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사유..!/실체와 과정.

[펌] 화이트헤드 철학에서의 신관

온울에 2008. 5. 6. 03:37

목 차




1 . 창조성
2. 영원한 대상
3.신

--------------------------------------------------------------------------------
발행자명 충남대학교 대학원 
학술지명 論文集 
ISSN  
권 20 
호  
출판일 2002. . .  

 

 

 

화이트헤드 철학에서의 신관


정윤승
5-624-0201-02

--------------------------------------------------------------------------------


화이트헤드(A.N. Whitehead 1861-1947)의 저서들은 서양 사상 중에서도 가장 이해하기 힘든 저술 중의 하나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그 체계가 매우 심오하다. 이것은 그의 사상이 근본적으로 고전적인 서양철학사상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를 기초로 하면서도 동시에 현대의 과학지식의 도움을 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대의 경험과학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서양철학사상을 비판한다. 특별히 그가 지적하는 고전 사상의 오류는 '잘못 놓여진 구체성의 오류'이다. 그는 우리가 실재하는 것으로서 인식하고 있는 대상들의 대부분이 지성의 단순 추상화에 의해 실재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진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고전적인 형상-질료, 실체-속성, 주어-술어라는 도식 역시 이러한 것에 속한다. 하나의 존재자가 하나의 본질로서 설명되어 질 수 있으며, 이 본질이 고정되고 불변하는 본성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현대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받아들여질 수 없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불변하는 본성의 기원을 완전한 순수 가능태로서의 혹은 궁극적 실재 혹은 궁극자로서의 신에 두는 것 역시 불합리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궁극자라는 개념을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다만 앞으로 현실화될 수 있는 가능태' 즉 잠재태로서, 생성되고 소멸하는 모든 존재자들의 내재적인 힘이라고 이해해야 한다면, 그 잠재태들이 현실세계 속에서 현실화되도록 도와주는 매개개념이 반드시 상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신은 궁극자이기보다 궁극자를 매개하여 현실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와 같은 추이에서 고전 형이상학에서 표현하는 궁극적 실재로서의 신은 여러 방식으로 차별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즉 존재에 앞서 과정을 중시하는 유기체의 철학에서는 이러한 궁극자를 창조성으로 상정하며, 현실적 존재자의 한정형식으로서 영원한 대상을 상정하는데 이는 고전 형이상학에서의 개별자와 유사하다.

현실적 존재자(actual entity)의 구체화 작용에서 현실화되는 가능태는 기본적으로 과거의 현실적 존재자들과 영원한 대상들(eternal object)이다. 순수 가능태로서의 영원한 대상은 이러한 구체화 작용에 개입하면서 구현되는 한정의 형식, 이상적인 형상 등으로 기술된다. 한정의 형식이라는 말은 이러한 구체화에서 현실적 존재자가 영원한 대상에 의해 한정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러한 경우 영원한 대상은 현실적 존재자의 규정자인 셈이다.

그러므로 논자는 이 글에서 위와 같은 배경으로 과연 신의 역할이란 어떤 것이며, 이것을 창조성과 영원한 대상의 매개라고 정의할 수 있는지에 대해 화이트헤드의 존재론적 원리에 따라 그 정합성 및 일관성을 살필 것이다. 또한 창조성과 영원한 대상 그리고 신이 동일한 차원에 있으면서도 각기 차별화시키고 있는 화이트헤드의 논리 전개방식을 이해하고자 할 것이다.


모든 철학 이론은 그것의 형이상학적 기초를 위해 궁극자(the ultimate)를 상정한다. 일자로서의 궁극자는 그 자신의 우연성에 의해서 다자로서의 현실태가 된다. 즉 우연적인 구체화를 통해 궁극자는 자신의 특성을 드러낼 수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연성을 떠난 궁극자는 더 이상 현실성을 가지지 않는다. 유기체의 철학에서는 이러한 궁극자로서 '창조성(Creativity)'을 상정하며, 신은 창조성의 원초적·비시간적 우연성으로서 분류된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전통적인 관념론 철학에서의 궁극자란 절대자라고도 일컬어지는 신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통서양철학에서 신이란 우연성을 뛰어넘는 궁극의 완전한 실재라고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 이러한 관점은 궁극자를 신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낳게 하는 원인으로 받아들여진다. 오히려 궁극자는 과정의 궁극자와 사실의 궁극자로서 구분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1)

신 역시 현실적 존재자에 불과하며 그런 이유에서 아득히 먼 텅빈 공간 속에서 가장 하찮은(평범한) 것이다. 즉 중요성에 따라서 구분할 수 있고 그 기능 역시 다양하다고 할지라도 현실태는 동일한 레벨에 있어야만 한다는 존재론적 원리를 따라야 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오로지 한가지 종류의 현실적 존재자만이 존재한다는 전제는 유기체의 철학이 따르는 우주론적 이상에 속한다. 물론 화이트헤드의 신에 대한 설명이 이 이상을 어떻게 정확히 따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그의 철학에서 "신은 형이상학적 원리들 중에서 예외로 취급되지 않으며 신은 그 형이상학적 원리들의 붕괴를 막으려 하지 않으며 그 원리들의 최고 예시라고 그가 생각한다는 것은 분명하다."2)

신의 구조는 세계 구조의 거울상이다. 그러나 세계는 미완의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의 본성상 자신을 완결짓기 위한 모든 사물들의 기초로서 하나의 존재자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 존재자가 세계를 완결짓는 존재자로서의 신이다. 모든 현실적 존재자들을 지배하는 원리들이 신의 역방향으로 예시되는 몇 가지의 사례들 속에 있다는 결과를 볼 때 신은 왼손이 오른손의 보충물인 것처럼 세계를 보충하여 완전하게 만든다.


서양철학의 역사를 통해 "형이상학"은 여타의 사상적 위협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그 위상을 세워왔다. 자연철학자들로부터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플로티노스에 이르는 고대에도, 보에씨우스로부터 아우구스티노, 토마스 아퀴나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에 이르는 중세에도, 비록 근대 사상의 흐름 속에서 합리주의와 계몽주의의 저항을 받으면서도 형이상학은 굴하지 않았다.

현대의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도 이러한 형이상학에의 요청은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처럼, 형이상학은 한편으로는 '있는 것을 있는 것으로' 다루는 '존재론(ontologia)'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있는 것을 움직이게 하는(변화시키는)' 것 즉 신을 문제삼는 '신론(theologia)'이다. 화이트헤드는 이러한 서양의 형이상학 전통을 새롭게 이해하고자 했다. 그는 질료-형상이라는 서양 고전형이상학의 시스템을 재검토하여 새롭게 엮어 낸다. 그리하여 그는 존재의 과정을 재고찰 해보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존재', 즉 '있음'이라는 것은 결국 생성을 통해서만이 현실적인 존재가 됨에 관심을 갖게 된다.

고전적인 서양 형이상학의 논쟁은 존재와 본질을 동시에 지칭하는 동사('be' 동사)가 하나인 것에서 비롯된다.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 현실적 존재자는 생성을 통하여 존재하게 된다. 그리하여 화이트헤드는 하나의 직관적 확신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생성의 우위였다. 진정한 의미의 모든 존재는 완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의 과정 속에 있다. 그리하여 화이트헤드는 "현실적 존재자의 '있음'은 그 '생성'에 의해 구성된다"3)고 말한다. 다시 말해 '존재한다'는 말의 가장 구체적이고 근원적인 의미는 '생성 중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과정의 원리이다.

이러한 생성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생성을 위한 몇 가지 요소들을 지적할 수 있다. 화이트헤드는 이러한 설명을 고전적 형이상학 이론인 현실태-가능태 이론을 통하여 새로이 수정한다. 그리하여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 현실적 존재자는 그것에 주어지는 가능태를 실현시켜 가는 과정으로서의 존재자이다.

이러한 과정을 근원적·구조적으로 조건짓고 있는 실재들을 화이트헤드는 그의 저서 「종교의 형성」에서 "형성(형식)적 요소"(formative element)라 부르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들은 "시간적이고 현실적인 것을 분석할 때 드러나는 비현실적이거나 비시간적인 요소들"4)이다. 화이트헤드가 형성(형식)적 요소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창조성, 영원한 대상, 신이다.5) 여기서 창조성은 현실적 세계에 새로움으로의 시간적인 추이라는 성격으로 나타나는 무규정적인 힘이다. 영원한 대상들은 이러한 무규정성과 대비되는 한정성을 갖는다. 이들은 무규정적 힘의 규정자, 즉 한정의 형식으로 기능한다. 그래서 양자는 그 자체로서 볼 때 현실적인 것이 아닐지라도, 현실적인 모든 것에서 그것과의 관련성의 정도에 따라 실현되는 부류의 가능태이다. 그리고 신은 현실적이면서도 비시간적인 존재로서, 무규정적인 창조성과 영원한 대상들을 매개함으로써 이 창조성을 규정된 창조성으로 전환시키는 기능을 갖는다. 이것이 「종교의 형성」에 나타나 있는 화이트헤드의 견해이다.

「과정과 실재(Process & Reality)」에서도 이들이 그 기능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할지라도 그 형성적 요소들이 각기 그 위상에서 차별화되고 있다고 보는 점에서는 「종교의 형성(Religion in the Makings)」,과 유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화이트헤드는 존재란 하나의 생성을 통하여 현실적 존재자가 되는데 이러한 생성의 과정에서, 그 형상(형식)적 요소로 먼저 '창조성이라는 원리로', 그 이데아인 '영원한 대상에 따라서', 신에 의하여 '생성 내지 창조'가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창조성과 영원한 대상 그리고 신을 화이트헤드의 관점에서 다시금 재정의할 필요가 있겠다.

1 . 창조성
화이트헤드의 철학에 있어서 창조성은 일(one), 다(many)와 함께 궁극자의 범주에 속한다. 그것은 과정이라는 궁극적인 사태를 특징짓는 무규정적인 힘으로서, '보편자들의 보편자(universal)', 또는 '새로움의 원리'6)이다. 창조성이 이처럼 하나의 원리로서 이해되는 한, 그것은 그 스스로 현현하는 독자적인 개별실체일 수가 없다. 그것은 다른 존재자를 규정하는 가운데 현실화될 뿐이다. 과정철학에서 현실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자기를 실현하고 있는 자기초월적 주체(superject-subject)뿐이다. 창조성은 그것의 피조물이 현실적인 한에 있어, 그에 힘입어 파생적으로만 현실화되는 것, 그래서 그 자체로는 현실태와 대비되는 기능이다. 창조성은 존재자가 아니라 존재자의 원리이기에 존재를 한정하는 어떤 범주에 의해서도 규정될 수 없다.

2. 영원한 대상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현실적 존재자가 '무엇으로 현실화되는냐' 하는 것을 결정하는 한정의 형식을 영원한 대상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영원한 대상은 동일성, 반복가능성, 추상성을 지니는 것으로, 전통철학에서는 흔히 보편자로 일컬어지는 존재에 대응한다. 현실적 존재자의 구체화 작용에서 현실화되는 가능태는 기본적으로 과거의 현실적 존재자들과 영원한 대상들이다. 순수 가능태로서의 영원한 대상은 이러한 구체화 작용에 개입하면서 구현되는 한정의 형식, 이상적인 형상 등으로 기술된다. 한정의 형식이라는 말은 이러한 구체화에서 현실적 존재자가 영원한 대상에 의해 한정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러한 경우 영원한 대상은 현실적 존재자의 규정자인 셈이다.

그리하여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존재한다는 것은 창조성의 결과'이지만 현실적 존재자의 그 '무엇'은 기본적으로 그것이 구현하고 있는 영원한 대상들에 의해 결정된다. 즉 창조성이 존재에 관여한다면 영원한 대상은 존재자(현실적 존재자)의 본질에 관여하는 것이다. 또한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구체화 작용에 있어서 피조물들은 이상적인 형상들에 의해 규정되며, 반대로 이상적 형상들은 피조물에 의해 규정된다."7)고 한다. 화이트헤드는 이러한 이상적 형상을 영원한 대상이라는 표현으로 범주화하는 한편, 다른 여러 용어들을 사용하여 이를 지칭한다. 그 가운데 그의 체계에서 그것이 갖는 기능적 지위를 가장 잘 대변하는 것으로 보이는 용어는 순수 가능태(pure potentiality)이다.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 현실적 존재자는 가능태를 현실화하는 과정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며, 이 현실화 과정이 본래적인 의미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가능태의 순수 가능태가 영원한 대상이다.

3.신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신은 기본적으로 앞서 고찰한 두 형성(형식)적 요소인 창조성과 영원한 대상들을 매개하는 기능을 갖는다.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신 그 자체는 비합리적인 존재이다.

화이트헤드의 사상은 존재와 본질의 근본은 설명하면서 그 존재와 본질을 결합시키는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매개자로서의 신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것은 경험적 요청이다. 칸트의 도덕적 요청에 의하여 신이 존재해야 한다면, 존재에 있어서도 고전 형이상학이나 중세 신학이 논증했던 존재를 부여한 부동의 원동자를 소환해야만 한다.

화이트헤드는 신을 「과학과 현대세계(Srience and the Modern World)」에서 처음 다룬다. 그런데 「과정과 실재」에서 그가 다룬 신은 분명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과정과 실재」에서 드러나는 신은 「과학과 근대세계」에서의 신을 포함하면서도 확장시키고 있다. 왜냐하면 「과정과 실재」에서 신은 그 자신의 결과적 본성에 의해서 현실 세계와 관계맺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 자신의 원초적 본성에 의해서 '제한의 원리'이자 '구체화의 원리'로서 기능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현실적 존재자는 여건으로서, 주체로서, 초월체로서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다중적 성격은 창조성의 원초적 피조물인 신에게도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이것은 신의 원초적 본성, 결과적 본성, 초월적 본성으로 설명된다. 신 역시 하나의 현실적 존재자이기 때문에 이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다만 신은 원초적 피조물이기 때문에 과거가 있을 수 없다. 과거가 없다는 것은 신보다 먼저 창조된 것이 없다는 논리적 의미이다. 신보다 먼저 창조된 현실적 존재자가 없기 때문에, 신은 느낌에 있어 최초로 현실적 존재자(물리적 느낌; material feeling)를 느낄 수 없다. 다만 비시간성인 영원한 대상(개념적 느낌; conceptual feeling)만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신에게 있어 개념적 느낌이 물리적 느낌보다 선행한다. 물론 신 이외의 현실적 존재자 즉 현실적 계기에서는 물리적 느낌이 앞선다.8)

즉 시간적 세계의 존재자들은 여건 계기들의 물리적 파악에서 발생한다. 이것은 공간과 시간 속에 존재자들을 정착시킨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신은 시간을 초월한 영역에 속하는 영원한 대상에 대한 개념적 평가로부터 발생한다. 이것이 신의 원초적 본성이며 비시간적 현실적 존재자로서 언급되는 기초이다. 시간적 영역의 현실적 존재자들은 물리적 파악에서 개념적 파악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신은 이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 즉 신의 결과적 본성은 시간적 세계 속에 있는 현실적 존재자들을 물리적으로 파악함으로써 구축된다. 시간적 계기들과 마찬가지로 신 역시 상대적 느낌들의 위상에 의해서 완결된다. 즉 신의 결과적 본성의 물리적 느낌들이 신의 원초적 본성의 개념적 느낌들과 통합되는 그런 상대적 느낌들의 위상에 의해서 완결된다. 시간적 존재자들처럼 신에서도 이러한 통합은 자기초월적 본성 즉 다양한 시간적 사례 속에서 초월적 창조성을 한정하는(qualifying) 신의 특유한 만족의 실용적 가치의 성격을 띠는 자기초월적 본성을 산출한다.9)

하나의 범주로서 간주되는 영원한 대상들은 존재론적 원리에 의해서 현실태와의 연계를 요구하는 일종의 실존을 구축한다. "모든 것은 어딘가에 있어야 하며, 여기서 '어딘가'라는 말은 어떤 현실적 존재자를 의미한다."10) 따라서 우주의 일반적인 가능태는 어딘가에 있어야만 한다. 이 '어딘가'라는 말은 비시간적 현실적 존재자 즉 신의 원초적 마음이다. 이것이 그 체계의 내적 구조가 신을 요구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또한 그 체계 역시 대상화의 원리(혹은 상대성의 원리)와 관련을 맺는 신을 요구한다. 현실적 존재자들은 생성되어가고, 완성된 뒤에 소멸하지만 대상적으로는 '불멸하는 것'으로서 기능한다. 대상적으로 불멸하기 때문에, 현실적 존재자들은 그것들이 영원한 대상들의 영역과 비슷하다는 측면에서 현실태와의 연계를 잃어버린다. 대상적으로 불멸하는 현실적 존재자들은 신의 결과적 본성을 통해서 현실태와 연계된다. 결과적인 것으로서 간주되는 신은 현실적 존재자들의 각각의 세대를 파악하고 보존하며, 미래에 그것들의 유효성을 중재한다. 이러한 원칙 속에서 신은 그의 전통적인 구원의 힘과 판단의 힘을 보여준다. 신의 결과적 본성은 세계의 성장과 함께 성장하고 그의 결과적 본성 속에서 구원된 것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그의 평가를 통해 "신은 구원될 수 있는 어떤 것도 잃어버리지 않는다"11)는 애정의 판단을 보여준다.

결국 이 시스템은 새로움과 나아감이 가능한 방식의 형태로서 현실태와 가능태를 중재하는 존재자를 요구한다. 신은 그의 원초적 본성 속에서 무한한 가능태들의 영역을 파악한다. 그와 동시에 신은 그의 결과적 본성 속에서 세계의 현실태를 파악한다. 신의 자기초월적 본성은 그의 원초적 미래상(vision) 위에서 그의 결과적 파악들을 엮어낸 결과이다. 현실적 사실은 가능태들의 영역과 병치를 이룸으로써 관련을 맺으면서도 새로운 그런 가능태들이다. 창조적 전진 속에서 신의 목적은 그 세계에 대한 자신의 경험이 그 자신의 경험 속에서 가능한 한 최대한의 강도로 끝날 그런 부류의 세계출현을 갖는 것이다. 이것이 자기초월적으로 기능하는 신이다. 이것은 주체의 목적 즉 존재자들이 자기 합생에 있어서 질서잡히고 복잡한 세계(신에 의해 파악될 때 신을 위한 만족의 최대강도로 끝날)를 창조하는 완결을 일으키듯이 각 현실적 존재자의 유혹을 제공한다. '최초의 주체적 목적이라는 조건하에서'라는 제한된 의미에서"신은 각각의 시간적 현실적 존재자들의 창조자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12))


서양의 철학사상들은 기본적으로 형이상학적 혹은 우주론적 체계를 구축하는데 그 사상의 목표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그 형이상학적 체계의 기초로서 추상성과 현실성을 매개하는 중개자로서의 궁극자 개념을 설명해야만 했다. 이 궁극자는 대개의 경우 궁극의 완전한 실재를 의미해 왔다.

그러나 유기체의 철학에서는 그러한 형이상학적 기초인 궁극자로서 창조성이라는 개념을 상정한다. 이러한 개념상정은 그의 철학이 추구하는 형이상학적 이상을 드러내고 있다. 즉 지금까지의 철학사상이 궁극자와 신을 동일시하면서 동시에 질료-형상, 실체-속성, 주어-술어라는 도식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던 존재론적 오류를 수정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한 이유에서 더 이상 궁극자는 현실적인 존재자로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유기체의 철학에 있어서는 모든 현실적 존재자란 그것에 주어지는 가능태를 실현시켜 가는 과정으로서의 존재자이다. 이러한 과정을 근원적·구조적으로 조건짓고 있는 실재가 바로 '형성(형식)적 요소'인데 이 요소들은 "시간적이고 현실적인 것을 분석할 때 드러나는 비현실적이거나 비시간적인 요소들"13)이며, 이에 속하는 것들에는 창조성, 영원한 대상, 신이다.

궁극자로서의 창조성은 일반적인 현실적 존재자들과 같은 수준의 것이지만 그 무엇으로도 한정할 수 없는 것이며, 다만 시간적·현실적 존재자를 분석할 때에만 드러나는 비현실적 혹은 비시간적인 요소로서, 새로움으로 나아가고 있는 시간적 추이의 무규정적 힘으로서 여타의 현실적 존재자들과 차별화되는 개념이다.

영원한 대상들은 이러한 무규정성과 대비되는 한정성을 갖는다. 이들은 무규정적 힘의 규정자, 즉 한정의 형식으로 기능한다. 그래서 양자는 그 자체로서 볼 때 현실적인 것이 아닐지라도, 현실적인 모든 것에서 그것과의 관련성의 정도에 따라 실현되는 부류의 가능태이다.

신은 그러한 창조성의 원초적·비시간적 우연성으로서 분류된다. 물론 신 역시 현실적 존재자이며, 이러한 생각은 신이 형이상학적 원리들 중에서 예외로 취급되지 않고 신은 그 형이상학적 원리들의 붕괴를 막으려 하지도 않으며 그 원리들의 최고 예시라고 그가 말한 바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그리고 신은 현실적이면서도 비시간적인 존재로서, 무규정적인 창조성과 영원한 대상들을 매개함으로써 이 창조성을 규정된 창조성으로 전환시키는 기능을 갖는다

즉 화이트헤드는 존재란 하나의 생성을 통하여 현실적 존재자가 되는데 이러한 생성의 과정에서, 그 형상적 요소로 먼저 '창조성이라는 원리로', 그 이데아인 '영원한 대상에 따라서', 신에 의하여 '생성 내지 창조'가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

참고문헌
A.N, Whitehead, The Concept of Natur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20.
A.N, Whitehead, The Principle of Relativity With Applications to Physical Scienc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22.
A.N, Whitehead, Science and the Modem Worl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25.
A.N, Whitehead, Religion in the Making, New York: Macmillan, 1926.
A.N, Whitehead, Symbolism, Its Meaning and Effect, New York: Macmillan, 1927.
A.N, Whitehead, The Function of Reason,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29.
A.N,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New York: Macmillan, 1929.
A.N, Whitehead, Adventures of Ideas, New York: New American, 1933.
A.N, Whitehead, Modes of Thought, New York: Macmillan, 1938.

--------------------------------------------------------------------------------

각 주
1 A. N.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New York: Macmillan 1929, p.7 참조(이후 P.R.로 표기함).
2 P.R., p.521 참조.
3 P.R., p.23.
4 A. N. Whitehead, Religion in The Making, New York: Macmillan, 1926, p.77(이후 R.M.으로 표기함).
5 R.M., pp.77-78 참조.
6 P.R., p.21.
7 R.M., p.80.
8 P.R., p.87 참조.
9 P.R., p.135 참조.
10 P.R., p.73.
11 P.R., p.525.
12 P.R., p.343.
13 A. N. Whitehead, Religion in the Making, New York: Macmillan 1926, p.77(이후 R.M.으로 표기함).

--------------------------------------------------------------------------------

이력사항

정윤승
충남대학교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