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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겔에서의 경험의 의미

온울에 2008. 5. 14. 14:52

목 차

1.들어가는 말
2.자연적 의식의 변증법적 전개
3.감성적 확신에서의 의식의 변증법의 전개
4.맺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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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자명 새한철학회 
학술지명 철학논총 
ISSN 1226-9379 
권 24 
호 1 
출판일 2001. 4. 30.  

 

 

 

헤겔에서의 경험의 의미
(-'자연적 의식'과 '감각적 확실성'을 통해서 본 감성의 의미와 그 한계-)


이강화
계명대
1-066-0102-09

국문요약
절대지의 확보를 위해 의식적 경험이 그 필요성에 따라 나아가는 과정이 하나의 학으로 성립되는 헤겔(Hegel)의 경우, 의식의 변증법적 경험이 어디에서 출발해야 하는 가 라는 문제는 그의 학적 체계의 근본적인 단초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헤겔은 자기의 인식과정을 전개시키기 전에 전통적 인식이론의 비판부터 시작하며 그 대표적인 경우로 칸트(Kant)의 예를 든다. 헤겔이 보기에는 칸트는 인식행위를 인식도구를 사용하는 능동적 작업으로 여기거나 인식대상이 인식형식을 통해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그 어느 경우에도 인식은 인식되어야 할 본래적인 것과 순수하게 일치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때의 인식은 인식도구를 통해 변형된 대상이거나 인식매체를 통해 수동적으로 인식주관에 굴절된 대상만을 파악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식과 물자체는 절대적으로 분리되며 동시에 절대적인 것과 인식주체 역시 분리된다.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일체의 인식론적 전제를 제거하고 가장 직접적이고 확실한 인식에 착수하는 것이다. 헤겔은 여기에서 현상지를 참된 인식에로 전진해 가는 자연적 의식을 추적한다. 이어서 자연적 의식을 벗어난 지는 의식 장에서 다시 구체적 감각적 대상을 만나게 되고 헤겔은 이를 감성적 확신이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지는 다시 가장 구체적인 감각적 대상에서 출발하는 동시에 자연적 의식에서와 동일한 극복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헤겔은 최초에 가장 순수한 존재와 가장 풍부한 인식 그리고 진리의 본질이라고 본 감성적 확실성을 곧 가장 추상적인 그리고 가장 빈곤한 진리로 파악한다.

그러나 헤겔의 이러한 시도는 결과적으로 가장 실재적인 대상의 현실성의 성급한 부정으로 귀결되었고, 이리하여 개인은 직접적-감성적 인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식내용을 사유된 것으로 바꾸어 버린다. 이것은 헤겔 자신의 표현처럼 직접적인 현실성에 대한 의식의 파악을 절멸시켰을 뿐이다. 이것은 가장 구체적인 인식의 단계인 감성적 확신의 단계에서부터 사물의 객관성이나 현실성이 별 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이리하여 칸트 속에 잔존해 있던 최소한의 유물론적 경향은 언어로 대표되는 일반자 개념에 의해서 곧 사라져버렸고, 이처럼 사물의 객관성이나 현실성 대신 언어 속에서 개념의 진리가, 즉 보편적 본질이 반영된다고 주장함으로써 헤겔은 자신의 출발점과는 모순되게 자연적 의식과 감각적 확실성의 입장을 처음부터 거부하는 결과 보여준다. 인식론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나타나는 헤겔의 이와같은 감성에 대한 경시와 물질에 대한 몰이해가 시대적 상황과 유리된 사변적인 자연철학을 가능케 하였고 결국 포이엘바하(Feuerbach)와 마르크스(Marx)로 대표되는 유물론의 저항을 불러 온 것이다.

영문요약
Meaning of Experience in Hegel
In case of Hegel whose science is to establish the course of the conscious experience in accordance with inevitability in order to approach the absolute knowledge, the matter where the consciousness's dialectic experience to start is to form the fundamental beginning of his scientific system. Hegel had criticized the traditional epistemological theory before he developed his own epistemological process. The most representative epistemological theory that Hegel criticized was Kant's theory. Hegel thought Kant had considered epistemological behavior as an activity of using an epistemological instrument positively or believed that the epistemological objects are accepted passively through epistemological forms. But in any case cognition itself cannot be the same as the object itself recognized purely because cognition is the object that is transformed through epistemological instrument or can only figure out the objects reflected on the cognition subjectivity through an epistemological medium.

Therefore cognition and thing-in-itself are absolutely divided and at the same time the absolute and the epistemological subjectivity are divided. The only way to solve this kind of dilemma is to eliminate the whole epistemological premise and to start hating the most direct and concrete cognition. And so Hegel traces the course of the phenomenological knowledge's developing into natural consciousness. The knowledge which get out of the natural consciousness meets the concrete and sensuous object which is named emotional confidence by Hegel. Knowledge starts from the most concrete and sensuous object and shows the process of overcoming which was performed on the natural consciousness.

But Hegel thought that the emotional confidence which had been considered as the purest existence, the most abundant cognition, and the nature of the truth was the most abstract and the poorest truth. The minimum of material tendency remained in Kant's thought disappeared because of the concept of the average person which was representative of language. Like this, instead of the objectivity of things or reality, Hegel shows to refuse the point of view that emphasizes the natural consciousness and sensuous confidence which are contradictive to the starting point of his thought by arguing that the truth of the concept, the universal nature is reflected on the language. Hegel's ignoring human's emotion and the misunderstanding of material shown from the beginning stage of his epistemological theory makes it possible for him to develop his speculative natural philosophy and results in the resistance of the representative materialists, Feuerbach and Marx.


한글키워드
절대지, 별증법적 경험, 자연적 의식, 우물론적 경향, 사변적 자연철학
영문키워드
Absolute knowdge, Dialectic experiece, Natural cosciousness, Material tendency, Speculative natural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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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들어가는 말
실재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들은 이 존재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것은 철학이 있은 이래로 줄 곧 제기된 가장 본질적인 질문 중의 하나였고 많은 철학자들이 여기에 대해서 다양한 답변들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근대적 인식론이 대두되기 전까지는 심오한 문제에 속하기는 했으나 적어도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미리 주어진 신앙과 독단적 이념이 그 존재 문제를 미리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러한 질문은 온전한 인식 기관을 가진 사람에게서 '보고 만질 수 있는 것, 다시 말해서 감각적 인식 기관에 의해서 포착되는 것만이 존재한다'라는 답변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보편적이고도 상식적인 차원에서 속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존재에 관한 신앙적 차원에서의 근거지움이나 상식적인 차원에서의 근거지움 모두를 회의한다는 점에서 근대 인식론은 철학적 사유의 근본적 문제를 제시하였고, 이러한 근대적 인식론이 한계를 극복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독일 관념론도 예외일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절대지의 확보를 위해 의식적 경험이 그 필연성에 따라 나아가는 과정이 하나의 학으로 성립되는 헤겔의 경우, 의식의 변증법적 경험이 어디에서 출발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는 그의 학적 체계의 근본적인 단초를 형성하는 것이다1). 자신의 〈정신현상학〉을 평범한 상식이나 일상적 언어에 대한 상식적 차원에서의 음미가 아니라, 지의 형성과정을 통하여 절대자의 인식을 마련하려는 헤겔에게 있어서 철학적 논의란 평범한 의식 혹은 상식적 논의에서 일탈해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며, 무언가의 외적인 기준을 참조하여 그것을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식의 전통적인 철학적 이념은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2). 헤겔에게 있어서 절대지를 향하는 과정이란 "일련의 자기 형상화 과정을 두루 거쳐 나가는 영혼의 오솔길과 같은 것3)" 이기에 "이 도정은 회의로 이어지는 오솔길 또는 더 적절한 표현을 빌면 절망의 길이라고 불리울 수 있는 것4)" 이다. 이리하여『정신현상학』서론 Einleitung5) 첫 부분에서 헤겔은 자신의 인식론의 목적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철학에 있어서는 그의 유일한 과제인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구체적 인식활동에 착수하기에 앞서서 우리가 절대자를 포착하는 데 필요한 도구나 혹은 바로 그 절대자를 간취하는데 필요한 수단이 된다고 여겨지는 인식에 관하여 미리 터득해 두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보는 견해가 일반화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염려를 하는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없지도 않으니, 즉 그 하나는 인식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서 그 중의 어떤 것은 철학의 궁극 목적에 도달하는데 있어서 좀더 능숙한 방법을 구사할 수 있다는 듯이 자부 함으로서 자칫하면 그 여러 종류 중에서 잘못된 방법을 택할 수 있는 것이며, 또 다른 경우에는 인식이 그 스스로의 본성이나 한계에 관한 명확한 규정도 내리지 않은 단지 특정한 양식과 범위를 차지하는 일개 능력에 지나지 않은 까닭에 이것이 진리의 천국이 아닌 오류의 헛구름만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6).

헤겔이 여기에서 말하려는 것은 인식의 획득 이전에 우리가 인식으로 간주해도 좋을 것과 인식으로 간주해서는 안 되는 것을 먼저 결정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헤겔도 자기의 인식과정을 전개시키기 전에 전통적 인식이론 ? 존재와 지식, 주관과 대상 등의 이원론 - 의 비판부터 시작하며 그 대표적인 경우로 칸트의 예를 든다7).

칸트는 자기 의식의 통일에 기초한 선험적 통각과 구상력의 자발적인 인식활동을 통해서 대상에 대한 인식이 가능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 인식은 절대적 권리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주관적 형식에 주어지는 현상계에 대한 인식만을 가능하게 할 뿐이다. 이리하여 칸트의 인식론은 인식을 유한한 주관적 능력에 제한하고 이러한 인식능력의 본성과 한계를규정하려는 데 그 과제를 두고 있다. 그 결과 인간의 유한한 인식능력은 절대적 권리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형식으로 한계지어진 수학적ㆍ자연학적 인식에서만 보편타당성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수학이나 자연학의 확실성이 소위 '선험적 종합판단'의 원리를 내포하고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밝힌 칸트는 이를 근거하여 선험적 종합판단이 인간의 여러가지 인식작용에서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밝히게 된다. 이를 위해서 칸트는 여러 종류의 인식능력을 열거하는데 '감성', '이성, '구상력', '판단력' 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감성이란 대상을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는 , 다시 말해서 감각기관을 통해서 여러 가지의 제반 표상들을 수용하는 능력이며, 오성이란 주어진 대상을 사유하는, 다시 말해서 감성이 수용한 표상들을 범주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결합하여 경험을 발생시키는 능력을 의미한다. 따라서 경험이란 감성과 오성 이 양자의 결합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칸트는 경험의 내용은 외부의 대상에서 받아들이고, 형식은 인식하는 주관 측이 그 내용에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칸트 인식론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이성에 대한 독특한 설명이다. 칸트는 '개념의 능력'인 오성에 대해서 이성을 '추리의 능력'이라고 불렀다8). 오성은 감성과 함께 작용하며 따라서 감성의 도움이 없이는 경험적 인식을 낳지 못하지만, 이성은 그 자체만으로 작용하여 스스로의 이념을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경험의 지반을 떠난 이성의 추리는 결코 확실한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영혼의 본성, 세계의 시작과 종말, 물질의 무한 분할 가능성, 인과적 필연성과 자유의 문제, 신의 존재 등의 문제는 어떠한 경험도 의존하지 않은 순수이성의 산물이기에 필연적으로 독선적인 오류나 이율배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9).

어떤 의미에서 칸트는 선험적인 영역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성이라는 개념을 동원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순수 이성 비판』이라는 저서 명이 말해주듯이 어디까지나 그의 이성개념은 라이프니츠, 볼프 이래의 순수이성의 철학(독단적 합리론)을 비판하기 위한 것인 만큼 현실세계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이성은 어디까지나 경험의 영역에 머물러야 하는 것이다. 순수한 인식작용의 영역을 고립적으로 취급하기 위해서 우선 인식 형식을 인식 내용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이 구성은 즉자적으로 있는 바와 같은 사물들이 인식과는 독립해서 있음을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헤겔이 보기에는 칸트가 이런 방식으로 인식을 검증하려는 것은 인식을 도구10)나 매체11)로 보는 자연적 통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칸트는 인식행위를 인식도구를 사용하는 능동적 작업으로 여기거나 인식대상이 인식형식을 통해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그 어느 경우에도 인식은 인식되어야 할 본래적인 것과 순수하게 일치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때의 인식은 인식도구를 통해 변형된 대상이거나 인식매체를 통해 수동적으로 인식주관에 굴절된 대상만을 파악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식과 물자체는 절대적으로 분리되며 동시에 절대적인 것과 인식주체 역시 분리된다. 물론 칸트는 물자체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감성적 직관의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것의 인식가능성을 부정하였고 "도구나 매체의 이 음미되지 않은 주요상(像)때문에 자기의식의 개념 본성에로의 통찰을 차단하고 있는 것12)" 이다. 따라서 인식이란 현상에 대해서만 가능하다는 칸트의 이러한 이론은 헤겔에게는 결국 사물자체의 존재여부에 대해서도 유보적 입장을 취하는 회의주의로 이해되었다. 헤겔에게 있어서 처음부터 물자체, 즉 절대자로부터 분리된 지는 진정한 지로서의 역할이 불가능하기에, 이러한 이원론적 대립을 헤겔은 오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진리마저 버리는 비철학적 태도라 단정짓는다13).

헤겔이 보기에 칸트의 이러한 딜레마는 근본적으로 모든 지에 선행하는 어떤 출발점을 전제하는 전통적인 인식론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를 들어서 데카르트가 그의『성찰』에서 "이미 나는 내가 극히 명석하고 극히 판명하게 지각하는 것은 모두 진실하다는 것을 일반적인 규칙으로 확립할 수 있다14)"고 주장하는데, 이처럼 사물을 명석 판명하게 지각한다는 이유에서 그가 존재하고 또 그러한 사정에 대해 사유하는 것이라면, 그는 자신이 명석 판명하게 지각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진실하다는 전제를 이미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한 일인데 만일 지에 대한 주장이 어떤 인식론적 견지에 입각하여 음미되어야 한다면 그러한 인식론 자체가 이미 지에 대한 주장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끊임없는 순환만을 불러일으키는 이른바 악무한적 논리에 불과한 것이다.

동시에 유일한 실재론적 인식은 감각적 경험에 의해 증명되는 명제 중에서만 존재한다는 경험론자의 주장도 흄의 경우가 잘 말해주듯이, 인식론적 딜레마에 처하기는 마찬가지다. 모든 인식의 근거를 감성적 차원에서 확인하려는 경험론자들의 주장은 결국 인식론은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정신 활동에 관한 경험적 연구에 의해 확립되는 것이며 동시에 오직 이러한 연구에 의해서 인식론이 확립 될 수 있다는 식의 순환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15).

2.자연적 의식의 변증법적 전개
따라서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일체의 인식론적 전제를 제시하고 가장 직접적이고 확실한 인식에 착수하는 것이다.

오직 문제가 되는 것은 학이 반드시 이와 같은 현상태로부터 해방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되는 바 이와 같은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학이 지금 바로 이야기된 바와 같은 그 자신의 허상을 뿌리쳐버리는 갈 수박에 없다ㆍㆍㆍ 이상과 같은 이유로 인해서 이제 우리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지의 형태에 대한 설명과 서술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16)"

이리하여 헤겔은 〈서론〉에서 이미 자신이 제시해 놓은 의식의 경험 전개의 방법에 따라서 최초로 등장하는 현상하는 지를 인식론의 단초로 설정한다. 이제 학은 절대지와 인식작용을 분리시키지 않은 차원에서 절대지의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해서, 주객동일의 경험일원론을 전제하면서 가장 직접적으로 출현하는 학의 현상을 확인해야만 하는 것이다17).

물론 헤겔은 인식론의 개념을 절대적 인식작용의 이론에까지 확장한다. 나아가서 인식작용이 자기 자신을 검사함으로서 인식작용은 동시에 대상론이 된다. 경험은 절대적 자아 이외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 인식작용 속에서 인식하는 자아에게 대상과의 동일성이 확실성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확실성은 최초의 단계에서는 불가능하며, '현상하는 지'는 말 그대로 '직접적인 현상하는 지'이기 때문에 '최초의 단계에서는 직접적인 대상의 직접적인 지'로부터 출발할 수 밖에 없다.『정신현상학』이 이러한 관점에서 인식을 근거지우려는 시도임은 '의식의 경험에 관한 학'이라는 그 부제가 잘 말해준다.

그러므로 학은 처음부터 직접적으로 완결된 것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자연적인 의식에서 시작하여 참된 지에로 이르기까지의 형성과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최초로 나타나는 자연적 의식은 현상지의 형태로 제기되고 현상지 자체에 의해서 그 주장의 절대적 진리성도 검토되며 그 과정에서 절대지의 현상지와의 불일치에서 오는 현상지의 한계와 내적 모순을 변증법적으로 극복해나가는 것이다.

헤겔은 여기에서 '학문'과 '경험 자체 속에 몰두해 있는 의식'을 명확히 구분하는데18), 이때 의식을 학문과 구별한다는 것은 '경험'을 하는 것은 학문이 아니라 '현상지'임을 의미한다19). 이렇게 볼 때 '현상지'는 참된 인식에로 전진해가는 '자연적 의식의 도정'으로 규정되어 있다20). 다시 말해서 서술 대상인 현상지는 자연적 의식의 한 특수한 양태로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적 의식이란 무엇인가?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서술은 다만 현상으로 나타나는 지만을 대상으로 하는 까닭에 결코 그 자체만으로는 스스로의 독자적 형태를 띠고 자유로이 전개되어 나가는 학이 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나 다만 지금과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참다운 지를 향해서 밀치고 나가는 자연적 의식의 도정으로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다시 이러한 서술과 전개는 마치 스스로의 본성에 의하여 자기에게 제시된 진행 단계와도 같이 일련의 자기형상화 과정을 두루 거쳐 나가는 영혼의 오솔길과 같은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을 것이니 결국 이러한 영혼은 자기 자신에 대한 투철한 경험을 통해서 바로 그 자신의 본래적인 존재양식이 어떠한 것인가를 파악함으로써 마침내 그 스스로가 정신으로 순화되기에 이른다21).

여기에서의 알 수 있듯이 헤겔에 있어서의 '자연'이라는 용어는 오직 구속하는 것, 제한하는 것22)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이 자연은 기존의 처지, 상황, 관습, 종교23) 등 의식을 규정하는 전체 상황 모두를 말한다. 자연적 의식은 본질적으로, 그때 그때 자기를 지배하는 또 규정하는 전체생활 속에 있는 것이다. 의식과 의식을 규정하는 상황 사이의 이 직접적인 합치를 헤겔은 의식의 형태24)라고 부르고 있다. 따라서 자연성(Nat?rlahkeit)은 단순히 신체성(Leibkchkeit)이나 유기적 자연(organische Natur)을 의미하지는 않는다25). 여기에서의 의식의 자연성은 영원한 자연과 같은 식의 의미에서의 '자연적'이 아니라 반대로 변화하는 상황 때문에 변화하는 의식이며 이런 의미에서 역사적 의식임을 알 수 있다26). 이 역사적인 것으로서의 자연적 의식은 변화하며 따라서 한 시대의 자연적인 의식의 형태가 다른 형태로 바뀌는 것이 의식의 도야인 것이다.

이를 통해 현실은 '축약'되어 '단순한 사유 규정들'로 되었고27) 개인은 직접적-감성적 인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식 '내용'을 '사유된 것28)'으로 바꾸어 버린다. 이 사유된 것 내지 사유과정 전체를 헤겔은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실체'라고 불렀다29). 이 실체는 자연적 의식의 완성을 통해 주체의 '소유'가 된다. 그리고 헤겔에 있어서의 완결된 의식의 도야란 의식이 대상성 내지 객관성의 영역의 이성적인 성격을 파악하고 이러한 객관성과 자기 자신의 합리성을 깨닫는데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이것은 궁극적으로 자연성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이다30). 즉, 의식을 규정하는 전체상황이 실제로 무엇인가를 파악하여서 의식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해방은 이루어지지만 의식 자체는 여전히 전체 상황 속에서 지속되며 다만 객관성을 이성적이고 사유에 의해 통찰된 것으로 파악하며 대상과 의식의 분리 및, 대상성에 대한 종속 등을 벗어날 뿐이다. 왜냐하면 주객 동일성에 대한 확신을 지닌 자연적 의식은 지의 단순한 개념이기 때문에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부정, 지양되며 바로 이것이 자연적 의식의 개념이 실현되어 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 현상지에 있어서 개념과 대상의 일치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 현상지의 진리 요구는 무너지게 되고 새로운 지의 형태가 나타나게 된다.

결국 의식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총체적으로, 즉 자기의 지와 또한 동시에 자기 대상에 대해서도 변증법적인 운동을 지향해 나간다고 하겠으니 의식에게 이러한 운동을 통한 새롭고도 진정한 대상이 발생한다는 의미에서 바로 이것이 경험이라고 불리는 것이다31).

여기서 우리는 의식이 두 개의 사상을 가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그 하나는 일차적인 절대적 즉자체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즉자체가 의식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즉자체로서의 일차적 대상은 의식과의 관계 속에서 변화를 겪게 된다. 따라서 일차적 의미는 즉자체도 오직 그 의식을 위한 그 의식을 위한 의식과의 관계 속에 있는 즉자체로서만 존재한다. 여기서 새로이 나타나는 것이 의식에 대해서만 존재하는 즉자체, 즉 진리인 것이다. 이 새로운 대상은 바로 그 첫 번째 대상을 통해서 그를 뛰어넘음으로써 얻어진 경험이다. 헤겔에 의하면 오직 의식 자체의 이러한 역전을 통해서 생성된 대상의 경험이 학적 전개 과정으로 고양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의식의 경험의 학이 되는 것이다.

3.감성적 확신에서의 의식의 변증법의 전개
자연적 의식을 벗어난 지는 의식 장에서 다시 구체적 감각적 대상을 만나게 되고 헤겔은 이를 '감성적 확신'이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지는 다시 가장 구체적인 감각적 대상에서 출발하는 동시에 자연적 의식에서와 동일한 극본과정을 보여준다.

가장 단초적이고 직접적으로 우리의 대상이 되는 지는 직접적인 지 즉, 존재하는 것의 지 이외에 다른 무엇이 아니다. 우리는 마찬가지로 직접적으로 혹은 수용하면서 태도를 취해야만 하며 그리하여 대상이 주어지는 대로 대상에 즉해서 아무것도 변경해서는 안되며 그리고 포착작용으로부터 개념적인 파악을 멀리 하지 않으며 안된다32).

감성적 확신이란 모든 규정적인 내용을 제거한 가장 최초로 나타나는 원초적 출발점이다. 동시에 감성적 확신이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지적 직관의 근원적 출발점이다. 그러므로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일단 직접적으로, 무비판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대상을 개념적으로나 어떤 선험적 논리에 의해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그대로를 파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감성적 확실성의 구체적인 내용은 감성적 확실성을 직접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인식으로서 실로 무한한 풍부성을 지닌 인식으로 현상한다ㆍㆍㆍㆍ 더구나 감각적 확실성은 가정 진실한 확실성으로서 현상한다. 왜냐하면 감성적 확실성은 대상으로부터 아직 아무것도 떨쳐버린 것이 아니라, 대상을 전적인 온전성에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33).

따라서 감성적 확실성은 지의 대상으로부터 아무것도 탈락시키지 않고 대상 자신의 '전적인 온전성34)'에서 대상을 가진다. 감성적 확실성의 내용은 직접적으로 '가장 풍부한 인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감성적 확실성은 절대지의 일차적 질료로서 충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헤겔은 최초에 가장 순수한 존재와 가장 풍부한 인식 그리고 진리의 본질이라고 본 감성적 확실성을 곧 가장 추상적인 그리고 가장 빈곤한 진리로 파악한다.

그러나 이 확실성은 사실은 자기 자신의 가장 추상적인 그리고 가장 빈곤한 진리가 된다. 이 확실성은 확실성이 아는 것에서부터 다만 이것, 즉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만을 언표 한다. 그리고 이 확실성의 진리는 오로지 사상의 존재만을 포함한다35).

이것은 최초의 감성적 확실성의 출발선상에서 자아(의식)와 대상은 직접적인, 즉 매개가 없는 지의 차원에 있는 자아와 대상이기 때문에, 헤겔은 곧 감성적 확신 안의 단순한 존재로부터 두 가지의 이것, 즉 자아로서의 이것과 대상으로서의 이것이 구별되어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감성적 확실성은 가장 풍부한 인식을 의미하였지만, 이러한 풍부성은 차별화에서 나오는 풍부성으로서 직접적 지로서 감성적 확실성은 필연적으로 단순하며 내적인 차별이 없는 지이기에 가장 단순한 것, 직접적인 것, 사상의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이 확실성의 본질을 이루는 순수한 존재에 즉해서, 그리고 이 확실성이 확실성의 진리로서 언표하는 순수한 존재에 즉해서 관조해 본다면 아직 많은 다른 것이 나란히 스쳐지나 가면서 작용한다. 현실적 감성적 확실성은 이 순수한 직접성일 뿐만 아니라 직접성의 예이기도 하다36).

이처럼 현상하는 직접지의 두 측면, 즉 의식의 자기 비교가 가능하게 되는 두 측면은 바로 이러한 지와 실체라는 두 측면에 따라서 규정되는 것이다. 지의 측면은 '순수한 자아'를 의미하며, 진리의 측면은 '순수한 이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우리가 이 양자 간의 구별을 반성해 본다며, 감성적 확신 안에는 어느 하나도 직접적이지 않고 동시에 매개되어있다는 것을 사실이 나타날 것이다. 나는 어떤 타자를 즉 사실을 통해서 확실성을 가지기 대문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마찬가지로 역시 어떤 타자를 통해서 즉 다름 아닌 자아를 통해서만 그 자신의 확실성을 띨 수 있기 때문이다37).

이것은 최초의 소박한 인식과는 달리, 의식의 관점을 반성하는 자아와 대상이라는 감성적 확실성의 두 측면이 그 자체 직접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매개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감성적 확실성의 순수한 존재 속에서 구별된 두 측면들은 각자 홀로 있을 수 없고 서로를 통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직접성 자체를 포착하려는 감성적 확실성이 결국 매개된 직접성으로 포착된다는 것은 이것이 결국 감성적 인식의 단계에서 의식은 대상을 얼마나 정확하게, 또 어떤 방식으로 파악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헤겔은 '이것'이란 무엇인가?(Was ist dast Dieses?)라는 질문을 제기하면서 인식의 대상인 '이것'을 시간과 공간의 차원에서 '지금'(das Jetzt)과 '여기'(dast Hier)로 구분하여 분석한다. 이것이 '감성적 확신' 장에서 전개될 구체적 반성적 내용이다.

그러므로 '지금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우리는 '지금은 밤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감성적 확신의 진리를 검증하는 데는 단 한 가지 시도만으로도 족하다. 즉 우리가 이러한 진리를 일단 글로 써서 나타내 본다고 하자, 물론 이와 같이 하나의 진리가 글로 씌어진다고 해서 무엇이 상실될 리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지금', '오늘 정오'와 같은 글로 표시된 진리를 눈앞에 놓고 바라본다면 부득이 우리는 그러한 진리가 어느덧 김빠진, 싱거운 낱말로 변하고 만다는 것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다ㆍㆍㆍ 이와 같은 사정은 '이것'에 해당되는 또 다른 형식이라고 할 '여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여기'가 '나무'라고 하자 그러나 일단 내가 고개를 돌리면 나무라는 진리는 곧 사라지고 그와 반대되는 것으로 뒤바뀌고 만다. 즉, '여기'는 더 이상 '나무'가 아니고 하나의 '집'일 수 가 있다38).

시간과 공간의 차원에서 '지금'과 '여기'를 분석하면서 헤겔은 그것들은 결국 직접적(무매개적)인, 구체적인, 개별적인 '지금'과 '여기'가 아니라 반성(매개)된, 추상적인, 보편적인 '이것'임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그 '지금'이란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것, 따라서 자신이 밤이든, 낮이든 그러한 사실에 전혀 무차별적인 그와 같은 것이다. '여기'역시 마찬가지다. 이것 역시 '일반자'이다. 우리의 시선에 따라서 나무도 집도 될 수 있으며, 또 나무도 집도 아닌 것이 될 수도 있으니 그어떤 것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전혀 무차별적이며, 따라서 '집', '나무'가 사라져도 '여기'라는 일반성만 남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일반자가 감성적 확신의 진리로서 나타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실상 감성적인 것을 일반자로 언표하고 있으며 우리가 말하는 '이것'이란 곧 일반적인 '이것'이며 또 '그것이 존재한다.'란 바로 '존재일반'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우리는 우리가 감성적 확신 속에서 사념하는 바를 결코 말로서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본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던 대상이 이제는 비본질적인 것으로 되었으니, 대상은 일반적이고 매개되어 있으며 더 이상 감성적 확신에 대해 본질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자신이 직접적이고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인식한다고 생각하는 '자아'는 앞서의 직접적 '지금'을 '자아'에서 즉, 봄(Sehen)이나, 들음(H?ren)에서 찾으려한다. 왜냐하면 자아는 직접적으로 '지금'보고 있고, 직접적으로 '여기'에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상에 적용되었던 똑같은 변증법적 과정이 '자아'에게도 적용된다. 왜냐하면 이 자아는 나무를 보고 나무라고 여기라고 주장하고, 다른 자아는 집을 보고 집이라고 여기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때 두 진리가 다 동일한 신빙성을 가지게 되며, 그리하여 한 자아의 확신적 단언은 다른 자아의 확신적 단언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은 보편적 자아로서 '자아'이다ㆍㆍㆍ 자아가 개별적 자아를 사념하나 그러나 여기, 지금의 경우 자아가 사념한 것을 자아가 언표할 수 없듯이, 이것은 자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자아가 자아, 이 개별적 자아를 말함으로써 자아는 결국 모든 자아를 말한다39).

즉, '자아'란 '이 자아'이기도 하고 '다른 자아'이기도 하므로 결국 개별적 자아는 소멸되고 '일반자로서의 자아'만이 남는 것이다. 지금, 여기, 이것처럼 자아도 결국 일반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대상도 자아도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무엇이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가 사라져버리며 남는 것은 일반적 대상과 일반적 자아이다. 지금까지의 이러한 의식의 전개과정을 다음의 세 가지 단계로 헤겔은 다시 요약한다40).

1) 나는 '지금'을 지적하면서 이를 곧 진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곧 다시 나는 이것을 이미 지나가 버린 것 혹은, 이양된 것으로 지적함으로써 첫 번째 진리는 지양된다.

2) 이제 나는 '지금'은 이미 지나가 버렸거나 지양되었다는 것을 두 번째 진리로 주장한다.

3) 그러나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은 존재하지 않음으로 여기서 나는 두 번째 진리를 재차 지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지금의 지금'을 부정하게 되고, 마침내 '지금은 있다'라는 최초의 위치로 돌아간다.

이렇게 본다면 마지막의 '지금'은 '무수히 많은 절대적 의미의 지금'을 의미하며 따라서 '지금'이란 있는 그대로의 의미에서 즉, 엄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취급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제 그 존재라는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게 된다41)"고 주장한다. 이것은 '여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집을 보고 '여기는 집이다.' 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집일 수 도, 나무일 수 도 있는 것이다. '여기'라고 이야기 할 때 여기에는 집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간에 있어서 구체적인 '여기'란 이처럼 다양하게 분할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므로 구체적으로 명시된 '여기'란 사실상 없는 것이다. 더 이상 분할될 수 없는 '여기'란 사실 하나의 점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점은 제시되거나, 경험할 수 없으니, 왜냐하면 우리가 점의 개념을 얻는 것은 하나의 선에서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한계를 추상을 통해서, 관념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는 실제적인 한계를 의미하며 한계로서 존재하기에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리하여 지금까지 진리의 절대적 근거로 여겼던 '지금'과 '여기'에 대한 확실성은 사라져 버렸고 그 어떤 것에서도 확정적인 객관적 진리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이처럼 우리의 언어는 모두 개념언어로서 모든 판단에서 대상에 대한 하나의 관념적 인식을 표현한다. 이것이 언어의 보편성이다. 그것은 완전히 동일한 의미를 지니면서 또, 그 어떤 것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무관심하게 되는 것이 언어의 속성이다42). 따라서 이 장에서 사용된 개념 - 여기, 지금, 이것, 등 - 에서 보여주려는 헤겔의 근본 의도는 그릇된 개념들이 선택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본래 보편적이며, 어떠한 말도 완전히 개별적 경우만을 지칭하지 않기에 상이한 경우에도 동일한 말을 사용해야 하며 그 결과 언어는 감성적 확신의 부분이 의도하는 바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개념언어로서의 우리의 언어는 구체적, 개별적 사물에 대한 지칭의 경우에도 어떤 관념적 인식을 언표하며 또 어떤 방식으로든 일반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말이다.

내가 '개별적 사물'을 언표하는 경우 나는 그것을 오히려 지극히 '일반적인 것'으로 말하고 있으니 왜냐하면 모든 사물이 개별적인 것이며 따라서 '바로 이' 사물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물들 역시 모두가 '바로 이'사물이기 때문이다43).

이와 같이 감성적 확신의 단계에서 대상을 개별로 인식하려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듣는 것과 보는 것은 의식에서 사라져버렸다. 의식은 이제 대상을 일반으로 파악하려는, 다른 말로 해서 대상을 보고 알게되는 것, 혹은 경험하는 것과 같은 감각적인 것이 아니라 무제약적 일반자로서의 참된 것(das wahre)을 받아들이는(nehmen) 지각(Wahrnehmung)으로 나아가는 것이다44).

4.맺는 말
지금까지『정신현상학』의 서론에서의 자연적 의식과, 의식 장에서 감각적 확실성을 통해서 헤겔의 진리 문제가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변화되었는 가를, 다시 말해서 개념을 토대로 한 의식의 변증법적 과정을 고찰해 보았다.

자연적 의식에서 헤겔은 자연적 의식이 어떻게 현상지의 형태로 나타나며 이러한 현상지가 결과적으로 어떻게 개념과 대상이 일치하는 절대지로 나아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자연적 의식이 반성적 과정을 수행하면서 끝임없이 변모하여 절대지로 접근하려는 현상지 자신의 인식과정 및 인식적 성격을 견지한다면, 다시 말해서 현상지가 거쳐가는 길만 꾸준히 따라간다면 자력으로 자기 자신의 모든 자연성과 '낯선 요소'들을 떨쳐버리고 '현상이 본질과 합치하는' 절대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과, 이것이 의식의 전 체계, 정신의 진리가 담긴 전 영역을 포괄하여 이루어지는 '경험'의 진정한 형태임을 헤겔은 보여주려 한 것이다.

'감성적 확실성'의 장에서의 핵심적 내용은 모든 인식작용이 비록 최초에는 감성적 차원에서의 개별자로 출발하지만 결국 일반자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삼각형의 본질이 구체적인 삼각형 속에 성림하여 있다는 것을 통찰 함으로써 삼각형의 개념을 획득하게 된다. 우리가 지금 눈앞에 있는 구체적인 삼각형에 대하여 '이것은 삼각형이다'라고 말한다면 거기에는 이미 본질 인식과 경험 인식 간의 결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가장 직접적인 감성적 확신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경험은 감성적 확신에서의 구체성을 곧 상실한 채 지각과 오성을 거치면서 감성의 영역에 구속되지 않는 이성적인 경험에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일반적으로 모든 개념에 타당한 것이며, 이것을 구체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정신현상학』의 전 과정인 것이다. 이는 결국 서양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논쟁인 보편과 개체, 추상과 구체의 문제를 헤겔 자신의 방식으로 재론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헤겔의 이러한 시도는 결과적으로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였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감성적 고찰과 구체성에 대한 거부는 가장 실재적인 대상의 현실성의 성급한 부정으로 귀결되었다. 자연적 의식의 경우, 현상지를 통한 의식의 자연성의 완성은 이를 통해 현실은 '축약'되어 '단순한 사유 규정들'로 되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리하여 개인은 직접적-감성적 인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식내용을 사유된 것으로 바꾸어 버린다. 이것은 헤겔 자신의 표현처럼 '직접적인 현실성'에 대한 의식의 파악을 절멸45)시켰을 뿐이다.

헤겔은 감각적 확실성을 통해서 다시 특정한 객체와 특정한 주체에 대한 특정한 형태의 의식형태를 제시한다. 그러나 최초로 주어진 특정한 이 객체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개념임이 밝혀짐으로서 이에 상응하는 개별적 주체도 부적당한 것으로 밝혀진다. 그러나 그 객체에 대한 우리의 감성적 확실성은 '나'라는 유일한 개별적 주체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럼에도 가장 구체적이고 실재적인 '나'는 개별자로 머물지 못하고 보편적 일반자로 변하게 됨으로써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단독적으로 존재하는 객체의 인식이 고립된 주체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경험의 원초적 양식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구체적인 인식의 단계인 감성적 확신의 단계에서부터 사물의 객관성이나 현실성이 별 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이러한 태도는 칸트가 소중히 여겼던(이것은 물론 칸트가 경험론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서)감성이나 질료적인 것에 대한 헤겔의 부정적인 인식으로부터 비롯되었는데 이것은 감각적인 것, 질료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 비한다면 차원이 낮고 하찮은 것에 불과하며 일시적인 데다가 그 자체는 아무런 자립성을 갖지 못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관념론의 필연적 결과였다. 헤겔이 칸트처럼 공허한 물자체를 남기지 않고 이성에 의해서 사상의 본질을 전면적으로 포착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전진한 것은 인식론의 지평확대를 위해서 바람직한 것이었으나, 칸트의 물자체가 여전히 부분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던 감관을 촉발하는 기체로서의 사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이라는 측면을 성급하게 무시한 것은 헤겔의 오류였다.

이리하여 칸트 속에 잔존해 있던 최소한의 유물론적 경향은 언어로 대표되는 일반자 개념에 의해서 곧 사라져버렸고, 이처럼 사물의 객관성이나 현실성 대신 언어 속에서 개념이 진리가, 즉 보편적 본질이 반영된다고 주장함으로써 헤겔은 자신의 출발점과는 모순되게 자연적 의식과 감각적 확실성의 입장을 처음부터 거부하는 결과를 보여준다. 인식론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나타나는 헤겔의 이와 같은 감성에 대한 지나친 경시와 물질에 대한 몰이해가 시대적 상황과 유리된 사변적인 자연철학을 가능케 하였고 결국 포이엘바하와 마르크스로 대표되는 유물론의 저항을 불러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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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주
1) G.W.F. Hegel, Ph?nomenologie des Geistes, hrst, V.J.Hoffmeister, Hamburg, Felix Mainer Verlag, 1952, 63면. 이하 Ph.G라 약함.
2) Ph.G. 61면.
3) 앞의 책, 같은 면
4) 앞의 책, 같은 면
5) 『정신현상학』에는 두개의 머리말이 있다. 첫번째 머리말 Vorrede 은 『정신현상학』이 완성된 후에 씌어진 것으로 『정신현상학』의 결론이며 『논리학』의 도입부에 해당된다. 흔히 서문이라 불리우는 Vorrede는 지의 변증법적 발전과정의 의미를 규정하고 그 과정을 실체와 주체가 통일된 정신의 자기운동 과정을 정식화함으로써 학의 기본적인 서술구조를 확정한다. 그러나 헤겔은 서문에서 이러한 결론을 내리게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생략한 채 결론을 전개하기 때문에 『정신현상학』전체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가 없이는 읽어내기가 매우 힘이든다. 이에 비해 서론으로 불리우는 『정신현상학』의 원래 머리말인 Einleitung은 자연적 의식이 학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자연적 의식이 형태화한 현상지의 자기지양 구조로 전재시키고 있으며 서문에 비해서 보다 명료하다.
6) 앞의 책, 같은 면.
7) 데카르트 이래의 근대철학자들이 한결같이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독특한 인식론적 방법을 제시하면서 그것이 매우 새로운 방법임을 강조하였다는 차원에서 보면 자신의 철학적 입장에 대한 헤겔의 이러한 천명은 별로 새로울 것은 없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헤겔의 인식론이 단순히 칸트의 이론을 논박하려는데 있지 않고 전통적인 인식론 자체를 문제시한다는 점에서, 다시 말해서 전통적인 방법 전체를 회의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이론과는 구분된다고 볼 수 있다(리차드 노만 저, 오영진 역,『정신현상학입문』, 서울, 한마당 1985, 11면 참조).
8) I.Kant, Kritik der Reinen Vernunft, Felix Mainer Verlag, Hamburg 1972, 355면. 이하 K.R.V로 약함.
9) K.R.V, 436면.
10) Ph. G. 64면
11) 같은 책, 같은 면.
12) Marx, W, Hegels Phanomenologie des Geistes, Vittorio Klosstermannnn, Franffurt am Main 1971, 63면.
13) 이리하여 헤겔은 칸트 인식론의 약점을 다음과 같은 잘 알려진 문장으로 비난한다.
"인식에 대한 검사는 인식하면서 해나갈 수 밖에 없다. 인식을 도구라 부를 수 있다면 이 인식 도구에 있어서 이 도구를 시험하는 것과 이 도구를 인식하는 것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인식하기도 전에 인식하려는 것은 물 속에 들어가지도 않고 수영을 배우려고 하는 스콜라 철학자들의 현명한 기도와 마찬가지로 이치에 벗어난 어리석은 것이다"(G.W.F. Hegel, Enzyklop?die der Philosophische Wissenschaften Suhrkamp Verlag, Frankfurt am Main, 1974, §10).
14) R. 데카르트 저, 김형효 역, 『성찰』, 서울, 삼성출판사 1976, 155면.
15) 리차드 노만, 앞의 책, 12면 참조.
16) Ph,G, 66면.
17) 물론 칸트에게서도 주객 동일성의 단초를 확인할 수 있다. 독일관념론에서 주객동일성의 개념의 토대가 되는 것은 칸트의 '선험적 통각' 이라는 개념이다. 선험적 통각이란 근본적인 논리적 작용들의 구조를 갖는 것으로 순수주관이 종합화하는 파악을 통해서 주관에 대립되는 세계에 주관의 논리적 형식을 새겨넣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주관은 인식과 객관성 사이의 선천적 동일성의 근원이 된다. 칸트 이러한 동일성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즉 "경험 일반의 가능조건이 동시에 경험대상의 가능조건이다"(K.R.V, 158면, W, Marx, 앞의 책, 같은면).
18) Ph.G, 66면.
19) 같은 책, 같은 면.
20) Ph.G. 67면.
21) 앞의 책, 같은 면.
22) 앞의 책, 210면.
23) 앞의 책, 225면.
24) 앞의 책, 75면.
25) W, Marx, 앞의 책, 65면.
26) Ph.G. 28면.
27) 앞의 책, 67면.
28) 앞의 책, 28면.
29) 앞의 책, 28면.
30) 앞의 책, 29면.
31) 앞의 책, 86면.
32) 앞의 책, 같은 면.
33) 앞의 책, 같은 면.
34) 앞의 책, 같은 면.
35) 앞의 책, 같은 면.
36) 앞의 책, 80면.
37) 앞의 책, 같은 면.
38) 앞의 책, 80-81면.
39) 앞의 책, 83면.
40) 앞의 책, 같은 면.
41) 앞의 책, 같은 면.
42) 이처럼 언어 속에서 개념의 진리가, 즉 보편적 본질이 반영된다는 언어의 진리성을 주장하는 헤겔의 이와같은 견해는 직접적으로 그의 개념실재론과 연결된다.
43) Ph.G, 82면.
44) C. Taylor는 감각적 확실성에서의 이러한 실패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거기에서 헤겔은 특수자에 대한 무매개적인 지는 없다고 추리한다. 감성적 확실성은 결국 감성적 확실성이 사념한 것의 반대이다. 그리고 이것은 효과있게 특수자를 인식하려는 모든 노력은 다만 보편적 개념을 통해서만 가능함을 보여줄 뿐이다. 따라서 순순히 특수한 것은 도달 불가능하다"(C.Taylor, Hegel, Suhrkamp Verlag, Frankfurt am main, 1978, 198면).
45) Ph. G.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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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사항

이강화
계명대
관심분야 : 인식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