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사유..!/사유와 상상.

[=] T. S. 엘리엇의 생태학적 상상력

온울에 2008. 5. 26. 04:07

목 차

들어가며 : 근대적 산업화를 위반하며
가. 『거룩한 숲』에 나타난 문학의 생태학
나. 『황무지』에 나타난 마음의 생태학
다. 『문화론』에 나타난 문화의 생태학
나가며: 공경의 생태 윤리학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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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자명 中央大學校 人文科學硏究所 
학술지명 人文學硏究 
ISSN  
권 35 
호  
출판일 2003.  

 

 

 

T. S. 엘리엇의 생태학적 상상력
( 『거룩한 숲』, 『황무지』, 『문화론』을 중심으로)


Ecological Imagination of T·S Eliot
(The Sacred Wood, The Waste Land and Notes Towards a Definition of Culture)


정정호
(Chung, Chung-Ho)
2-046-0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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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드야드 키플링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땅에 의지해 사는 사람들에 대한 키플링의 비전이다. 그것은 기독교적 비전이 아니고 적어도 이교도적 비전이다.-물질주의적인 견해에 대한 부정이다. 왜냐하면… 재수립되어야 하는 것은 자연화의 조화에 대한 통찰력이기 때문이다. 그가 전달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다시 말해 농업개혁프로그램이 아니라 산업화된 마음은 이해할 수 없는 견해이다. (On Poetry and Poets, 250)

들어가며 : 근대적 산업화를 위반하며
오늘날 인류의 문명 세계가 미증유의 생태계 교란과 환경 위기에 빠져 있다는 말은 너무나 흔하고 진부하여서 이제 우리는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못하면서 살고 있다. 환경 생태위기에 대한 무지한 낙관주의와 부도덕한 해이의 시대에 왜 지난 세기의 시인 T. S. 엘리엇을 다시 찾는가? 우리는 오늘날 20세기 전반부 세계문단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엘리엇을 모더니즘의 혁신적인 시를 쓰고 신비평을 유행시킨 장본인으로 그리고 후일 종교로 귀의한 그 효력이 이미 끝나버린 보수주의 문인으로 치부해 버린다. 그러나 엘리엇은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20세기초 구미의 지나친 산업화, 도시화, 상업화 등에 따른 자연과 인간의 유리 등 환경 생태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가진 문학지식인이었다. 이 글은 20세기초반 유럽문명의 황무지적 상황에 대한 엘리엇의 논의를 다시 반추함으로써 시, 비평, 문화의 영역에서 엘리엇의 생태학적 상상력을 타작해 내고자 한다.

엘리엇(T. S. Eliot)은 1933년 가을 미국 남부의 버지니아 대학교에 초청 받아 페이지-바버(Page-Barbour) 강연으로 3편의 글을 발표했다. 그 강연은 그 이듬해 영국에서 『이신을 쫓아서: 현대 이단 서설』 (After Strange Gods: A Primer of Modern Heresy)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엘리엇 자신도 출판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필자는 오늘 이 글을 그 책의 논의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엘리엇은 1934년 1월에 런던에서 쓴 머리말에서 전년도에 강연한 버지니아 대학교에 대해서 "전통적 교육의 흔적이 남아 있는 미국 교육기관 중 오래되고, 작고 아주 우아한 곳 중 하나"(14)로 평가하면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희망을 밝히고 있다.

나는 그러한 기관들이 과거와의 소통을 유지하기 위해 격려할 수 있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씨 그 기관들이 소통할 가치가 있는 미래와도 소통을 유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14)

엘리엇은 남부의 유서 깊은 버지니아 대학교 같은 교육기관이 "과거"와 교통을 하고 ‘미래’의 기획과도 연계시키고 싶다고 천명하고 있다. 결국 그는 인간과 자연간의 오래된 소통을 부활시키고 새로운 소통을 창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The Sacred Wood, ⅷ).

엘리엇은 첫 번째 강연의 서두에서 1919년에 발표한 「전통과 개인의 재능」에서 다루었던 "전통"의 문제를 다시 제기하면서 특히 남부의 "농본 운동"(agrarian movement)에 깊은 관심을 보여준다. 엘리엇은 뉴잉글랜드의 보스들에서 뉴욕으로 여행하면서 산업화의 확장으로 변해버려 달라진 환경에 놀랐다고 고백한다. 뉴잉글랜드 산들의 생태학적 교란의 역사를 원시림에서, 양목초지, 그리고 은행, 자작나무 숲에서 제본소, 제조공장으로 쇠락의 과정으로 파악한 그는 뉴잉글랜드보다 아직 산업화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지 않은 풍요로운 땅 버지니아에서 토착문화를 다시 수립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언명한다.

엘리엇은 경제적 결정론은 오늘날 우리가 경매하는 신이 되었다고 탄식하며 남부의 신-농본주의는 오래 전에 사라진 희망 없는 대의명분이 아닐까 하고 우려하면서 전통이 부활되거나 수립되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하였다. 엘리엇은 동시에 오래된 맹목적인 전통에 매달리는 것은 중요한 것과 비본질적인 것, 실제적인 것과 감상적인 것을 혼동할 위험이 있고 전통을 움직일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변화에 적대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하였다. 나쁜 전통도 있지만 최상의 전통도 있다. 여기에서 비판적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좋은 전통은 가려서 받아들이고 회복시켜야 한다.

우리는 열등한 종족들에 대한 우리의 우수성을 주장하기 위해 전통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성이 없는 전통은 유지할 가치가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우리의 정신을 사용하여 정치적인 추상체가 아니라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종족으로써 우리에게 최선의 삶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과거에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이며 거부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이다. 그리고 어떤 상황이 우리가 사용 할 수 있는 힘의 범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사회를 부양해야 하는가이다. … 도시와 농촌, 산업발전과 농업발전이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 또한 우리는 … 지방자치정부는 언제나 가장 항구적이어야만이 하고 국가의 개념이 결코 고정되거나 불변적이 아니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After Strange Gods, 19-20)

엘리엇은 이 글에서 도시, 전원, 산업과 농업의 균형적 발전의 저해를 걱정하고 있으며, 국가 개념도 결코 고정적이고 불변적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작은 단위의 지역사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의 생태학자들의 표어인 "작은 것은 아름답다"라든가 "전지구적으로 사고하자 그러나 행동은 지역에 알맞게 하자"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근대의 다른 이름인 산업주의와 자본주의는 근대 이전의 농경 주도의 전통적 사회로의 복귀에 의해서 광정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가 "과거’의 전통이 ‘미래"의 탈근대와 만나는 지점이다. 탈근대는 전근대의 일부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통은 탈근대의 새로운 가능성을 담보해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전통은 직접적으로 목표를 삼을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삶의 부산물로 간주될 수 있다. 전통은 말하자면 두뇌보다는 피와 관계가 있다. 전통은 과거의 활력이 현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수단이다. 피와 두뇌가 협동해야 사상과 감정이 화합이 된다. (30)

전통이란 올바르게 살다보면 생기는 부산물이 되어야지 문화처럼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상과 느낌의 화합이 그러하듯이 과거의 생명력은 현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이다. 엘리엇은 전근대적인 전통이 "오래된 미래"로서 근대의 산업화와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생태문화윤리를 세울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가. 『거룩한 숲』에 나타난 문학의 생태학
T.S. 엘리엇도 세계1차 대전(1914-1919)직후 1920년에 첫 평론집 『성스러운 숲』 The Sacred Book을 출간했다.1) 어떤 학자로부터 20세기 문학 비평의 "성서"(the sacred book)라고 불린 이 책의 재판서문에서 엘리엇은 무엇보다도 문학(시)의 본체론적인 자족론과 유기체론을 주장하고 있다. 엘리엇은 시는 시 자체로서 생명을 가진 것으로 보아야지 다른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시는 다른 것의 도구나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는 개체이다. 이것은 시가 도덕, 정치, 종교, 사회, 심리학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개체생명체로서 유기적 자족체로 인정하는 것이다. 엘리엇에게 시는 식물과 같은 유기체이다. 시는 녹색식물이다. 태양에서 나와 우주를 떠도는 창공의 자유로운 에너지를 잎을 통해 받아 대지의 뿌리와 줄기를 통해 물과 양분을 끌어올려 놀라운 광합성 작용을 통해 지구의 모든 생명체의 먹이인 "엽록소"를 만들어 낸다. 이것은 시가 창조되는 과정과도 유사할 뿐 아니라 문학자체가 생태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녹색식물인 문학은 통해 사람과 자연은 서로 교통하고 통합된다. 문학은 자연의 무늬(紋)이다. 삼라만상이 상호침투적이고 상호소통하는 관계의 망을 형성하는 것이 바로 자연의 생태학적 존재방식이다. 인간과 자연은 분리 될 수 없고 이미 언제나 하나이다. 이러한 천인상감(天人相感)에 따라 인간은 언어, 시, 문학을 통해 자연과 소통하고 조화를 이루고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문학은 생태적이다. 문학은 이제 자연에 이르는 길이요, 자연은 문학은 통해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문학은 이제 산업화, 도시화, 상업화에 멍든 자연 속의 상생과 치유의 지대인 국립공원이다.

이제부터 1920년 전후로 발표된 엘리엇의 비평문인 「전통과 개인의 재능」(1919), 「햄릿과 그의 문제들』(1920), 「형이상학파 시인들」(1921)에서 나온 비평용어들인 "전통", "몰개성시론", "객관적 상관물", "감수성의 분열"("통합된 감수성")을 생태학적 관점에서 살펴보자.

1919년에 발표된 「전통과 개인의 재능」은 20세기 전반기의 가장 중요한 문학비평문이다. 이 글은 20세기초의 새로운 모더니즘 문학 비평과 시 창작의 원리를 가장 혁명적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전통"에 대한 엘리엇의 널리 알려진 견해를 다시 들어보자.

전통은 즘 터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전통은 전수될 수 없으며 만일 우리가 전통을 가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치열한 노력에 의해 전통을 획득해야만 한다. 전통은 무엇보다도 먼저 25세가 지나서도 계속 시인이 되고자 하는 어면 사람에게도 필수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역사감각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감각은 과거의 과거성 뿐 아니라 현재의 과거성에 대한 지각력이다. 역사감각은 우리에게 자신의 세대와 작게 글을 쓰게 만들 뿐 아니라 호머 이래의 유럽문학 전체와 자신의 문학 전체가 동시적으로 존재하고 동시적인 질서를 구성한다는 느낌을 가지고 글을 쓰게 만든다. 시간성의 의식 뿐 아니라 무시간성의 의식인 이러한 역사감각은 한 작가를 전통적으로 만드는 어떤 것이다. (14, 이창배 역, 이하동일)

여기에서 전통은 "역사 감각(historical sense)"과 연결된다. 그것은 유럽문학에서 호머와 동시대에 이르는 동시적 질서를 인식하는 능력이다. 전통이 무너지는 시대에 "전통"은 무의식처럼 우리를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 시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맥락에서 글을 쓰게 만드는 "이념적 장치"로서의 동인(動因)이다. 개인의 재능은 전통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재능과 전통이 역동적인 대화적 관계를 유지할 때 살아있는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 따라서 전통은 억압이나 규범만이 아니라 현대/현재를 위해 언제나 열려있는 창조의 마당이다.

"전통"은 생태학적 상상력의 추동력이다. 대체로 근대화 이전의 전근대에 대한 인식체계인 전통은 관계론적 비개성주의에 다름 아닌 "역사감각"을 통해 소생되고 새로운 질서를 창출한다. 엘리엇이 말하는 "동시적 질서"는 온생명체계(생태계)이다. 개체생명으로서의 각각의 문학작품은 각 존재들의 상호관계의 망 속에서 커다란 공동체에 편입되는 것이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원리가 아니겠는가? 시인 개인의 재능은 커다란 문학적 전통과의 관계는 언제나 대화적이며 상호침투적이다 인간이란 개체생명의 하나의 작은 고리가 어찌 거대한 자연 존재의 거대한 고리에서 이탈하여 생존할 수 있겠는가?

이 글에서 또 다른 문학이론의 원리는 유명한 "몰개성론(Impersonal theory of poetry)"이 다.

한 예술가의 성장은 지속적이고 자기희생이며 개성의 지속적인 소멸이다. …정직한 비평과 감식력 있는 각상은 시인이 아니라 시에 주의를 집중시킨다. … 시인은 표현해야 할 "개성"이 아니라 인상과 경험이 특별하고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조합되는 개인이 아니고 매개체에 불과한 어떤 특수한 매개체이다. … 시는 감정의 분출이 아니다. 감정으로부터의 도전이다. 시인으로부터 시에로 관심을 돌리는 것은 칭찬할만한 목적이다. … 예술의 감정은 비개성적인 것이다. (52-53, 58-59)

몰개성론은 엘리엇이 혐오했던 19세기 낭만주의의 감정주의와 시를 비평하는데 작가인 시인의 삶이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는 역사주의 비평을 동시에 거부하는 것이다. 엘리엇은 "시"란 시인 자신의 감정이나 사상을 쏟아 붓는 장치가 아니라 "시" 자체의 자족적인 독립체라고 정의 내렸다. 시는 한 작가나 시대의 사상이나 이념을 매개하는 것이 아니라 시 밖의 모든 요소들과 독립되어 그 자체로 유기적인 구조를 가진 구성체이다. 엘리엇은 존재론적 의미에서 시의 고유한 정체성을 인정했다. 다시 말해 시의 독립적 지위를 확고하게 부여했다. 동시에 개성으로부터의 탈주를 통해 인간중심주의인 근대적 자아와 주체에서 벗어나 새로운 윤리적 가능성가지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반인본주의는 타자의식은 물론 인간이외의 동물과 무생물(사물)과의 대화까지도 가능케 만든다. 여기서 몰개성이란 개성을 없애거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마음을 비워야 그 사이와 틈 속으로 다른 타자들이 들어올 수 있고 그래야 모든 교류, 교환, 대화, 상호작용이 시작되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여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다. 사랑이란 자신의 일부를 버리고 타자를 받아들이고 타자가 되는 것이다. 녹색식물은 하나의 통과를 통해 거대한 역사를 이룬다. 태양의 빛과 땅의 물을 통과시키고 받아들여 위대한 창조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몰개성이란 결국 하나의 통과이며 대화이며 창출이다.

1920년에 발표한 「햄릿과 그의 문제들」이라는 글에서 엘리엇은 세익스피어의 비극 『햄릿』(Hamlet)은 걸작이기는커녕 확실하게 "예술적으로 실패작"이라고 단언한다. 실패의 원인은 세익스피어 극작 기술과 사상이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어서 햄릿 자신의 감정(emotion)이 혼란에 빠져서 다루기 어려운 상태로 빠져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엘리엇은 유명한 "객관적 상관물"을 제안한다.

예술의 형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객관적 상관물"을 찾아내는 것이라. 다른 말로 하면 그 특별한 감정의 공식이 될 수 있고 일련의 사물들, 상황, 일련의 사건들이 다 감각적 경험 속에서 외부적 사실들이 주어졌을 때 그 감각이 즉각적으로 환기되는 그러한 것이다. (145)

객관적 상관물은 추상적인 관념으로부터의 탈주의 선이다. 좋은 시는 관념이나 사상의 재현이 아니다. 객관적 상관물은 영혼의 집인 신체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물질적 상상력이다. 그것은 사물의 미학이며 구체성의 정치학이다. 구체적 사물은 현실세계를 환기시켜 실재를 지탱시켜주는 힘이다. 감정들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능력에 의해 느낌을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이다. 시인의 감정에 어떤 구체적인 대상물을 제시해아 한다는 엘리엇의 주장은 제 1차 세계대전 전후의 하나의 분위기를 드러내기 위해 하나의 대상물을 환기시키는 기술로서의 "상징주의"와 지성과 감정의 복합물으로서 "이미지즘"과도 연결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객관적 상관물은 사물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immediate experience)"할 수 있는 장치이며, 기계이다. 엘리엇의 사물의 시학을 물성(物性)의 회복을 통해 사물자체의 존재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근대적 인간은 사물자체보다 관념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인간은 모든 사물을 일단 인간에게 이용가치가 있는 유용한 것인가를 따져서 보류한다. 이렇게 근대적 인간은 지구의 삼라만상을 이용가치의 기준에 따라 식민화 하였다. 엘리엇은 이러한 사물의 식민지화를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탈’식민한다. 이 지점에서 비약이 허용된다면 엘리엇의 몰개성론이나 객관적 상관물은 삼라만상주의, 상생주의, 생물종의 다양성 인정과 생태의 문화윤리적으로 맞닿고 있다고 하겠다. 여기서 객관적 상관물이란 객관적 사물(자연)을 우리의 정서와 대화시켜 인간이 자연과의 교감을 가능케하는 이른바 "정경교융"의 시학은 아니겠는가?

"객관적 상관물"과 연계된 또 다른 중요 개념은 "감수성의 분열(the dissociation of sensibility)"이다. 엘리엇에 따르면 이 용어는 17세기 영국의 존 던(John Donne)과 형이상학파 시인들에 대한 열정의 표시이다. 엘리엇은 1차 대전 이후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통합된 감수성"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 비평 개념을 설명한 글인 「형이상학파 시인」(1921)은 그리어슨(H. J. C. Grierson) 교수가 편집한 『형이상학파 시인 선집』에 대한 엘리엇의 서평 형식으로 된 글이었다. 엘리엇에 따르면 영국시사에서 17세기 중반 이후 무렵 특히 밀턴과 드라이든 이후에 "감수성의 분열"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엇은 17세기초의 형이상학파 시인 중의 하나인 존 던은 감수성이 분열되지 않은 통합의 상태를 지녔다고 지적하였다.

테니슨(A. Tennyson)과 브라우닝(R. Browning)은 시인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사유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사상을 장미의 향기처럼 즉각적으로 느끼지 않는다. 던에게 사상은 하나의 경험이었다. 사상이 그의 감수성을 변형시켰기 때문이다. 한 시인의 마음이 이러한 작업을 완전히 수행할 수 있을 때, 그 마음은 이질적인 경험을 끊임없이 혼합시킨다. 반면에 보통사람의 경험은 혼란스럽고, 불규칙적이고 단편적이다. 보통사람이 사랑에 빠지거나 스피노자를 읽는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경험은 서로 아무런 관제를 맺지 못하고 또 타자기의 소리와 요리하는 냄새와도 아무런 관제를 맺지 못한다. 그러나 시인의 마음속에서 이러한 경험들은 언제나 새로운 전체를 형성한다. (287)

분열된 경험들을 혼합하는 능력은 잡종의 시대인 21세기 우리 시대에도 가장 필요한 기술이다. 사상을 장미의 향기처럼 느끼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능력인가? 세계화 시대에는 외국문물과의 무차별 교류 속에서 우리 정체성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분법적으로 대립된 시각을 절합하는 것도 통합된 감수성의 영역이다. 쇠똥구리 냄새 속에서 지구의 삼라만상의 대연결고리를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면…. 과학기술과 사이버 공간을 시와 결합시킬 수 없을까? 소비 자본주의와 대중문화 시대에서 고급 예술의 가능성도 엘리엇이 17세기 초 형이상학파 시에서 찾아낸 놀라운 생태학적 상상력에 달려있다.

감수성이 통합된 시인들은 "어떤 종류의 경험도 삼켜 버릴 수 있는 감수성의 기재"를 가지고 "사상을 감성으로 직접적으로 이해"하고 "사상을 감정으로 재창조"하는 사람들이다. 문학의 문(紋)은 가슴에 무늬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가슴에 문양을 칼로 피를 흘리며 파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예술은 자연을 우리 몸에 각인시키는 고통스러운 가해행위이다. 문학은 자연의 무늬를 조화롭게 재현하고 평화로운 과정만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문학적 창조는 하나의 폭력이며 고통이기도 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고통 속에서도 창조력이 좋은 시인들만이 21세기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의 복잡하고 다양한 문물의 현상을 치열하게 생태학적으로 재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문명의 시인들은 … 난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개연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문명은 엄청난 다양성과 복잡성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성과 복잡성은 세련된 감수성과 작용하며 다양하고 복잡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시인들은 … 언어를 자신의 의미로 강제로 만들기 위해서 점점 터 포괄적이 되고 암시적이 되고 비직접적이 되어야만 한다. (289)

우리는 문학을 통해 엄청난 종의 다양성을 가진 자연을 이용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개체생명 가치를 인정하여 대화하고 상호교류할 수 있는 "통합된 감수성"을 회복시켜야 한다. 오늘날과 같은 환경생태위기시대에 문학의 책무는 생태학적 상상력과 교육을 통해 인간과 근대 문명을 함께 광정하고 치유하는 것이다.

나. 『황무지』2)에 나타난 마음의 생태학
20세기의 전세계문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모더니즘의 기념비적인 시는 의심할 바 없이 1922년에 발표된 엘리엇의 『황무지』 The Waste Landd이다. 이 시의 형식과 내용은 한마디로 20세기 시문학의 혁명적인 대전환을 가져왔다. 엘리엇은 이 시에서 신화와 제식의 방식을 채택하여 자연과 문명이 대화하고 조화를 이루던 시대의 풍요를 회복함으로써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서양문명의 불모의 황무지적 상황을 비판하고 어떤 소생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 기법에 있어서도 엘리엇은 과거와 현재, 서양과 동양 등 수많은 인용들을 무질서하게 병치시킴으로써 어떤 혼란스러운 근대 산업사회의 도시적 삶의 잡종적인 모습을 재현하고자했다. 동시에 그는 그러한 생태적 무정부주의적 상황에 함몰되지 않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질서를 다시 꿈꾸며 모든 것을 소생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추구하였다. 다시 말해 흔히 『황무지』가 희망 없는 현대 문명에 대한 시인의 고발이며 탄식이라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이 시에는 분명 파편화된 삶을 유기적으로 다시 통합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다. 이것은 엘리엇이 상호의존적인 전지구적 생태계 안에서 삼라만상이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을 벗어나 대화하고 교류하는 상호침투적이고 상호유기적인 여럿이면서 하나인 역동적인 상호의존의 조화의 세계를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차라리 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했었다. (이창배 역, 이하동일)

위의 인용은 466행의 장시인 『황무지』의 시작부분이다. 「주검의 매장」 이란 제목이 붙은 제1부의 이 첫 부분에서 엘리엇은 봄이 되어도 만물처럼 다시 소생되지 못하는 고통을 노래하고 있다. 어린 싹이 그 차가운 땅을 뚫고 지상으로 올라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인가? 이것은 또한 하나의 작은 폭력이기도 하다. "나다", "살다", "기들다" 의 뜻을 가진 한자의 "생"(生)이라는 글자의 자원은 상형으로 풀의 싹이 땅위로 솟아 나오는 모습에서 온 것이다. 봄에 녹색식물이 새순이 땅위로 나오지 못함은 바로 지구상의 모든 생명의 죽음에 다름 아니다. 1차대전후 서구의 황무지의 인간들의 4월은 봄이 와도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 못하는 "가장 잔인한 달"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엉겨 붙은 뿌리들은 무엇인가? 돌더미 쓰레기 속에서

무슨 가지가 자란단 말인가? 인간의 아들이여.

너희들은 말할 수 없고, 추측할 수도 없어, 다만

깨진 영상의 무더기만을 아느니라. 거기에 태양이 내리쬐고

죽은 나무 밑엔 그늘이 없고, 귀뚜라미의 위안도 없고

메마른 돌 틈엔 물소리 하나 없다.

황무지의 주민들이 볼 수 있는 것은 "돌더미 쓰레기", "죽은 나무", "메마른 들" 뿐이다. "나무가지"는 자라지 못하고 "그늘"도 없고 "귀뚜라미의 위안"도 "목소리 하나"도 없다. 오로지 불모지의 파편들만이 있을 뿐이다. 봄과 더불어 함께 오는 동식물의 활동도 생명의 원천인 물도 없다. 다니엘 키스터 교수는 황무지의 상황을 앞서 지적한 "객관적 상관물"과 다음과 같이 연계시킨다. "『황무지』의 황폐한 시적 풍경은 인간경험과 자연현상사이에 많은 원형적 상관물로부터 만들어진 메마른 인간 상호관계에 대한 객관적 상관물을 이룬다"(14쪽).

인간은 근대화를 고도로 산업화되고 상업화된 도시에서 자연과 소외된 고달프고 척박한 삶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비실재의 도시,

겨울날 새벽 갈색 안개 속으로

군중이 런던교 위로 흘러간다, 저렇게 많이,

나는 죽음이 저렇게 많은 사람을 죽게 했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자네가 작년에 정원에 심었던 시체에선

싹이 트기 시작했던가? 올해에 꽃이 필까?

아니면 갑자기 서리가 내려 그 꽃밭이 망쳐졌는지?

런던으로 대표되는 황량한 "도시"생활의 모습이다. 도시의 인간들은 본질적인 것을 이룰 수 없는 "비실재적"(unreal)의 상황에서 자연과 유리된 자아의 주체성을 박제당한채 유령처럼 "갈색 안개 속"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죽음 속에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농경사회에서 봄의 제사인 식물제는 전세계적인 공통의식이다. 겨울 뒤의 봄은 자연이 소생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시인은 황무지화된 도시적 삶 속에서 봄의 소생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시체(죽음, 겨울)에서 다시 싹이 트고 꽃이 될 것인가? 아니면 서리로 인해 이 모든 것이 망쳐질 것인가? 이처럼 근대산업문명에서의 모든 죽음은 자연의 순환의 원리에 거슬러 재생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제2부의 소제목은 「장기두기」이다. 이 제목은 르네상스 시대의 극작가 토마스 미들튼(1570-1627)의 작품 『여성은 여성을 조심하라』의 제2막 2장에서 주인공이 어느 미망인의 장기놀이에 열중하도록 해놓고 자신은 바로 옆방에서 그 미망인의 수양딸을 끈질기게 유혹하는 내용에서 따온 것이다. 제2부는 따라서 여성의 장이며 능욕당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불모지 황무지 속의 여성은 무의미하고 공허한 삶을 영위하는 유한계급의 여성들과 뒷골목술집에서 몸을 파는 타락한 하류계급의 여성들이 등장한다. 풍요와 생성의 상징인 여성성이 타락하는 것은 여성적 원리의 쇠락이다. 이 시에서 겁탈당하거나 폭행당하는 여성은 착취당하는 여성이다. 그리고 능욕당하는 여성은 파괴되고 착취당하는 여성에 다름 아니다. 여성은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고 파괴하듯 남성에게 능욕당한다는 의미에서 여성과 자연은 가부장제 근대문명에서 모두 타자들이다. 시인은 여기에서 여성성이 무의미하게 취급되고 여성성인 풍요와 재생의 역할이 박탈되고 있는 우리시대의 문명을 슬퍼하고 있다. 지나치게 남성화된 근대의 개발문명, 경쟁문화를 광정하고 치유할 수 있는 건강한 여성적 원리를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인가?

제3부인 「불의 설교」에서도 대도시의 한구석에서 외롭고 무의미한 "여인"들의 생활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고 있다. 저녁 후 남자친구와의 기계적인 성행위를 끝낸 도시의 한 여인은 무료할 뿐이다.

여자는 돌아서서 잠시 거울을 들여다본다.

떠나간 애인의 생각은 이제 거의 없이

하나의 희미한 생각이 여자의 머리를 지나간다.

"자 이젠 끝났다. 끝나서 기쁘다"

아름다운 여인이 어리석은 행동에 몸을 빠뜨리고

혼자서 다시 방안을 거닐 때에,

기계적인 손길로 머리를 쓰다듬고,

축음기에 레코드를 거는 것이다.

이러한 남녀간의 사랑에는 어떤 재생과 구원의 의미가 있을까? 무의미하고 공허하여,

쾌락마저 없는 성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황무지에서 인간과 자연간의 관계가 무너졌듯 이 남자와 여자사이에 원초적 사랑의 작업은 사라져 버렸다.

「물에 의한 죽음」이라는 제목이 붙은 4부에서 시인은 풍요신의 매장의 신화를 제시하고 있다.

페니키아 사람 플레바스는 죽은 지 2주일,

갈매기 울음도 깊은 바다의 물결도

이득도 손실도 다 잊었다.

바다 밑의 조류가

소곤대며 그의 뼈를 줍는다. 솟구쳤다 가라앉을 때

그는 노년과 청년의 믓 층계를 지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물에 빠져 죽은 플레바스는 과연 생명의 원천이고 창조의 바다 속에서 과연 재생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시인은 부활의 가능성을 애매하게 암시할 뿐이다.

제5부 「우뢰가 말한 것」은 우리가 주목할 부분이다. 우레 즉 천둥소리는 풍용의 상징이다. 왜냐하면 우뢰는 비의 예고이기 때문이다. 물은 생명과 위안의 원형이 아닌가? 그러나 황무지에는 또 다시 물이 없다. 물이 없다는 것은 풍요와 생산이 없는 황폐한 자연의 모습이다.

여기엔 물은 없고 다만 바위뿐

바위있고 물은 없고 모래길 뿐

이 길은 꾸불꾸불 산 속으로 올라간다

이 산은 물없는 바위산

물이 있다면 우리는 발을 멈추고 마실 것인데

바위틈에서 우리는 멈출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다.

땀은 마르고 발은 모래에 파묻힌다.

여기에서 우리는 설 수도 누울 수도 앉을 수도 없다.

다만 금간 흙벽집 문에서

시뻘건 음산한 얼굴들이 비웃으며 소리지른다.

물이 없어 나무도 없고 모래뿐인 바위산에서 우리는 서거나 눕거나 앉거나와 같은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물론 어떤 위안이나 즐거움도 없다. 이 바위산은 도시의 삭막한 아파트촌인가? 근대의 개발윤리와 진보신화에 침윤된 이 황폐한 바위산에서 목타게 비를 기다리는 우리를 구원하고 치유할 성배 기사는 언제 올 것인가?

그러나 이제 어떤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여성의 슬픈 웃음소리이다.

공중에 높이 들리는 저 소린 무엇인가

모성적인 슬픔의 웃음소리

끝없는 벌판 위에 때지어 가는 후드를 쓴 군중들은 누구인가

다만 팽팽한 지평선에 에워싸여

갈라진 대지에서 고꾸라지며 가는 그들은 누구인가?

산 너머 저 도시는 무엇인가

보랏빛 대기 속에 개지고 다시 서고 터진다

무너지는 탑들

예루살렘 아테네 알렉산드리아

비엔나 런던

비실재의

이번에 여성은 어머니이다. "모성적인 슬픔의 웃음소리"는 개발과 착취로 황폐화된 자연의 통곡소리이다. 자연은 어머니-자연 mother nature가 아닌가 여기서 자연=어머니=대지의 등식이 성립된다. 자연은 우리의 집이고 어머니는 그 집의 살림을 꾸린다. 앞서 지적했듯이 모성은 "죽임"이 아니라 잉태, 출산, 양육, 돌봄, 다시 말해 "살림"이다. 그러나 그 모성은 전쟁, 경쟁, 개발, 탐욕이라는 가부장제의 남성 원리에 의해 파괴되어 위기에 빠진 문명을 위해 지금 울고 있다. "떼지어 가는 후드를 쓴 군중들은" "고꾸라지며" 간다. 그 군중들 속에 바위산 넘어 자연과 격리되어있는 유령과 같은 ("비실재의") 도시들은 자본의 욕망과 개발논리에 따라 "무너지고", "깨지고", "다시 서고", "터진다." 신흥도시도 말할 것도 없겠지만 역사적으로 세계의 대도시들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엘리엇의 시대보다 오늘날의 도시들의 모습은 더 기괴하다. 지탱불가능할 정도로 비대해졌고 오염된 대기와 먹을 수 없는 강(물)이 흐르고 자본가들의 비인간적인 음모와 개발중독자들의 광기가 난무하고 있다. 이대도시는 지상의 낙원이 결코 아닌 지상의 지옥으로 변해 갈 뿐이다. 남성적 원리에 의해 파괴된 대지의 살림을 맡고 있는 모성은 "슬픈 웃음소리" 이외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문명타락의 환유로서 대도시는 이제 여성적 원리에 의해 대지와 자연과 더불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인가?

이 시의 말미에 가서 시인은 재생의 가능성이 희박한 서양을 버리고 인도로 떠난다. "동양으로의 대전환"이다. 이것은 분명 좋은 적극적인 "오리엔탈리즘"일 것이다.

갠지스강은 바닥이 나고 축 늘어진 나뭇잎들이

비를 기다렸다, 멀리 히말라야 산 위에

먹구름이 몰렸다.

밀림은 말없이 허리를 굽혀 웅크리고 있다.

그때 우뢰가 말했다.

비를 기다리던 메마른 강과 나무들은 이제 히말라야 산 위에 "먹구름"을 보았다. 비는 곧 내릴 것이다. 이제 "밀림"은 조용히 공경심을 가지고 비를 기다린다. 그대 우뢰가 말한다.

주라 우리는 무엇을 주었던가?

친구여! 가슴을 뒤훈드는 피

분별있는 나이의 사람도 삼갈 수 없는

일순간에의 굴복 그 엄청난 과감성

이것으로 이것만으로 우리는 생존해 왔느니라

동정하라, 나는 언젠가 문에서

열쇠가 도는 소리를 들은 일이 있다, 단 한번

우리들은 각자 감방에서 열쇠를 생각한다.

열쇠를 생각하며 각자 감방을 확인한다.

자제하라, 배는 돛과 노에 익숙한

선원의 손에 호응하여 가벼이 움직였고

바다는 평온했다, 그때의 마음도 부름을 받았을 때엔

즐거이 순종의 고동울리며

그저 조종자의 손에만 응했으리라.

엘리엇은 이 말미에 오기 전까지는 자연과 격리된 황무지적 운명과 극도로 인위적인 문화의 불모성을 소개했다. 그러나 시인은 동양으로 선회하면서 이 모든 병페적 문제들의 근원은 결국 "사람의 마음‘에 있음을 선언한다." 이른바 "마음의 생태학"3)으로의 초대인가? 시인이 여기에서 기대고 있는 힌두교의 교리는 "불이론(不二論)" 이다. 모든 것은 이분법적 대립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이다. 자연과 문명, 자연과 인간, 인간과 사회, 인간과 인간 등은 서로 상호침투적이고 상호의존적이다. 인간이 결국 닫힌 자아를 열고 주체를 자제하면서 자연, 인간, 동물 등의 타자들에게 주고 동정하면 재생없는 죽음의 덫에 걸린 인간의 근대문명을 소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도시적 황무지를 밀림의 녹지로 만드는 것은 결국 비(물)이다. 비를 가져다주는 우뢰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해결책, 다시 말해 주라, 동정하라, 자제하라는 가르침을 통해 현재 지구를 경영하는 인간의 마음을 바꾸라는 충고를 우리는 거부할 수 있을 것인가.

만일 우리가 히말라야산 위 우뢰가 말하고 있는 힌두 가르침을 따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우뢰는 지금 먹구름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낚시질했다, 뒤엔 나는 강가에 앉아

최소한 내 땅이나마 정돈할까?

런던교가 무너진다. 무너진다. 무너진다.

「그리고서 그는 정화의 불 속에 뛰어들었다」

「언제 나는 제비처럼 될 것인가」 -제비여, 제비여

「폐허의 탑 안의 아퀴테느 왕자」

이러한 단편으로 나는 나의 폐허를 지탱해 왔다.

시인은 드디어 비온 뒤 물이 풍성한 강가에 낮았다. 메마른 벌판과 황폐한 도시는 뒤로한 채 낚시질하는 것은 풍요의 상징인 물고기를 낚기 위함이다. 이제 황무지화 되었지만 "최소한 내 땅이나마 정돈"한다는 것은 적어도 자기가 사는 지역만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는다는 말일 것이다. 이렇게 되어 황무지적 도시의 상징인 런던다리는 사라지기를 희망할 수도 있다. 이제 시인은 좀 더 적극적이 된다. 재생의 불인 정화의 불 속에 뛰어들어 더럽고 병든 근대문명을 모두 태워버리고 새롭게 부활하려한다.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위를 날았던 새로 부활을 상징하는 새가 되기를 기대한다. 지금까지의 이러한 몇 개의 작은 가능성들("단편")은 아직도 "황무지"라는 "폐허의 탑"안에 갇힌 시인을 지탱시켜주는 ("지탱가능한"?) 현재로는 유일한 소중한 지주이다.

시인은 다시 우뢰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힌두교의 축복하는 말로 끝을 맺는다. 인간문명의 모든 문제는 결국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인간의 마음에서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엘리엇이 바라는 "마음의 생태학"이다.

그러면 당신 말씀대로 합시다.

주라, 동정하라, 자제하라,

샨티 샨티 샨티

다. 『문화론』에 나타난 문화의 생태학
엘리엇은 영국성공회로 개종한 1927년을 기점으로 종교적인 시를 많이 졌으나 후년에 가서는 문화, 종교, 교육에 관한 글을 많이 썼다. 특히 세계 2차 대전 중인 1943년에 잡지에 발표했다가 1948년에 간행된 『문화론』(Notes Towards the Definition of Culture)에서 문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우선 엘리엇의 "문화"의 개념을 살펴보자. 그의 문화의 개념은 그보다 앞선 선배문인이었던 19세기의 『문화와 교양』(1869)을 펴낸 매슈 아놀드의 고급문화에 집중된 문화개념과는 달리 훨씬 광범위한 인류학적 개념에 의지하고 있다.

나는 「문화」라는 말은 제일 먼저 인류학자들이 의미하는 것, 즉 어떤 일정한 장소에서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어떤 특정한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의미한다. 그런 문화는 그들이 만드는 예술, 그들의 사회제도, 그들의 풍속·습관, 그들의 종교가운데서 구체화하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한데 모아놓기만 해서는 문화가 구성되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편의상 그런 것들을 문화의 내용인 것 같이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신체가 해부될 수 있는 것처럼, 하나의 문화를 해부한 결과 거기서 나타나는 각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마치 한 인간은 그의 신체 각 구성부분의 집합이상의 어떤 것인 것 같이, 하나의 문화도 그 예술·습관·종교적 신념 이상의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서로서로가 작용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의 하나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전부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 그러나 하나의 건전한 사회에 있어서는, 이것들은 모두 동일한 문화의 각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예술가도 시인도 철학자도 정치가도 노동자도 하나의 문화를 공유하는 것이다. (120, 김용권 역, 이하동일)

이러한 문화에 대한 정의는 고급문화개념에 집착했던 동시대의 F. R. 리비스와도 다르고 후속세대에 속하는 레이먼드 월리엄즈의 포괄적인 문화론과는 아주 유사하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이 속하는 지역사회의 생활방식, 습과, 종교, 전통 모두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1980년대에 부상된 "문화학" 또는 "문화연구"(Cultural Studies)에서 제시하는 문화개념과도 또한 유사하다. 요컨대 엘리엇의 문화 개념의 요체는 부분과 전체의 조화의 상관관계를 강조하는 유기체적인 성격에 있다. 엘리엇의 문화들이 종교의 우위 주장과 유럽문화의 통일성과 나아가 유럽중심주의를 주장하는 혐의를 벗을 수 없으나 이 자리에서는 주로 일반적인 문화론만을 논의하기로 한다. 엘리엇을 결국 "문화란 삶을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으로 단순하게 설명될 수 있다" (27)고 말하면서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서 문화란 개념은 오늘날 생태환경이란 말로 바꾸어도 무방한 최종심급의 문제이다.

엘리엇은 나아가 어떤 특정한 계급이나 집단의 문화만이 중요하고 다른 문화들을 사소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여러 수준의 문화들이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정점에서 [저변]에 이르기까지 문화적 수준이 연속적 단계를 이루고 있는 것 같은 그러한 사회제도라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중대한 일은 우리들이 상부의 수준이 하부의 수준보다 혀 많은 문화를 소유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차라리 그것은 보다 자각적인 문화, 보다 특수화한 문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하는 데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라면 이와 같은 서로 다른 문화수준을 포함하고 있지 않는 한 그 자신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48)

생태학의 제1원칙은 "모든 것은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상호관계성이 엘리엇의 주장에도 들어있다.

이와 더불어 엘리엇은 한 국가 내에서도 중앙문화와 지방문화의 상호교류의 중요성도 지적하고 있다. 구심적인 중앙문화와 원심적인 지방문화는 정태적인 조화관계가 아닌 좀 더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대화나 투쟁을 추천한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사회의 제계급간의 관계의 경우에도, 그리고 일국의 각 지역사이의 상호관계 및 각 지역과 중앙권력과의 관계의 경우에도 거기에서 작용하는 구심력과 원심력과의 간단없는 긴장이 희구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긴장이 없다면 균형이 유지될 수 없으며, 만일 그 중의 어느 한 세력이 승리를 차지한다면 그 결과는 슬픈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그 동일의 내부에 … 일국의 문화는 지리적 사회적인 여러 구성요소의 문화의 번영과 더불어 번영한다. 그러나 또한 일국의 문화도 그 자체는 보다 큰 문화의 일부분일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 커다란 문화는 세계연방주의자가 기획하는 것 가운데 포함된 의미와는 별개의 의미를 가진 하나의 세계문화라는 궁극적 이상을, 아무리 실현불가능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하나의 공통신념이 없이는 각 국민을 문화적으로 결합시키고자 하는 온갖 노력도 한낱 통일성의 환영을 일으키는데 그치고 말 것이다. (82)

여기에서 엘리엇은 "문화들의 생태학"("the ecology of cultures" 58)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다. 엘리엇은 영국에서 중심문화와 주변문화가 관계에서 상호성이나 대화성이 결핍되면 힘을 가진 중심문화로 통합되어 다양성이 결여된 단일하기만 한다면 그 국가의 문화는 질적저하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 지적한다.

엘리엇은 나아가 문화란 성장해야하는 어떤 것이라는 점은 우리가 나무를 심고 돌보고 그것이 성장하기를 기다리는 것이지 우리가 나무를 만들어 세울 수 없는 점에서 분명해진다. 엘리엇은 유럽문화의 건강을 위해서 각 나라의 문화의 독특성과 주체성을 유지하면서 유럽전체 문화체계 속에서 상호관계성을 인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119). 이 말은 온생명체계와 개별생명과의 상호관계를 중시하는 생태계의 원리를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상호관계가 활성화될 때 어떤 한 개체생명(인간이란 동물)이 지배하고 창궐하는 것이 아니라 온생명체계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공생과 창조의 관계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사유방식은 오늘날과 같은 복합문화주의가 토대가 되는 세계화시대에 민족문화의 주체성과 위상에 대해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엘리엇이 미래세계로 여겼던 20세기말과 21세기 시작의 시점에서 세계에서 상호의존적 관계가 중대하다고 예언하였다. 따라서 한 민족 문화가 외래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고립될 것이고 자국의 문화를 주지 못하고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상호성이 결여되게 된다. 이러한 상호주의의 관계에서 엘리엇은 한 전통의 쇄신, 창조 그리고 발전을 위해서 2가지 요건을 강조하고 있다. 그 하나는 외국에서 영향을 받아들이고 주체화시키고 다른 하나는 동시에 자국의 전통과 원천으로 돌아가 배워야한다(113). 이것은 생태학의 또 다른 원리인 "생각은 전지구적으로 하고 행동은 지역적으로 하라"(Think globally, Act locally!)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바로 엘리엇이 말하는 "문화의 생태학"에 다름 아니다.

나가며: 공경의 생태 윤리학을 향하여
엘리엇은 문화의 바깥지역인 환경문제 즉 자연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근대화와 산업화 가치에 경도된 어떤 공경심을 가져야 한다고 전제하고 이러한 공경심을 신과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자연을 신과 동격에 놓고 신을 공경할 수만 있다면 생태학의 최고경지인 삼라만상주의에까지 이르는 것이 아닐까? 다음은 엘리엇의 생태학적 상상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어서 길이에도 불구하고 인용하고자 한다.

현대의 이교주의와 구별되는 종교는 자연에 순응하는 생활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의 생활과 초자연의 생활은 기계적인 생활에 대해서는 가질 수 없는 일치점을 상호간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러나 [자연과의 일치]라는 것을 나는 이보다 더 넓은 뜻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중의 희생과 사적인 이윤을 원칙으로 하는 사회조직은 무절제한 산업주의에 의해서 인간을 왜곡하고, 자연의 자원을 고갈하게 한다는 것을 우리들은 점차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들의 엄청난 물질적인 발달은 대부부분 우리의 다음 세대 사람들이 고가한 희생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될 발달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 누구나 다 목전에 볼 수 있는 하나의 실례로서, [토지 침식]의 결과를 보아도 곧 알 수 있습니다. 상업상의 이익을 위해서 두 세대에 걸쳐 대규모로 토지를 개발했습니다. 목전의 이익은 궁핍과 황폐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그릇된 태도는 어느 면에서 신에 대한 그릇된 태도를 의미하며, 그 결과는 불가피적인 파멸의 운명이 될 것이라는 것뿐입니다. 오래 동안 우리들은 기계화되고 상업화되고 도시화된 생활양식에서 우러나오는 가치만을 믿어 왔습니다. 그러나 신이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이 지구상에서 생존하게 하신 영원한 조건을 우리들은 다시 똑바로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야만인들의 생활을 감상적으로 동경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들이 원시적이며 미개하다고 해서 멸시하는 사회에도, 우리가 보다 높은 수준에서 본받아야 할 사회적-종교적-예술적 활동이 하나로 합치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할 만한 겸손은 있어서 마땅한 일일 것입니다. 우리들은 [발전]이라는 것을 불가결한 것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 우리가 근원으로 더듬어 내려가는 것은, 보다 커다란 정신적인 지식을 가지고, 다시 우리 자신의 위치에 돌아올 수가 있기 위해서입니다. 종교적 공포의 감각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종교적 희망에 의해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입니다. (The Idea of Christian Society, 80-81, 박기열 역)

여기에서 이성을 도구화하는 과학주의와 이익창출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천민자본주의와 같은 "나쁜" 근대에 대해 엘리엇은 생태학적 저항을 시도하고 있다. 엘리엇이 자연을 황폐시키는 무분별한 산업주의와 도시화를 반대한다고 해서 반동적인 보수주의자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책임 없는 진보신화와 맹목적인 개발논리에 반대하는 것은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 관계를 훼손시키는 근대문명과 문화를 반성하고 비판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근대의 근본적인 문제들은 생태학적으로 제기한다는 점에서는 엘리엇은 반동적인 보수주의자일 것이다. 엘리엇이 근대적 계몽주의에 잠재된 인간적 가능성에 대해 궁극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잘못된 근대화가 자연과 삶의 유기적인 일체성이 파괴하고 다시 말해 소위 문명화과정에서 자연의 파괴와 동시에 인공물의 절대적 증가에 따라 자연이 인간의 삶의 현장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엘리엇은 문화이론가 또는 문명비평가로서 근대문명의 반생태적인 성격을 잘 지적해내고 있다 하겠다.

엘리엇은 인간과 자연과의 순응문제를 단지 인간과 자연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자연을 제3의 차원인 초자연적인 차원 즉 신의 차원까지 끌어올러 논의하고 있다. 바로 이점이 엘리엇의 자연에 대한 접근의 특이한 점이다. 다시 말해 자연을 인간과 구별되는 초자연과 연계시킴으로써 일종의 생태중심주의 또는 삼라만상주의에 이르게 하고 있다. 엘리엇은 자연을 초자연과 일치시킴으로써 근대 인간들이 불러 온 생태환경저인 위기와 재앙을 인간적인 것과 분리시키려 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인간중심주의 문화를 광정하기 위해 물질적 자연과 정신적 초자연에 의존하는 것이다. 엘리엇은 "만약" 이 ‘초자연’이 억압되는 경우에는… 인간과 자연의 이원성이 당장에 무너진다. 인간이 인간인 것은 인간이 초자연적인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Selected Essays 485). 또한 "인간의 모든 것은 아래로[자연]부터의 발전으로 초래 될 수 있거나 또는 어떤 것은 위로[초자연]부터 와야 한다. 이 딜레마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연주의자가 되거나 또는 초자연주의자가 되어야만 한다.

만일 우리가 ‘인간’이란 단어에서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신념이 인간에게 주어온 모든 것을 제거한다면 우리는 인간을 궁극적으로 지극히 영리하고, 적응할 수 있고 그리고 장난기있는 작은 동물에 불과하다고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앞 책, 405). 따라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겸손의 미덕이다. 겸손은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지혜이다. 인간의 교만은 인간, 자연, 초자연의 삼각관계의 상호성을 무너뜨리고 지구에서 인간중심주의라는 길로 접어들게하고 결국 자기 중심주의는 역설적으로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오만은 인간자신이외의 자연이나 초자연주의 타자와의 공감, 대화, 교류 등의 관계맺기가 없는 메아리없는 외침만을 만들어 낼뿐이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1965년 1월 4일에 세상을 떠났다. 2월 4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기념예배를 가졌고 4월 17일에 엘리엇의 조상이 17세기에 미국으로 이주하기전의 고향이었던 영국 서머셋 주 이스트 코우커의 성 마이클 교회에 유해가 묻혔다. 그러나 엘리엇은 그보다 훨씬 전에 이곳을 방문하여 16세기를 배경으로 "이스트 코우커"East Coker를 지었다. 아마도 이 시는 그가 꿈꾸던 생태적 낙원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는 시의 말미에서 꿈에서 깨어나 어두운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아 어둡다. 어둡다. 모두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별과 별 사이의 텅 빈 공간, 공허가 다시 공허로,

장군도, 은행업자도, 이름난 문사도,

관대한 예술 후원가도. 정치가도, 지배자도,

훌륭한 문관들, 여러 위원회의 장들도,

산업계의 제왕들, 조그만 청부업자들, 모두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해도 달도 어둡고, 고다의 年鑑도,

주식거래소의 통보도, 이사 명부도 모두 어둠, 어둠으로 들어가,

그리고 우리들 모두 그들과 함께 간다. 침묵의 장의로,

그 누구의 장의도 아니다. 매장할 자가 없으니

나는 내 영혼에게 말했다. 조용히 하라, 그리고 어둠의 내습을 받아라.

흐르는 시넷물의 속삭임과 겨울의 번개,

숨어 핀 야생 백리향과 들딸기.

정원에서의 웃음소리, 메아리치는 환희,

그것은 낭비가 아니라 필요한 것이고

죽음과 탄생의 고뇌를 가리켜 주는 것.

그대가 있는 그 곳에 도달하자면, 그대가 있지 않을 그 곳에서 빠져 나가자면

그대는 환희가 없는 길을 가야 한다.

그대가 모르는 것에 이르자면

그대는 무지의 길로 가야 한다.

그대가 소유치 않은 것을 소유코자 한다면

그대는 무소유의 길을 가야 한다.

그대가 아닌 것에 이르자면

그대가 있지 않는 길로 가야 한다. (이창배 역)

산업화, 도시화로 인해 인간과 유리된 "자연"에 대한 엘리엇의 태도는 분명하다. 그는 비관주의적이지만 견인주의적 입장에서 조심스러운 희망을 가진다. 그러나 엘리엇은 근대화로 훼손되고 황폐화된 자연을 버리고 순수하고 이상적인 자연으로의 회귀만을 노래하지는 않는다. 근대화의 결과로 생겨나 우리가 살아내어야만 하는 "인위적인" 자연에 대해 어떻게 마음, 문학, 문화가 환경생태적으로 개입될 수 있는가를 알아내는 것도 중요하리라는 것을 엘리엇은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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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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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주
1 왜 엘리엇은 평론집의 제목을 이렇게 지었는가? 엘리엇은 당시 지성계에 심대하게 영향을 끼쳤던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 The Golden Bough(1890-1911년. 전 12권)에 나오는 "성스러운 숲"을 지키는 "숲의 왕의 전설에 대한 이야기에서 이 제목을 가져온 것이 분명하다. 세계1차대전 이후의 불모의 땅이 되어버리고 숲이 사라진 유럽의 황무지 상황아래서 재생과 부활을 꿈꾸기 위해 엘리엇은 자신을 숲의 왕으로 자임한 것일까? 엘리엇은 조이스의 소설 Ulysses(1922)의 신화적 방법을 논하면서 자신의 방법을 다음과 같이 옹호하고 있다 : "신화를 사용하여 현대성과 고대성 사이의 지속적인 평행관계를 조종하면서 조이스씨는 다른 사람들이 반드시 그를 따라야하는 방법을 추구하고 있다. …신화적 방법은 단지 우리 당대의 역사인 허무와 무정부라는 거대한 파노라마를 통제하고, 질서화하고 영상과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그것은 예이츠씨에 의해서 이미 암시된 방법으로 그 방법을 의식한 첫 번째 사람이 그이다. … 심리학, 민족학 그리고 『황금가지』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불가능했던 것을 가능케 만들었다. 서사적 방식대신에 우리는 이제 신화적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나는 그 방법이 현대세계를 예술의 소재로 가능하게 만들고…질서와 형태를 향한 한 단계라고 진지하게 믿는다" (Kermode 177-78).
2 엘리엇은 이 시의 제목을 Jessie L. Weston의 『제식에서 로만스로』에게 빌려왔다(12쪽). 이 시의 신화적 구조에 관한 탁월한 논의로는 이재호 교수의 논문이 있다. 이상섭 교수는 "The Waste Land"를 "황무지"라고 번역하는 것을 틀렸다고 지적하며 "불모지"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황(荒)은 잡초가 마구 자라는 것을 뜻하며 무(燕) 역시 그 뜻을 나타낸다. 요컨데 갈지 않고 내버려 둔 땅을 "황무지"라고 하는데 "Waste Land"는 분명히 아주 메말라 어떤 돌이라도 자라지 못하는 몹쓸 땅, 곧 ‘불모지’不毛地를 말한다"(152). 필자도 이 주장에 일부는 동의하지만 지금까지 황무지가 널리 알려졌으므로 편의상 그대로 쓰기로 한다. 그러나 이 시를 환경생태적으로 읽는다면 waste land를 "쓰레기장(터)"으로 번역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동시에 waste land의 뜻이 어떤 의미에서 도시주변에 잡초만 무성한 "사용하지 않고 버려지거나 몰려두는 땅"의 의미로 본다면 이상섭 교수가 주장한 ‘불모지’와는 정반대로 다시 잡초가 우거진 ‘황무지’로 볼 수 있다.
3 이 용어는 필자가 Grego Bateson의 Steps to on Ecology Mind의 결론의 장에서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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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사항

정정호
(Chung, Chung-Ho)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교수