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사유..!/논리와 문화.

[ㅍ] 의미 연구의 방법과 과제

온울에 2008. 5. 8. 11:19

목 차

Ⅰ.서론
Ⅱ. 의미론의 정의
1. '의미'란 무엇인가
2. 고전적 정의: 기호의 일부로서의 '의미'
3. 의미론의 3분법: 어휘의미론, 문장의미론, 화용의미론
4. 의미론과 화용론
Ⅲ. 의미에 관한 이론적 접근
1. 구조주의 의미론에서 생성문법으로
2. 철학적 의미론(= 지시적 의미론)
3. 형식의미론
4. '맥락과 사용'으로서의 의미
5. 범주 인식과 인지주의 의미론
Ⅳ. 국어학에서 의미론의 어제와 오늘
1. 국어의미론의 성립과 외래 학문의 유입
2. 의미론 연구의 방향성
Ⅴ.어휘의미론: 단어의 의미
1. 어휘의 분해: 성분분석 이론
2. 의미와 인지: 원형 이론
3. 문화적 상대성/보편성과 어휘 구분
4. 어휘 의미의 변화: 문법화 이론
Ⅵ. 문장의미론
1. 문장의미론의 전통적 개념
2. 논항 구조(argument structure)
3. 문장 의미와 어휘적 정보
4. 문장 의미 연구와 언어 자료
Ⅶ. 화용의미론: 화용론의 연구 현안
1. 화용론과 맥락
2. 인지적 화용론과 사회적 화용론으로의 특화
3. 그라이스의 함축 이론과 의미의 복원 가능성
4. 대화함축 이론의 현안: '양의 격률'과 '조건완수' 구문
5. 화용론의 인접 분야
Ⅷ.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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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자명 청주교육대학교 교육대학원 
학술지명 논문집 
ISSN  
권 8 
호  
출판일 2004.  




의미 연구의 방법과 과제*


Methods and Trends in Linguistic Semantics


김종현
2-714-0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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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서론
"생각이 활짝 핀 꽃이라면 언어는 꽃봉오리이다. "라는 말이 있다. 언어의 내적 구조는 생각의 흐름만큼 화려하지는 않을지라도, 언어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논리적. 존재론적. 사회적. 인지적 측면에 걸쳐 인간 본래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에 필수적이라는 점은 현대 과학 사상에서 일반화된 상식에 속한다. 언어 기호를 소리와 의미로 양분하는 고전적 견해를 따르자면 형식을 대표하는 것은 소리이고 내용을 대표하는 것은 의미이다. 의미(meaning)에 대해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를 의미론(semantics)이라고 하는데, 현대 언어학의 한 가지 하위 분야에 속한다. 이 논문은 인간 언어의 여러 측면 중에서 '의미' 연구를 위한 주요 이론적 관점과 방법론을 검토한다. 기존에 알려진 연구 방법이나 개념들을 비교 정리하는 것 이외에 의미론 연구의 방향을 전망하려는 것에도 목표를 둔다. 인간 언어의 구조와 형식을 규명하는 데에 있어 의미 문제는 중요한 기준이 되어 왔다. 여러 학문 분야에서 흔히 그렇듯이, 언어 연구에 있어서도 각론적 분할로 음성, 음운, 형태, 통사, 의미, 화용, 언어사, 인지능력 등의 세부 영역을 가늠해 보는 것이 오래된 관행이다. 이와 같은 여러 부문들 사이의 관계는 직렬적으로 구성된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병렬적인 모듈을 구성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국내 학계에서의 의미론 연구는 외래에서 유입된 이론적 성과에 의존해서 전개되어 왔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의미론 분야는 그 연구 대상과 방법의 특이성으로 인해 외국의 연구 성과를 큰 폭으로 참조할 필요성이 있으면서도, 한국어의 실제 현상에 주목하는 것이 당연한 연구 지향점이 될 수밖에 없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각각의 언어, 가령 한국어와 영어는 그 특징에 있어 나름대로의 개별성이 있는가 하면, 많은 수의 언어들에서 통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공유하기도 한다. 언어의 보편성과 개별성이 두 측면은 긴밀한 관련을 맺는 것으로 그 관계를 특징 지워 보려는 것이 현대 언어학의 기저에 자리하는 믿음이었다. 그래서 개별 언어의 문법 이론을 구축하는 것 이외에 제안된 문법 이론의 타당성을 언어 비교론적으로 검증해 보려는 것이 당연시 되어 왔다. 세상에 쉬운 일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지만, 이즈음에 국내 학계에서 왜 유독 의미론은 다른 각론에 비해서도 더 많이 외래 학문에 의존해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해 답변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 논문에서는 국내 학계에서 특히 한국어 연구를 위해 현존하는 외래 이론을 수용하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 얼마만큼 절실한 문제인지에 대한 가치 판단을 내리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지금까지 통용되어 오던 의미론 일반의 연구 방법들과 관련해서 기존의 주요 관점들에 대해 평가해 보는 것에 중점을 두려고 한다. 의미를 연구하기 위한 층위로 어휘의미론, 문장의미론, 화용의미론 등의 세부 구분에서 두드러진 연구 현안이나 과제들에 대해 실제 자료의 구체적인 현상과 연계해서 검토하기로 한다.

논문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2절에서 의미론의 정의를 일단 내리고, 3절에서 의미론의 접근 방법을 연구사적으로 정리한다. 4절은 국어학 연구에서 의미론의 어제와 오늘을 성찰하면서 앞으로의 방향성과 연구 책무를 설정한다. 5절부터는 의미론 분야에서 잘 알려져 있는 연구 방법들을 개괄적으로 정리하면서, 몇 가지 부각되는 논점들에 대해 평가해 보기로 하겠다. 즉, 5절에서 어휘의미론을 취급하고, 6절은 문장의미론, 7절은 화용의미론을 취급한다.

Ⅱ. 의미론의 정의
1. '의미'란 무엇인가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의미'라는 단어를 가끔씩 접하게 된다. '무엇이 무엇을 의미한다. '라는 문장 형식에서 '의미한다'라는 술어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가령, '장미'라는 단어가 갖는 꽃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노랑 장미가 뜻하는 것은 우정 혹은 아름다움이며, 분홍 장미는 사랑의 맹세, 빨강 장미는 열렬한 사랑, 진홍 장미는 수줍음, 흰색 장미는 존경을 뜻한다. 여기에서 엿볼 수 있는 사전적 정의, 정서적 이미지 등은 세계내에 존재하는 복잡다단한 의미 현상 중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의미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실제 언어 현상에 관해 경험적으로 필요하고 확인되며 이론적으로 체계화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의미란 무엇인가?', 이런 원론적 문제에 답하려면 의미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의 문제로 환원해서 풀어보는 것이 상례이다. 언어학의 규준에서 보면, 의미론이라는 분야는 의미와 동일시되는 대상의 존재에 관해 설명하거나. 어떤 말이 나타내는 내용, 표현이나 행위의 의도나 동기 등을 설명하려는 것에 집중한다. 의미론의 연구 대상으로 단어(word), 문장(sentence), 발화(utterance) 등의 층위를 구분 한다 즉, (i) 개념의 표상으로서 <단어의 의미>, (ii) 단어들의 결합에 의해 구성되는 문장의 의미 해석과 관련하는 <문장의 의미>. (ⅲ)주어진 상황 맥락에서 문장과 사용자 사이의 관계와 관련하여 <발화의 의미> 이것들에 대한 임시적인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려볼 수 있다.

(1) a. <단어의 의미>는 단일 개념을 표상하는 최소의 단위로 인정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개체, 개념들에 대응하는 언어적 표현을 나타내는 어휘는 흔히 단어(word) 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b. <문장의 의미>는 그것이 참이 되기 위한조건에 관한 지식을 포함한다. 그래서 문장의 진리조건을 설명하거나, 가능한 시나리오의 집합을 재구성하는 것 등이 관련된다. 단어들이 결합하여 명제의 의미를 합성하는 원리를 취급한다.

c. <발화의 의미>는 문장 형식이 맥락상에서 드러내는 언어적 기능에 관한 것으로, 언어 사용자들이 발화를 사용될 수 있는 조건에 관한 지식을 포함한다.

2. 고전적 정의: 기호의 일부로서의 '의미'
언어학의 일부로 의미론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기호론적 의미론이 철학적 사유에 기반을 두고 형성되었다. 기호는 내용과 형식의 양면성을 갖는데, 실제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 기호는 의미를 내용으로 소리를 형식으로 갖는다. 기호학자 Ogden & Richards(1923)가 지적한 (2)의 기호 삼각형에서 보듯이 의미는 '개념'에 해당한다. 개념(concept)과 어휘 사이의 대응은 단순하게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개념을 여러 어휘로 나타내거나 하나의 어휘가 여러 개념을 표상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개념은 어휘 이전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게 되는데, 개념의 존재론적 연구, 개념의 유형적 체계에 대한 연구가 어휘 연구에 수반한다.


 


가장 오래 된 정의로 프랑스 구조주의자 Saussure가 언명한 것처럼. 언어 기호는 소리와 의미의 두 가지 측면이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되어 있는 것인데, 이때 소리와 의미 사의의 대응은 필연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규약에 의존하는 자의 적(arbitrary)인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일화를 들어보면, 앨리스가 여행 중에 만난 험프티로부터 생일 선물로 'glory'를 전해주겠다는 말에,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를 물으니까. 괴벽스러운 험프티는 'glory'란 '너를 아주 꼼짝 못하게 하는 논쟁'이라는 말을 한다. 이와 같은 엉뚱한 일화에서 보듯이 언어기호라는 것은 비록 자의적으로 정의될 수 있기는 하지만 일종의 사회적 규약에 속하는 것으로, 현실 세계를 벗어나서 한 개인의 의지에 의해 임의로 변경해서 사용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언어 기호의 자의성 개념을 정의할 때, 소리와 의미로 구성된 기호는 개인의 사고 영역 밖에서도 존재하는 것이며, 개인의 의식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사이에 공유되는 집단의식에 속하는 것이다. 김춘수 시인의 <꽃>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려보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와 같은 부분에서 '꽃'이 나타내는 이미지가 있다. 이것은 시인의 주관적 사고 속에서 전형적인 이미지로 창출된 것인데, '꽃'의 개념적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므로 본래부터 기호의 일부로 보기는 어렵다. 언어기호의 소리의 의미 사이의 관계가 자의적이라는 견해는 기호의 발생적인 면에서 볼 때 당연하지만, 사회 구성원 사이에 의사소통의 측면에서 보면 세대 간에 전승되는 어휘부의 압력은 사회적 구속력을 갖는다. 존재론적으로 볼 때, 개념은 어휘의 발생 이전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보게 되는데 개념과 어휘 사이의 대응은 각 언어 사회마다 차이가 있게 마련이고. 어떤 개념이 개별 언어에서 어휘로 존재하지 않지만 필요에 따라 개념을 풀이하거나 외래 언어에서 유입하여 어휘화하기도 한다.

3. 의미론의 3분법: 어휘의미론, 문장의미론, 화용의미론
언어 기호의 양면으로 소리와 의미가 짝을 이루어 실현되는 단계는 화자가 기호를 산출하고 청자가 기호를 해석하는 과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문법 부문 간에 음성-음운-형태-통사-의미 등의 직렬적 순서를 가정하고 보면, 의미론은 음성/음운, 형태/통사 등의 원리나 규칙들과는 별개의 부문으로 작용하며 개별 단어들의 의미 이외에 단어들이 서로 결합하여 구성되는 문장의 의미를 생성하고 해석하는 데에도 의미론의 원리가 작용한다. 의미 실현의 단위는 3가지로 구분된다. 단어의 의미, 문장의 의미, 문장을 넘어서는 의미 등의 3가지이다 다음 그림에서 보듯이,


 


단어의 의미에 관해 연구하는 어휘의미론, 단어들끼리 결합하여 나타내는 문장의 의미에 관해 연구하는 문장의미론, 문장을 말함에 의해 전달되는 정보에 관해 연구하는 화용의미론 등이 있다. 화용의미론은 간단히 화용론이라고 칭하는 것이 상례이다. 어휘의미론, 문장의미론, 화용의미론의 구분에서 발화 의미는 문장 의미를 포함하고, 문장 의미는 어휘/단어 의미를 포함한다. 단어의 의미는 문장 속에 사용되어 하나의 독립된 명제를 전달할 때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단어에 대해 화자가 안다는 것은 그 단어가 무슨 의미를 나타내며, 발음은 어떻게 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맥락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알고 있음을 뜻한다. 단어의 결합에 의해 적법하게 구성된 문장이 표면적으로 나타내는 의미를 '문자적 의미'라고 한다면 구체적인 맥락상에서 실제로 전달되는 이면적 의미를 '비문자적 의미'라고 한다.

4. 의미론과 화용론
의미론은 화용론(pragmatics)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으로, 넓은 의미에서 의미론의 내부에 화용론이 포함된다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화용론의 내부에 의미론이 포함된다고 보는 입장도 있다. 그리고 의미론과 화용론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인터페이스 영역을 공유한다고 보는 입장도 있다. 오래된 비유로 (4a)-(4c)처럼 3가지 입장을 대비할 수 있다.


 


(4a)는 의미론을 행위 이론의 한 부분으로 보고, 언어사용자들 사이의 행위 일반을 고려하여 의미 이론을 수립하려고 하는 것으로 추상적 실재체로서의 개념에 반대하는 Austin. Searle 등의 일상언어학파 입장이다. (4b)는 의미론과 화용론 사이에는 느슨한 접경을 마주한 상태에서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담당한다고 보는 입장이다(Leech 1983) .(4c)는 화용론을 의미론에 연결지으려는 입장으로 Ross(1970)처럼 의미 표상의 기저 구조에 언어 행위를 포함시키려는 입장이다.

의미론의 영역과 화용론의 영역은 서로 중첩되는 부분이 워낙 많아서 분명하게 구분하기 어렵지만 개념적으로 대강의 구분을 하자면 다음 (5)와 같다(Lyons 1987 : 157) . 여기에 등장하는 용어들은 언어학에서는 그 자체로 자명한 개념들이기 때문에 추가 설명은 하지 않기로 하겠다.

(5)
<의미론>
 <화용론>
 
의미에 관한 것
 사용에 관한 것
 
언어능력에 관한 것
 언어 수행에 관한 것
 
의미의 규약적 측면
 의미의 비규약적 측면
 
규칙의 문제
 경향, 원리, 격률, 전략의 문제
 
진리조건적 의미를 취급
 비진리조건적 의미를 취급
 
축언적 의미를 취급
 비축언적 의미를 취급
 
문장의 의미를 취급
 발화의 의미를 취급
 
맥락-독립적 의미를 취급
 맥락-의존적 의미를 취급
 

세계 내에 존재하는 의미 현상은 그 성격이 모두 동일한 것은 아닌데, Jackendoff(2002) 는 언어적 부문, 비언어적 부문, 사고 작용, 맥락화에 의한 추가적 의미의 생성 등을 구분하면서 '언어학적 의미론'의 연구 범위를 (6a)와 (6b)의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음을 지적했다.


 


 


(6a)는 '언어학적 의미론'을 별도로 독립된 구조 층위로 설정한 것으로 언어 형식과의 인터페이스에서 의미 해석이 이루어지고 맥락 의미로의 인터페이스에서 화용론이 작용한다. 의미론이 먼저이고, 그 다음 단계에 화용론 부문이 있다고 보는 견해인데 Katz, Chomsky 등으로 대표된다. 이에 비해 (6b)는 '언어학적 의미론'의 맥락 의미의 일부로 자리 잡아야 하며 맥락 의미 쪽으로의 직렬적 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언어 형식 쪽으로만 직렬적 인터페이스 영역을 부여하는 것으로 Jackendoff가 지지하는 모델이다.

Ⅲ. 의미에 관한 이론적 접근
의미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 따라 여러 가지 접근이 공존한다. 현재의 학문적 조류에서 중시되는 방법들에 대한 소개는 접어두더라도, 일단 여기 3절에서는 의미론이 현대 언어학의 한 부문으로 등장하는 과정에서 명멸했던 지난 세대 유산들을 개괄해 보고자 한다. 의미론 분야에서 연구사적으로 두드러진 흐름들을 5가지로 구분해저 정하기로 한다. 즉, (ⅰ) 구조주의의 전통적 의미론과 생성문법의 의미관, (ⅱ) 철학적 의미론, (ⅲ) 형식의미론, (ⅳ) 맥락과 사용을 중시하는 의미론, (ⅴ) 인지주의 의미론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겠다.

1. 구조주의 의미론에서 생성문법으로
의미론의 전통적 목표는 언어 표현들 간의 의미 관계에 관한 직관을 설명하려는 것이었다. 19세기 후반 이후 유럽의 구조주의 전통에서 어휘장 이론이 발전된 것으로부터 체계적인 의미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후 생성문법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구조주의자들의 연구는 의미의 유사성, 의미의 차별성, 의미의 포섭 관계 등을 중심으로 어휘의 의미 체계를 설정하는 데에 주력하였고, 더 나아가서 어휘들 사이의 동의성, 반의성, 상하위 포섭 관계 등을 취급하였다. 한편, 유럽의 구조주의와는 별도로 미국적 환경에서 태동 성장한 미국 구조주의는 의미에 대한 관심이 미미하였다. 1950년대까지 미국에서 성행하던 구조주의 언어학을 대표하는 Bloomfield 학파는 물리적 세계에 대한 발견 절차를 중시하였다.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검증할 수 있는 음성학 연구를 바탕으로 문법적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믿음과 함께, 의미 현상은 다분히 연구자 개인의 내성적 분석에 의존하여 판단해야 하는 심리적 실재물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객관화 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과학적 연구 대상이 되기 어려운 것으로 돌렸다.

1950년대 이후 등장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풍미했던 'Chomsky 언어학'(=생성주의 언어학, 생성문법)에서는 의미 연구에 관해 이전 구조주의 시대와는 다른 관점을 드러냈다. Chomsky는 심리적 실체에 기반을 둔 언어 연구가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생성문법(generative grammar)의 관점에서 의미는 인간이 언어 기호를 산출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마음(mind) 속에 내재화 시켜 둔 표상(representation)의 한 영역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의미구조와 언어사용 사이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내성주의 의미론'이라는 별칭을 붙여볼 만하다. 그러나, 인간언어 능력의 중요 부문으로 문법의 구성 요소들을 구분하는 데에 있어 Chomsky 언어학은 통사론을 위주로 문법 규칙의 정식화와 이에 관여하는 인지적 능력의 설명에 가장 큰 비중을 두었기 때문에 의미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문법의 변경에 머물러 있었다.

1970년대 생성문법의 한 분파로 생성의미론자들에 의해 의미 원소의 도출 과정과 보편성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이후 등장한 생성문법 계열의 이론들에서는 자립적인 통사론의 역할을 중시하면서 의미를 구조 해석 과정의 일부에 병존하는 정도로 소홀하게 취급하였다. 체계적인 의미론이 생성문법 이론에서 결여되었기 때문에 형식의미론, 전산언어학, 인지문법, 신경과학 등의 분야가 발전하면서 의미와 관련된 문제를 취급할 때 생성문법 이론의 성과를 수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 인지과학이나 정보과학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의미의 구성 원리보다는 정보의 처리 가능성에 관해 더 많이 연구되었기 때문에 그 와중에 의미에 대한 연구가 언어 연구의 핵심적인 주제가 되지는 못하였다.

2. 철학적 의미론(= 지시적 의미론)
현대 학문의 흐름에서 의미 현상에 대한 관심은 철학적 전통에서도 생겨났다. 의미는 세계 내에 존재하는 대응물을 지시(reference)한다는 견해를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것을 '철학적 의미론' 혹은 '지시적 의미론'이라 불러볼 수 있으며. 일찍부터 Frege(1892=1974)가 지적했던 지시와 의의, 혹은 외연과 내포 등의 구별이 중요 개념으로 등장했다. 언어표현의 의미는 그 표현이 지시하는 실재 세계에서의 대응물이라는 것이 철학적 의미론의 기본적인 테마였다. 지시물이 일정하게 존재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의미가 어떻게 가변적일 수 있을까 하는 문제와, 지시물이 미결정적이거나 부재할 때에는 의미가 어떻게 성립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 등에 관한 철학적 탐구가 이어졌다. 하나의 표현이 현실 세계 내에 존재하는 개체 혹은 개념으로 대응하는데, 이때 외연(denotation) 값의 결정에 관여하는 개체 정항의 독립성과, 내포(intension) 값의 결정에 관여하는 개체 변수들의 가변성에 대해 논리형식 언어로 치환하여 일반화 시키려는 작업은 언어학적 의미론이 철학적 의미론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오는 계기가 되었다.

지시대상이 실재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들이 있게 마련인데, 잘 알려진 예로 'the morning star'와 'the evening star'는 한 가지 내포를 나타내는 서로 다른 외연 표현들이다. '한국의 대통령'이라는 표현은 현 시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외연 의미로 갖지만. 내포 의미에 있어서는 '노무현 대통령'과 등치일 수 없다. 단어의 의미란 개별적인 상황에서 단언(assertion)의 사용의 문제로 돌려야 하는 경우가 워낙 많기 때문에 의미는 지시와 동일시 될 수 없고. 그래서 지시와 대응되는 개념으로 의의 (sense) 개념을 설정한다. 지시적 의미론에서는 단어뿐 아니라 문장의 사용에 있어 참, 거짓의 진리치를 결정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충족 조건들을 중시하기 때문에 진리 조건적 의미론이라고도 부른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비가 온다!"라고 발언을 하였을 해, 그 말을 하는 화자는 자신이 주장하는 명제가 참이 되기 위한 조건의 충족에 개입하는 것인데, 현실 세계에서 정말로 비가 오고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참 혹은 거짓의 여부가 결정된다.

인간 언어에 대한 Frege, Carnap, Tarski 등의 논리철학적 배경이 언어학 이론의 하위 영역에 수용된 것은 1960년대 몬태규(Montague) 의미론의 등장에 의해서이다. 몬태규 의미론의 세부에 대한 소재는 차치하더라도, 우선 가장 기본적인 가정만을 들어보면, 문장이 어떤 경우 참이고, 어떤 경우 거짓인지를 안다는 것에서 문장의 의미가 노출된다는 점을 중시한다. 몬태규 이론은 진리조건적 의미론임과 동시에, 모형 이론적 의미론이다. 집합과 함수, 가능세계 등을 수학적. 논리적 엄밀성을 가지고 구획하고 정의하는 작업을 수행하였고, 이것이 실제 언어, 주로 영어의 다양한 구문 현상들과 어떻게 대응해서 등치성을 확보하는가에 주력하였다. 가령, "일제시대에는 영자가 흔했다."와 "지난 주말에 영자는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두 문장에서 '영자'에 대한 지시 의미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시공간적 지표를 설정해서 가능세계를 결정하고 이것을 논리적으로 구획해서 판단해야 한다. 철학적 전통과 언어학의 접경으로부터 태동된 철학적 의미론은 현대 언어학에서 형식의미론의 탄생에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3. 형식의미론
형식의미론(formal semantics)의 학문적 지류는 논리학, 철학, 언어학 등의 여러 학문 분야에 그 연원을 두는데, 이론언어학적 연구로 개화한 것은 1960년대 몬태규 의미론의 등장 이후부터이다. 가능세계의 집합으로 모형 이론을 구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였고, 문법에서 통사구조와 의미구조는 일종의 대수(algebra)를 이루고 그 사이에는 동형성의 사상 관계가 있다는 것을 기본 가정으로 삼는다. 언어표현은 부분 단위가 합성성의 원리에 따라 결합하여 전체 단위를 이룬다는 것에 주목해서 구조 적형성과 의미 해석 사이의 등가성을 파악하는 작업에 치중하면서, 함수-논항 구조의 정식화 작업은 이후 문맥자유문법(CFG)의 수학적 특성을 가진 문법 이론들, 가령 범주문법(CG)이나 일반구구조문법(GPSG) 등에 대해 개념적 기초가 되기도 하였다. 현재 시대 형식의미론 분야의 연구자들 중에서 고전적 몬태규 문법에서 사용했던 표기 규약이나 논리형식 언어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형편이지만, 지금까지 영미권의 의미론 분야에서 중요한 학문적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형식의미론'의 태생적 연원은 몬태규가 파헤친 가능세계에서 찾아진다.

형식의미론을 추구하는 여러 이론적 접근에서 가장 흔히 취급하는 연구 현안들로는 시제와 상, 관사, 양태 동사. 조건문, 명사의 복수성과 집합성 등이 있고. 구조상의 '영역 중의성'(scope ambiguity)에 대한 형상적 표상을 정식화하는 작업도 1990년대 전후에 이르기까지는 매우 큰 현안이 되었다. 형식의미론 분야에서 현존하는 이론들은 여러 가지 갈래로 다원화 되어 있다 Hintikka 이후의 <게임이론 의미론>은 언어 사용자와 자연 현상 사이의 오류 증명 가능성을 정식화한 이론이다. Barwise와 Perry등이 개척한 <상황 의미론>은 가능세계를 유형화된 상황 체계로 환원하려는 언어철학적 시도였으며, 맥락 설정의 부분성과 전체성, 외연성, 지칭성 등의 상황 정보를 중시 하였다. 1980년대 이후 Heim의 <파일변경 의미론(FCS)>, Kamp의 <담화표상 이론 (DRT)> 등도 예민한 관심을 불러 모은 이론들이다.

1990년대 이후에 등장한 동적의미론(dynamic semantics)에서는 정보상태 (information state) 개념을 일차적으로 '가능세계의 집합'으로 정의하면서, 주어진 정보상태의 변화 과정을 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하였다(Veltman, Dekker등의 연구). 예를 들어. *It might be raining outside. It isn't raining outside."의 순서에 의한 대화 배경은 수용되지만. "It isn't raining outside. *It might be raining outside."의 순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여기에 관여하는 정보상태의 변화 과정을 제약 하려면 가능성 인식양태와 부정 연산 사이에서 순서 제약을 부여해야 한다. <동적의미론>에서는, 문장의 의미는 진리조건의 충족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표상이 변화되는 방식에 있다고 보고, 주요 현안으로 전제, 인식양태, 텍스트의 시간 구조, 담화 초점, 논리적 당연치의 정리 증명, 문장 사이의 조응 관계 등을 취급하였다. 예를 들어, "A man is walking through the park. He is whistling."과 같은 문장 연쇄에서 'a man'과 'he' 사이의 조응(anaphora)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두 문장의 외연 의미 해석을 독립적으로 설정한다. 이때 앞 문장의 처리 과정에서 가능한 지시체들의 집합으로 의미 표상을 부여하고 뒤의 문장 해석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보 변화 과정에 관해 술어논리에 기반하는 수학적 형식 체계의 정합성에 근거하여 문장 연속체상의 제약을 부여한다. <동적의미론>과는 별도로, 네덜란드 학자들이 주도하는 <동적술어논리(DPL)>도 등장하였는데 언어 정보에 대한 수학적 추상화에 몰두한 나머지 실제 자연언어의 의미 체계를 취급하기에는 부족하고 오히려 수학적 논리의 한 분파로 자리 잡았다.

생성문법의 시각에서 볼 때 의미를 형식화한다는 것은 곧 의미 현상을 논리형식 (logical form)이라는 표상의 한 단계에서 명시화 해 추는 작업이다. 즉, 의미의 본질을 논리적 표상(representation)으로 파악하는 견해이다. 고전적 술어명제 논리에서 어휘소로 인정되는 명제 결합의 법칙들에 의거하여 구문론적 구성물들을 설정하고 이것이 인간언어의 실제 문장들과 대응하는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의미 해석의 형식 체계를 설정하는 것인데, 이런 시각에서의 의미 표상 연구도 형식의미론의 한 지류로 포함시킬 수 있다.

그밖에 언어처리를 염두에 두는 형식화 이론에서도 의미 정보의 처리는 힘든 작업에 속한다. 수학적 특성으로 볼 때, '귀납적 가산집합'으로 묶어서 튜링 머신(Turing machine)의 생성력을 넘지 않는다고 보고, 계산 가능한 문제와 계산 불가능한 문제를 구분하기 위한 수순을 정하는 것이 언어정보 처리의 개념적 단초를 형성한다.

4. '맥락과 사용'으로서의 의미
언어표현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사용되는 맥락(context)을 고려해서 결정되어야 할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이런 관점은 1960년대 이전까지는 크게 주목받을 만큼의 연구가 되지는 못했으나, 이후 화행(speech act) 이론의 등장과 함께 화용론 일반의 비약적인 성장과 엇물려 언어학의 주류 학파 중의 하나로 성장 하였다. 철학적 사조로 볼 때에는 화행 의미론이 등장하기 이전 시대에 분석주의 철학, 논리형식주의 철학이 성행하였는데, Wittgenstein이 분석주의 전통에서 이탈하여 독자적인 언어관을 형성한 것이 분기점이 되었다. 의미라는 것은 논리적 대응물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던 분석주의 철학의 언어관에 비해, Wittgenstein은 언어게임(language game)이라는 용어를 제시하면서 언어표현의 의미는 개별적인 맥락에서의 사용의 문제로 보는 것이 더 본질적이라는 점을 각인시켜 주려고 하였다.

이후 등장한 일상언어철학자들은 단어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주어진 단어를 일정한 방식으로 사용할 줄 아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맥락과 사용을 중시하는 접근은 의미론 분야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갖는 또 다른 분야로 화용론(pragmatics)이 자리매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예를 들어, "I was near that bank yesterday."라는 발화를, (ⅰ) 강가에서 말했다면.'bank'는 '강둑'을 뜻하지만. (ⅱ) 월스트리트 지역에서 말했다면, 'bank'는 강둑이 아니라 '금융기관'을 뜻할 것인데, 대화의 맥락을 고려하여 실제 의미가 결정된다. 또 다른 예로, 어떤 사람이 "I'll be in New York."이라고 말함에 의해 전달하는 의미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뉴욕에 가 있겠다고 약속을 하는 것일 수 있고, 뉴욕에 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말해보는 것일 수도 있으며, 뉴욕에 가고 싶다는 의도를 공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처럼 하나의 문장 형식이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은 맥락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화용론을 부각시킨 의미론'(= 화용론)은 화행 이론, 함축, 전제, 함의 등의 언어학적 세부 주제들에 대한 연구를 촉발하였다. 화용론에서 흔히 통용되는 기준으로, 의미를 크게 진리조전적 의미와 비진리조건적 의미로 대별하는데, 그 중 진리조건적 의미는 맥락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서 발화의 진행 과정에서 취소되기 어려운 것에 비해, 비진리조건적 의미는 맥락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화자와 청자가 의사소통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취소될 여지가 있다.

특히 Austin, Searle 등이 선도한 화행(speech act) 이론은 행동으로서의 언어에 주목하였다. 예를 들어, 선언, 질문. 약속, 제안, 명령 등의 행위들은 화자가 겉으로 드러내서 말을 함에 의해서야 비로소 성립하는 것인데, 이와 같은 화행이 적절히 수행되기 위한 적정 조건들을 정하고 그것의 충족 여부를 가리는 것을 중시하였다. 언어 사용자들이 구사하는 언어적 표현 형식은 화자가 의도하는 행위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Someone forgot to shut the door "라는 발언 행위를 함에 의해 다른 사람에게 문을 닫아달라는 요청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의사소통의 과정에서 언어적 정보의 복원 가능성에 대한 일반 이론으로 Grice가 제시한 대화 격률 원리가 있다. 격률(maxim) 이론은 대화에서 언어 사용을 지배하는 사회적 관습을 밝혀보려는 시도였다. 대화의 참여자들이 협력의 원리를 가지고 몇 가지 대화 격률에 준수해서 말을 하거나 혹은 일부러 어겨서 성취하려는 대화상의 목표를 설명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대화 격률 이론에 관해서는 뒤의 7절에서 다시 한번 취급하기로 하겠다.

5. 범주 인식과 인지주의 의미론
경험으로 체득한 지식을 이용하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는 범주화하는 것이다. 중요한 범주들은 단어의 형식으로 기억되어 어휘 개념의 계층적 구조를 형성하는데, 이와 관련해 인지주의 의미론의 등장도 주목할 만한 것이다. 유럽의 구조주의 전통에서 보면, 어휘 체계의 구성 방식에 대한 공시론적 접근과 어휘 의미의 변화 과정에 대한 통시론적 접근이 이루어졌는데, 성분분석 이론을 위주로 하는 고전적 범주 인식에서는 어휘들 사이의 경계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에 비해 인지주의적 접근은 Rosch(1975) 의 원형 범주 이론이 중심이 되는 것인데, 하나의 범주에 속하는 어휘들은 그 경계가 불명확하지만 원형적 보기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기억되는 한 무리의 어휘군을 형성한다고 본다.

형식적 접근을 중시하는 방법론에서는 언어 표현을 형식적 논리 체계로 환원해서 그 등치성에 대한 해석 과정을 통해 의미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한다. 이런 입장은 형식 체계 내의 개체들 사이에는 그 경계가 분명하게 갈리는 것이기 때문에, 문장의 진리치, 전체와 부분의 양화(quantification) 범위 해석 등과 같은 문제들이 분명하게 판별될 수 있거나 혹은 판별되어야만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일상 언어의 여러 현상 중에는 점진적인 연쇄체로 그 모습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중시해서 수학적 퍼지(fuzzy) 논리의 타당성을 자연언어에 적용해 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Labov 1973 외). 범주 사이의 경계가 불명확하기 때문에 하나의 범주로 묶일 수 있는 일군의 다발 중에서 중앙의 초점적 가치로부터 주변의 현상들을 인지하는 것이 심리적 실재성'이 있음을 주장한 것이 Rosch 이후의 원형 이론(prototype theory)이다.

Ⅳ. 국어학에서 의미론의 어제와 오늘
1. 국어의미론의 성립과 외래 학문의 유입
해방 이후 국어 문법 연구는 미국 구조주의 방법론이 유입되면서 형태소. 기본형 등의 개념이 도입되고 통시론적(=역사적) 음운론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현대국어보다는 중세국어를 중심으로, 음운과 형태의 역사적 변천 과정과 원인에 대해 주로 연구 하던 중에, 생성문법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 시기는 1970년대 전후부터이다.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돌아온 1세대 언어학자들의 영향으로 변형생성문법 이론을 중심으로 영어와 한국어의 비교론적 관점에서 보편적 규칙 체계를 설정하는 작업에 몰두하는 학자군이 형성되었다. 그 이전에 1960년대까지 국내 학계에서의 의미론 연구는 이론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실증적 자료 중심의 연구에서도 매우 취약한 실정이었다. 전통적인 문법론의 관점에서 보면, 가령 품사 분류를 하기 위해 고려하는 3가지 기준으로 형태, 기능, 의미 중에서 의미 기준은 형태, 기능 등의 기준으로 충분하게 설명 할 수 없을 때에만 사용되는 보조적 수단일 뿐이었다. 문법 요소를 분류하고 기술하는 작업에서 의미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신뢰할 만한 기준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1970년대 이후 국어 연구의 흐름을 짚어보면, 특히 의미론 분야는 외래 학문의 도입과 적용을 위주로 전개되었다. 1970년대에는 국어학 연구자들과 영어학 연구자들이 서구 언어학의 이론적 성과를 수용하는 데에 있어 언어의 보편성과 개별성, 이 두 가지 측면 사이의 관계를 긴밀하게 의식하면서 통사론적 구문 현상을 중심으로 학문적 연구 대상을 공유하기 시작했으며, 1972년에 <언어학회> 결성을 계기로 해서 서로 다른 언어의 연구자들이 자리를 함께 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국어의미론이 국어학의 한 영역으로 인정받기 시작하였는데, 구조주의에 바탕을 둔 어휘의미론 연구가 자리를 잡은 것 이외에, 몬태규 의미론 위주의 모형이론적, 진리조건적 의미 이론이 유입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생성문법의 한 분파로서 생성의미론이 득세하면서 국내 학계에 유행처럼 전파되면서 전통적 의미 관점과 외래적 의미론이 혼재하였다. 한편으로는 순수 국학의 하위 분야로서 어휘사, 방언학, 형태론 등의 연구에 종속되는 입장에서 어휘의미론에 관한 연구가 계속 수행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외래 학문의 수용이라는 측면에서는 통사론과 의미론의 대응을 염두에 두고 문장의 의미 관계에 관해 주제별로 연구가 이루어지고 발화 단위를 중심으로 하는 화용론이 도입되었다. 이런 와중에 음운, 형태 위주의 국학 연구와 외래적인 생성문법 연구의 두 가지 흐름 사이에 쉽게 합류하기 어려운 벽이 생기기도 하였다.1)

국어의 어휘 연구에 대한 전통은 오래 전으로 올라간다. 현대 학문의 시각에서 본다면 체계화, 일반성, 설명력 등에 있어 부족하지만, 문화적 유산으로서는 귀중한 가치를 지니는 연구들이 있다. 훈민정음의 창제 이후 가장 주목할 만한 의미 연구서로는 최세진의 <훈몽자회>를 들 수 있다. 고유어와 한자어의 어휘 의미를 교육하기 위한 목적으로 저술되었으며, 최초의 어휘의미론 연구로 인정된다. 정약용의 <아언각비>는 어휘의 의미 변화를 취급한 연구 업적이며, 1920-30년대 근대화 시기 이후 어원 연구에 관심을 두는 연구들이 있었다. 1950년대 이후 국어의미론의 연구는 서양에서 전수 되는 외래 학문의 유입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앞 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구조주의 의미론, 철학적 의미론, 형식의미론, 언어사용으로서의 의미론, 인지주의 의미론 등의 학문적 조류들이 국내 학계에 시기적 터울을 두고 순차적으로 유입되면서 국어의미론의 범위가 확대되었다.

1970년대 이후 20세기를 마감하던 무렵까지 국어 연구에서 의미론이라는 연구 분야는 외래에서 전수되는 학문과 전통적 국학의 전통 사이에서 온전하게 자립적인 학문의 위상을 얻지는 못하였다. 화행 이론을 중심으로 한 화용의미론, 단어의 의미 관계를 취급하는 어휘의미론 등의 분야에서 양적으로 적지 않은 연구 성과가 있기는 하였지만, 워낙 외래에서 전수되는 의미 이론이 실제 살아 있는 언어 자료의 다양한 현상들에 대해 경험적으로 충분하게 설명하기보다는, 모형론적이고 인위적인 자료를 대상으로 하던 것이고 해서 국학의 연구 전통과 조화를 이루기는 어려웠다. 국학의 한 분야로서 국어 어휘의 역사에 관한 연구 이외에도 공시론적으로 현대 국어의 어휘 체계에 대한 관심은 구조주의 어휘의미론의 영향으로 일정 수준의 관심을 유지하였지만, 그밖에 형식의미론의 관점에서 국어의 의미 현상에 대한 이해는 체계적으로 수용되지 못한 실정이었다. 국어사적인 관점에서 음운론, 형태론 등의 분야는 오래 전부터 축적되어 내려온 국학적 전통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에 비해, 의미론 분야는 새로운 이론의 전수와 그로부터 새로운 국어 의미 연구의 패러다임을 더 많이 필요로 했다.

그런데 국어학의 여러 각론 중에서 의미론 연구가 개화하지 못한 이유를 전적으로 생성문법의 유행이나 사적 음운론 위주의 국학 연구 등에서 찾을 것이 아니다. 또 다른 이유는 국내 대학원의 교육 과정 운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국어국문학과와 영어영문학과에서 어학을 전공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음성, 음운, 형태, 통사, 의미, 화용 등의 각론적 분할에 의거해서 여러 분야를 약간씩 배우다가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전공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 학생들이 화용론과 의미론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에 비해서, 많은 수의 국내 대학에서 이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가령, 대학원에 진학한 초년기에 먼저 접하게 되는 세부 전공을 계속해서 공부하게 되는 점에서 보면, 교수 과목이 많은 일부 전공을 많이 선택하게 되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학문적인 필연성과는 구분되어야 할 성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미권 국가에서 비교적 많은 학문적 전통을 가지고 있으면서 또한 최근 들어 새로운 성장점을 계속 지니고 있는 의미론 분야의 교과 과정이 국내 대학에서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이유를 지나간 한 세대 동안의 언어학 패러다임에 기인하는 것으로만 돌리고 말 것은 아니다.

2. 의미론 연구의 방향성
1990년대 이후 영미 계열 국가에서 의미론 분야의 이론적, 경험적 연구 성과는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국제학계에서 언어학 연구의 본류는 완전히 의미론 분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서 의미론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 기억이 1990년대 중반 이후에서부터이다(이때 '의미론'이라고 하는 것은 '화용론'을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되며, 담화 연구에 관한 것도 일부 포괄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기존의 의미론 연구 성과 이외에도, 인지적 화용론과 사회적 화용론으로의 양분적 특화를 중심으로 국제학계의 연구 동향은 빠른 속도로 진일보하고 있는 것에 비해, 국내에서는 이를 수용해야 할 의미론. 화용론 분야의 학부, 대학원 강좌들이 지나치게 개론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거나 강좌 자체가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없어지기도 한다. 이것은 화용론과 의미론이 현재 세계의 언어학 연구 흐름에서 마땅히 점유하고 있는 위상에 비추어보면 왜소한 것으로, 성장세를 보이는 전공 분야에 대해 국내에서의 저변이 얕은 것에 기인한다. 역설적이게도, 국내 대학에서 의미론이라는 하위 분야가 순수이론적 전공으로 자리 잡은 것은 그 역사가 오래 되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개론적인 수준에서 외국에서의 20-30여년 전 연구 성과를 부분적으로 소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1990년대 이후로 언어학계에는 하위 분야별로 소규모 전문학회가 연이어 결성되었다. 음성, 음운, 형태, 통사, 의미, 화용, 인지, 언어처리, 언어사 등에 관한 학회들이 생겨나서 연구 성과의 깊이와 폭이 개선되고, 연구 논문의 공유와 유통이 보다 빠르게 이루어져 왔다. 예를 들어, '담화인지언어학회'는 기능과 인지를 중심 분야로 하고. '한국언어정보학회'는 형식의미론과 언어처리를 중시하며. 국어만을 대상 언어로 하는 의미론 관련 학회로는 1999년에 창간된 '한국어 의미학회'가 있다. 그 창립 취지문에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언급한 바 있다 (ⅰ) 다른 국어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국어의미론도 외국 이론이나 일반적인 의미론에 너무 의지해 왔는데, 국어 자체의 의미 체계에 대해 더 깊이 있는 천착이 있어야 한다. (ⅱ) 국어의미론 분야의 연구자 수에 비해 논문 발표를 위한 학술지 지면이 제한되어 있었다. (ⅲ) 체계적인 의미론 연구를 위해서는 의미론 학자들만의 진지한 토론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2)

의미론 분야는 그 연구 대상과 방법의 특이성으로 인해 외국의 연구 성과를 큰 폭으로 참조할 필요성이 있으면서도, 국어의 실제 (살아 있는) 자료에 주목하는 것이 당연한 연구 지향점이 될 수밖에 없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외국의 주요 이론적 성과에 주목하는 것이 국어학의 의미론-화용론적 현안과 별개의 것은 아니다. 학문적 성과라는 것은 외국의 몇몇 이론들을 공부해서 그것을 자랑스럽게 드러내 보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결코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며), 국어의 실제 현상들을 가장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외국에서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 등장한 다양한 갈래의 연구 방법론과 주요 이론적 틀로서 현재 시점에서도 주목을 받는 이론들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욱이 국제 학계의 최근 이론적 발전을 신속하게 수용하고 더 나아가 창의적인 연구를 통해 학문적 발전을 준비해야 하지만, 지난 30여 년간의 연구 전통을 가벼운 개론적 수준에서만 접근하고 있고, 최근 현안이 던져주는 시사점과 그로부터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아쉬운 점으로, 국내 대학에서는 의미론과 화용론의 학부 및 대학원 교육을 위한 교재 개발이 충분하게 되어 있지 않다. 난해한 개념들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외국의 이론을 요약 정리하는 것에 머물 수는 없다. 발전하는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축을 이루는 부분을 보다 쉽게 풀이해서 교과 과정에 사용 가능한 형태로 가공해 나갈 부분들이 있다. 선행 연구에서 취급하던 분석 자료들을 유형별로 재검토하고 그에 상응하는 논쟁거리와 언어적 직관에 대해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안을 설정해야 한다. 실제로 학부와 대학원 교육에 유용성이 높은 것은 세부적인 주제에 대한 개인적 연구보다는 다양한 연구 방법에 대한 균형감 있는 지식의 재생산일 것이다. 이런 자각으로부터 의미론과 화용론 분야에서 주요 연구자의 연구 성과와 기존의 '큰' 이론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수의 학생들이 학부와 대학원 초년 시절에 상당 기간 동안, 주어진 한가지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기보다는 기존에 나와 있는 지식을 이해하는 데에 지나치게 몰두하지만, 기존 문헌을 명확하게 정리하여 표현하는 능력과 새로운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사고 과정에 대한 것은 일정한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 이런 점은 우선 학부에서부터 단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설정하고, 비교적 최근에 나온 좋은 학습서를 단계별로 활용하면서 일정한 자극을 주고 좀 더 이른 시기부터 의미론과 화용론의 제반 현상들을 진지하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난해한 개념들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외국의 이론을 요약 정리하는 것에 머물 수는 없다는 교육적 당위성을 실천하는 일이 현 시대 젊은 언어학자들의 책무로 남아있다.

그러면 다음 5절에서부터는 의미론 분야에서 잘 알려져 있는 연구 방법들을 개괄적으로 정리하면서, 몇 가지 부각되는 논점들에 대해 평가해 보기로 하겠다. 순서대로 5절에서 어휘의미론을 취급하고, 6절은 문장의미론, 7절은 화용의미론을 취급한다.

Ⅴ.어휘의미론: 단어의 의미
개념의 언어적 표현을 나타내는 어휘는 흔히 단어(word)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단어는 단일 개념을 표상하는 최소의 의미 단위로 인정된다. 동일 형태이면서 의미가 다른 동음어(homonym), 한 단어 안에서 의미나 용법이 세분된 단어, 형태가 다르지만 동일 (또는 유사한) 의미를 갖는 동의어/유의어(synonym) 등이 논의된다. 단어의 의미 관계는 (i) 다의 관계, (ⅱ) 동음이의 관계, (ⅱ) 동의 관계, (ⅳ) 하의 관계, (ⅴ)반의 관계 등이 있다.

단어의 의미에 관한 고전적 이론이 구조주의 전통에서 생겨 난 이래, 현 시대의 언어 이론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갈래의 어휘 의미 이론이 등장하였다. 그 모두를 여기에 소개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우리는 어휘의미론 분야에서 연구사적으로 두드러진 방법들을 정리하기로 한다. 우선, 의미 기본소 추출과 관련하여 어휘의미론과 인지의 미론의 방법을 대비하고 범주화, 원형 이론, 문화적 상대성 등의 관점에 국한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1. 어휘의 분해: 성분분석 이론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개체, 개념들에 대해 범주화를 통해 인식하게 된다. 외부 세계의 자연범주는 인간 내면의 개념법주와 대응함에 의해 의미가 성립한다고 보는 것이 범주화 이론의 기본 가정이다. 특히 구조주의의 영향으로, 단어의 의미를 규정하기 위해 우선 단어를 구성하는 의미 자질로 분해해서 그것의 조합에 의해 단어들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구분해 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즉, 구조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연구로, 성분 분석 방법론은 단어의 의미는 더 작은 구성 요소들로 해체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예를 들어, "성인남자, 성인여자,소년,소녀"와 같은 단어군에서<human>, <male>, <young> 등의 +/- 값의 차이에 따라 뜻의 차이를 변별하려고 하였다.

어휘場 이론에서는 일반적 지식의 영역을 포함하여 어휘의 의미를 정하기 위해 속성 부분, 기능 등을 의미 성분으로 정하였다. 어휘를 해체하는 방법은 70년대 초변형생성문법 이론의 한 분파로 등장한 생성의미론자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bachelor'의 한 가지 뜻으로 '총각'개념은<human>, <male>, <adult>, <unmarried>의 4가지 의미자질에 의해 구성되었다. 어휘 해체(lexical decomposition)에 관한 유명한 예로 아래에서 보듯이, 'kill'은 ALIVE라는 의미소에 NOT, BECOME, CAUSE 등의 의미 연산이 작용하여 표층의 단어로 어휘화 된 것으로 정의하고 'kill'과 관련 있는 'die', 'dead' 등의 어휘도 동형의 의미 연산 과정에서 어휘화 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7) kill : CAUSE(y, BECOME(NOT(ALIVE(x))))

(8) a. die: BECOME(NOT(ALIVE(x)))

b. dead: NOT(ALIVE(x))

생성의미론자들의 주요 관심사는 인간의 언어능력을 구성하는 주요 특질들을 명세화 하는 것이었는데, 언어 간의 매개변항적, 유형론적 구조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에는 설득력이 부족했지만, 어휘를 해체하는 기법은 어휘적 개념이 결합하는 과정에서 의미 원소의 보편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부각시켜 주었다.

2. 의미와 인지: 원형 이론
고전적 어휘의미론에서의 범주 인식은 인지의미론에서의 범주 인식과 대비된다. 고전 법주화 입장에서는 범주의 경계가 뚜렷하며 법주 구성원들은 동등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인지주의적 관점의 원형 범주화 입장에서는 범주의 경계는 불분명하며, 범주 구성원들 간에는 원형적 보기와 주변적 보기의 비대칭성을 이루고 있다. Rosch(1975), Labov(1973) 등이 제시한 실험적 연구에 의하면, 한 부류 중에서 전형적 구성원은 쉽게 판별이 되지만 비전형적인 구성원은 쉽게 판별되지 않는다. 즉, 하나의 범주로 묶이는 구성원들이 모두 동일한 지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 더 전형적이고 대표적인 예가 있고 그보다 대표성이 떨어지는 예들이 있다고 본다.3) 대표적인 예를 '원형 보기'라고 하는데, 원형 보기를 중심으로 주변적 보기가 외곽에 방사형으로 배치되어 기억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9) a. A robin is a bird

b. A duck is a bird.

(10) There is a bird on the porch.

여기에서 (9a)보다 (9b)를 판단하는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거나, (10)에 의해 참새가 현관 위에 앉아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만, 독수리가 현관에 앉아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Rosch의 연구에서 제시한 원형 보기, 비원형 보기의 예를 몇 가지 더 들어보면, '가구' 범주를 대표하는 원형 보기는 '의자', '소파' 등이고 비원형 보기는 '전화', '선풍기' 같은 것들이다. '과일', '꽃', '새' 등의 범주들에 대한 원형 보기로는, 각각 '사과', '오렌지', '장미', '참새' 등이 대표적이다. '피클' , '패랭이꽃', '박쥐' 등과 같은 예들은 대표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원형 보기에 비해 언어사용자들이 더 힘들게, 더 느리게, 더 드물게 떠올리게 된다.

실제 세상에 존재하는 개념이나 대상들에 대해 두루 통용될 수 있는 비교적 적은 수의 기본 의미 성분들을 확정할 수 있다면 서로 연관성이 있는 단어들 사이의 관계를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성분들을 '원초적 의미소'(semantic primitives)로 명명하며, 그에 대한 구체적인 목록은 가장 쉽게 접하고 필요로 하고 경험하는 물리적 상태나 과정, 행동, 환경 등에서 얻어지는 개념들로부터 추출된다. 즉, 신체구조, 자연현상, 인간과 관련된 개념들(사람, 아버지, 어머니, 아이/자식), 기본적인 동작이나 자세(가다/오다. 가지다. 주다 앉다/서다. 눕다), 기본적인 수량 개념(하나, 많다) 등이 우선적으로 포함된다.

주목할 만한 이론적 쟁점으로, 원형 이론에 등장하는 대표적 보기들은 근본적으로 문화적 경험의 결과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즉, Lakoff(1987) 가 명명하는 이상적-인지모델(Idealized Cognitive Model: 이하 ICM)에 의하면, 개체에 대한 '백과사전적지식'과 세계에 관한 견해 구성을 가져오는 '문화적 지식'이 병렬적으로 작용해서 언어적 프레임(frame)이 세워진다. ICM은 현실 세계 내에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그로부터 원형 효과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Lakoff의 ICM과 비슷한 입장을 취하는 접근 방법으로 Fillmore(1985) 의 프레임 이론과 Fauconnier(1985) 이후의 '정신공간'(mental space) 이론 등이 있으며, 최근 Marmaridou(2000) 는 ICM 가설이 직시어, 전제, 화행, 함축 등의 주요 화용론적, 인지적 언어 현상들에 대해 갖는 타당성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

그런데, 원형 이론의 가장 큰 한계는 합성성(compositionality)에 대한 설명력이 없다는 점이다. 합성성 원리에 의하면, 통사 구조와 의미 해석 모두에 걸쳐 부분 표현이 합성되어 전체 표현이 이루고 이에 대한 절차적 지식을 명시화 할 수 있어야 한다. 단어로 표현되는 개념들과 문장으로 표현되는 개념들 사이의 연결 관계에 대해 명제논리, 표준적 문장의미론, 그리고 Jackendoff의 개념의미론 이론 등에서 익숙하게 정의하는 것에 비해, 원형 이론에서는 서로 다른 원형 보기들이 결합하여 더 큰 단위의 새로운 원형 보기가 생겨나는 근거와 그에 내재된 특성들을 예측하지 못한다. 즉, 원형 이론은 단어로 표현되는 개념의 부류(class) 설정 근거에 대해서는 신빙성이 있지만, 개념 결합의 유형을 구별하는 작업에 대해서는 적절하게 접근하지 못하였다.

범주화와 관련하여 인지의미론의 주된 관심사 중의 하나는 다의어 문제였다. 다의어라는 것은 한 단어가 여러 의미를 갖는 경우를 지칭하는데, 예를 들어 '창밖으로 손을 내다'의 내다'와 '곡식을 내다(팔다)''사업에 돈을 내다(出資)''책을 내다(出刊)', '길을 내다' 등에서 '내다'는 다의어로 작용한다. 또 다른 예로, '은행'이라는 단어의 다의성을 보면, "은행은 고색창연하다."에서 '건물'을 뜻하고, "이 은행은 1925년에 설립되었다."에서 '기구' 혹은 '법인'을 뜻하고, "이 은행은 친절하다."에서 '인적요소'를 뜻하고, "이 은행은 근무하기 편하다."에서 '근무여건'이나 '종사방식'을 뜻한다.

다의어의 존재는 하나의 어휘 항목이 여러 개의 의미를 표시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인지적으로 머리 속에 저장하는 기억의 부담을 줄여준다. 다의어의 생성 원리에 관한 설명은 구조주의자, 인지주의자 등이 나름대로의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인지주의 범주화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다의어로의 의미 확장은 원형의미를 중심으로 주변의 확장 의미와 방사형의 범주를 이룬다. 고전적 구조주의 견해로는 기본의미와 파생의미 사이에 '의미적 유연성'이 지속되어야 다의어로 기능한다. 다의어는 동음어와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흔한데, 다의어와 동음어의 관계에서 다의어가 그 유연성을 잃어버리면 동음어가 된다. 다의어와 동음어를 구별하는 문제는 특히 사전 편찬을 위한 표제어 설정에 어려움을 준다. 다의어인 경우에는 하나의 표제어로, 동음어인 경우에는 독립된 표제어들로 정해야 한다.

3. 문화적 상대성/보편성과 어휘 구분
사피어/워프 가설 이후, 개념과 어휘 사이의 대응이 문화권 별로 차이를 보일 수 있는 것과 관련해서 문화적 상대성과 보편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구조주의 어휘의미론 시대에서부터 발현된 의미場 개념의 필요성을 예시해주는 좋은 예로 색채어 어휘가 있는데, 이것은 개별 언어마다 범주화에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색채어에 대한 블룸필드 구조주의자들의 전통적 견해로는 빛의 굴절에 따른 색채의 연속체 상에서 각 개별언어마다 차이가 있는 것은 자의적인 선택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인지주의적 견해에서는 색채어의 구별이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초점 색채를 중심으로 주변적인 색채의 구별이 지각된다. 구조주의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견해로 Berlin & Kay(1969)는 먼셀 색상표의 300여 가지 색채 중에서 30여 가지 정도가 비교적 핵심적인 색상인데, 여러 언어들의 색채어들을 실험적으로 비교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단계별로 색채어의 발달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았다.


 


이 표에서 오른쪽으로의 색상이 존재하는 경우 그보다 왼쪽으로의 색상도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다. 가령 영어보다 기본 색채어의 수가 적은 언어에서는 한 가지 명칭의 색채어가 영어의 색채어에 비해 더 넓은 범위의 자연색을 뜻한다. 어떤 언어에서 3가지 색채어만 있을 때에, 'red'라는 색채어는 오렌지, 노랑, 자주 등을 포함하는 것이 상례이다. 녹색과 파랑의 색채어 구분이 되지 않은 언어에서는 그 둘을 통칭하는 색채어를 대강 'grue'(= green + blue)라는 가칭으로 붙여볼 만한데, 실제로 웰쉬어에서 'glas', 반투어에서 'rihlaza'. 일본어에서 'aoi' 등이 그런 스팩트럼을 나타내는 어휘들이다.

한국어에서 기본 색채어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무지개의 '빨-주-노-초-파-남-보' 중에서 '빨강-노랑-파랑'을 제외한 '주황-초록-남색-보라'는 서양의 외래어에서 유입된 색채어들이다. 고유어의 색채어는 '빨강-노랑-파랑' 이외에 '거멍-하양'을 합해 다섯 가지였고, 그 근거로 색채어휘들의 파생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다. 단어 형성 과정에서 고유어들은 용언으로부터 명사 파생이 일어난 것에 비해, 외래에서 전수된 한자어 계열의 색채어들은 파생을 통해 생겨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에 대응하는 색채 형용사가 없다.

(12) 검다/거멓다 →거멍

희다/하얗다 →하양

빨갛다 → 빨강

노랗다 → 노랑

퍼렇다 → 파랑

단어의 구획은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듯이, 색채어 범주화의 경우도 문화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에스키모인들에게는 백색을 나타내는 색채어의 종류가 다양하게 있으며, 조선왕조의 원색이라고 할 수 있는 색채어들로 연지빛, 등황빛, 치자빛, 쪽빛 등은 서양의 먼셀 색상표에 들어 있지 않다.

한편, 실제 언어에서는 범주 경계가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고 모호한 경우도 있다. '남자의 집합', '자연수의 집합'은 그 외연 범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에 비해, '아름다운 사람', '키가 큰 사람'의 경우에는 그 경계를 분명하게 정하기 어렵고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 (13a)의 '많은'과 (13b)의 '많은'은 양화사의 일종인데, 그것을 만족시켜 주는 개체의 수량을 일정하게 한정하기 어렵다 또한 (14a)로부터 가감어(hedge)로서 'regular'를 더한 (14b)를 비교해 보면, 합성성 원리가 보존되지 않는다.

(13) a. 많은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죽거나 다쳤다.

b. 우리 반에는 왼손잡이가 많다

(14) a. 돌이는 홀아비이다. (John is a bachelor.)

b. 돌이는 영낙 없는 홀아비이다. (John is a regular bachelor.) (Lakoff 1987)

문화적 상대성을 중시하는 최근 이론으로 Wierzbicka의 자연의미상위어(NSM)은 제한된 수의 의미기본소(semantic primes)에 의해 의미 기술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것을 NSM(Natural Semantic Metalanguage)이라고 부르는데, 이들 사이에 결합 규칙을 부여하였다. 선정된 의미기본소들은 그 자체로 실재한다고 보기 때문에 여타의 의미기본소들이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기본소를 정의할 것이 아니며, 모든 언어들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 Wierzbicka(1996) 가 제시하는 의미기본소 목록들은 (15)와 같다. 가령, 동사 'break'의 사역 의미는 (16)과 같은 NSM으로 정의된다.

(15) I, you, someone(person), something(thing), people; word

this, the same, other, part (of), kind (of)

one, two, many (much), more, very, all, some (of)

think, know, want, feel, see, hear, say

good, bad: big, small

do, happen: move, there is, (be) alive

when, before, after: a long time, a short time: now

where, under, above: far, near, side, inside; here

not, can if, because, like, if ‥‥ would, maybe

(16) X person break(s) y (e,g, Howard broke the window)

a. x does something to y

b. because of this, something happens to y at this time

c. because of this, after this y is not one thing any more

4. 어휘 의미의 변화: 문법화 이론
문법화 이론은 문법 형태소나 문법구성의 근원을 어휘적 의미에서 찾는 작업에서 시작되었으며, 문법화 현상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문법의 형성 과정 및 발달의 원리와 본질을 규명하려는 것이다. 문법화 현상이라는 것은 문법적 단위 표현들이 언어사적 변화에 있어 일정한 방향으로 진행되어 나가는 것을 말한다(Hopper & Traugott (1993) , Traugott(1982) 등). 문법화 현상의 예를 보자면, (17)에서 이동동사 go로부터 조동사 go가 발달하였고. (18a), (18b)에서 보듯이 장소 표현 '밖에'가 조사로 발달한 경우가 있다.

(17) I am going/leaving 〔to marry Spears〕.

⇒ I 〔am going to 〕marry. ⇒ I gonna marry Bill.

(18) a. 밖에 누가 찾아 왔어요.

b. 나는 등산밖에 좋아하는 취미가 없어요.

문법 의미가 어휘적 의미로 발달하는 과정의 방향성에 있어 언어 보편적으로 일관성이 있고, 그 구체적인 작용 원리들은 언어사용자의 인지적, 화용론적 제약에 의해 결정되는 것임을 중시한다. ‘변화 방향의 일정성’ 가설에서 지적하듯이, 문법화 과정의 진행에 의해 드러나는 주요 특징 몇 가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i) 문법성: 한 형태소가 어휘적 지위에서 문법적 지위로, 덜 문법적 표현이 더 문법적 표현으로 변화되어 간다. (ii) 추상성: 구체적인 뜻에서 추상적인 뜻으로 변화한다. (iii) 형태구조: 구절 및 통사적 구조(자유표현)에 관한 자유표현이 형태소적 구조에 관한 의존적 표현으로 변화한다. (iv) 담화 운영의 의미 기능: 명제적(prepositional)의 의미 내용은 텍스트적(textual) 의미로 확산되고, 더 나아가서 표현적(expressive) 의미가 강화되어가는 순서로 담화 운영상의 기능이 변화한다.

구조주의 언어학 이후 공시태(synchrony)와 통시태(diachrony)를 구분하면서 서로 다른 공시태에 기초해서 통시태를 재구성해내는 접근이 오랜 동안의 언어사 연구 전통이었다. 공시적 현상은 통시적 변화의 과정에 놓여 있고 통시적 변화의 단계는 공시적 현상으로 그 시대 언어사용자들의 의식에 자리 잡는 것이기 때문에, 구조주의 이후 현대 언어학에서의 언어사 연구에 이르기까지 공시태와 통시태의 구별은 당연시 되어 왔다. 이러한 전통과 비교해 볼 때, 문법화 이론에서는 시간의 축을 단층적으로 구별하지 않으면서 공시적 현상과 통시적 형태 사이의 귀류적 재구성을 목표로 공시론과 통시론을 통합하는 범시론(panchrony) 연구를 표방한다. 특히 한 형태소가 주어진 시점에서 여러 가지 기능을 공유하면서 의미의 분화를 이루는 현상에 대해 문법화 단계의 구획을 통해 변화의 방향성을 설명하려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 다음과 같은 기본 명제들은 문법화 과정을 표시하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개념들이다:

(19) 문법화에 쓰이는 기본명제들(Heine et al. 1991)

(i) locational proposition: X is at Y.

(ii) motion proposition: X moves to/from Y.

(iii) action proposition: X does Y.

(iv) part-whole proposition: X is part of Y.

(v) equational proposition: X is (like) Y.

(vi) comitative proposition: X is with Y.

그 밖에 문법화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어휘화 현상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어에서 ‘점잖다’, ‘귀찮다’, ‘편찮다’, 등의 어휘가 본래 ‘젊지 않다’, ‘귀하지 않다’, ‘편하지 않다’ 등으로부터 축약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다. Giv?n(1971) 의 유명한 격언으로 "오늘의 형태론은 어제의 구문론이다."(Today’s morphology is yesterday’s syntax.)라는 말이 시사해 주듯이 ‘-잖-‘ 형태소의 축약 현상은 문법적으로 부정 구문으로부터 문법화 방향성 가설에 역행하는 것이다.

의사소통의 초기 표현들은 습관적으로 자주 결합하는 것들끼리 통사적 구조를 형성하고 통사적 구조가 더 습관적으로 일상화되어 단어사이의 간격이 없어져 하나의 형태소가 되고 더욱 더 음운론적 단축이 일어나 극단적인 경우에 그 형태 자체가 없어진다. 이처럼 일상화에 의한 부호화는 문법화 현상에서뿐 아니라 어휘화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Ⅵ. 문장의미론
1. 문장의미론의 전통적 개념
문장의 의미에 대한 초기 연구는 진리조건적 의미론의 형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등장했다. 기본 과정으로, 문장의 명제 내용이 참으로 성립하기 위한 조건은 세계와의 대응 관계에 의존해서 결정된다는 점을 중시한다. 즉, 문장의 진리치는 문장과 세계 사이의 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인데, 문장이 세계 내에서 참이 되기 위한 조건을 진리조건, 가능세계, 모형 등의 개념에 의거해서 문장의 의미를 분석하고, 화자에 의해 말해진 것이 인식되는 정도에 따라 문장 의미를 입증하는 것이다. 문장의 진리치 결정은 절차적으로 해석된다. 예를 들어 (20a)에서 ‘Snow is white.’라는 문장의 진리치는 실제 세계 내에서 그에 대응하는 진리 조건이 필요함을 iff 오른쪽에 적은 것인데, (20a)를 (20b)로 단순화 시켜서 말하자면 ‘iff p’에서 iff(= if and only if)가 요구하는 필요충분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문장 S의 진리치가 결정된다.

(20) a. ‘Snow is white’ is true iff snow is white.

b. S sis true iff p.

그런데 문장 의미가 언제나 문장과 세계 사이의 관계에 따라 정해지는 것만은 아니어서, 다음 예처럼 (21)의 문장이 참이라는 것과 (22)의 문장이 모순 명제 내용으로서 거짓이라는 것은 선험적으로 결정되며 세계 내의 경험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21) a. Bertrand Russell sis Bertrand Russel.

b. He will come or he won’t come

(22) a. It is raining and it is not raining.

b. My cat died last week but it is still alive.

문장의 내적 구조는 의미에 영향을 주는데, 단어의 의미를 아는 것으로는 불충분하고 명제 내용의 진리치를 판별할 수 있는 조건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화자는 사용가능한 문장들을 목록을 일일이 기억해 두는 것이 아니라, 단어들을 결합하는 일련의 규칙 체계에 의존해서 문장의 진리치가 성립하기 위한 조건을 알고 있다. 문장의 내적 구조 형성에 관여하는 기본 원리로서 명제논리를 근간으로 삼고, 연접, 이접, 조건, 부정 등의 문장 연결사 등에 의해 문장들 사이의 결합을 정의한다. 실제 문장의 구조를 기술하기 위해 사용되는 명제논리 표현들은 집합적 체계를 구성하는 데에는 유용하지만, 인간언어와의 등가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가 흔히 있다.

의미 이론은 단어의 의미에 관한 지식을 기술하는 것뿐 아니라 단어들이 결합하는 방식에 관한 지식도 포함된다. 합성성(compositionality) 원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문장의 의미는 단어들의 의미 이외에 단어들끼리 결합하는 통사적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단어에서 동음어, 다의어 등의 현상이 있는 것에 비해, 문장에서는 구조적 중의성이 있다. 문장 구성에서 합성성 원리가 가장 두드러지게 작용한 것은 범주문법(CG)이다. 문장의 의미는 단독으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 통사 구조와 짝을 이루고 정의된다. 술어논리의 기본 표현들 이외에 양화 논리, 시제 논리 등이 필요하다.

2. 논항 구조(argument structure)
서술관계(predication)란 주요 단어 부류들의 의미 기능을 나타내는 것이다. 주로 동상의 서술관계를 위주로 여러 이론들이 제안되면서 관련 쟁점들이 부각되었다. 동사의 서술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함수-논항의 연산 작용이 필요한데, 주어진 동사 자체를 함수(functor)로 잡고 이에 대응하는 논항(argument)의 수와 그에 결부된 의미 역할의 분류와 일반성을 파악하는 것을 위주로 문장을 구성하는 범주 체계가 구성된다.

문법을 구성하려면 상위언어(meta-language)를 필요로 한다. 상위언어라는 것은 본래부터 존재하는 언어를 記述하기 위해 추가로 도입한 논리형식 언어에 해당한다. 술어논리 표현으로, 술어명(predicate term), 개체 정항(constant), 개체 변항(variable) 등을 도입하는데, 예를 들어 "Molly is an uncle of Frodo."는 두 개의 개체 정항 m, f를 포함하는 uncle(f, m)로 적고, "x is an uncle of y."는 개체 변항 x, y를 포함하는 uncle(x,y)로 적는다. 술어논리 표기 규약에서 서술어 자체는 불완전한 명제로서 슬롯(slot)의 자리를 충족시켜 주는 논항(argument)의 출현에 의해 명제 내용을 구성한다. 의미의 합성성 원리나 통사 구조 생성의 측면에서 보면 서술어와 논항의 결합 관계는 함수로 정의된다. 실제 문장의 구조를 기술하려면, 서술관계의 술어논리는 필요에 따라 확대되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논항 구조 관계뿐 아니라 시제, 양상, 양화, 사건 주고 등을 비롯한 여러 언어적 정보들이 포함된다.

많은 수의 문장을 기술하기 위한 문법 이론의 설계나 구현을 위한 표현 방식은 술어논리에 기반하는 논항 구조 정보를 포함하는데, 결합의 우선 순위를 미리 정해 놓은 절차적(prodedural) 지식으로 나타낼 수도 있고, 결합의 가능성과 제약을 우선시해서 선언적(declarative) 지식으로 나타낼 수도 있다. 여러 가지 문법 이론은 논항 구조의 통사적 측면과 의미적 측면 사이의 연결 관계를 밝혀내는 것에 나름대로의 구성 원리와 규약들을 설정하고 있다. 특정 이론에 대한 세부적 구성 원리는 접어두더라도, 일단 이론 중립적으로 볼 때 서술어와 논항 상이의 의미 관계를 지칭하는 용어는 의미 역할(thematic roles)이다. 대표적인 의미 역할은 보통 ‘행위자’, ‘수혜자’ 등을 더 구체적으로 세분하고, 공간적 역할도 세분해서 그 목록을 설정한다. 의미 역할의 수를 최대한 줄였을 때 문법 기술의 간결성은 높아지지만, 실제 언어 자료에 대한 설명력은 떨어지게 되기 때문에 적정 수의 의미 역할을 확정하는 것은 새로운 문법 이론이 등장할 때마다 가볍게 취급될 수 없는 문제였다.

논항 구조에 관한 논의는 문법적 관계(grammatical relation), 격(case) 이론과 상당 부문 중첩된다. 문법적 관계라 함은 생성문법의 흐름에서 보면 통사적 범주들 사이에 존재하는 구조적 형상 개념에 의거하여 주어, 목적어, 부사어 등의 분포 적형성과 통사론적 직능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고, Chomsky 계열의 변형생성문법과 GPSG, HPSG, LFG 등의 비변형적 생성문법에 걸쳐 구절 형성의 기본 단위로 정의되는 중심어(head), 보어(complement),부사어(adjunct) 등의 구문론적 위상과 일정하게 대응한다. 한편, 격(case)이라는 용어에 치중해서 생각해 보자면, 이것은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즉, 표면격과 심층격으로 구분된다. 표면격은 문법적 관계 개념과 거의 대동소이하며 논항구조의 통사론적 정보를 포함하는 것에 비해, 심층격은 논항구조의 의미론적 정보를 포함한다. 이미 1970년대부터 생성문법에 대한 대안적 접근으로 등장한 Fillmore의 ‘격 문법’(Case grammar)은 논항의 의미 기능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문법 규칙의 조작에 의해 나타나는 표면 구조와는 별개의 정보로서 심층구조에 부여되는 의미격을 설정하였다. Fillmore 이론에서 의미격으로는 동작주,경험자, 대상, 도구, 시발점, 목표점, 장소, 시간 등의 8가지가 우선적으로 인정되었다.

격(case) 정보에 관한 연구는 순수 이론 연구로서뿐 아니라, 인지과학이나 언어공학 관련 분야에서 서술어의 결합가(valency), 필수적 논항 성분의 의미 역할 세분화 등에 관한 목적 기초 연구가 수행되었다. 그러나 계산처리 가능성(computational feasibility)이라는 것은 (인지과학에서 크게 중시하는) 마음(mind)의 내적 구조와는 별개의 것이다. 효과적으로 처리될 수 있도록 고안된 지식표현 방식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당연히 인지적으로도 실재에 부합하는 것만은 아니며 언어능력의 연역 체계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3. 문장 의미와 어휘적 정보
문장은 어휘들의 결합에 의해 구성되듯이, 문장 의미의 실현은 어휘 의미의 합성을 반영한다. 서술어의 의미 관계에 관해 오래 전 Vendler(1967) 가 제시한 4가지 유형의 사건구조(event structure)로, <상태>, <행위>, <완성>, <달성> 등은 동사의 의미를 기술하기 위한 가장 대표적인 부류로 인정되었다. Vendler의 4가지 분류를 형식의 미론에 수용한 것은 Dowty(1979) 로서, 다음에서 보듯이 기본 형식화에서 사건구조들 사이에 내포 관계를 부여한다. 이처럼 술어논리 형식을 사용하는 의미 기술 방식은 사건 구조 기술에 중요한 근간을 이룬다.

(23) (Pn = n-place predicate. Ø = 문장)

a. 상태: Pn (x1 , . . ., xn )

b. 행위: DO(x1, Pn (x1 , . . ., xn )

c. 달성: BECOME(Pn (x1 , . . ., xn )

d. 완성: CAUSE(Ø, BECOME(Pn(x1 , . . ., xn )))

이후 Jackendoff(1990, 2002) 의 개념의미론(conceptual semantics) 이론에 의하면, 단어와 구가 문장을 구성하기 위해 결합하는 과정에 통사구조와 개념 구조 사이에서 보듯이 서술어를 중심으로 의미 역할에 대응하는 개념구조가 정의된다. 개념의미론에서의 보편적 의 범주들로는. 사건(event). 상태(state). 사물(material thing). 경로(path). 장소(place). 자질(property) 등이 있다.

(24) John went home: [event GO([thing JOHN]. [path TO([place HOME])])] go: [event GO([thing__], [path__])]

(25) John gave Bill $5: CAUSE(JOHN, GO($5, TO(Bill))) give: CAUSE(__GO(.__ TO(__)))

서술어의 개념구조에 대한 연구는 언어정보처리를 위한 기초지식으로 필수적인 부분이다. 특히 서술어의 통사적 결합 관계에 관한 논항구조 정보와 이에 대응하는 의미관계 정보를 단계별로 확정해서 어휘부의 지식베이스를 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서술어의 어휘정보에 기초해서 문장의 의미해석 원리를 밝히는 작업은 Pustejovsky 이론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Pustejovsky(1995) 의 생성어휘이론(generative lexicon)은 전산 지향적 의미 처리를 목적으로 해서 등장했다. 다의어나 은유 현상을 설명하려면 함수-논항의 대응쌍을 단순히 열거하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며, 하나의 어휘의 의미구조내에 여러 개의 하위구조들을 내포시켜 다층적 의미 기술을 시도하는 것이 생성어휘이론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i) 사건구조, (ii) 논항구조, (iii) 격구조, (iv) 특질구조 등의 4가지 하위구조를 기본으로 설정한다. 특질구조는 어휘의 다의성을 드러내는데, 구성역(constitutive), 형상역(formal), 용도역(telic), 행위역(agentive) 등의 네 가지 역할이 해당된다. 예를 들어, ‘kill’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형식화 된다. (Pustejovsky 1995:208).

(26) KILL [kill

EVENTSTR = 〔 E1 = e1·process

                            E2 = e2·state

                            RESTR = <

                            HEAD = e1 〕

ARGSTR = 〔 ARG1 = 1 [top

                         ARG2 = 2 [animat_ind

                         FORMAL = physobj ]]

QUALIA = 〔 dc_lcp

                         FORMAL=dead(e2, 2)

                         AGENTIVE=kill_act(e1, 1, 2 ) ]]

전자사전의 구축을 모색하는 연구 집단은 생성어휘이론에 대해 예민한 관심을 보였다. 어휘해체 기법에 기반해서 어휘자질과 그에 대응하는 값의 행렬에 의해 의미정보를 표시하는 방식은 워드넷(WordNet)의 구현에 영향을 주었다. <워드넷>은 언어심리학적 원리에 기반을 두고 동의어(synonym), 상위어(hypornym), 하위어(hyponymy), 분의어(meronymy) 등의 기본적 의미 관계를 포괄하고 있으며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사전으로서 범용성이 높다.

4. 문장 의미 연구와 언어 자료
Chomsky 계열의 생성문법에서는 분석 대상 예문의 문법성(grammaticality)이나 허용성(acceptability)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색깔 없는 녹색 사고가 격렬하게 잠을 잔다."라는 말의 무의미함에 비해, "언어는 사고를 창출한다."거나 "언어는 존재의 거처이다."라는 말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다. "나는 밥을 먹었다."에 비해, "나는 밥이 먹고 싶다."와 "나는 밥을 먹고 학교에 가고 싶다." 등의 문장에서 ‘밥이/밥을’의 격 조사 교체에 따른 문법성 여부의 차이는 한국어 사용자의 내성적 직관으로 분별되며, 문법 이론 내적으로도 그 출현 가능성을 제약할 수 있다. 생성문법은 비문법적 문장인 경우에 그것이 왜 그럴 수밖에 없으며, 문법적 문장이 되기 위해 필요한 통사론적, 의미론적 제약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 것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문법이론의 구성 요소들을 모듈화 시키는 것에 집중하였다. 비문법적 문자의 비문법성을 설명하는 작업을 통해 언어 구조의 생성과 해석 과정에 대한 연역적 지식 체계를 넓히는 것이 언어능력(competence)의 본질을 밝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분석 대상을 관찰하고, 기술하고, 설명해야 하는데, 우선 관찰의 단계에서 모국어 화자의 ‘직관’(intuition)에 의존하는 내성적 판단을 중시한다.

그러나 실제 언어사용(performance)의 측면에서 보자면, 보통의 사람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을 일탈적인 문장을 일부러 만들어 내서 그것이 왜 나타나지 말아야 하는지에 관한 이유를 설명하는 관행에 대한 반감도 불러일으켰다. 실제 언어적 상황에서 많은 수의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문장들의 집합을 연구자의 내성이나 직관으로부터 가져올 것이 아니라 대규모 언어 자료에 통해 검증해 나가는 작업의 유용성을 강조하는 세력이 등장한다. 즉, 언어 자료에 대한 계량적 접근은 무가치한 것으로 보는 생성문법의 가정은 1990년대 이후 비약적으로 성장한 코퍼스 언어학(corpus linguistics)에 의해 도전 받는다. 생성주의 언어학에서 의존하는 ‘직관’이란 과연 그토록 믿을 만한 것일까? 이론 내적인 편견이 아닐까? 하나의 언어적 사회는 동질적이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사회적 요인들에 의해 이질적인 성격을 강하게 갖는 것으로 보아야 할 터인데, 초기 코퍼스 연구자들은 생성문법의 연구에서 보듯이 인위적으로 제한된 자료로부터 도출된 예측은 이론적 가공물일 뿐 언어적 실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고 반대 의견을 공언하게 된다.

말뭉치의 구축은 공시적 자료와 통시적 자료, 문어와 구어 자료에 걸쳐 의미 있는 자료 검색에 도움을 준다. 대규모 ‘말뭉치’(=코퍼스, corpus) 구성과 검색 프로그램이 1990년대 중반 이후로 상용화되기 시작하면서, 어절 단위의 용례 검색을 통해 효과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분류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이런 도구를 활용해서, 개별 단어들의 어휘적 의미를 결정하기 위한 기준들을 세워서 사전 편찬을 용이하게 하는 것 이외에도, 의미의 불확정성 가설, 의미의 변화, 문법화의 변화도를 증명하기 위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겠다. 국내세서는 연세대학교 말뭉치, 카이스트 국어정보베이스, 고려대학교 말뭉치 등의 기관별 연구가 수행되다가, 1988년 이후 국립국어연구원/문화관광부 주관으로 국내 학계의 연구진이 <21세기 세종계획>이라는 대형 연구과제를 통해 작업하게 되었다. ‘세종계획’은 영국의BNC(British National Corpus)에 비교될 만한 수준을 목표로 삼았으며, 홈페이지인 www.sejong.or.kr에서 연구 결과 공개물을 접할 수 있다.

범용성 있는 코퍼스에서 특정 어절 검색을 통해 코퍼스 내의 사용 가능성을 짚어보는 것이 우선시되는데, 과거처럼 예문의 문법성 여부를 직관에 의존해서 결정하던 관행을 대체할 것으로 여겨진다(손쉽게 어절 검색이 가능한 싸이트로는 카이스트 csfive.kaist.ac.kr/kcp가 있다). 발달한 코퍼스의 자료량은 1000만 어절, 1억 어절 등으로 그 크기를 말하지만, 현재는 어절 수의 절대 크기보다는 장르별로 얼마나 대표성을 가진 자료를 포함하고 있는가 하는 점과, 구어와 문어의 비율 등이 중시된다. 세종 계획의 사업 내용 중에서, 전자 사전 분과는 통합 전자 사전 이외에 품사 별로 체언 전자 사전, 용언 전자 사전, 부사 전자 사전, 조사/어미 전자 사전, 명사 전자 사전 등을 구현하고 있다. 전자 사전은 국어 의미론 연구에 있어서, 어휘의미론은 물론이고 문장의미론, 어휘사 연구 등에 걸쳐 유용한 국어 자료의 검색과 분류 작업에 유용한 도구이다.

코퍼스의 발전은 단순히 언어정보 처리를 위한 기법의 개선으로 인식되고 말 것이 아니다. 도구적 유용성을 활용하려면, 특정 장르별로 대표성 있는 데이터를 모아서 정량적, 정성적 분석을 시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인문학의 글쓰기와 과학의 글쓰기 사이에서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에 대해 연구해 보면, 언어 정보의 전달과 이해에 작용하는 원리들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고, 연구 결과로부터 얻어지는 효용성도 많이 있을 것이다. 다만, 국내에서 이에 대한 선행 연구 사례가 없고, 적절한 방법론적 도구를 취하는 것은 가능해 보이지만, 분석 자료의 말뭉치 구축 등이 미흡하다는 점에서 단기간에 쉽게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론적 공백이나 흥미 위주로 전락되지 않기 위해서는 언어학적 연구 성과에 대한 정리가 선행되어야 하고, 실제 자료를 통한 경험적 연구로 이어져야 한다.

Ⅶ. 화용의미론: 화용론의 연구 현안
이 절에서는 화용의미론(= 화용론)에 관하여 정리하기로 한다. 우선 의미론과 화용론의 관계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7.1절에서 화용론과 맥락에 관해 검토하고, 7.2절에서는 국제 화용론 학계에서의 최근 동향으로 인지적 화용론과 사회적 화용론의 특화 배경을 설명한다. 화용론의 세부 주제는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그 모두를 여기에서 언급할 수는 없고, 일단 7.3절과 7.4절에서 Grice 이후 큰 흐름을 이어오고 있는 함축 이론에 관해 몇 가지 연구 현안들을 지적해 보고, 의사소통의 원리라는 측면과 관련하여 문제점들을 검토하는 정도에 머무르기로 하겠다. 그밖에 화행 이론, 전제, 함의, 공손성, 정보구조, 담화구조 등을 비롯한 여러 주제들에 관해서는 본고에서 논외로 하고, 다만 뒤의 7.5절에서 화용론의 인접 분야를 간단히 언급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겠다.

1. 화용론과 맥락
언어표현이 주어진 맥락(context)에서 실제로 쓰이는 상황적 의미를 연구하는 분야가 화용론(pragmatics)이다. 문장 단위에 대신하는 개념으로 발화(utterance) 단위를 인정하는데, 발화가 전달하는 의미의 해석은 화자와 청자를 고려한 주변의 상황을 고려하여 결정된다. 화용론에서 중시하는 특질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i) 의미는 화자와 청자 사이에서 상호 작용에 의해 생겨난다. (ii) 맥락은 언어적 측면과 비언어적 측면을 포함한다. (iii) 사회적 행위에서 언어를 사용하는 데에서의 제약들이 유의미하고, 언어 사용자가 선택하는 표현의 효과를 분석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화용론은 발화의 맥락의존적인 의미를 다루는 분야로 알려져 왔다. 화자와 청자에게 의미 표상을 전달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주요 요인 중의 하나는 발화의 맥락 또는 문맥이다. 발화 맥락은 화자로 하여금 미결정적인 형태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조건 지워주는 요인일 뿐 아니라 청자로 하여금 명시적인 의미 표상에 도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요인이다. 그러나 맥락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 화용론에서 분명하게 논의된 예는 흔치 않다. 오히려 형식의미론에서 맥락을 ‘가능한 세계의 집합들의 집합’(a set of sets of possible worlds)으로 정의하면서 형식적 접근의 성과를 가져온 것에 비해, 화용론에서의 맥락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문법의 변경에 자리한 언어적 변수들을 통칭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런 상식적 변경을 넘어 맥락의 유형과 역할을 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화용론에서 확립된 연구 영역으로는 화행 이론, 대화 원리, 공손성, 직시어, 전제, 함축 이론과 언어적 추론 등이 있다. 의미론과 화용론이 경계란 과연 얼마만큼 뚜렷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연구자마다 서로 다른 견해를 갖는 경우가 많은데, 의미론과 화용론을 묶어 ‘의미론’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의미론에 화용론이 포함된다거나, 화용론이 의미론을 포함한다거나 하는 두 가지 방향이 성립하고, 의미론과 화용론의 인터페이스에 주목하는 방향으로의 연구자들도 있다. Morris(1938) 는 기호 이론에서는 통사론, 의미론, 화용론의 3가지로 구분했는데, 통사론은 언어 단위들 사이의 문법적 관계를 취급하는 것이고, 의미론은 언어 단위와 세계 사이의 관계를 취급하는 것이며, 화용론은 언어 단위와 사용자 사이의 관계를 취급하는 것이다. 이런 정의에 입각해서 보면, 화용론은 언어 기호가 사용됨에 있어 나타나는 심리적, 생리적, 사회적 현상을 통칭하는 분야로 간주된다. Gazdar(1979) 의 정의로 ‘화용론 = 의미   진리조건’이라는 등식은 진리조건적 의미론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을 화용론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한 것인데, 이런 견해는 좁은 의미의 의미론과 넓은 의미의 화용론을 구분하면서 그 경계선을 맥락의 효과로 돌린 것이다.

한편, 인지과학에서 인간의 마음(mind)에 관한 탐구가 진행되면서 여러 가지 인지적 능력은 모듈(module)로 존재해서 독립적인 능력들이 자율적으로 가능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생겨났다. 해부학적으로 보더라도 두 가지 종류의 실어증 현상으로 브로카 실어증과 케르니케 실어증은 뇌의 기능 분화를 보여주는 임상적 증거가 되었다. 신경과학적으로 볼 때 언어와 마음에 대한 모듈 이론의 타당성에 대해 절대적으로 신뢰할 만한 과학적 증거가 확보된 것은 아니지만, 생성문법 이후의 언어학에서 음성-음운, 형태-단어, 통사, 의미, 화용 등의 층위를 구분하는 것은 문법의 각 부문들이 독립된 원리나 제약으로 파헤쳐질 수 있는 모듈의 일부로 보는 것이었다.

2. 인지적 화용론과 사회적 화용론으로의 특화
지난 세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화용론 이론의 가장 뚜렷한 축을 개략적으로 구획해 보면, Austin, Searle, Grice 등의 철학적 화용론과, 신그라이스(neo-Gricean)학파의 성장, Sperger/Wilson의 인지적 화용론,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사회적 화용론등이 있다. 철학적 화용론은 논리실증주의의 언어철학적 전통을 배경으로 해서 등장하였고, 의미론과 화용론의 이분적 구분을 인정하면서 언어사용의 문제에 접근하였다. 1990년대 이후, 화용론의 주도적 흐름은 인지적 화용론과 사회적 화용론으로의 특화되는 것이 최근 국제학계에서의 추세이다. 신그라이스 학파를 중심으로 하는 <인지적 화용론>은 의사소통에서 정보의 정신적 처리에 집중해서 언어사용에 관여하는 인지적 측면을 독립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집중하며, 의사소통의 목적을 성취하는 데에 작용하는 제약 요인들을 밝혀내려고 한다. 반면. <사회적 화용론>은 언어사용의 조건들에 주목해서 언어사용자들 사이의 관계가 발생하고, 유지되고, 변화되는 방식에 관련하는 사회적 맥락을 밝혀내려고 한다. 이런 두 가지 접근법에 대해 상술하면 다음과 같다.

<인지적 화용론>에서는, '맥락'이란 세계에 대해 언어사용자가 지니는 가정들의 집합으로서, 청자가 발화를 이해하기 위해 보유하는 정신적 표상으로 간주된다. 서로 다른 개인들이 세계에 대해 서로 다른 가정을 지닐 수 있기 때문에 동일한 발화나 상황을 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보더라도, 발화의 해석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회문화적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기보다는 언어사용자 개인의 내면적, 심리적 과정에 의해 언어사용자의 가정들의 집합이 확정되고 난 연후에 성립한다고 본다. 인지적 화용론에서 '큰' 이론으로 주목받은 것은 Sperber/wilson 이후의 적합성 이론(relevance theory)이다. 이것은 후기 그라이스 학파의 한 분파로 1980년대에는 의사소통에 관한 일반 이론으로서의 성격이 강했지만 1990년대 이후 실제 언어 현상에 적용한 연구가 보강되어 현채 영국 학계에서는 대단히 강한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

인지적 화용론자들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언어처리능력, 그 중에서 특히 추론 (inference)의 성립 가능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적 해석에 영향을 주는 인간의 마음(mind)의 인지적 메카니즘의 계산적 특질을 명세화 하는 것에 집중한다. 언어의 이해와 산출 과정에 작용하는 인지 과정을 밝혀내려는 목적에 있어 인지적 화용론은 인지과학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인간의 언어적 활동에 인지심리학적 연산이 관여하는 것을 입증해 주는 중립적 증거를 찾아내는 과정을 통해, 마음(mind)과 두뇌(brain)에 대해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목적 의식을 갖는다. 그러나 인지주의는 사회적 요소들을 도외시하기 때문에 사회문화적 지식이 마음의 내부에 표상으로 내재되는 정보를 구성하기 위해 개입하는 경우가 아닌 바에는 담화의 사회적 의미에 대한 인지적 기반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한편, <사회적 화용론>에서 강조하는 바에 의하면, 의사소통의 과정에서 사회문화적 변수들이 언어적 추론의 형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증거가 있다. 예를 들어, Wierzbicka가 제시하는 다양한 언어들의 증거를 볼 때, 의미의 실현은 개별 문화의 구체적인 내역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그라이스 학파가 주도한 것처럼 추론 위주의 인지능력 연구는 영미 문화권에서만 실재에 부합할 뿐 사회문화적 상대성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인지적 화용론>에 속하는 S/W 계열의 적합성 이론은 추상화된 인물의 추론 모형을 수립하는 것에 몰두하였고 행동 과학이나 인공지능 관련분야에 영향을 주었다. 적합성 이론은 언어 사용의 사회문화적 요인들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사회적 화용론> 계열에서는 언어 사용의 언어내적 구조, 인지 과정, 사회문화적 요인들 사이의 상호 관계를 중시한다(Sweetser 1990 , Ochs 외 1996 등의 접근). 가령, Sweetser(1990) 는 어원론과 화용론 사이의 관계를 양태표현류, 인지동사, 조건문 등의 범주들에 관해 언어구조의 비유적, 문화적 측면을 수용하는 인지 해석에 기반하여 설명하였다.

3. 그라이스의 함축 이론과 의미의 복원 가능성
대화를 주고받을 때 화자는 자신의 의도에 입각해서 사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잠재적 표현들이 있지만, 그 중 어느 한 가지 표현 방식을 선택하게 된다. 그라이스(Grice)에 의해 촉발된 대화함축 이론은 화자가 의도하는 의미를 청자가 이해하게 되는 과정에서 양측의 언어적 행위에 관한 일반 원리로 제안되었다. 인간의 의사소통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발언의 생성과 해석에 관해 화자와 청자의 협약이 성립한다는 점을 기본 출발점으로 삼는다. 발화의 표면 형식에 의해 일차적으로 드러나는 자구적 의미 이외에, 발화의 맥락이나 배경정보 등이 작용해서 추가적으로 전달되는 의미를 함축(implicature)이라고 한다. 가령 다음 (27)에서 A가 하는 말은 그릇을 처리해 달라는 요청을 직접적으로 나타낸 것은 아니지만 함축 의미의 일종으로 전달하려고 한 것인데, B는 A의 의도를 제대로 추론해서 그에 대해 언어적 반응을 보인다.

(27) A: I have to go or I'm going to be late for work ‥‥ 1 know it's my turn

[looking over at the unwashed breakfast dishes]

B: Oh, I'll do them for you.

그라이스 이론에서는 (28)의 <협동의 원리>가 보편적 원리로 설정되고. 의사전달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세부 규약으로 4가지 대화 격률(maxim)을 설정하였다: (29)에서 보듯이, 양(quantity), 질(quality), 관계(relevance). 양래(manner) 등에 관한 격률들이다

(28) 협동의 원리 : 대화에 참여할 때, 대화의 목적과 방향에 의해 요구되는 만큼의 기여를 해야 한다.

(29) <대화의 격률>

양의 격률: 1. 최대한 많이 말하시오(Say as much as necessary).

                2. 필요 이상으로 말하지 마시오(Say no more than necessary).

질의 격률: 1. 거짓이라고 믿는 것을 말하지 마시오.

                2. 충분한 증거가 없는 것을 말하지 마시오.

관계의 격률: 적합한 발화를 하시오.

양태의 격률: 명료하게 말하시오(애매성, 중의성 피하시오. 간결하게, 순서대로 말하시오.)

'양의 격률'은 다시 양-1번과 양-2번의 세부 격률로 구분되며, 질의 격률도 마찬가지로 둘로 구분된다. 양의 두 가지 격률에 의해, 필요한 만큼으로 최대한 말하는 것, 그리고 필요하지 않은 바에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 것, 이런 두 가지 힘의 작용에 의해 의사소통의 경제성을 설명할 수 있다. 의사소통에서 화자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일일이 열거하지 않고 특징적인 시나리오만을 말하더라도 청자는 명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함축 의미를 복원할 수 있다. 화자가 격률을 준수하거나. 혹은 일부러 어겨서 말을 하는 것으로 청자는 가정하고 이에 상응하는 해석 과정을 통해 화자가 부호화한 메시지를 청자가 이해하게 된다.

이 과정에 작용하는 화용적 함축과 추론의 구성적 원리에 대해 신그라이스 학파를 중심으로 꾸준한 연구 성과가 이어져 오면서, 격률의 재해석과 함축의 구조, 의사소통의 일반 원리 등에 관해 다양한 갈래의 현안들이 등장하였다. 특히 Sperber/wilson이 제시한 적합성 이론에서는 화자와 청자가 상황에 관한 정보를 얼마만큼 인식하는가에 따라 의사소통의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과, 상황에 관한 가정들이 화자와 청자에게 제각각 어느 만큼의 정도 차이를 두고 '현시' 되는 것인지에 대해 주목하였다. 그라이스의 함축 이론과 비교할 때. Sperber/wilson의 적합성 이론은 외축(explicature)과 함축(implicature)을 구분하였다. 발화에서 '함축된 것'(what is implicated)을 함축(implicature)으로, 발화에서 직접 '말해진 것'(what is said)은 외축(explicature)으로 구분하였다. Kearns(2000) 에서 지적하듯이, 문장 해석의 다섯 부문으로 (30)의 단계 구분이 가능하다.

(30) 1. 발화된 단어들의 문자적 의미

2. 화용론적 1단계: 변수에 대한 지시대상 확정, 중의성 해소, 직시적 표현의 해소

3. 외축: 말해진 것에 대한 진리조건

4. 화용론적 2단계: 외축을 입력으로 함축을 출력하는 단계

5. 함축

그라이스의 4가지 격률 체계 중에서, 특히 양(quantity)의 1번 격률과 2번 격률에 대해 일반대화함축 이론에서는 두 가지 상반된 힘의 작용을 상정하였다. 그라이스 이후의 신그라이스 학파를 대표하는 Horn(1989) 의 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언어활동에 기본적으로 내재 되는 두 가지 갈래의 추론 과정이 있는데, 이는 Q-원리와 R-원리의 두 가지 원리가 어긋나게 작용하기 때문인 것으로 설명한다. Q-원리는 그라이스 격률 중에서 양의 1번 격률, 양태의 격률을 묶은 것으로 화자 지향적 원리 이며, 반대로 R-원리는 양의 2번 격률, 관계의 격률, 양태의 격률을 묶은 것으로 청자 지향적 원리이다.

예를 들어 등급함축(scalar implicature)이 성립하는 경우에, 청자는 화자의 실제 발화를 보다 더 제보적인 명제와 비교하여 보고 Q-원리에 의해 화자가 더 제보적인 발화를 말할 수 없는 입장인 것으로 함축 의미를 찾아낸다. 반면, Q-원리가 성립하는 경우에는, 화자의 실제 발화가 정작 뜻하는 것은 더 제보성이 강한 명제이며 이것을 함축 의미로 받아들인다.

신그라이스 학파를 대표하는 일반대화함축(GCI) 이론의 제안자들(Levinson 2000 외 )은 정보전달의 경제성을 설명하고 추론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에 필요한 두 가지 요인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i) 의미의 보강(enrichment)에 의해: 명시되지 않은 정보의 복원이 이루어진다. (ⅱ) 언어내적 지식과 언어외적 지식(= 세상지식)의 구분에 의거하여 정보의 확대와 축소의 2가지 방향을 화자와 청자가 인지한다. 대화함축이론을 중심으로 신그라이스 학파에서 최근에 부각되는 현안으로는 의미적 미결정성(indeterminacy)의 문제와 의사소통 과정의 명시화 문제 등이 있다.

4. 대화함축 이론의 현안: '양의 격률'과 '조건완수' 구문
'양의 격률'(quantity maxim)에 의한 함축 발생의 예를 보자. 자주 인용되는 예는 등급함축(scalar implicature) 현상이다. 예를 들어,

(31) a. I like some of Arnold Schwarzneger's movies.

b. I don't like all of Arnold Schwarzneger s movies.

c. I like some of Arnold Schwarzneger's movies. In fact. I like all of them.

(31a)는 (31b)를 함축하는데, 이것은 <all, some>의 등급을 전제로 해서 등급이 낮은 some 류를 사용하는 화자는 그보다 등급이 강한 all을 지닌 발화의 부정을 함축 한다. (31a)를 말함에 의해 아놀드 슈왈츠네거 주연 영화 중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좋아하지만, 토탈 리콜을 위시한 일부 영화는 안 좋아한다는 함축 의미를 내재한다. 그런데, (31c)처럼 슈월츠네거의 영화 몇 편을 좋아한다고 말했다가. 사실은 그의 모든 영화를 다 좋아한다는 쪽으로 강화해서 말해도 모순이 생기지 않는다. 함축 의미는 (31c)에서 보듯이 '취소 가능성'(cancellability)이 있다는 점에서 진리조건적 명제내용과는 구분된다. 또 다른 예로, (32a)는 통상적인 방식으로 풋브레이크로 차를 멈추게 하는 경우를 나타내지만, (32b)의 cause-구문처럼 유표적 표현 방식은 양의 격률에서 보면 (32a)보다 길게 말해야 될 이유가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곧 엔진브레이크로 차를 멈추게 할 만큼의 유별난 상황이 있음을 함축한다.

(32) a. Larry stopped the car.

b. Larry caused the car to stop.

양의 격률에 의거해서 보면, [A + B]가 모두 필요할 때에는 단순히 [A]만을 말할 수 없고. [A + B] 모두를 갖추어 말해야 한다. 가령 (33B)처럼 답변하는 경우에는 '똑똑하다'고 말함에 의해 '착하지 않음'을 함축한다.

(33) A. 나는 영이가 좋아. 영이는 착하고 똑똑해.

B. 그래 영이는 똑똑해.

그런데, 화자가 의도하는 정보량의 적정 수준을 정하는 데에는 양의 격률이 반드시 우선하는 것만은 아니다. Carston(1998) 은 '양의 격률'과 관련해저 새로운 종류의 함축을 인정한다. 종전에는 양의 격률 문제에 있어, 화자가 알고 있는 정보는 최대한 말 할 것이고, 모르는 정보라면 말할 것이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34B)의 대답은 그 화자가 정확한 정보를 모르기 때문에 부족한 정보로 응답한 것으로 보아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34B)의 화자가 정보를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노출하기를 꺼리는 경우에서도 그처럼 대답할 수 있다. 비슷한 예로 (35)에서 보듯이, 고객의 수를 분명히 알면서도 그것을 노출하기가 싫으면 (35B)의 'a number' 정도로 뭉뚱그려 말하고 말 것이다.

(34) A: Where does John live?

B: Somewhere in the south of France

(35) A: How many clients do you have?

B: A number.

주어진 발화에 대해 어떤 경우에는 의미를 보충하며, 또 어떤 경우에는 더 이상의 의미 보충이 필요 없이 충분하게 해석되는 경우도 있다. 정보의 최대화와 최소화는 서로 어긋나는 방식으로 상호 작용한다 잘 알려진 다음 예를 보면(Levinson 2000 등),

(36) a. 1 slept on a boat yesterday.

b. The boat was not mine.

(37) a. John is meeting a woman this evening.

b. The person to be met is not John's wife; someone other than John's wife, mother. sister, or perhaps even a close platonic friend.

(38) a. I lost a book yesterday.

b. The book was mine.

(39) a. 1 broke a finger yesterday.

b. The finger is mine.

(36)-(37)과 (38)-(39)의 두 부류에서 부정관사 지닌 명사구에 대해 대화 참여자들이 지니는 배경정보에는 차이가 있다. (36a)가 함축하는 (36b). 그리고 (37a)가 함축하는 (37b) 등은 언급된 명사구의 대응물이 화자의 영향권 외부에 있다. 이에 비해, (38a) (39a)가 각각 함축하는 (38b), (39b)에서는 언급된 명사구의 대응물이 화자 자신의 영향권 내부로 직접 귀속된다. 화자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언어적 단서만을 제공하더라고, 청자의 입장은 세상 지식의 전형성에 기초해서 의미보강을 해서 복원한다. 화자가 굳이 명백하게 드러내지 않더라고 분명한 정보가 있겠는데, (36), (37)은 Q-함축이고 (38). (39)는 R-함축이다. 그 기준점은 세상 지식의 전형성에 있으며. 이에 관한 기본적 추론에 의거해서 청자는 의미보강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확립된 예들 이외에 다른 많은 경우에, 상반되는 원리인 Q-원리와 R-원리 사이에서 적용의 우선 순위가 일정하게 정해지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같은 Q-함축으로 생각되는 것도 서로 다른 동기에서 유발되는 이질성이 있다. 이 점은 Q-원리와 R-원리를 지배하는 다른 원리의 존재 가능성을 시사하며, Q-함축 내에도 하부 원리가 필요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한편, '등급함축'의 대치성(substitutitity)을 바탕으로 고전적 이론에서 상정하는 등급 표현들 사이의 우선 순위가 과연 선험적으로 당연하게 주어진 것인지에 대해서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등급함축의 대치성 개념에 대한 대안으로 van der Auwera(1998) 가 제시하는 부가성 (addititivity) 기준도 주요 현안 중의 하나가 된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R-원리를 대표하는 예로 조건완수(conditional perfection) 현상을 예시해 보기로 하겠다. 연접, 이접, 조건, 부정 등의 논리적 연결사에 의해 구성 되는 복합명제들은 명제논리상의 기본 법칙들이 지정하는 대로 등치성이 보존되어야 하지만, 실제 언어 현상에서는 진리조건적 의미론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특히, 명제논리에서 문장들 간의 연결 관계에 관한 일반 원리에 어긋나는 묘한 화용론적 추론 유형으로 조건완수 현상이 Geis & Zwicky(1971) 이후 등장했고, 최근 들어 Horn(2000) 을 위시한 주요 연구에서 예민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조건절 (40a)의 if 해석이 (40b)가 말해진 바 없음에도 불구하고 (40c)에서 if and only if의 의미로 강화되는 현상은 실제 언어 사용자들에게 흔히 경험하는 현상으로서 심리적 실재성(psychological reality)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40) a. If p, then q.

b. If not p, then not q.

c. If and only p, then q.

잘 알려진 예문으로 (41a)는 명제논리적으로는 관련이 없는 (42a)의 명제내용을 추론하게 하므로 쌍조건문 iff-명제로 뜻이 강화되지만. (42b)처럼 양적으로 가장 강한 명제내용에 이르기까지 강화되지는 못한다. (41a)가 (41b)로 강화되어 해석되는 현상은 화자와 청자의 의도나 전략이 함축에서 중요하게 작용되는 경우로서, 실제적 현실에서 화자가 전달하는 명제내용에 대해 청자가 뜻을 보충하는 것은 언어적으로 코드화 되기 이전에 경험 세계에서 체득한 지식에 근거한 예견에 의해서이다

(41) a. If you mow the lawn, I will give you five dollars.

b. If and only if you mow the lawn, I will give you five dollars.

(42) a. If you don't mow the lawn, I won't give you five dollars.

b. Whatever may be the case. I will give you five dollars.

예를 더 보면 민감한 사회적 관계에서 어떤 사람이 단순히 (43a)를 말했을 뿐인데 이를 들은 사람이 불안을 느꼈다면 바로 (43b)와 같은 부정 조건문의 명제내용을 추론하였기 때문이다. 반면, 집에 돌아온 자녀에게 어머니가 (43a)의 발화를 말했을 때 이것이 (43b)의 추론을 유발하지는 않으므로 조건완수 현상을 보이지 않는다.

(43) a. 내 말을 들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b.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재미없을 거야.

(44) a. 배가 고프면 냉장고에 먹을 거 있다.

b. #배가 고프지 않으면, 냉장고에 먹을 거 없다.

화자는 정보를 전달하려는 목적에 충분한 만큼으로 (그리고 바로 그만큼까지만) 언어적 단서를 제공하지만, 청자는 자기이익(self-interest)을 반영하여 정보내용을 보강하여 해석하는 현상을 잘 보여주는 예가 위에서 예시한 조건완수 구문 현상이다. 이와 관련해 화자와 청자 양측이 지니는 예견성(expectedness) 개념에 대해 엄밀하게 설명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며, 이에 대한 연구는 조건완수 현상에 대한 기존의 설명에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건문의 유형 분류에 대해 더 엄밀한 기준이 세워져야 한다. 조건절의 유형분류를 위한 가장 대표적인 기준은, 전건 명제와 후건 명제 사이의 인과적 관계를 정하는 것인데, (i) 가정적 상황 (ⅱ) 순차성, (ⅲ) 개연성에 대한 화자의 분명한 태도 등을 주요 기준으로 삼아 분별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If p then q' 형식의 조건문은 선행하는 'If p'의 조건절 내에 현실 세계에서 있음직한 내용을 포함하고, 그로부터 인과론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 사안을 후건절에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선행하는 조건절과 뒤따르는 후건절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세부적인 유형 분류는 연구자마다 서로 다른 기준과 명칭들을 제시하여 왔다.4) 조건문에 관한 최근 현안과 관련하여 반사실성(counter-factuality)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 (43)과 대비하여 Akatsuka(1999) 가 지적하는 바람직성(desirability) 개념을 고려하는 것도 필요하다. '바람직성' 기준은 화자가 언급하는 행위가 실제로 성취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하고, 조건절 명제내용의 성취 유무에 따른 비교론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이런 특징을 잘 보여주는 형태 표지로 아래 예문처럼 '-다가는'에 의한 조건문 형식을 들 수 있다.

(45) a. 그렇게 공부하다가는 삼류대학에도 못 가.

b. {?그렇게 공부하다가는, 그렇게 공부하면} 일류대학에 갈 수 있어.

대화에 임하는 화자의 목표가 단순히 정보를 알려주기 위한 것이라면 그라이스가 제시한 질의 격률과 양의 격률들을 일부러 어겨서 그 함축 의미를 발생하는 것이 일상 대화의 경제성과 다의성을 실현시킨다. 그러나 단편적인 정보를 주고받는 것에서 더 나아가 무언가 가치 있게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해 상대방을 설득하고 그로부터 화자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것이라면 대화의 격률에 순응하지 않는 방향으로 화자가 발언 행위를 구성하기도 한다. 특정한 목적을 추구하고 이를 성취하기 위한 노력으로, 화자는 적절하고 중요하다고 간주하는 특정 유형의 정보를 순수하게 협조적인 발화로써 전달하는 것을 꺼리게 될 수 있다. 이때, 비협조적인 화자의 발언에 대해 청자가 제대로 이해하고 대응하는 한, 그라이스가 말하는 격률의 원리가 비록 지켜지지 않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역할이 비협조적 원리에 의해 실현되어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의사소통의 비협조적 원리에 관한 연구의 필요성은 Sarangi &Slembrouck(1992)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밖에 가능한 연구 논점으로, 일상의 대화에서 화자와 청자가 협조적이지 않은 동기에서 출발하여 상호간에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 현실에서의 의사소통은 언제나 온유하고 사려 깊고 상대방을 배려 하는 진지한 발언 행위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화자는 아주 다양한 목표를 추구 할 수 있고 비록 청자의 취향에 맞지 않더라도 특정 유형의 정보에 대한 개인적인 이득과 연관된 선호도나 기대감을 가지고 있게 된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고려하여 그라이스 이론의 테두리 내에서 새로운 현안의 모색 가능성이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언급해 둘 점은, 격률의 문화론적 가치이다 그라이스는 협력 원리와 세부 격률들이 인간 의사소통의 일반 원리로 작용한다고 보았으나, 서로 다른 사회의 문화적 차이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그라이스 격률의 보편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초기 연구 중의 하나로. Keenan(1976) 은 마다가스카르 섬 지역에 머물면서 말라가시語 사용자들의 언어 사용의 동기와 표현 방식을 보고하였다. 서구 문화권에서는 질문을 받았을 때 청자가 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면 바로 그만큼의 정보를 (그라이스 격률 중에서 양의 격률이 지정하는 대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필요한 만큼의 정보량으로) 대답한다. 그렇지만, 말라가시어 사회는 친족 관계가 뚜렷하고 새로운 정보를 외부인과 공유하기를 꺼리며 자신의 발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심리가 강하다. 그래서 질문을 받았을 때, 그에 대한 답을 엄연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어정쩡한 대답을 한다고 한다.

"말라가시어에서는 새로운 정보가 드물다"는 격언이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을 찾던 중에 그 자녀와 마주치게 되어 "당신 어머니가 지금 어디에 계시지요?"라고 물으면, '어머니가 지금 집에 계시거나 밭에 계시다."라고 대답하기 일쑤인데 실제로는 밭에서 일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말한다고 한다. [A]로 말하면 그만일것을, 일부러 [A or B]의 형식으로 모호하게 말하는 것은 그라이스의 양의 격률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라이스는 대화의 기본적인 틀과 언어적 추론의 방식을 정형화했으나, 개별 언어권마다 대화의 원리들이 어떻게 차이가 날 수 있을지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이론적 기준을 분명하게 제시하지는 못하였다. 세부적으로 대화의 격률들이 보편성을 갖는 것으로 보기에 앞서 문화론적, 민속지적 제약이나 고려 사항들을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 Keenan의 말라가시어 현장 연구였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대화에서 효과적인 정보 교환을 목표로 할 것인데 어떻게 말해야 효과적인 것인가에 관해 개별 사회마다의 기준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5. 화용론의 인접 분야
화용론과 가장 긴밀하게 관련된 분야로 대화분석(conversational analysis: CA), 담화분석(scourse analysis: DA) 등이 있다. CA에서는 발언의 차례가 오고가는 원리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일반화시키려고 한다. DA 분야의 연구자들은 문어와 구어에 대한 미시적 분석에만 국한하지 않고, 낱낱의 문장이나 발화 단위를 넘어 전체 텍스트의 거시적 구조에 대한 연구를 많이 수행하였다. 예를 들어, McCarthy(1991) 에서 취급하는 문제 해결, 원인-효과. 내러티브 구조 등이 있다.

'담화'라는 용어와 '대화'라는 용어는 혼용되기 어렵다. 대체로 '담화분석'이 '대화분석'과 대비되어 방법론상의 연구 경향을 지칭하는 데에 사용된다. Sinclair, Coulthard 등의 버밍엄 프로젝트, 전산 지향적 언어학 연구, Van Dijk, Beaugrande와 Drossier 등의 텍스트 문법, 제한적인 화행 유형들의 집합적 정의에 관련된 연구 등의 여러 분야가 나름대로 '담화분석'이라고 지칭되는 것에 비하면, '대화분석'이라는 명칭은 Sacks, Schegloff and Jefferson(1974) 등이 선도한 말차례(turn-taking)체계의 연구만을 지칭하는 것이 보통이다.

CA 방법론은 일상언어 사용에 내재되는 하위 원리들을 말차례(turn-taking), 보정(repair) 등의 개념 등에 기초해서 설명하려고 한다. 기본 가정으로, 대화 참여자들이 차례를 번갈아 가면서 발언의 순서를 주고받으며, 이 과정에서 발언의 차례가 바뀌는 것을 암시해주는 언어 구조나 형식에 영향을 받아 제각기 말차례를 잡고서 순차적으로 발화를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CA 방법론에 의거한 한국어 연구는 미국 서부의 몇 대학과 미국의 동남학파로 분류되는 대학에서 학위를 마치고 1990년대 중반 이후 국내에 돌아온 일부 학자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문화 비교론적 관점에서 CA 방법론의 효용성은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화분석 방법론의 기본 전제는 문화적 차이에 따라 영향을 받는 측면이 강하다. 주의 깊은 경청을 표시하거나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협력적인 호응 표현을 상대방의 말과 중첩시켜 사용하는 것이 폭넓은 현상이다. 그러나 그러한 '중첩'의 형태, 위치, 해석은 문화에 따라 다르며, 어떤 곳에서는 적극성을 나타내는 것이 또 다른 어떤 곳에서는 불필요한 끼어들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가령 Eco(1986) 의 지적에 의하면, 이탈리아인들은 열띤 분위기 속에서 상대방의 말에 끼여드는 경향이 있음에 비해 미국인들은 순차적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몇차례 이론이 미국에서 발전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영어의 경우 여성은 남성보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말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핀랜드인들은 다른 유럽인들에 비해서 구어적 맞장구 표현을 적게 사용하며, 이것의 빈번한 사용은 '술 취한 사람에게나 있을 법한' 것이라고 한다( Lehtonen & Saiavaara 1985) 일본인들은 친절을 보이기 위해서 구어적 맞장구 표현을 다른 민족보다 빈번하게 사용한다( Iwasaki 1997) CA 연구에서는 발화의 덩어리에 대한 미시적 분석에 있어 좋은 시사점들을 얻을 수 있었으나, 다른 한편으로 CA 이론이 발전된 환경과 한국 문화의 특성이 얼마만큼 잘 어울릴 수 있는지에 관한 문화론적 여건도 고려해야 한다.

그밖에 담화 분석의 영역에서 최근 10년 사이에 뚜렷하게 부각된 분야는 '비평적 담화분석'(critical discourse analysis: CDA)이다. Fairclough(1989) 이후 CDA연구는 언어 사용과 사회적 위계 사이의 연관성에 주목하는데, 사용자들 사이에 관계가 동등하지 않거나, 관계 설정이 분명해 보이지 않은 상황들에 대해, 구체적인 언어적 사회 속에서 한 개인이 목적 행위의 성취를 위해 언어를 통제하는 방식이나 기준 등을 파악하려고 한다. 또한, 개별 문화 특유의 기준과 기대 수준의 맥락에서 화자가 전달하려고 의도한 의미를 해석하는 입장이 있다(Saville-Troike 1982)

담화분석 방법론과 대화분석 방법론에서 현존하는 제 학파들, 담화의 장르별 연구, 분석 자료의 수집과 분석을 위한 기법들 등과 관련한 보다 상세한 소개는 하지 않기로 하겠다. 전망적 과제로, 의미론, 화용론, 담화의 분야에서 외래 학문과 국어학의 접점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본다거나, 언어교육과 문학교육의 교차 영역을 취급하는 연구 가능성도 열려 있다 화용론의 인접 분야로, 대화분석과 담화분석, 이 두 가지 방법론의 연구사적 배경을 부족하나마 이 정도로만 언급해 두기로 한다

Ⅷ. 결론
이 논문에서 검토한 방법론들이 의미론 분야에서 예민한 현재성을 갖는 제반 현안들을 충분하게 취급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논문에서 의도한 작은 목표로서, 의미론이 학문적 담론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중시되던 연구 방법이나 개념들을 균형감 있게 이해해 보고, 의미론 연구의 방향성을 점검해 보려고 하였다. 언어 기호를 소리와 의미로 양분하는 고전적 견해를 반추해 보더라도, 의미 현상은 인간 언어의 여러 가지 측면 중에서 내용을 대표하는 것이며 단순히 언어 사용자의 내성적 판단에 머물러 있을 성질의 것은 아니다. 개체로서의 인간 내부적 층위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인간 외부적 층위에 걸쳐 의미 구조가 어떻게 조직되고 표현되는가에 대해 설명하는 작업은 의미 연구에 있어 항구적인 목표로 자리할 수밖에 없다.

각론적 구획으로 보자면 '의미론'은 언어학을 구성하는 한 '부문'이기는 하다. 그러나 의미론과 화용론을 문법의 한 부문으로 보기보다 가장 넓은 언어 현상으로서 다른 부문들이 기능할 수 있게 방향을 잡아주는 '관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연구 방향으로는 문법-지향적 의미 이론으로부터 더 시야를 넓혀서 사용자-지향적 의미론으로의 전이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특히 생성주의 언어학의 영향으로 언어능력에 집중 하던 지난 세대 연구 흐름과는 달리, 1990년대 이후로 언어수행의 측면에 중점을 두고 관련된 의미 현상들을 설명하는 작업이 더 중시되어 왔는데 이것은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시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학문 내적인 정황으로는, 의미론의 한 지류로 나타났던 화용론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화용론의 기본 주제들로 화맥, 화행 이론, 대화, 협력 원리, 공손성, 직시어, 전제, 함축 이론과 언어적 추론 등이 있는데, 최근 국제 학계에서의 동향이 되고 있는 인지적 화용론과 사회적 화용론으로의 특화에 주목하여 통합적인 화용론의 모색이 필요하다. 그리고 문법의 한 부문으로서의 화용론보다는 가장 큰 범위의 언어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으로서의 화용론을 추구하는 입장이 중시되어야 하겠다.

의미 구조를 형식 체계로 환원하는 작업을 우선시 하는 학풍도 있고, 의미 구조와 인지능력과의 연계성을 밝히는 것을 우선시 하는 학풍도 있다. 현재 21세기 초반 언어학에서 '큰 話頭'는 기능주의와 형식주의의 공존을 모색하고 그 접점을 찾아보는 것이다. '기능주의'와 '형식주의'는 21세기 언어학에서도 큰 물결을 형성할 것이며, 그 중에서 의미론은 중점적인 연구 분야로 지속될 것이다. 외국에서 형식의미론 연구 성과가 국어 연구를 위해 얼마만큼의 의의를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갖는 연구자들도 있다. 특히 실제 언어의 제반 현상에 대해 경험적으로 타당하게 분석하는 작업과 형식의미론의 이론적 구성 사이에는 이질성이 있는 것으로 보면 분명 그렇게 보인다. 이런 이질성을 낯설음과 분리시켜 형식주의 방법론과 기능주의 방법론 사이의 인터페이스 측면에 비중을 두어야 하겠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을까마는, 의미론 연구도 여기에 예외는 아니어서 쉽게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취하기는 어려워도 성취의 부족함을 논평하기는 더 쉽듯이, 의미론 연구가 지나치게 외래 지향적이었다거나 특정 유행에 편향적으로 치우쳤다는 비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에 관해 어떻게 연구해야만 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을 제시함에 있어, 선언적이고 권고적인 방식으로 동기 부여 수준에 만족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준비하기에는 너무 공허하며, 책무의 불이행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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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주
* 이 논문은 2002년도 청주교육대학교 학술연구조성비에 의하여 연구된 것임.
1 생성문법이 풍미하던 분위기에서 학문 수련기를 보낸 1990년대 이전의 대학원생들은 생성문법의 영향을 백안시하거나 절대시해야 하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던 기억들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생성문법이 유행한 것도 한 세대를 넘어섰고,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이 언명했던 혁명적 등장과 전환, 쇠퇴의 순환 과정을 거듭했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이즈음에 생성문법의 이론적 공헌과 실책에 대한 평가를 내려볼 만도한 시점인데, 청년기에 등장해서 지금은 노년에 이른 Chomsky 교수와 학문적 화두를 공유하는 학자군이 흐트러지지 않고 나름대로 이론적 생생함을 재현하기 위해 정진하는 것을 보면 한 사람의 학자가 보여준 정신적 노력의 소중함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2 (한국어 의미학)의 창간호에서는 우선 시기별 연구사, 주제별 연구사 등으로 지난 시기의 의미 연구의 흐름을 정리한 문헌들이 있다. 근래에 최호철(2002)에서는 한국어 의미 연구의 나아갈 방향성을 정리하면서, 어휘 의미, 문장 의미, 발화 의미 등과 관련한 기존의 연구 주제들을 보다 체계적이고 엄밀하게 접근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3 언어의 습득이나 학습에 있어 원형 범주화에 대한 증거를 Aitchison(1994)은 지적하였다: 원형적 보기가 (ⅰ) 먼저 습득된다. (ⅱ) 머릿속 사전의 중심부에 저장된다. (ⅲ) 범주 소속을 확인하는데 시간이 덜 걸린다. (ⅳ) '낱말연상'에서 일차적으로 반응된다. (ⅴ) 언어장애나 실어증 환자의 경우 원형적 보기에서 오류를 적게 보인다.
4 그 모두를 여기에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최근의 연구로 Athanasiadotu & Dirven(2000)에서 제시하는 조건문 유형 3가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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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사항

김종현
청주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