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사유..!/체계와 의미.

[ㅍ] 시간의식과 서사구조-이상

온울에 2008. 5. 7. 10:10

목 차

Ⅰ.서론
Ⅱ.시간의식과 표현기법
Ⅲ.서사구조 분석
1.「날개」 의 서사구조
2.「실화」 의 서사구조
Ⅳ.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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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자명 서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학술지명 인문과학연구 
권 10 
호 1 
출판일 2001. 2. 28.  




이상 문학에 나타난 시간의식과 서사구조


김진석
서원대학교 사범대학 교수
2-024-01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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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서론
한국문학은 “모더니트들에 이르러서 비로소 20세기 문학은 추구”1) 되었다고 할 때, 의식의 흐름을 다룬 소설은 이와 같은 문학적 특성을 가장 밀도 있게 반영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발자끄〉류의 소설이 인간의 삶을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충실하게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면, 이들 소설은 인간의 내면세계를 사실적으로 제시하기 위한 분석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간과 자아는 서로가 서로의 필요 조건이 되어서 경험의 개개의 순간들을 통합(integrating)하여 어떤 종류의 통일체를 구성한다. 그것은 “ ‘마음에 포착된 현재’는 이것의 사항들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 사항들이 하나의 의미 있는 패턴,즉 하나의 연속적 ‘현재’에 결합되므로 하나의 통일체인 것”2) 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프루스트(M. Proust)나 조이스(J. Joyce)처럼 4분의 3은 보이지 않는 빙산과 같은 인간 존재를 “혼돈에 입각하여 세계를 다시 파악하기 위한 필사적인 시도”3)에 해당된다.

이상은 한국문학사를 통하여 근대적 자아의식을 최초로 획득한 작가로 평가된다. 이것은 그가 시간을 존재의 본질로 생각했다는 말과 무관하지 않다. 그것은 시간의 개념은 자아의 개념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유기적생명이란 그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화되는 한에만 존재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필연적으로 시간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연결된다. 이 때 자아를 해명하려는 탐구 역시 ‘잃어버린 시간의 탐구’로 연결된다. 인간이 이런 탐구에 전념하면 할수록 시간을 의식하고 인간 생활에 대하여 시간이 띤 의미를 관심을 갖고 몰두하게 된다. 그만큼 현대인은 시간을 생활의 보편적 조건으로 또한 인간과 사회를 인식하는데 무시할 수 없는 요인으로서 마음속에 깊이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4).

이와 같은 자아나 의식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부유하는 무질서한 파편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것들을 결합하여 어떤 종류의 “통일체로 만든다는 것은 그 무질서한 파편들이 오로지 ‘동일한’ 자아의 퍼스펙티브(Perspective)에 관계되거나 이 퍼스펙티브 속에서 포착될 때만 의미 ? 유기적이고 연상적인 이미지에 의하여 밝혀지는 의미 - 가 발생”5) 하게 된다. 여기에서 이상의 작품은 “그로테스크한 왜곡의 상태와 불안, 세계 파국의 공포, 의식체계와 형태의 파괴, 숫자의 뒤틀림과 유희 그리고 자아 분열과 자의식의 과잉 등으로 일관된 비합리적인 세계”6)로 나타나게 된다.

이상 문학의 이런 측면은 한국소설의 양태적 전개를 현저하게 변전시켰다는 점에서 한국문학사의 한 단층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자의식의 표현 문제와 관련하여 그가 시도해 보인 다양한 기법은 현대성의 획득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여기에서 한국문학의 특질을 규명하기 위한 선행작업의 일환으로 ‘의식의 흐름’의 문학을 추구했던 이상의 문학에 대하여 비평적 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고는 「날개」 와 「실화」 에 나타난 시간의식과 서사구조를 분석해 봄으로써 그 문학적 특질을 규명해 보고자 한다.

Ⅱ.시간의식과 표현기법
현대소설의 ‘의식의 흐름’의 수법은 전통적 자아의 개념이 송두리째 붕괴되고 있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자아를 견고하고 실체적인 통일체로 보는 관점에서 탈피하여 인간의 내면세계를 탐구하기 위한 시도이다. 작가는 이와 같은 유동적인 의식의 흐름을 일관성 있는 구조로 환치시키기 위하여 다양한 문학적기법을 구사한다. 그 중에서도 ‘의식의 흐름’은 월리암 제임스가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연속적이며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마음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이래 오늘날에는 유동적인 작중인물의 심리 상태를 지칭하는 문학적 용어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이론적인 측면에서 작품의 기법이냐, 소재냐 하는 측면에서 상반된 견해가 제시되어 있다. 레온 에델(Leon Edel)과 로버트 험프리(Robert Humphrey)의 서로 다른 견해가 그것이다. 전자가 이것을 작중인물의 심리를 그려내기 위한 기법으로 보고 있는데 반해 후자는 묘사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① “내적독백”이란 말은 우리가 「햄?」 의 마음속에서 그 존재를 암시할려고 한 유동적이며 미분화된 상태의 사상을 지칭하는데는 충분치 않다. 기술적인 “의식의 흐름”이란 말이 보다 적합한 말이다7).

② 이 부류(의식의 흐름-필자)에 속하는 몇몇 작품을 살펴보면, 제재를 통제하고 작중 인물을 묘사하는 기법이 소설마다 명백히 다르다는 사실을 곧 알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의식의 흐름〉의 기법이라고 하는 특정한 기법은 없다. 그 대신 〈의식의 흐름〉을 묘사해 내기 위해 몇 가지 전혀 다른 기법이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8).

이와 같은 문제와 관련하여 시간은 정신분석학과 같은 심리학이론에서 특히 중요시되고 있는데, 이것은 현대문학에 있어서 시간의 테마와 시간적 기교에 연결된다. 그 중에서도 ‘의식의 흐름’이라는 용어는 그 표현 기법과 관련하여 ‘자유연상’ ‘내적 독백’ ‘이미지의 논리’ 등 현대문학의 대부분을 특징짓고 있는 기교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현대소설이 의식의 흐름을 다루고 있다고 할 때, 이것은 기법보다는 소재의 면에 역점을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이것을 현대소설의 기법으로 파악한 에델의 견해에는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용어는 현대의 모든 작품에 부정적이고 무의미하게 사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제한적이고 한정적인 의미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9).

현대소설은 유동하는 의식을 표현하기 위하여 영화의 몽타즈 기법을 원용하고 있다. 이것은 관념의 상호관계 또는 연합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가지 영상을 빠르게 연결시키기도 하고, 하나의 영상에다 다른 영상을 중복시키기도 하며, 하나의 영상에 초점을 맞추어 놓고 그 주위를 관련 있는 다른 영상으로 둘러싸는 등의 방법이다. 그 중에서도 ‘의식의 흐름’을 다룬 소설은 의식의 상호관련이나 연합을 보여주기 위하여 시간과 공간의 몽타즈(time and space montage) 수법을 사용한다. 현대인에게 있어서 시간은 생활의 보편적인 조건으로써 자아의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탐구와 사회의 연구에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본질적으로는 주제의 구성적요소의 방법, 또는 여러 가지 다른 것의 관점을 나타내는 다양성의 통일을 나타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 작품을 구성하는 것은 경험 세계의 자아를 재구성하는 일이라고 할 때, 시간의 몽타즈는 시간과 자아의 관계를 해명하는 유용한 기교이다. 이 때의 시간은 경험으로서 포착되는 시간의 요소와 깊은 연관이 있다. 이것은 경험세계라는 맥락 속에서 또는 이런 경험의 총화인 인간 생애의 맥락 속에서만 터득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의식 속에서는 과학적으로 구분되는 시간의 여러 양상들- 과거ㆍ현재ㆍ미래 - 은 구별되지 않는다. 『율리시즈』 (Ulysses)에서의 표면적인 시간이 하루로 국한되어 나타나듯, 의식 속의 모든 사건이나 행동은 ‘초시간적’ 내지는 ‘무시간적’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의식의 흐름을 다룬 문학속의 시간은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또는 가끔 지적되는 것처럼 심리적인 것”10)이 된다.

이와 같은 시간적 특질을 오거스틴(St. Augustine)은 기억과 기대라는 심리적범주와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은 현재의 시점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항상 현재에 일어나는 경험이요, 이념이며 사물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과 기대에 의하여 의미 있는 시간적 연속체를 구성하여 과거와 미래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란 과거사에 대해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기억 경험이며, 미래란 미래사에 대한 현재의 기대나 예상이라는 소론이 그것이다11). 이런 관점에서 현대소설에 반영된 시간적 특질은 전대의 소설과 비교해 볼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고대소설은 한결같이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계기적인 시간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근대소설도 시간의 역전현상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대체로 계기적인 시간의 흐름을 취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의식의 흐름을 다룬 소설은 거듭되는 회상과 예측으로 인하여 연속적인 시간의 진행이 파괴되는 시간의 몽타즈 현상을 드러내고있다. 이것은 시간은 “생의 시간인 것처럼 이야기의 수단”12) 이라는 시간 의식에 대한 명증한 인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공간의 몽타즈는 시간은 고정되어 있고 공간적인 요소가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학 작품은 어느 것을 막론하고 시간적인 요소와 공간적인 요소가 아울러 내재되어 있다. 이것들은 서로 병렬적인 대등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한 작품에서의 공간적 질서는 시간적 질서의 공간적 측면이고, 시간적 질서는 공간적 질서의 시간적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계기적인 시간의 흐름에 바탕을 둔 소설의 공간 구조는 그 시간의 변화에 따른 논리적인 변천을 구사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조이스나 버지니아 울프와 같이 시간의 계기성을 무시한 작가들에게 있어서의 공간은 의식의 흐름에 따른 유동성과 혼란상을 그대로 반영하게 된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카메라 아이(camera eye)’ ‘멀티플 뷰우(multipleview)’ 등을 들 수 있다. 조이스가 공간의 몽타즈의 바탕 위에서 내적독백(內的獨白)을 구사하였다면 버지니아 울프는 그 반대의 기법을 구사한 것으로 되어 있다13). 그러나 이러한 기법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은 비정적이고도 다초점적인 심적 경험의 세계를 보다 효과적으로 묘사하기 위하여 원용한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이상은 한국 작가들 가운데 시간과 자아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가장 명확하게 인식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시간 속에 유폐되어 있는 과거의 기억들을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현재적인 체험으로 되살리기 위하여 시간의 물신화 현상을 철저하게 거부하고 있다. 말하자면, 시간은 존재의 본질이라는 측면에서 삶의 실체를 기억과 기대에 의하여 의미 있는 시간의 연속체로 구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경험 속에 있는 시간적 지표는 “영원의 동적 이미지”14)로 환치되며, 도식적인 삶을 탈출하려는 자의식은물리적 시간의 거부 내지는 파괴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시간의식은 다음의 구절만을 보아도 자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①시계도칠려거든칠것이다하는마음보로는한시간만에세번을치고삼십분이남은후에육십삼분만에쳐도너할대로내버려두어버리는마음을먹어버리는관대한세월은그에게이때에시작된다15).

② 日慕청산-

날은 저물었다. 아차! 아직 저물지 않은 것으로 하는 것이 좋을까보다.

날은 아직 저물지 않았다16).

인간의 일상생활은 개개인의 시간 경험의 동시성을 제공하는 객관적 시간이라는 고정된 틀 속에서 영위된다. 이것은 물리적인 시간 개념으로 시계에 의하여 그 공시성이 확보된다. 그런데 이상의 시계는〈한시간만에세번을치고삼십분이남은후에육십삼분〉을 치는 고장난 것으로 그 객관성 및 공준성을 상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저녁을 〈아직 저물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는 주관적 시간 개념 속에서의 과학적 시간은 사실상 어떠한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단지 작중 자아의 의식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변질된 자의적인 시계만이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이것은 “시계 시간의 메카니즘을 부정, 배제하는 그의 시간 의식의 역설적표현”17)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이상문학의 이러한 시간적 특질은 서사구조를 통하여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서사체란 다른 사실들 가운데서 인과적 연쇄와 언어가 광대한 규약을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사건들이 산발적이고 동적순서로 연결되어 있는 의식세계를 완결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서술의 신뢰감을 주는 일관된 목소리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상은 초현실주의나 다다이스트의 시처럼 의식의 한 모통이를 스쳐 가는 연상들을 포착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시간의 구조도 연대기적 통일성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ㆍ현재ㆍ미래가 역동적으로 융합되어 있는 동적 질서(dynamic order)를 취하고 있다. 소설이 리얼리티에 입각한 객관의 문학이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듯한 반산문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와 수필의 요소를 동시에 수용하는 행위를 통하여 의도적인 장르의 해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문학의 각 장르는 작가가 세계를 인식하는 독립된 틀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에는 시의 이미지즘적 요소와 수필의 주관적 사색을 연상케 하는 세계가 아울러 접목되어 있는것이다.

①觸角이 이런 情景을 圖解한다.

悠久한 歲月에서 눈을 뜨니 보자, 나는 郊外 淨乾한 한 방에 누어 自給白足하고 있다. 눈을 둘러 방을 살피면 방은 追憶처럼 着庶한다. 또 창이 어둑어둑하다18).

②허리를 굽혀서 나는 그저 금붕어나 들여다보고 있었다. 금붕어는 참 잘들 생겼다. 작은 놈은 작은 놈대로 큰 놈은 큰 놈대로 다 - 싱싱하니 보기 좋았다. 내려 비치는 5월 햇살에 금붕어들은 그릇 바탕에 그림자를 내려뜨렸다. 지느러미는 하늘하늘 손수건을 흔드는 흉내를 내인다. 나는 이 지느러미 수효를 헤어보기도 하면서 굽힌 허리를 좀처럼 펴지 않았다. 등어리가 따듯하다19).

근대과학의 발달로 인한 “시간의 동공화”20)는 종교적 신앙에 바탕을 두었던 영원성의 붕괴는 물론 시간의 파편화와 자아의 해체현상을 낳았다. 현대의 작가는 이와 같은 해체된 시간의 파편들을 하나의 통일된 유의적 형태로 재구성하기 위하여 과거와 미래를 동적으로 용합하는 초월적 시간 구조를 탐구하게 되었다. 특히 역동적인 “마음의 분위기”21)를 표현하고 있는 이상의 소설에서 이런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상은 내면 속에서의 복잡한 시간의 양상들이 작중자아의 경험과 생활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직접적으로 제시하기위해 “다른 차원에서 자신을 객관화한 또 하나의 이상을 의식”22) 하고 있다. 따라서 자의식은 보다 분석적이고도 도해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동안에 貞姬는 여러 번 제(내 때꼽째기도 묻은) 이부자리를 찬란한 日光 아래 널어 말렸을 것이다. 累累한 이 내 昏睡 덕으로 부디 이 내 屍體에서도 生前의 슬픈 記億 높이 훨 훨 날아나 가버렸으면-

나는, 지금 이런 불쌍한 생각을 한다. 그럼-

- 滿二│ㆍ六歲와 三個月을 맞이하는 李箱先生님이여! 허수아비여!

자네는 老翁일세. 무릎이 귀를 넘는 骸骨일세. 아니, 아니.

자네는 자네의 먼 祖上일세. 以下23).

이상은 스토리를 전개하면서 하나하나의 사건에 대하여 요설적인 어투로 끊임없이 분석을 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작중자아를 ‘나’ ‘너(자네)’ ‘이상’ 등 다양한 관점이서 관찰하여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다양한 호칭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는 한 인물이지만 그 기능적 역할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 ‘나’는 이상자신이 느끼는 나이고, ‘너’는 이상이 자기를 남처럼 바라보는 이상이고, ‘이상’은 제삼자가 제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이상”24)을 각각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합리적인 세계로 나타나는 〈나〉라는 존재를 의식하는 또 하나의 내가 관찰하는 입장에 선다면, 내면에서 대상을 보는 것”25)이 뒤집혀서 보이는 메피우스의 띠에 해당된다.

이와 같은 이상의 작품에서 대응적 리얼리즘의 요소는 발견되지 않는다. 사건이 진행될수록 작품의 내용은 불투명해 진다. 이것은 구조적인 문제로까지 확대되어 작품 자체가 모순덩어리와 같은 혼란스러운 양상을 드러낸다. 특히 시점과 화자의 문제는 심한 부조화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사실은 「지주회시」만을 살펴보아도 자명하게 드러난다. 이 작품은 언어의 특수한 교신의 형태로 근대소설에서 관습처럼 되어 있는 띄어쓰기마저 의도적으로 무시되어 있다. 이러한 “분할 공간의 막힘 - 띄어쓰기에 의한 낱말들 사이의 여백들은 활자와 여백으로 공간을 분할한다고 말할 수 있다 - 은 다분히 의식적이요, 조작에 의한 공간의 찌그림”26)으로 내면세계의 탐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의도적으로 띄어쓰기를 무시함으로써 마음에서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의식의 흐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작중화자의 문제와 관련하여 ‘그’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분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안타고니스트인 아내로 환치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작중화자의 일상이 구술독백(oral monologue)을 통하여 아내의 시점에서 분석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시점의 발화는 다양한 심리적 거리(psychic distance)를 감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소설이 어느 특정한 위치에 선 화자에 의해 전달된다는 통념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안해는깜짝놀란다. 덧문을닫는-남편-잠이나자는남편이덧문을닫았더니생각이많다. 오중이마려운가-가려운가-아니저인물이왜잠을깨었나. 참신통한일은-어쩌다가저렇게사(生)는지-사는것이신통한일이라면또생각하여보자는것은더신통한일이다. 어떻게저렇게자나? 저렇게도많이자나? 모든일이稀한한일이었다. 남편. 어디서부터어디까지가부부람-남편-안해가아니 라도그만안해이고마는고야. 그러나남편은안해에게무엇을하였느냐-담벼락이 라고외풍이나가려주었더냐27).

이것은 이상이 소설을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탐구의 수단”28)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의 다양한 기법은 시간과 경험의 분열화가 현저하게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자기동일성을 이를 수 있는 자아 탐구의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부유하는 인간의 의식 세계를 대응이론(correspondence theory)에 의하여 재현했을 때 내면세계를 통일적으로 관류하는 어떤 유의적 의미강도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단편적이고 무질서한 기억의 파편들로 모자이크된 삽화에 불과하다. 여기서 이상은 인간의 실존의 원리로서 내재적 시간과 자의식의 중요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이것을 당시의 문단 상황으로는 실험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심리적 리얼리즘의 기법을 통하여 현실감 있게 표현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Ⅲ.서사구조 분석
1.「날개」 의 서사구조
「날개」 는 이상 문학의 전개 과정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이상이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 를 발표(1934. 7. 24 ~ 8. 8)하였을 때, 독자들이 이 작품에 대하여 보인 반응은 한 마디로 ‘미친놈의 잠꼬대’라는 식이었다. 이것은 한국문학사의 영역에서 친족 관계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그로테스크한 양상일 뿐만 아니라 난해성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시도는 “독자로 하여금 기괴하다고 느끼게 한 것 자체가 일종의 카타르시스로의 해제반응”29)은 될 수 있었지만 자신의 삶과 작가의식을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데는 한계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이상은 1936년 이후부터 시보다는 소설의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이것은 시가 지니고 있는 한계성을 소설을 통하여 극복하고자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상은 분명한 장르 의식을 지니고 “삶의 경험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얻기 위하여 끝까지 끊임없는 노력”30)을 기울인 작가라고 할 때 「날개」 는 그 대표적인 작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날개」 는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프롤로그(Prologue)에 해당되는 전반부와 본격적인 사건이 전개되는 후반부가 그것이다. 먼저, 전반부는 지적 파라독스를 통하여 작중자아의 자아분열적인 의식세계를 제시해 놓고 있다. 이부분은 작중자아의 무의식에 가까운 내면세계를 내적독백으로 기술해 놓고 있다. 이것은 사건의 전개라기보다는 연상의 나열인 듯한 느낌을 준다. 그 문장하나하나가 시를 연상케 하는 감각적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어 설화적 기능이 상당히 위축되어 있다. 문장 구성상 최소 단원으로 압축된 직접화법의 문장을사용해 마치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사상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스토리의 전개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독립된 장으로 볼 수 있다.

「劍製가 되어 버린 天才」 를 아시오? 나는 愉快하오 이런 때 戀愛까지가 愉決하오.

肉身가 흐느적흐느적하도록 疲勞했을 때만 精神이 銀貨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蛔 배않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리 속에 으례히 白紙가 準備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파라독스를 바둑布石처럼 늘어놓소. 可憎할 常識의 病이오.

...(중략)...

나는 내 非凡한 發育을 回顧하여 世上을 보는 眼開을 規定하였소.

女王蜂과 未亡人-世上의 하고많은 女人이 本質的으로 이미 未亡人이 아닌 이가 있으리까? 아니! 女人의 全部가 그 日常에 있어서 개개 「 未亡人」이라는 내 論理가 뜻밖에도 女性에 對한 昌瀆이 되오? ? 빠이31).

프롤로그는 「날개」의 주제를 포괄적으로 제시한 의미부에 해당된다. 이 부분에 작중자아의 의식과 삶의 단면이 상징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작가는 작중자아의 의식세계를 형상화하기 위하여 유사한 모티브를 반복적으로 구사해 놓고 있다. 이것은 ‘무시간적’인 상태에서의 서술이기 때문에 상당히 혼란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트모티브(Leitmotif)는 비교적 분명하게 제시 되어 있다. 1장부터 7장까지 반복되고 있는 작중자아의 비정상적인 삶의 양상과 병리적인 의식세계가 그것이다. 이런 주인공의 의식세계에는 의미 있는 삶의 바탕이 되는 가치의식이 전혀 개재되어 있지 않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로 육신이 흐느적거릴 정도로 피곤할 때만 정신이 맑아지는 병리적인 현상을 드러낸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자아분열적인 현상만을 되풀이하여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이상은 동시대의 대부분의 작가가 마르크스주의나 모더니즘의 구호에 편승해서 헛되이 날기를 주장하고 있을 때, 그는 “날 수 없는 한국의 근대적 자아의 양상을 파 내려가 보는 고행”32)을 겪게 되는 것이다.

「날개」에서 연계성을 띤 스토리의 전개는 프롤로그가 끝나는 부분부터 시작된다. 이 부분은 사건이 소피스티케이션 없이 비교적 논리성을 띠고 전개된다는 점에서 그 난해성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적독백을 바탕으로 하여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통일되지 않은 시간 구조를 드러낸다. 서술의 시간과 허구의 시간 사이에 시간 착오가 생겨서 시간의 흐름을 파괴하고 있다. 특히 이것은 주인공이 외출을 단행하기 이전까지의 서사구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토도로프(Tzvetan Todorov)의 야이기 문법33)에 의하면, 이와 같은 서사구조는 평온한 상태를 나타내는 정태적 유형일 때는 형용사를, 역동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동적 유형일 때는 동사를 각각 기본형으로 취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날개」 에서는 사건의 전개를 의미하는 동태적 유형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인물간의 대화나 행동에서 빚어지는 사건의 서술보다는 내면세계에 대한 자기고백과 설정된 상황의 분석에 더 치중하고 있다. 경험의 고백적 서술의 일종인 ‘일화의 유형’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외적 행동보다는 분석적인 자기탐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는 어데까지든지 내 방이 - 집이 아니다. 집은 없다. - 마음에 들었다. 방안의 기온은 내 체온을 위하여 쾌적하였고 방안의 침침한 정도가 또한 내 안력을 위하여 쾌적하였다. 나는 내 방 이상의 서늘한 방도 또 따뜻한 방도 희망하지는 않았다. 이 이상으로 밝거나 이 이상으로 아늑한 방을 원하지 않았다. 내 방은 나 하나를 위하여 요만한 정도를 꾸준히 지키는 것 같아 늘 내 방에 감사하였고 나는 또 이런 방을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 같아서 즐거웠다.

그러나 이것은 행복이라든가 불행이라든가 하는 것을 계산하는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나는 내가 행복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고 그렇다고 불행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그날그날을 그저 까닭없이 펀둥펀둥 게을르고만 있으면 만사는 그만이었던 것이다34).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 역동적인 행위를 묘사하는 동태적 유형은 거의 없다. 그 반면에 작중자아의 내면세계를 ‘사고의 받아쓰기’ 형태로 제시해 놓고 있다. “유기적 생명이란 그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화될 때만 존재”35)의 의미를 지니게 되는데, 의식의 절멸화만을 시도하고 있는 주인공의 시간의식은 제로 상태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시간의 의미를 상실한 인간의 삶이란 소멸과 퇴행을 실증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파괴적인 요소일 뿐이다. 작중자아는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유폐된 시간과 공간에서의 식물적인 반수상태의 삶을 〈절대적인 상태〉인 것처럼 위장하고 있다. 또한 대타관계에 있어서도 피보호적이고 자기방어적인 유아적 상태로 퇴행하는 정신적 불구성을 드러낸다. 이것은 작중자아의 어두운 내면세계의 일면을 보여 주는 것으로 여기에서의 성인의식은 완전히 파멸된 상태로 드러난다.

① 나는 허리와 두 가랑이 세 군데 다 - 고무 밴드가 끼어 있는 부드러운 사르마다를 입고,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잘 놀았다36).

② 아내에게 내객이 많은 날은 나는 온종일 내 방에서 이불을 쓰고 누워 있어야만 된다. 불장난도 못한다. 화장품 냄새도 못 맡는다. 그런 날은 나는 의식적으로 우울해 하였다. 그러면 아내는 나에게 돈을 준다. 오십전짜리 은화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그러나 그것을 무엇에 써야 옳을지 몰라서 늘 머리맡에 던져 두고두고 한 것이 어느 겨를에 모여서 꽤 많아졌다37).

「날개」 를 닫힌 시공으로부터 열린 시공으로 이행하려는 “의식 또는 삶의 제전적 구조로 이루어진 작품”38) 이라고 할 때, 주인공의 외출은 복합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유폐된 공간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는 동시에 새로운 세계와의 접목을 의미한다. 주인공이 외출한 표면적 이유는 금전의 수수에서 오는 〈쾌감이란 것의 유무를 체험〉하기 위해서 였지만, 그 내면에는 숱한 수수께끼가 내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아내에게는 왜 늘 돈이 있나〉〈아내의 직업은 무엇인가〉〈왜 내객은 돈을 놓고 가나〉 등 닫힌 세계에서 유아적인 사고로는 풀 수 없는 의문들이 복합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의미의 심도가 점증되어 외출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작중자아는 자신과 주변의 세계를 새로운 안목으로 보게 된다. 우발적인 사건과 작은 사건들의 되풀이와 같은 반복을 통하여 의문점의 탐구라는 심리적 패턴(psychological pattern)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작중자아의 의식의 변전을 일으키는 화소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첫 번째 외출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는 도중 아내가 낯선 남자와 마주 앉아 있는 것을 봄. 내가 이런 행위를 서운하게 느끼자 아내는 노기를 띠움. 그 날 밤 아내에게 5원을 주고 그 방에서 잔 다음, 내객이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는 심리의 비밀을 깨달음.

② 두 번째 외출

다시 외출하여 자정이 넘어서 돌아오다가 아내가 대문에서 다른 남자와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을 모른 체하고 자기의 방으로 향함. 그 날도 2원을 주고 아내의 방에서 자며, 그 다음 날 저녁은 아내와 겸상하여 먹음.

③ 세 번째 외출

아내가 준 돈으로 경성역 티이루움에서 커피를 마시며 소일하다가 비를 맞고 돌아옴. 그 과정에서 〈아내가 덜 좋아할 것〉을 목도함. 그 이튿날부터 아내가 주는 감기약을 먹고 졸음을 견딜 수 없어서 한 달 동안 잠을 잠.

④ 네 번째 외출

아내가 감기약이라고 준 것이 아스피린이 아니라 아달린이란 사실을 알고 공원벤치로 가 일주야를 잠. 그 이튿날 집으로 돌아오다 〈내 눈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을 보았는데, 아내가 매무새를 풀어헤친 채 발악을 함.

⑤ 다섯 번째 외출

〈나〉는 분노를 느끼며 바지 속에 남은 돈을 털어 미닫이를 열어 문지방 위에 놓고 밖으로 줄달음쳐 나옴.

서사 유형과 관련하여 “추리소설을 궁금해 하고 불안해 하는 심리의 움직임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서사방법”39)이라고 할 때, 「날개」 의 이 부분은 일종의 추리유형을 원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지하국 도적퇴치 설화로부터 시작된 추리 유형의 핵심은 도적과 도적 맞은 사람이 쫓고 쫓기는 사건”40)에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날개」 는 내면세계의 탐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추리소설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외출은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추리소설의 유형을 원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내가 〈나를 감금하여 두다시피〉한 이유는 간명하다. 그것은 자신의 부정을 감추기 위한 필연적인 행위였다. 그런데 나의 외출로 인하여 그 비밀의 은폐성은 폭로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연의 산물이라고 하더라도 그 드러남의 결과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에서 쫓는 자와 쫓기는 자, 밝히려는 자와 숨기려는 자와의 대립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나와 아내의 심리적 대립은 일종의 ‘도둑잡기 놀이’를 연상케 한다. 나는 세 번째 외출을 통해서 돈의 기능을 어렴풋이 인식할 만큼 유아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출은 ‘깨달음’을 전제로 한 제의적 양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내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아내는 이것에 대립하여 〈자정 이전에 돌아오지 말라〉는 시간적 유폐를 단행하지만 비밀의 일단을 엿보이고 만다. 〈나는 보면 아내가 좀 덜 좋아할 것〉을 보았다는 진술은 아내의 비밀이 부분적이지만 주인공에게 노출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대립적 상황에서 아내는 주인공을 감금해 놓기 위해 수면제를 먹여 잠을 재우고 있다. 이것은 자신의 부정을 감추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은폐행위로 볼 수 있다. 이 때의 잠은 시간적인 유폐를 넘어서 의식의 절멸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드러냄’을 원리로 하고 있는 서사 양식에서는 파국을 위한 복선이 될 뿐이다. 주인공은 아내가 한 달 동안 자신에게 복용시킨 것이 수면제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아내는 내가 자는 동안매 무슨 짓을 했나?〉 〈나를 조금씩 죽이려던 것일까?〉 등 분노에 찬 물음과 함께 낮 외출을 단행한다. 그리고 그 이튿날 주인공의 귀가에 의해 아내의 비밀이 여지없이 폭로되고 만다. 이런 의미에서 작중자아는 다섯 번에 걸친 외출을 통하여 그 스스로가 설정해 놓은 자폐의 벽을 뚫고 나와 역동적인 자기통일성(自己統一性)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뚜우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끊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의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내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41).

회탁의 거리에서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사회를 생각하던 주인공은 실존의 상황에 빛을 던져주는 “현현의 시간”42)을 체험한다. 이것은 “심미적 현상의 밝은 광휘가 그 전일성과 조화에 매혹된 마음에 의해서 찬란하게 파악되는 순간”으로 갈바니(Luigi Galvani)가 “영혼의 황홀경”이라고 표현한 것43)과 같은 의미로 파악할 수 있다. 정오가 모든 시계 바늘이 하나로 합치되는 순수한 시간의 단편인 것처럼 작중자아는 현현(顯現)이라는 특수한 시간 속에서 모든 과거가 ‘영원한 현재’로 통합되는 순간의 감동을 체험하는 것이다. 이것은 “외부에서 보면 시간 속에 있는 한 순간이지만 그 내부에서 보면 영원한 전체”44)가 된다. 이 과정에서 “시간과 자아는 서로가 서로의 필수조건이 되어 경험의 개개의 순간들은 ‘통합’(integrating)”45)된 통일체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시간 속에서 작중자아는 ‘마음의 눈’을 통하여 사물의 실상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다. 〈의식과 야심이 말소〉된 왜곡된 자신의 삶의 실체를 회상하고 열린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강렬한 의지를 표명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의식의 절멸상태에서 벗어나 역동적인 삶의 통일성을 마련하기 위한 제의적 과정을 의미한다. 그것은 모든 시간은 경험에 있어서 창조적인 요소이며 “자아를 창조하고 개선하는 영원한 원천”46)인 것처럼 과거에 대한 명증한 인식은 자아가 시간적 연속감과 구조적 통일성을 얻기 위한 전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날개」 는 전통적인 자아 개념과 시간 의식이 파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아분열의 증대화 현상을 보이고 있는 현대인의 의식세계를 심리적 리얼리즘을 통하여 완결감 있게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2.「실화」 의 서사구조
「실화」 는 이상의 작품 가운데 실험적인 탐구의식이 가장 강하게 반영된 작품이다. 그 이전의 작가들이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그것에 대하여 성공을 거두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실제와 유사한 세계를 묘사하는 데 진력한 장인(匠人)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화」 에서 이와 같은 대응적 리얼리즘의 요소는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건이 진행될수록 작품의 내용은 불투명하고 난해해 진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현상은 구조적인 문제로까지 확대되어 작품 자체가 거대한 모순덩어리와 같은 혼란한 양상을 드러낸다. 여기서 〈발자끄〉류의 리얼리즘은 철저히 붕괴된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이상이 소설을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탐구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실화」 는 기법의 면에서 「날개」 와는 현저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총 9장으로 되어 있는데, 그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스토리 텔러의 기능이 상당히 위축되어 있다. 그것은 이 작품을 지배하는 것은 객관적인 현실이 아니라 주관적인 의식세계이기 때문이다. 이런 심층세계는 역동적인 의식의 활동에 따라 무질서하고 혼동된 양상으로 나타난다. 주관적이고 분열적인 시간의 연속으로 인과율에 의한 시간적 진행이 파괴된다. 또한 공간도 한 곳에 고정되어있지 않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환상과 추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시간의 역전현상 속에서 공간적 통일성마저 파괴되고 있다. 과거 서울에서 발생한 사건과 현재 동경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 시간과 공간의 몽타즈 기법으로 엮어져 있는 것이다. 이것을 연대기적인 순서로 배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서울에서의 사건

① S로부터 연의 부정 사실을 들음.

② 연으로부터 부정을 고백 받음.

③ 자살을 결심하고 연이와 같이 살던 방을 나옴.

④ 유정을 만나 자살 결심을 포기함.

⑤ 연의 방으로 돌아와 동경행을 위해 짐을 꾸려 나옴.

동경에서의 사건

① 신보정 하숙에서 연과 유정으로부터 편지를 받음.

② C양의 방에서 그녀가 하는 소설의 이야기를 들음.

③ Y를 만나 술집에서 술을 마심.

④ 신숙역에서 열차를 기다림.

서울에서의 사건이 2개월 전인 10월 23일부터 10월 24일 사이에 일어났던 것이라면, 동경에서의 사건은 12월 23일부터 12월 24일까지 현재의 시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러한 사건들은 그 전개 과정에서 “17회의 역전현상”47)을 일으킨다는 사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서술의 시간과 허구의 시간 사이에 괴리가 일어나 혼란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시간과 공간이 “과거와 현재, 몽상과 현실의 화음을 이루며 대위법”48) 처럼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2장의 경우만 보더라도 자명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전후의 간략한 서술만을 제외하고는 주인공의 내적독백과 C양의 발화로 구성되어 있다. 연속적인 이야기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별개의 이야기가 무질서한 모자이크 형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이야기 형식인 총체적인 사건들의 연속 과정으로서의 플롯이 해체되고 전위적인 실험문학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A 「언더-더 워치-시계 아래에서 말이예요 ? 파이브 타운즈-다섯 개의 洞里란 말이지요 ? 이 靑年은 요 世上에서 담배를 제일 좋아합니다-기다랗게 꾸러진 파이프에다가 香氣가 아주 높은 담배를 피워 빽 빽 ? 연기를 풍기고 앉았는 것이 무엇보다도 樂이었답니다.」

a (내야말로 東京 와서 쓸데없이 담배만 울화가 푹-치밀올 때 저-肺까지줄었지. 연기나 들이키지 않고 이 發狂할 것 같은 心情을 억제하는 도리가 없다)

B 「연애를 했어요! 高尙한 趣味 ? 優雅한 性格 ? 이런 것이 좋았다는 女子의 遺書예요-죽기는 왜 죽어-先生님-저 같으면 죽지 않겠습니다-죽도록 사랑할 수 있나요-있다지요-그렇지만 저는 모르겠어요」

b (나는 일찍이 어리석었더니라. 모르고 姸이와 죽기를 約束했더니라. 죽도록 사랑했건만 面會가 끝난 뒤 大略 二十分이나 三十分만 지나면 姸이는 내가 「설마)하고만 여기던 S의 품안에 있었다49).)

이것은 대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화는 아니다. C양이 자신이 읽은 소설의 스토리를 주인공에게 이야기(A, B)하고 있다면, 주인공은 동경에서의 실패담과 서울에서의 연과의 애정 문제(a, b)를 회상하고 있다. 따라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대화는 C양의 이야기밖에 없다. ()속에 표기된 주인공의 이야기는 모두 발화되지 않은 내적독백이다. 여기에서 허구의 시간과 서술의 시간 사이에 착종이 일어난다. C양의 이야기가 미래로 진행되고 있는 시간 구조를 취하고 있는 반면에 주인공의 의식세계는 과거를 향하여 역행하고 있다. 현재를 기점으로 하여 “과거로 역행하는 시간의 체험과 현재나 미래로 진행하는 시간의 체험”50)이 서로 병행되어 있는 것이다.


 


시간의 역전현상은 「실화」 전체를 일관하는 구조적인 특징으로 볼 수 있다. 무시간적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제 1장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이 교차하면서 병렬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2, 4, 6, 8, 9장이 동경에서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면, 3, 5, 7장은 서울에서의 체험을 서술해 놓고 있다. 그러나 2장과 4장의 경우 서울에서의 사건과 동경에서의 사건이 혼합된 형태로 제시되어 있다. 따라서 이런 특별한 구조를 표현하자면 “시간의 여러 다른 양상- 과거ㆍ현재ㆍ미래 - 이 연속적으로, 점진적으로, 통일적으로 연결되고 혼합된다는 상징적 표현이나 이미저리가 필요”51)하다.

이 과정에서 이상은 연상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 때 ‘이미지의 논리’는 가장 유용한 수법이 된다. 그것은 경험과 기억이라는 내적 세계는 외부세계에서와 같은 객관적 인과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의미 있는 연상(significant association)’에 의해서 인과적으로 결정되는 구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계기적인 시간의 흐름에 있어서 엄격히 구분되는 서울에서의 사건과 동경에서의 사건이 이미지의 논리에 바탕을 둔 연상수법에 의하여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담배’(2장), ‘국화’ ‘입술’(4장), ‘안개’(6장) 등의 연상 매체를 통하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체험의 연속성과 동시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경험세계의 자아를 재구성하고 창조하는 회상으로 작용하여 본래의 경험보다 더 “실제적인”52)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다.

① ⓐ그러나 C孃의 房에는 지금-고향에서는 스케?를 지친다는데-菊花 두 송이가 참 싱싱하다53).

ⓑ 菊花 한 송이도 없는 房안을 휘-한번 둘러보았다. 잘하면 나는 이 醜惡한 房을 다시 보지 않아도 좋을 수-도 있을까 싶었기 때문에 내 눈에는 눈물도 고일밖54)에

② ⓐ웃을 수는 없다. 해가 저물었다. 급하다. 나는 어딘지도 모를 郊外에 있다. 나는 어쨌든 市內로 들어가야만 할 것 같았다. 市內-사람들은 여전히 그 알아볼 수 없는 낯짝들을 쳐들고 와글와글 야단이다. 街燈이 안개 속에서 축축해 한다. 英京 倫敦이 이렇다55)지

ⓑ아스괄트는 젖었다. 鈴蘭洞 左右에 매달린 그 鈴蘭꽃 모양 街燈도 젖었다. 클라리? 소리도-눈물에-젖었다. 그리고, 내 머리에는 안개가 자욱이 끼었다. 英京 倫敦이 이렇다지56)?

①에서 주인공은 ‘국화’를 매체로 하여 C양과 연의 방을 대비적으로 몽타즈해 놓고 있다. 주인공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C양의 방에 꽂혀있는 싱싱한 국화를 보고는 가을이었음에도 국화 한 송이 없었던 연의 쓸쓸한 방과 그곳을 나을 때의 우울한 심정을 토로해 놓고 있다. 이에 반하여 ②에서는 서울과 동경에서의 체험이 ‘안개’를 통하여 동시적이고 교호적인 양상으로 나타난다. ⓐ가 연의 방을 나온 뒤 안개 낀 서울 거리에서의 체험이라면, ⓑ는 C양의 방을 나온 뒤 영란동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이 둘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과 공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안개라는 의미 있는 연상물을 통하여 동일시화 되는 현상을 나타낸다. 이것은 의식과 인상의 혼합물로써 감상적인 ‘마음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게 된다.

이와 같은 의식 속에서는 시간의 여러 양상들은 구별되지 않는다. 이 때의 시간적 요소들은 ‘어저께 텍사스에서 끝나버린 사랑이 4천년전 크레타섬에서 시작한 것을 볼 것이다’라는 울프(Virginia Woolf)의 지적처럼 환상과 상상 속에서 ‘초시간적’으로 공존하게 된다57). 상징파와 이미지스트의 시에 있어서나 의식의 흐름의 소설에 있어서나 이와 같은 시간적 요소가 비약적으로 융합되는 것은 현대문학의 가장 보편적이고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그만큼 이들 작품은 유동적인 내면세계를 자동기술법(automatic writing)을 통하여 무질서하게 기술해 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講師는 C孃의 입술이 C孃이 좀 蛔배를 앓는다는 理由 外에는 또 무슨 理由로 조렇게 파르스레한가를 아마 모르리라.

講師는 맹랑한 質問 때문에 잠깐 얼굵을 붉혔다가 다시 제 地位의 縣隔히 높은 것을 느끼고 그리고 외쳤다.

「쪼꾸만 것들이 무얼 안다고-」

그러나 姸이는 히잉 하고 코웃음을 쳤다. 모르기는 왜 몰라- 姸이는 지금 芳年이 二十, 열여섯살 때 姸이가 女高 때 修身과 體操를 배우는 여가에 간단한 속옷을 찢었다. 그리고 나서 修身과 體操는 여가에 가끔 하였다58).

위의 예문에서 보듯, 주인공은 C양의 파르스레한 입술을 보고 서울에 있는 연을 생각한다. C양의 입술이 이와 같은 것은 〈C군이 범과 같이 건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C양의 생활상은 연의 부정한 과거로 환치되어 나타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쪼꾸만 것들이 무얼 안다고〉 하는 강사의 말은 누구를 향하여 한 말인지 분명하지 않다. 강사에 대한 질문자가 C양이라면 그 대답에 대한 반응자는 연으로 변이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C양과 연을 동일시화 하는 착종 현상을 보이고 있어 그 정화한 의미 파악은 애매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이 의식의 흐름을 다룬 작가들은 “자서전과 소설과의 경계선을 고의적으로 모호”59)하게 하려고 한 듯한 느낌을 준다. 그만큼 내적 자아의 내용을 작품 속에다 폭로시켜 놓고 있다. 이 때 작가는 “사적 내밀성의 특성(일관성의 결여, 불연속성 및 당사자밖에 알 수 없는 내용)을 유지해 가면서 의식을 실감나게 나타내도록 노력”60) 해야 한다. 이상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의 “창작은 틀림없는 사소설”61) 로 규정될 만큼 한국문학사상 사적 내밀성의 문제를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실화」는 그의 안내 “변동림을 창녀 금홍이나 카페 여급 권순희와 동격으로 보이게 함으로써 일으키는 효과를 노린 것”62) 이라는 점에서 그 대표적인 작품에 해당된다.

이와 같은 「실화」 의 주제는 〈사람이 / 秘密이 없다는 것은 財産이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라는 1장의 잠언적인 프롤로그 속에 함축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비밀’이란 말은 이 작품의 핵심어가 된다. 이것은 “지적 놀이의 일종으로서 타인의 눈을 속이기 위해 먼저 자기 자신을 감추는 것”63)으로 여러 면에서 열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기 방어를 위하여 취하는 소극적인 방법이다. 따라서 비밀은 자신만이 소유하고 있을 때 신비감이 생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것을 유지하고 간직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폭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작중자아의 비밀은 안타고니트에 의해 폭로될 뿐만 아니라 주인공 자신에 의해서 폭로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이상은 허구적인 자아와 작가와의 관계를 모호하게 서술해 놓고 있다. 그것을 위하여 그는 자신과 교류 관계를 맺었던 兪政ㆍ仇甫ㆍ芝淸 등 당시의 문인들을 작품 속에 의도적으로 삽입시켜 놓고 있다. 이것은 독자들에게 자신의 삶의 양상을 드러내놓기 위한 소설적 장치에 해당된다. 프루스트처럼 자서전과 소설의 관계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양식을 유지하기 위한 극적 태도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은 조롱할 수 있지만 생활을 리드하는 근본의 힘”64)이 결여된 인물로서 대타관계에 있어서 “소유 당하지 않으려는 의식적인 기도”65)와 깊은 함수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작중자아가 진실이라는 이름 아래 행하는 고백이나 행위는 역설과 아이러니가 내포된 위장된 포오즈일 때가 많다. 그만큼 그것들은 그 진위를 의심받게 되며 때로는 진실과 반대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슬퍼야지- 萬- 슬프지 않다면- 나는 억지로라도 슬퍼해야지- 슬픔 포우즈라도 해 보여야지- 왜 안 죽느냐고? 헤헹! 내게는 남에게 自殺을 勸誘하는 버릇밖에 없다. 나는 안 죽지. 이따가 죽을 것만 같이 그렇게 衆俗을 속여 주기만 하는거야66).

그렇다면 이상이 비밀의 문제와 관련하여 제시하고자 한 심층적 의도는 무엇일까. 그 핵심은 연과 유정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는 사실에 있다. 이것은 동경에서의 첫 사건인 12월 23일 아침의 일로 이들은 애정과 우정을 배신한 인물들이다. 연은 〈죽도록 사랑했건만 면회가 끝난 뒤 대략 20분이나 30분〉이 지나면 S와 만나 성 관계를 맺는 반윤리적인 행위를 되풀이하며, 유정은 주인공의 〈신성불가침의 찬란한 정사〉 제의를 한 마디로 거절했던 것이다. 주인공이 동경에 온 이유도 다름 아닌 연의 부정과 유정과의 동반 자살 실패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이들로부터 편지를 받고는 서울에서 있었던 일에 대하여 〈부질없는 향수〉까지 느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十二月 十三日 아침 나는 神保町 陋屋 속에서 空腹으로 하여 發熱로 하여 기침하면서 두 벌 편지는 받았다.

「저를 진정으로 사랑하시거든 오늘로라도 돌아와 주십시오. 밤에도 자지 않고 저는 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兪政」

「이 편지 받는대로 곧 돌아오세요. 서울에서는 따뜻한 房과 당신의 사랑하는 姸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姸書」

이날 저녁에 내 부질없는 鄕愁를 꾸짖는 것처럼 C孃은 나에게 白菊 한 송이를 주었느니라. 그러나 年前 一時 新宿驛 폼에서 비칠거리는 李箱의 옷깃에 白菊은 간데 없다. 어느 長靴가 짓밟았을까67).

이 부분에서 이상이 말하고자 하는 비밀의 정체가 분명해 진다. 그것은 유정의 배신이나 연의 부정에 대한 폭로 그 차체는 아니다 그보다는 이들이 서울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주인공은 편지의 공개를 통하여 이들이 자신의 끈끈한 애정의 테두리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환기시켜 놓고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연과의 애정이나 유정과의 우정의 문제에 있어서 실패하지 않았으며 감정적으로 아직도 자신과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작중자아는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음으로써 그것이 지니고 있는 은폐의 신비성을 상실하고 만다. 그러나 이것은 비밀의 완전한 해명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 그것은 독자들에게 과연 ‘이들을 떠나지 못하게 얽어놓고 있는 주인공의 비밀은 무엇일까’하는 또 다른 의문을 제기하게끔 만들기 때문이. 이것이야말로 이상이 비밀의 폭로를 통하여 생성해 놓은 수수께끼와 같은 또 하나의 비밀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실화」 는 연속적이며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마음의 분위기’를 내적독백과 시간과 공간의 몽타즈 기법을 통하여 완결감 있게 표현해 놓았다고 볼 수 있다.

Ⅳ.결론
근대과학의 발달로 인한 시간의 동공화는 종교적 신앙에 바탕을 두었던 영원성의 붕괴는 물론 시간의 파편화와 자아의 해체현상을 낳았다. 현대의 작가는 이와 같은 해체된 시간의 파편들을 하나의 통일된 유의적 형태로 재구성하기 위하여 과거와 미래를 동적으로 융합하는 초월적 시간 구조를 탐구하게 되었다. 이것은 역동적인 마음의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는 『율리시즈』 (Ulysses)에서 보듯, 의식 속의 모든 사건이나 행동은 ‘초시간적’ 내지는 ‘무시간적’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의식의 흐름을 다룬 문학 속의 시간은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또는 가끔 지적되는 것처럼 심리적인 것이 된다. 이것은 시간은 ‘생의 시간인 것처럼 이야기의 수단’이라는 시간 의식에 대한 명증한 인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은 한국 작가들 가운데 시간과 자아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가장 명확하게 인식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시간 속에 유폐되어 있는 과거의 기억들을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현재적인 체험으로 되살리기 위하여 시간의 물신화를 철저하게 거부하고 있다. 시간은 존재의 본질이라는 측면에서 삶의 실체를 기억과 기대에 의하여 의미 있는 시간의 연속체로 구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내면 속에서의 복잡한 시간의 양상들이 작중자아의 경험과 생활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도해된 모습으로 제시하기 위해 다른 차원에서 자신을 객관화한 또 하나의 자아를 제시해 놓고 있다. 따라서 경험 속에 있는 시간적 지표는 영원의 동적 이미지로 환치되며, 도식적인 참을 탈출하려는 자의식은 물리적 시간의 거부 내지는 파괴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날개」 는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프롤로그(prologue)에 해당되는 전반부와 본격적인 사건이 전개되는 후반부가 그것이다. 그 중이서도 전반부는 지적 파라독스를 통하여 작중자아의 자아분열적인 의식세계를 제시해 놓고 있다. 이 부분은 문장 구성상 최소 단위로 압축된 직접화법의 문장을 사용해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사상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만큼 스토리의 전개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독립된 장으로 볼 수 있다. 이해 반하여 후반부는 사건이 소피스티케이션 없이 논리성을 띠고 전개되고 있다. 여기서 주인공의 외출은 유폐된 공간으로부터의 탈출과 새로운 세계와의 접목이라는 복합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의 ‘현현의 시간’은 외부에서 보면 시간속에 있는 한 순간이지만 그 내부에서 보면 모든 과거가 ‘영원한 현재’로 통합되는 순간을 의미한다. 따라서 작중자아는 다섯 번에 걸친 외출을 통하여 자폐의 벽을 뚫고 나와 역동적인 자기통일성(自己統一性)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실화」 는 실험적인 탐구의식이 강하게 반영된 작품이다. 이것은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스토리 텔러의 기능이 상당히 위축되어 있다. 의식의 흐름에 따른 시간의 역전현상으로 공간적 통일성마저 파괴되고 있다. 2개월 전인 서울에서의 사건과 현재 동경에서의 사건이 혼재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17회의 시간의 역전현상을 일으키는 사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시간과 공간이 과거와 현재, 몽상과 현실의 화음을 이루며 대위법처럼 전개되고 있다. 그만큼 유동적인 내면세계를 자동기술법을 통하여 무질서하게 기술해 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런데 이와 같은 시간 의식과 표현 기법은 체험의 연속성과 동시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험세계의 자아를 재구성하고 창조하는 회상으로 작용하여 본래의 경험보다 더 ‘실제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실화」는 연속적이며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마음의 분위기’를 내적독백과 시간과 공간의 몽타즈 기법을 통하여 사실적으로 표현해 놓았다는 점에서 한국문학사의 전개과정에 있어서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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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주
1) 김기림,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 , 『시론』 , 백양당, 1947, 74쪽
2) Sir Charles Sherrington, Man on His Nature(New York: Double day, 1953), p.222.
3) RㆍMㆍ알베레스(정지영 역), 『현대소설의 역사』 , 중앙일보사, 1978, 111쪽.
4) Hans Meyerhoff(김준오 역), 『문학과 시간현상학』 , 삼영사, 1987. 11~13쪽.
5) 위의 책, 58쪽.
6) 이재선, 『현대소설사』 , 홍성사, 1984, 401쪽.
7) Leon Edel(이종호 역), 『현대심리소설연구』 , 형설출판사, 1983. 87쪽.
8) Robert Humphrey(이우건ㆍ유기룡 공역), 『현대소설과 의식의 흐름』 , 형설출판사, 1984. 111 ~ 112쪽.
9) 이것과 관련하여 Robert Humphrey는 위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해 놓고 있다. 「그런데 만약 〈의식의 흐름〉이란 용어가 소설에서 작중인물의 심리적 측면을 묘사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 의미가 제한된다면 이 용어는 어느 정도 정확성을 기할 수 있다.」 (10쪽)
10) Hans Meyerhoff, 앞의 책, 15~16쪽.
11) 위의 책, 20쪽.
12) Thmas Mann, The Magic Mountain(New York, Knopff, 1949), p, 541.
13) Robert Humphrey, 앞의 책, 91~95쪽.
14) 최상규 편역, 「영소설과 시간의 세 종류」, 『현대소설의 이론』, 대방출판사, 1983. 476쪽.
15) 「지도책 암실」, 164~165쪽. 이하 본고에서 이상의 작품 인용은 『이상문학전집 2권』 (김윤식 엮음, 문학사상사, 1998)에 의한 것으로 그 면수만 밝히기로 한다.
16) 「종생기」 , 387쪽.
17) 정덕준, 「한국현대소설의 시간구조에 관한 연구」, 고려대학교대학원, 1984. 87쪽.
18) 「童談」 , 259쪽.
19) 「날개」 , 343쪽.
20) Hans Meyerhoff, 앞의 책, 205쪽.
21) Leon Edel, 앞의 책, 9쪽.
22) 송민호, 『절망은 기교를 낳고 - 이상의 생애와 문학』 , 교학사, 1968. 102쪽.
23) 「종생기」 , 397쪽.
24) 조연현, 『현대작가론』 , 청운출판사, 1966. 144쪽.
25) 김용운, 「이상문학에 있어서의 시간」 , 『신동아』 1973년 2월호, 293~294쪽.
26) 김중하, 「이상의 소설과 공간성」 , 『한국현대소설사연구』 (전광용 편), 민음사,
1982. 337쪽.
27) 「지주회시」, 289쪽.
28) Northorp Frye, Anatomy of Criticism(Princeton U.P. 1957), p.74.
29) 김종은, 「이상문학의 심층심리학적 분석」 , 『문예비평론』 (박철희ㆍ김시태 공저), 문학과 비평사, 1988. 411쪽
30) 김종철, 『시와 역사적 상상력』 , 문학과 지성사, 1978. 47쪽.
31) 「날개」, 318~319쪽.
32) 정명환, 『한국작가와 지성』, 문학과 지성사, 1978. 118쪽.
33) Maren-Grisebach(장영태 역), 『문학연구의 방법론』 , 홍성사, 1984. 203~205쪽.
34) 「날개」 , 321쪽.
35) Ernst Cassirer, An Essay on Man(New York: Double Day, 1953), p. 52.
36) 「날개」 , 323쪽.
37) 위의 글, 325쪽.
38) 이재선, 『한국현대소설사」 , 홍성사, 1984. 417쪽.
39) 김인환, 『한국문학 이론의 연구』, 을유문화사, 1986. 59쪽.
40) 위의 책, 160쪽.
41) 「날개」 344쪽.
42) Leon Edel, 앞의 책, 152쪽.
43) 위의 책, 153쪽.
44) W.T.Stace, Religion and the Modern Mind(Now York, Lippicott, 1952), p. 243.
45) Hans Meyerhoff, 앞의 책, 57쪽.
46) 위의 책, 98쪽.
47) 김정자, 『한국근대소설의 문체론적 연구』, 삼지원, 1985, 300쪽.
48) 정덕준, 「한국근대소설의 시간구조에 관한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1984, 112쪽.
49) 「실화」, 357~358쪽.
50) 이재선, 앞의 책, 72쪽.
51) Hans Meyerhoff, 앞의 책, 40쪽.
52) 위의 책, 72쪽
53) 「실화」 361쪽.
54) 위의 글, 363쪽.
55) 위의 글, 364쪽.
56) 위의 글, 365쪽.
57) Hans Meyerhoff, 앞의 책, 43쪽.
58) 「실화」 , 362쪽.
59) Leon Edel, 앞의 책, 189쪽
60) Robe란 Humphrey, 앞의 책, 111~112쪽.
61) 김윤식, 『이상소설연구』 , 문학과 비평사, 1988, 46쪽.
62) 위의 책, 52쪽.
63) 김윤식, 『한국근대문학사상비판』 , 일지사, 1980, 78쪽.
64) 고은, 『이상평전』 , 민음사, 1978, 18쪽.
65) 정명환, 앞의 책, 141쪽.
66) 「날개」 368~369쪽.
67) 위의 작품, 369~3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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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사항

김진석
서원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