정조화를 끌어 들여 사변철학적으로 해결해 버린다. 35) 그러나 포이에르바하는 이와 같은 사변철학적 해결에 숨어 있는 유물론적 핵심을 파악하여 "새로운 철학"에서 신체를 능동성과 동시에 수동성, 주관과 객관으로 파악하는 데 이 점은 바로 라이프니쯔로 부터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36)

IV. 맺음말
포이에르바하는 근대철학사에 대한 고찰에 있어서 철학이 경험에 근거한 자연과학과 결합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입장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정신, 사유를 물질적인 것으로 환원시키고 물질의 운동을 기계적인 것으로 보는 홉스의 유물론을 비판하고 물질의 질적 차이를 주목하는 베이컨의 질적 자연관을 높이 평가함으로써 후기에 성립되는 인간의 질적 차를 인정하는 자신의 "새로운 철학", 즉 인간학적 유물론의 초석을 놓는다. 더 나아가서 그는 데카르트의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을 비판하면서 이것이 관념론적 일원론으로 극복되어 가는 과정을 고찰한다. 스피노자에 있어서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유일 실체를 통해 극복되나 이때 유일 실체는 신 즉 자연이라는 점에서 스피노자에는 관념론적 요소와 유물론적 요소가 모순적으로 통일되어 있다. 포이에르바하는 라이프니쯔의 단자에서 스피노자의 고정되고 화석화된 자연에 활동성이 부여될 소지를 찾는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단자의 자기활동성은 결국 헤겔에 있어서 사유의 자기 구별의 운동으로 바뀌어 나타나며 이제 정신은 실체가 아니라 스스로 활동하는 주체로 되는 것이다. 또한 라이프니쯔에 있어서 물질이 단자의 표상에 불과하다는 측면을 수용함으로써 헤겔은 물질이 정신의 자기 구별의 활동을 통한 정신의 타재태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이는 결국 사유와 존재의 동일성을 함축하는 것이다. 포이에르바하는 1836년에 이르기까지는 이런 경향을 이원론의 극복, 통일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1839년 공공연하게 헤겔철학을 비판하면서 이런 동일성은 사실 물질을 정신으로 환원시킨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함으로써 헤겔관념론과 결별하고 유물론에 의거하는 "새로운 철학"을 제시한다. 앞서 언급한 것 처럼 본 논문은 포이에르 바하에 있어서 "새로운 철학"의 형성과정 중 일 부분에 대한 고찰이라는 점에서 계속적인 고찰이 진행되어야 포이에르바하 철학의 전체적인 연관이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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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Feuerbach, L : S mtiliche Werke, hrsg von Bolin, W. / Jodl, F., Stuttgart, 1960. Bd. II, Gruds tze der Philosophie der Zukunft(약호 : GPZ) Geschichte der neueren Philosophie von Dr. J. Erdmann ber die Anfang der Philosophie(약호 : Anfang) Aus dem Vorwort zur ersten Gesammtausgabe(약호 : VeG) Bd. Ⅲ, Geschichte der neueren Philosophie(약호 : GNP) Bd. Ⅳ, Darstellung, Entwicklung und Kritik der Leibniz'schen Philosophie(약호 : Leibniz) Bd. Ⅴ, Pierre Bayle Bd. Ⅵ, Entgegnung an R. Haym.
2. Gr?n, K. : Ludwig Feuerbachs philosophische Charakterentwicklung.Sein Briefwechsel und Nachlass, 2. Bd. Leipzig, 1874,
1. Ascheri, C. : Feuerbachs Bruch mit der Spekulation, Wien, 1969.
2. Chang, P. : Mensch als Denkhorizont bei L. Feuerbach, 1971.
3. Haenisch, G. : Feuerbachs Beitrag des Begriffs Pantheismus, in : Deutsche Zeitschrift f r Philosophie, 1979.
4, Hartmann, L. : Ludwig Feuerbachs Auseinandersetzung mit dem Deutschen Idealismus, M?nchen, 1974.
5. Lenin, W.I. : Konspekt zu Feuerbachs "Darstellung, Entwicklung und Kritik der Leibniz'schen Philosophie, in : Lenin, Werke, Bd.38. Berlin, 1981.
6. Marx, K. : Die Heilige Familie, in : Marx, K. / Englsm F. : Werke(MEW) Bd.2. Berlin, 1957.
7. Rau, A. : Ludwig Feuerbach's Philosophie, Die Naturforschung, und philosophische Kritik der Gegenwart, Leipzig, 1882.
8. Rawidowicz, L. : Ludwig Feuerbachs Philosophie, Ursprung und Schicksal, Berlin, 1931.
9. Reitmeyer, U. : Philosophie der Leiblichkeit, Frankfurt, 1988.
10. Schmerler, R. : Ludwig Feuerbachs Leibniz-Darstellung, Borna-Leipzig, 1911.
11. Schuffenhauer, W. : Feuerbach und der junge Narx, Berlin, 1972.
12. Wartofsky, M.W. : Feuerbach, Cambridge, 1977.
13. Winiger, J. : Feuerbachs Weg zum Humanismus, M?nchen,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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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주
1) 각주의 경우 논문 및 저서의 제목과 출판사는 밝히지 않고 저자와 해당 논문 및 저서 출판년도만 밝혔다. 참고 문헌을 통하여 보충할 것. 원전을 인용할 경우, 본문에 직접 인용했고, 인용문 뒤의 괄호 속에 그 출전을 약호로 표시했다. 예) (GNP,III,38) : 전집 III권, Geschichte der Neueren Philosophie, s.38.
2) 「근대철학사」는 포이에르바하가 「이성의 무한성, 통일성, 보편성」(1828)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1829년 이래 에어랑겐 대학 사강사로서 행한 철학사의 강의에 의거하여 발간된 것이다.
3) 포이에르바하는 라이프니쯔 연구를 1836년 여름에 써서 1837년 발간했다. 이 책은 당시에 높은 평가를 받았다. A. Ruge는 1837.10.14.편지에서 "당신의 「라이프니쯔」로 인해 기쁘다."고 말했으며 Mehmehl은 1837. 5.15에 "당신의 라이프니쯔철학사는 학문의 참된 친구들에게… 주목을 받아야 하고 또 받을 것이다."고 격찬했다. P. Jang. 1971, s.170~1. 참고.
4) 포이에르바하는 "사변철학이란 종교에서 피안에 있는 비대상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신을 합리적으로 혹은 이론적으로 가공하여 해체하는 것으로서, 이와 같은 사변철학의 본질이 합리화된 신학"(GPZ,II,246 참조)이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사변철학은 종교적 신을 해체시킨다는 점에서는 신학의 부정이지만 종교적 신을 합리적으로 혹은 이론적으로 가공하여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신학의 입장을 새롭게 옹호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포이에르바하는 사변철학은 "신학의 입장에 선 신학의 부정"이라는 모순을 짊어진 철학으로 규정한다.
5) 포이에르바하는 「미래 철학의 원칙」의 서문에서 "미래 철학은 자신의 가치를 온당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근대철학에 대한 정확한 숙지(熟知)를 전제로 한다."(GPZ,II,245)고 말함으로서 그의 "새로운 철학"의 발생과 의미가 근대철학전체와 관련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새로운 철학"을 제시하기 전 오랫동안 근대철학사의 연구에 몰두했고 그런 의미로 포이에르바하의 "새로운 철학"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철학사에 대한 그의 평가를 우선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6) F. Jodl, in: L. Feuerbach, S?mtliche Werke, hrsg von W. Bolin / F. Jodl, Bd, III, s.IV.
7) W. Bolin / F. Jodl, Vorwort des Herausgebers, s.v. in : L. Feuerbach, GNP,III, 당시 헤겔이 철학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은 헤겔의 제자인 Erdmann의 「근대철학사의 과학적 저술의 시도」가 1834년 발간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포이에르바하는 「근대철학사」에서 개별철학체계를 정신의 자기의식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계기라고 본 점에서 근본적으로 헤겔철학의 입장에 서 있다. 하지만 Erdmann의 철학사와 포이에르바하의 차이점은 전자가 데카르트로부터 후자는 베이컨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에 있다. L. Hartmann은 포이에르바하가 여기서 Erdmann처럼 변증법적 매개의 원리를 도식적으로 적용하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L. Hartmann, 1974, s.18 참고, L. Feuerbach, Geschichte der neueren Philosophie von J.E. Erdmann, in : II, s.96~7 참고.
8) F. Jodl, in : L. Feuerbach, S mtliche Werke, hrsg von W. Bolin / F. Jodl, Bd, III. s.VIII, L. Rawidowicz, 1931, s.11, 포이에르바하는 후에 이 시기를 회고하면서 스스로 이때의 자신의 입장을 '합리주의'라고 칭한다.(VeG,II,406)
9) 헤겔과 포이에르바하와 관계는 포이에르바하 해석가들 사이에서 그 영향의 범위나 결별시점을 둘러싸고 다양한 견해를 보인다. 1) Bolin은 포이에르바하의 사상은 헤겔과는 관계없는 독창적 사상이라고 말한다. 즉 1828년 「이성에 관하여」는 흔히 주장되듯이 헤겔의 전형적인 삼분적 도식을 사용하여 쓰여져 있지 않다.(W. Bolin, : L. Feuerbach, 1891, s.70) 2) 그러나 대체로 해석가들은 포이에르바하 초기에는 헤겔의 영향하에 있다고 보는 견해에 동의한다. 다만 이 경우 이런 영향으로부터의 결별의 시점을 중심으로 두 부류로 나뉘어진다. 즉 Rawidowicz, N dling, Gagern, Hartmann, Schuffenhauer 등은 1839년 「헤겔철학비판」을 중심으로 그 이전을 헤겔주의자로 그 이후를 감각주의 자연주의 유물론등으로 지칭한다.(L. Rawidowicz, 1931, s.83), 3) 반면에 Ascheri, Bockm hl등은 1842년 「철학개혁의 예비명제」를 기점으로 나눈다. 특히 Ascheri의 경우에는 새로운 철학의 특징을 신학에 대비되는 종교의 역할에서 찾으며 1841년 「기독교의 본질」 제1판에서는 헤겔의 영향이 상당히 나타난다는 점에서 "새로운 철학"은 1842년에야 비로소 형성된다고 주장한다.(참고 : C. Ascheri, 1969, s.115) 필자가 보기에는 헤겔로 부터의 결별이 외적으로 선포된 것은 1839년 이다. 왜냐하면 그 이전의 저서에는 여전히 관념론적인 경향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그 이전부터 포이에르바하 자신의 독창적인 싹은 드러난다.
10) Jodl은 「근대철학사」는 비록 헤겔주의자인 포이에르바하의 작품이지만 그에 있어서 두 세계관 사이의 내적 투쟁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말한다. F. Jodl, 앞의 책, x i.
11) 통상 근대철학사에 대한 포이에르바하의 저술에는 「Pierre Bayle」(1938)를 첨가한다. 부제(인류사와 철학사에 대한 기고)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책이 근대철학사에 대한 관심에서 쓰여진 것은 명백하다. 이 책에서 주로 종교철학적 내용(이성과 신앙의 모순)이 다루어지고 있는데 포이에르바하는 Pierre Bayle 연구를 통해 「기독교의 본질」(1841)의 종교비판을 예비한다. 참고. W. Bolin / F. Jodl, Vorwort des Herausgebers, s.v.∼x, in : L. Feuerbach, Pierre Bayle, V, R. Schmerler, 1911, s.3 참고.
12) 포이에르바하의 "새로운 철학"의 형성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것은 헤겔의 사변철학비판이다. 그는 이를 「헤겔철학비판을 위하여」(1839), 「철학개혁의 예비명제」(1842), 「미래철학의 원칙」(1843)에서 수행한다.
13) 포이에르바하는 "근대철학의 최초의 본래적 단초는 이탈리아인 Cardano, Bernardino Telesio, Francesco Patrizzi, Giordano Bruno의 자연직관에서 성립한다. Bruno는 신적 충만함과 무한성의 상태인 자연에 대한 직관을 가장 재치있고도 분명한 방식으로 언급했다."(GNP,III,19∼20)고 말한다.
14) 포이에르바하는 1833년 판에서는 비록 베이컨으로부터 출발하지만 데카르트를 더 중시하고, 베이컨이 데카르트의 정신의 원리를 본성상 전제하고 있다고 말한다. 반면에 1847년 판에서는 이런 입장을 비판하면서 베이컨을 근대철학의 진정한 아버지라고 강조한다. GNP,III,22 참고.
15) 마르크스는 「신성가족」에서 베이컨에 대한 포이에르바하의 이런 평가를 수용한다. 그래서 "영국의 유물론과 모든 근대실험과학의 진정한 창시자는 베이컨이다. 그에게는 자연철학이 참된 과학으로 여겨지며 감각적인 물리학이야말로 자연과학의 가장 탁월한 부분이다."고 말한다. K. Marx / F. Engls, MEW.2. s. 135, 마르크스가 이미 박사논문을 쓸 때 포이에르바하의 「근대철학사」를 읽었다는 사실은 Schuffenhauer에 의해 확인되었다. W. Schuffenhauer, 1972, s.27∼9 참고.
16) Winiger는 포이에르바하가 감각적 질을 강조하는 베이컨의 자연관을 이 평가하는 데서 포이에르바하의 자연개념이 인간의 실천적 감각적 체험과 관련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점에서 이미 포이에르바하는 자연을 문제삼지만 이미 실천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문제삼기 때문에 이론에만 갇혀있는 철학과는 성격을 달리한다고 주장한다. J. Winiger, 1979, s.150.
17) 포이에르바하는 여기서 그의 자연이 주관적인 것일 뿐이라고 비판한 R. Haym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L. Feuerbach, Entgegnung an R. Haym, 1848, VII,s.506 참고)
18) Wartofsky는 포이에르바하가 「근대철학사」에서 합리주의적 관념론의 입장을 취하면서도, 두 종류의 경험론, 즉 긍정적 경험론과 부정적 경험론을 구별한다고 말한다. 전자가 베이컨의 경험론이라면 후자는 홉스의 유물론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구별했기 때문에 후기에 그가 경험론을 긍정적으로 평가, 수용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M.W. Wartofsky, 1977, s.67.
19) 포이에르바하는 이런 유물론을 "정신을 결여한 유물론"(der geistlose Materialismus)이라고도 칭한다.(Anfang II, 9)
20) 마르크스는 「신성가족」에서 홉스의 유물론을 평가하는 데 포이에르바하의 영향을 받고 있다. 즉 그는 "유물론은 발전과정에서 일면적이 된다. 홉스는 베이컨의 유물론을 체계화한 사람이다. 감성은 그 꽃을 떨구고 기하학자의 추상적 감성으로 된다. 물리학적 운동이 기계적 혹은 수학적 운동에 희생된다. 기하학이 주요과학으로 선포된다. 유물론은 인간에 적대적이 된다… 홉스는 베이컨을 체계화했지만 베이컨의 근본원리인 바, 지식과 관념의 원천이 감각세계에 있다는 원리를 상세히 기초짓지 못했다. K. Marx / F. Engls, MEW,2. s.136.
21) 그러나 1833년에는 포이에르바하는 이런 홉스의 유물론을 사유하는 정신의 삶의 과정에서 필연적 거쳐 나아가는 경험과정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아직 헤겔관념론의 입장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GNP,III, 79~80. 참조)
22) 포이에르바하는 데카르트 철학을 "근대 사변철학의 단초"라고 부른다.(GPZ,II,254)
23)포이에르바하는 1847년 판에서 이와 같이 해석하는 반면, 1833판에서는 스피노자의 실체개념을 유물론적으로 해석하는 프랑스 유물론의 입장을 비판한다. 그러나 1835 / 6년의 단편에서는 이미 스피노자의 실체론을 프랑스 유물론의 최종근거로 본다.(K. Gr n I, s.324∼5 참고) 이에 비해 마르크스는 「신성가족」에서 프랑스 유물론에 이르는 두 방향이 있다고 본다. 즉 데카르트에서 기계적 유물론과 프랑스의 자연과학에 이르는 길, 그리고 로크로부터 사회주의에 이르는 길(K. Marx, MEW,2. s.132, 138 참고)이다.
24) 포이에르바하는 스피노자를 "근대 자유정신과 유물론자들의 모세"라고 극찬한다.(GPZ,II,264)
25) Maenisch는 포이에르바하가 스피노자의 범신론 속에 관념론과 유물론으로 발전할 싹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하다고 평가한다. 즉 포이에르바하는 범신론이 한편으로는 헤겔의 관념론으로 발전해 나아갈 싹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이런 발전을 유물론적으로 비판할 바탕을 마련해 준다고 본다. G. Haenisch, 1979, s.703,707 참고.
26) Haenisch는 포이에르바하가 비록 스피노자의 철학의 비일관성을 비판했으나, 다른 한편 스피노자는 무신론자는 아니었지만 종교와 신학의 비판과 인식을 위한 최초의 요소들을 제공했음을 높이 평가했다고 보고 이런 비판적 요소로 인해 스피노자 철학이 프랑스와 독일의 유물론에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G. Haenisch, 1979, s.705~6.
27) 포이에르바하는 "「근대철학사」의 2부인"(Leibniz, IV.1) 「라이프니쯔철학의 서술, 발전과 비판」을 1836년 말에 쓰고 1837년에 출판했다. 이 책은 「근대철학사」와 달리 라이프니쯔철학만을 고찰한 단행본으로서 체계적으로 서술되고 있다. 포이에르바하는 1833년에 「근대철학사」를 출간하고 나서 1835년 「반-헤겔비판」을 통해서 헤겔의 관념론을 옹호한다. 물론 1838년에 「관념론 비판」에서도 여전히 관념론을 비판하긴 하지만 통상 「라이프니쯔」가 그에 있어서 전기와 후기의 입장사이에서 동요하는 전환적 저작이라고 평가된다. 특히 「라이프니쯔」만을 집중적으로 고찰한 Schmerler는 "「라이프니쯔」는 세계와 철학에 대한 새로운 입장의 충동을 느끼면서 통과하는 단계에 쓰여진 작품」이라고 평가하면서 그 책에서는 관념론과 유물론사이의 무수한 동요를 볼 수 있고 비로소 관념론에 대한 비판의 싹이 제시되었다고 주장한다. R. Schmerler, 1911, 5, 87f.
28) 포이에르바하 자신은 1846년 그의 전집을 출간하면서 이제까지의 자신의 저작을 평가하는데 여기서 "너(포이에르바하 자신)는 「라이프니쯔」에서 이미… 감성의 원리를 파악했다…"고 말한다. (VeG, II,406)
29) Schmerler는 라이프니쯔에 있어서 물질이 아니라 객체화된 실체가 그의 철학의 주제나 출발점인데도 불구하고 포이에르바하는 물질을 강조했다는 점을 주목하고 이 점에서 포이에르바하는 라이프니쯔 철학 서술에 있어서 개체화된 실체의 발전의 측면을 소홀히 했다는 결합을 지닌다고 본다. 하지만 이것은 그가 「라이프니쯔」를 서술하면서 객관적으로 접근하면서도 동시에 일정한 관심에 의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본다. R. Schmerler, 1911, s.88∼9참고.
30) 라이프니쯔와 데카르트의 관계 중 본유관념설 부분과 관련해서는 A. Rau, 1882, s.148∼54 참고.
31)라이프니쯔는 스피노자의 무한 실체는 무한한 것이기 때문에 유한한 크기를 지니는 연장(延長)은 무한에서 도출된 것이라기 보다는 외적으로 부가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32)Lenin은 "라이프니쯔에서 물체적 실체는 데카르트에서 처럼 더 이상 연장성을 지닌, 죽은, 운동의 원인이 외부에 있는 양이 아니라, 그것은 실체로서 활동하는 힘이며, 자체 내에 정지하는 않는 활동성의 원리를 갖고 있다."(Leibniz,IV,40)는 대목을 주목하여 다음과 같이 주석을 달고 있다. 즉 "비록 라이프니쯔가 정치와 종교의 화해를 추구하며 Lassall류의 면모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로 하여금 라이프니쯔를 높이 평가하게 한 근거가 바로 이것이다."W.I. Lenin, 1981, s.66.
33 )Winiger는 포이에르바하가 라이프니쯔의 물질론에 몰두함으로써 한편으로는 탈관념론적인 전통-즉 르네상스의 범신적 자연관-에 의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후기철학의 근본인식을 선취하는 자연철학을 정초하게 된다고 본다. J. Winiger, 1979, s.68.
34) L. Rawidowicz, 1931, s.182, J. Winiger, 1979, s.71∼4 참고.
35) 포이에르바하는 "예정조화가 …… 라이프니쯔의 약한 측면이"라고 주장한다(Leibniz,IV,95).
36) 포이에르바하의 신체개념과 라이프니쯔 철학과의 관련을 주목한 책으로 U. Reitmeyer, 1988, s.60~72, A. Rau, 1882, s.156~8. 을 참고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