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사유..!/체계와 의미.

[ㅍ] 한성기 시의 공간 기호체계

온울에 2008. 5. 8. 11:09

목 차

1
2
1. 山.질서와 조화의 세계
2. 바다, 서늘한 진리의 세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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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자명 명지대학교 예체능연구소 
학술지명 藝體能論集 
ISSN  
권 5 
호  
출판일 1995.  




한성기 시의 공간 기호 체계


Spacial Semiotics in Poetry of Han Songgi


김석환
(Kim, Seokhwan)
5-717-9501-02

ABSTRACT
This study is an objective and comprehensive examination of the poetic world of HAN songgi. More specifically, it examines the spacial semiotics of poems included in Han's Nakhyang-ihu[After the Homingcoming], with emphasis on Han's creation and development of spacial semiotics related to the setting of the mountain and the sea.

The mountain is the counterpart of the city, and it constitutes the horizontal axis. The mountain is the object of yearning and also represents the world of complete order and harmony. The narrator of Han's poems leaves the city for a rural setting and enters the mountain to become one with it.

Likewise, the sea is the counterpart of the land and again constitutes the horizontal axis. This is the world of absolute purity that can never be attained. The narrator returns from the sea, and objects associated with the sea automatically trigger his imagination of the sea. He also articulates his longing to become closer to the sea as he gazes out to the vast sea from an island or a beach.

The mountain and the sea are idealistic spacial settings of purity and truth, which ultimately contrast with reality. The narrator's yearning and aspiration for the mountain and the sea is an artistics expression of the Han's poetic spirit that strives to reach the world of cosmic truth and o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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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는 일상어를 그대로 사용하지만, 일상언어의 경우와 달리 어떤 것을 말하면서 또 다른 것을 뜻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구조체인 일상어를 사용하여 고차적 구조체를 만든다는 것이다.1) 이 때 일상어 즉 1차언어가 2차언어인 문학어로 코드 전환이 되며, 코드가 전환됨으로써 1차언어의 특징인 언어의 線條成 Linearity이 空間性으로 바뀌며 텍스트 내의 통사론은 공간 모델 형성의 언어가 된다.2)

본고는 한성기 시인의 시를 공간적 모델 형성체계인 2차적 기호체계로 보고 매개적 기호가 양극을 어떻게 분절시켜 체계를 구축하는가를 살피면서, 반복되는 양극적 요소들 중 특히 이상적 세계를 대신하는 기호인 '산'과 '바다'의 2차적 의미를 고찰함으로써 한성기 시인의 시적 특성의 단면을 알고자 한다.

한성기 시인은 <山에서>, <落鄕以後>, <失鄕>, <九岩里>, <늦바람> 등 다섯 권의 시집과 <落鄕以後)3) 라는 시선집을 펴내면서 평생을 시작생활로 일관하였지만 한시인의 시에 대한 연구는 아직 부족한 것 같다. 송재영4) 정진석5), 박명용6)의 단편적 논문과 비평이 있을 뿐이다.

본 연구는 한성기 시인의 전체 시세계를 알아보는 선행작업으로서 시선집 <落鄕以後>를 텍스트로 삼는다. 1982년에 간행된 이 시선집에는 자신이 각 시집에서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시들을 선택하여 실었기에, 그의 시 전체의 특성을 개괄적으로 연구하는 데 적당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2
1. 山.질서와 조화의 세계
한성기 시인의 시에서 山은 빈번히 사용되는 공간기호이다. <山에서>란 시집의 제목으로 삼았을 만큼 그의 시 텍스트를 구축하는 지배적 기호소이다. "나는 추풍령에서 4~5년을 지낸 일이 있다. 직장을 버리고 세상을 버리고 나로서는 가장 암담했던 한 때다"7) 라고 <落鄕以後> 시집의 自序에서 밝힌 것을 보면, 추풍령의 山에서 지낸 체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루를 소중히 보내고 싶다

뜰에서 내려서면

視野에 들어오는 山

그 산을 잊지 않고

살고 싶다

언제부턴지

조용한 주위가 좋다

조용해서 모두 情이 가는 시골

가까운 마을이며 먼 비탈

뜰로 내려서듯

시골에 내려온 10년

쓸쓸히 생각하며

둘러보고 싶다

人事는 흐려가고

山河만은 내내 새롭구나

하루를 소중히 보내고 싶다

언제부턴지

조용한 주위가 좋다

10년을 삼켜서

비로소 보이는

-<山>전문

이 시 텍스트는 <落鄕以後>에 수록되었던 작품인데, 그의 시 택스트에서 山의 의미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1·3면에 보이는 '뜰'이란 매개적 공간 기호가 개입됨으로써 (방안:제로 기호)8)산을 內/外로 분절하면서 수평적 기호체계를 구축해준다. 그리고 3연에서 뜰로 내려서는 행위와 시골에 내려오는 행위가 동일시되면서 '(타향=도시 )/(고향=시골)/ 산’ 이 수평적 · 공간 기호 체계를 구축한다.

/내/
 /경계 /
 /外/
 
(방안)
 뜰
 山
 
(타향=도시)
 (고향=시골)
 山
 

위에서 보듯이 山은 방안과 '타향=도시'와 대립되는 공간으로 수평축의 /外/항이며 화자의 지향 공간이다. 화자는 타향=도시' 로부터 낙향하여 시골에 있지만 人事가 존재하는 곳이기에 조용하고 좋은 시골마을보다 '山을 동경하고 잊지 않고 살고' 싶어 한다. 결국 山은 人事가 없는 無爲의 공간이며, 화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세계이다. 끝 연 '10년을 삼켜서 /비로소 보이는 /산' 이 암시하듯 오랫동안 동경하고 가까이 가고 싶었던 곳이다.

비래리

뒷산은 이상해라

‥‥‥ (중략) ‥‥‥

10년이 더 지난 뒤

다시 넘는 길

내게는 보이는 길이

아내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산마루에 올라가면

햇살이 내린

갓빼낸 사진

한 장

<暗室> 1·2·10~끝행

시 <暗室>에서는 동경하고 바라보던 산으로 들어가 산의 실체를 확인한다. 시의 앞 부분에서 '아내에게 보이는 길이 /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고 고백한 것과 달리, 뒷부분에서는 '내게는 보이는 길이 / 아내에게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한 상황의 역전은 10년이란 세월이 경과된 후의 일이다.

이 시의 공간 기호체계를 보면 山마루를 경계로 '비래리'와 '山'이 內 / 外로 수평축을 구축하고 있는데, <山>에서 경계 공간이었던 (시골=비래리)이 이 시에서는 山과 대조되는 / 內 / 공간이 되었고, 경계공간이 山 속에 있는 山마루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화자가 시골로 낙향하여 살면서 10년이란 긴 세월동안 山과 친근해진 까닭이다.


 


그리고 山의 실체를 인식하기 이전과 이후의 차이를 '캄캄한 캄캄한 / 暗室과 '햇살이 내린 /山’ 에서 보듯이 어둠과 밝음의 감각적 기호로 드러내고 있다. 한편 10년 이후 발견한 山을 '갓빼낸 사진'에 비유하여 신선한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결국 山이란 공간기호는 밝고 신선한 곳이며 화자가 오랫동안 동경하던 세계이다.

山에 와 있다

나는 왜 집을 떠나

이 山속에서

헤매느냐

山에는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는 山에서

이따금 빠끔히 나를 보는

山모롱을 돌며

이따금 그 나를 보는

눈과 마주친다

- <눈> 1~4연

도시로부터 시골로 낙향하여 시골 근처의 산을 동경하고, 산을 찾던 시인은 이제 산속에 들어가 山人이 된다. '직장을 버리고 세상을 버리고, ‥‥ (중략) 집에서는 이미 손을 들고 떠난’ 추풍령에서 쓴 시라는 한성기의 고백을 참고하지 않더라도, 위의 시 <눈>은 山속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시임을 알 수 있다.

집→산모롱 경계→산으로 화자가 이동하면서 수평적 공간 기호체계가 구축되는데, 산은 '아무도 없는' 곳 즉, 虛靜無爲의 공간이다.

그러한 공간에서 마주치는 눈은 '사람의 눈길같이 아프지 않고, 서글서글해서 언제나 시원해서' 좋은 눈이다 (5·6연) 그 눈은 인간 세상과 대조되는 자연의 구체적 이미지이며, 미움과 고통보다 평화와 안식이 존재하는 이상적 공간의 구체적 실상이다. 그리고 사람의 눈과 그 눈을 대조시킴으로써 문명의 세계를 비판하고 문명 이전의 원초적 조화와 질서의 세계를 갈망하는 시정신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위에서 구축되는 공간 기호체계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시에서 집은 탄생 공간이나 회귀의 공간을 상징하는 것이 통례인 것과 달리, 위의 시에서는 떠나버리고 싶은 공간으로서 부정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 집으로 구체화된 세상에 대한 반발이 화자인 '나'로 하여금 산이 상징하는 긍정적 공간인 자연으로 향하게 하였다면, 이는 결국 문명에 대한 반발과 원초적 삶에 대한 지향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산에서 평화와 안식의 눈을 발견한 화자는 나아가 산과 하나가 되는데, 이는 완전한 평화와 안식의 세계에 몰입하려는 시인의 꿈을 반영한다.

어둠에 묻혀버리는 山

육중한 山들이

말없이 하나하나

묻히면서 나도 묻혀버린다

어둠 속에 너와 나는 없고

어둠 속에 너와 나는

있다

- <자기를 구워내듯> 1연 일부

너 , 즉 산과 나는 해가 지기 전에는 거리를 두고 너와 나로 존재하지만, 해가 지고 어두워져 어둠 속에 묻혀 하나가 된다. 그리하여 ‘어둠 속에 너와 나는' 없으면서도 있다. 즉 물질적 산과 육신적인 나는 객체와 주체로 존재하지만, 내적으로는 하나가 되어 주객이 없어진다. 그러한 내적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어둠인데, 그 어둠의 세계는 꿈의 세계요, 시의 세계인 것이다. 나와 산의 외형을 볼 수 없게 하는 어둠의 힘을 빌어 나는 산과 合一이 되는데, 이러한 상태는 바로 동양적 자연관에서 말하는 공존과 화합의 관계이다.9)

산, 즉 자연과 화합과 공존의 관계는 物我一體요,物心一如의 상태다. 한성기 시인은 너와 나'라는 대립과 단절의 관계를 초월하여 산과 하나가 됨으로써 원초적 질서 또는 우주의 근원적 道를 체득하게 된다.10) 그러한 정신적 체험을 시 <山>에서 고백하고 있다.

산을 오르며 내가 깨달은 것은 山이 말이 없다는 사실이다. 말이 많은 世上에 ‥‥ (중략)‥‥ 말이 없는 世上에 사람보다 부처님이 더 말을 하고 부처님보다는 山이 더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 <산> 일부

시의 첫부분에 나오는 말과 뒷부분에 나오는 말은 대조적이다. 첫부분의 말은 世上에서 하는 말, 즉 진실이 담겨 있지 않고 근원적 진리를 왜곡시키는 말이다. 뒷부분의 말은 허위와 가식을 떠난 우주의 근원적 진리, 즉 '道, 그 자체'이다. 말(language)의 어원은 로고스(logos)로서 이성이나 진리를 뜻한다면, 산의 말은 로고스이다. 자연과 단절된 채 살고 있는 현대인의 말이나, 현대인들을 근원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종교(부처님)도 한성기 시인에게는 그 원초적 진리를 말해주지 않고 있다. 그러나 山은 세상 사람들의 말이나 종교보다 더 근원적 진리를 무언으로 깨우쳐 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성기 시인에게 있어서 山은 자연과 우주에 숨겨져 있는 절대 진리의 계시자요, 그 자체다.

그러한 산이기 때문에 한성기 시인은 도회지로부터 시골 즉 고향으로 낙향을 하여 산을 바라보고, 끝내 입산을 하며 산과 하나가 된다. '도회지→시골→산' 으로 이어지는 수평적 공간의 이동은 곧 시인이 허위와 가식의 언어가 가득한 세계로부터 초월하여 우주의 근원적 진리, 자연의 원초적 질서에 도달하고 合一되고자 하는 시인의 지향성을 반영한다. 산은 그 지향의 정점이며 안식처요, 절대 진리의 계시자인 것이다.

산이 시 텍스트에서 그러한 기호 작용을 할 수 있는 것은 현실적 삶이 영위되지 않는 곳이며, 인간들의 인위적 손길이 아직 닿지 않은 곳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형태상 도시나 시골 마을보다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높은 곳과 멀리 떨어진 곳은 신비하고 가치있는 진리가 숨어 있다고 믿어왔음을 많은 문학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한성기 시인에게 있어서 산은 그러한 믿음이 극대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2. 바다, 서늘한 진리의 세계
바다 역시 인간의 삶의 현장이 아니며 멀리 떨어져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러한 공간적 특성때문에 바다는 많은 시인들의 동경의 대상이며 이상적 세계의 상징이 되어 왔다 한성기 시인의 시 텍스트에서도 바다는 세속적 생활공간과 대립되는 이상적 공간이요, 진리의 세계이다.

바다에서 들고 온

돌이나 바라보다가

한나절

山이나 바라보다가

텃밭에 나앉아

새김질하는 소나

바라보다가

- <바람이 맛있어요.7> 1~7행

위의 시에서 화자가 바라보는 대상은 3가지, 즉 돌과 山, 소이다. 그런데 바라보는 화자는 사실 돌, 그 자체가 아니라 돌을 보면서 바다를 상상하고 있다. 그러한 판단이 가능한 것은 '바다에서 들고 온' 이라는 구절 때문이다. 즉 돌을 바라보는 까닭은 그것을 통하여 바다의 이미지를 상상하고 싶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다와 그 다음에 이어지는 산은 동경의 대상으로서 등가치(等價値)이다. 여기서 단적으로 한성기 시인은 앞에서 고찰한 山과 바다를 똑같이 그리움의 대상으로서 동일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그 다음에 등장하는 '새김질하는 소' 는 돌을 통하여 바다의 이미지를 재생하고 상상하는 화자와 동일시된다. 새김질은 곧 반추로서 소가 이전에 뜯어 먹었던 풀을 다시 되내어 씹는 동작인데, 소의 그러한 동작과 화자가 이전에 체험한 바다의 인상을 다시 기억하여 떠올리는 정신적 행위는 유사관계이기 때문이다. 화자는 결국 새김질하는 소의 모습으로 바다의 인상을 재생하는 자신의 내면을 객관화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한 시인은 원초적 질서와 진리의 세계의 상징인 산을 동경하듯이 바다를 동경하고 있다. 즉 바다라는 공간 역시 한성기 시인의 시 텍스트에서 山과 같은 등가적 의미를 대신하는 기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한성기 시인의 시 텍스트에서 바다가 앞서 고찰한 山과 같이, 이상적 세계를 대신하는 기호로서 빈번히 나타나는 이유는 그의 전기적 사실을 참조하면 다음과 같다.

'바다에 가려했다. 우연히 그 기회는 쉽게 왔다. 西海 安興 앞바다, 배보다 갈매기가 더 많이 날았다'라고 자신의 시선집 <落鄕以後>의 自序에서 바다의 체험을 밝히고 있다. 한성기 시인이 추풍령에서 생활을 하다가 4~5년 시골에서 지내며 바다에 자주 갔던 체험을 시화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다음의 시는 그러한 체험을 분명히 엿보게 하는데, 위의 시에서처럼 바다와 관련된 매개물을 통하여 바다를 그린다는 점에서 구조적 상동성 (相同性)을 갖는다.

다래끼에서

새 우는 소리가 들리더라나

安興에서 들고 온 거라나

철부지라나

바다에 가 있을 때

새우 양식장에서

따온 거라나

나의 카세트

‥‥ (중략)‥‥

그날의

圓舞

철부지라나

다래끼에서

새 우는 소리가 들리더라나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빈 속인데

- <새장> 일부

위의 시는 빈 다래끼에서 새 우는 소리를 듣는다는 역설이 시적 미학의 핵심을 차지하며 한성기 시인의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강화해 준다. '새우 양식장에서 따온' 다래끼는 이미 떠나와서 가까이에 없는 바다와 화자를 이어주는 매개물이다. 화자는 다래끼와 바다의 인접성 때문에 '아무도 들여다 보아도/ 빈 속’인 다래끼에서 새우 양식장 위를 날던 백구(갈매기)의 圓舞를 상상하며 그 울음소리를 듣고 있다. 즉 원무와 울음소리라는 시각과 청각적 이미지로써 바다를 향한 그리움을 더욱 선명히 보여준다.

<바람이 맛있어요·7>과 <새장>의 공간 기호체계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결국, 돌과 다래끼는 화자의 존재 공간과 바다 사이에서 두 공간의 대립을 이완시켜 주는 매개기호이다. 그것들이 매개적 기호작용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다에 존재했었다는 인접성 때문이다. 결국 그러한 조그만 사물을 통하여 바다를 상상할 만큼 한 시인의 바다에 대한 동경심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다를 다녀온 후, 바다의 인상을 재생하며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는 예는 다음 시에서도 볼 수 있다.

바다는 춥다

바다는 他鄕

겨우내

눈은 내리지 않고

바다에서 불어대는 바람

어느 날 밤

잠에서 깨어나

이제는 지쳐서

목이 쉬어버린

네 목소리를 들었다.

- <바다는 他鄕> 2연

위의 시는 1연에서 ‘멀미를 하며 / 돌아오는 밤배 위에서' 추위에 떨었던 체험을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위에 예시된 2연에서는 그 체험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1연의 첫행과 2연의 첫행을 모두 '바다는 춥다' 로 시작하고 있지만 시적 의미는 차이가 있다. 즉 1연에서의 '춥다' 는 물리적 또는 육체적 감각을 표현하는 1차적 서술인데 비해서, 2연에서는 바다를 회상함으로써 갖게 되는 정서적 반응을 암시하는 내포적 진술이다.

2연에서 그러한 판단이 가능한 것은 ‘어느날 밤 / 잠에서 깨어나'라는 구절을 통하여 드러나는 시간성과 공간성 때문이다. 1연에서는 '밤배 위'라는 화자의 위치가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과 달리, 2연에서는 '잠에서 깨어나' 를 통하여 화자의 위치가 실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느날 밤' 이란 시간어와 결합됨으로써 '바다에서 불어대는 바람' 즉 '네(바다) 목소리'는 물리적인 실제의 목소리가 아닌 상상으로 듣는 소리임을 알 수 있다.

화자는 밤배 위에서 바다의 추위를 체험하고 돌아와, 어느 날 다시 그 바다의 체험을 회상하는 내용을 시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체험의 회상기가 아니고, 바다에 대한 동경심과 바다가 갖는 시적의미를 반어적으로 암시하고 있다는 것에 이 시의 미학이 있다.

위의 시에서 바다는 他鄕으로 비유되는데, 1연은 배 위에 있지만 바다를 他鄕에 비유한 것은 그곳이 춥고 멀미를 할 수밖에 없는, 즉 익숙한 공간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다면, 2연에서는 그러한 의미와 함께 멀리 떨어져 있는 곳임을 암시한다. 따라서 화자가 있는 공간과 대립되는 공간이다. 표층적으로 춥고, 타향으로 진술되는 그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듣는 내면에는 바다에 대한 강한 그리움이 숨어 있다. 그러한 그리움은 '이제는 지쳐서 / 목이 쉬어버린' 이라는 바다의 수식어를 통해서 강조된다. 바람 소리를 지쳐서 목이 쉬어버린 바다의 목소리로 듣는다는 것은 바다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눈은 내리지 않고' 에서 눈은 他鄕인 바다와 화자의 존재 공간인 고향의 대립을 해체해 줄 수 있는 매개적 기호이다. 눈은 내려 쌓이면서 他鄕과 고향이라는 공간의 경계를 지워주며 수평적 대립을 해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눈이 내리기를 기다리는 화자의 내면엔 자신의 존재 공간과 바다가 하나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심정이 숨어 있다. 그러나 그러한 눈이 내리지 않기 때문에 바람 소리를 바다의 목소리로 들으며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바람은 두 공간의 대립을 완화시키는 매개적 기호 작용을 한다.

한편 이 시에서 바다를 춥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가까이하려 하지만 늘 이질적인 공간으로 존재하는 바다에 대한 정서적 반응을 표현하는 감각 기호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늘 신비하고 이상적인 곳으로 존재하여 완전한 合一이 불가능한 절대적 진리의 세계로 남아 있기 때문에 한성기 시인에게 추운 他鄕으로 인식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춥다' 라는 감각 기호는 반어적으로 화자의 지향의지를 더 강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성기 시인의 시에서, 위에서처럼 바다는 '춥다'와 같은 冷 감각 기호와 결합되면서 그 의미가 구체화되는 예를 다른 시에서도 볼 수 있다. <바람이 맛있어요·6>에서 '태안반도 / 이 언저리의 / 서늘한 눈매'로, <잠적>에서 '싸늘하게 식은 바다' 로 묘사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러한 감각 기호는 결국 바다를 절대적 가치의 세계로 인식하고 있는 시인의 내면을 반영하면서, 역설적으로 화제의 강한 지향성을 대신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시들은 화자가 바다를 다녀와서 바다의 체험을 재생하며 바다를 그리워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다음 시 텍스트들에서는 화자가 해변, 섬 등 바다 가까이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구조적 차이점을 보인다.

분교

숙직실에서

하룻밤을 신세진 것까지는 좋다고 하자

그것까지는 좋다고 하자

그날 밤에 우리는

마시고 또 마셔버렸다

노래부르며 춤추며

그것까지는 좋다고 하자

내가 잠이 든 사이

배며 그물이며

섬이며 다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진 너의 잠적

- <잠적> 일부

위의 시 텍스트는 화자의 존재 공간이 섬 > 분교 > 숙직실로 축소되며 구체화된다. 그러나 숙직실은 분교에, 분교는 섬에 포함되어 있어 화자의 존재 공간을 섬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섬은 육지이면서 바다 한가운데 있어서 육지와 바다의 특성을 동시에 구비하면서 육지와 바다를 이어주는 매개적 공간이다. 따라서 이 시 텍스트의 배후에는 구축되는 공간 기호체계가 다음과 같다.


 


제로 기호를 육지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화자가 그곳에서 하룻밤을 신세졌다는 진술을 통해서다. 그러한 표현은 분명히 섬 이외의 공간에서 생활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화자가 육지로부터 떠나 섬에 도착하여 분교 숙직실에서 마시고 노래부르며 춤을 추었다는 것은 곧 바다와 함께 있다는, 또는 바다라는 공간 안에 존재한다는 즐거움의 표현이다. 그러한 판단이 가능한 것은 '자리에서 일어나 / ‥‥‥ / 싸늘하게 식은 바다' 의 잠적을 보고 '몸서리쳤다' 는 고백을 통해서이다. 즉 바다의 잠적에 대해 몸서리칠 만큼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과 대조해 볼 때, 화자의 즐거움은 바다와 함께 있다는 즐거움이다. 물론 화자가 있는 섬, 더욱이 분교 숙직실이라는 폐쇄된 공간은 바다와 구분되고 단절된 곳이지만 그러한 단절을 시적 시간인 밤이 해체한다. 즉 밤은 바다와 숙직실을 모두 어둠 속에 잠기게 하여 그 구분을 없애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적 상황은 시 <자기를 구워내듯>에서 산과 화자인 내가 어둠에 잠겨 너와 나의 구별이 없어지는 것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섬이 위에서처럼 바다와 동일시되는 경우는 다음의 시에서도 볼 수 있다.

分校 마당

아이들 새새

바다는 부서지고

아이들 새새

파도소리는 부서지고

아이들 떠드는 부서지고

分校 마당

오늘은 학교가 쉬는가 보다

텅빈 마당에

바다는 혼자서

파도소리 혼자서

- <休日> 전문

위의 시는 화자가 관찰자 시점에서 섬 · 分校 · 마당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화자가 섬에 존재하는 형식을 취한 앞의 시 <잠적>과 구조적 차이점을 보이고 있으나 배후에 구축되는 공간 기호체계는 같다.


 


한편 묘사의 대상인 섬은 分校 > 운동장으로 축소되고 구체화되는데, 그 구체적 공간 역시 섬 안에 있는 곳으로서 섬의 공간적 특성을 보여준다.

앞서 밝힌 섬의 양의적(兩意的) 성격은 1연에서 아이들 새새로 부서지는 소리가 동일시되고,바다와 분교 운동장이 동일시됨으로써 분명해진다. 특히 2연에서 아이들이 오지 않는 休日 운동장에서 바다 파도소리를 발견한 것은 시인의 심미적 시선을 통해서 가능한 것인데, 이것 역시 바다와 섬, 즉 분교 운동장을 동일시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성기 시인은 그러한 섬에 위치한 분교 운동장의 풍경 묘사를 통하여, 바다와 함께 생활하는 섬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바다 파도소리와 아이들을 동일시함으로써 바다의 의미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즉 육지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섬에서 바다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처럼 바다는 순수함을 간직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바다의 순수성은 다음의 시에서도 암시된다.

배 하나

왜 수줍은지

바다에서 돌아오는 배는

왜 수줍은지

바다에 와서

나는 그것을 보네

- <사랑> 일부

화자는 바다에서 돌아오는 배가 ‘왜 수줍은지' 바다에 와서 본다고 한다. 결국 바다는 배로 하여금 수줍음을 갖게 하는 어떤 속성을 지닌 공간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다가 갖고 있는 순수성 때문이다. 바다라는 순수한 공간으로부터 돌아온는 배이기 때문에 港口는 '오직 너만을 기다려 / 가슴을 여는' 것이다. 끝 부분까지 4번이나 반복되는 ‘왜 수줍은지' 는 바다의 그러한 순수성을 강조하는데, 일상어에서 수줍음은 곧 순수함과 유사하거나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는 예를 참고할 때 바다의 그러한 특성은 유추가 가능하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성기 시인의 시 텍스트에서 '바다' 는 산과 같이 이상적 세계, 곧 절대적 진리를 대신하는 공간 기호이다. 그곳은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데, 그러한 절대성은 '춥다, 서늘한, 싸늘한’ 등의 냉 감각 기호와 결합됨으로써 더욱 강조된다. 그리고 아이들과 같은 순수성을 지닌 공간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러한 특성은 결국 절대적 가치가 갖는 특성이기도 하다.

한편 바다가 동경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화자가 바다의 체험을 매개적 기호를 동하여 회상하는 형식과 화자가 바다와 인접한 섬 등의 공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형식으로 나누어지면서 구조적 상이성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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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한성기 시인의 시 텍스트를 산과 바다를 공간 축의 한 극점으로 하는 시 텍스트의 공간 기호체계의 구축과 변환의 양상을 살피고, 아울러 그 공간 기호들이 갖는 기호학적 의미를 알아보았다.

산은 현실적 삶의 공간인 도회지와 대립을 이루는 수평 축의 한 극으로서 화자의 지향의 대산이다. 그곳은 절대적이고 완전한 질서와 조화의 세계이다. 화자는 도회지로부터 시골로 낙향하여 산을 바라보다 마침내 입산하여 산과 合一되는데, 이러한 수평적 이동은 원초적 질서와 우주의 道에 도달하려는 한성기 시인의 시정신을 반영한다.

바다는 육지와 대립되는 절대 진리와 순수성을 대신하는 기호이다. 한성기 시인의 시 텍스트에서 바다는 끝내 도달할 수 없는 냉 감각 기호와 결합되어 강조된다. 바다를 한 극점으로 하는 시 텍스트들은 크게 화자가 바다에서 육지로 돌아와, 바다와 인접하고 있는 매개적 기호를 통하여 바다의 이미지를 그리는 경우와 바다와 인접한 섬이나 해변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결국 바다와 산은 절대적 가치와 진리의 세계를 대신하는 기호라는 측면에서 유사하거나 동일한 기호작용을 한다. 그러나 산의 경우 화자는 그곳으로 들어가 합일되지만, 바다의 경우에 화자는 매개적 공간인 섬이나 해변에까지만 접근하여 바다는 차가운 진리의 세계로 남아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산과 바다를 향한 동경과 접근은 결국, 한성기 시인이 세속적이고 오염된 정신으로부터 순수한 진리와 가치의 세계에 도달하려는 정신을 반영한다. 생전의 한성기 시인의 오랜 세월 동안 도시보다는 시골을, 시골보다는 산이나 바다를 그리워하고 즐겨 찾는 이유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산과 바다뿐만 아니라, 한성기 시인의 시 텍스트에 빈번히 등장하는 공간기호를 중심으로 그것이 구축하는 공간 기호체계를 살펴보고 또 공간기호의 의미를 알아보면, 시인의 시적 본질을 좀 더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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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박명용, 「한성기시 연구」, 인문과학연구 논문집 . 대전대 인문과학 연구소, 1994.
2. 송재영, 「질서와 조화의 시학, 한성기론」 , 민음사, 1987.
3. 정진석, 「인간성 회복과 반문명의 시 ,- 한성기론」, 월간문학86.5.
4. 한성기, '낙향이후' , 현대문학사, 1982.
5. 노자, 장자, <노자, 장자>, 장기조, 이석호 역, 삼성출판사, 1977.
6. 池上嘉彦, 「시학과 문화기호론」, 이기우 역, 중원문화사, 1984.
7. Lotman. Yu. La Structure du Texte Artistique; Paris ; Gallimand, 1973.
8. Jakobson. R. "Selected Wrightings 2. " Word and Language, Hague; Mouton,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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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주
1 池上嘉彦. 《시학과 문화기호론》이기우 역, (중원문화,1984),p.27.
2 Yu. Lotman. La Structure du Texte Artistique (Paris:Gallimard. 1973). p .36.
3 한성기. <落鄕以後> (현대문학사.1982).
4 송재영, 「질서와 조화의 시학」 -한성기론, 민음사, 1987. pp.162-172.
5 정진석, 「인간성회복의 반문명시」 -한성기론, 「월간문학」86, 5, pp.214-233.
6 박명용. 「한성기연구」, 인문과학연구논문집, 대전대인문과학연구소,1994, pp.15-30.
7 Ibid,p.15.
8 R, Jakobson. "Selected Wrightings 2." Word and Language(Hague:Mouton,1971), p.11. * zero 기호란 不在인 채로 차이를 만들어 내는 기호를 말한다.
9 老子 · 莊子,<老子 · 莊子>, 장기근 · 이석호 역. (삼성출판사,1977), pp.346 ~ 347 참조
10 Locit pp.136 ~ 13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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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사항

김석환
(Kim, Seokhwan)
문예창작학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