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바둑..!/놀이 이론들~

[=] 놀이 분류 재해석

온울에 2008. 8. 10. 14:17

<로제 카이와의 놀이 분류 재해석>

 

서광록 (sstorm@dreamwiz.com)

 

가이드 4편을 시작하며

 

지난 1~2편에서 막연한 아이디어를 데이터화 하여 논리적인 문서로 표현하는 방법, 그리고 3편에서 게임을 보는 눈을 키우기 위한 새로운 시각의 게임 분류법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아마도 지난 가이드를 보신 많은 분들이 아니 이놈이 뭔가 그럴듯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긴 한데, 막상 기획서를 쓰려고 하면 별로 나아진 게 없네와 같은 기분을 느끼셨으리라 봅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불과 워드 수 십장에 불과한 가이드를 가지고 하루아침에 여러분의 실력을 월등히 향상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설사 아무리 좋은 정보를 여러분께 알려드린다 해도 결국 여러분 스스로가 그것을 소화해내지 못하면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배우고 생각해야 깨달을 수 있다

논어(論語)의 위정편(爲政篇)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學而不思卽罔 思而不學卽殆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이말은, 배우되 생각이 없으면 깨닫지 못하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 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란 내 의식의 장으로 새로운 지식이 유입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진정한 배움이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하지만 새로운 지식, 은 머리 속에 들어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생각으로써 질서를 이룰 필요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내 의식 세계로 들어온 새로운 지식들을 다시 되새기며 서로간의 관계를 질서정연하게 정리해야만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무엇인가를 배우고 나면 반드시 생각을 하여 곱씹어야만 진정한 내 것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혼자서 생각만 열심히하고 배우지를 않는다면 새로운 지식이 없이 그저 기존에 있던 지식에서만 맴돌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위태롭게 됩니다.

 

아울러 본 가이드는 새로운 지식을 전달하기 보다는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해서 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여기서 말하는 내용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운다기 보다는 어떻게 배울 것인지 그 방법을 깨닫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가이드에서는 지난 3편에 이어서 게임을 보는 눈을 키우기 위해 알아야 할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로제 카이와의 놀이 분류 이론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합니다.

 

 

 

 

로제 카이와가 규정한 놀이의 인문학적 분류

 

여러 게임 디자인 이론서에서 게임 디자이너=기획자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으로 추천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번 이야기의 초점이 될 로제 카이와Roger Caillois <놀이와 인간>입니다. 그래서 본 가이드를 읽는 분들 중에도 몇 분 정도는 아마 읽어 보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책을 보신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아니, 이놈의 책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해서 비싼 돈 주고 사서 보긴 봤는데 도대체 여기 써있는 내용들이 게임을 기획하는데 어떤 도움이 된다는 거야?” 하고 말이죠.

 

분명히, 책을 읽어보신 분들 거의 대부분은 이 질문에 선뜻 답하기가 곤란하실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책의 내용은 분명 제목 그대로 놀이와 인간에 대해서 논하고 있긴 하지만 놀이라는 개념을 인문학적으로 분석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책은 1958년에 출간된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50년 전이죠. 저자가 책을 쓰던 당시에 컴퓨터 게임은 존재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놀이와 인간>에 나온 이론들을 전부 현대의 컴퓨터 게임에 적용시키에도 무리가 따릅니다. 그래서 저 역시 처음 이 책을 봤을 때는 너무 학술적인 내용이라서 정작 실제 게임 기획을 하는 데는 별 도움이 안될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놀이와 인간>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지식이자 게임 디자인에 직접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개념은 그가 이 책에서 규정한 놀이의 인문학적 분류입니다. 그는 인간의 모든 놀이 행위를 근본적 원리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분류

구성요소

로제 카이와가 예로 든 실제 놀이

아곤 Agon

경쟁, 대립, 대결

각종 스포츠 경기. 장기(체스)와 같이 플레이어의 실력에 의해  승부가 결정되는 놀이

알레아 Alea

행운, 운명, 우연

주사위 놀이와 같이 운에 의해 결정되는 놀이

미미크리 Mimicry

모의(模擬,), 흉내

가장 무도회, 특정 대상을 흉내 내거나 연기하는 놀이,

일링크스 Illinx

현기증, 흥분, 공포

놀이터나 놀이공원의 놀이기구. 서커스 등

<로제 카이와가 규정한 놀이의 4대 분류>

아곤Agon 대립과 경쟁의 놀이


디쓰 이즈 스빠르따아아아~ 정정당당하게 한 판 붙자! 이런 게 바로 아곤이다.

로제 카이와는 우선 전통적인 스포츠 경기와 같이 참가자의 의지와 실력이 절대적으로 작용하는 놀이를 아곤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여기서 아곤은 그리스어로 경기, 시합이라는 뜻이며, 두 명 혹은 두 팀 이상의 참가자들끼리 경쟁 혹은 대결을 통해 승자를 가리는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스포츠 경기 외에도 장기, 바둑, 체스 등과 같이 승부가 외부 요인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오로지 참가자의 의지와 능력에 달려있는 것들은 모두 아곤의 범주에 속합니다. 아곤은 참가자들이 모두 공정한 가운데 승부를 가려 누가 우월한지를 가려내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정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엄격한 규칙이 동반되어야 하며 이 규칙은 참가자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알레아Alea 운명과 우연의 놀이

알레아는 라틴어로 요행, 우연 등을 뜻합니다. <놀이와 인간>에서는 주사위 놀이나 카지노의 각종 도박 게임들, 그리고 경마나 스포츠 경기의 승자 맞추기와 같이 참가자의 능력보다는 외부적 요인, 특히 운에 의해 승부가 가려지는 놀이를 알레아라고 명명하였습니다. 따라서 순수한 알레아는 오로지 운명만이 승리를 결정짓는 요인이며, 여기서 승리란 패자보다 승자가 더 많은 운의 혜택을 입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공평한 조건 속에서 승부를 가린다는 점에서는 아곤과 같지만  아곤이 참가자의 자질과 노력에 달려있다면 알레아는 운명에 몸을 내맡기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아곤과는 달리 참가자의 의지실력는 게임의 승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 반면 규칙은 아곤과 마찬가지로 엄격하게 적용되는 특징을 보입니다.

 

 

 

미미크리Mimicry 모의와 흉내의 놀이

미미크리는 영어로 흉내, 모방을 뜻하는 말입니다. 어린이들의 소꿉놀이나 흉내놀이, 가장 무도회, 연극 등과 같은 공연예술도 이 범주에 속합니다. 로제 카이와는 미미크리를 참가자가 가상의 환경 속에서 활동을 하거나(연극과 같은 공연활동) 자신이 가상의 인물이 되어 그 인물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을 실제의 자기가 아닌 다른 존재라고 일시적으로 믿거나 자신의 인격을 잊고 다른 인격으로 가장(假裝거짓으로 꾸미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게임이나 만화 혹은 애니메이션 등의 등장인물처럼 옷을 입고 흉내를 내는 행위의 일종인 코스프레Costume-play 역시 미미크리에 해당합니다. 미미크리는 자기 스스로의 의지로 행하는 놀이지만 자기만족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규칙의 제약은 거의 받지 않습니다.

 

 

일링크스Ilinx 현기증과 흥분의 놀이


놀이기구를 탔을 때 느끼는 기분처럼 강제로 지각의 안정성을 파괴하여 현기증이나 흥분 상태가 되는 것이 바로 일링크스다.

분류의 마지막인 일링크스는 그리스어로 소용돌이를 뜻하는 말입니다. 사람이 소용돌이 속에 들어가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요? 당연히 어지럽고 현기증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어에서 현기증을 의미하는 단어가 바로 일링크스에서 파생된 ilingos이기도 합니다. 일링크스에 해당하는 놀이들은 인간의 안정적인 지각(知覺)이나 감각을 일시적으로 파괴하여 현기증이나 패닉상태 또는 감각적인 흥분 상태로 만듭니다. 가장 쉬운 예로 어린이 놀이터의 그네나 미끄럼틀을 타는 행동이나 놀이공원에서 자이로 드롭이나 바이킹 등을 탈 때 바로 일링크스에서 말하는 일종의 현기증을 느끼는 것이죠. 일링크스에 해당하는 놀이들은 참가자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신체적 혹은 감각적인 몰입상태에 빠지는 것이기 때문에 규칙과 의지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 여기까지는 아마 <놀이와 인간>을 읽은 여러분들이라면 다 알고 있을 내용이고 책을 안 읽은 분들도 이미 대강은 들어봤거나 혹은 들어보지 않았더라도 위의 설명만 가지고도 아곤이니 알레아니 하는 단어들이 어떤 뜻인지는 모두 이해하셨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사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놀이에 네 가지 분류가 있다는 건 이해를 하겠는데 그래서 어쩌라구요? So what?

실제로 여러분들은 게임 관련 이론서 등에서 위의 네 가지 분류에 대한 설명만 볼 수 있을 뿐 그 이론을 가지고 실제 게임 개발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혀 들어볼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일례로 <게임의 운명을 결정하는 상상력과 기획사이버 출판사>의 책 서두에도 로제 카이와의 이 놀이 분류법에 대해서 언급되고 있긴 하지만 아주 간략한 소개에 그칠뿐 그렇게 명쾌한 방법론까지 제시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론의 현대적인 재정립

 

자 그러면 이제부터 로제 카이와가 규정한 놀이의 4대 분류를 현대의 컴퓨터 게임에 맞게 재해석해 보도록 합시다. 물론 아래의 모든 내용이 다 재해석은 아닙니다. 일부는 로제 카이와의 이론을 단지 요즘 게임에 맞게 살짝 다듬은 것도 있고 또 다른 일부는 로제 카이와의 의견과는 완전히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아곤 규칙과 의지


아곤은 오로지 실력 승부다! 형이 열 셀 동안 굴다리 밑으로 와라! 여덟, 아홉 이런 거 없다!

아곤은 컴퓨터 게임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으며 거의 대부분의 게임에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게임은 대개 어떤 식으로 건 승부를 가리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즐기는 싱글 플레이 게임의 경우에도 승부는 가려집니다. 주어진 미션을 성공하느냐의 여부가 바로 승패를 가르는 것이죠.

 

각 게임별로 아곤의 비중을 판단하는 기준은 게임에서 승부를 가르는 요인 중에 참가자의 실력(의지)이 차지하는 비중과 규칙이 얼마나 철저한지를 따져보는 것입니다. 스타 크래프트나 C&C 등과 같은 RTSRealtime Strategy 게임이나 1인칭 슈팅FPS, 스포츠 게임 등은 아곤의 요소가 강한 대표적인 게임들입니다. 이런 게임들은 특히 알레아()가 개입하는 요소를 거의 찾아보기 힘든 대신 철저하게 플레이어의 실력으로 승부를 가립니다. 당연히 게임의 규칙 상에서도 실력 외의 요소가 작용할 여지는 매우 적을 수 밖에 없습니다.

 

 

◆ 아곤의 장점

아곤의 장점은 공정성입니다. 달리 말하면 게임의 규칙이 누구에게나 공평하되 올바른 방법으로, 즉 오로지 참가자의 실력으로 승리를 거둔다는 뜻입니다. 공정하기 때문에 아곤의 성향이 강한 게임에서 상대를 이긴다는 것은 대부분 실력으로 앞섰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이런 공정성은 참가자의 도전의식을 이끌어내고 결과에 승복시키기에 좋습니다. 공정한 승부이기 때문에 승자가 됐을 때 얻을 수 있는 명예나 성취감이 크고 반론의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 아곤의 단점

역설적이지만, 아곤의 단점은 바로 아곤의 장점 속에 있습니다. 승부가 오로지 참가자의 실력에 달려있기 때문에 실력차가 명확하게 드러나며 그 차이가 어느 정도 벌어지면 실력을 극복하는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하드코어 유저들, 즉 치열한 승부와 도전을 즐기는 플레이어들은 아곤의 이런 측면에 매력을 느끼지만 시장에는 하드코어 유저보다 몇 배는 더 많은 평범한 유저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게임이 대중성을 가지려면 시장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런 평범한 게이머들의 욕구도 만족을 시켜줘야만 합니다. PC 게임의 주류가 패키지에서 온라인으로 바뀌고 갈수록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어떤 게임이건 가능한 많은 유저를 오래도록 붙잡아둘 필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아곤의 이런 단점은 보통 알레아 요소를 적절히 혼합하는 방법으로 상쇄할 수 있습니다.

 

 

알레아 규칙과 탈의지

주사위 놀이와 같이 운에 크게 의존하는 알레아는 승부를 가리는 규칙이 철저하다는 측면은 아곤과 유사하지만 아곤과는 달리 결과를 좌우하는 것이 전적으로 운에 달려있기 때문에 참가자의 의지나 실력에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순수하게 알레아만으로 구성된 게임은 최근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들지만, 롤플레잉 게임에서는 주사위로 진행되던 TRPG의 영향 때문에 여전히 일정 범위 내에서 운에 의해 좌우되는 여러 시스템들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알레아의 결과는 오로지 운에 달려있다.

예를 들어 스타크래프트에서는 유닛의 공격력이 항상 일정합니다. 마린의 공격력은 6이고, 질럿의 공격력은 16이죠. 물론 업그레이드를 통해 수치를 올릴 수는 있지만 항상 정해진 규칙에 따라 정해진 공격력만 발휘됩니다. 반면에 롤플레잉 게임에서는 캐릭터의 공격력이 10~15와 같은 식으로 최소-최대 데미지 사이에서 랜덤하게 결정됩니다. 그래서 HP 30인 몬스터와 싸운다고 치면 운이 좋은 플레이어는 15의 데미지가 연속으로 나와서 두 번의 공격으로 잡는 반면에 운이 나쁜 사람은 10의 데미지만 계속 나와서 세 번을 때려야 잡을 수 있습니다. 승부에 운이 크게 개입하다보니 항상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고 매번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죠.

 

 

◆ 알레아의 장점

알레아의 대표적인 장점은 공평성입니다. 운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알레아는 플레이어의 의지나 실력과는 관계없이 오로지 운명에 따라 결과가 결정되며 이는 예측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이런 예측불허적 성격은 동일한 게임을 반복하더라도 매번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게임, 혹은 결과가 빤히 드러나는 게임에 긴장감이나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곤이 지나치게 강한 게임에 적당한 수준의 알레아 요소를 가미한다면 보다 나은 밸런스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알레아의 단점

알레아는 게임 참가자의 의지와 관계없는 무작위의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결과를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플레이어가 원하는 결과가 계속해서 나오지 않을 경우 게임의 흥미를 잃기 쉽습니다. 내 힘으로 운명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죠. 또한 실력과 노력이 개입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로 하여금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기도 어렵고 승리했다 하더라도 단순히 운이 따른 것일 뿐 아곤에서의 승자와는 달리 명예나 성취감을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순수한 알레아만 가지고 진행되는 게임은 도박과 같이 게임 외적인 전리품(돈이나 경품)을 보상으로 받을 수 있는 경우 외에는 성립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알레아는 필연적으로 적당한 수준의 아곤 요소와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아곤과 알레아가 조화를 이룬 실제 게임들의 예


캐쥬얼 레이싱 게임
마리오 카트, 카트 라이더(아이템전), 초로큐, 리볼트 등과 같은 캐쥬얼 레이싱 게임들은 아곤과 알레아 요소가 잘 접목된 대표적인 게임이다. 이 게임들에서 아이템은 경주 트랙에 놓여있을 때에는 어떤 것인지 알 수 없고 플레이어가 획득한 이후에 아이템의 종류가 랜덤하게 결정된다. 바로 이점이 알레아 요소인 것이다. 따라서 운이 좋으면 뒤쳐져 달리다가도 좋은 아이템이 나와서 순위를 뒤집을 수 있다. 이들 게임에서 아이템은 아곤(공정성)을 깨뜨리는 요소지만 레이싱에 다양한 변수를 제공하면서 객관적인 실력이 처지는 플레이어라도 운이 잘 따르면 승부를 뒤엎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며 앞서가는 사람도 끝까지 방심할 수 없도록 긴장감을 준다.

과거 PC게임에서 사실적인 레이싱 게임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기 어려웠던 이유는, 키보드를 통해 정밀한 운전을 하는 것이 일반 유저들에게는 까다롭게 느껴졌고 레이싱의 특성상 한 번 뒤쳐지면 앞선 자를 따라잡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레이스 중에는 차를 트랙에 따라 운전하는 것 외에는 다른 즐길 거리가 부족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런 캐쥬얼 레이싱 게임에서는 운전을 아주 단순화 시켜 진입장벽을 낮췄을 뿐만 아니라 아이템이라는 알레아 요소를 통해 아곤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다양한 즐길거리를 제공했다. 실제로 카트 라이더에서는 일반 유저들이 주로 아이템전을 즐기는 반면 고수층으로 갈수록 순수한 아곤에 가까운 스피드전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같은 게임 안에서도 유저층에 따라 선호하는 아곤-알레아 사이의 밸런스가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뮬레이션 게임

심시티와 같은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도 알레아는 아주 좋은 양념으로 가미되어 있다. 만약 심시티에 무작위로 발생하는 자연재해 같은 요소가 없다면 게임이 자칫 무미건조해지거나 게임의 결과가 지나치게 뻔해져 승리하는 방법이 특정 범위에서 공식화 되기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이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토네이도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들이 등장함으로써 게임이 변화무쌍해지며 이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자신의 현상황을 재빨리 파악하고 대처하는 능력 또한 게임의 승패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아곤을 파괴하는 알레아가 새로운 아곤을 창출한 셈이다.

 

 

 

미미크리 심리적 몰입

앞서 살펴봤듯이 미미크리는 자신이 동경하는 무엇인가를 흉내 내거나 연기하는 놀이입니다. 심리학 용어로 말하면 동일시(同一視)하는 것이죠. 사전에서 이 단어를 찾아보면 알겠지만 동일시는 어린 아이가 소꿉놀이를 하며 엄마나 아빠를 흉내 내는 것, 혹은 영화나 연극, TV드라마 등을 보고서 자신을 그 속의 특정 인물처럼 느끼거나 동질감을 찾으려 하는 심리를 말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심리적 몰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타인의 인격에 몰입하여 나 자신이 마치 그 사람이 된 것처럼 여기는 셈이죠.

 


확장팩 이전에 가장 인기리에 UCC로 제작되던 NPC 중 하나였던 종교재판관 화이트 메인. 오묘한 배경 이야기와 야릇한 복장, 그리고 짧지만 임팩트 있는 대사가 유저들에게 크게 어필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현대의 게임에서 미미크리는 주로 롤플레잉 게임에서 매우 강하게 나타납니다. , 플레이어가 게임 속의 인물을 동경하려면 그 인물은 분명 매력적이거나 아니면 플레이어의 실제 모습, 성격, 경험과 연결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플레이어가 게임 속 가공의 인물과 그런 교감을 가지려면 단순히 캐릭터의 외모가 멋있거나 능력이 강한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심리적으로 몰입하려면 가상의 인물에게도 생명력이 필요합니다. 인간이 실제로 살아있지 않은 존재와 동질감을 느끼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가상의 캐릭터에게 생명력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이야기Story가 필요한 것입니다. 미미크리가 강조된 대표적인 게임인 롤플레잉에서 시나리오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미미크리의 장점

미미크리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게임 속 가상 세계를 마치 실제처럼 느끼게 해줍니다. WoW에 심취해 있는 플레이어가 게임 속 가상의 인물인 스랄호드의 영웅이나 우서 경전설의 성기사에게 경외심을 갖거나 자신이 속한 종족이나 진영에 자부심을 갖는 심리는 바로 잘 짜여진 세계관과 시나리오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플레이어가 게임의 가상 세계에 심리적으로 몰입하면 할수록 소위 말하는 충성도는 높아지며 이 게임을 즐기는 것이 다른 게임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대전격투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의 설정상에서 류와 켄이 같은 스승의 제자라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서로 싸울 때 데미지가 덜 들어간다든지 하는 일은 없지만 그런 배경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게이머들은 게임 화면 밖에서수많은 이야기 거리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죠. 더욱이 UCCUser Created Contents의 중요성이 높아진 요즘에는 미미크리 요소를 더욱 중시할 수 밖에 없습니다.

 

 

◆ 미미크리의 단점

미미크리는 특별히 단점을 꼽기가 어려운 요소입니다. 왜냐면 아곤, 알레아와 같은 기존의 게임 요소와도 충돌하지 않고 잘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컴퓨터 게임에서 미미크리 요소, 즉 세계관이나 시나리오, 등장인물들의 인격 등은 게임의 분위기를 북돋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미미크리 요소가 거의 없는 게임들FPS와 같은 장르 역시 미미크리가 게임의 다른 요소들과 충돌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굳이 넣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인 것이죠. 하지만 콜 오브 듀티와 같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는 FPS 게임들은 다른 FPS에 비해서 미미크리의 비중이 다소 높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고 비슷한 소재의 영화들도 많이 제작되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몰입할 만 한 여지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죠. 반면에 일반적인 FPS 게임들은 세계관이나 시나리오는 그저 구색 맞추기로 넣을 뿐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유저 또한 그에 불만을 갖지 않고 총싸움만 재밌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게임에 임하니까요.

 

 

 

일링크스 감각적 몰입

미미크리가 심리적인 몰입이라면 일링크스는 감각적으로 몰입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앞서 알아봤듯이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탔을 때 몸이 느끼는 현기증이나 긴장감을 예로 들 수 있겠죠. 그런데 실제 내 몸이 움직이지 않는 컴퓨터 게임에서는 과연 어떻게 이런 감각적 몰입이 가능할까요?

이 개념을 이해하려면 감각의 불일치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의학에서 쓰는 용어지만 그 의미는 간단합니다. 내 눈과 귀 그리고 다른 감각기관에서 받아들이는 정보가 원래 익숙해져 있던 것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쉬운 예로 KTX와 같은 고속열차에서 열차의 진행방향을 등지고 앉아서 가면 메스꺼움이나 어지럼증과 같은 멀미를 느끼기 쉽습니다. 그 이유는 몸은 의자에 앉아 있는데 시야에 들어오는 정보, 즉 창 밖 풍경이 평상시진행방향을 바라보고 앉아있을 때와는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이죠.

 

게임에서도 이런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1인칭 시점으로 플레이하는 FPS 게임을 하다 보면 간혹 메스꺼움이나 어지럼증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도 멀미와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내 몸은 그저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 뿐인데 게임 화면은 마치 내가 매우 빨리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감각의 불일치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죠. 반면에 일반적인 3인칭 시점이나 2D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탑뷰top-view, 쿼터뷰quarter-view 등의 게임을 할 때에는 이런 현상이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류의 시점은 화면 이동도 느린 편이고 1인칭 시점에 비해 멀리 떨어져서 보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감각적으로 몰입하기 어렵고 그래서 감각의 불일치 현상도 일어나기 힘든 것이죠.

 

하지만 감각의 불일치 외에도 컴퓨터 게임에서는 여러 일링크스 요소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타격감이죠. 우리가 FPS 게임을 플레이할 때 총을 쏘는 모습을 한 번 떠올려 봅시다. 게임 그래픽과 사운드에서는 그럴듯한 총소리도 나고 불꽃도 튀며 실제 총을 쐈을 때처럼 반동까지 생깁니다. 하지만 모니터 밖 현실에서는 그저 내가 마우스 버튼을 클릭한 것에 불과한 것이죠. 내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총의 반동이란 것도 사실은 내 팔이 흔들린 것이 아니라 화면상의 조준점이 흔들리기 때문에 내 몸이 반동으로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질 뿐인 것입니다. 이것은 방금 전에 이야기했던 감각의 불일치와는 또 다른 감각의 왜곡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죠.

 

이와 같이 인간의 감각적인 착각으로 일링크스를 일으키는 경우 외에도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의 진동 패드나 오락실에서 볼 수 있는 대형 게임기구(실제 오토바이 모형 위에 올라타서 진행하는 바이크 게임, 자동차 운전석 모형에 앉아 핸들로 운전하는 자동차 게임 등) 등은 직접적으로 인간의 감각을 자극시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같은 레이싱 게임이라 해도 키보드 방향키로 차를 운전하는 것보다는 실제 자동차 핸들과 같은 전용 기구로지텍 드라이빙 휠 따위를 이용하는 것이  더 감각적으로 몰입할 수 있으며, 이보다는 운전석까지 비슷하게 꾸며진 오락실 게임기로 플레이 하는 것이 훨씬 몰입감이 높겠죠.

 

 

◆ 일링크스의 장점

일링크스는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는 요소입니다. 좁은 평면 화면으로 보여질 수 밖에 없는 컴퓨터 게임을 보다 사실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죠. 따라서 일링크스가 잘 갖춰진 게임들은 플레이어에게 훨씬 더 큰 감각적 몰입을 제공합니다.

 

 

◆ 일링크스의 단점


어떤 게임이건 전투가 등장한다면 타격감은 일링크스를 구성하는 데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무조건 타격감이 강하다고 좋은 게 아니라 게임의 다른 요소들과 잘 어울리도록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놀이공원에서 바이킹이나 자이로 드롭과 같은 놀이기구를 타는 것이 재미있는 이유는 어쩌다 한 번경험하는 색다른 감각적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같은 놀이기구를 하루 종일 탄다고 생각해봅시다. 과연 그것이 항상 재미있을까요? 점점 지겨워지다가 나중에는 신물이 날 지경이 될 것입니다. 게임 속의 일링크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게임의 형식과 분위기에 맞게 적절한 수준으로 가미가 되어야지 그 도를 지나치면 부작용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세밀한 컨트롤이 중요한 스타 크래프트에서 FPS 게임처럼 총기 반동을 넣으면 오히려 방해만 되고, 호쾌한 액션이 생명인 데빌 메이 크라이가 밋밋한 타격감을 가지면 재미가 반감되듯이 게임은 그에 맞는 일링크스 요소가 필요합니다. 일링크스는 처음에는 색다른 감각적 체험을 제공하지만 결국 비슷한 자극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싫증을 느끼게 마련이니까요. 따라서 MMORPG와 같이 일일 플레이 시간이 비교적 긴 게임들의 경우에는 일링크스 요소를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의외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대부분의 국산 MMORPG들이 오로지 화려한 겉모습에 치중해서 필요 이상으로 일링크스 요소를 남용하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일반적인 공격행동을 하는데도 지나치게 화려한 그래픽 효과를 마구 남발하는 식이죠. 이런 것은 처음에는 좋아 보일지 몰라도 싫증이 나는데 불과 몇 시간도 채 걸리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플레이어의 시야를 방해할 우려도 있습니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PS의 진동패드와 같이 직접적으로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는 경우에도 보다 신중해야 합니다. 이미 이로 인해 감각적 이상이 발생한 임상 사례들이 보고된 바 있고, 화면이 심하게 번쩍거리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장시간 즐기던 어린이에게서 발작 현상이 일어난 사례도 있습니다. 따라서 일링크스는 플레이어의 연령대와 일일 플레이 시간 등을 모두 고려하여 적절한 수준에서 조절을 해야만 합니다.

 

적절하게 조절된 일링크스
WoW는 일링크스를 적절하게 절제해서 더 높은 게임성을 갖춘 드문 예이다. 만약 WoW의 타격감이 데빌 메이 크라이나 진삼국무쌍과 같이 화려했다면 어땠을까? 처음에는 훨씬 멋있어 보였겠지만 인스턴스 던전의 파티 플레이나 PvP 등을 할 때에는 오히려 그 화려함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 정확한 판단과 정교한 컨트롤을 하는데 큰 방해가 됐을 것이다. WoW가 다소 밋밋한 타격감을 가지고도 좋은 재미를 주는 이유는 전투의 핵심이 타격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략과 컨트롤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위의 두 게임이 WoW와 같이 절제된 타격감을 가진다면 그 또한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런 류의 게임들은 호쾌한 액션 자체가 게임성의 핵심요소이기 떄문이다. 무엇이든 그 게임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에 어울리게 조절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4대 요소의 실전 응용

 

자 이렇게 해서 로제 카이와가 규정한 놀이의 4대 요소인 아곤, 알레아, 미미크리 그리고 일링크스가 현재 컴퓨터 게임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알고 만다면 사실상 여러분이 실제 게임을 구상하는 데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저 어디 가서 좀 아는 척 할 때에나 써먹을 수 있을 뿐이죠. 이번 가이드 서두에서도 말씀 드렸다시피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만으로 그치면 깨달음은 오지 않습니다. – 學而不思卽罔학이불사즉망 – 새롭게 배운 지식을 통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려면 깨달음을 통해 지혜를 얻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놀이의 4대 요소라는 지식을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까요?

 

 

 

아곤과 알레아의 조합 - 카트 라이더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앞서도 언급했다시피 카트 라이더는 크게 두 가지 게임 방식이 있습니다. 스피드전과 아이템전이죠. 그래서 스피드전은 아곤이 강하고 알레아가 희박한 반면 아이템전은 알레아 요소가 가미되어 아곤이 다소 약해졌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게임 방식의 장점을 혼합하여 새로운 게임 방식을 만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아곤에 알레아가 개입을 하면 공정성이 저하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알레아의 비중을 조금 줄여서 아곤과 알레아가 새로운 균형을 이루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자 그러면 카트 라이더에서 알레아 요소란 무엇입니까? 바로 랜덤하게 등장하는 아이템입니다. 모두가 잘 알다시피 카트 라이더와 같은 캐쥬얼 레이싱 게임에서는 아이템이 등장하는 데 처음부터 어떤 아이템인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단 획득을 하고 난 뒤에 무작위로 결정되기 때문에 획득한 아이템이 어떤 것이 될지 미리 예측을 할 수가 없죠. 그래서 운이 좋으면 지금 사용하기에 적절한 것이 나올 수도 있고 운이 나쁘면 필요없는 아이템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예측하기 어렵고 운에 의존하는 알레아 요소들이 바로 아곤을 파괴하는 것이죠.

 


아이템이 랜덤하게 결정되는 것은 알레아다


아이템을 미리 보여주면 아곤을 강화할 수 있다

 

자 그러면 여기서 알레아의 비중을 줄이고 아곤을 강화시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템이 등장하는 것은 그대로 유지하되 아이템을 획득하고 난 뒤에 어떤 종류인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트랙에 아이템이 배치될 때 아이템의 종류가 미리 결정되어 드러내는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플레이어는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필요한 아이템을 전략적으로 고를 수 있는 여지가 생깁니다. 즉 예전처럼 그냥 아무 아이템 박스나 상관없이 먹고 어떤 게 나올지는 운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깔려 있는 아이템 중에 어떤 것을 가져가는 것이 지금 나에게 유리한 지를 판단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가 발생하는 것이죠. 위 스크린샷 중에서 오른쪽 그림을 보시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죠. 만약 내가 레이싱에서 선두로 달리고 있는데 바로 앞에 깔려 있는 아이템들이 우주선, 바나나, 미사일, 물풍선 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이렇게 아이템이 미리 결정되어 있으면 우주선을 내가 차지해서 다른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것인지, 바나나를 먹고 적절한 위치에 깔아서 추격해 오는 플레이어를 방해할 것인지, 미사일을 먹어서 추월 당했을 때를 대비할 것인지 등을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판단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셈입니다. 하지만 원래대로 아이템이 물음표 상자에 감춰져 보이지 않는다면 그냥 아무거나 먹고 운에 맡길 수 밖에 없겠죠.

 

따라서 이렇게 아이템을 미리 결정해서 보여주게 되면 전적으로 운에 의존하는 알레아의 비중을 다소 낮추면서도 아이템이 주는 재미는 그대로 유지되지만, 상황에 맞는 아이템을 선택하고 활용하라는 새로운 과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아곤이 강화되는 것이죠. 만약 이런 식으로 게임 모드를 새로 제공한다면 기존의 아이템전이 가진 단점을 다소 보완하는 색다른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알레아의 간섭 팡야


팡야의 난기류 맵은 결국 유저들에게 외면당했다. 전혀 예측할 수 없이 제멋대로인 바람은 유저를 골탕 먹이는 것 말고는 아무런 좋은 점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곤에 알레아가 개입하는 것이 항상 좋은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팡야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팡야는 전반적으로 아주 훌륭하게 만들어졌지만 옥의 티가 한 가지 있습니다. 여러 맵 중에서 최고 난이도를 뜻하는 별 세 개짜리 맵에서만 등장하는 난기류가 바로 그것이죠. 플레이어가 샷을 해서 날아간 공이 이 난기류 지역을 통과할 때에는 무작위로 부는 바람의 영향을 받게 되는데, 바람의 방향이나 속도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데다 대부분의 경우 의도하지 않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이런 난기류가 등장하는 맵은 유저들에게 철저하게 외면을 받아 실제 게임에서는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한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경우 난기류는 예측할 수 없는 알레아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발진은 난이도를 높이기 위해서 별 세 개 이상의 맵에서만 이런 난기류 개념을 넣었지만 유저들 입장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위험부담이 너무 큰 이런 맵에서 굳이 플레이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이 경우 난기류를 넣어 맵의 난이도를 높이고자 한다면 예측 불가능 요소, 즉 알레아의 비중을 줄일 필요가 있겠죠. 그렇다면 난기류가 발생하는 지역의 바람 방향과 세기를 무작위로 할 것이 아니라 맵 전체의 바람하고만 달라지게 설정하고 난기류 지역에서 어떤 식으로 바람이 바뀌는 지를 플레이어에게 알려주는 쪽이 더 바람직 합니다. 또한 난기류를 통과해서 홀인을 시키는 것이 평소보다 훨씬 더 어려운 만큼 그에 따른 보상 역시 일반 맵보다 커야만 하겠죠.

 

 

 

아곤과 미미크리의 색다른 만남 마구마구

아곤이 절대적으로 강한 스포츠 게임에서 미미크리 요소가 조합되는 개념은 보통 실제 현역 선수들의 능력과 성적을 데이터화 해서 게임 속 캐릭터에 반영하고 선수들의 외모나 버릇 등을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마구마구넷마블 서비스중>는 단순히 현역 선수들만을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실존 선수들을 연도별로 나누어 해당연도의 성적에 따라 능력치를 각기


마구마구는 캐릭터 카드 시스템으로 많은 야구팬들을 게임에 끌어들였을 뿐만 아니라 높은 수익도 올리고 있다.

달리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은퇴한 과거의 선수들까지도 캐릭터로 등장시켜 야구팬들의 향수를 불러일으켰죠. 물론 게이머들이 캐릭터를 선택하는 기준은 그 캐릭터가 가진 능력치에 크게 좌우되지만 과거에 자신이 좋아했던 선수, 혹은 내가 응원하던 팀에 왔으면 했던 선수들을 내가 직접 플레이 한다는 재미 또한 무시할 수 없으며 이것이 바로 색다른 미미크리 요소인 것입니다. 그 결과 마구마구는 다른 경쟁작들을 크게 앞서며 유례없는 흥행성적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가이드 4편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해서 이번 가이드를 통해 살펴본 로제 카이와의 놀이의 4대 분류 이야기도 마무리 지어야 할 때가 됐습니다. 사실 더 많은 내용들이 남아 있지만 어디까지나 기초 가이드인 만큼 내용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어려워지면 안되기에 최대한 간략하고 알기 쉬운 표현으로 압축해서 정리했습니다. 좀 더 심화된 내용은 이후에 중급 가이드로 넘어갔을 때 다시 한 번 다뤄볼까 합니다. (그때까지 이 가이드가 계속 된다면…)

다만 여러분들이 오해해서는 안될 것이 이 이론이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아곤, 알레아, 미미크리 그리고 일링크스의 네 가지 요소만으로 게임의 모든 면을 다 판단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 요소들을 통해 이미 완성되어 서비스 중인 게임을 분석하거나 앞으로 여러분이 게임을 구상할 때 훌륭한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아마 다음 기회에 다시 이 이야기를 다루게 된다면 이 네 가지 요소를 기준으로 게임을 포지셔닝하는 방법에 대해서 주로 소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여러분이 직접 이 가이드의 내용을 토대로 기존 게임들과 여러분이 구상중인 게임을 분석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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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이어지는 가이드 5편에서는 게임의 시나리오에 대해서 살펴보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4편이 좀 늦었기 때문에 다음 편은 최대한 빨리 완성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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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배포
www.game-gpm.net 2007.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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