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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물학과 바둑학

온울에 2008. 7. 2. 05:22

생물학과 바둑학

20010418

생명과학과

임정은

목차

Ⅰ Introduction

1.1 생물학이란?

1.2 바둑이란?

Ⅱ 학문으로서의 바둑과 생물

2.1 Network적 구조

2.2 새로운 것의 발견

2.3 이단(異端)

Ⅲ 결론

Ⅳ References

자연과학으로서의 생물학과 바둑은 얼핏 보기에는 어떤 연관성도 있어 보이지 않는다. 바둑학 이라는 용어 또한 1997년 명지대학교에서 예체능 체육학부 바둑지도학으로서 출발하여 98년도 세계에서 최초로 대학의 “과”로 인정이 되면서 생겨나게 되었다. 하지만 바둑은 그 원리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빼놓고는 설명하기가 힘들다. 자연과학의 주춧돌 역할을 하는 수학과 물리학과의 연관성 때문일지는 몰라도 바둑학과 생물학역시 그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기할 정도의 유사성을 보인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생물학과 바둑이 학문으로서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공통점내에서 발견되는 차이는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했다.

Ⅰ Introduction

바둑과 생물학에 대한 유사성을 논하기에 앞서 각각의 학문에 대한 정의를 집고 넘어가보도록 하겠다. 또한 본문에서 바둑학과 바둑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는데, 이 둘 사이의 차이는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아직 바둑학이란 용어가 보편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지만 학문으로서의 바둑을 강조할 때에는 “바둑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실험적인 바둑을 언급할 때에는 “바둑”을 그대로 사용할 것이다.

1.1 생물학이란?

생물학이란 생물의 기능·구조·발달·분포와 생명현상 전반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특히 모든 생물에 공통되는 생명현상의 본질 구명에 주안점을 둔 자연과학인데, 생물의 다양성에 바탕을 둔 각론을 포함한 광범한 분야를 가리킬 때도 있다. 인류는 먼 옛날부터 생물과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따라서 생물에 관한 개개의 지식은 먼 옛날부터 많이 집적되어왔다. 그러나 실용상의 목적을 떠나 지적 흥미의 대상으로서 생물에 관한 일반법칙이 정리되었던 것은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한 바가 컸다. 그 후 중세의 암흑시대를 거쳐 생물학은 서서히 체계가 잡혀갔지만 과학으로서의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자연과학의 다른 분야에 비해 훨씬 뒤였고, “생물학”이라는 용어 자체는 라마르크와 트레비라누스에 의해 1802년에 만들어졌다. 초기에는 생물학을 형태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형태학”과, 그 기능에 눈을 돌린 “생리학”으로 크게 나누었으나, 오늘날에는 보다 세밀하게 분류되어 있다. 이런 다분화로 인해 여러 분야들이 종횡으로 얽혀 있어서 흔히 어느 한 분야의 연구가 다른 분야의 연구의 길을 터주기도 하고, 새로운 분야가 성립되기도 하는 등 생물학의 내용은 점차 전문화되면서 발달하고 있다.

1.2 바둑학이란?

먼저 바둑이란 흑돌과 백돌을 쥔 2명의 대국자가 여러가지 규칙에 따라 바둑판 위에서 번갈아 돌을 두고, 각자 차지한 집의 크기에 따라 승패를 겨루는 게임으로 보편적 정의가 되어있다. 바둑학이라 함은 이런 바둑이 갖는 이러한 여러 가지 영역의 문제를 학문적인 접근법을 통해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다. 바둑을 학문으로 처음 인정한 것은 1997년으로, 세계최초로 명지대학교에서 예체능대학 체육학부 바둑지도학 전공으로 설립인가를 받아서 출범하였고, 1998년에는 예체능대학 바둑학과로 독립하였다. 그리고 2001년에는 대학원 석사과정 개설되기에 이르렀다. 보편적 정의에서도 볼 수 있듯이 흔히 바둑이란 재미있는 하나의 게임이라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데, 바둑 속에는 게임이 주는 효용 등 놀이의 차원을 넘어 사교적. 교육적. 보건적. 문화적 측면 등 다양한 영역으로 기능이 확대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컴퓨터를 통해 인간 사고의 기능을 분석하려는 인공지능에서 바둑수의 현묘한 법칙을 탐구 대상으로 삼고 있어 바둑이 인간의 정보처리에 관한 최고의 모델로도 활용되고 있다.

Ⅱ 학문으로서의 바둑과 생물

이제는 학문으로서 바둑과 생물의 새로운 것에 대한 (재)발견에 대해서 언급해보고자 한다. 바둑의 경우 그 목표는 최상의 수로 집이라고 하는 것을 가장 크게 만드는 것이다. 생물학의 경우는 모든 생명체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명현상을 탐구하고자 하는 것일 것이다. 생물학은 생물학 자체로 너무나 큰 범주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생물의 개체발생을 연구 하는 발생학, 생물의 각종 형질이 자손에게 전해지는 메커니즘과 그것들이 각 개체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연구하는 유전학, 생물체를 구성하고 있는 핵산과 단백질의 구조를 밝히고 그 분자구조의 특성을 바탕으로 생명현상을 설명하고자 하는 분자생물학으로 그 범주를 좁혀서 설명할 것이다.

2.1 Network적 구조

발생학에서 볼 때, 모든 생명체는 한 개의 세포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여러 signal들에 의해서 무수히 분화된 여러 세포들이 각각의 위치와 역할을 맞게 된다. 즉, 몇 개의 인접한 동일한 세포들이, signal 을 통해서 서로 다른 unique한 세포로 변화하게 된다. 이는 바둑돌들이 통에 있을 때는 서로 같은 potential을 가진 동일한 돌이었다가 바둑판위의 서로 다른 위치에 놓이게 됨에 따라 서로 다른 역할을 하게 되는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단적인 예로 Drosophila의 발생초기 단계에서 어느 쪽이 anterior(사람으로 보았을 때 머리쪽)이고 어느 쪽이 posterior인지를 결정하는 단계가 있다. 이것은 바둑에서 어떻게 바둑을 둘지를 결정하는 것처럼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여러 signal들에 의해서 아주 조심스럽게 정해진다. 그 중 hunchback이라는 protein과 nanos라는 protein이 있다. 이들은 서로를 경계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는 바둑에서 흑돌과 백돌에 비유할 수 있다. hunchback은 anterior가 될 부분에서 주로 발현되며, posterior가 될 부분에 많이 발현되는 nanos에 의해 inhibition을 받는다. 마치 흑과 백이 먼저 화점이나 소목 등 potential energy가 가장 많은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전체적인 network 윤곽을 잡으면서 서로를 경계하는 양상과 매우 흡사하다. 여기서 흑을 hunchback protein으로 본다면 백은 이를 견제하는 nanos protein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 protein의 발현되는 농도가 부분 부분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figure1]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의 발현 양상은 바둑판 위에 놓인 돌 하나하나의 potential energy가 다르듯이 발현되는 protein들의 potential energy 또한 다르다는 것이다. 바둑은 워낙 둘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은 게임이라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보통 자신이 처음 network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 화점이나 소목의 potential energy를 100으로 본다면 그 것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주위의 다른 돌들의 potential을 100에 미치지 못하고 조금씩 떨어지게 된다. 생명체도 마찬가지로 hunchback 과 nanos 모두 자신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세하고 있는 anterior와 posterior의 양 끝단에서는 100의 힘을 내는 반면 멀어 질 수 록 점점 영향력이 감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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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Concentration of Two proteins

그렇다면 protein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가장 낮은 영향력을 갖게 되듯이, 바둑도 흑과 백이 만나는 지점에서 가장 낮은 potential energy를 갖게 되는 것 일까? 그건 아니다. 일단 흑과 백이 만났다는 이야기는 바둑이 중반부로 치닫게 되는 싸움이 일어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인데 중반부에서 각각의 돌이 가지게 되는 potential energy는 처음 놓았던 돌 이상의 potential을 갖는다. 싸움이 일어났다는 것은 inhibition의 정도가 아니라 돌들의 생사여탈이 달려있는 문제가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싸움에서 이기는 쪽은 자신의 영향력을 어마어마하게 뻗치게 되는 것이고, 싸움에서 진 쪽은 자신의 network가 파괴되는 고통을 감수해야하는 것이다. 생명체에서 이런 종류의 싸움이 일어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이런 싸움이 일어났다고 하는 것은 곧 돌연변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nanos를 coding하는 nanos mRNA에 문제가 생겨서 nanos가 만들어 지지 않을 경우 hunchback을 posterior 쪽에서 inhibition 할 수 없기 때문에 posterior가 없이 anterior만 있는 Drosophila가 만들어 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posterior의 network가 모두 깨졌음을 의미한다. 싸움으로 인해 network가 망가졌을 경우의 결과는 유사하지만, 여기에서 바둑과 발생학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둑은 싸움이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고 발생에서는 싸움, 즉 돌연변이가 우연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바

둑에서의 potential energy를 [Figure1]과 비교하면 다음(Figure2)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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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 바둑에서의 potential energy의 변화

한편 이런 일련의 활동들을 좀 더 보편적인 구조적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앞서 언급 했듯이 바둑의 모든 활동은 결국 넓은 집을 만드는데 그 목적이 있고, 발생활동은 좁게 보아 각각 생명체의 구조를 지금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처럼(혹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만드는 것이다. 바둑이 아무런 영향을 가지고 있지 않던 돌을 바둑판에 놓고, 이를 끊어 지지 않게 이어 나가므로서 집을 형성하듯이 생명체의 발생도 하나의 세포가 계속 분화하면서 organ을 만들고 더 나아가서는 organism을 형성한다.[ Figure 3]을 보자.

왼쪽 그림을 살펴보면 발생학과 바둑의 구조적 유사성과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일단은 바둑과 발생학 모두 특정한 position을 부여받게 되면 그게 상응하는 structure를 이루게 된다. 왼쪽의 세 번째 그림을 보게 되면 세포의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서 다른 색을 띄게 된다. 여기서 다른 색을 띈다는 것은 서로 다른 구조를 만든다는 의미로 인접해 있긴 하지만 morphogen(앞에서 signal과 같은 의미)에 따라서 머리와 가슴 그리고 팔을 만드는 세포로 분화되게 된다. 바둑의 경우 역시 어떤 돌이 특정 position을 부여받게 되면 그게 상응하는 network을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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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3. 발생에서의 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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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의 [Figure 4]를 참조하면 좌상귀에 위치해있는 백돌들은 좌상귀의 집을 만들기 위한 network를 형성하고 있고, 천중 근처의 백돌들은 중앙의 집을 만들기 위한 network를 형성하고 있다.

Figure 4. 바둑의 network

position들에 의해 각각의 network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발생과 바둑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으나, 바둑에서는 놓인 돌의 position이 바로 network에 영향을 줄 수 있으나 발생에서는 그렇지 않은 데에서 차이가 생긴다. 발생에서는 바둑에서 호선이 아닌 접바둑처럼 세포가 이미 어느 정도 분열이 일어나고 이미 분열된 세포가 network의

틀을 형성하고, 그 뒤에 signal의 영향을 받아서 자신의

position을 인식하게 된다. 이 점에서 놓는 것이 곧 position인 바둑과는 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몇몇의 세포가 position을 인식하고 나서야 각각의 organ으로 마치 집을 만들듯이 분화하게 된다. 이러한 차이는 아마 생명체가 무(無)에서는 창조되지 않는 반면 바둑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바둑판에서 창조자인 인간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본다. 물론 태초에 어떻게 창조되었냐는 창조론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의 발생과정에서는 하나의 세포로 이루어진 수정란에서부터 생명체가 분화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2.2 새로운 것의 발견

지금까지 바둑과 발생학의 구조로서의 유사성과 차이를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새로운 것에 대한 발견 과정에 대해서는 어떠할까? 여기에서 부터는 발생학이 아닌 유전학의 관점에서 전개해 나가게 될 것이다. 발생학에 대한 관심이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생물학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더딘 발전을 했기 때문에, 새로운 발견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지난 50년간 급격한 발전을 이룬 유전학보다는 비교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을뿐더러, 조훈현 사범 이후 급격한 발전을 한 한국의 바둑과 비교하기는 무리라고 보여 지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비교에 앞서서 바둑과 유전학의 발견 과정은 어떤지 알아보자. 자연과학에서의 새로운 발견이 보통 유비추리(이하 유추)와 귀납추리에 의해서 생겨났듯이, 자연과학, 생물학의 일부인 유전학 역시보통 유추와 귀납추리에 의해서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진다. 가장 비근한 예가 바로 맨델의 유전법칙이다. 수도승이었던 맨델은 몇 년에 걸쳐서 콩을 제배한다. 그리고 수확한 콩들의 겉으로 보이는 형질에 의해서 분류하고 수학적인 통계를 낸다. 이를 거듭하였을 때, 콩의 모양과 같은 형질사이에 어느 일정한 패턴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고, 이 패턴에 몇 세대를 거듭해도 지속적으로 나타나자 귀납적으로 “콩의 모양에 있어서 우성과 열성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이 비율은 3:1로 나온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콩의 모양 이외의 형질에도 관심을 가진다. 이들을 비교했을 때 콩의 모양과 비슷한 특징들이 나타나자 결국 “분리의 법칙”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들의 형질이 섞였을 때도 이 비율은 유지되는 것을 보고 형질들은 독립적으로 유전된다는 “독립의 법칙”을 발견한다. 이 법칙들이 발견되자 훗날의 유전학자들은 다른 생명체에도 적용을 시켜본다. 그리고 비슷한 특징들이 나오면 유추를 통해 다른 생명체들도 이 법칙들을 만족시킬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바둑은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것(신수 또는 신포석)을 발견할까? 이것에 대한 답변은 프로기사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알아내려고 했으나, 일이 성립되지 않은 관계로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다. 다만 바둑에서도 유추의 방법은 쓰고 있을 것이다. 바둑돌 사이의 potential energy를 극대화하여 큰집을 만드는 것이 이기는 것이기 때문에, 신수역시 처한 상황에서 돌의 potential을 높여서 결국 위기를 넘기거나, 대마를 잡는 등의 승리가 신수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정석들과 상황판단을 전제로 하여 여러 가능성을 가늠하고 그중 참신한 최선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유추가 사용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일반적으로 알려진 방법이 아니라 개인의 특별한 노력이다. 이를 위해 20c의 가장 위대한 유전학자 중 하나인 Barbara McClintock과 20c 말의 한국 최고의 프로기사인 이창호 사범의 각각의 분야에 대한 헌신적인 노력을 비교해 볼 것이다. 먼저 McClintock의 전기인 생명의 느낌에 나온 McClintock의 일화를 소개하겠다.

【 매클린톡은 대학원 시절부터 실험실에서 가장 힘들고 까다로운 작업을 도맡아 했다. 아무리 고역스러운 일도 언제나 몸소 해치우는 식이었다. 연륜이 쌓이다 보면 대부분은 판에 박힌 일이나 궂은일은 조교들이에게 시키기 마련인데, 그녀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늘 초보자처럼 모든 일을 끙끙거리며 혼자 해냈다. 그건 정말 예외적인 일이다.

그녀는 밭에 있는 옥수수 한그루 한그루를 빠짐없이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어떤 동료 하나는, McClintock은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모든 옥수수의 ‘생활기록부’를 쓸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

다음은 이창호의 일화이다. 이 일화는 이창호 사범이 조훈현 사범의 내 제자였을 때의 이야기이다. 처음으로 어린 이창호가 스승인 조훈현을 꺽고 국수전 우승을 한 날 둘은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스승인 조훈현은 오랜 대국으로 힘이 들었는지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잤다고 한다. 이창호 역시 이층의 자기방으로 조용히 올라갔다. 조훈현의 아내 또한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똑.똑.” 무엇인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서 다시 밖으로 나와서 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가 보니 바로 이창호 방이었다고 한다. 방문을 살짝 열어보니, 이창호가 아까 스승과 두었던 대국을 혼자서 복기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두 일화는 서로 다른 학문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상당한 공통점을 말해주고 있다. 바로 끊임없는 노력이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일련의 방법은 있지만 그것이 노력 없이는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McClintock의 경우 옥수수재배와 실험에 쏟는 노력이외에도 독특한 점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연구와의 “일치감”이다. 그녀는 정말로 종양을 이해하려면 나 자신이 종양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그녀의 관찰에도 그대로 묻어난다. 옥수수의 염색체를 관찰하기 위해서 광학현미경을 들여다보는 것을 McClintock은 광학현미경을 따라서 옥수수 세포 속으로 들어가서 직접 둘러본다고 표현했다. 즉 자기 자신이 연구하는 것과 일체가 되어야만 생명현상을 온전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광학현미경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들을 관찰 할 수 있었고, 세밀한 관찰력은 그녀의 뛰어난 능력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따라서 10년 동안 최고 자리를 지킨 이창호 역시 바둑과의 일체감을 느꼈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창호는 “노력형 황제”라고들 한다. 이는 이창호의 바둑에 대한 노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별명이긴 하지만, 이창호가 단지 남들보다 좀 더 노력해서 황제에 자리에 등극했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이창호 자신이 스스로 연습을 하는 동안 자신이 두는 바둑과 일체가 되어서, 흑 또는 백의 입장으로 바둑을 두었기 때문에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많은 신수들을 발견 하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McClintock이 현미경을 통해 세포 속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둘러보는듯함을 느꼈다고 한다면 이창호는 바둑판 위에서 벌어지는 흑과 백의 싸움에 자신이 그것이 되어서 전투와 방어를 하지 않았을까?

2.3 이단(異端)

마지막으로 생물학과 바둑에서의 이단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이야기에 앞서 이단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 이단이라 함은 어떤 종교집단의 내부에서 정통(正統)교리에서 크게 벗어나는 주장에 대하여 정통자측에서 부르는 배타적 호칭으로 이 뜻이 확대되어 세속의 조직에서도 정통적 신조에 대해 이설(異說)을 내세워 파당을 짓는 자를 가리켜 이단이라고 부른다. 즉 학문에서도 정통파로 여겨지는 주 집단의 학설에 위배되거나 학설을 반박하면 이단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물학과 바둑에서는 이런 이단(異端)에 대해 어떠할까?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이단이 아니다. 단지 그들이 주장했던 사실이 주류를 이루던 중심이론과 다른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이 옳았다는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그들은 이단(異端)아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옥수수에서 transposition(유전자 자리바꿈) 현상을 발견한 유전학자, McClintock은 1940년대 중후반부터 1970년대 말까지 그런 대우를 받은 대표적 인물이다. 그녀는 transposition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총망 받는 유전학자였고, 옥수수 유전학에 있어서 그녀는 거의 최고장 이었다. 하지만 1948년 처음으로 이 사실을 보고서에 기술하고 1951년 본격적 세미나로 사람들에게 알리고 난 이후 그녀는 과학자로서의 모든 것을 잃었다. 1951년이라면 아직 Watson-Crick의 DNA의 구조가 밝혀지지도 않았을 당시였다. 즉 유전자의 개념이 바로 서지 않았던 때였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유전자를 실에 꾀어진 구슬로서 설명을 하고 있었고, 이러한 유전자는 자기자리를 지킨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따라서 유전자가 염색체의 이곳저곳을 튀어 다닌다는 말은 괴팍한 할머니의 헛소리로만 치부되었다. 어느 저명한 유전학자는 그녀에게 그녀에게는 재미있는 이야기 인지 모르겠지만, 남에게는 미친 소리로 밖이 들리지 않는다며 그녀의 연구와 관련하여 입도 뻥끗하지 말라고 까지 했다. 1956년까지 McClintock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고 애썼으나,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자 모든 것을 관두었다. 물론 자신의 삶의 일부인 옥수수에 대한 탐구, transposition에 대한 탐구는 계속 하였으나 콜드 스프링 하버에서 매년 제출해야 만하는 연례 보고서 외에는 어떠한 대외 활동도 하지 않았고 사람들을 만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DNA의 구조가 밝혀지고, 이에 따라 분자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급성장 하게 되면서 그녀가 주장했던 현상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에 이르렀다. 유전자는 더 이상 실에 꽨 구슬 같은 존재가 아니며 이곳 곳을 움직이는 현상이 식물인 옥수수, 하등 동물인 대장균에서부터 고등동물인 곰팡이와 초파리에 이르기까지 생명체의 이곳 저곳에서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다시 McClintock의 견해를 듣기를 원했고, 이것이 진화상 중요한 사항으로 떠오르자 1983년 12월 여성으로는 단독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타게 된다. 그녀가 자신이 한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기까지는 무려 30년이 넘는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바둑에서는 어떠할까? 당연히 바둑의 살아있는 기성이라 불리는 우 칭위엔과 한국의 김종범 사범을 꼽겠다. 우 칭위엔을 이단으로 꼽았다는 점에 대해 의아해 할지도 모르지만, 어린 우 칭위엔이 바둑을 두던 그 시대로 돌아가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요미우리 신문사는 1933년 일본위기선수권수합의 우승자를 슈사이 명인에게 도전시키려는 기획을 성사시켰다. 그에 따라 약관인 우 칭위엔과 당시 60세인 슈사이의 대국이 이루어졌다. 우 칭위엔은 흑1을 우상귀 3·三, 흑3을 좌하귀 화점, 흑5를 천원에 두는, 경천동지의 포석을 선보였다. 흑1·3·5는 그 동안의 포석상식과 배치된 것으로, 신포석에 비판적이던 명인은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 당시 바둑의 주류에 선봉장격인 슈사이는 위 칭위엔이 놓은 신포석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 보였다. 돌을 던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야 할까? 그렇다면 주류를 따르고 있던 일반 기사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우 칭위엔이 명인 타이틀을 따 낼 때까지 그를 욕하고, 깎아 내리기에 급급했을 것이다. 김종범 역시 그러하다고 볼 수 있겠다. 아쉽게도 일찍 세상을 떠났고, 그에 대한 자료들이 거의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에 언급 자체가 조심스럽지만 그가 첫 수를 변에다 둔 것 자체만으로도 이단으로 꼽힐 충분한 사유가 된다고 볼 수 있겠다. 시대상의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진 편이라 상대가 돌을 던지는 등의 과격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겠지만, 분명히 슈사이 명인만큼 불쾌했을 것이고, 김종범의 정신 상태를 의심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두 전문기사들을 비교해 볼 때 가장 큰 차이는 인정을 받았나 아닌가하는 여부이다. 우 칭위엔의 경우 인정받기까지의 시간이 길지 않았고, 결국에는 타이틀을 따내면서 신포석이 절대로 이단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낸다. 하지만 아쉽게도 김종범의 경우에는 아쉽게도 확인하는 마지막 작업을 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증명되지 않았다고 해서 틀리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는 변에다가 첫수를 착수 하는 것이 비정상적인 방법일지 몰라도 훗날에는 어떻게 평가 될지 알 수 없으므로, 여기서 덮어 두기로 하겠다.

오늘날 생물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transposition을 지극히 당연한 사실로 받아 들이 듯이, 바둑을 두는 사람이라면 우 칭위엔이 두었던 이 바둑에 대하여 거의 감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무도 감동하지 않는다는 이 사실이야말로 이 transposition 현상과 바둑의 가치를 정확하게 지적한다. McClintock의 뛰어난 관찰력과 우 칭위엔의 선구적인 발상! 이미 그들의 그늘아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앞서 설명했듯이 만만치 않은 날들을 겪어야만 했다. 과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학문적인 이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공감하리라 생각하고, 이제는 앞의 두 사례가 보이는 가장 큰 두 가지 차이점에 대해서 지적하고 싶다. 아마 이 차이점에 의해서 McClintock의 경우에는 30년이라는 긴 세월이, 우 칭위엔의 경우는 비교적 짧은 시간이 걸린 것으로 보인다. 먼저 자기편의 유무이다. 우 칭위엔의 경우 기타니라는 명망 있는 기사가 그의 편이 되 주었다.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그 둘은 신포석에 대한 책을 펴내는데 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McClintock의 그녀의 학문에 대해서는 철저히 혼자였었다. 사실 1950년대를 주름잡았던 유전학자, 분자생물학자, 발생학자들을 보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한다. DNA의 구조를 발견해낸 Watson-Crick이나 초파리의 대부 모건, 허쉬, 체이스 등등 현대에서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의 거장으로 칭송받고 있는 이들이 바로 McClintock과 동시대 사람들이었으나 그 누구도 그녀를 지지하지 않았다. 따라서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렸으리라 추정된다. 그리고 학문적인 차이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의를 굉장히 중요시 하는 바둑이 생물학, 자연과학에 대해서 훨씬 포용력이 넓으며, 열려있다. McClintock이 10년 넘게 연구한 완벽한 자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과학자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반면 우 칭위엔의 신포석이 처음에는 냉대를 받았을지 몰라도 그가 승승장구 하자 사람들은 신포석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인정하기에 이른다. 과학의 이런 편협함을 “생명의 느낌”의 저자인 Evelyn은 이렇게 표현했다.

“과학은 원래 그런 것이다. 새롭게 제시하는 주장이 독특해서 기존의 믿음과 크게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그에 대한 저항은 거세게 마련이다. 또한 기존 이론의 내용과 그 편차가 크면 클수록, 새로운 이론을 이해하기는 그만큼 어려운 법이다.”

" 과학자나 과학철학을 하는 사람은 ‘과학적 언어’로 말한다고들 이야기 한다. 그래서 이 분야의 전문적 이야기는 언제나 명확하고 오해의 소지가 없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과학의 언어도 따지고 보면 일상의 언어와 크게 차이가 없다. 모호함을 배제하고 항상 정확하고 투명해서 오해의 여지가 없으리라 믿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게다가 기존의 것과 다른 새로운 이론이나 논거를 세울 때는 더욱 그렇다.”

“양(量)의 개념만이 의미가 있는 과학 내에서 소통할 때에도 그들 나름의 문법이 있고 화법이 있어, 이를 준수해야만 과학으로 인정을 한다. 아무리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공식도 그것만으로는 소용이 없다. 수학적인 공식으로 의미를 표현하면 그만인 이론물리학의 개념조차, 비슷한 작업을 하는 사람끼리 공유하는 공동의 언어를 쓰지 않는 한 좀처럼 수용되지 않는 것이다. 같은 패거리임을 확인하는 은어처럼 자기들끼리 사용하는 언어를 말할 줄 모른다면, 그런 사람의 말에는 절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어떤 논거도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기득권을 지닌 과학자 집단에서 여려 해를 함께 보내며 그들의 어법을 배우고 그 언어를 능통하게 쓸 줄 아는 사람이 아니면, 아무리 뛰어난 과학적 지식이라도 소통의 길이 없는 것이다.”

결국 사용하는 McClintock처럼 다른 과학자들과 사용하는 과학적 언어가 서로 다르면 다른 과학자들은 내용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Ⅲ 결론

지금까지 우리는 Network적인 구조, 새로운 것에 대한 발견 그리고 학문적 이단에 대해서 유전학과 발생학을 바둑과 비교하면서 학문적 유사성과 차이를 찾아보았다. Network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발생학과 바둑은 그 구조적인 측면에서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놀랄 만큼의 유사성을 보았다. 또한 새로운 것에 대한 발견에서도 그러했다. 아래 그림을 보자. 오른쪽은 McClintock이 콜드스프링 하버에서 transposition에 관한 연구를 할 당시의 모습이고 왼쪽은 이창호가 대국 중 수읽기 하는 모습니다. 서로 다른 학문을 하고 있고, 서로의 성(性)도 다르고, 시대도 다르지만 그곳에 매진해 있을 때의 모습은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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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학문적인 이단(異端)에 대해서는 차이를 보였다. 비록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기존의 것과 상당한 차이를 보일 때에, 어느 정도의 마찰이 있다는 사실은 공통적이지만 그것을 대처하는 방법에서 생물학은 바둑에 비해 더 보수적일 뿐만 아니라 편협하며 비효율적이다. 생물학이 좀 더 빠르고 획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바둑이 증명이 된 새로운 사실을 유연하게 받아 들이 듯이 새로운 것에 대한 배타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를 버려야 할 것이다.

Ⅳ References

《참고 서적》

김재희 역. 『 생명의 느낌』. Evelyn Fox Keller. 서울: 도서출판양문, 2001.

Wolpert, Lewis. Principles of Development. 2nd ed.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2

《참고 인터넷 사이트》

http://100.naver.com/100.php?where=100&id=125635

http://100.naver.com/100.php?where=100&id=88298

http://kr.encycl.yahoo.com/enc/info.html?key=1469640

http://kr.encycl.yahoo.com/enc/info.html?key=1365710

http://mjbaduk.e-baduk.com/

http://www.cyberkiwon.com/cyberkiwon/cyberbaduk/best/best_208.html

※ 글을 마치며

처음 이 주제를 잡고, 내용을 구상했을 당시에는 바둑을 자신의 삶으로 살고 있는 분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바둑의 학문적인 면과 그들에게 녹아있는 철학을 배운 후에 내가 전공하고 있는 생물학과 비교를 해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게 바램대로 이루어 지지 않아서 바둑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 채 글을 쓰게 되어서 반쪽짜리 글이 된 것 같아 안타깝다. 다만 글을 쓰면서 생물의 각 분야들이 여러 면에서 바둑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면에서 굉장히 신기했고, 서로간의 차이점이 서로의 학문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