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사유..!/실체와 과정.

[펌] 화이트헤드와 논리적 원자론자들의 존재론

온울에 2008. 5. 6. 02:33

목 차

1.들어가는 말
2.기본적 존재
1)영국 철학의 전개
2)경험과 실재
3)사건
3.존재문제
1)화이트헤드의 현실적 존재자
2)여건과 형상
3)무어와 개념
4)러셀과 기술
4.맺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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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자명 새한철학회 
학술지명 철학논총 
ISSN 1226-9379 
권 25 
호 1 
출판일 2001. 7. 31.  


화이트헤드와 논리적 원자론자들의 존재론

정연홍
충남대학교
1-066-0103-03

국문요약
이 논문은 19세기 후반의 영국철학의 배경을 통하여 ‘과정철학’을 정초한 화이트헤드의 존재문제, 상식적 실재론을 주창한 무어의 존재 문제와 원자론자들 가운데 러셀의 존재문제를 구명하고자 한다.

영국의 대표적인 관념론자인 브래들리의 사물관을 화이트헤드는 그의 유기체의 철학에서 받아들이지만 무어와 러셀은 그것을 비판한다. 그러나 그들은 한편으로는 경험론에 내포된 심리학적 요소를 불식하기 위해 논리학의 영역을 도입해야 한다는 브래들리의 주장을 수용하여 그들의 분석의 토대로 삼는다.

화이트헤드의 철학적 궁극 문제는 모든 존재 근거인 현실적 존재자의 본질을 해명하는 것이다. 그의 현실적 존재자의 본질은 과정이고 생성 작용이다. 이 작용은 확정성의 형상을 지니고 현실적 존재자의 형상으로서 존재하며 영원한 대상이라고 한다.

무어에게 있어서 세계는 인식대상인 개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것들은 영원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무어는 개념들이 명제 속에서 세계와 관련되어야 그 사물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무 것도 지칭하지 않는 명제도 유의미한가 하는 문제가 러셀에게 대두된다. 논자는 존재하지 않지만 사유의 대상으로서 유를 갖는 존재나 임의적인 지시체로서의 존재로 상정된 비실재들을 러셀이 그의 기술이론으로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거짓 명제라고 분석하는 것을 이 논문에서 파악하고자 한다.

주제분야 :현대 영미철학, 과정철학, 분석철학

주 제 어 :존재, 현실적 존재자, 개념, 명제, 기술

영문요약
Whitehead and Logical Atomists’ Ontology
A. N. Whitehead is distinguished by founding metaphysics, for not confining problems of meaning and theory of knowledge from typical contemporary philosophers. This paper is to elucidate Whitehead’s ontology implicit in his process philosophy, Moore’s entities in his commonsense realism and Bertrand Russell’s metaphysical entities in his theory of description.

The British Idealism, largely dominated by F. H. Bradley, was reacted against by Moore and Russell, first advocates. For Bradley the universe is an organic whole. Though things in the universe seems separate from each other, they are related internally in reality. Whitehead accepts his view of organic whole, but Moore and Russell dispute Bradley’s view. Nevertheless they accept Bradley’s argument against empiricists’ mental contents. They borrow from his emphasis on logic.

Whitehead’s compete fact is that it can be understood in terms of fundamental notions of the essence of being. In this light, the fundamental notion of Whitehead's Metaphysics is to investigate the essence of complete existence. For Whitehead actual entity refers to the existence in the fullest sense. He uses the term entity instead of things. “Entity is simply the Latin equivalent for thing unless some arbitrary distinction is between the words for technical purposes.” The essence of actual entity is process, process of becoming. Actual entity as process is the activity of self-creation eHected by creativity. Thus, it is the ultimate and it is the reason for the world.

Moore distinguishes between being and existence, and everything is granted being. However, the concepts of being combined in proposition with the existence are exist. According to Moore, Sirens do not exist but tigers do exist because of combining in proposition.

Russell believes that many sorts of things really existed as part of some ultimate reality. “Among these were numbers sitting in a row in a Platonic heaven, points of space, instance of time, ultimate particles of physics, universals, and the like.” Even though the present king of France does not exist Meinong thinks the being as an object of our thought. Frege think it as a arbitrary referent, empty set. Although grammatically it looks as one statement, Russell asserts logically the joint conjunction of three statements. By doing so, ‘the present king of France’ is eliminated. Therefore it is neither an object of thought nor an arbitrary referent is false.

Key Words : Whitehead’s Ontology,

Whitehead, Moore and Russell’s En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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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들어가는 말
A. N. 화이트헤드(Whitehead)는 우리 시대의 철학적 문제, 의미와 인식의 문제에만 국한하지 않고 형이상학을 구축함으로써 이 시대의 전형적인 철학자들과는 구별된다. 그는 현대 철학자이지만 수학과 과학을 토대로 형이상학을 정초한다. 그의 형이상학은 수리ㆍ물리학을 통하여 세계에 관한 정합적이며 논리적인, 그러면서도 해석할 수 있고 적용 가능한 철학을 구축하고자 한다.

그는 그의 철학을 구축하기 위한 단초를 ‘완전한사실’(complete fact)의 파악에서 찾고 있다. 이러한 사실의 파악은 존재의 본질에 관한 기본관념을 통해서 가능하게 된다. 완전한 사실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물을 의미한다. 화이트헤드에게서 완전한 사실은 완전한 존재,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이트헤드 형이상학에서 궁극적 문제는 완전한 존재, 다시 말하면 개개의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물들이다. 이와 같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개별적인 사물은 ‘존재’의 가장 완전한 의미에서 존재하는 사물을 가리킨다. 화이트헤드는 완전한 의미에서 존재하는 현실적인 사물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물(thing)이라는 말 대신에 entity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현실적 사물의 존재와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존재들, 예를 들면 형상의 존재, 사상의 존재와 관념의 존재에 관해 말할 때 형상, 사상과 관념은 사물과는 구별되며, 이것들을 포함하는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entity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entity는 ‘esse’, 즉 ‘to be’라는 의미로 존재하는 사물이다. “특수한 목적을 위해서 임의적인 구별을 하지 않는 한, ‘entity’는 단순히 ‘thing’에 대한 라틴어의 동의어”1)이다. 그리고 “‘entity’라는 개념은 매우 일반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유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우리는 단순히 무(無)를 사유할 수는 없다. 따라서 사유의 대상이 되는 것은 ‘entity’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기능(function)도 하나의 entity이다”2).

화이트헤드는 “서구의 철학적 전통은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주석으로 성립한다”3)고 할 뿐만 아니라 플라톤도 완전한 사실의 파악을 시도하여 “완전한 사실에 얽혀있는 7개의 주된 요소, 즉 ‘이데아’, ‘물리적 요소’, ‘프시케’(The Psyche), ‘에로스’, ‘조화’, ‘수학적 관계’와 ‘수용자’(The Receptacle)를 구별하였다.”4)고 주장한다. 플라톤이 7개의 기본 요소를 구별하였으나 화이트헤드는 8개의 존재형태를 제시한다. 이것은 플라톤에서의 궁극 문제인 완전한 사실의 파악이 화이트헤드에 있어서도 다시 한번 궁극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화이트헤드는 기본적 존재 형태를 현실적 존재자(Actual Entity), 파악(Prehension), 결합체(Nexus), 주관적 형식(Subjective Form), 영원한 대상(Eternal Object), 명제(Proposition), 다수자(Multiplicity)와 대조(Contrast)를 구별한다. “이들 8개 존재(existence) 범주 가운데 현실적 존재자와 영원한 대상은 어떤 극도의 궁극성을 지니면서 두드러진다.”5) 그리고 직접적인 경험의 궁극적 사실들이 현실적 존재자, 파악과 결합체이며, 그 밖의 모든 것은 우리 경험에서 파생된 추상물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논문은 화이트헤드의 존재들 가운데 가장 궁극적인 존재들인 현실적 존재자와 영원한 대상을, 그리고 무어의 존재 문제와 원자론자들 가운데 러셀의 존재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우리가 이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하여 우선 이들이 활동한 현대 영국철학의 배경을 살펴보자.

2.기본적 존재
1)영국 철학의 전개
영국의 현대 철학은 F. H. 브래들리(Bradley)의 비판으로부터 시작된다고들 말한다. 그렇다면 화이트헤드와 B. 러셀(Russel) 그리고 G. E. 무어(Moore)의 철학은 브래들리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브래들리는 세계는 하나의 통합된 유기체이고, 사물들은 그 속에서 서로 내적으로 관계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세계 내의 사물들이 외적으로는 서로 분리되어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유기적으로 관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현상적으로는 사물들이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재는 유기적인 전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브래들리에 있어서 유기적인 전체를 분석하는 것은 그것을 파괴하는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이러한·브래들리의 유기체적인 세계상을 수용한다. 그러나 러셀과 무어는 그것을 거부한다. 물론 화이트헤드가 이러한 브래들리의 유기체적인 사물관을 받아들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브래들리의 관념론 전체를 수용한 것은 아니다.

브래들리는 영국 경험론은 우리의 사유가 지나치게 심리학적인 관념을 갖는다고 비판하고 그것을 불식하기 위해서는 논리학의 영역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러셀과 무어는 브래들리의 관념론을 비판하면서도, 브래들리가 경험론을 비판하여 논리학의 영역을 확립한 것을 그들이 받아들여 그들의 분석의 토대로 삼는다. 무어와 러셀과 마찬가지로, 화이트헤드도 그의 형이상학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 브래들리가 주장한 논리학의 영역을 도입한다.

화이트헤드가 그의 뛰어난 제자 러셀과 3권으로 저술된 ‘프린키피아 마테마티카’(Principan Mathematica 1910-1913)에서 기호로 표현된 일련의 논증을 통하여 수학의 의미를 확장한다. ‘프린키피아 마테마티카’에서 그들이 당면한 문제는 두 가지 종류의 문제, 즉 수학과 철학이었다. “화이트헤드가 나[러셀]에게는 철학의 문제를 넘겨주었다. 수학의 문제들에 관해서는 화이트헤드가, 기호법에 관한 한 페아노로부터 이어 받았던 것을 제외하고서, 기호법 대부분을 창안하였다.”6) 러셀이 ‘수학의 원리’(Principles of Mathematics)에서 스스로 밝히듯이, “모든 주요 특징에 있어서, 철학의 근본 문제에 관한 나의 입장은 G. E. 무어로부터 유래한다”7)고 한다.

그러나 무어의 철학이 러셀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그러나 러셀을 통해 화이트헤드 철학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화이트헤드 저술 어느 곳에서도 무어가 거론된 적이 없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의 저술 속에서 무어의 메아리를 들을 수도 없다. 그러나 러셀은 무어를 통하여 상식, 플라톤주의와 외연이론을 확립한다고 할 수 있다. 화이트헤드는 “Memoir on the Algebra of Symbolic Lo-gic”에서 공간, 시간, 물질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뉴턴 이론을 재 서술하고 대안적인 이론을 제시하기 위하여 기호법을 도입하고 나중에 러셀과 공저한 ‘프린키피아 마테마티카’에서도 사용한다.

한편 무어는 그의 초기 저술에서 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브래들리의 관념론으로부터 점차 상식적 실재론으로 선회한다. 관념론은 일상적으로 우리가 믿고있는 것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질이 존재한다든지 정신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참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러한 것은 상식적 믿음으로 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무어는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감각 소재(sense data)이며, 우리가 물리적 대상에 관한 지식을 갖는 것을 전제하고서 이 감각 소재를 논한다. “현재 하나의 살아 있는 신체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신체이다.”8) 이때 나에게 나타나는 감각 소재는 대상의 일부분이다. “그것은 이러한 감각 소재가 주어진다는 의미로 나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은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직 러셀 씨가 사용하는 의미에서의 기술(description)에 의해서 내게 인식될 뿐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그것을 인식하게 해주는 기술이란 이 감각 소재와 어떤 특정한 관계를 갖고 있는 기술이다.”9) ‘이것은 손이다’라고 말할 때, 이것으로 지시된 감각 소재가 내게 나타나고, 그 감각 소재와 알 수 없는 어떤 관계가 존재하며, 그러한 것이 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무어는 자신이 손을 드려다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감각하고 있을 때를 분석하여 감각 소재라고 명명한다.

그러나 러셀은 감각 소재는 감각 속에 직접적으로 존재하고 그것으로써 상식의 세계와 과학의 세계 모두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러셀이 감각 소재를 세계를 구축하려는 재료로 이용한 반면, 무어는 지각자와 감각 소재와 물리적 대상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고자 한다. “그것은 마치 두 사람이 벽돌 더미를 접하고서 마침내 무어주의자인 한 사람은 벽돌마다 조심스럽게 그리고 주의를 기우려 그것을 뒤집어 보고 만져 보면서 그 하나 하나를 조심스럽게 검토한다. 러셀주의자인 다른 한 사람은 한동안 벽돌을 고르다가 그것이 찰흙이나 진흙 또는 그 혼합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그의 나머지 시간을 그것을 가지고 속이 빈,그러면서도 재미있게 형태가 만들어진 구조물을 만드는데 소비한다. 그의 기본적 관심은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에 있기 때문이다”10).

2)경험과 실재
앞에서 보았듯이, 무어는 우리가 외부 세계에 관한 지식을 갖고자 한다면, 우리는 감각을 통하여 그 세계를 지각할 수 있다고 한다. 즉 감각을 통해 그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감각을 떠나서는 어떤 대상도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어의 이러한 근거는 전통적인 영국 경험론에서 유래한다. 로크가 말하듯이, 우리 마음속의 모든 관념은 외부 세계로부터 받아들인 감각이나 내적 반성으로부터 온다. 흄에 있어서도 관념은 인상의 복사물로서 그것보다 덜 생생할 뿐이지 그것보다 더 이전으로 소급될 수 없다.

경험론자들은 우리 정신에 나타나는 사물의 성질은 감각이 그 바탕이 된다고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사물 자체의 실재적인 성질을 지각하지 못하게 된다고 화이트헤드는 비판한다. 경험론자들은 “실재를 두 체계, 즉 실재적인 것과 그것과는 다른 감각적인 것으로 자연을 이분화 시킨다.”11) 경험론자들, 특히 로크의 경험과 자연 사이에는 대립이 있다. 화이트헤드는 이와 같이 경험과 자연을 분리하는 것을 자연을 이분화하는 오류라 하고 이러한 극단적인 경험론을 비판한다.12) 그리고 17세기의 뉴턴 물리학에서 유래하는 자연은 근세 자연철학 배후에서 유물론적 기계론을 형성하여 과학적 유물론(scientific materialism)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뉴턴의 “우주론은 공간 전체에 물질 배열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면서 퍼져 있는 환원할 수 없는 맹목적인 물질, 또는 물질적인 것을 궁극적인 사실로 전제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물질 그 자체는 아무런 감각도, 가치도, 목적도 지니지 않는다.”13) 과학적 유물론은 단지 “근세 자연철학 전체의 바닥에 깔려 있는 하나의 그러한 가정”14)일 뿐이다. 이러한 가정에 대해서 화이트헤드는 인식론적 측면과 논리적인 측면에서 비판한다.

먼저 화이트헤드가 뉴턴의 물리학에서 제기된 시간, 공간, 물질과 물질의 입자에 관해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가한 그의 비판을 살펴보자. 그에 따르면 물질적 존재들은 시간ㆍ공간 내에 단순정위(simple location)하는 속성이 있다. 단순정위한다는 것은 공간의 일정한 영역 속에, 시간의 일정한 지속을 통하여 그 물질조각은 존재하는 곳에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단순정위가 물질의 시간ㆍ공간 개념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은 시간ㆍ공간 내에서 일정한 위치의 의미를 규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물질이 단순정위 한다는 가정은 2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시간과 관련시켜 볼 때, 만일 물질이 일정 기간 동안 존재한다면 그 기간의 어떤 부분에도 꼭 같이 존재한다. 이때 시간은 분할되지만, 그러나 물질은 분할되지 않는다. 물질은 일정한 체적을 갖고 있다. 둘째, 공간과 관련시켜 볼때 체적(volume)의 분할은 곧 물질의 분할을 의미한다.”15) 물질이 그 체적의 전체를 구성한다면, 그 체적을 반분(半分)할 때 그 물질 또한 꼭 같이 반분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공간의 분할이 곧 물질의 분할을 의미하게 된다.

이러한 가정은 시간의 분할과 공간의 분할은 물질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것과 그리고 시간의 분할은 물질의 분할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질의 분할은 시간의 분할과 무관하다. 시간이 분할된 순간에 있어서도 물질은 자기 동일성을 유지한다. 고전 물리학은 모든 물질이 시간적으로는 지금, 공간적으로는 이곳에 존재한다고 상정한다. 화이트헤드는 시간이란 분할되지 않는 순간의 연속이며, 그리고 시간ㆍ공간의 연속체는 추상물 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구체적인 실재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와 같이 물질을 궁극적 실재로 간주하는 과학적 유물론은 구체적 실재를 평면화 하는 ‘사물의 지적 공간화에 의한 자연의 왜곡’일 뿐이다. 이러한 오류는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인 것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사례로서 ‘잘못 놓여진 구체성의 오류’(Fallacy of Miisplaced Concreteness)라고 비판을 가한다.

화이트헤드가 비판하고 있는 ‘단순정위’의 가정은 귀납법에도 난점을 부과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시간의 경과는 물질의 본질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이 단순정위 하는 것은 시간과는 아무런 내적 관련이 없게 된다. 즉 일정한 기간의 자연은 그것과 다른 기간의 자연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든 미래든 간에 현재와 내적으로 관련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자연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은 정당화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귀납법이란 자연에 내재하는 것을 관찰하는 데 기초를 두고 있지 않는 것이 된다”16).

3)사건
이상과 같이 고전 물리학에 근거를 두고 있는 뉴턴의 자연관은 단순정위의 오류, 나아가 잘못 놓여진 구체성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화이트헤드가 비판한 것은 이미 본 바다. 그가 기계적 물질적 실체를 궁극적 사실로 보는 것은 오류이므로 단순정위된 물질의 입자 개념을 폐기한다면 도대체 근본 실체는 무엇인가? 화이트헤드는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사건(event)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사건은 실재적인 사물의 단위이다.”17) 사건의 의미는 그것의 본질적 단일성, 즉 “여러 부분의 성질이나 부분들의 단순한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자로서 완전한, 분할할 수 없는 전체적인 생성”18)이다. 사건은 일어남(occurrence)으로서 ‘현실적 존재자’ 또는 ‘현실적 경우’를 의미한다.

사건은 공간적인 넓이와 시간적인 길이를 갖는다. 시ㆍ공을 통해 지속하는 사건은 연장태이다. 지속하는 “사건은 그것의 동시성을 갖는다. 이것은 ‘사건’이 그 속에 직접적인 성취의 표현으로서 여러 동시성의 양상들을 자체 속에 반영함을 의미한다.”19) 또한 사건은 과거를 갖는다. 그것은 그 선행자의 양상을 기억함으로써 그 사건 자체의 내용으로 융화한다. 사건은 또한 미래를 갖는다. 이 의미는 사건이란 미래가 현재에 되던져 주는 면들, 즉 현재가 미래에 관해 결정할 면들을 자체 속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건은 선취(anticipation)한다.”20)사건은 여러 양상들을 단일화한다. 사건의 이러한 단일화는 이미 다른 사건들로부터 파악된 단일성이며, 그렇기 때문에 파악태이다.

화이트헤드는 ‘사건’의 개념을 도입하여 근대 과학이 전제하고 있는 과학적 유물론을 극복하고자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는 자연을 유기체로 파악한다. 그의 유기체의 철학은 서로 결합된 조직 속에서 배열된 사건들이 실현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그의 철학에서 기본 존재인 사건 - 또는 현실적 존재자 - 은 시간적 존재이고, 지속하는 시ㆍ공 연장태이다. 그러므로 그의 철학은 “생성(becoming), 있음(being)과 현실적 존재자 [사건]21)들의 상호 관련성과 관계되고, 살아있는(living) 것이 죽은(dead) 것에 충당되는 것과 전적으로 관련된다”22).

3.존재문제
1)화이트헤드의 현실적 존재자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 “사변철학은 우리 경험의 모든 요소를 해석할 수 있는 일반관념들의 제합적이고 논리적이며 필연적인 체계를 구성하기 위한 노력이다.”23) 그리고 “형이상학은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의 분석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일반관념을 발견하고자 하는 학문”24)이다. ‘일어남’은 ‘사건’이나 ‘사실’을 의미한다 그것들은 특정한 ‘사건’이나 ‘사실’이 아니라 ‘일반적’인 특징을 지닌 사건이고 사실이다. 화이트헤드는 존재의 가장 완전한 의미에서 존재하는 사건, 사실 또는 사물을 나타내기 위해서 현실적 존재자의 개념을 사용한다.

“「성찰」(I)에서 데카르트는, 내 [화이트헤드]25)가 ‘현실적’(actual)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과 같은 의미로 res vera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것은 존재라는 용어의 가장 완전한 의미에서의 ‘존재’, 즉 그것을 넘어서는 어떤 존재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26) 현실적 존재자는 다른 모든 존재의 존재 근거이며, 그것을 넘어서서 보다 더 실재적인 것을 찾으려고 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에, 화이트헤드의 철학적 궁극 문제는 현실적 존재자의 본질을 해명하는 것이다.

화이트헤드의 현실적 존재자의 본질은 과정(process)이다. “‘存在’는 (어떤 의미에서든지) ‘과정’에서 추상될 수 없고, 과정과 존재의 개념은 서로가 서로를 전제한다.”27) 현실적 존재자의 특성은 과정이며 그것은 과정 속에서 존재하게 된다. “‘현실적 존재자’의 ‘있음’은 그것의 ‘생성’(becoming)이다.”28) 그리고 “현실적 존재자가 어떻게 생성되는가라는 것이 그 현실적 존재자가 어떤 것인가를 결정한다.”29) 화이트헤드에 있어서 생성은 존재하게 됨이다. 이 생성은 현실적 존재자의 생성이다. 그러므로 과정은 현실적 존재자의 ‘생성의 과정’(process of becoming)이다. 이와 같은 생성의 과정은 단순히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변화를 일으키는 기능을 의미한다. 이 기능은 현실적 존재자의 기능이며, 그것은 작용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현실적 존재자는 존재를 구성하는 작용이며 기능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존재를 구성하는 생성의 과정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현실적 존재자는 하나의 전체로서 생성되며 생성의 전체로서 존재한다. 하나의 전체로서 현실적 존재자는 존재하는 그대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기 동일적이고 단일적이고 자족적이며 그리고 불변적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현실적 존재자의 생성 과정이 완성되는 즉시, 그것은 소멸한다. 현실적 존재자는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반복한다. 현실적 존재자의 이와 같은 생성과 소멸의 반복이 바로 변화이다. 과정은 “두 종류의 과정, 즉 거시적 과정과 미시적 과정이 있다. 거시적 과정은 완성된 현실태로부터 완성되는 현실태에로의 변이(transition)이고, 반면에 미시적 과정은 단지 실재적일 뿐인 상태들이 확정적 현실태에로 전환함이다.”30) 거시적 과정은 하나의 생성작용이 다른 생성작용으로 이어지는 과정, 즉 변화이다. 미시적 과정은 하나의 생성 자체를 의미하는 형이상적 특성이다.

현실적 존재는 생성의 작용이고, 이러한 생성의 작용으로서 존재하며 각각의 작용은 개별적인 현실적 존재자로 생성된다. 각각의 개별적인 현실적 존재자는 모든 현실적 존재자에 공통적 활동의 과정으로 생성된다. 그러므로 각각의 현실적 존재는 궁극적인 일반적 활동의 개별화이다. 이와 같은 일반적 생성작용이 화이트헤드에 있어서 창조성(creativity)이다. 즉 현실적 존재자가 바로 그 현실적 존재자로 되는 작용 그 자체가 창조성이다. 이 작용함 자체가 궁극자이다. 창조성으로서의 궁극자는 창조적 활동의 보편적 과정이고, 개별적인 현실적 존재자들 속에서 개별화되는 활동이다. 화이트헤드의 창조성은 그 자체 피조물을 창조하는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개별적 피조물들 속에서 스스로를 개별화한다는 의미에서 현실적 존재자들은 보편적 창조성의 피조물들이다. 그러므로 세계는 어떤 초월적 창조자의 도움 없이 확보된다. 세계는 그 궁극적 특성에 의하여 창조성 또는 창조적 활동으로 존재한다.

2)여건과 형상
그런데 창조적 활동, 다시 말하면 창조적 과정은 영속적으로 반복된다. “보편적 창조성의 과정에는 리듬이 있다.”31) 생성 과정에는 완성된 현실적 존재자로부터 완성되는 현실적 존재로 이행하는 리듬이 있다. 이와 같은 리듬은 “과거의 힘에 순응하는 현재의 시작”32)이다. 이러한 시작은 무로부터 시작일 수는 없다. 그것은 여건을 가져야 한다. 앞선 현실적 존재자들은 생성 과정에의 새로운 현실적 존재자의 여건이 되고 그 구성요소가 된다. 그러므로 현실적 존재자는 특정형상 또는 특성을 지닌 개별적 작용 또는 존재자이다. 작용은 확정적인 형상과 특성을 갖는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실체가 형상을 가진 존재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작용이 확정적인 작용이 되기 위해서 형상을 지녀야 한다. 이러한 확정성의 형상 없이 어떤 개별적 작용도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어떤 현실적 존재자도 존재할 수 없다.

확정성의 형상은 현실적 존재자의 구성 요소로서 존재한다. 그것은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 자체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현실적 존재자의 확정성의 형상으로서 존재한다. 화이트헤드는 “이와 같은 확정성의 형상들을 플라톤의 형상, 플라톤의 이데아 또는 중세적인 보편자”33)라고 하면서 그것을 영원한 대상(Eternal Object)라고 부른다. 영원한 대상도 존재자들이다. 영원한 대상들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인 것은 현실적 존재자 뿐이다. 영원한 대상은 현실적 존재자의 구성요소로서 존재하는 존재자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생성 과정에 있는 현실적 존재자들에게 대상적으로 주어져 있고, 그 본질상 영원하기 때문에 영원한 대상이라 불린다.

3)무어와 개념
화이트헤드가 그의 영원한 대상을 플라톤의 형상 또는 이데아라고 함으로써 그의 영원한 대상과 플라톤의 이데아가 유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상으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무어의 ‘개념’(concept)의 의미가 플라톤의 그것과 유사할 것이다. 무어에게 있어서 세계는 인식대상인 개념들로 구성되어 있다. ‘붉다’, ’꽃’, ‘이것’, ‘지금’과 같은 개념은 영원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 개념들이 특정방식으로 결합될 때 구체적인 개념, 즉 구체적인 사물이 된다. 예컨대 ‘장미’라는 개념은 개념 전체를 형성하는 개념들과 ‘이것’, ‘지금’과 ‘붉다’라는 개념과의 특정 연관을 주장한다. 무어는 이와 같은 개념들의 결합 또는 종합을 명제라 한다. 그러므로 명제의 진위는 개념들 사이의 관계에 의존한다. 명제를 구성하는 개념들의 특정 결합이 명제이고, 그것의 진위는 세계 내의 존재나 실재와 관계에 의존하게 된다. ‘붉다’는 개념은 붉은 존재와 세계 내에서 관계되어야 참이다. 그렇다면 센타우르(반인반마)는 세계 내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거짓이다. 무어에게는 세계가 개념들로 구성되어 있고, 명제 속에서 개념들이 특정 방식으로 결합되어 세계 내의 존재와도 특정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무어의 진위 문제는 명제가 실재와 일치하기 때문에 참이라고 주장되어 온 진리대응설에 의거하지 않게 된다. 무어는 있음(being)과 존재(existance)를 구별하여, 우리가 언급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있는 것(being)이고 명제 속에서 세계 내의 존재와 결합되어 있는 개념은 존재(existance)한다. 그에 따르면 사이렌이나 호랑이는 있음에 속한다. 그리고 사이렌은 존재하지 않고 호랑이는 명제 속에서 존재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우리가 그 존재를 인식하는 방식은 직관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무어가 존재는 존재의 개념과 독특한 관계에 있는 개념 또는 개념들의 결합물이라고 함으로써 플라톤의 형상이론과 유사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플라톤주의자로 간주된다. 그러나 존재를 존재의 개념과 관계로 설명하고자 한 무어의 견해는, 개념을 사물로부터 추상된 것, 즉 자연으로부터 추상된 것이라는 경험론의 견해와는 배치된다.

4)러셀과 기술
무어가 제기한 것은 ‘우리의 명제 속에서 개념들이 세계와 관련되어야 하고,그렇지 않으면 그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세계 내의 존재와 관련되지 않고 어떤 용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무 것도 지칭하지 않고 언급하지 않는 명제도 유의미할 수 있는가? 있다면, 무엇에 관한 것, 존재하지는 않지만 존재한다는 것을 시인해야 하는가?

그런데 존재하지 않지만 사유의 대상으로서 유를 갖는 존재, 임의적인 지시체로서의 존재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우리가 직면한 비실재(unreality)의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이 문제를 다룬 대다수의 논리학자들은 문법으로 오도된 잘못된 노선으로 그것을 취급했다.”34) 러셀은 주장 된 사실과 그것을 주장하기 위해 쓰인 말을 구별한다.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것을 단순히 지적하기 위해서 이름이 직접적으로 사용될 때 그것은 주장된 사실의 일부가 아니거나 또는 우리의 지적이 거짓이라면 그것은 거짓의 일부가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우리의 사고를 표현하는 기호의 일부일 뿐이다.”35) 이름이 이름으로서 사용될 때 이름은 개체를 지시한다. 그러나 이름이 그 자체로 논의될 때 그것은 낱말을 지시하지 개체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스코트는 웨이벌리의 저자이다’라는 명제에서 ‘스코트’는 이름이고 ‘웨이벌리의 저자’는 기술이다. 그러므로 이름과 기술이 동일한 사람에게 적용된다. 동일률에 의거하여 X=X가 참일때, 스코트가 이름이라면 스코트=스코트는 참이지만 ‘웨이벌리의 저자=웨이벌리의 저자’는 참이 아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프랑스 왕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현재의 프랑스 왕=현재의 프랑스 왕이라는 것은 둥근 사각=둥근 사각처럼 거짓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코트는 웨이벌리의 저자이다’는 명제는 다른 웨이벌리란 소설이 전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고 또한 여러 사람이 웨이벌리를 썼을 수도 있기 때문에 문학사 상의 우연한 사실을 나타낸다. 그러나 ‘스코트는 웨이벌리의 저자이다’는 명제는 ‘웨이벌리의 저자’가 존재하는 오직 한 사람 뿐이다. 그럼으로써 웨이벌리가 현실적으로 씌어졌고 한 사람만이 그것을 썼으며, 그 사람은 스코트랜드 사람이라는 것이다.

"(1)가 'X가 웨이벌리를 썼다'는 것은 언제나 거짓이 아니다; (2) 'X와 Y가 웨이벌리를 썼다면, X와 Y가 같다'는 것은 언제나 참이다; (3) 'X 가 웨이벌리를 썼다면, X는 스코트랜드인이다'는 언제나 참이다. 이 세 명제를 일상언어로 바꾸어 진술하면 다음과 같다. (1) 적어도 한 사람이 웨이벌리를 썼다. (2) 많아도 한 사람이 웨이벌리를 썼다. (3) 웨이벌리를 쓴 사람이 누구이든 그는 스코트랜드 사람이었다."36 이 세 명제 모두가 '웨이벌리의 저자는 스코트랜드 사람이다'는 것을 함의하며, 세 명제 모두 동치이다. (1)과 (2)를 단순화하면, " 'X가 웨이벌리를 썼다'는 'X가 C일 때는 참이고 X가 C가 아닐 때는 거짓인 항 C가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① 'X가 웨이벌리를 썼다'는 언제나 'X는 C이다'와 동치인 항 C가 존재한다. (두 명제 모두가 참이거나 두 명제 모두 거짓일 때 두 명제는 동치이다.)"37 그리고 ② C는 스코트랜드 사람이다. 이것을 단순화하면 " ① φx는 언제나 'X는 C'이다와 동치이고, ②  는 참이다가 되는 항 C가 존재한다. 이것이 기술구가 나타나는 명제의 정의이다"38.

러셀은 기술의 일차적 출현과 이차적 출현을 구별한다. ① 현재의 프랑스 왕은 대머리라는 것은 거짓이다와 ② 현재의 프랑스 왕은 대머리가 아니다라는 명제에서 ①은 기술구가 이차적으로 나타나며 이 명제는 참이다. 그러나 ②의 명제는 거짓으로 기술구는 일차적으로 나타난다. ①은 명제 전체를 부정하지만 ②의 부정은 대머리에 한정된다. 현재의 프랑스 왕이 존재한다는 것은 거짓을 말한다. 그러므로 “아무 것도 기술하지 않은 기술구가 일차적으로 나타나는 모든 명제는 거짓이다”36).

4.맺는 말
지금까지 논자는 화이트헤드에 있어서 궁극적인 존재들인 현실적 존재자와 영원한 대상을, 무어의 존재 문제를 개념과 명제를 통해서 그리고 러셀의 존재문제를 그의 기술이론을 통해서 파악하고자 했다. 이들의 존재 문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하여 19세기 후반 영국의 철학적 배경을 통하여 유기체의 철학을 정초한 화이트헤드, 상식적 실재론을 주창한 무어와 원자론자들 가운데 러셀을 구명하였다.

영국의 대표적인 관념론자인 브래들리는 세계를 하나의 통합된 유기체로서 파악하고, 비록 사물들이 외적으로는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유기적으로 관계되어 있다고 하였다. 화이트헤드는 브래들리의 유기체적인 세계상을 받아들이지만 그러나 무어와 러셀은 그것을 비판한다. 그렇지만 무어와 러셀은 한편으로는 영국의 경험론에 내포된 심리학적 요소를 불식하기 위해 논리학의 영역을 도입해야 한다는 브래들리의 주장을 수용하여 그들의 분석의 토대로 삼았다.

화이트헤드는 존재라는 용어의 가장 완전한 의미에서 존재, 다른 모든 존재의 존재 근거인 현실적 존재자의 본질을 해명하고자 하였고, 그것이 그의 철학적 궁극 문제였다. 화이트헤드의 현실적 존재자의 본질은 과정이며 현실적 존재자는 과정 속에서 존재하게 된다. 그것은 존재를 구성하는 작용이며 기능이다. 이러한 생성 작용이 창조성이다. 현실적 존재자는 특정 형상을 지닌 개별적 작용, 또는 존재자이다. 이 작용은 확정적인 형상을 갖는다. 확정성의 형상은 현실적 존재자의 구성요소, 즉 현실적 존재자의 확정성의 형상으로 존재하며, 이것은 영원한 대상, 플라톤의 이데아, 또는 중세의 보편자로 불린다.

화이트헤드의 영원한 대상이 플라톤의 이데아와 유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플라톤의 이데아가 무어의 개념과 유사하다. 무어에게 있어서 세계는 인식대상인 개념들로 구성되어 있고,그 개념들은 영원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 개념들이 특정 방식으로 결합될 때 구체적인 사물이 된다. 무어는 ‘있음’과 ‘존재’를 구별하여, 언급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있음에 속하고 명제 속에서 세계 내의 존재와 결합되어 있는 개념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무 것도 지칭하지 않고 언급하지 않는 명제는 유의미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러셀에게 대두된다. 그에게 있어서 이름이 이름으로 쓰일 때 그 이름은 개체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낱말을 지시하는 것이다. ① ‘현재 프랑스의 왕은 대머리이다’는 명제에서 ‘X가 프랑스를 통치하고 있다는 것은 언제나 거짓이 아니다. ② ‘X가 Y가 프랑스를 통치하고 있다면 X =Y이다.’ ③ ‘프랑스를 통치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이든 간에 대머리이다.’ 이때 표면상의 이름인 ‘프랑스의 현재의 왕’이 제거되고, ‘프랑스의 현재의 왕’이 프랑스를 통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①은 거짓이고 거짓의 연언은 거짓인 명제이다. 그런데 (가) ‘현재 프랑스의 왕은 대머리라는 것은 거짓이다’와 (나) ‘현재 프랑스의 왕은 대머리가 아니다’에서(가)는 명제 전체룰 부정하지만 (나)는 대머리에 한정된다. 따라서 아무것도 기술하지 않는 기술구가 일차적으로 나타나는 명제는 거짓인 명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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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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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clerc Ivor. "Process and Order in Nature", Whitehead's Philosophy between Rationalism and Empiricism. Institute of Philosophy, Leuven,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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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주
1) A. N. Whitehead, The Concept of Nature, Cambridge Univesity Press, Cambridge, 1971, p. 5(이하 C.N.이라 함).
2) A N. Whitehead, Science and the Modern World, Macmillan Publishing Co., N. Y.,1967, p. 144(이하 S.M.W.라 함).
3) A. N.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Ed. by D.R Griffin and D.W. Sherburne,The Free Press, N. Y., 1978, p. 52(이하 P.R이라 함).
4) A. N. Whitehead, Adventure of Ideas, The Macmillan Company, N. Y., 1967, p. 158
(이하 A.D.라 함).
5) P.R., p. 22.
6) Bertrand Russell, MyPhi;osophical .Development, George Allen & Unwin, Ltd., London, 1959. p. 74.
7) Bertrand Russell, The Principles of Mathematics, George Allen & Unwin, Ltd., London, 1979, p.x ⅷ.
8) G. E. Moore, “A Defence of Common Sense”, Philosophical Papers, George Allen &
Unwin Ltd., London 1959, p. 33.
9) G. E. Moore, “Some Judgements of Perception”, Philosophical Studies, Routledge & Kegan Paul, Ltd., London, 1965, p. 234.
10) B. R. Gross, Analytic Philosophy, Pegasus, N. Y., 1970, p. 96.
11) A. N. Whitehead, S.M.W., p. 30.
12) A. N. Whitehead, C.N., pp. 26-30 참조
13) A. N. Whitehead,S.M.W., p. 17.
14) 앞의 책, p. 48.
15) 앞의 책, 앞의 쪽.
16) A. N. Whitehead, An Enquiry Concerning Principles of Natural Knowledge(이하 E.P.N.K라 함), Dover Publications, Inc., N, Y., 1982, p. 2.
17) N. Lawrence, Whitehead’s .Philosophical Development, Greenwood Press, N. Y., 1968, p. 262.
18) Ivor Leclerc, “Process and Order in Nature”, Whitehead’s .Philosophy between Rationalism and Empiricism, Institute of Philosophy, Leuven, 1984, p. 27.
19) A. N. Whitehead, S. M. W., pp. 72-73.
20) 앞의 책, 앞의 쪽.
21) [사건]은 논자의 표기임.
22) P.R., P. vii.
23) 앞의 책, p. 40.
24) A. N. Whitehead, Religion in the Making, World Publishing, 1973, N.Y., p .82(이하 R.M. 이라 함)
25) (화이트헤드)는 논자의 표기임.
26) P.R.,, p. 91.
27) A N. Whitehead, Modes of Thought, Macmillan Publishing Co., Inc., N.Y. 1968 p.96
(이하 M. T.라 함)
28) P.R., p. 23.
29) 앞의 책, 앞의 쪽.
30) 앞의 책, p. 214.
31) M. T., p. 88.
32) P. R., p. 210.
33) A. N. Whitehead, The Function of Reason, Beacon Press, Boston, 1958, p.32(이하 F.R이라 함)
34) Bertrand Russell, Introduction to Mathematical Philosophy, George Allen & Unwin
Ltd., London, 1975, p. 168.
35) 앞의 책, p. 175.
36) 앞의 책, p.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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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사항

정연홍
충남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