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사유..!/실체와 과정.

[펌] 과정의 파악이론

온울에 2008. 5. 6. 03:07

목 차

1.들어가는 말
2.현실적 존재와 파악
3.파악작용
4.적극적 파악과 소극적 파악
5.물리적 파악과 개념적 파악
6.순수한 파악과 불순한 파악
7.맺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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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자명 새한철학회 
학술지명 철학논총JOURNAL OF THE NEW KOREAN PHILOSOPHICAL ASSOCIATION 
ISSN 1226-9379 
권 22 
호 1 
출판일 2000. 10. 31.  

 

 

 

화이트헤드의 파악이론


정연홍
충남대학교 교수
1-066-0003-09

국문요약
화이트헤드는 그의 철학을 ‘유기체의 철학’(Philosophy of Organism)이라 이름한다. 그의 철학 체계에서 파악(rehention) 이론은 실재를 유기화하는 근본 원리이다. 파악은 현실적 존재자(actual entity)가 스스로를 창조하는 과정으로 자신의 여건을 무의식적으로 지각하는 과정이다.

하나의 현실적 존재자가 다른 현실적 존재자를 그 여건으로 파악하는 것을 물리적 파악이라 하고, 그 여건이 영원한 대상인 것을 개념적 파악이라 한다. 지각되는 주체의 세계속에 있는 항목을 적극적으로 포함하는 것을 적극적 파악이라 하고 그것을 느낌이라 한다. 느낌으로부터 배제된 것을 소극적 파악이라 한다.

파악은 단순 물리적 느낌과 복합적인 순수 물리적 느낌으로 구분된다. 앞의 것은 하나의 현실적 존재자만을 그 여건으로 하는 느낌인 반면에, 뒤의 것은 두 개 이상의 순수한 단순 물리적 느낌의 통합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물리적 파악과 개념적 파악을 통합하는 파악이 물리적 파악이다. 또한 물리적 파악과 개념적 파악은 불순한 느낌의 여건이 된다.

느낌을 느낌이게끔 하는 방식, 즉 느낌의 방식이 주체적 형식이다. 그것은 느낌을 수식하는 특정한 정적 색조이며 파악하는 주체의 특성이다.

영문요약
Whitehead's Theory of Prehention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lucidate Whitehead's prehention implicit in his Philosophy of Organism.

The prehention in his metaphysical system is the activity constituting an actual entity and is an act of inclusion of other entities. Thus prehention is the generic act of an actual entity, of which there are two species, namely, positive prehension and negative prehention. The positive prehention is the definite inclusion of items in the universe of the percipient subject. This positive prehention is termed feeling. "The negative prehention is the definite exclusio of that item from positive contribution to the subject's own real internal constitution." A feeling is physical when the datum is and actual entity ; when the datum is an eternal object, it is conceptual.

A simple physical feeling entertained in one subject is a feeling for which the initial datum is another single actual entity. Thus in a simple physical feeling there are two actual entities concerned. One of them is the subject of that feeling, and the other is the initial datum of that feeling. But these physical feelings may be either pure or impure. "In a pure physical feeling the actual entity which is datum is objectified by one of its own physical feelings."

The impure physical prehention is hybrid. "In a hybrid physical feeling the actual entity forming the datum is objectified by one of its own conceptual feel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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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들어가는 말
A.N.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 존재자의 기본 형태는 현실적 존재자와 영원한 대상이다. 이 두 가지의 형태의 존재자를 제외한 그 밖의 존재자는 현실 세계에서 이들 두 존재자와 어떻게 서로 공동체를 이루느냐를 나타낼 뿐이다. 현실적 존재자와 영원한 대상은 존재의 범주들 가운데서 극도의 어떤 궁극성을 드러낸다.

영원한 대상은 특정한 현실적 존재자로 진입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영원한 대상의 선재 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즉 그것은 진입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진입하는 문제의 현실적 존재자에 앞서서 존재함을 요한다. 그러나 영원한 대상은 오직 특정한 현실적 존재자에 의존적 존재양식을 가질 뿐이다. 즉 그것은 현실적 존재자에 진입하는 여건으로서 주어질 때 그것은 언제나 이미 그 활동이 완성된 현실적 존재자 ? 따라서 주체적 직접성을 상실한 대신에 대상적 불멸성을 획득한 현실적 존재자 ? 와 더불어, 그 현실적 존재자에 확정성의 형상으로써 동시에 주어진다. 따라서 완성 과정에 있는 현실태에로의 그 진입, 또는 수용은 영원한 대상 단독으로서의 진입이나 수용이 아니라 영원한 대상을 확정성의 형상으로서 포함하는 완성된 현실적 존재자 전체의 진입 또는 수용이라 할 수 있다.

2.현실적 존재와 파악
하나의 현실적 존재자가 다른 현실적 존재자에 나타남, 또는 화이트헤드의 말을 빌리면 수용됨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그것을 위하여 우리는 우선 첫째로 현실적 존재자에 특성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말할 것도 없이 화이트헤드의 사변철학이 전통적 철학체계와 그 특징을 달리하는 것은 ‘과정’이라는 중심 개념에 관해서이다. 전통철학 체계들에서도 ‘과정’, ‘변화’, 또는 ‘생성’의 인자들이 중시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것들은 항상 존재론적으로 부차적인 위치를 차지하는데 그치는 감이 있었다. 즉 그것들은 현실적 존재자의 기본적인 형이상학적 특성으로 인정되지 못한 것이다. 이에 반하여 화이트헤드에서는 ‘운동’ 또는 ‘생성’이 바로 현실적 존재자의 ‘있음’이고 ‘존재’이다. 다시 말하면은 현실적 존재자는 바로 생성의 과정이고 작용함이다.

“과정은 창조적 활동의 개념을 포함하고 이 활동이 각 현실적 계기의 본질이다. 즉 그것은 과정에 앞서서 오직 실현되지 않은 가능태의 양식으로만 존재하던 (우주 내의) 요소들을 현실적 존재자 속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이다. 자기 창조의 과정은 가능태를 현실태로 변형시키는 과정이며 이와 같은 변용의 사실은 자기 향유의 직접성을 포함한다.1)”

이와 같이 과정은 현실적 존재자의 자기 창조적 활동의 과정이고, 그것은 가능태를 현실태로 변용 시키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용은 자기 창조의 과정에 있는 현실적 존재자 속으로 앞선 현실태들이 포함됨으로써 이루어진다. 바꾸어 말하면 현실적 존재자의 자기 창조적 활동에 과정은 여건을 무의식적으로 지각하는 과정이고, 여건을 그 대상으로서 포착 또는 포괄하는 과정이다. 화이트헤드는 이와 같은 포착하는 과정 또는 파지(seizing)하는 작용을 나타내기 위해서 파악(prehens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는 “현실적 존재자가 스스로 다른 존재자들의 응결(concretion)을 이룩하는 활동을 표현하기 위해서 ‘파악’이라는 용어를 택하였다.2)” 고 말한다. 현실적 존재자를 구성하는 활동이란 그 존재자의 합생의 요소가 되도록 다른 존재자들을 포착하고 충용 하는 작용이다.

3.파악작용
주체로서의 합생하는 현실적 존재자에 의해서 다른 현실적 존재자들이 파악된다. 이것이 어떻게 하여 그 자체의 형식적 존재를 가진 현실적 존재자가 다른 현실적 존재자의 구성속에 현실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해답이 된다. 즉 다른 현실적 존재자에게 파악됨으로써 한 현실적 존재자는 그 특정한 현실적 존재자에 구성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때 현실적 존재자가 형상적 존재를 가진다는 것은 그 현실적 존재자가 주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즉 그 자체로 어떤 것인가를 뜻하는 것이고, 그것이 다른 현실적 존재자에 대해 현실적으로 어떤 것인가, 그 존재자에 대상으로써 어떤 것인가와 구별된다.

현실적 존재자의 궁극적 성질은 생성의 활동이다. 그리고 그것은 “생성 자체가 현실적 존재자의 구조”3)라는 것이다. 이 과정이 곧 파악하는 활동이다. 현실적 존재자는 형상적으로 고찰할 때, 즉 그 자체로 있는 그대로 고찰할 때, 파악의 합생(concrescence of prehension)이라 할 수 있다. “현실적 존재자의 본질은 오직 그것이 파악하는 사물이라는 사실, 즉 그것은 파악하는 것을 그 본질로 하는 실체라는 사실로 성립한다.4)” 이와 같이 현실적 존재자는 ‘형상적으로는’파악하는 활동이고, 이 파악하는 활동의 과정이 바로 그 형상적 존재이다. 그리고 이 과정이 확정적인 완성에 도달될 때 파악의 활동은 완결되고 따라서 현실적 존재자의 ‘형상적’ 존재는 종결된다. 그때 그것은 오직 ‘대상적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잇달아 일어나는 현실적 존재자의 구성속에 하나의 대상으로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화이트헤드는 현실적 존재자의 형상적’ 존재와 ‘대상적’ 존재를 구별하고 있다.

“현실적 존재자의 ‘형상적’ 구성은 불확정성(indetermination)으로부터 종국적인 확정성으로의 변이의 과정이다. ? 현실적 존재자의 ‘대상적’ 구성이 그것의 종국적 확정성이다. 이 확정성은 확정 소들의 복합체(component determinates)이며, 이 복합체로 인하여 현실적 존재자는 창조적 발전의 여건이 된다.5)”

그러나 이와 같은 다른 현실적 존재자를 위한 대상적 여건으로서의 현실적 존재자의 양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파악 활동에 대한 보다 상세한 분석이 필요하다. 화이트헤드에 따르면, “현실적 존재자의 최초의 분석, 즉 그 가장 구체적 요소로서의 분석은 현실적 존재자란 다름 아닌 파악의 합생이며, 이 파악의 합생은 현실적존재자의 생성 과정에서 시작되었음을 드러내어 준다. 그 외의 모든 분석은 파악의 분석이다.6)” 그리고 “현실적 존재자란 세계의 다양한 요소들 ? 이 세계로부터 현실적 존재자는 생성된다 ?을 자기 자신의 존재의 근거로서, 충용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특정한 이와 같은 요소들을 충용 하는 각 과정을 파악이라고 부른다. 이와 같이 충용된 세계의 궁극적 요소들은 이미 구축된 현실적 존재자들과 영원한 대상들이다.7)” 또한 ‘설명의 범주’(category of explanation)xi에 따르면, “파악은 세 가지 요소로 성립한다. (a) 파악되는 ‘주체’, 즉 파악을 구체적 요소로 포함하고 있는 현실적 존재자와 (b)파악되는 ‘여건’과, (c)그 주체가 여건을 어떻게 파악하는가 하는 ‘주체적형식’ (subjective form)의 세 가지이다.8)”

4.적극적 파악과 소극적 파악
그런데 현실적 존재자의 파악, 즉 현실적 존재자를 여건으로 하는 파악을 ‘물리적 파악’(physical prehension)이라고 부르고 영원한 대상의 파악을 ‘개념적 파악’(conceptual prehension)이라 한다. 이것들 가운데 어느 형태의 파악의 주체적 형식도 의식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또다시 파악에는 두 종류, 즉 적극적 파악(positive prehension)과 소극적 파악(negative prehension)이 있다. “적극적 파악을 ‘느낌(feeling)’이라고 부른다. 또한 소극적 파악을 ‘느낌으로부터 배제함’이라고 이름한다. 소극적 파악 역시 주체적 형식을 가진다. 즉 소극적 파악은 그 여건들을, 주체의 통일성을 이룩하는 파악의 발전적 합생속에 있어서 무용한 것들이라 간주하는 것이다.9)”

적극적 파악은 지각되는 주체의 속에 있는 항목을 ? 이와 같은 항목이 앞선 현실적 존재자이든 영원한 대상이든 간에 ? 적극적으로 포함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적극적인 포함과는 반대로 확고한 배척 작용을 소극적 파악이라고 한다. 그런데 ‘상대성의 원리’에 따르면, “현실적 존재자는 이 세계 속에 있는 각 항목과 확고한 유대를 갖고 있다.10)” 그리고 “이 확고한 유대기 현실적 존재자에 의한 그 항목에 파악이다.11)” 따라서 상대성의 원리에 따라 소극적 파악 역시 이와 같은 유대를 표현하는 것이라 간주해야 한다. 소극적 파악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주체 자체의 실질적인 내적 구성에는 아무런 적극적 기여도 하지 않은 것으로 항목들을 확고하게 배제하는 것”12)이다. 이와 같이 소극적 파악 역시 하나의 유대를 표현하는 것으로 전연 무의미 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적극적 파악 즉 느낌이다. 화이트헤드에 따르면 현실적 존재자는 느낌의 과정이다. “현실적 존재자의 분석은 그것들이 다름아닌 작용, 즉 개별적으로 생소한 존재자들을 구체적으로 하나의 복합체의 성소로 변용 시키는 작용이다. ‘느낌’이라는 용어는 이와 같은 작용을 일반적으로 기술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적 계기를 느낌에 과정에 의해 이루어진 합생이라 말하는 것이다.13)”

5.물리적 파악과 개념적 파악
현실적 존재자가 현실적 존재자를 여건으로 하는 파악을 물리적 파악이라고 하고 영원한 대상을 여건으로 하는 파악을 개념적 파악이라고 한다. 현실적 존재자가 하나의 하나의 현실적 존재자를 여건으로 하는 파악을 ‘단순 물리적 파악’ (simple physical prehension)이라고 한다. “하나의 주체가 지니는 ‘단순 물리적 느낌’[파악]이란 다른 하나의 현실적 존재자를 원초의 여건으로 하는 느낌이다. ? 그리하여 단순 물리적 느낌은 현실적 존재자와 관계한다. 그것들 가운데 하나는 그 느낌의 주체이고, 다른 하나는 그 느낌의 원초적인 여건이다.14)”

이와 같은 단순 물리적 파악에서 ‘복합적인 물리적 파악’이 성립된다. “우리의 모든 물리적 관계는 이러한 단순 물리적 파악들을 그것들의 원자적 토막으로 하여 성립한다.15)” 이러한 물리적 관계들이 자연의 인과적 관계를 구성한다. “단순 물리적 느낌은 인과의 작용이다. 원초의 여건인 현실적 존재자가 ‘원인’이고, 단순 물리적 느낌이 ‘결과’이다. 그리고 단순 물리적 느낌을 포함하고 있는 주체는 결과에 의해서 ‘제약된’ 현실적 존재자이나 이런 ‘제약된’ 현실적 존재자 역시 ‘결과’라고 불릴 것이다. 모든 복합적인 인과 작용은 이와 같은 기본적인 구성 요소들의 복합체로 환원될 수 있다. 그러므로 단순 물리적 느낌은 또한 ‘인과적 느낌’ (causal feeling)이라고 불릴 것이다.16)’

그러나 단순 물리적 느낌이 이와 같이 인과적 느낌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본질적으로는 지각적 이라는 것, “단순 물리적 느낌은 의식이 결여된 지각 작용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17)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단순 물리적 파악은 지각과 본질적인 관계가 있다. 그래서 단순 물리적 느낌과 관계된 두 개의 현실적 존재자 즉 느낌의 주체와 느낌의 원초적인 여건은, 각 파악 또는 느낌의 작용으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파악하는 현실적 존재자가 다른 하나의 느낌을 느끼는 하나의 느낌이다.18)” 즉 그것은 다른 느낌에 순응해서 (conformally)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 물리적 느낌은 주체, 즉 파악하는 현실적 존재자를 갖는다. 그리고 “느껴진 느낌은 그것을 느끼게 하는 느낌의 주체와는 다른 주체를 갖는다.19)” 그래서 두 개의 주체가 있게 되는 것이다. 원인이 되는 선행하는 현실적 존재자는 합생 과정에 있을 때 그 느낌을 실연(enact)하였고 결과가 되는 파악하는 현실적 존재자는 그 느낌을 재 실연(reenact) 또는 재생산함으로써 원인의 느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파악자(prehender)의 느낌은 단순히 하나의 느낌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여건의 느낌을 재 실연하는 것이다. 즉 “원인은 새로운 주체에 의하여 새로운 주체 자체의 것으로 재생산되게끔 그 느낌을 건네주지만 그 느낌은 그러나 원인과 불가 분한 것으로 재생산되는 것이다.20)” 그렇기 때문에 파악자의 느낌은 그 파악자 자체의 느낌이다. 왜냐하면 파악자가 바로 그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악자의 느낌은 원인의 느낌의 재 실연 또는 재 생산이다. 그러므로 재생산된 느낌은 파악자의 느낌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또한 원인에 느낌이기도 한다. 그러나 재생산된 느낌은 ‘형상적으로 원인의 느낌이 아니다.’ 형상적 원인은 그 느낌을 실연하고 있는 주체로서의 선행하는 현실태이다. 파악자의 의해서 실연된 느낌은 ‘대상적으로는 ‘원인의 느낌인 동시에 ‘형상적으로는’ 또 ‘주체적으로는’ 파악자의 느낌인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느낌의 실연을 통해서 원인은 결과 속에서 대상화(objectification)된다. “원인은 결과 속에 재생산된 느낌을 느끼는 자(feeler)이기 때문에 대상적으로 결과의 구조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21)” 그래서 결과에 의해서 순응적으로 재생산된 느낌은 원인의 느낌을 재 실연하는 것이다. 그 느낌(즉 원인의 느낌)은 그 주체와 분리될 수 없다. 주체 없이는 느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원인이 결과 속에 대상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이유는, 원인의 느낌은 하나의 느낌으로서 그 주체, 원인으로부터 추상될 수 없기 때문이다.22)” 다시 말하면 단순히 느낌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현실적 존재자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원인의 이와 같은 재 실연 또는 재생산 및 그 대상화는 영원한 대상의 느낌의 경우,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화이트헤드에 따르면, ‘원인’이 되는 대상적인 여건(objective datum)의 확정성을 결정하는 영원한 대상과, ‘결과’에 속하는 주체적 형식을 결정하는 영원한 대상이 있다. 느낌의 재 실연이 있을 때는 양면적 역할을 하는 하나의 영원한 대상이 있다. 한편으로는 주체적 형식을 결정하는 하나의 영원한 대상이 있다. 이러한 양면적 역할에서 영원한 대상은 한편으로는 원인의 여건과 다른 한편으로는 합생하는 주체 사이에서 상관적으로 기능한다23). 다른 말로 하면 원인의 느낌의 확정성은 특정한 영원한 대상의 진입에 의해 결정된다. 즉 그 느낌은 영원한 대상에 의해서 바로 그 느낌으로 확정되는 것으로서, 영원한 대상이 그 느낌의 형식을 이룬다. 그런데 이 느낌이 재 실연될 때 동일한 영원한 대상이 재 실연될 것으로 그 느낌의 확정성을 결정한다. 따라서 이 때 영원한 대상은 상관적으로 작용한다. 즉 그것은 대상을 주체와 ‘관계짓는’ 것이다. 그래서 우연히 동일한 영원한 대상에 의해 그 느낌이 확정된 우연한 두 개의 느끼는 주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원인과 결과로 관계지어진 두 개의 주체가 잇는 것이다. 이것이 결과의 형식은 원인에서 유래한다는 주장의 의미이며, 또한 뒤이은 현실태는 앞선 현실태의 느낌에 순응해서 느낀다는 말의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원한 대상은 이미 말한 현실적 존재자의 확정성을 결정하는 형상으로서 그 현실적 존재자의 성소로서만 존재한다. 따라서 그것을 현실적 존재자로부터 분리한다는 것은 오직 추상적으로만 또는 개념적으로만 할 수 잇는 것이지 구체적으로는 느낌이 그 주체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느낌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영원한 대상은 특정 현실태의 느낌의 형식이다. 따라서 결과의 느낌의 형식을 결정하는 영원한 대상은 바로 원인의 느낌의 형식을 확정하는 영원한 대상이다. “인과적 대상화(causal objectification)에서 있어서 대상화된 현실적 존재자에 의해 주체적으로 느껴진 것은 그것을 뒤잇는 합생적 현실태들에게 대상적으로 전달된다. ··· 이러한 형태의 대상화에 있어서 대상과 주체 사이에 관계를 이루는 영원한 대상은 대상화된 현실적 존재자의 형상적 구조를 나타낸다.24)”

이상과 같은 것이 어떻게 하여 각자의 형상적 존재를 가진 현실태가 다른 현실태 속으로 대상적으로 포함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화이트헤드의 최종적 회답이라 할 수 있다. 현실태의 존재자의 궁극적 본질은 느낌의 활동, “개별적으로 낯선 존재자들을 구체적으로 하나의 복합체의 구성 요소로 변용”25)하는 활동이다. 이 때 낯선 존재자, 즉 앞선 현실태는 원인이고, 하나의 복합체, 즉 뒤이은 현실태는 결과이다. 그런데 단순 물리적 느낌은 ? 지금 우리는 논의를 분명히 하기 위하여 단순 물리적 느낌만을 다루고 있다. ? 주체로서의 결과에 의해 재실연된 결과의 느낌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결과는 원인을 ‘재상산’ 또는 ‘재실연’ 한다. 이 재생산 ? 이것을 화이트헤드는 또한 “느낌의 이동”26)(transference of feeling) ? 은 결과 속으로 이동한다. 이 이동 과정에서 원인은 그 원래의 주체성을 보유하면서 새로운 주체로서의 결과의 느낌의 형상이 됨을 통하여 그 새로운 결과의 주체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래서 동일한 하나의 원인이 다수의 결과 속에 대상적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원인 또는 과거의 현실태 (단순) 물리적 느낌에 의하여 결과 또는 새로운 현실태 속으로 이동된다. 따라서 단순 물리적 느낌은 자연의 생산적 성질을 재현하고 있으며, 또한 과거의 대상적 불멸성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이 느낌의 덕분으로 시간은 과거에 대한 직접적 현재의 순응이다. 이와 같은 느낌을 ‘순응적 느낌’(conformal feeling)이라고 한다27). 과거를 재생산하는 단순 물리적 느낌을 통해서 과거는 현재 속에 대상적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현재는 과거의 재생산이며 또한 과거의 누적이다. 왜냐하면 앞선 현실태, 즉 원인은 그 자체 또 그것에 앞선 현실태 또는 누적의 느낌을 자기의 느낌의 대상으로 가졌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현실적 존재자가 현실적 존재자를 데이터로 하는 물리적 파악을 고찰해 왔다. 그것도 논의의 단순성을 기하기 위하여 단순 물리적 파악만을 다루어 왔다. 그리하여 한 현실태가 다른 현실태 속에 대상으로 포함될 수 잇는 것은 이 물리적 파악에 의해서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어떤 현실적 존재자도 오직 하나의 현실적 존재자만을 여건으로서 가질 수는 없다. 각자는 무수한 여건을 가지는 것이다. 사실 상대성의 원리에 따라, 어떤 한 현실태에 대해 여건이 될 수 있는 것은 그것에 앞선 전자의 전체 요소들이다. 따라서 현실적 존재자를 구성하는 파악은 복합적이다. 그리고 어떤 한 주체가 지니는 단순 물리적 파악은 그 원초의 여건으로 다른 단일한 현실적 존재자를 그 느낌의 대상으로 가지고 있고 또한 단일한 현실적 존재자는 많은 수의 앞선 현실태를 그 여건으로 가지기 때문에, 따라서 단일 적 존재자는 많은 수의 단순 물리적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적 존재자는 합생의 과정이고, 하나의 통합적 단일성 속으로 파악된 대상들의 공동 생장이다. 다수의 단순 물리적 느낌의 원초적인 국면(initial phase)은 그것들이 여러 가지 단순 물리적 느낌을 하나의 완성된 단일한 느낌속으로 통합하는 활동의 국면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 통합이 그 현실적 존재자의 만족태이다. 다시 말하면 복합적인 파악 활동은 합생적 통합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고, 이 실현이 곧 현실적 존재자의 만족태이고, 완성이다. 그래서 현실적 존재자는 동시에 그 자체의 자기 창조적 활동의 “자기 초월체”(superject)가 된다. 따라서 자기 초월체는 현실적 존재자의 활동이 향해진 목적이고 따라서 목적인 (final cause)이다. 그것은 또한 ‘이상적’(ideal)인 것인 동시에 개념적인 것이다. 지향될 완성이라는 뜻에서 이상적이며 하나의 ‘관념’으로서 지니는 목적이라는 뜻에서 개념적이다. 현실적 존재자는 생성이 과정이고, 그 파악 또는 느낌은 출발점부터 어떤 이상, 즉 완성되어야 할 ‘자기 자신의 관념’에 의하여 의도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관념’ 또는 ‘개념’ 역시 파악이 아니면 안된다. 왜냐하면 현실적 존재자란 오직 파악으로만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파악은 물리적 파악일 수가 없다. 그것은 다른 종류의 파악, 즉 개념적 파악이다. 우리는 위에서 물리적 파악과 개념적 파악의 구별을 한 바가 있다. 그러나 영원한 대상이란 현실적 존재자의 성소로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 물리적 파악에 덧붙여서 개념적 파악이 있게 되는가에 관해서는 분명한 이해가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개념적 파악 자체의 성질과 물리적 파악에 대한 그 관계를 살펴보아야 한다.

개념적 파악은 영원한 대상을 여건으로 하는 파악이다. 따라서 개념적 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원한 대상이 어떻게 여건으로 주어질 수 잇는가를 이해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 이해를 위해서 우리는 위에서 말한 바 잇는 영원한 대상의 이중적 특징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영원한 대상은 한편으로는 여건의 확정성을 결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평가하는 주체의 확정성을 결정하는 양면적 기능을 가진다. 영원한 대상의 이와 같은 주체적 대상에 의하여 앞선 현실태는 물리적 파악에서 대상이 되는 것이다. 즉 그것은 주체와 대상을 관계 지운다. 이것이 또한 “물리적 파악은 영원한 대상에 의하여 매개된다.”28)는 주장의 의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상관적인 기능에서 영원한 대상은 실현된 결정소(realized deter-minant)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실현된 결정체’로서의 영원한 대상은 그 자체존재자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그 확정성을 결정해 주는 현실적 존재자들의 본질로서의 존재자이다. 그러나 한편 영원한 대상은 단순히 ‘실현된 결정소’일 뿐만이 아니다. 그것들은 그 본질상 특정한 현실태의 본질로서만 머물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실현된 결정소이면서 동시에 또한 결정의 일반적 능력을 보유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들은 원하는 본질을 가지는 존재자이다. ‘실현된 결정소’로서, 그리고 ‘결정의 일반적 능력’으로서의 영원한 대상의 이와 같은 이중적 양상으로 말미암아, “그것은 내재성과 초월성을 동시에 그 특징으로 갖는다. 실현된 결정소로서는 내재적이고, 결정의 일반적 능력으로서는 초월적이다. 두 가지 역할 모두에서 그것은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 관계한다.29)”

이제 우리는 물리적 파악과 개념적 파악을 분명히 할 수 있다. 물리적 파악에서는 여건이 되는 현실적 존재자는 그것의 성소인 상관적 기능을 행하는 영원한 대상을 매개로 하여 느끼게 된다. 이 때, 영원한 대상은 ‘실현된 결정소’로서 물리적 파악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개념적 파악에서는 영원한 대상은 ‘실현된 결정소’로서가 아니라, ‘결정의 일반적 능력’으로서 파악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즉 개념적 파악에서는 영원한 대상은 그것의 특정 실현 양식과는 관계없이 순전히 일반적 가능태로서의 파악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즉 “개념적 파악이란 ‘대상이라는 기본적인 형이상학적 특징을 가진 영원한 대상의 느낌이다. 바꾸어 말하면, 개념적 파악이란 특징을 결정하는 일반적능력의 면에서의 영원한 대상에서의 느낌이다.30)”

6.순수한 파악과 불순한 파악
이상과 같이 현실적 존재자가 생성하는 과정은 앞선 현실태를 자기 속으로 포함시키는 파악의 작용과 더불어 시작한다. 이것들 원초적인 파악이 물리적 파악이다. 즉 그것들은 단순 물리적 느낌 또는 인과적 느낌이며 (과거에 대하여) ‘순응적’인 파악이다. 그러므로 존재론의 원리에 따라, 이것들 원초적인 느낌, 즉 현실태의 생성의 과정은 물리적 느낌으로 시작해야 하지 개념적 파악과 더불어 시작할 수는 없다. 즉 그것은 현실적 가능성으로부터 발생하지 단순한 관념적인 일반적 가능성으로부터 발생할 수는 없다. 따라서 개념적 파악은 원초적인 단순 물리적 파악에 뒤이은 단계에서 시작함이 틀림없다. “각 물리적 느낌으로부터 순수한 개념적 느낌이 파생한다. 그리고 순수한 개념적 느낌의 여건은 ? 물리적으로 느낀 현실적 존재성의 확정성을 결정하는 영원한 대상이다.31)” 원초적인 물리적 느낌이 개념적 파악을 위한 여건, 즉 영원한 대상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 영원한 대상은 그 단순 물리적 느낌의 대상화된 여건의 확정성을 결정한다. 따라서 개념적 파악은 앞선 현실태의 성소인 영원한 대상의 재생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개념적 파악이 재생산하는 영원한 대상은 ‘실현된 결정소’로서가 아니라 ‘결정의 일반적 능력’으로서의 영원한 대상이다. 즉 개념적 느낌이 재생산하는 것은 영원한 대상을 매개로 대상화된 현실태가 아니라, 진입의 특정 계기로부터 추상된 영원한 대상이다. 그러나 개념적 느낌은 재 생산적이고 또 원초적인 물리적 느낌에 의하여 발생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다시 느끼는 것은 그 발단에서 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즉 “개념적 느낌과 단순 인과적 [물리적] 느낌은 ‘기본적 느낌의 두 개의 중요한 종(species)이다. 모든 다른 느낌은 그 복합성이 어떤 것이나 간에, 이것들 기본적 느낌의 단계에서 시작하는 통합 과정에서부터 발생한다.32)” 그런데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단순 물리적 느낌은 하나의 현실적 존재자만을 그 여건으로 하는 느낌이다. 단순한 순수 물리적 느낌에 반해서 복합적인 순수 물리적 느낌은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순수한 단순 물리적 느낌의 통합으로서 발생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복합적 느낌을 다시 통합함으로써 한층 더 복합적인 느낌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계속적 통합에 의하여 계속 복합성의 도를 더해 가는 느낌이 생겨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순수한 복합적인 개념적 느낌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이것들 두 종류의 느낌이, 그것들의 파생적인 복합적 느낌과 더불어서 ‘순수’ 파악의 두 종류를 형성한다.

그런데 한편 물리적 파악과 개념적 파악을 결합하는 파악 또는 느낌이 있을 수 있다. 이들 파생적 느낌이 곧 불순한 느낌들이다. 즉 그것들은 물리적 느낌과 개념적 느낌을 여건으로 하여 그것들을 하나의 새로운 느낌으로 통합하는 느낌들이다.

“정신성(mentality)의 기본적 작용은 ‘개념적 파악’이다. 이들 개념적 파악이 ‘순수한’정신의 유일한 작용이다. 정신성의 모든 다른 작용은, 개념적 파악과 물리적 극의 물리적 파악의 통합을 내포한다는 의미에서, ‘불순한’ 작용들이다. 파악에서의 ‘불순성’은 순수한 물리적 파악과 ‘불순한’정신적 파악의 통합에서 발생하는 파악과 관련되기 때문에, ‘불순한’정신적 파악은 또한 ‘불순한’ 물리적 파악이며, 그 역도 마찬가지라는 결론이 성립한다. 이와 같이 파악에 적용된 ‘불순하다’는 개념은 아주 명확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논의에서의 주의 방향을 지시하기 위해서 이를 제외하면, ‘정신적’이거나 ‘물리적’이라는 용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33)”

이와 같이 불순한 파악은 현실적 존재자의 합생 과정 후기 국면에서 발생하는 하나의 파악이다. 불순한 파악은 단순한 순수 파악에서 발생하거나 혹은 복합적 순수 파악에서 발생하거나 아니면 불순 물리적 파악과 순수 개념적 파악의 통합에서 발생한다.

7.맺는 말
현실적 존재자의 합생 과정은 하나의 획기적 통일로서의 자기 초월체의 생성이다. “합생 과정의 근거 또는 기원은 세계 내에 있는 여건의 다수자, 즉 영원한 대상과 명제와 결합체이다.34)” 이러한 합생 과정은 ‘기본적인’느낌을 시초로 하여, 선행 국면 속에 있는 느낌을 통합하는 복합적인 느낌들의 국면을 거쳐서 계속되어, 만족태라는 느낌의 완성된 통일에서 끝이 난다. 그러나 느낌의 여러 국면과 종류를 분석적으로 구별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실상 그것들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만족태는 분리된 별개의 느낌이 아니다. 그것은 앞선 느낌들의 완성이며 또한 그런 것으로서 느낌의 누적(consummation)이다. 앞선 느낌들 또한 만족태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만족태는 바로 자기 초월체로서의 현실적 존재자이기 때문이며, 그리고 자기 초월체는 주체와 별개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체 또한 앞선 느낌들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주체는 느낌을 지닌 주체일 수 있도록 느낌 속에서 작용한다. 느낌이란 자기 생산에서의 하나의 삽화(episode)이고, 그 목표(aim)를 지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목표는 느낌을 동반하는 어떤 확고한 통일이다.35)” 이와 같은 통일은 어떤 확고한 통일로서 목적을 의미한다. 즉 그것은 어떤 것을 그 자체를 위하여 실현코자 하는 목표를 의미한다. 그 자체를 위한 어떤 것의 이와 같은 실현이 ‘가치’의 개념의 기본적 요인이다. 목적인을 향하여 움직이는 것이 합생 과정이고, 이러한 목적인은 주체적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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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Whitehead, A. N. The Concept of Nature(Cambridge :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1).
Whitehead, A. N. Science and the Modern World(N. Y. : The Macmillan Publishing Co., 1967).
Whitehead, A. N. Adventures of Ideas(N. Y. : The Macmillan Company, 1967).
Whitehead, A. N. Modes of Thought(N. Y. : Macmillan Publishing Co., 1968).
Whitehead, A. N. The Function of Reason(Boston : Beacon Press, 1958).
Whitehead, A. N. Symbolism ; Its Meaning and Effect(N. Y. : Capricorn Books, 1959).
Whitehead, A. N. Process and Reality. Ed. by D. R. Griffin and D. W. Sherburne(N. Y. : The Free Press, 1978).
Pols, Edward, Whitehead's Metaphysics; A Critical Examination of Process and Reality(Carbondale and Edwardsville : Southern Illinois University Press, 1967).
Lang, John W. Whitehead's Ontology(Albany :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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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주
1) A.N.Whitehead, Modes of Thought, Macmillan Publishing Co., Inc., N.Y., 1968, P.151
2) A.N.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Corrected Ed. By D. R. Griffin and D. W. Sherburne, The Free Press, N. Y., 1978, P.52.
3) 앞의 책, P. 219
4) 앞의 책, P. 41
5) 앞의 책, P. 45.
6) 앞의 책, P. 23.
7) 앞의 책, P. 219.
8) 앞의 책, P. 23.
9) 앞의 책, P. 23-24
10) 앞의 책, P. 41.
11) 앞의 책, 앞의 쪽
12) 앞의 책, 앞의 쪽
13) 앞의 책, P. 213.
14) 앞의 책, P. 236
15) 앞의 책, P. 앞의 쪽
16) 앞의 책, 앞의 쪽
17) 앞의 책, 앞의 쪽
18) 앞의 책, 앞의 쪽
19) 앞의 책, 앞의 쪽
20) 앞의 책, 앞의 쪽
21) 앞의 책, 앞의 쪽
22) 앞의 책, 앞의 쪽
23) 앞의 책, P. 238
24) 앞의 책, P. 58
25) 앞의 책, P. 211
26) 앞의 책, P. 237 참조
27) 앞의 책, P. 238
28) 앞의 책, P. 240 참조
29) 앞의 책, P. 239-240
30) 앞의 책, 앞의 쪽.
31) 앞의 책, P. 26.
32) 앞의 책 P. 239
33) 앞의 책 P. 33.
34) 앞의 책, P. 224
35) 앞의 책, 앞의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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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사항

정연홍
충남대학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