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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인공지능과 과학철학

온울에 2008. 4. 27. 05:11

 

 

인공지능의 철학 : 이초식, 고려대 출판부, 1993, Page 101~111
 

1. 지식의 종류와 조건

2. 현대 과학철학의 과제와 접근방법

 

1. 지식의 종류와 조건

인공지능의 구성은 철학의 여러 분야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미 우리는 형이상학· 언어철학 등이 직접으로 인공지능에 관여되어 있음을 보았다. 그런데 전통철학의 인식론과 현대의 과학철학은 철학의 어느 분야보다도 지식 자체를 본격적으로 다루어 온 만큼, 지식 문제를 주제로 하는 인공지능의 구성과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식론과 과학철학의 과제와 접근방법들을 개관하고 20 세기 과학철학의 전개과정과 쟁점들을 논해 가면서 그들의 연구성과와 연구방식이 인공지능 구성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1981년 뉴웰은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심리학보다 철학이 그들의 일을 직접 돕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조사결과를 보고 했다. (주석 : Shapiro (1987), Vol. 1, p.284.) 지능의 역할 중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식활동과 지식의 문제이다. 지식문제에 작용해 온 인간지능의 역할을 컴퓨터와 연결시키려는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우선 지식의 종류를 구분해 온 인식론과 과학철학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인식론에서는 지식을 두 가지로 크게 구분해 왔다. 그 하나는 '무엇이 어떠한지를 안다' (know that, propositional content) 고 하는 명제적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무엇을 할 줄 안다' (know how, competence) 고 하는 실천적 지식이다. (주석 : Ryle (1949), pp. 28~32.)

전통적 인식론에서 주로 다루어 온 지식은 명제적 지식에 해당되며 실천적 지식은 윤리학과 기술철학 (技術哲學) 의 영역에서 다루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지적하는 실천적 지식은 무엇을 할 줄 안다는 능력 보유를 의미하기 때문에, 단순히 그것을 하게 되는 절차에 관한 명제들을 안다는 절차적 지식과는 구별된다. 드레퓌스가 인공지능 비판에서 문제 삼았던 것도 결국 이런 실천적 지식은 기계에게 부여할 수 없다는 생각된다. 실천적 지식과 절차적 지식의 구분은, 가령, 축구의 경기 규칙을 진술한 명제들을 알았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축구할 줄 아는 선수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물론, 실천의 능력을 확보함에도 그러한 명제적 지식은 실천적 지식보다 한층 더 넓은 영역의 기반이 되는 것으로 전통적 인식론에서는 파악했기 때문에 명제적 지식을 논의의 초점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지식은 인식론적 논의에서 제외되게 마련이다. 앞서 검토했듯이, 칸트가 그의 인식론에서 판단의 종류를 구분하고 이들에 따라 지식의 특성을 논한 것도 명제적 지식을 논의의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주석 : Ⅲ 장의 '1-1. 칸트의 인식론과 현대 과학철학' 참조.)

지식이 무엇인가 하는 지식의 본질을 다루어 온 전통적 인식론에서는 지식이 성립될 수 잇는 기본적인 요소들과 그들간의 관계를 다루어 왔다. 가령, 내가 '이 장미꽃은 희다' 라는 것을 알았다고 할 경우를 생각해 보자. 알려지는 것으로서의 흰 장미는 인식대상 (認識對象) 이고, '나' 와 같이 아는 자의 역할을 하는 것은 인식주관 (認識主觀) 이다. 이 두 가지 요소가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인식론에서는 우선 문제 삼는다. 인식주관이 없어도 인식대상은 있을 수 있을는지 모르나 그것에 관한 인식은 인식주관 없이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적 인식론이다. 그러나 철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두 가지의 요소 중에서 인식대상에 치중한 실재론과 인식주관을 중시한 관념론의 대립이 여러 가지 형태로 전개되어 왔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인식의 요소들과 그들의 관계 구조에 관한 논의는 지식이 갖추어야 할 본질적인 조건의 문제과 직결된다.

앞에 예에서 "내가 '이 장미꽃은 희다' 는 것을 알았다" 고 하는 경우에서 지식의 조건은 무엇인가? 이와 같이 어떤 명제를 우리가 알았다고 할 수 있는 지식의 조건으로는, 첫째로 '나' 라는 인식주관 x가 인식대상인 장미꽃에 관한 명제 p, '이 장미꽃은 희다' 라고 믿고 있어야한다. 이 조건은 신념조건 (belief condition) 이다. 둘째로는 그 명제가 참이어야 한다는 진리조건 (truth condition)을 꼽게 되고, 셋째는 그 명제가 참이라고 믿을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정당성조건 (justification condition) 이다. 전통적 인식론에서는 이 세 가지 조건과 관련된 문제들이 주로 논의되어 왔다. 신념의 조건은 지식의 원천 문제로서 다루어 왔고 진리조건은 진리의 의미와 기준 등의 진리론과 직결되며 정당성조건은 인식론의 본질적 문제로서 타당근거에 관한 문제와 연결된다.

지식의 이 세 가지 조건을 처음으로 제시한 플라톤은 (주석 : 플라톤의 Tbeaetetus 201과 Menon 98 ckawh.) 신념이 참이라고 해서 모두 지식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 믿음이 참이라는 근거가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지식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정당성의 조건을 중시한 증거이다. 가령, 내가 어쩐지 내일 이 지방에 비가 오리라고 믿게 되었고 실제로 비가 왔다고 해도, 그것은 믿을 근거가 없었기 때문에 지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인식의 타당근거와 지식의 정당성을 판가름하는 평가적인 과제 (evaluative) 는 인식론의 가장 기본적인 과제로 되어 왔다. 이것은 누가 무엇을 어떻다고 믿게 된 심리적 과정을 기술하는 기술적인 과제 (descriptive) 와 구별된다. 이 구별은 오늘날 인식의 기술적 과제를 수행하는 인지과학과 평가와 규범을 주로 다루는 인식론적 철학의 구별에도 관여되며 이들의 상호관련성은 인지과학과 인식론의 관련성으로 이어진다. 인식에 있어서 과학과 철학의 관계, 평가적 과제와 기술적 과제의 문제, 논리학과 심리학의 문제 등 현대 과학철학에서 여러 가지로 논의되는 것들도 그런 정당성 조건과 직결된다.

우리가 지식을 얻게 되는 과정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검토할 수 있다. 하나는 직접 우리의 직관이나 경험에 알려진 것을 말하며 다른 하나는 이미 알려진 것을 기반으로 하여 추리해 낸 지식을 말한다.전자를 숙지된 것으로서의 직접지 (直接知, knowledge by acquaintance) 라고 한다면, 후자는 기술 (記述) 이나 추리에 의해 알려진 것으로서의 간접지 (間接知, knowledge by description) 라고 하겠다. 오늘날 이런 구분들은 많은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데이터 베이스에 입력된 정보와 그로부터 추리해 낸 지식을 구분하는 데에도 전용된다. 데이터 베이스에는 이성에 직접으로 명증성이 밝혀진 지식과 감각적 경험에 직접으로 알려진 지식과 같은 직접지뿐 아니라 각종 권위로부터 간접으로 취해진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전문서적이나 전문가들로부터 우리가 지식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책이나 전문가를 믿을 만하다고 그것에 권위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권위에 의한 지식이 참인지의 여부를 논하기 위해서는 정당성의 검사가 필요하다. 간접지의 정당성 문제는 으레 제기될 수 있다고 하겠으나 직접지의 정당성은 어떻게 확보될 것인가? 그것을 자명한 진리로 전제하는 것이 직관주의나 경험주의 철학이라고 한다면 직관비판과 경험비판의 철학들은 그들과 대립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직접지로 보느냐의 문제는 필요로 하는 지식체계를 구성하기 위한 일종의 규약의 문제로 간주하기로 한다.

2. 현대 과학철학의 과제와 접근방법

근대 과학의 혁명적 발전은 인간의 생활을 크게 변화시켜 가고 있으므로 근대 인식론에서 다루는 지식의 전형은 과학적 지식으로 된 셈이다. 이런 생각은 현대에도 이어져 과학적 지식을 다루는 과학철학이 현대 인식론의 과제를 담당하게 된다. 따라서 현대 과학철학의 과제와 접근방식을 검토하는 일은 인공지능의 학문적 특성과 그 구성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된다. 물리학·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 등의 개별과학은 물리현상· 생물현상· 심리현상· 사회현상 등의 현상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지만, 과학철학은 그러한 과학 자체를 대상으로 연구한다고 해서 '과학의 과학' 또는 '메타과학' (meta-science) 이라고도 불리어 왔다. 그런데 과학철학의 대상이 되는 과학은 물리학과 생물학 등의 현상을 다루는 사실과학l (factual science) 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논리학과 수학 등의 형식과학 (formal science), 법학과 윤리학 등의 규범과학 (normative science), 그리고 기계공학과 자료공학 등의 기술과학 (technological science) 에까지 확장해서, 사실과학의 철학· 형식과학의 철학· 규범과학의 철학· 기술과학의 철학으로 과학철학을 나누어 볼 수도 있다.

20 세기 초반에 과학의 메타 이론으로서의 과학철학은 물리학을 비롯한 사실과학의 구조에 관한 논리적 분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논리실증주의의 과학철학이 그 본보기이다. 이런 경향의 과학철학자들은 현대 기호논리를 분석의 무기로 삼아 과학 일반의 구조와 기본개념들을 논리적으로 분석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논리학을 분석의 도구로서 이용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도구로서의 논리학을 개발하였고 논리학을 비롯한 형식과학 자체에 대한 음미와 반성을 폭넓게 하게 됨에 따라 형식과학의 철학 문제도 다루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상은 Ⅲ 장에서 논했듯이 형식게임으로 대표되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반영되었으며 좀더 상세한 것은 오늘날 인공지능언어로서 널리 채용되고 있는 LISP 의 철학적 기초를 다루는 장에서 따로 살피고자 한다. 그리고 규범과학과 기술과학에서도 명제화할 과학적 지식이 적지 않으며 우리가 인공지능을 기술의 일종으로 규정한다면 인공지능 구성의 철학은 규범과학을 포함하는 기술과학의 철학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학철학의 전형적인 대상은 사실과학이므로, 우리가 논의할 대상은 명제화된 과학적 지식에만 제한하기로 한다. 과학철학의 과제와 접근 방식을 가장 포괄적으로 체계화한 것이 기어 (Giere) 의 과학철학 사상이라고 생각되어 필자는 이를 그림 Ⅳ-1-1 과 같이 입체도형으로 제시하여 검토하고자 한다. (주석 : Giere (1971) 참조, 여기서 논의되는 과학철학의 과제와 접근방식은 필자가 밝힌 바 있다. (이초식, 1979-1).)

이 분류표는 물론 사실과학의 지식을 모델로 한 것이지만 다른 종류의 과학, 특히 기술과학을 논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위의 도표는 과학철학의 연구대상 영역을 과학적 지식에 한정시키고 (Ⅰ) 과학적 지식의 구조, (Ⅱ) 과학적 지식의 성장, (Ⅲ) 과학적 지식의 응용, 이렇게 세 가지로 구분하여 검토한다. 다른 한편 과학적 지식은 과학 일반에 공통되는 지식이론 (A) 과, 물리학· 생물학· 심리학 등 특수 개별 과학의 지식에 관한 이론 (B) 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이 양쪽을 결부시키면 과학철학의 대상영역은 지식구조의 일반이론 (I A) 과 특수이론 (I B). 지식성장의 일반이론 (II A), 성장의 특수이론 (II B), 그리고 지식응용의 일반이론 (III A), 지식응용의 특수이론 (III B) 이라는 6개 부분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이들 영역에 관한 접근방식은 다시금 (가) 논리적 접근방식, (나) 비형식적 접근방식, (다) 일상언어적 접근방식, (라) 역사적 접근방식, (마) 그 밖의 접근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런 분류에 의해 과학철학을 개념적으로 30 개 영역으로 나누고 그들 영역의 특성과 상호연관 관계를 검토해 가면 좀더 분명하게 성과있는 논의를 해볼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카르납과 헴펠 (C. G. Hempel) 등의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과학을 비과학과 구분할 수 있는 일반적 기준에 관심을 갖고 과학적 설명 일반의 구조나 가설확증의 일반적 구조 등 과학적 지식의 일반이론을 논리적인 접근방식으로 추구했다고 할 수 있으므로, 그들의 논의는 'IA 가' 의 부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논리적 접근방식은 논리실증주의의 철학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많은 현대 철학자들에게도 그 필요성이 인정되고 잇다. 양상논리 (modal logic), 인식논리 (epistemic logic), 의사결정의 논리 (logic of decision), 규범논리 (deontic logic), 다치논리 (many-valued logic) 등 각종 논리들이 개발되어 과학의 부석에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입증한다고 하겠다. 양상논리를 비롯한 새로운 논리들이 최근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전용되고 있으며 연역적 증명의 새 기법의 적용과 상식적 추리를 다룰 수 잇는 비단선적 추론 (nonmonotonic reasoning) 등의 개발은 이 논리적 접근방식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간주된다. (주석 : Ⅳ장 '4-4-1, 지식의 성장과 귀납의 특성' 참조) 논리적 방법이 일반이론뿐만 아니라 특수분야를 연구한 학자들로서는 수퍼스 (suppes), 스테그뮐러 (stegmüller), 힌티카 (Hintikka), 폰브리히트 (von Wright) 등을 대표적 인물로 꼽을 수 있다. 바인가르트너 (Weingartner) 와 같은 학자는 앞장에서 보았듯이 형이상학의 대상영역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주석 : Ⅲ장의 '4. 형이상학의 구문론적 분석사례' 와 Paul Weingartner (1978), Das Problem des Gegenstandsbereiches in der Metaphysik (Salzburg, Salzburg Univ., 1978) 참조.) 보헨스키 (Bochenski) 는 '종교의 논리' (logic of religion) 를 제창하기도 하였다. (주석 : Bochenski (1965) 참조.)

(나) 의 비형식적 접근법은 파이글 (Feigl), 셀라스 (Sellars), 쾨르너 (Körner) 등의 과학철학자들이 즐겨 사용해 온 것이나, 이들도 형식적 접근법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고 양자를 혼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일상언어학파에 속하는 스크리븐 (Scriven), 아킨슈타인 (Achinstein) 과 같은 과학철학자들은 (다) 의 접근법을 사용한 것으로 본다. 여기서 제시된 (가), (나), (다) 의 세 가지 접근법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과제와 연구대상의 특성에 따라 접근법을 달리하는 상보적 관계임을 필자는 전제하고자 한다. 그러나 '역사적 접근법' (라) 으로 지칭되는 한슨 (Hanson), 툴민 (Toulmin), 쿤 등의 경우는 그들과 상보적 관꼐가 아니라 대립적 관계로 평가된다. 기어는 이상의 네 가지 접근법만을 소개했으나 필자는 현상학· 해석학· 변증법 등의 접근법을 (마) 의 경우로 남겨놓았다.

이와 같은 과학철학의 접근방법이 서로 다른 것은 학파들간의 기본시각의 차이를 반영한 것이며 그런 시각의 차이 때문에 인공지능 구성의 시각도 달라진다. 예컨대, 맥카시 (John McCarthy) 와 닐슨 (Nils Nilsson) 등이 논리를 인공지능의 중심으로 간주하고 논리적 연역과정을 핵심으로 하는 형식체계를 구성하려는 것은 분명히 과학철학의 논리적 접근 방식을 이어받았다고 하겠으며, 민스키 (Marvin Minsky) 와 슈앵크 (Roger Schank) 가 심리적 접근을 시도한 것은 논리외적 접근에도 큰 비중을 둔 시각임이 분명하다. (주석 : 타가드는 맥카시와 닐슨 등의 논리학 정초 AI 를 "말쑥한 인공지능" (neats AI) 이라하고 민스키와 슈앵크 등의 심리학 정초 AI 를 "덥수룩한 인공지능" (scruffy AI) 이라고 지칭한 바 있다. Thagard (1988) p.3.) 그리고 우리가 그 밖의 접근방식으로 지적한 부분의 철학학파들은 이미 인공지능 비판의 철학에서 보았듯이 대체로 비판의 측면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그들이 인공지능 구성에 적극적으로 기여한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다.

다른 한편, 20 세기 전반기 과학철학은 주로 과학적 지식의 일반적 구조와 특수구조 (IA, IB) 를 논하는 데 치중했으나, 중반기 이후로는 과학적 지식의 성장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포퍼 (Popper), 라카토스 (Lakatos), 파이어아벤트 (Feyerabend) 등의 탐구가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들에 의하면 과학적 지식은 고정된 어떤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추측과 논박을 통해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전통적으로 지식 성장의 일반이론은 확장추리이며 그 대표적 유형으로는 귀납추리를 꼽게 된다. 이미 알려진 전제들로부터 알려지지 않은 것을 추리해 내는 귀납추리에 의해 우리의 지식은 증대되기 때문이다. 귀납추리에 관한 형식논리적 접근방식은 이미 카르납의 ≪확률의 논리적 기초≫ 에서 전형적인 시도가 있었다. (주석 : 확률 개념에 관한 상세한 분석은 Ⅳ장 5-3-2 참조.) 그리고 80년대부터 인공지능 분야에서 활발히 논의되어 온 기계학습 (machine learning) 이 지식성장에 관심을 집중함에 따라 귀납논리가 새로이 개발되고 있다. (주석 : Ⅳ장 4-2 참조.) 기계학습이란, 컴퓨터로 하여금 인간이 지성을 갖고 학습해 가는 것처럼 지식을 증대하고 그 수행을 개선하도록 하는 인공지능의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인공지능 구성을 위해 더욱 주목하고 싶은 분야는 Ⅲ의 영역이다. 과학적 지식을 응용하는 이 분야를 기어는 '기술에 의한 지식' (knowledge by technology) 또는 '기술의 방법론' (methodology of technology) 이라고 지칭하기도 하였다. 전통철학에서는 이 분야의 연구가 경시되어 왔으나, 오늘 날 이 분야는 현실의 실제문제 해결과 긴밀히 연결되므로 매우 중요시된다. 그러나 아직도 이 분야의 연구는 체계적으로 발견되지 못한 형편이다. 분게와 아가시 (J. Agassi) 등을 비롯한 포퍼 학파에 속하는 소수의 학자들이 고작 이었으며 기술철학에 관심을 가진 소수의 학자들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뿐이다. 이들 분야의 내부를 보면, 과학적 지식의 합리적 활용의 일반이론인 Ⅲ A 에는 가치론, 시스템이론, 의사결정론 등이 속하고 Ⅲ B 는 최근 급격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각종 공해방지계획을 비롯해 원자로 설치, 우주개발계획 등 앞으로 삶의 세계를 지배할 많은 문제들이 그곳에서 다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공지능의 여러 연구 분야들이 과학적 지식을 응용하는 데 관여하는 기술의 분야로 규정되므로 인공지능 구성의 철학을 기술철학으로서 다루지 않을 수 없다. 기어는 기술을 응용과학으로 간주하고 기술철학을 응용과학의 철학과 동일시하였으나 기술철학을 그렇게 규정하지 않는 의견도 있다. (주석 : Ⅳ장 6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