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바둑..!/놀이 이론들~

[=] 어린이와 놀이

온울에 2008. 6. 7. 14:02

                                                   

1. 놀이의 의미


  놀이는 인간의 존재 양식을 결정짓는 삶의 중요한 모습이다. 옛부터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HOMO SAPIENS),무엇인가 만들어내는 존재(HOMO FABER)로 인식한데에서 나아가 네델란드인 J. 호이징하(HUIZINGA)는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으로서의 속성을 포함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다음과 같은 놀이에 대한 다양한 학자들의 주장이 있어왔다.


* 놀이는 과잉된 생명력의 발산 행위이다.(잉여 에너지설)

* 모방 본능의 충족 행위이다.(모방 본능설)

* 일에서 생긴 긴장을 완하시키는 행위이다.(우리나라 놀이관)

* 생활이 요구하는 뒷날의 일에 대비하여 훈련시키는 행위이다.(생활 준비설)

* 지배 욕구와 경쟁 욕구 속에서 또는 어떤 재능을 발휘하려는 천성적인 충동을 채우려는 행위 이다.(표현 본능설)

*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소망을 허구를 통해 만족시키는 소망 실현으로 생긴 것이다.(소망실현     설)

* 일상 생활에서 목적없이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행위이다.(태도로서의 놀이)


  이런 여러 논리가 인간 생활에서 놀이가 삶의 중요한 기능으로서 차지하는 중요성과 유용성을 일반에게 인식하게 하였다.

 

  사전적인 놀이의 의미를 살펴보면 ‘놀이란 특별한 목적이나 생존 자체에는 직접 관계가 없을지라도 그것 자체로서 흥미가 있는 것을 스스로 느끼는 활동의 총칭이다.’ (교육학 대사전 - 유희 : 742쪽)


  위의 정의는 교육학 사전 외에 일반적인 사전에도 이와 유사하게 정의하고 있다. 즉 놀이는 놀이 자체가 최상의 목적이다.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서나 공부에 도움을 얻기 위해 놀이를 한다면 이는 벌써 놀이가 아니다. 체육이요 학습이다.

  고무줄 놀이를 보면 그 어떤 결과를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고무줄 놀이 자체가 목적인 셈이다. 또한 고무줄 놀이를 하면 살고 하지 않으면 죽는가? 그렇지 않다. 해도 그만이고, 하지 않아도 그만이다. 그렇다면 먹고 자는 것과 같이 생존에 직접 관계하지 않는 놀이는 정말 쓸모없는 것일까?  따라서 이와 같은 정의는 지금까지 우리가 갖고 있는 부정적인 놀이관을 뒷받침하기 위해 세워진 정의가 아닐까? 사실 위와 같은 정의라면 학교나 교육에서 놀이는 배재하여야 마땅할 것이다. 왜냐하면 교육이란 인간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하시키기 위한 의도적이고 목적을 갖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과연 놀이는 목적을 갖도 있지 않은가? 생존 자체와 아무 관계가 없는가?’라는 문제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낱낱의 놀이는 어떤 목적을 갖고 있지 않다. 또한 생존에도 직접 관계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놀이를 덩어리로 생각해서 ‘놀이군(群)’이라는 것을 상정해 보자.

  인간의 본능적인 놀이 욕구이외에도 개인적 사회적으로 받는 제반 갈등과 스트레스는 놀이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경우 역시 끊임없이 놀고자 하는 것은 나름대로 그런 스트레스를 해소할 목적을 본능적으로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인간에게서 놀이를 모두 없앤다면 인간은 과연 생존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놀이는 인간이 건강하게 살아가려는 목적을 가지고 행해지는 것이다. 다만 낱낱의 놀이가 행해질 때 외형적으로는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인간의 역사와 더불어 놀이는 존재해왔다. 개별적인 놀이와 사회적인 놀이가 공존해가면서 개개인에게는 휴식과 안정을,사회에서는 사회 생활에서 생긴 제반 갈등을 해소하였다. 그래서 서양의 교육학자 오토베링거는 다음과 같이 놀이를 정의 하면서 기본의 사전적인 놀이를 부정하고 있다.


  ‘놀이는 무목적이거나 무방향적인 활동이 아니다. 놀이는 무언가를 성취하고 안락감을 느끼기 위한 행동의 시도이기 때문에 인간은 그 세계를 혁신하고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


  이런 전제에서 놀이 연구회는 다음과 같이 놀이를 정의하고자 한다.

  ‘놀이란 낱낱으로는 목적이나 생존에 관계 없이 행해지지만 놀이군(群)이라는 형식으로 낱낱을 묶어서 정의하면 생존과 직접 관계하며 내면적인 목적을 가지고 행해지는 문화 행동 양식으로 재미와 자발성에 근거하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


2. 놀이의 특성


첫째, 모든 놀이는 자발적인 행위이다.


  “장난감 기차가 칙칙 달려간다. 과자와 사탕을 싣고서 엄마 방에 있는 우리 아기한테 갖다 주러 갑니다.” 세 아이가 정강이에 고무줄을 걸고 서 있고 가운데 한 아이가 빙글빙글 돌면서 노래에 맞춰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다. 이 아이들은 부모가 시켜서 땀을 뻘뻘 흘리며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지는 않다. 또한 억지로 함께 하자고 해도 자기가 하기 싫으면 그만이다. 똑같은 노래를 되풀이하고 단순한 동작을 매번 반복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신바람이 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놀이가 개개인의 자발성에 의해 시작되고 중지되기 때문이다. 우리도 공부나 일을 할 때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것과 타인에 의해 억지로 하는 것과는 일의 효율이나 능률에엄청난 차이가 남을 기억할 것이다. 지시나 명령에 의한 놀이는 이미 놀이가 아니다. 놀이에 대한 욕구는 놀이로 인한 즐거움이 놀이를 하고 싶다고 여기는 데에서 시작되고 유지되며 그들이 하고 싶지 않으면 중지된다. 

  이와 같이 놀이의 가장 큰 특성은 바로 자발성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둘째, 놀이는 일상 생활에서 벗어난 상황에서 행해진다.


  세 아이가 공기를 하고 있다. 한 아이가 혼자말로 ‘16년에 꺾기,16년에 꺾기.....’를 되뇌이고 있다. 이 아이는 다음에 자기 차례가 되면 꺾기부터 할 심산이다. 16년 꺾기를 중얼거리며 다른 사람이 죽는가를 살피는 동안 이 아이는 숙제할 걱정,학원갈 걱정,밥먹을 생각 등 일상 생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즉 다른 세계(놀이 세계)에 가 있는 셈이다.

  놀이는 실제의 삶을 벗어나서 아주 자유스러운 일시적인 활동의 영역에서 행해진다. 따라서 실제의 삶에서 벗어나기에 실제 생활에서의 걱정이나 짜증,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정규적으로 반복되는 휴식 행위로서 놀이는 사실상 삶 전체의 중요한 요소가 되어 삶을 가꾸어 주고 삶을 확대시겨 준다.


셋째, 놀이는 지속성을 갖고 있다.

 

  놀이의 자발성은 창의성을 가져오며 언제나 열린 상황을 연출한다. 이런 까닭에 언제 어디서 누구든지 쉽게 참여할 수 있고 매일 되풀이 해도 재미를 주는 것이다. 하나의 놀이는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사람의 다양한 지혜와 사고의 보완,수정을 거쳐 하나의 완성된 구조로 자리잡은 것이다.

  ‘제기차기’ 놀이에서 제기가 만들어진 과정을 살펴보자. 농경사회에서 김매기는 작물이 잘 자라게 하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뿌리채 뽑아야 다시 살아나지 못하므로 김맨 주위엔 뿌리가 뽑힌 잡초들이 질펀하게 누워 있다. 그 중에 잔뿌리가 많고 잎이 약간 달린 풀이 부모님과 같이 밭이나 논에 나온 아이들의 놀잇감으로 이용되었을 것이다. 길을 가다 작은 돌을 위로 올려 멀리 찬다든지 나무토막을 차면 곧장 떨어지는 것과 달리 잎사귀 때문에 공중에 머무는 시간이 생기고 그러다보니 여러 번 찰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원리로 풀에 납작한 돌을 매거나 뿌리를 물로 묻힌 후 굳혀 차다가 점차 엽전에 종이를 꿰어 오늘날과 같은 제기의 모습을 띠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놀이 규칙이나 놀잇감의 자연스러운 발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의 놀이가 만들어진 과정이 이렇게 조금씩 발전을 보이는 것처럼 놀이를 하는 사람 역시 놀이를 하면서 점차 자신의 놀이 기술이 향상되므로 더 하고 싶은 욕구가 자연히 생기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놀이 하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만남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놀이는 반복,되풀이하고 싶은 욕구,즉 지속성을 갖는다.


넷째, 모든 놀이는 그 고유의 규칙을 가지고 있다.


  그 규칙들은 놀이에 의해 분리된 일시적 생활 속에서 적용,통용되어져야 할 것을 의미한다. 놀이에 대한 규칙은 절대적인 구속력을 갖고 있다. 놀이의 규칙이 위반되면 그 순간 놀이의 세계는 무너진다. 규칙에 의해 진행될 때 이기고 지고의 승패가 달려 있고 경쟁을 유발시켜 여기에서 생긴 긴장감이 아이들을 놀이에 매몰되게 한다.

  모든 놀이에는 고유의 형식과 내용이 있다. 즉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술래잡기,진놀이 등은 각의 놀이 방법,놀이 재료,놀이 규칙 등이 있어 하나의 ‘놀이’로 구별되는 것이다. 이런 놀이는 그 사회의 무형 문화로서 계승되고 발전되며 소멸되는 것이다. 새로운 놀이가 만들어지는 것은 각 지방의 특성과 자연 환경의 차이로 인해 다양해지고 전파되면서 전국의 통일된 놀이가 되기도 한다.     


  이상과 같은 특성을 가진 놀이는 인간이 존재하면서 계속 행해졌으며 모든 문화 형태가 놀이에서 발생하여 왔고 놀이의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이다.


3. 놀이와 교육


  놀이가 학교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기존의 교육이 갖는 여러가지 문제점이 일반 교사들에게 광범위하게 자각되면서 부터이다. 물론 유아 교육에서는 그 전부터 놀이를 중시한 교육을 실시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반 초중등학교에서 교사들에게 광범위한 관심을 갖게 한 것은 불과 얼마되지 않는다.

  그러면 왜 놀이교육이 올바른 교육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을까?

  이는 놀이가 갖는 특성과 올바른 교육과의 내용이 일치하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놀이는 개개인의 자발성을 중시한다. 누군가에 의해 시켜서 행해지는 것은 벌써 놀이가 아니다. 때문에 개인의 결정에 따라 놀이가 시작되고 중지된다. 기존 학교에서의 교육체계는 개개인의 자발성을 억압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많은 교과목을 많은 아이들에게 획일적으로 일정한 시간동안에 가르쳐야 하는 구조 속에서는 개개인의 자발성보다는 전체가 일정한 목적을 향한 능률만을 중시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개개인의 자발성은 흔히 무시되고 학생들도 스스로 능률의 수레바퀴에 온 몸을 내 맡기게 되었다.

  개개인의 자발성을 억압하는 교육은 곧 개인의 창의성을 억압하고 기계적인 삶을 살도록 강요하는 교육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한 자각이 곧 놀이가 교육에서 새롭게 인식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또한 놀이는 일상생활에서 벗어난 상황에서 행해진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즉 놀이를 하는 동안에는 숙제할 걱정,공부할 걱정,학원갈 걱정 심지어 밥 먹는 일까지 잊고 놀이의 세계에 몰두하게 된다. 기존의 교육 체계가 너무 숨박히게 돌아가고 그에 적응하지 못한 많은 수의 학생에게 학교는 삭막한 곳으로 여겨져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통,우울증 등의 정신 질환이 늘어나고 있고 심지어 자살이라는 극한 상황이 전개되기도 하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일상의 모든 압박에서 벗어난 놀이는 그야말로 중요한 매개로 인식되어졌다.

그 밖의 놀이는 문화 전달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각 나라 어린이들의 놀이가 모두 다르다는 것은 곧 그 문화가 다른 데에 기인한다.

  기존에는 우리 문화나 문화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질 못했다. 때문에 서구의 저질문화,상업주의 문화,퇴폐 오락문화에 쉽게 빠져들어 있고 그에 대한 마땅한 대응 방안이 없다고 걱정만 하였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의 전래 놀이를 중심으로 한 건강한 놀이들을 함께 하면서 우리의 뿌리를 찾고 아이들 스스로의 문화도 형성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놀이의 잠재적인 역할 이외에도 놀이는 어린이 발달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


  첫째,놀이는 몸을 골고루 잘 자라게 한다. 어린이들은 많은 활동을 하며 자라야하는 때이다. 밀고 당기고 치고 도망가고 심지어 다투면서 아이들은 몸의 각 부분이 골고루 발달된다. 땀이 흘러 꾀재재한 얼굴에 검게 그을려 뛰노는 아이와 툭하면 감기며 소화 불량에 시달리는 허연 아이들을 비교해 보자. “난 어릴 때 병원이란 데가 있는지도 모르고 자랐다.”라고 30,40대 어른들은 이야기 한다. 물론 형편이나 조건이 마땅하지 않아 그랬었겠지만 소아과에 아이들이 늘 만원사례를 빚는 오늘날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근육과 뼈 등 몸의 각 부분이 자기 자리를 잡아 가는 유아와 어린이 시기에 이를 강화하기 위하여 활발히 움직이고 스스로 사용하면서 단련해야 하는데 놀이는 이러한 제반 여건을 가장 효율적이고 자연스럽게 해결해 준다.


  둘째,놀이는 사회성을 길러 준다. 잠시라도 틈이 있으면 같이 놀려고 하는 것이 어린이들이고 그러는 동안에 친구가 되며 사람 사귀는 기술을 익히게 된다. 즉 상대방을 받아주고 양보하고 차례지키며 서로의 입장을 생각해 주고 약속을 지키고 하는 등의 사회 생활이 바로 놀이를 통해 습득된다. 또한 어린이들이 다른 사람들과 성공적으로 어울려 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필요를 느낀다. 형제가 많아 여럿이 함께 자란 아이와 외톨이로 자란 아이의 언어 사용이나 대인관계를 살펴보면 많은 차이가 나는 데 이는 곧 놀이 기회가 많고 적음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고 실제 이를 증명하는 논문도 여러 번 발표되었다. 아이들은 놀이하는 과정 속에서 친구들과 협동하며 친하게 노는 경험 뿐 아니라 경쟁하고 싸워도 보면서 그야말로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으로 성장한다.


  셋째,놀이는 긍정적인 자아관을 가지게 하고 심리적인 안정을 가져다 준다. 놀이는 어린이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생각 또는 행동의 긍정적인 면을 확대,발전시켜주고 부정적인 면을 축소,근절 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줌으로써 건전한 정서 발달을 돕는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에 사랑을 독차지 하였는 데 동생으로 인하여 부모의 사랑을 빼앗겼다고 여기는 아이가 인형놀이를 통하여 인형을 아기하고 하면서 때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아이는 인형놀이를 하면서 가지고 있던 불만을 해소하게 되고 이는 곧 정서적 안정을 찾는 계기가 된다. 또한 심하게 야단을 맞은 아이가 나가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돌아와서는 언제 야단을 맞았냐는 듯이 행동하는 것은 바로 놀이를 통하여 불만을 해소하고 안정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린이는 스스로 놀이를 계획하고 진행하며 마무리 짓는 전체 과정을 총괄함으로써 문제 해결 능력을 기름과 동시에 현실감 있는 자이상을 그려볼 수 있다.


  넷째,놀이는 어린이의 창의성을 자극하며 키운다. 놀이는 정해진 틀 속에서나름대로의 변화의 묘를 발휘할 수 있다. 규칙과 방법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가운데 더 나은 놀이를 계발한다. 이런 과정에서 놀이가 발전하게 되는 것이고 아이들의 창의성이 융통성있게 발전하게 된다. 또한 놀이는 가정이나 학교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여러가지 일들을 경험하고 학습할 기회를 제공해 줌으로써 다양한 일을 실험해 보고 새롭게 신기한 것을 만들어 보는 경험을 한다. 이와같이 놀이는 어린이들이 현실 세계를 가상의 놀이 세계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다양한 상ㅌ황을 연출하게 한다. 이는 곧 창의성 발달로 이어진다.


  이와같이 ‘교육’과 ‘놀이’는 서로 대립되는 관계가 아니라 교육에서 다룰 수 없는 인간교육을 놀이가 수행함으로써 서로 조화를 이루며 건강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한다. 



4. 놀이와 레크리에이션


  레크리에이션(이하 ‘레크’라고 함)과 관계된 여러 책에서 공통적으로 내리고 있는 정의는 “레크는 고통을 동반하지 않는 정력 소비인 노동의 반대적 생활로써 즐거움을 동반하고 정력을 재창조하는 행동양식이다.”이다. 좀더 세부적으로 정의하면 “그것이 개인에 의한 것이든 집단에 의한 것이든 여가에서 행해지는 활동이며 그 활동으로부터 얻어지는 직접적,간접적인 보수에 의해서 강제되는 것은 아니다. 그 활동 그 자체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동기가 주어진 자유롭고 도 즐거운 활동을 의미한다. 레크는 놀이,게임,스포츠,경기,휴식,오락,예술,취미,부업을 포함한다.”라고 이야기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위와 같이 이해하고 있지만 주로 지도자가 있는 ‘게임’을 레크라고 한다. 그래서 키타를 어깨에 매고 많은 사람 앞에서 여러가지 노래도 가르쳐주고 게임도 지도하는 형태의 것으로 이해한다. 레크에 대한 개념과 놀이와의 관계를 정의하려면 놀이 속에 레크가 포함되느냐 아니면 그 반대냐 등 많은 부분을 이야기해야겠지만 여기에서는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지도자가 있는 ‘게임’을 주로 살펴보고자 한다.

  레크는 1900년대 산업사회의 발달로 인해 처음 생겨났다. 생겨난 과정은 생산력을 증대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많은 사람을 효과적으로 쉴 수 있는 방안의 하나로 고안되었다. 물론 그 전에도 여가 선용이라는 형식은 있었으나 생산을 돕기 위한 휴식의 의미로 자리매김하면서 본격적인 연구와 내용을 갖추게 되었다.

‘게임’을 중심으로 레크와 놀이를 비교해보도록 하자.


  첫째,주체자의 차이이다. 레크는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을 즐겁게 만들기 위해서는 진행자가 있어야 하고 진행자에 따라 판이 결정된다. 그래서 진행자가 재미있고 새로운 것을 많이 하면 즐겁고 그렇지 않으면 재미없게 여겨진다. 지도자를 제외한 사람은 지도자를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놀이는 이와 다르다. 놀이 지도자는 놀이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다. 나머지는 노는 사람이 주인으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 만약 놀기 싫으면 그만이며 다시 노는 것도 행하는 사람의 결정에 따른다.


  둘째,지속성의 여부이다. 레크는 같은 내용을 한두 번만 반복해도 대상들이 싫증을 내기에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레크가 지도성이 강조되는 반면 놀이는 자발성을 앞세우므로 계속 되풀이해서 언제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  http://www.nol2i.com/m_sub43.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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